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엄질과 풀쩍이 초록학급문고 1
장주식 지음, 이소현 그림 / 재미마주 / 200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가 자랄 땐 개구리가 정말 많았다. 논뚝길에서 여기저기 놀라 도망가는 개구리들를 쫓아다니도 했고, 밤에 잠자리에 들면 와글와글 시끄러운 개구리 소리에 잠이 달아나기도 했다. 어른이 되고 도시에 살면서부터는 막연히 시골에 가면 개구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골에 가도 예전만큼 개구리가 흔한 것 같지는 않다. 그 흔한 개구리들이 사라져가는 이유는 누구나 다 안다. 농약으로 인한 환경 오염. 

이 책은 개구리 생태에 관한 책이 아니다. 개구리가 살아가는 환경에 관한 책이다. 개구리 부부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안타까우면서도 재미있다. 글쓴이가 시골에 살면서 오랫동안 관찰한 후 쓴 글이라서 더 실감이 난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그림도 아주 좋다. 그래서 옆에 있던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이것 좀 보라"고 말했다. 몇 번의 붓질로 그린 뛰엄질과 풀쩍이의 모습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았던 개구리랑 똑같다. 글과 그림이 아주 잘 어울리는 그림책이다.

뛰엄질과 풀쩍이는 해마다 논에 알을 낳았지만 한 마리도 개구리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갈 곳이 없는 뛰엄질과 풀쩍이는 논에 알을 낳는다. 하지만 여전히 무자비한 트랙터와 농약 세례에 다 죽어버리고 만다. 뛰엄질과 풀쩍이가 농약 냄새를 피해 도착한 곳은 다정이네 뒷마당에 있는 함지연못이다. 그곳에는 먹이도 풍부하고 농약 냄새도 나지 않는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뛰엄질과 풀쩍이는 함지연못을 찾았지만 물이 썩어서 살 수가 없다. 하지만 다정이네 엄마 아빠가 땅을 파서 진짜 연못을 만들어준다. 뛰엄질과 풀쩍이는 알을 낳고 올챙이가 개구리로 성장해가는 꿈을 꾼다.

알을 낳아도 한 마리도 개구리가 되지 못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산을 깍아내고 아파트와 도로를 만들었고, 더 많은 양을 생산하겠다고 비료와 농약을 마구 뿌려댔다. 그러는 동안 사라진 게 어디 개구리뿐일까? 앞으로 더 많은 걸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덜 갖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 싶다.

읽다 보면 저절로 환경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책이다. '초록학급문고'라는 타이틀처럼 교실 책꽂이마다 꽂혀서 아이들이 살아 있는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의 소중함을 알았으면 좋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홍수맘 2008-03-05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상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서는 책 고르기가 더 고민되는 요즘입니다.
님 덕에 오늘도 좋은책 추천받고 갑니다.

소나무집 2008-03-13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래요. 그래서 늘 도서관이랑 알라딘을 기웃거리지요.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양장)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예담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내가 고흐를 만나는 건 늘 남편을 통해서였다. 결혼하고 신혼 집에서 남편의 짐을 푸는 데 어울리지 않는 액자가 하나 나왔다. 바로 고흐의 <열네 송이 해바라기> 그림 모작이었다. 학교 다닐 때 고흐 모작 전시회에 가서 산 거라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학생 시절을 보낸 남편이 한 달 동안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다 주고 샀다는 말에 어이가 없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신혼 시절 거실 벽을 차지하고 있던 그 해바라기는 아이들의 돌사진이나 유치원 졸업 사진한테 자리를 내준 지 오래되었다.

별로 책 사는 일에 연연해하지 않는 남편이 어느 날 불쑥 책 한 권을 사고 싶다고 했다. 바로 <반 고흐, 영혼의 편지>였다. 남편보다 먼저 책을 읽은 나는 장농 위에서 잠자던 해바라기 모작을 꺼내 오랫동안 먼지를 닦았다. 가족 사진 하나를 떼어내고 해바라기가 아닌 고흐의 영혼을 걸었다. 고흐를 제대로 알게 해준 남편에게는 고마웠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한 고흐에게는 한없이 미안했다.

처음 책제목을 보면서 '영혼'이라는 단어가 좀 거슬렸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단어가 얼마나 적절한지 깨달았다. 살아서는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여자들의 사랑도 얻지 못했고, 세상으로부터 인정도 받지 못했던 고흐. 하지만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 속에는 영혼과 생명까지 다 바쳐 그림을 그린 고흐의 진짜 모습이 들어 있었다. 너무나 솔직한 편지들을 읽을 때마다 고흐의 머리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 들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반복해서 연습하고 색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 속에서 광기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고흐는 그림을 통해 자기 마음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을 표현하려고 애썼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미련스럽게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과정 하나하나를 테오에게 편지로 써 보냈다.

동생 테오는 고흐에게 하나밖에 없는 후원자요, 인생의 반려자였다. 그리고 고흐에게 늘 용기와 희망을 준 단 한 사람이었다. 고흐는 경제적으로 동생에게 짐이 되는 것을 늘 미안해했지만 테오는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돈문제로 머리 아파하지 말고 미리 알려 달라고 했고, 고흐는 돈을 갚지 못하면 자신의 영혼을 주겠노라며 고마워했다. 편지 속에서 흐르는 두 형제의 따뜻한 인간애가 한없이 부러웠다.

그리고 봄방학 때 고흐전을 보기 위해 서울에 다녀왔다. 책을 읽고 고흐의 영혼을 느껴 보겠노라며 찾아간 미술관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고흐의 그림을 마주하기 위해 꼬박 2시간 동안 찬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고흐는 자신의 그림이 물감값과 생활비보다 더 많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 날이 오리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리지 않았을 정도로 대중의 외면을 받은지라 자신이 죽고 100년이 지난 후 동양의 한 나라에서 이렇게까지 환대받을 줄은 몰랐을 것 같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아이들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를 쓰면서도 난 행복했다. 모작이 아닌 고흐가 영혼을 다 바쳐 그린 진짜 그림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책을 통해 이미 탄생 과정을 지켜본 그림 앞에 서 있을 때는 붓터치 하나하나가 꿈틀대고 그림 속 농부와 밀이삭, 나무와 꽃잎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거창한 전시회보다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했던 고흐, 그의 그림 앞에 늘어선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소박해 보였다. 화가의 소원이 너무 늦게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흐와 그의 그림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별 50개쯤 주고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실 2008-03-04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흐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 재미있네요.
고흐를 생각하면 참 안타까워요. 좀 더 많은 사람이 고흐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었더라면....고흐전 참 좋았지요.

소나무집 2008-03-04 12:13   좋아요 0 | URL
남편이 엉뚱한 데가 좀 있어요.
맞아요, 고흐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덕분에 온 식구가 독감에 걸려 지금까지 고생하고 있답니다.

무스탕 2008-03-04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전 저도 고흐전에 갔었는데 역시나 많은 사람들, 애들에 밀려 정신없이 보고 왔지요..
고흐의 작품을 보고 한가지 떠오른 느낌은 '저 사람은 <눈동자>에 집착이 심했던 사람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이 된다면 사람 별로 없을 낮시간에 한 번 더 보고 싶기도 해요.

소나무집 2008-03-04 12:14   좋아요 0 | URL
저도 사람들이 없을 때 조용하게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기보다는 그냥 눈도장만 찍어서 아쉬웠거든요.

kyungmi 2008-03-27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너무나도 재미나게 쓰셔서 책을 꼭 사보고 싶어지네요. 서울에 살면서도 전시회를 놓쳤네요.. 반가워요.

소나무집 2008-04-03 09:09   좋아요 0 | URL
정말 감동적인 책이에요. 꼭 보세요.
 
영어가 궁금할 때 셰익스피어에게 물어봐 - 영어편 궁금할 때 물어봐
신경애 지음, 만밥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아이들 영어 학습에 조금 관심 있는 엄마라면 이미 다 아는 내용일 수도 있다. 나도 처음엔 좀 시시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결코 시시한 책이 아니다. 왜냐하면 엄마의 잔소리를 대신해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영어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고 따라해보고 싶은 마음까지 불러일으킨다.

우리 아이들도 매일같이 영어 공부를 한다. 하지만 정작 영어를 왜 배워야 하는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엄마인 나도 공부 방법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다. 이 책에서는 엄마들이 확실히 말해 주지 못하고 얼버무린 부분에 대한 답을 셰익스피어의 입을 통해 알아듣기 쉽게 들려준다.

<해리포터> 이야기가 전세계인으로부터 인기를 끌 수 있는 이유는 중국어나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쓰여졌기 때문이라는 예를 들어 영어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쓰는 언어임을 알려준다. 이미 영어가 세계 공용어이기 때문에 영어로 말하고 듣고 쓸 수 있다면 미래에 꿈을 이루는 데 좀더 수월하다는 사실을 이렇게 간단하게 알려줄 수 있다니 놀랍다. 우리의 훌륭한 문학 작품이 노벨문학상 후보에만 오르고 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영어 때문이라는 사실!  

이 책은 영어 공부 비결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지만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은 알려준다. 옆에 아무리 영어를 잘하는 친구가 있더라도 절대 기죽지 말 것을 당부한다. 첫째는 자신감을 갖고 아침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영어를 잘할 수 있다. 나는 영어가 좋다" 고 외칠 것. 둘째는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영어도 매일 듣고 읽고 따라서 말하기가 습관이 되도록 할 것. 셋째는 영어를 잘하려면 독서가 필수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국어 실력이 바로 영어 실력이라는 말이다.

우리 아이들도 처음엔 만화로 된 부분만 설렁설렁 읽었다. 그러다가 질문에 답을 주는 셰익스피어에 대해 궁금해하고 결국 책을 끝까지 읽었다. 우리 딸아이도 요즘 영어 공부하면서 이 책에서 권하는 방법 몇 가지를 스스로 따라하고 있다.

내가 영어책을 소리내어 읽으라고 할 땐 들은 척도 않더니 이 책을 읽은 후엔 제법 큰소리로 읽어서 엄마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하루에 20분만 소리 내어 읽으면 외국인을 만나도 두렵지 않을 거라는 말에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그리고 역사 유적지나 박물관에 가서 영어 안내문 읽어보기는 앞으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 책의 한 가지 단점은 글씨가 작고 편집이 세련되지 못해서 단번에 아이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영어에 흥미가 있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영어 공부에 회의를 느끼는 4학년 이상 아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송아지 내기 이야기 보물창고 10
이금이 지음, 김재홍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친정에 갔더니 며칠 사이로 송아지 다섯 마리를 낳았다고 했다. 어미는 네 마리였는데 한 녀석이 쌍둥이를 낳아 다섯 마리가 되었다고.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 마리쯤 데려오고 싶었지만 사진으로 대신.

익숙한 풍경에 익숙한 이야기다. 어릴 적 우리집 마당은 동네에서 가장 넓었다. 그 덕에 명절 때마다 사람들이 북적이고 놀이 마당도 자주 벌어지곤 했다. 멍석을 펴놓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둘러서서 윷노는 풍경은 정월대보름 무렵이면 늘 볼 수 있었다.

빨래 비누나 플라스틱 바가지 같은 걸 상품으로 걸고 윷놀던 그 시절이 그립다. 빨래 비누 한두 장에 "윷이요, 모요" 소리가 온 동네를 들썩이게 했다. 그 시절의 흥겨움과 정겨움이 다 사라져서인지 요즘은 시골에 가도 이런 풍경을 쉽게 볼 수 없어 서운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동해가 되어버렸다. 동해가 태어나지도 않은 송아지를 걸고 윷을 던질 때 지면 어쩌나 내 마음도 조마조마했다. 이기면 송아지 한 마리가 더 생긴다는 생각만 하고 자신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 하는 동해의 아이다움에 빙그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윷놀이는 영도 할머니의 승리로 끝났고, 이때부터 동해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어떨결에 한 약속으로 송아지 한 마리를 잃고 죄인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그 송아지는 형이 대학 갈 때 쓸 몫으로 정해진 건데...

송아지 한 마리라. 나 어린 시절만 해도 시골집에서 소 한 마리는 큰 재산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우리 삼남매를 위해 소를 몇 마리 키우셨다. 소들이 등록금 낼 철에 맞춰 새끼를 잘 낳아준다며 기뻐하셨던 기억이 난다. 나의 등록금이 되어준 송아지들에게 이제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동해가 담 모퉁이 굴뚝 옆에 쭈그리고 앉아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나도 어린 시절 어른들께 혼나면 도망 나와서 으레 굴뚝 옆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너 혼났구나!" 한마디씩 하는 게 부끄러워 고개를 다리 사이에 묻어버린 적도 많았다. 그리고 어른들이 불러주길 기다리며 마냥 앉아 있다가 동해처럼 깜빡 잠이 들기도 했다.

송아지가 태어난 지 이틀째 되던 날 나타난 영도 할머니를 보며 질겁을 하던 동해. 하지만 영도 할머니는 송아지 내기를 한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동해는 영도 할머니의 무서운 얼굴도 천사처럼 보일 만큼 장난 내기였다는 사실이 고맙기만 하다.

어른들의 장난에 아이들은 내내 마음 고생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조금 찔리기도 했다. 내기를 좋아하는 저학년 아이들과 아이들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바람 2008-02-28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귀여워요

소나무집 2008-03-05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죠!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서평단 알림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 문학동네 화첩기행 5
김병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아침 신문에서 쿠바의 카스트로가 50년 정권을 동생에게 내주었다는 기사를 보며 이 책을 떠올렸다. 그동안 나는 쿠바라는 나라가 중남미 어디쯤에 붙어 있는 걸로 알았을 정도로 무심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세계 지도를 들여다보고 쿠바가 플로리다 코 앞에 누워 있는 섬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늘 미국이 쿠바의 행보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책을 보는 동안 난 정말 바빴다. 저자가 언급하는 인물과 책과 영화, 음반을 찾아보느라 책꽂이 앞을 서성대고 인터넷 검색을 하느라 보낸 시간이 책을 읽으면서 보낸 시간보다 더 길었다. 그리고는 사고 싶은 책과 영화 DVD 목록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기도 했다. 특히 영화 중엔 예전에 본 것도 몇 편 있었지만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이랑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일포스티노>는 꼭 사서 다시 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책제목만 보고 중남미 화가들의 그림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책을 받아들고 보니 중남미를 여행한 후에 쓴 그림이 있는 기행문이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들뜬 여행자가 되어 라틴 아메리카를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저자가 직접 그린 강렬한 색채의 그림은 중남미 분위기와 잘 어울려 책 읽는 맛을 더해주었다. 사실 중남미는 매력과 호기심이 가득하지만 누구나 쉽게 떠날 수 있는 여행지는 아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땅을 여행한 이들이 들르는 최후의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인물들의 족적을 따라가며 현지 삶의 모습을 뭉턱뭉턱 보여준다.

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의 나라 쿠바에서는 노인들로 구성된 대표적인 재즈 그룹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과 반평생을 쿠바에서 살며 작품 활동을 한 헤밍웨이의 흔적을 찾아 다닌다. 특히 적대적 관계에 있는 미국 국적의 작가 헤밍웨이가 쿠바의 대표적인 관광 상품이라는 사실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쿠바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쿠바 사회에 대해선 전혀 관심이 없었던 헤밍웨이, 그의 작품은 노벨상을 받았지만 사람 자체가 노벨상감은 아니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그리고 죽은 지 오래지만 아직도 세계인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쿠바의 혁명가 체 게베라 등 저자의 쿠바에 대한 사랑은 책의 반 가까운 분량을 차지할 정도로 넘친다. 

프리다 칼로의 나라 멕시코. 내가 마음에 둔 화가들의 삶은 왜 이리도 한결같이 불행한지 모르겠다. 육체적인 장애와 우울한 삶을 살면서도 자전적 작품을 많이 남긴 프리다 칼로, 그리고 그녀에게 숱한 정신적 고통을 주었지만 동시에 영감을 준 남편 디에고 리베라를 찾아 떠난 여행지의 느낌은 마냥 쓸쓸하다.

아르헨티나를 읽으며 정말 오랜만에 보르헤스의 책을 꺼내 보았다. 학교 다닐 적 민음사에서 나온 보르헤스 전집을 덜컥 사놓고는 버스를 타고 오가며 읽었던 기억이 나서. 환상 문학의 대가라는 사실보다 시력을 잃기 시작한 그가 50대엔 아예 장님이 되었지만 국립도서관장이 되어 읽을 수도 없는 책으로 둘러싸인 채 행복해했다는 구절에 가슴이 짠해졌다. 그리고 에비타에 관한 부분을 읽다 말고는 인테넷을 뒤져 영화를 보고 말았다. 그래서일까. 가난한 시골 소녀에서 페론을 만나 대통령 영부인이 되었다가 34세로 세상을 떠나 아르헨티나 최고의 묘지 레콜레타에 묻힌 여인의 이야기가 현실이 아닌 영화 속의 이야기 같기만 했다. 

지금의 브라질은 삼바 축제보다 축구로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월드컵 우승을 다섯 번이나 한 나라. 사실 나는 그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우리가 월드컵 4강에 올라보고야 알았다. 브라질의 청소년들은 축구를 하며 펠레나 호나우두처럼 인생이 변하길 바란다고 한다. 세계 최고의 장관을 이룬다는 이구아수 폭포마저도 브라질 사람들의 축구 열기만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파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 망명중 한 우체부와의 우정을 영화로 만든 <일포스티노>. 나 또한 그 영화 때문에 시인도 칠레라는 나라도 더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었다. 페루 하면 누구나 잉카인의 도시 마추픽추와 쿠스코를 떠올린다. 체 게베라 같은 혁명가가 다녀온 후 삶의 방향을 바꾼 기억 속의 도시가 나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다. 바로 지금이 당신의 삶을 바꿀 때라고.

중남미 사람들이 아주 인간적일 수밖에 없는 건 가난하기 때문이 아닐까? 당장 먹을거리가 없어도 춤추고 노래 부르고 화려한 색채를 즐기는 사람들. 나도 그 낯선 풍경을 만나러 문밖으로 나서고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ony 2008-02-21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마음이 끌리는 책입니다.
보관함에서 장바구니로 얼른 옮겨야겠네요.^^

소나무집 2008-03-03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번 읽어볼 만해요. 시야를 넓힐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