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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평점 :
이건 소설이 아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을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소설을 읽고 나면 '소설이니까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된다. 하지만 <친절한 복희씨>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은 픽션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그런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바로 나와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이다.
벌써 작가의 나이가 77세라고 한다. 나보다 두 배 가까운 세월을 사셨다. 사는 데 진력이 나고 지루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 쓴 작품들이라는 작가의 말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작가들이라면 으레 치열하게 새로운 글감을 탐하며 진지하게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웃을 일이 없어서 스스로를 웃기려고 쓴 작품들이라는 말에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어쩌면 이렇게 솔직할 수 있을까?
사십 년 가까운 세월을 유명 작가로 바쁘게 살아온 이가 일상이 지루하고 사는 데 진력이 났다고, 그래서 자신을 웃기고 싶었다고 옆집 여자에게 투덜대듯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삼십이나 사십 나이에 할 수 있는 말은 결코 아니다.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유명 작가로 바쁘게 살았지만 나이 앞에선 위선도 이중성도 다 필요 없음을 작품들을 통해, 그리고 작가의 말을 통해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박완서가 좋다.
이 책에는 모두 9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그리움을 위하여>는 파출부로 데리고 있던 사촌 여동생이 재혼해서 먼 섬으로 떠난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이상 파출부로 부려먹을 수 없는 상전의 심보였음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그 투덜거림 속에 그리움과 축복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 웃음을 머금게 한다. <거저나 마찬가지>는 소위 운동권 학생으로 위장 취업까지 했던 이가 사회적으로 성공해서 공장에서 만났던 후배를 '거저나 마찬가지'라는 말로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이야기다. 노동자들을 위한다고 설치던 이들의 삶이 얼마나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성공하지 못해서 아직도 아내 덕에 먹고 사는 운동권 출신 친구가 있는 내게 아주 특별하게 읽혔던 작품이다.
<그 남자네집>은 주인공이 젊은 날을 보낸 동네로 이사 간 후배네 집을 찾아가면서 자기 몸에 위험한 바람이 들게 했던 옛 남자를 떠올린다. 그리고는 젊었을 때 넘치는 젊음을 낭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내겐 너무 주변을 의식하며 조신하게 사는 건 젊음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후남아, 밥 먹어라>에 등장하는 후남이(남자 동생을 바라는 이름 속에 그녀가 받았을 설움이 느껴진다.)는 늘 가족의 무관심 속에 살다가 우연히 재미 교포에게 시집을 가면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지만 그녀가 다시 돌아와 편안함을 느끼는 건 어린 시절에 맡았던 흙냄새와 밥 냄새다. 주인공들의 과거에 대한 집착과 후회에 나도 공감하는 걸 보면 슬슬 나이를 먹어 가는 것 같다.
<마흔아홉 살>은 사람들의 이중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노인네들 목욕시키는 봉사 활동을 완벽하게 해내지만 시아버지 속옷을 학대함으로써 시어머니에 대한 반감을 해소하는 이중성을 지닌 여자가 나온다. 그 여자를 통해 밖으로 보여지는 삶이 전부가 아님을 은근히 경고한다. <촛불 밝힌 식탁>은 며느리 입장과 시어머니 입장이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 보게 만들어준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시어머니가 불빛을 보고 찾아올까 봐 촛불을 밝히고 저녁을 즐기는 아들네 모습에 너무 했다 싶으면서도, 며느리 입장이 되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이 들었으니 나도 좋은 며느리는 아닌가 보다.
<대범한 밥상>은 아무런 풍파도 없이 살아온 삶이 오히려 허전해서 뼈가 시린 여자가 3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 그녀가 삶을 정리하는 방법이 아주 특이하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딸과 사위를 잃고 바깥사돈과 함께 살다 혼자 된 친구를 찾아가 실컷 조롱하려다 오히려 자신의 삶이 얼마나 가볍고 욕심 많은지를 깨닫게 된다는 야기기다. 표제작인 <친절한 복희씨>. 젊은 날 일을 도와주던 주인집 남자에게 이끌려 얼떨결에 결혼한 복희씨가 늘그막에 병든 남편을 바라보며 고소해한다.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산책이나 다니는 주제에 약국에서 비아그라를 사 오라고 호통 치는 늙은 남편의 모습이 복희씨만큼이나 징그럽게 느껴졌다. <친절한 복희씨>라는 제목에는 늙어갈수록 친절하기를 바라는 남편의 마음과 반대로 친절해지고 싶지 않은 아내의 마음이 다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전원 생활을 꿈꾸며 이사 간 시골에서 사람들한테 갖은 모욕을 당하던 여자가 서울 나들이를 한다. 택시 기사의 "사모님, 어쩐지 멋쟁이다 싶었는데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오셨나 봐요."라는 말에 그동안의 설움을 다 털어내고 행복해지는 <그래도 해피엔드>의 여인은 바로 우리 여자들의 삶이기도 하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묵묵히 살아 내 삶이 억울해도, (그게 비록 속 보이는 말일지라도) 부추겨주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눈물나고 힘들었던 과거까지 싹 잊게 된다는 것을 슬그머니 알려주는 것 같다.
<촛불 밝힌 식탁> 한 작품만 빼고는 모두 여자가 화자다. 이 작품마저도 화자가 쫓아가는 것은 아내의 일상이니 모두 여자들의 이야기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중년 이후를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다양한 여자들의 수다를 읽다 보면 나도 슬그머니 그 옆에 끼어들고 싶어진다. 그리고 나의 중년과 노년도 그녀들의 삶처럼 그리움과 행복을 가득 품은 수다꺼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