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어난다." 마사 겔혼Martha Gellhorn이 1959년 '전쟁의 얼굴The Face of War'에서 쓴 구절이다. 그러나 전쟁은 다양한 방식으로도 일어나며 어쩌면 죽음이 최악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더 많이 읽고 더 조사하고,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내가 역사에 대해 배워온 모든 것에 의문을 품게 됐다.p251,크리스티나 램,관통당한 몸




분단상황이라는 특수한 여건에 놓인 관계로 한국인들은 전쟁에 대한 불안감, 이념갈등에 익숙하다. 여기서 파생된 문제들이 사회 곳곳에서 또다른 문제를 낳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통일된 독일에 대한 부러움, 이스라엘처럼 여성들도 싸울 능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하는 염려, 우크라이나를 보며 언제든 우리도 다시 전쟁 상황에 놓일 수 있는 현실을 실감한다. 지난 대선을 통해 청년층의 남녀갈등이 주목을 받았었다. 정치는 이 점을 악용했다. 한쪽에서는 사회가 충분히 평등해졌으니 오히려 남성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아직 여성에 대한 차별이 여전하고 다양한 성범죄가 그것을 반증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다툼들 중에서 내가 관심을 가지는건 '여성도 군대가라'는 말이다. 남성들이 군대에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고 해마다 죽어가고 있으니 여성들도 군대가라. 너희도 겪어봐라. 솔직히 마음같아서는 나도 군대에 가고 싶었다. 총 쏘는 방법도 배우고 기본적으로 유도,태권도도 배우고 강인한 체력을 얼마만큼 끌어올릴 수 있는지 여성도 경험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군대 다녀온 여성들은 ㅡ당연히 그런다고 남성과 동일한 힘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ㅡ 적어도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는 반사신경도 기르고 체력도 좋아져서 사회에서 겪을 수 있는 각종 폭력사태에 더 잘 대응할 수 있을것이라는 희망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전쟁에 반대한다.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의 이익과 가장 무관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희생되는 것이 전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단상황 때문에 남자들이 군대를 가야 한다면 여성들도 군대에서 어느정도 훈련을 받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는 것쯤은 안다. 구체적인 실행보다는 불만을 표출하는 단순한 감정이라는 것도.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머리가 복잡했다. 독일과의 전쟁에 참여한 러시아 소녀 병사들. 여성도 역시 잘 싸울 수 있구나. 남자만큼이나! 저격도 하고, 지뢰도 해체하고, 포도 쏘고. 총알이 날아다니는 두려운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동료를 구하러 전장에 뛰어들고, 심지어 적군도 살려내고, 이들은 한결같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발벗고 전쟁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총에 맞고 피에 젖어 처참한 부상병들을 보며 신념이, 전쟁이 과연 무엇인가를 아프게 경험했다. 소녀 병사들은 목숨을 다해 싸웠지만 그 무자비한 곳에서도 삶이 있었음을, 사랑이 있었음을. 그래서 그 상황을 버텨낼 수 있었음을 증언한다. 






붉은 립스틱


1945년 봄 유럽의 나치수용소들이 일제히 해방되었다.
수용소마다 오물과 시체들이 썩어 흘러넘쳤다.
연합군의 확성기가 "You are Freedom"이라고 외쳤고 전투기들이 공중에서 수용소 위로 구호품들을 투하했다.
구호품 중에는 다량의 붉은 립스틱 박스가 들어 있었다.
남자 죄수들이 지금 굶주리고 아파서 죽어가는 마당에 이런 게 무슨 소용이냐며 야유하고 비난했다.
그런데 립스틱은 식품과 의약품보다 먼저 동나버렸다.
다음날 아침 마침내 수용소 철문이 활짝 열렸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팔의 죄수번호를 지운 여자들이한껏 턱을 치켜들고 세상속으로 행진했다.
그녀들의 팔과 붉은 입술이 아침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 P40



전쟁이 끝나고,살아남아 손녀,손자들을 둔 경우도, 남편을 보내고 홀로 근근히 살아가는 경우에도 그들의 공통점은 전쟁의 기억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증언을 하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사람도 많았고, 용기를 내 증언하고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듣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이런 증언들이 어떤 위대한 전쟁 기록물보다 더 생생하게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는 걸 알게되었다. 



"우리의 고통도, 우리가 겪은 아픔들도. 그건 잡동사니 쓰레기도 아니고 타다 남은 재도 아니야. 그건 우리네 삶이지." p.225



대부분의 전쟁영화에 여성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은 수많은 여성들 역시 집어삼키고 살아남더라도 삶을 뒤흔드는 선택으로 내몰기도 한다. 여성들은 그 와중에도 삶을 붙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들은 엉뚱한 질문을 하고 전쟁보다는 삶에 가까운 것들을 기대하고 소망한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의 비인간적인 면을 더 잘 드러낸다. 하찮은 것들, 삶에 관한 것들, 안온한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 사람들은 그게 전쟁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것은 '전쟁'이 '삶'과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결코 전쟁을 문제삼지 않는다. 전쟁에 관해 여성들의 서사가 더 많이 필요한 이유다.  



여자들이 이야기할 때, 그들의 이야기에는 우리가 읽거나 들어서 익숙한 내용, 그러니까 어떤 이들이 얼마나 영웅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승리를 거뒀는지, 아니면 어떻게 패배했는지, 어떤 기술들이 사용됐고 어떤 장군이 활약했는지 따위의 내용은 아예 없거나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여자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고, 또 여자들은 다른 것을 이야기한다. '여자'의 전쟁에는 여자만의 색깔과 냄새, 여자만의 해석과 여자만이 느끼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여자만의 언어가 있다. 그곳엔 영웅도, 허무맹랑한 무용담도 없으며, 다만 사람들, 때로 비인간적인 짓을 저지르고 때론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들만이 있다. p.18




바다는 흔들리지 않는다. 바다는 달에 의해서만 동요될 뿐이니까.p.175. 티끌같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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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7-28 15: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성도 군대가라라는 말에는
군대라는 부조리가 판치는
조직에 가서 너희들도 한 번
당해봐라라는 그런 의미가
숨어 있지 않나 추정해 봅니다.

그러나 저러나, 분단 국가 상황
에서 이렇게 인구 절벽으로 치
닫게 된다면 획기적인 방법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현재의 군
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성
도 군대에 갈 수 밖에 없다는
일부의 분석이 암담하기만 하네요.

미미 2022-07-28 15:35   좋아요 4 | URL
그렇죠. 군대라는 폐쇄적인 조직의 문제를
여성탓으로 돌리는것 같아 답답하기도하고요.

그런데 방송에서 20~30대 남녀를 모아 토론한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군 입대에 긍정적이더군요. 우선 반복적인 군대내 성폭력 문제등 처우를 개선해야한다는 언급을 하긴 했습니다. ^^

단발머리 2022-07-28 16: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자도 군대 가라, 보다 남자도 군대 가지 마,로 바뀌어야 한다고, 우리나라의 징병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고 싶은 사람이 선택해서 갈 수 있는 곳으로요. 물론 처우 개선이 필요하겠죠. 좋은 혜택이 있다면, 남자도 여자도 자신이 선택해서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군대가 지금처럼 ‘남자들의 자랑‘이 될 수 있는 건, 군대 가는 것은 국민의 의무이기 때문인데, 여자도 국민이니까요. 우리는 국민도 안 되서... 하아.

북한이라는 거악이 존재하기에 말도 안 되는 말만 해대는 정치 세력이 우리 나라에서는 이렇게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안보를 이용하죠, 애네들은. 전쟁불사,도 제일 많이, 쉽게 해대고요. 오늘 아침에 <조선왕조실록 10> 읽었는데 그런 애들이 제일 먼저 도망가더라구요. 허허...


미미 2022-07-28 16:41   좋아요 3 | URL
맞아요!! 저도 가장 만족할만한 해법은 아예 통일이 되서 군방의 의무따위 없어지는거라 생각해요. 정치인들이 안보장사하는것도 참 징글징글하고요. 통일이 되면 이념갈등조장같은건 점점 힘을 잃게될텐데...
세대가 거듭될수록 통일의 중요성,필요성이 없어지는것 같아 두렵습니다.

다만 군복무기간이 줄어들고 있는만큼 여성들도 한달이라도 입대하게해서 호신술도 의무적으로 배우게하고 체력훈련도 경험하면 자신감도 쌓이고 그러다보면 언젠가 뉴스에서 헤어지자고 말하는 여친에게 폭력을 휘두르려던 남자친구가
도리어 얻어맞아 전치 4주의 진단을받았다,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를 살해하려던 남편이 군대에서 유도를 배운 아내에게 반격을 당해 중환자실입원, 강간을 하려 침입한 30대 남성 집주인 윤모씨에게 맞아 골절상같은 기사를 보고 싶어요ㅎㅎㅎ

새파랑 2022-07-28 18: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쟁은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비극인거 같아요. 절대 일어나면 안되는 비극~ 어제 <순교자>를 읽었는데 미미님의 리뷰랑 뭔가 통하는거 같아요~!! 오랜만에 보는 <티끌 같은 나> 문장도 좋네요 ^^

미미 2022-07-28 18:37   좋아요 3 | URL
그럼요!! 이 책에서도 남녀할거없이 같이 고통받고 서로 의지하거든요. 전쟁은 분명 없어져야할 비극입니다. <순교자>안그래도 새파랑님 밑줄보고 도서관에 있길래 찜해두었습니다.^^*

Yeagene 2022-07-28 1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 대학교 발표시간에 성평등을 위해 여성도 군대 가야한다고 했거든요...놀라운 건 수업듣던 거의 모든 사람,여학생 남학생 교수님 다 말도 안된다고 반대하셨던 거에요 ㅎㅎ 아니,왜 안되죠?전 지금도 이해가 가질 않네요 ㅎㅎㅎ

미미 2022-07-28 18:42   좋아요 4 | URL
예진님 완전 멋있어요!!ㅎㅎ 제가 같이 다녔다면 거기 영감받아 예진님 지지하며 뭔가 발표했을것 같아요. 결국 분단과 갈등상황이 유지된다면 여성도 단기간이라도 복무해야하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예상하고 있어요. 여러모로 저도 좋을것 같아요!^^*

페넬로페 2022-07-28 19: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은지 오래되어 제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제가 놀란 건 전쟁 참여가 여성의 자발적인 의지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어요.
등 떠밀지 않았는데 조국을 위해서요.
군대나 전쟁이 남성과 여성에게 차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여자도 군대에 가야겠죠.
하지만 전쟁에 군인만 있는게 아니라 국민도 있으니 그 나름의 여성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요~~

미미 2022-07-28 20:24   좋아요 3 | URL
네!! 페넬로페님 저도 그 부분에서 놀랐어요. 집에 돌아가라고 하는데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쟁에 나가는 모습. 당시 러시아인들의 애국심도 남달랐던거 같아요. 스탈린을 아버지라고 부르기까지 했으니 말이죠. 그런 자국 군인들을 스탈린은 포로가 되었었단 이유로, 유럽을 목격 했다는 이유로 반역자로 낙인찍기도 했다죠. 그 부분이 화가나고 가슴아파요.

네!! 전쟁이 일어나선 안되겠지만 참전군인외에 시민들의 역할이 분명 있겠죠. ^^*

책읽는나무 2022-07-28 2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스로 전쟁에 참여한 소녀 병사들이 의외로 많아서 놀랐습니다. 이 부분은 애국심이란 건 남, 녀 모두 공평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는데, 전쟁기간동안 적군을 많이 죽였다는 것에 또 자랑스러워하는 여성 군인들이 있다는 것에도 좀 놀랐습니다. 대부분 살인을 했다는 것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던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어서...이념이란 게 무얼까? 그런 생각을 했더랬죠!
다락방님은 국가가 개인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저는 그 말씀도 맞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저는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그 말이 개인의 성취가 아닌 내가 당하니까 너도 당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로 들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좀 부정적이었거든요.
암튼 이 책을 읽고, 여성들도 전쟁에 참여하면 남성들과 똑같이 애국심을 발휘하는구나!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전시상황에서 동지애라는 걸 느낄 수도 있구나! 간접적으로 느꼈구요.
그래서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한다면...이 말을 예전에 비해서는 긍정적으로 생각이 좀 많이 바뀌었어요^^

미미 2022-07-28 21:34   좋아요 3 | URL
저는 러시아하면 레닌, 스탈린은 자세히 알고싶지 않은데요ㅋㅋㅋ 위대한 작가들과 예술가들을 낳은 러시아 국민에 대해서는 늘 궁금했었어요! 특히 스탈린 치하에 있던 시민들은 여러 문학,자료를 통해 보면 강인한 정신과 신념으로 무장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치 지도자들에게 이용당한 측면이 있긴하지만요. 이 번 책에서도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구요. 또 여성도 충분히 할 수 있구나, 역시 뭐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것 뿐이라고...그러면서 우리의 분단상황. 그로인한 국방의 의무를 져야하는 이 상황을 잘활용해 여성도 체력을 단련하고 훈련하면 많은 여성들이 갖가지 성범죄 상황에서도 좀더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 않겠나 싶었어요.

여성을 비하하면서 여성들도 군대가야한다는 사람들은 막상 그렇게되고 여성들이 강해지면 또 이상한 말만 하겠지만요. 저는 좀 급진적인성향이 있는것 같아요. 저절로 양보해주길 기대하기보다 강해지자는 쪽입니다. 책 읽고나서 생각만하던 이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역시 너무 좋네요^^*

건수하 2022-07-29 0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참 군가산점 문제로 뜨거울때 나도 군대 가고 할 말 다 하고 동등한 처우를 받고싶다 라고 생각했었어요.
군사적 긴장감을 해소하고 군대를 축소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이고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병제가 대안으로 제시되듯 남녀 모두 다 같이 가는 것도 하나의 해결방법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성들이라고 가고싶어서 가는게 아니니까.. 여성들도 다 가라고 하면 또 갈거고요. 국민 모두에게 해당이 되는 일이라 많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지만요.

지금의 군대 문화에 여성이 그저 추가되는 게 아니라 큰 변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군대는 좀더 합리적인 조직이 될 수는 없을까.. 지금은 2차대전 시기와 전쟁의 성격도 많이 변했으니 인간이 만든 것을 인간이 변화시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믿음을 갖고 있어요.

미미님 글을 보고서 오늘 출근할 때는 <여자도 군대가라는 말>을 듣기 시작했어요. 초반부만 들어서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좀 지나야 감을 잡을 것 같지만요.

미미 2022-07-29 10:18   좋아요 3 | URL
그렇죠! 군가산점문제도 한때 뜨거운감자였죠. 그리고 여전히 한번씩 뉴스에 오르내리더라구요. 여성도 군대가면 여러가지 문제가 해결될것 같아요. 일단 역차별이다, 여자도 군대가란 말이 없어질거고 갈수록 부족해지는 군인력충원이 될거고 제가 가장 바라는 여성들의 체력적 증진이 가능할꺼라고요. 군대문화로 인해 남성들의 연대의식은 그야말로 강력하다고 느껴지는데 여성들에게는 사회적으로 그만큼 연대할 수 있는 조건이 없다시피하다고 여성학자들도 꾸준히 말해왔었죠. 그 부분에서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거란 생각도 들어요.

우선은 군대의 폐쇄적인 특성으로 인한 문제들을 해결해야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반복되는 가혹행위, 성폭력등을 적극적으로 막아야하고요.

<여자도 군대가라는 말>저도 제목을 본 기억이 있는데 수하님 들어보시고 괜찮다고 하심 저도 함 봐야겠어요.
제가 알기로는 반대쪽인데
그래도 좀더 구체적인 논의가 담겨있을것 같아 궁금해요.^^*

건수하 2022-07-29 11:27   좋아요 2 | URL
네 아마도 반대쪽? 제가 그 입장의 이야기를 잘 모르니 들어보고 싶었어요 :)

mini74 2022-07-29 15: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발머리님과 생각이 같아요. 같이 죽자식으로 남을 끌어내리기보단 같이 잘 살고 같이 행복하자는 맥락...그래서 저는 나만 아니면 돼! 이런식의 유행어가 참 싫어요.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고 다 같이 잘 살고 행복하길 바라야 하는데 나 힘드니 너도 힘들어봐라..나만 아니면 된다...는ㅠㅠ 언제쯤 군대문제에서 자유로워질까요...

미미 2022-07-29 15:26   좋아요 3 | URL
그쵸!! 그런 측면에도 동의해요. 여성 해방이 되려면 남성 해방도 동시에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군대는 이런 갖가지 여건, 상황을 이용?해 여성들로하여금 성범죄에 대처하게 하고 싶은 저의 소박한 소망ㅋㅋㅋㅋ 호신술 학원같은거 왜 안생기는지 모르겠어요. 밤길 안전도우미같은것보다 그런게 더 도움될것같은데....ㅋㅋㅋ🤔
 

서문을 쓰는 일에서 싫은 점은 아무것도 누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문에서는 그저 애를 태울 수 있을 뿐이다. 독자에게 ‘당신은 이제 멋진 여행을 즐길 것입니다, 멋진 인물들과 멋진 이야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정확히 왜그런지는 말하면 안 된다. 따라서 서문은 ‘나를 한번 믿어보세요‘ 하는 명제나 다름없다.  - P7

셰발과 발뢰를 생각하면, 뛰어난 작가인 리처드 프라이스가 언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누군가 프라이스에게 범죄와 수사의 영역을 거듭 시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한 때였다. 프라이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탐정 이야기를 즐겨 쓰는 것은, 하나의 살인 사건 주변을 오래 맴돌다보면 그 도시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 P9

작가 조지프의 말을 빌리자면, 최고의 범죄 이야기는 경찰이 사건을 작업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이 경찰에게 작용하는 이야기다. 마르틴 베크는 이 말이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알맞은 예다. 그리고 잠긴방은 베크가 작업을 하고 작용을 당하기에 가장 알맞은 사건이다. - P12

몇 년 전, 경찰의 누군가가 범죄 통계를 조작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간단한 기법이지만 대번에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다. 대놓고 허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그릇된 결론을 끌어내는 수법이었다. 그런 짓까지 하게 된 동기는 좀더 군사적이고 동질적인 경찰을 전반적으로 좀더 많은 기술적 자원을, 특히 좀더 많은 총기를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서는 경찰이 겪는 위험을 과장해서 내보여야 했다. 말은 이미정치적으로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그것이 바로 통계 조작이었다. - P100

요즘은 그런 곳을 ‘시설‘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양로원‘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요즘은 ‘은퇴자의 집‘이니 심지어 ‘은퇴자호텔‘이니 하는 말이 쓰였다. 이것은 대부분의 입소자들이 사실상 자발적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는 사실, 그들에 대해서 더는알고 싶어 하지 않는 이른바 복지국가가 그들을 그곳에 입소시켰다는 사실을 얼버무리기 위한 표현이었다. 그것은 잔인한 선고였고, 죄목은 노화였다. - P120

일류 범죄자는 붙잡히지 않는다. 일류 범죄자는 은행을 털지 않는다. 그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단추를 누를 뿐,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사회의 신성한제도를 어지럽히지도 않는다. 대신 일종의 합법적 강탈, 즉 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일을 한다. 스모일류 범죄자는 별의별활동으로 돈을 번다. 독성 물질로 자연과 사람들을 오염시킨 뒤에 부적절한 처방으로 파괴를 복구하는 척하면서 돈을 벌고, 도시의 넓은 구역을 의도적으로 슬럼화한 뒤에 건물을 죄다 허물고 새로 지으면서 돈을 번다. 그렇게 해서 새로 만들어진 슬럼은 당연히 예전 슬럼보다 주민들의건강에 훨씬 더 해롭다. - P149

행운과 불운은 저울에서 균형을 이룬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불운은 다른 사람의 행운이 된다는 식이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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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정말로 경찰에 붙잡히고 싶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찰관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하는 진실이고, 스웨덴에서는 특히 더 그랬다. 스웨덴 범죄 역사에는 해결되지 않은 살인 사건이 무수히 많지만 경찰관이 살해된 사건 중에는 미해결 사건이 한 건도 없었다. - P88


1. 어느 끔찍한 남자


야간의 한 병원에서 통증으로 신경이 예민해진 한 남자가 불현듯 두려움을 느끼다가 누군가에 의해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한다. 피해자는 한때 가학적인 성향으로 악명 높았던 형사. 수사 과정에서 그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속속 드러난다. 경찰이라는 권력을 악용해 죄없는 시민을 괴롭히고 없는 죄까지 덮어씌우던 끔찍했던 한 남자의 과거에는 그를 용인했던 조직의 추악한 모습이 있었다. 사건의 진실을 쫒는 형사들은 자신들이 묵인하고 외면했던 과거와 대면해야만 한다. 리 차일드의 서문부터 인상적이었다.





작가 커플 마이 셰발, 페르 발뢰







2.웃는 경관 


때는 1960년대. 스톡홀름에서 베트남 반전시위가 벌어지던 날 밤. 버스에서 대량살상이 벌어진다. 놀라운 점은 사망자중 한명이 경찰이었다는 것. 초동수사 부터 증거가 훼손되어 난항을 겪는데...마르틴 베크를 포함, 사건을 맡은 형사들은 목격자를 찾아나서는등 단서가 될만한것들을 수집해간다. 그 과정에서 복지국가 스웨덴의 빈부격차와 공권력의 폐해등 각종 사회문제가 드러난다. 도대체 누가 왜 이 많은 사람들을 살해한 것일까?


"경찰이 필요악이기 때문이야. 누구든 불현듯 경찰의 도움이필요한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알지. 직업 범죄자들조차 그래, 제아무리 도둑이라도 자기집 지하실에서 뭔가 달각대는 소리가 들려서 밤중에 잠을 깨면 어떻게 할 것 같나? 당연히 경찰을 부르지. 하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이 자기 일을 방해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어지럽히면 어떤 방식으로든 두려움이나 경멸을 표현하기 마련이야." - P199





3. 잠긴 방


마르틴 베크 형사는 앞선 사건으로 인해 총상을 입고 수개월간 병원신세를 지다가 퇴원했다. 돌아온 그에게 동료들은 혼자 맡아 할만한 수수께끼같은 사건파일 하나를 넘긴다. 안으로 모두 잠긴 방 안에서 총을 맞아 사망한 남자. 하지만 어디에도 총은 발견되지 않았다. 자살일까? 타살일까? 총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퇴원 후 이런저런 상황때문에 스스로도 갇힌 느낌이었던 마르틴 베크에게 이 사건은 점점 의미를 갖게 된다. 나머지 형사들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은행강도사건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 오리무중이던 두 사건은 묘한 방향에서 접점을 맞이한다. 


일류 범죄자는 붙잡히지 않는다. 일류 범죄자는 은행을 털지 않는다. 그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단추를 누를 뿐,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사회의 신성한제도를 어지럽히지도 않는다. 대신 일종의 합법적 강탈, 즉 시민들의 주머니를 터는 일을 한다.일류 범죄자는 별의별 활동으로 돈을 번다. 독성 물질로 자연과 사람들을 오염시킨 뒤에 부적절한 처방으로 파괴를 복구하는 척하면서 돈을 벌고, 도시의 넓은 구역을 의도적으로 슬럼화한 뒤에 건물을 죄다 허물고 새로 지으면서 돈을 번다. 그렇게 해서 새로 만들어진 슬럼은 당연히 예전 슬럼보다 주민들의건강에 훨씬 더 해롭다. - P149



시리즈 제목이 장르가 된 '마르틴 베크'에 빠져 며칠을 보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의 모티프 중 하나가 되었다는

이 시리즈가 어떻게 박찬욱 감독을 매혹시켰는지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을 배경으로 중요한 등장인물인 마르틴 베크 경감을 비롯해 다양한 캐릭터의 형사들이 등장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제임스 본드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스파이 소설의 대가 존 르까레가 보여준다면 작가 커플 마이 셰발, 페르 발뢰는 모순적인 현실에 발 딛고 선 형사들의 모습을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게 담았다. 



경찰은 셰발과 발뢰가 선택한 서사 도구일 뿐 아니라 그들이 정치적 견해를 밝힐 대상이었다.

-리 차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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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7-28 07: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리 차일드가 서문을!!!
그리고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
오~~~ 안그래도 영화의 모티브가 있었을텐데, 어떤 책일까? 모델이 누구였을까?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간지러운 곳을 긁어 주시다니...감사합니다^^
시리즈가 많군요? 이 책도 묶어 놓으면 어마어마한 벽돌책이 되겠어요ㅋㅋ

미미 2022-07-28 08:22   좋아요 4 | URL
네 저도 거대한 벽돌책이라고 생각했어요ㅋㅋㅋ여기 등장하는 여러 형사들 중에 손가락뼈 소리내는 사람이 있어요. 이런저런 요소들을 영화에 녹여냈더라구요. 호불호가 있는 소설같은데 좋아하는 분들에겐 중독성이 있는 시리즈예요ㅋ리 차일드가 서문에서 완벽하게 이 시리즈를 설명해서 좋았어요^^*

새파랑 2022-07-28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헤어질결심>이 대단한 일을 했군요~!! 이제 경찰소설도 섭렵하시는 미미님 ^^
사진 풍경이랑책 목록이 잘 어울리네요~!!

미미 2022-07-28 10:35   좋아요 3 | URL
네!!ㅋㅋㅋ<헤어질결심>이 아니었다면 이 시리즈를 쭉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어요. 스웨덴 스톡홀름 사진인데 예뻐서 퍼왔습니다^^*

다락방 2022-07-28 09: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웃는 경관 읽어볼래요. 후훗.

미미 2022-07-28 10:39   좋아요 3 | URL
<웃는 경관>좋았어요!! 스펙타클한건 없는데 형사들의 유머랑 실제 상황을 들여다보는듯한 줄거리가 매력적이었습니다^^*

페넬로페 2022-07-28 11: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헤어질 결심에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급 당기네요.
요즘 나라를 달구는 단어인데 정치적이 아닌 순수한 문학 작품이 신선해 보입니다^^
올려주신 사진에 잠시 더위를 잊어 봅니다^^

미미 2022-07-28 12:27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 이 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들이 서로 티키타카하며 개성이 돋보이는데요. 그런 점을 박찬욱감독이 영화에 잘 녹여낸것 같아요. 스릴러이고 수사물인데 사실 여러모로 정치적인 작품이예요. 스웨덴이 겉보기엔 복지국가고 평화로운 나라같은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적어도 60~70년대에는 시위하는 시민들 때리고 물대포 쏘고 고물가에 경제위주,자살률1위등 우리와 겹치는 부분이 많이 있었어요^^*

psyche 2022-07-29 0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웃는 경관만 읽었는데 시리즈를 쫙 읽어야겠네요.

미미 2022-07-29 09:45   좋아요 3 | URL
웃는경관 읽어보셨군요!! 저도 웃는경관부터 읽었는데 마지막 페이지 너무 좋았어요(>.<)여기 마르틴 베크와 함께 등장하는 형사들도 다 매력있고 애정이가더라구요^^*

mini74 2022-07-29 15: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더위에서 이기신건가요 ㅎㅎ 대단하세요. 저도 웃는 경관 제목이 끌리네요~~

미미 2022-07-29 15:29   좋아요 3 | URL
이 시리즈 읽는 동안에는 여름인지 잠시 잊었습니다.*^^* 미니님도 좋아하실것같아요. 은근한 유머, 사회문제에 대한 통찰과 비판이 좋았어요. 스웨덴 가난한 하층민들 고양이사료먹고 살았대요. 요즘은 모르겠고 60~70년대에요. 아웅...
 

싸늘하고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 P17

그 방에 어울리지 않는 색깔은 하나뿐이었고, 그것은 새빨간색이었다. - P55

마르틴 베크는 왠지 찜찜했다. 어렴풋하고 종잡기 어려운 기분, 예를 들자면 책을 읽다가 깜박깜박 조는 바람에 책장을 한장도 넘기지 못하고 계속 같은 대목을 되읽을 때 드는 무지근한피로감 같은 기분이었다. - P60

경찰의 일은 현실주의, 정해진 절차, 집요함, 체계에 바탕을두고 이뤄진다. 물론 까다로운 사건이 우연히 해결되는 경우가많긴 하지만, 우연이란 융통성 있는 개념이고 요행이나 운과는다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범죄 수사의 성패는 우연의망을 가급적 촘촘히 짜내는 데 달려 있다. 번득이는 육감보다는경험과 성실함이 더 많이 기여한다. 명석한 두뇌보다는 좋은 기억력과 건전한 상식이 더 귀한 자질이다.
현실에서 경찰이 하는 일에는 육감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육감은 애초에 자질이라고 볼 수도 없다. 점성술과 골상학을과학이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래도 뭔가가 있었다. 그가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틀림없이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예전에도 그는 이런 느낌 덕분에더러 올바른 방향을 찾을 수 있었다. - P61

지난 십년동안, 스톡홀름 도심은 대대적이고 폭력적인 변화를 겪었다. 원래 있던 동네는 모조리 철거되고 그 자리에 새 동네가 지어졌다. 도시 구조 자체도 바뀌었다. 도로가 확장되었고고속도로가 놓였다. 그런 활동을 부추긴 것은 사람들이 어울려서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꿈이 아니라 귀한 땅을 한 뼘도 남기지 않고 최대한 착취하겠다는 욕망이었다. 도심에서는기존 건물의 구십 퍼센트를 허물고 기존 도로망을 깡그리 지운것만으로도 모자라 지형 자체에도 폭력적인 변화가 가해졌다. - P81

만약 당신이 정말로 경찰에 붙잡히고 싶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찰관을 죽이는 것이다.
이것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통하는 진실이고, 스웨덴에서는특히 더 그랬다. 스웨덴 범죄 역사에는 해결되지 않은 살인 사건이 무수히 많지만 경찰관이 살해된 사건 중에는 미해결 사건이 한 건도 없었다. - P88

스웨덴 텔레비전내에서도 집안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독점 방송사의 중앙 관리 본부는 여러 채널에서 송출되는 뉴스 서비스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갖은 수를 다 쓰고 있었다.
그게 바로 검열이지, 군발드 라르손은 생각했다. 투명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하는 검열. 자본주의사회의 검열이란 전형적으로 그런 식이지. - P102

동료들은 그를 특이한 사람으로 여겼고, 대부분 그를 싫어했다. 그도 동료들을 싫어할 뿐 아니라 자신의 원래 가족과상류층 배경도 싫어했다. 형제자매는 그를 역겨워했다. 그가 자신들과는 다른 세계관을 가진 것이 한 이유였지만 더 큰 이유는그가 경찰관이라는 점이었다. - P104

"아빠?"
"응."
"요아킴이 말썽 부렸어."
"응."
"기저귀를 벗어서 벽에 똥을 발랐어. 엄청 많이 발랐어."
콜베리는 신문을 내려놓고 다시 끙 소리를 내면서 일어났다.
아이들 방으로 가보았다. 곧 한 살이 되는 요아킴이 아기 침대안에 서 있다가 아빠를 보고는 난간을 쥐었던 손을 놓고 베개에엉덩방아를 통통 찧었다. 요아킴이 벽을 예쁘게 꾸며두었다는보딜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 P106

프레드리크 멜란데르는 강력반의 귀한 자원이었다. 멜란데르는 기억력이 비상했다. 못 견디게 따분한 인간이었지만, 수사관으로서는 특별한 자질을 지닌 사람이었다. 난다 긴다 하는 현대 기술도 멜란데르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멜란데르는 특정 사람이나 주제에 관해서 지금까지 자신이 보고 듣고 읽은 것을 모조리 기억했다가 몇 분 만에 그 내용을 머릿속에서 가지런히 정렬하여 명료한 이야기 형식으로 들려줄 줄 알았다.
세상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컴퓨터는 아직 없었다.
멜란데르가 서툰 것은 글씨 쓰기였다. 마르틴 베크는 멜란데르의 노트에 적힌 글씨를 보았다. 깨알만 하고 독특한 그 필체는 남들은 절대 알아먹을 수 없었다. - P199

마르틴 베크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아이의 얼굴이자 노인의 얼굴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 눈은 공포, 혹은 증오, 혹은 절박함 탓에 광기에 사로잡힌 눈이었다. 아니면그냥 완벽하게 공허한 눈이었다. - P327

"여기는 모스크바도 베이징도 아니야. 택시 기사가 고리키를읽는 나라, 경찰관이 레닌의 말을 인용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여기는 정신 나간 나라의 정신 나간 도시야. 그리고 저 지붕에는 웬 망할 놈의 미치광이가 올라가 있어. 이제 그만 놈을 끌어내려야 해."
"동의해." 콜베리가 대꾸했다. "하지만 그 대목에서 레닌은아니지"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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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 청년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콜베리는 그때 이렇게 대답했다. "녀석의 허세로 걸친 자신감을 깨부수기 위해서지, 새롭게 진정한 자신감을 구축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언젠가 좋은 경찰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거야.
걸출한 성과를 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거랄까." - P110

그는 경찰의 마스코트나 마찬가지였다. 잘생긴 생김새에 호감 가는 태도에, 육체적으로 건강했고, 훌륭한 운동선수였다. 경찰 모집 광고에 나서도될만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확실히 내세울만했다. 가령 거만하고, 흐느적거리고, 비만 조짐이 있는 콜베리보다는 최고로 따분한 인간이 최고의 경찰이 된다는 가설의 완벽한 사례로 보이는 금욕적인 멜란데르보다는, 어느 면으로 보나 평범하기만 한 딸기코 뢴보다는 집채만 한 몸집과 꿰뚫는 듯한 눈빛으로 누구든 단박에 벌벌 떨게 만들 수 있으며 스스로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군발드 라르손보다는.
그리고 물론, 코가 막혀 찡찡대는 마르틴 베크 자신보다도. - P111

"좋지 않아."
"내가?"
"아니, 책 모퉁이를 접는 것."
"내 책이야. 내 돈으로 샀다고." - P168

크리스마스까지는 한 달도 더 남았지만광고 잔치는 벌써 시작되었다. 한껏 장식된 쇼핑가를 따라 쇼핑강박증이 흑사병처럼 빠르고 무정하게 번졌다. 그 전염병은 눈앞에 마주치는 모든 것을 휩쓸었다. 피할 길은 없었다. 전염병은 가가호호 방문하여 모두를 전염시키고 무너뜨렸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기진맥진 울어대며 떼를 썼고, 가장들은 다음 명절까지 빚에 시달릴 형편이었다. 거대하고 합법적인 신용 사기가도처에서 희생자를 양산했다. 병원은 심근경색, 신경쇠약, 급성위궤양 환자들로 붐볐다. - P198

"경찰이 필요악이기 때문이야. 누구든 불현듯 경찰의 도움이필요한 순간이 온다는 사실을 알지. 직업 범죄자들조차 그래,
제아무리 도둑이라도 자기집 지하실에서 뭔가 달각대는 소리가들려서 밤중에 잠을 깨면 어떻게 할 것 같나? 당연히 경찰을 부르지. 하지만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찰이 자기 일을 방해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어지럽히면어떤 방식으로든 두려움이나 경멸을 표현하기 마련이야." - P199

노라스타숀스탄 거리의 버스에서 총알이 예순일곱 발 발사된 지 한달이지났다. 아홉 명을 살해한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았다.
초조해진 것은 경찰 당국, 언론, 보통 시민들만이 아니었다.
경찰이 하루속히 범인을 검거하기를 애타게 바라는 사람들이또 있었다. 흔히 지하 세계라고 불리는 세상의 사람들이었다.
범죄가 주업인 사람들은 지난 한 달 동안 활동을 삼갈 수밖에없었다. 경찰이 경계를 조이는 한 납작 엎드려 있는 게 최선이었다. 스톡홀름 전역의 도둑, 중독자, 마약상, 강도, 주류 밀거래꾼, 포주는 살인자가 한시바삐 체포되기를, 그리하여 경찰이다시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나 주차 위반자에게 전념하여 자신들이 다시 활동에 나설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그들이 경찰과 공동전선을 펼치게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추적을 기꺼이 돕고 나섰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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