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만져 보세요 책읽는 손가락 1
송혜승 글 그림 / 창비 / 2008년 1월
장바구니담기


정말 특별한 그림책입니다. 왜냐하면 이 그림책은 두 가지 언어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으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우리 글과 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을 위한 점자.

왼쪽에는 볼록 그림이 있어 손으로 더듬어보면 그게 나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림에 대한 내용은 점자고요. 점자를 만져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제가 아주 행복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오른쪽은 누구나 보고 읽을 수 있는 기존의 그림책과 똑같습니다. 그림이 있고 우리말 이야기가 있네요. 더구나 여성 잡지만큼 큰 판형에 두꺼운 종이를 썼고, 스프링으로 되어 있어 튼튼합니다.

나무의 사계절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나무와 함께 한 소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소년의 집 마당에는 사과 나무도 있고, 예쁜 꽃도 많대요. 봄이 되면 민들레가 피고, 여름이면 봉숭아가 자라고요, 가을이면 코스모스랑 노란 해바라기가 피고, 빨간 사과도 열립니다.

엄마 아빠보다도 더 큰 사과 나무예요. 하지만 친구들과 키를 합치면 사과나무보다 더 크지요.

가을이 깊어지니까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네요. 초록 바탕과 노란색 낙엽 때문일까요? 그림의 느낌은 하나도 쓸슬하지 않아요. 그래서 더 좋답니다.

드디어 눈이 내리는 겨울이 되었어요. 눈꽃이 핀 쓸쓸한 사과 나무 곁을 눈사람이 지키고 있네요.

우리 딸은 이 책을 보더니 점자를 그대로 일기장에 옮겨 그려놓더군요. 점자를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답답해했어요. 아이를 보며 장애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여러 번 이야기하는 것보다 눈을 감고 이 책 한 번 읽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각 장애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하는 분이 만든 정말 특별한 그림책이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장애를 가진 어린이와 그렇지 않은 어린이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무진장 따뜻해집니다.

책도 책이지만 이런 책을 만든 이들의 마음은 더 아름답다는 생각도 듭니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8-01-30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정말 탐나는 책이네여

하늘바람 2008-01-30 14: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의 마음이 따뜨ㅡㅡㅡㅅ해요

소나무집 2008-01-30 14:49   좋아요 0 | URL
님, 벌써 오셨어요?

전호인 2008-01-30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까지 이렇게 진화하는 군요.
앞으로 모든 분야에서 진화는 계속되겠지요?

소나무집 2008-02-01 15:38   좋아요 0 | URL
전에 도서관에서 점자를 한쪽 면에 붙여놓은 그림책은 본 적이 있는데 이렇게 출판 자체를 한 책은 처음 보았어요.

송혜승 2008-02-01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왔습니다.
따님과 함께 소중하게 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소나무집 2008-02-01 15:39   좋아요 0 | URL
저자께서 들르셨네요.
이렇게 찾아주시니 저도 고맙습니다.
그리고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인 것 같아 존경스럽네요.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마법상자 모두가 친구 7
코키루니카 글.그림, 김은진 옮김 / 고래이야기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딸아이가 책을 보고는 얼른 제 방으로 들어가 독서록을 쓰데요. 궁금해서 살짝 들여다보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네요.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동생이랑 싸우지 마라, 어질러놓지 마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등. 맨날 잔소리나 해대는 엄마를 사라지게 하고 싶은 사람 1순위로 꼽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엄마가 아닌 동생을 사라지게 하고 싶다고 썼구만요.

아마 딸아이는 엄마를 1순위로 쓰고 싶었을 거예요. 하지만 후일이 두려워 모든 일의 원인을 제공하는 동생을 마법 상자 안에 슬그머니 밀어넣은 것 같네요. 영특한 것 같으니라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동생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시간을 정해두고 사라지게 하고 싶다고 그랬군요. 장난꾸러기에 말썽꾸러기지만 동생이 없으면 세상이 얼마나 심심한지 알고 있는 듯합니다. 아들 녀석한테도 물어봐야겠네요. 마법상자 안에 넣고 싶은 게 뭐냐고.

아이들에게도 분명 짜증 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툭 하면 떼쓰는 막무가내 동생이 밉기도 하고, 엄마는 누나라고 맨날 양보하라지. 뭐 누가 먼저 태어나고 싶었나요? 그러니 억울할 수밖에요. 수업 시간에 딱 한 번 짝꿍이랑 한마디했을 뿐인데 재수없게 선생님한테 걸렸어요. 그런 날 기분도 별로인데 식탁엔 먹기 싫은 음식만 가득하다면 아이들은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을 거예요. 

이럴 때 싫어하는 건 뭐든지 삼켜버리는 마법 상자가 등장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모두 모두 사라지게 말이에요. 그래서 다시는 눈앞에 안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죠? 이 책은 아이들의 이런 마음을 위로해줍니다. 그림도 검은색 펜으로만 그려 좀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네요. 마법 상자만 금빛이어서 금방 눈에 들어옵니다.

주인공 아이는 엄마도 동생도 선생님과 친구들도 모두 사라지게 한 것이 자기 탓이라는 생각에 자신까지도 싫어집니다. 결국 아이도 마법 상자 속으로 빨려들어 가지요. 거기서 만난 싫어하는 것들과 화해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뻔한 결말이 너무 교훈적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오히려 그래서 엄마들에겐 더 인기가 있으려나? 지금은 마법 상자에서 나와 모두 행복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있지만 머지않아 또 마법상자가 필요하다고 외치면 그땐 어쩌나요?

만약에 아이가 마법 상자 안에 들어가지 않고 화해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난 내가 싫어!"에서 이야기를 끝내고 맨 마지막 장은 백지로 놓아두었다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를 담은 지도 지식 보물창고 3
잭 놀튼 지음, 해리엇 바턴 그림,임문성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맨처음 지도에 대해 배우는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인 것 같다. 3학년 딸아이가 사회 시간에 우리 동네 그림 지도를 그리는 숙제를 해 간 적이 있다. 그때 지도를 꺼내놓고 거리와 축적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미리 이 책을 보았더라면 훨씬 더 설명하기가 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도가 생겨나게 된 배경과, 지구가 평평하다는 생각 아래 그려졌던 약간 우스운 모습의 고대 지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 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마젤란이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인정한 후 지도는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된다.

지도와 지구본의 차이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 온 펼친 면 지도는 사실 정확하지 않다. 그린란드의 경우 남아메리카보다 8배나 작지만 지도에서는 그린란드가 훨씬 더 크게 그려져 있다. 북극의 좁은 면을 억지로 펼쳐놓다 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펼친 지도를 더 많이 보면서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집에 있는 세계 지도와 지구본을 비교해 보니 금방 알겠다. 가장 사실적인 세계의 모습을 알기 위해서는 지구본 하나쯤은 있어야 할 듯하다.

기본적인 방향, 지도에서의 거리와 실제 거리의 비율인 축적, 지도를 보고 실제 거리 구하는 방법, 위도와 자오선,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그려지는 지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도서관에서 980번이 지도가 있는 위치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주기까지 한다.

특히 신형건 님이 쓴 부록은 우리나라와 관련된 지도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어 아주 유익하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우리나라, 우리 조상들이 남긴 지도, 동해를 일본해라고 주장하는 인본인의 속셈, 과연 세계의 한가운데는 어디인지 등 평소 그냥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동네 지도 그리기 예가 나와 있어 아이와 한 번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도에 관해서 배우는 건 3학년부터지만 엄마가 읽어주면서 설명을 해줄 수 있다면 초등 1,2학년에게도 권하고 싶다. 지도를 읽는 방법이 들어 있는 이 책을 읽는다면 사놓고 책꽂이만 차지했던 지도책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특별해질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기심 - 10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일곱 편의 이야기 창비청소년문학 6
김리리 외 지음, 김경연 엮음 / 창비 / 200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홍색 표지가 눈에 확 들어온다. 요즘 한참 분홍색이 뜬다더니 책표지에까지... 그런데 유치하다는 생각 대신 마음이 설레는 건 왜일까? <호기심>이라는 제목과 십대의 사랑과 성에 대한 일곱 편의 이야기라는 부제는 정말 호기심이 일게 만든다. 십대 아이들에게 사랑과 성은 핑크빛이고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표현일까?

우리 아이들이 아직 성과 사랑을 말하기에는 어린 탓에 책을 읽는 내내 자연스레 나의 십대가 떠올랐다. 시간과 자유는 많았으나 마냥 흘려보낸 나의 십대. 그래도 그 속에서 살포시 고개를 내미는 추억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가슴 설레었던 시간들이다.

6학년 때까지도 잘 놀며 지냈던 옆집 남자 아이가 중학교에 간 후 사내로 보였는지 3년 내내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낸 웃기는 일도 있었고, 고1 땐가 스승의날 선생님댁에 놀러 갔다가 만난 중학교 동창에 대해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그 아이 소식에 귀를 열어놓곤 했다. 아니 사실은 어딘가에서 수학 선생님을 하고 있다는 중년의 그 아이(?)가 지금도 궁금하다. 덜 익었지만 십대에 경험한 사랑의 감정은 이렇듯 평생을 가기도 하나 보다.

일곱 편의 이야기 모두 요즘 아이들의 상황과 심리 묘사가 뛰어나고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중 <첫날 밤 이야기>는 제목만으로도 살짝 얼굴이 붉어지고 궁금해진다. 가슴속에서 밤하늘 같은 그리움이 뭉게뭉게 자라나고, 무엇이 그리운지도 모르면서 그냥 그리운 열여섯 살에 듣는 외할머니의 외할머니의 첫날 밤 이야기는 콩콩콩 가슴이 뛰게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이 첫날 밤을 치르기엔 너무 이른 나이이니 할머니의 할머니 적 이야기임을 강조해야 하겠지! 

<쌩레미에서, 희수>는 '아이들의 사랑에도 조건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답을 준다. 희수는 머리에 노란 물을 들이고, 요란한 귀걸이에 튜닝한 신발을 신고, 학교도 안 다니고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희수가 유학을 다녀온 부잣집 딸이라는 소문에 마음이 끌렸던 선우가 희수의 정체를 알면서 고민하는 이야기다. 배경을 보고 좋아한 게 아니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선우의 모습을 보며 사랑마저도 어른들의 세상에서 배웠네 싶었다. 하지만 응달에 내놓은 듯 마음이 시리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 아픈 걸 보면 선우에겐 조건보다 사랑이 더 앞서 보인다. 선우가 입시를 치르고 쌩레미에 있는 희수를 만나러 갔으면 좋겠다.

<공주, 담장을 넘다>에서는 공부가 지상 최고의 목표처럼 되어 있는 요즘 중고생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1 모범생 정민이가 가출을 한다. 이로 인해 주인공 내가 재수없다고 생각했던 정민도 사실은 보통 아이들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특히 영어 단어나 수학 공식을 외울 땐 로봇 같았지만 남자 친구를 생각하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정민이의 말은 모든 십대들의 외침처럼 들리기도 한다. 

지금도 여전히 부모들은 십대 아이들의 성과 사랑에 대해서는 불편하다. 나도 지금 마음이야 엄청 너그러울 것 같지만 막상 우리 아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남자 친구에게 빠져 있다면 두 눈에 쌍심지를 켤 게 분명하다. 그래도 아이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기에 자기들 이야기가 가득한 이 책 한 권쯤은 책상 위에 올려놓아 주고 싶다. 어른들을 향해 꽁꽁 닫아버릴지도 모를 아이의 마음을 그렇게라도 열어주고 싶다.

그런데 내가 십대로 돌아가 요즘 아이들 식으로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고 하면 주책이라고 하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호인 2008-01-23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생각속에 호기심이 아마도 90%이상 들어있지 않을까요?
그것을 하나씩 증명하는 것이 어른으로 성숙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나무집 2008-01-28 13:58   좋아요 0 | URL
중고생이 되면 아이들 의식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면서도 두려워요.
감당 못할 정도면 어쩌나 싶어서요.
그 시절엔 왜 그리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바깥 날씨가 추운 탓인지 마음도 덩달아 춥다. 책을 사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세워두었건만 한 달이 넘게 내 눈길만 스쳤다. 한강, 그녀에 대해 아는 거라곤 한승원의 딸이라는 정도. 어쩌면 이 책을 사게 된 것도 한때 탐독했던 한승원에 대한 호기심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문학 동네에서 제법 괜찮은 대접을 받고 작년에는 이상문학상까지 받은 그녀를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았다.

표지의 반이나 가리는 깔끔한 느낌의 띠지를 떼어내고 양쪽으로 펼치니 네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띠지가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의 표지다. 해질녘 붉은 기운을 품은 네 그루의 나무는 어째 쓸쓸하다. 늦가을 메마른 잎을 가지에 단 채 거친 바람을 견뎌내며 어둠을 맞이하고 있다. 짧은 예술 인생을 산 에곤 실레의 <네 그루의 나무>다. 주인공들이 하나씩 그 나무 사이를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뒷모습만 보인 채 아주 아주 쓸쓸하게!

세 편의 연작 소설 중 첫번째 이야기인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나의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주인공 여자의 삶이 어떻게 변해갈지 짐작도 못한 채 특별한 매력도 특별한 단점도 없는 여자의 삶에 밑줄까지 그었다. 하지만 영혜를 통해 내가 본 건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들의 가슴속에 숨겨진 화산이었다. 과분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 화자 그(영혜의 남편)에게 전혀 신경 쓸 게 없게 만들었던 아주 평범한 여자. 어린 시절 집에서 키우던 개와 이어져 있는 살육에 관한 꿈을 꾼 후 그녀가 변해간다. 육식을 거부하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닫더니 결국 정신을 놓아버린다. 자신이 너무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아내의 변화를 보며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면 안 되었다."고 "나는 저 여자를 모른다."며 다음에 벌어질 일을 예고한다. 누군가에 대해 다 안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 일이다.

너무나 평범해 보였던 첫번째 이야기의 인물들이 두번째 이야기 <몽고반점>에서는 놀랍게 변한다. 아니 본성을 드러낸다. <채식주의자>에서 영혜 남편의 부러움을 잔뜩 샀던 형부가 화자로 바뀌면서 평범한 영혜가 특별해지고, 특별한 자신의 아내는 오히려 답답한 여자가 되고 만다. 자신의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생활을 책임져주는 좋은 아내일 뿐이다. 화자는 아내에게 들은 처제의 몽고반점 이야기 때문에 영혜에게 몰두한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영혜를 이용해 바디페인팅을 하고 비디오를 찍으며 예술적 욕구를 채우려 한다. 거기서 멈추었으면 좋았으련만. 호기심도 없고, 모든 욕망이 배제된 영혜의 담담한 육체마저 탐하고 다음 이야기의 화자인 아내에겐 "나쁜 새끼"가 되고 만다.

마지막 이야기 <나무 불꽃>에서는 모두가 화해하길 바랐다. 이게 나의 한계라는 걸 안다. 소설 속 착한 주인공의 불행이 내 의식의 한 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조차 싫은 마음. 그래서 영혜가 정신을 되찾고 평범한 여자가 되어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주길 원했다. 하지만 영혜는 채식마저도 거부하고 한 그루 나무가 되기를, 햇빛만 있으면 살아가는 식물이 되길 원한다. 인혜는 세상과 단절하고 싶어하는 영혜의 마지막 소통 대상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상처를 들여다봐주고, 죽어가는 아니 나름의 탈출구를 찾아가는 영혜를 긍정하며 모두가 꿈이었으면 한다. 깨어나면 아무것도 아닌 꿈.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살아온 영혜처럼 인혜 또한 자신의 삶을 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혜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듣고 싶다. 살면서 부당하다고, 싫다고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했던 그녀가 정신 병원에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며 비로소 지른 비명에 가슴이 시리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씩씩하니 2008-01-22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강이 한승원의 딸이었군요....무식한 하니...
님..잘 지내시지요? 전 요즘 '씨크릿'을 읽는데..정말,,마음 다스리느라,,요즘 너무 이런 류의 책을 많이 봐서인지..도사되겠어요~~ㅋㅋ
잼난 소설 한 권 고르는 중인데...님이 주신 별 다섯개가 눈에 확들어오네요~~

소나무집 2008-01-23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재미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던져주는 소설이랍니다.
그래서 아주 가벼이 읽을 수는 없었어요.
그래도 삶에 대해 물음표를 던져 볼 수 있으니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