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으로 행동을 이끄는 일은 있어도 필요한 조건은 아니다. 문학은 예술 작품이다. 예술의 목적은 그 자신 이외에는 없다. - P184

희곡을 읽는 법

희곡은 픽션이며 하나의 이야기이므로 역시 이야기와 같이 읽어야 한다. 그러나, 희곡에는 작품 인물을 살리는 배경의 묘사가소설만큼 풍부하게는 들어 있지 않으므로, 독자는 상상력을 훨씬활발하게 발휘하여 읽을 필요가 있다. 더구나, 희곡은 본래 무대에서 상연되어야만 비로소 저자의 의도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것이므로 ‘읽기‘ 만으로는 불완전하다.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무대를 관람하고 있는 것처럼 읽지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전체를 파악했으면 이번에는 연출가가된 것처럼, 대사를 말하는 법에서부터 몸의 거동까지 배우들에게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는 듯이 읽어본다. 이것을 해보면 무척재미있으며 얻는 바도 크다.
예를 들면, <햄릿>의 3막 1장에서, 햄릿이 오필리아에게 말하는 대목... - P186

훌륭한 시는 퍼내어도 끝없이 솟아나는 샘과 같은 것이어서, 몇 번을 되풀이하여 읽어도 완전히 다 음미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를 떠나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읽은 것에 의해서 부지불식간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 P188

훌륭한 책일수록 독자의 노력에 응하여준다. 어려운 훌륭한 책은 독서술을 진보시켜주고, 세계나 독자 자신에 대해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지식을 늘릴 뿐인, 정보를 전달하는 책과는 달리, 독자에게 어려운 훌륭한 책은 영원한 진실을깊이 인식할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 독자를 현명하게 하여준다.
- P215

이류(二流)의 책은 재독(再讀) 했을 때, 기묘하게도 퇴색해보이는것이다. 그것은 독자 쪽이 어느 사이에 성장하여 책의 키를 뛰어넘고 만 것이다. 정신이 계발되고 이해가 깊어진 것이다. 달라진것은 책이 아니라 독자 쪽이다. 책과 이러한 재회를 하면실망을 맛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P217

좀더 훌륭한 책의 경우는, 재회했을 때 책도 또한 독자와 함께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독자는 전에는 깨닫지 못하였던,
전혀 새로운 사실을 많이 발견한다. 이것은 맨 처음의 독서법이나빴던 것이 아니라 맨 처음에 못 보고 넘겼던 딴 진실이 보이게된 것이다. 맨 처음의 독서에서 발견한 사실은 다시 읽어보아도역시 진실임에는 변함이 없다.
- P217

살아가는 것과 정신의 성장

지금 혼자서 무인도에 유배당해 가게 되어서 가져가고싶은 책을 10종 선택하라고 한다면 대체 무엇을 선택할까? 이것은 10년쯤 전에 유행했던 하나의 테스트다.
이 선택은 자기가 몇 차례나 되읽고 싶은 책은 무엇인가 하는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흥미 깊은 테스트다. 그리고 또 이것은 오락·정보·지식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었을때, 인간은 어떤 식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그러한 상태에 놓였을때에, 자기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을 잘 생각해보는 계기도된다. 아무튼,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도서관도 없는 무인도에, 있는 것이라고는 10종의 책뿐이니까.
- P218

인간의 정신에는 한 가지 이상야릇한 작용이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장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육체와 정신의 두드러진 상위 (相違)다. 육체에는 여러 가지의 한계가 있으나정신에는 한계가 없다. 인간의 육체는 보통 30세쯤을 절정으로차차 내리막길을 걷는 것이지만, 정신은 어떤 연령을 경계로 성장이 그치는 일은 없다. 노쇠(老衰) 때문에 뇌가 쇠퇴하였을 때비로소 정신의 활동도 저하된다.
- P219

훌륭한 독서란 우리를 격려하여 어디까지나 성장시켜주는 것이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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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으로 독서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나 중요하지만, 교양서‘와 문학서와는 그 자세가 달라진다. 교양서‘ 를 읽을 때에는눈을 언제나 매(鷹]처럼 빛내며 금세라도 습격할 수 있는 태세로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시나 소설을 읽을 때에는 이래서는 곤란하다. 그 경우에는, 말하자면 적극적인 수동이라고도 할 만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읽을 때는, 이야기가 마음에 작용하는 대로 맡기고, 또 그에 따라서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내맡겨두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무방비 (無防備)로 작품을 대하는 것이다.
- P173

은유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행간을 읽지 않으면 안된다. - P174

소설은 단숨에 읽는 것이다. 바쁜 사람이 장편 소설을 읽을 때에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될 수 있는 대로 짧은 시간에 읽도록노력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는 될 수 있는 대로 천천히 생각하면서 맛보듯이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읽는다‘ 라기보다는 책의 사건이나 인물에서 무의식의 만족을 얻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겠다.
빨리 읽을 것. 그리고 작품에 몰입하여 읽는 데 열중할 것. 몰입한다는 것은 문학에다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작품이 작용하는 대로 맡기는 것을 말한다.  - P180

소설은 인생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실제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모두 명료하게 이해할 수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과거로서 되돌아보았을 때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독자도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되돌아보았을 때 비로소 사건의 관련과 행동의 질서를 이해하는 것이다.
- P181

전제 군주는 웅변으로 자유를 설파하는 학자보다도 농담을 냅다 하여 인심을 지배하는 술주정꾼 시인을 두려워한다. (E.B.화이트)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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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소설을 쓰는 것은 험준한 산의 암벽을 기어오르고, 길고 격렬한 격투끝에 정상에 오르는 작업이다. 자신에게 이기든지, 아니면 지든지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 같은 내적인 이미지를 염두에두고, 나는 언제나 장편소설을 쓰고 있다.
- P152

말할 것도 없이 언젠가 사람은 패배한다. 육체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쇠잔해간다. 빠르건 늦건 패퇴하고 소멸한다. 육체가시들면 (우선 아마도) 정신도 갈 곳을 잃고 만다. 그와 같은 것은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을 결국 내 활력이 독소에 패배해서 뒤처지고 마는 지점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룰 수 있기를바란다. 그것이 소설가로서 내가 목표하고 있는 것이다.  - P152

내일이 무엇을 가져올 것인가,그것은내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 P162

지브롤터 해협 - P165

거기서부터 미지의 망망대해로들어선다. 그 앞으로 도대체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미지의 생물이 거기에 살고 있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먼 옛날의 선원이 느꼈을 법한 두려움에 숙연해지는 마음이 어렴풋이 몸 안에 느껴진다.
- P165

탈수는 마치 불길한 숙명처럼,어두운 마음을 품은 밤의 여왕처럼 내 뒤를 쫒아왔다. - P166

달리고 있는 동안 몸의 여러 부분이 차례차례 아프기 시작했다. 오른쪽 허벅지에 한동안 통증이 오고, 그것이 오른쪽 무릎으로 옮겨가고, 왼쪽 허벅지로 다시 옮겨가고….… 하는 식으로, 몸의 각 부분이 번갈아가며 들고일어나서 자신들의 통증을 소리높여 호소했다. 비명을 올리고, 불평을 늘어놓고, 사정을 호소하고, 경고를 해댔다.  - P169

왜냐하면 "러너가 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소설가가 되어주세요" 라는 부탁을 받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아닌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주위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구를 향해서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인가?
- P228

구름은 언제나 말이 없다 - P229

군더더기가 없는 아름다운 폼 - P240

가령 몇 살이 되어도 살아 있는 한, 나라고 하는 인간에 대해서 새로운 발견은 있는 것이다. - P246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장거리 러너인 것이다.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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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있는 네아 마크리라는 작은 마을에서는 노인들이 카페 앞 테이블에 앉아 모닝커피를 작은 컵으로 따라 마시면서, 내가 달려 지나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석연치 않은 역사의 한 장면을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 P100

마라톤 마을의 아침 카페에서 나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찬 암스텔 비어를 마신다. 맥주는 물론 맛있다. 그러나 현실의 맥주는 달리면서 절실하게 상상했던 맥주만큼 맛있지는 않다. 제정신을 잃은 인간이 품는 환상만큼 아름다운 것은 현실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 P103

완주하고 나서 조금 지나면, 고통스러웠던 일이나 한심한 생각을 했던 일 따위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다음에는 좀 더 잘 달려야지하고 결의를 굳게 다진다. 아무리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들어도,
결국은 똑같은 일의 반복인 것이다.
그렇지, 어떤 종류의 프로세스는 아무리 애를 써도 변경하는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와 어느 모로나 공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집요한 반복에 의해 자신을 변형시키고(혹은 일그러뜨려서), 그 프로세스를 자신의 인격의 일부로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
- P107

장편소설을 쓴다고 하는 작업은 근본적으로는 육체노동이라고 나는 인식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두뇌 노동이다.
그러나 한 권의 정리된 책을 완성하는 일은 오히려 육체노동에가깝다. 물론 책을 쓰기 위해서 뭔가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리거나빨리 달리거나 높이 뛰거나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세상의 많은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작가의 작업을 조용한 지적 서재 노동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커피 잔을 들어 올릴 정도의 힘만 있으면 소설 같은 건 쓸 수 있는 게 아닌가, 하고, 그러나 실제로 해보면 소설을 쓴다는 것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바로알 수 있다.  - P123

아무튼 여기까지 쉬지 않고 계속 달려온 것은 잘한 일이라고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나 스스로도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 다음 나 자신의 내부에서 나올 소설이어떤 것이 될지 기다리는 그것이 낙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한계를 끌어안은 한 사람의 작가로서, 모순투성이의 불분명한 인생의 길을 더듬어가면서 그래도 아직 그러한 마음을 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역시 하나의 성취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기적‘ 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리고 만약 매일 달리는 것이 그 같은 성취를 조금이라도 보조해주었다고 한다면, 나는 달리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P127

미국의 병원에 가면, 우선 간호사에 의한 예비 진단과 같은 절차가 있어서 맥박을 재는데 언제나 "아, 당신은러너군요" 라는 말을 듣는다. 장거리 주자는 오랜 기간에 걸쳐 모두 비슷한 맥박 수로 되어가는 모양이다. 거리를 달리고 있는 사람이 아마추어냐 프로냐 하는 것은 바로 구별할 수 있다. 헉헉,
하면서 짧은 숨을 가쁘게 쉬고 있는 것은 초보자이고, 조용히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은 베테랑이다. 그들의 심장은 천천히, 생각에 잠기면서 시간을 새겨 나간다. 우리는 거리에서 서로 스치면서 서로의 호흡의 리듬을 들으며, 서로의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마치 작가들이 서로 상대의 어법을 교감하는 것처럼.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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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시스 2 동서문화사 세계문학전집 38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성숙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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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고통스럽던 난해한 읽기의 여정을 거쳐 이 소설의 피날레라 할 수 있는 ‘페넬로페‘를 남겨두고 며칠 다른 책들로 방황했다. 조금 진부한 핑계일 수 있지만 마리온을 향해 가기전 블룸처럼 나름의 시간이 내게도 필요했다. 그런식의 공을 들여서일까 ‘페넬로페‘는 여성의 시각과 감각을 추구한만큼 읽기도 수월했고 흥미로웠다.그녀의 관점에서 블룸에 대해 알게되어 그에 대해서도 좀 더 이해할만한 기회가 된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아서일듯한데, 소설에 등장하는 실제의 장소나 거리,상징물들,그리고 조이스의 여러 사진들이 담겨있어 도움이 되었다. 후반 조이스의 생애와 문학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도 상당히 공부가 됐다.

조이스에 관련된 앙드레 지드와 사뮈엘 베케트 그리고 움베르토 에코의 글도 뒤이어 담겨있어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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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0-13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일랜드에 가서 저 지폐를 보고 싶습니다.. ㅜㅜ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아일랜드 가서 작가들 발자취를 따라가보는 건데. 에잇. 코로나.

미미 2020-10-13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요.ㅋㅋ 최근 읽는 책들 때문에 가보고 싶은 곳만 계속 늘어나네요.

scott 2022-12-16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서 책 이런 사진 삽화 풍부하게 들어 있고 가격도 착해서
좋은 것 같습니다 ^^

미미 2022-12-16 23:13   좋아요 1 | URL
스콧님 덕분에 다시 읽어보네요>.<
네! 삽화 마음에 쏙 들었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