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마음의 빛이다. 차갑고 행성처럼 떠도는.

마음의 나무들은 검다. 그 빛은 파랗고.

풀들은 내가 신이라도 되는 듯 내 발 위에 그들의 슬픔을

풀어놓는다.

......

다다를 곳이 어디인지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달과 주목나무」




사랑이 너를 통통한 금시계처럼 가도록 맞춰놓았지.
산파가 네 발바닥을 찰싹 때리자, 너의 꾸밈없는 울음소리는 세상의 원소들 사이에 제자리를 잡았다.

우리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너의 도착을 널리 퍼뜨린다.
새로운 조각상
찬바람 들어오는 박물관에서, 네 알몸이 우리의 안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우리는 벽처럼 우두커니 둘러서 있다.

나는 네 엄마가 아니란다 바람의 손에 자신이 서서히 지워지는 것을 비추기 위해 거울을 증류시키는 구름이 그러하듯.

밤새 네나방 같은 숨결이 벽지의 분홍 장미들 사이에서 나풀거린다. 나는 깨어나듣는다:
먼바다가 내 귓속에서 출렁인다.

한 번의 울음, 나는 침대에서 휘청거리며 일어난다, 암소처럼 무겁고 꽃같이 빅토리아풍 잠옷을 입고서.


네 입은 고양이 입처럼 가득 열린다. 창문의 네모

하얗게 되며 흐릿한 별들을 삼키는구나. 그리고 이제 너는 몇 개의 음들로 소리를 내려고 한다;
선명한 모음들이 풍선처럼 솟아오른다.  「아침 노래」



차가운 겨울날 어느 방향에선가 불어닥친 바람.

한껏 들이 마시다 숨이 가빠 올 때처럼

실비아 플라스의 강렬한 시들을 주워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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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2-17 23: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은영 시인이 번역한 실비아 플라스 시 좋죠
저도 아침노래 좋아합니다 😍

미미 2022-12-17 23:35   좋아요 3 | URL
자러 가기 전에 살짝 들춰봤다가 놀라서
잠이 다 깼습니다😳

독서괭 2022-12-18 05: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머 “아침 노래” 시 정말 좋네요! 실비아 플라스 시 처음 읽은 것 같아요. 멋진 사진과도 잘 어울리네요^^

미미 2022-12-18 08:56   좋아요 4 | URL
그쵸! ‘어떻게 이런 문장을 써내지?‘ 감탄합니다. 서문을 자녀가 썼는데 역시 잘쓰더군요^^*

유부만두 2022-12-18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어리얼... 인어공주 이름으로만 생각했는데요 ^^

미미 2022-12-18 08:58   좋아요 3 | URL
서문에서 보니 키우던 말의 이름이 에어리얼이었대요^^*

새파랑 2022-12-18 1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침 노래의 화자는 산파일까요? 아님 옆에 있는 할머니? ㅋ 이젠 시인 미미님~!!

미미 2022-12-18 18:38   좋아요 4 | URL
엄마가 아니라고 했지만 엄마인 실비아 플라스의 감정을 시로 담은 것 아닐까요?ㅋㅋ
요즘 시에 꽂힙니다. 도서관에서 잠시 읽어봤는데 레이먼드 카버 시집도 좋더군요^^*

페넬로페 2022-12-20 16: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에어리얼은 요정, 정령, 이런 뜻인가요?
아! 키우던 말의 이름이군요~~
어쩐지 이 시들이 지금 차가운 겨울과 어울리는 것 같아요~~

미미 2022-12-20 17:01   좋아요 3 | URL
그렇죠~♡ 저도 겨울에 맞는 시집이라 생각했어요 폐부를 찌르는 어휘들이 가득해요^^*

mini74 2022-12-21 1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려운데 좋은건 뭐죠. 작가의 삶을 알아서일까요 슬프게 느껴집니다.
시 읽는 미미님도 참 좋은데요.

미미 2022-12-21 14:02   좋아요 2 | URL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다가 보니 다 관련되어 보이고 더 슬프게 느껴져요. 저도 시가 난해한데 가끔 이렇게 무모하게 덤비고 있어요 미니님 ㅎㅎ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라고 한다. 아들러는 세상의 중심은 네가 아니라고. 너는 그저 일부라고 한다. 나의 경우...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았나 되짚어 본다.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스럽게 중심에서 일부로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라고.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그렇다면 젊다는 건 세상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충만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이고 나이 들어간다는 건 그렇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는 시간일까. 



「미움받을 용기」는 아들러의 심리학이 담겨 있고 이야기의 중심에 그것이 있지만 실용서에 가깝다. 실용 심리학이라고 해야 할까. 정수만 뽑아낸다면 2~3페이지로도 충분해 보인다. 2~3 페이지의 굵직한 본론을 위해 다른 부가적인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것. 그런 면에서 실용서가 책 좀 읽는 사람들에게 외면받지 않나 추측한다. 내가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게 2019년인데 그때부터 점점 실용서를 졸업? 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남는 게 별로 없는 느낌.「정희진의 공부」에서 언니가 읽을만한 내용이 30%만 돼도 시장에서는 책을 출판한다고 하는 걸 들으니 역시 그렇구나 싶다. 그만큼의 기대가 남아서인지 실은 나도 완전히 끊지는 못하고 간간이 마음 가는 주제 위주로 실용서를 찾아 읽고 있다. 



이 책에서는 본론 외의 이야기들도 읽을만했다. 거품이 아니라 필요한 맥락으로 나머지가 채워져 있다고 느꼈다. 노년의 상담자와 젊은 남자가 '자유로운 삶', '행복 이란 뭘까' 같은 인생의 가치에 대해 대화를 이어간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주제지만 두 사람의 의견이 참예하게 갈린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젊은 남자는 비관적이고 어린 시절 경험 때문에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다. 그가 일반적인 관점 (프로이트의 원인론에 입각한 사고방식)에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반면 상담자는 아들러의 관점(아들러의 목적론적 사고방식)으로 젊은 남자를 돕고 싶어 한다. 젊은 쪽이 나름대로 논리를 펴며 거칠게 저항하는 부분이 재밌었다. 이들의 논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들러의 심리학을 이해하게 된다. (프로이트와 차이점도..) 어떤 결론에 이르기 위한 과정, 맥락이 중요함을 다시 실감했다. 



맥락의 사전적 의미

1. [의학 ] 혈관이 서로 연락되어 있는 계통.
2. 사물 따위가 서로 이어져 있는 관계나 연관.



내게 맞는 책일수록 당연히 밑줄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줄 그어가며 북마크 테이프 붙여가며 읽었는데 다시 밑줄 그은 부분만 재독 해보면 처음만큼 좋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다. 그건 왜일까? 궁금했다. 왜 처음의 그 감동이 없는 거지? 왜 그저 그런 문장 같지? 영 아닌 듯싶으면 북마크 테이프를 떼어버린다. 오늘에야 깨달았다. 맥락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 책을 전체적으로 읽어나갈 때에는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 맥락을 따라가기 때문에 해당 문장이 와닿고 뼈를 때리는 걸 느낀다. 하지만 그렇게 와닿았던 문장도 앞뒤 맥락을 제거한 상태로 그 부분만 읽으면 낯설어지는 거다. 이해라는 것도 마찬가지겠지. 맥락을 지우고 상대가 뱉는 말 자체만 바라보면 오독할 수 있다. 물론 그렇지 않은 문장도 있다. 정희진이 그렇고 울프가, 보브아르가, 프루스트가 그렇다. 그들은 그 나름대로 완성도 높은 문장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늘도 다른 사람들은 다 알만한 걸 뒤늦게 받아들이며 소소한 기쁨을 느낀다. 




「미움받을 용기」기억할만한 내용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한다. 

-무엇이 주어졌는가보다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중요하다. 

-자신의 삶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믿는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것. 그뿐이다. 그 선택에 타인이 어떤 평가를 내리느냐는 타인의 과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타인의 과제에서 나를 분리해야만 한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건 그런 분리를 못하고 타인의 과제를 내 문제로 만들고 있다는 증거다. 

(예를들어 누가 나를 미워하면 그건 그 사람의 과제이므로 이쪽에서 노력할 필요가 없음)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되 상대의 영역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

-인정욕구는 부자유를 강요한다.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의미다.

-칭찬은 능력있는 사람이 능력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다.

-평가란 수직관계에서 비롯된 말이다. 

-과도하게 비관적인 사람은 그런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그런 자신을 나름 과시하는 거라고.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삶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내가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라는 믿음.

-포기란 말에는 본래 '명확하게 보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키네시스적 인생(결과만이 중요함)/에네르게이아적 인생(과정 자체를 결과로 보는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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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7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7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7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7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12-17 1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나 미미님은 북플의 중심입니다 ^^ 미움 받을 용기보다는 사랑받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

전 그래도 밑줄 많이 그어진 책이 결국 기억에 많이 남더라구요~!

미미 2022-12-17 16:55   좋아요 5 | URL
새파랑님이 함께 해주신 덕분에 올해도 북플 활동 즐겁게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받을 용기! 이 제목이 더 좋았겠는데요? ㅎㅎ

저에게도 소장가치 있는 책은 대부분 밑줄 잔뜩이예요.
감기조심, 웃을 일 많은 주말 보내시길요*^^*

그레이스 2022-12-18 23: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맥락과 밑출친 문장에 대한 미미님 글 완전 공감합니다^^

미미 2022-12-19 09:39   좋아요 4 | URL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레이스님~^^♡

mini74 2022-12-21 1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앞뒤 맥락 떼놓고 보면 왜 밑줄을 그었지? 왜 표시를 했지 싶을때가 있어요.
그래서 마음에 드는 책에 덮어놓고 밑줄 긋다보면 전부 다 일정도라서 민망스러울때도 있지요.
미미님 밑줄에 저도 공감 좌악! 입니다.

미미 2022-12-21 14:07   좋아요 2 | URL
네 그래서 언제든 다시봐도 좋은 문장은 정말 더 대단한것 같아요! 몇번 이러고 나니 신중해지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너무 많은 밑줄. 아무래도 감동과잉입니다.ㅎㅎ
 

자서(自 序)

나는 항상 인생을 망치는 꿈을 꿨어요.

아름답지 않아서,
더 이상 아름다운 것에게 사랑을 구할 수 없을 때는
구걸하는 기분으로

누구도 온전히 사랑할 수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그 더러운 기분으로

내가 가진 환멸을 검열해야만
안심할 수 있는 나를 보았다.


2022년 9월 조혜은

레드


......


나는 지내고 있니?
나를 지나고 있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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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2-12-12 2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터디카페 근사합니다 시집 제목 멋지네요 눈 내리는 체육관

미미 2022-12-12 21:17   좋아요 2 | URL
이 시집 아무곳이나 펼쳐봤는데 의외인 지점이 있어 읽고 있어요.
아늑한 곳이예요^^

scott 2022-12-12 2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창 밖 풍경이 멋집니다! 미미님 열독 하시는 스터디 카페

따스한 차 배달!
( )_( )
(„• ֊ •„)
O☕️O

해드리려요 ^^

미미 2022-12-12 21:26   좋아요 3 | URL
오! 마침 따뜻한 차 마시고 싶었는데 스콧님 고맙습니다 ^^ ☕

거리의화가 2022-12-12 21: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스터디 카페시군요. 독서대 위에 놓인 시집, 그리고 오른쪽에는 신문인가요? 잠만 안 쏟아진다면 저도 그 곳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거기도 비가 오는지요? 날이 추워지네요. 들어갈 때 조심히 들어가셔요*^^*

미미 2022-12-12 21:51   좋아요 5 | URL
전에 화가님이 말씀하셔서 일주일에 한 두번 사다 읽어요.
스맛폰에 나오는 기사보다 훨 폭넓게 사회이슈들 다루네요. 여긴 비가 그쳤어요^^

alummii 2022-12-12 2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터디카페에서 책읽는 시간이 제일 행복한것같습니다 ! 날씨가 추워지니 거기까지 나가기 싫은게 문제지만요 ㅎㅎ 암튼 따뜻한 겨울 보내셔요^^ 미미님

미미 2022-12-12 22:15   좋아요 3 | URL
알럼미님도 스터디카페 좋아하시는군요? 반갑네요ㅎㅎ낼 부터 춥다니 감기조심하세요^^

새파랑 2022-12-12 2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터디카페가 거의 호텔? 수준이네요.

미미님이 책을 지나고 있군요~!!

미미 2022-12-12 22:41   좋아요 4 | URL
네ㅎㅎ 요즘 스터디카페가 많이 생겼네요.
천천히 지나고 있어요^^

책읽는나무 2022-12-13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카....저도 언젠가 한 번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에요.
이쁘네요? 밤에 가야 이쁜 곳?^^
독서실보다 스카가 책이랑 독서대랑 신문이 조명을 더 이쁘게 받네요ㅋㅋ
분위기있게 시집도~^^
전 애들 방학하면 집앞 스카에 함 가보려고 생각중입니다.

미미 2022-12-13 14:53   좋아요 4 | URL
일반 카페는 커피든 뭐든 마셔야하는데 여긴 3500 ~4000원정도면 두시간을 이용할 수 있고 훨 조용해서 좋아요^^♡ 나무님도 분명 좋아하실거예요!
집앞에 있다니 부럽네요. 저는 거리가 좀 있는데 운동겸 걸어갔다왔어요ㅎㅎ

2022-12-15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5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2-12-15 18: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미미 2022-12-15 20:02   좋아요 4 | URL
고맙습니다. 서니데이님도 2023년 하시는 일 모두 잘 풀리시길,
웃을일 많으시길 바래요*^^*

레삭매냐 2022-12-15 21: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눈 내리는 날, 따수분 스터디
카페에서 책 읽기...

그야말로 로망이네요.

고저 부럽삽니다.

미미 2022-12-15 23:23   좋아요 4 | URL
전망좋은 자리라
기분전환이 되었어요.

레삭매냐님이 저는
더 부럽습니다^^*

희선 2022-12-16 07: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요새는 스터디카페가 많아진 것 같기도 하더군요 잘 모르지만... 다른 곳엔 있는데 제가 사는 곳엔 없네 했는데, 제가 몰랐던 거고 있더군요 걷다가 그런 간판을 보기도 했습니다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책을 보고 공부를 하는 것도 괜찮겠네요

미미 님 서재 달인 축하합니다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늘 건강하게 지내세요


희선

미미 2022-12-16 07:42   좋아요 3 | URL
네 저도 길에서 발견한 곳 보다는 검색해서 알게된 곳이 훨 많았어요
은근 스터디카페가 많아서 취향에 맞는 곳으로 고를 수 있기도 하고 괜찮더군요.

희선님도 서재 달인 축하드려요! 감기조심하시고 내년에도 함께해요*^^*

mini74 2022-12-21 1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짜 카페보다 훨 나은 조건인데요. 책 한권 바깥 풍경 그리고 밤....
책 읽기 좋은 분위기.
미미님 어느 장소에서든 안온하시길*^^*

미미 2022-12-21 14:12   좋아요 1 | URL
카페에선 옆 자리 수다를 어느새 제가 듣게 될 때가 있어서 민망해요ㅋ 카페서 공부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북카페도 점점 늘어나나봅니다. 미니님도 늘 즐겁고 안온하시길요!♡^^♡
 






오늘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 노점상에 들렀다. 지하철역에 인접한 노점 떡볶이집 가운데 이곳이 제일 인기도 있고 맛도 좋다. 겨울이라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뎅이며 떡볶이를 그 자리에 서서 맛있게 먹고 있는 사람들이 빽빽했다. 새로 떡볶이를 만드는 중인지 붉어지려는 떡에 붙은 고춧가루가 점점이 눈에 띄었다. 반듯한 가름마가 야무져 보이는 주인 언니가 포장이냐 묻고는 앞서온 한 사람과 나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이야기한다. 말을 하면서도 양손은 쉴틈이 없다. 보통은 남편과 같이 일했는데 오늘은 혼자라 더 바빠보였다. 잠시 숨을 가다듬듯 대기자들 순서를 눈으로 가늠한 뒤 제대로 주문을 받기 시작한다. "튀김은 튀겨 드려요? 순대 내장은요?" 먼저 온 사람에게 주문 받아 손으로 바로 처리하면서 다음 대기자에게 또 미리 요구사항을 확인한다. 중간중간 계산도 하고 그 다음 주문을 받고 각자가 원하는 세부사항을 물어보고... 듣기만 하는데도 나는 헷갈리고 어지럽다. 




나폴리 4부작 중에 3권이었나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고 싸우다가 큰 사고를 쳤는지 파스콸레가 나디아와 함께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어느 날 레누의 집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다. 그 둘은 자기집처럼 음식을 찾아 먹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마셨다. 레누의 남편에게 악수를 청하고는 당신과 달리 자신의 거친 손은 노동자의 증표라고, 노동자가 의자와 책상 연필 같은 것들을 만들지 않았다면 당신같은 지식인 부르주아도 존재할 수 없었을거라고 말한다. 지금도 육체 노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때로 목숨이 위태로울만큼 주의가 필요한 작업도 그런 시각과 안이한 관리속에 희생자를 만들어낸다. 납득하기 힘든 일들이 번번히 발생하지만 책임자는 어디에도 없고 '그저 운 없고 불행한 사람'만 늘어간다. 




오늘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되었다. 조합원 투표 결과를 수용한 것이다. 하루 16시간 일해 월 300정도 번다는 화물노동자를 줄곧 '귀족'이라 부르던 정부는 16일간의 파업기간 내내 사측의 입장만 대변했다. 이 정부에게 노동자는 국민이 아니었다. 국가경제를 위기로 내몰고 정당한 이유없이 (이유가 뭔지는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 나라를 파탄에 이르게 하려는 악의 세력이었다. 대다수의 뉴스에서도 줄곧 사측의 피해규모, 노조의 불법성에만 주목했다. 왜 이들이 추운 날씨에 길거리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지 그 이유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들의 입장을 알고 싶은 사람은 관련 기사를 세심히 찾아봐야만 알 수 있었다. 며칠전 경제관련 기사에서 대한민국 상위20프로와 하위20프로의 소득격차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는 자기들 보고 싶은것만 본다. 국가 지도자의 서슬퍼런 위협에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무슨 수를 썼기에 인구의 1퍼센트를 차지하는 소수의 부자가 인구의 99퍼센트를 차지하는 다수에게 명백히 불리한 쪽으로 돌아가는 체제를 받아들이도록 다수를 설득했단 말인가? 상대적 빈곤을 키우는 정당을 지지하도록 다수 유권자를 설득하기 위해 공화당이 내놓은 해법은 중하류층과 극빈층을 이간질해서 내 지갑을 얇게 만드는 주범이 상류층(과 상류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초점을 흐리는 것이었다. 겨우 입에 풀칠을 하는 사람들이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들과 티격태격하는 한, 이 두 집단은 부자들을 상대로,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인구를 소수의 최상류층과 절대 다수의 어려운 사람들로 양분하는 사회.경제 체제를 상대로 싸움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p.99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제임스 길리건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거나 망각되는 것이 현대 세계를 규정하는 조건들 중 하나이다. 오웰은 북부에 가서 일터 밖의 노동계급 사람들을 만나고 직접 탄광에 내려가 석탄이라는 필수적인 원자재 및 그 채취에 대해 증언함으로써 그런 망각을 시정하고자 했다. 땅속으로 내려가는 것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 채굴하는 것은 과거를 현재로 끌고 오는 것이다. 광업이 너무나 거대한 규모로 해온 그 과정이 지구 환경을 최상층 대기까지 바꿔놓았다. 이런 이야기는 노동 이야기로 할 수도 있지만, 생태학적 이야기로도 할 수 있다. 그 두가지는 결국 황폐화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귀결된다.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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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9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9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12-09 22:51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지금 정부의 문제는 말하는게 입아플뿐이고요. 그런데 저는 이번 화물연대파업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자신의 주변 가족 등등이 저런 노동으로 먹고살거라는 생각을 안하는 것. 우리 대다수는 결국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는게 아닐까? 그런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의 노동은 잠시 스쳐가는 과정일뿐이고 곧 주식이든 가상화폐든 뭐든 그런 투자를 통해 이익을 얻는 삶? 뭐 그런걸 그냥 꿈이 아니라 자신의 진짜 정체성으로 삼는 사람이 압도적인건 아닌가 그런 생각들... 어쨌든 화물연대파업의 이런 실패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정말 더 힘들게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미미 2022-12-11 12:15   좋아요 5 | URL
화물연대 기사 댓글보면 저도 말씀하신 부분들 때문에 마음이 안좋았어요.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가 밉다고 그런 극우 지지자들 믿고 보수 정권이 더 큰소리 치는 거겠죠. 이런 식의 갈라치기가 언제까지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화물연대 내부에서도 결국 의견이 갈리고 이렇게 되고 말았네요. 이 결과는 그쵸. 다른 분야의 노동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것 같습니다.

페넬로페 2022-12-09 22: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해도해도 정말 너무 하죠!
사람이 아무리 그래도 뭔가 눈치도 좀 봐야하는데 너무 대놓고 그러니 정말 웃기고 있네 입니다 ㅠㅠ
근데 2번을 찍은 사람들이 33%를 제외한 핍박받는 나머지 사람들도 많다는 것에 더 경악합니다^^

미미 2022-12-09 23:32   좋아요 5 | URL
네! 매일매일 어쩜 저러나 근심스럽게 지켜봅니다. 너무 당당해서 더 기가차죠. 여당 의원들도 지지율 신경
안쓰기로 단단히 마음 먹은듯 보이고요. 오늘 대통령이 주는 인권상 거부했다는 노동자의 기사를 봤어요.
최고 권력이 법 운운하며 고소고발 이어가는것도 볼썽사납고 파장도 걱정스러워요ㅠㅠ

잠자냥 2022-12-09 23: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원칙과 공정 운운하면서 지지율 올랐다고 기레기들이 용비어천가 불러주고, 그 지지율 꼬라지에 처웃고 앉았고… 역대 대통령 레임덕 수준 지지율 주제에…. 어휴 귀신은 뭐하나 몰라요.

미미 2022-12-09 23:40   좋아요 6 | URL
지지율 찔끔 오른 기사에 자화자찬하더군요. 이 정부 사람들은 최소한의 양심, 수치심도 없는것 같아요.
천공 입김에 귀신도 자기들 편이라고 정신승리 중인거 아닐까요? 답답하고 심난한 나날이예요.

잉크냄새 2022-12-09 23:4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파업 기간 내내 인터넷에 올라온 헤드라인을 보셨겠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으면서 윤짜장 패거리의 강경일변도의 패악질에 대해서는 연일 법과 원칙이라는 미사어구로 포장해 버리는 언론의 수준을...
연대 파업의 실패가 이 패거리에게 근거없는 자신감과 무자비함을 실어주지 않을까 심히 걱정됩니다.

미미 2022-12-09 23:55   좋아요 4 | URL
네. 멀찍이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가슴이 떨리는데 그런 언론기사를 접하는 화물노동자들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경찰은 기꺼이 개가 되어 언론사 압수수색하질 않나 하는짓이 계속 조폭과 달라 보이지 않아 이젠 두렵습니다.

2022-12-10 0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10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Yeagene 2022-12-10 15: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기사들 제목만 보는데도 어이가 없었습니다.어쩜 저렇게 일방적으로 몰아세울 수 있을까요?이러니 기레기 소리 듣는 거에요

미미 2022-12-10 16:13   좋아요 4 | URL
강압적인데다 안하무인...많은 언론사들 제대로 할말 안하고 거기 호응해주고 있으니 한심합니다. 지난번 MBC기자덕에 잠시 속이 뻥뚫렸는데 그 뒤로 다들 더 기레기모드네요.

새파랑 2022-12-11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모두가 만족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정책은 나오기 힘들겠죠? ㅋ 뭔가 자신과 다른것에 대해 너무 적대적인 세상인거 같아요 ㅜㅜ

미미 2022-12-11 18:43   좋아요 5 | URL
김누리 교수님이 분석한 영상을 보니 우리나라 보수는 극우에 가깝더라구요. 민주당이 정책으로 볼때 사실상 보수. 더군다나 이번 정부는 과거로 급격히 퇴행해 성숙한 시민의식과는 맞지 않아 보여요. 장애인, 여성, 노동자를 무시하는 이번 정부 너무 힘듭니다ㅜㅠ

레삭매냐 2022-12-15 21: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곳 근처에 이번
화물연대 파업의 중심이었던
의왕ICD가 있습니다.

2주 전인가 밥 먹으러 갔다
가 돌아오는 길에 보니,
화물연대 용사들이 추운 날씨
에 비장한 표정으로 집회장
으로 삼삼오오 모여 드는 장면
을 보고 순간 울컥했습니다.

나중에 가짜 뉴스를 지속적으
로 생산하는 사이비 언론에
세뇌되어 화물연대 비판하는
친구랑 싸울 뻔 했네요.

왜 이 사회에서는 약자들만
항상 손해보고 살아야 하는
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미미 2022-12-15 23:30   좋아요 5 | URL
파업종료 뉴스에서
기사님들 고개숙인 모습에 저도 울컥했어요.

근거리에서 목격하신
레삭매냐님 마음은
더 복잡하셨을것 같네요.

예전에 광화문에 갔다가
친구랑 다른 파업시위를 지켜봤는데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친구의 말에 마음이 안좋았어요.

유독 강자만 위하는
이번정부 남은 임기가
길게 느껴집니다.

그레이스 2022-12-18 23: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ㅠㅠ
오늘 아침 뉴스 듣는데 대통령 긍정평가가 상승한 이유 중 화물연대 파업 해결이 이유로 거론되어서 조금 놀라고 의아했습니다.
들으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ㅠ

미미 2022-12-19 09:45   좋아요 2 | URL
보수 지지자들이 노조의 불법성에 집중한 결과라고 하더군요ㅠ.ㅠ 근본 원인을 생각하지 않아보여
저도 그 부분 마음이 안좋았어요. 대부분 노동자일텐데...

청년 2022-12-19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구언론과 결탁해서 만든 프레임으로 미성숙한 젊은이들과 정보에 취약한 어르신들에게 여론몰이하는 저들의 교활한 의도를 어떻게 막아야 할 지 ~ 답답합니다

미미 2022-12-19 09:51   좋아요 1 | URL
청년님이 말씀하신 부분이 사회 갈등의 주 원인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선생님들을 정치에서 배제하는게 수구세력의 기본 목표같아요.

청년 2022-12-19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업 소유의 인터넷 언론이라는 곳도 언론기능을 상실한 것 같아요 아무 비판의식 없이 무조건 친정부 편 들고 클릭수 높이기 바쁘고 ~ 군사정권 시절 언론의 모습이 느껴지네요

미미 2022-12-19 10:33   좋아요 1 | URL
노조 탄압이 지지층 결집과 약간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지니 언론도 더 정부 편을 들고 있죠. 축구대표팀과의 자리에서 ‘불굴의 의지,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언급하며 자기도 그렇게 하겠다고 했대요. 임기 마친 후의 나라 상황이 어떨지 암울해요.

청년 2022-12-19 1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로지 권력을 누리는 자리에만 있었으니 역사관 가치관도 없는 것 같고 ~ 그냥 그 때 그 시절이 좋았어 하는 시대착오적인 꼴통사고 ~ 저도 암울합니다 희망이라는 말이 요즘처럼 소중하게 다가오는 시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미미 2022-12-19 10:49   좋아요 1 | URL
총체적인 난국입니다. 검찰,판사 이런 사람들이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부류인데 사회통합을 해야할 자리에 앉혀왔으니...내놓는 정책 대부분이 1%를 위한 건데 지지자들이 제발 눈을 떴으면 좋겠어요.
 

 

 



불안정한 나. 예측불가능한 나. 그런 내게 일어난 일을 글로 쓰려면 누구나 고민에 빠진다. 여러 갈래의 마음이 다투고 이때의 나와 저때의 나는 다르거늘 글로 쓰면 한 가지 상태로 고정되니 쓰기에 애매하고 쓰고도 찝찝하다. p.167. 쓰기의 말들. 은유



두 달에 걸쳐서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을 다 읽었다. 아니 오디오북으로 들었으니 다 들었다. 작년쯤 종이책으로 1권을 읽고 미뤄두었던 나머지 이야기들을 오디오북으로 끝낸거다. 오디오북을 좋아하지 않았다. 귀로 듣다보면 종종 연관성을 찾기도 힘든 다른 생각으로 빠지곤했다. 집에서 앉아서 혹은 누워 들으면 잠이 왔다. 이 좋은 방법을 두고 수면제가 왜 있는걸까? '노인과 바다'를 오디오북으로 시도했는데 바다에 나가자마자 표류해버린 내 집중력은 헤밍웨이를 삼류작가로 만들었다. 그런데 나폴리 4부작은 달랐다. 야한 장면 묘사가 인상적이었다는 플친의 말에 듣기 시작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하필 그 장면이 시작되었는데 마치 스피커로 그곳에 울려 퍼지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그렇게 성우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는 소설 속으로 나를 집어삼키는 듯 했다. 나는 릴라가 되었다가 레누가 되었다. 나폴리에서 가장 빈곤한 마을에서 싹튼 우정. 그들은 서로에게 눈부신 친구였지만 질시의 대상이기도 욕망의 원천이기도했다. 



      





지금껏 릴라가 한 모든 노력은 결국 자기 형태를 잃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사물과 사람을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조종했는데도 액체가 범람하면 릴라는 스스로의 형태를 잃어버렸다. 그럴 때면 혼돈만이 유일한 진실이 되었다. 그렇게나 활발하고 용맹한 릴라는 사라지고 겁에 질려 무無가 되고 말았다.p.244.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릴라와 레누는 이탈리아의 격변하는 역사 속에서 청춘과 중년의 시기를 거쳐 노년을 맞이한다. 릴라는 고향마을에서 이웃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며 엔초와 함께 나름 성공적인 삶을 이룬다. 어린 시절 가난으로 학업을 중단했음에도 여전히 똑똑한 그녀답게 IBM사에서 일하는데 대형 컴퓨터에서 점점 데스크탑으로 변모하는 기술을 선도한다.  레누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니노 때문에 뒤늦게 많은 것을 잃게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릴라와 관계를 회복해 고향 마을에 정착한다. 전후 이탈리아의 복잡한 정치상황, 68혁명, 테러리즘과 부패 추방운동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둘러싼 이탈리아 현대사는 등장인물들의 삶에 많은 굴곡과 슬픔을 안긴다. 특히 고향 마을에서 권력을 휘두르며 악한 행동을 일삼았던 솔라라 형제와 파스콸레같은 인물들의 삶은 작품에 역사성과 생동감을 더했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는 글쓰기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1인칭 시점인 데다 화자인 레누의 직업이 작가인 만큼 무엇인가가 되려고 애쓰는 레누의 노력의 일환으로 작가로서의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제 1권에서 제3권까지는 작가로서 자리 잡기까지 레누가 매력적인 글쓰기에 대해 고민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어린 시절 릴라가 쓴 '푸른 요정'과 사춘기 시절 릴라가 이스키아 섬에 있는 레누에게 보냈던 편지는 향후 레누가 글을 쓰는 기준이자 지향점이 된다. P.670.옮긴이의 말



나폴리 시리즈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등장인물들의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심리를 잘 풀어낸 부분이다.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막다른 길까지 고집을 부려 달리다가 후회라는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힌다. 관계의 꼬인 매듭을 풀고 인생이란 퍼즐의 답을 찾고 싶어 헤매지만 실마리가 잘 찾아지지 않는다. 선과 악이 분명하게 대립하지 않는 다층적인 인물들의 묘사는 그들에게 살과 뼈를 가진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현실성을 부여한다. 바로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고 살아갈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해 산다', '누구에게 내 인생을 건다'만큼 부질없는 말은 없을 거다. 자기 자신의 내일도 확신할 수 없는데 왜 타인에게 뭔가를 건단 말인가. 그저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 현재를 살아내는 수 밖에 없다. 엘레나 페란테의 그런 디테일이 좋았다. 짠하도록 생생해서 읽는 내내, 듣는 내내 위로가 되었던 선물같은 소설이었다. 



글로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의 변덕스러움, 나약함, 얄팍함, 불확실성을 어디서 확인할까. 이토록 오락가락하면서 과연 어디로 가는지 궤적을 어떻게 그려 볼까.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상태를 인식하는 것. 글이 주는 선물 같다. P.167. 쓰기의 말들.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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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12-08 19: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디오북을 ‘노인과 바다‘로 시작했는데 언제나 이 소설은 어릴 때 보았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오디오북으로 듣는 조각조각 흩어진 내용들로 남아 있어요. 조만간 완전한 소설로 만나야겠어요.
글로 표현되는 것에 대해 불안하면서도 나를 돌아보고 붙잡는 역할도 하기에 써야만하는지도 모르겠어요^^
나폴리 4부작 얼른 읽고 싶은데 ㅠㅠ

미미 2022-12-08 20:02   좋아요 2 | URL
저도 그런면에서 갈수록 쓰고 싶긴한데 두려움도 있어요. 글로 표현한다는건 많은
의미가 있는것 같아요. 오해받을 것을 각오해야 하고 비판받을걸 감안해야 하고
서툰 전달력을 계속 다듬는 노력등등요. 제 글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으니 페넬로페님처럼
위로가 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단 마음만 굴뚝같아요.^^*

scott 2022-12-08 21:39   좋아요 2 | URL
두 분의 글 저얼대로 서툴지 ! 않습니다!

정작 다듬어야 할 사람은 저 🖐^^

페넬로페 2022-12-08 22:21   좋아요 2 | URL
scott님, 무슨 그런 말씀을요!
항상 멋진 글만 쓰시면서요^^

미미 2022-12-08 22:54   좋아요 2 | URL
스콧님 글에 영향받아 제가 구입한 책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덕분에 관심작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습니다^^♡

scott 2022-12-08 2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초 대형 히트를 치니
혹쉬 은둔의 작가의 개인적인 스토리가 아닐까!
이탈리아에서 마구 마구 소문의 연기를 피웠었습니다!ㅎㅎ

나라도 다르고 시대도 다른데
나폴리 4부작 속 인물들의 상황과 심리에 빙의가 ^^

페란테 이 작품 이외는 확실히 휘몰아치고 공감 되는 파급력이 떨어집니다 ^^

미미 2022-12-08 22:57   좋아요 1 | URL
이탈리아 사람들의 격정적인 감정표현, 열정적 삶 등은
우리민족과도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때때로 빙의되는 기분!!ㅎㅎ

다른 작품은 기대를 살짝쿵 내려놓고 읽어야겠네요^^*

책읽는나무 2022-12-08 21: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연작 읽기 완독이 참 힘든데 몇 년 전 나폴리 4 부작은 몰입력이 상당하여 밤 늦도록 마구 읽었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정말 충격적였던 작품이었어요.
덕분에 이탈리아 남자들 다시 봤죠ㅋㅋㅋ
릴라와 레누!!!
시대의 격변기에서 릴라의 삶의 방향이 달라지는 모습들이 안타까웠어요.
릴라가 처음엔 좀 얄미웠었는데 나중엔 어쩌면 레누의 열등감이었었구나! 싶어 레누에게도 좀 연민이 생겼었구요.
에혀~ 또 생각하니 마음이 짠~^^;;;
근데 야한 장면이 있었나요?
기억이???? 🙄
도서관에서 울렸다면??ㅋㅋㅋ

미미 2022-12-08 23:06   좋아요 3 | URL
저도 나무님 점점 빠져들어서 나중에는 몰아서 듣느라 귀가 아플정도였어요ㅋㅋㅋㅋ
중간에 책을 모두 구입하고야 말았죠 이탈리아 남자들 니노 때문에 이미지가^^;;
이 책 추천했는데 친구도 릴라가 얄밉다고 했어요 저는 릴라에게 왜그리 마음이 가던지...
아버지가 창밖으로 던졌을때부터 그냥 모든 행동이 다 이해되고 안타깝고 그러더라구요.
나중에는 아무래도 레누에게 더 마음이 갔어요.
레누랑 안토니오 사귈때요. 윌*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로 들으니 몹시 야하고 두근두근 했어요(>.<)

공쟝쟝 2022-12-14 13:26   좋아요 2 | URL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릴라가 좋았어요.......... 레누는 좀 이해 안되었지만, 대학에서 느낀 소외감이나 엄마와의 관계 톺는 부분 좋았고.... 아무튼 좀 계속 좀 왜 저렇게 까지... 그래야 하는가? 이러다가 점점 합리화 너무 해대서... 니노와 헤어지게 되는 부분에서 고소하기까지 했어요 ㅋㅋㅋ
소설 끝낸지 오래되었는 데도 저는 릴라가 너무 아파요 ㅜㅜ 음... 페란테 나폴리 시리즈... 제게는 최고의 소설이었음. 미미님도 읽고 함께 울고 웃으셨을 거 같아. 기뻐요...

책읽는나무 2022-12-14 13:47   좋아요 2 | URL
전 어릴 적 릴라와 레누의 관계에서 뭐든 잘하는 릴라!! 그 옆에서 자존감 떨어지는 레누!!!
그때 레누에게 완전 감정이입했더랬죠. 어릴 적 예쁘고 완벽했었던 친구가 생각난 바람에~^^;;;
그래서 릴라를 좀 얄미워했었던...ㅜ
근데 커갈수록 릴라에게 푹 빠져 넘 안됐어서...ㅜㅜ
최고의 소설이라 할만해요.
넘 좋아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었는데 그 책 누군가 대출해 간 빈자리 확인하면 지금도 혼자 웃고 옵니다ㅋㅋㅋ

미미 2022-12-14 14:30   좋아요 2 | URL
릴라 인생이 페미니즘 그 자체죠. 본인은 인정 안하지만 살아간 방식도 페미니즘이라고 느꼈어요. 저에게도 최고의 소설! 인생소설입니다ㅠㅠ 얼마전 도전했다 실패한 <토지>보다 와닿았는데 그건 다음에 다시 재도전^^*

햇살과함께 2022-12-08 2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강렬한 두 친구 스토리. 재밌게 읽었어요~
오디오북 저도 잘 집중이 안되서(물론 눈으로 읽어도 집중력이…) 재미가 없더라고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일까요.

미미 2022-12-08 23:12   좋아요 2 | URL
저도 연극 배우들이 녹음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빼고는
오디오북을 끝까지 듣기가 힘들었는데
이 작품은 걸으면서 상당히 몰입하고 들었어요^^*
이런 소설을 앞으로 또 만날 수 있을지! 레누와 릴라에게 여러모로 감정이입하면서
친근감을 느껴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듯 해요.ㅎㅎㅎ

새파랑 2022-12-09 0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은 종이책! 오디오북은 야해야(?) 집중이 되는군요 ㅋ 전 이 책 두께 때문에 손이 잘 안가더라구요. 책꽂이에 있는데 ㅎㅎ

미미 2022-12-09 08:34   좋아요 2 | URL
저도 두께의 압박 때문에 한동안 미뤄 두었어요ㅎㅎ
야함 덕?을 보고 스토리에 몰입하게 되면서 완독했네요 다 읽고 종이 책도 훑어봤는데 이제 애착이 생겼어요^^*

기억의집 2022-12-09 08: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심요. 오디오로 이 긴 장편을… 오디오북은 한계는 있더라고요. 저도 주로 청소할 때 들었는데 이제는 정치 유튭 듣느냐고 윌라 구독 취소 했어요. 저는 소설 중에서 사랑이야기가 제일 싫은데.. 이 책은 이탈리아 역사와 공존한다고 하니 다시 보게 되네요. 사랑 이야기인 줄 알었어요!!

미미 2022-12-09 08:41   좋아요 2 | URL
저도 가끔은 빨래 정리하며 들었어요. 처음에 소요 시간을 보고 이걸 다 들을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사랑은 일부고 우리가 살아가며 겪을 수 있는 많은 고민,관계, 감정을 다 담았어요. 대하소설ㅎㅎ
유튭 들을만한거 많죠^^*

다락방 2022-12-09 0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지막 권을 정말 아프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야 했습니까, 작가님? 그 일을 꼭 넣어야 했습니까, 작가님? 이러면서 작가를 엄청 원망했어요.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말입니다. ㅠㅠ

미미 2022-12-09 09:50   좋아요 1 | URL
그 부분 충격적이었죠. 지진도 그렇고 의외였어요. 우리나라도 형제복지원같은데서 그랬듯이
당시엔 그곳도 아이를 잃어버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을것 같아요. 릴라가 출산하지 않으려고 해서
의사가 당황했던게 복선이었나 싶더군요ㅠ.ㅠ

2023-01-06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1-06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23-01-06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미미 2023-01-07 16:20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1-07 1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많이받으시고, 행복한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미미 2023-01-07 16: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thkang님도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래요^^*

thkang1001 2023-01-08 1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남은 휴일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