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군도 1 열린책들 세계문학 258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김학수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큐멘터리의 증언들을 글로써 읽고있는 느낌이다.

도스토예프스키.라흐마니노프.톨스토이.푸쉬킨등 위대한 인물들의 나라 러시아에서 어떻게 이런 잔혹한 일들이 있었는지 충격이란 말로도 다 표현이 안될정도다. 지도자들은 비열하고 잔인했고 민중들은 대조적으로 너무나 순박했다.게다가 민중들은 조국의 선의를 믿고 또 믿었다. 차디찬 군도의 발 아래 깔려 짓밟히고있는 와중에도.

내가 일했던 병원은 그 세계에서 나름 고되기로 악명이 높았다. ‘여기서의 1년은 다른 병원의 2년만큼 힘들다‘라는 말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세계대전을 말할때면 우리는 나치의 만행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기에 러시아의 수용소군도와 나치수용소를 연달아 경험한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견딜만 한건은 오히려 후자라는 것.
국가적인 은폐는 이래서 무서운 것이다. 공포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도 그것은 필수요건이다.
수백만의 희생자들을, 그밖의 숨겨진 피해들을 국가적인 대의라는 명분으로 희석시킬 수 있을까?
그러기엔 이들의 증언으로 남은 세세한 사건들이 너무 악랄하고 파괴적이다.
이 기록들을 읽으며 오웰의 소설 1984가 떠오르는건 너무나 당연한 반응일듯 싶다.
아직 내앞에는 5권이 남아있다.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된 거야?」 우리는 숨을 죽이며 물었다(만약에 그가 전기의자에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사형 선고를 받았음에 틀림없었다). 마치 우주의 종말을 고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경리계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5년이야! 5년!」또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 마치 소변이라도 보고 온 것처럼 빨리 돌아왔다. 방 안에 들어서는 사람의 얼굴은 뜻밖에도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석방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어떻게 됐어?」 우리는 희망을 되찾은 기분으로 그를에워쌌다. 그는 웃음을 참으며 손을 내저었다.
「15년이야!」그 대답은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p.41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6-17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17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도대체 이것은 누구의 죄인가? 이들 청년들인가, 아니면 백발의 조국인가? 이러한 현상을 두고, 배신이 생물학적 요인인 것처럼 설명할 수는 없다. 거기에는 분명히 사회학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옛날 속담도 <먹이가 있으면 말도 날뛰지 않는다〉라고 하지 않는가.

자, 한번 상상해 보기 바란다. 버림받은 굶주린 말들이들판에서 정신없이 미쳐 날뛰고 있는 광경을.
- P392

간단한 진리라도 그것을 깨달으려면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이다. 진정 축복을 받아야 할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전쟁에서의 패배인 것이다! 정부의 입장에선 전쟁에 이겨야 하지만 민중의 입장에선 전쟁에 지는 편이 유리하다. 승리를 거두고 나면 또 다른 승리를 바라게 마련이지만,
패전 후에는 자유를 바라게 되고 대개의 경우 그 자유를 획득하게 마련이다. 개개인에게 고난과 빈곤이 필요한 것처럼 민중에겐 패전이 필요하다. 그것은 내면생활의 깊이를 더해 주며 정신적으로는 우리를 보다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준다.
- P406

나폴레옹 전쟁 때 거둔 뽈따바의 승리는 러시아를 위해 불행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 승리는 그 후 2세기 동안에 걸쳐커다란 긴장과 경제 파탄, 자유의 억압을 강요했으며 계속적으로 새로운 전쟁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한편 뽈따바에서 패전한 스웨덴 사람들에겐 그 패배가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호전적 기질을 반성하게 된 스웨덴 사람들은 유럽에서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국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 P407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된 거야?」 우리는 숨을 죽이며 물었다(만약에 그가 전기의자에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사형 선고를 받았음에 틀림없었다). 마치 우주의 종말을 고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경리계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5년이야! 5년!」또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 마치 소변이라도 보고 온 것처럼 빨리 돌아왔다. 방 안에 들어서는 사람의 얼굴은 뜻밖에도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석방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 어떻게 됐어?」 우리는 희망을 되찾은 기분으로 그를에워쌌다. 그는 웃음을 참으며 손을 내저었다.
「15년이야!」그 대답은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었으므로 우리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 P412

모두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그것이 꼭두각시놀음이라는 것은 그들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호송 부대의 일반 병사들이다. 1945년 노보시비르스고 이송 감방에서 호송병이문서를 보고 호명을 하며 죄수들을 인계받고 있었다. XXX!
제58조 1항, 25년. 그러자 옆에 있던 호송대장이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무슨 죈가?」 「아무 죄도 없습니다.」 「거짓말 마.
<아무 죄도 없으면 10년 형>이란 말이야!」 - P437

도대체 어느 쪽이 먼저일까ㅡ닭일까, 아니면 달걀일까? 사람일까, 아니면 체제일까? - P4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스또예프스끼의 『죄와 벌』에서 예심 판사 뽀르피리 뻬뜨로비치는 라스꼴리니꼬프에게 놀랄 만큼 섬세한 지적을 해준다. 즉 당신 같은 지식인들하고 직접 이러한 숨바꼭질을 해본사람만이 그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과 같은 지식인이 상대라면, 나는 직접 그 범죄를 해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 P189

당신네들은 스스로 그것을 해치워 완전한 형식으로 만들어가지고 나한테 가져오니 말입니다. 사실 그렇다! 지식인은체호프 작품에 나오는 <악인>처럼 능수능란하게 거짓말을 할수는 없다. 그는 의무적으로 모든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때문에 그는 죄를 뒤집어쓴다.
- P190

그때로부터 10년이 흐르고 다시 15년이 흘렀다. 나의 청년시절의 무덤은 무성한 풀로 뒤덮여 버렸다. 나는 형기를 마치고도 기약 없는 유형 생활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어디서도 - 수용소의 <문화 교육부>에서도, 지방 도서관에서도,
중소 도시에서도 - 그 어디서도 소비에뜨의 법전이라는 것을 내 눈으로 본 적이 없고, 내 손에 들어 본 적이 없고, 또 살수도, 구할 수도, 심지어 물어볼 수도 없었다!!
- P192

S. P. 멜구노프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있다. 제정 시대의형무소는 행복한 추억이다. 지금도 정치범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때의 형무소를 회상하곤 한다. 33바로 여기에 관념의 변화, 전혀 다른 기준이 있는 것이다.
고골 시대의 농민이 제트기의 속력을 이해할 수 없듯이, 〈군도>의 인육 도살장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신문의 진정한 가능성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 P207

 하마터면 그때 또 한 명의 학교 친구가 나 때문에 형무소에 끌려 들어올 뻔했다. 나는 그가 체포를 면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22년이 지난 지금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내왔다 -<지금까지 출판되어 나온 자네의 작품을 보니, 자네는 인생을 일방적인 각도로 평가하고 있어. 대외적으로 자네는 서독이나 미국과 같은 서방에서 파시스트 반동의 기치가 되고 있으니 말이야….... 나는 아직도 자네가 레닌을 존경하고 사랑하리라고 확신하지만, 그 레닌과 마르크스, 엥겔스는 자네를 가장 준엄한 방법으로 규탄하고 있을 걸세. 바로 이 점을 이해하기 바라네!>나는 이편지를 받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아아, 자네가 그때 체포되지 않은 것이정말 유감이군! 자네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은 셈인가!> - P210

1 나치스의 비밀경찰과 비교할 때 그 시대와 방법이 매우 흡사함을 알 수있다. 나치스의 게슈타포와 MGB를 다 거친 알렉세이 이바노비치 디브니치의 경험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비교가 될 것이다. 러시아 정교회 전도사로서독일에 망명 중이던 그는 독일 내의 러시아 출신 노동자 사이에서 공산주의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게슈타포에 구속되었었고, 소련으로 송환된 후에는 국제 부르주아지와 내통한 죄목으로 MG3에 제포되었다. 그의 결론은 MGB가더 나쁘다는 것이었다. 거기서나 여기서나 고문을 당하기는 매한가지였으나게슈타포는 끝까지 사실을 알고자 했고 혐의가 풀리자 즉시 석방했다. 그런데MGB는 사실을 추구하지도 않았거니와 일단 잡아들인 자를 놓아줄 생각은애초부터 하지도 않았다.
- P225

똘스또이가 권력에 대해서 어떻게 썼는지 기억하는가? 이반 일리치는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죽일 수 있는>권한을 가진 그런 직책에 있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그의손아귀에 들어 있으며,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죄를 뒤집어씌워 잡아들일 수 있는 권력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의 푸른 제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여기에는 아무것도 덧붙일 말이 없다!) 이 권력 의식은 그에게 있어 <근무상의 주요한 흥미와 매력>이었던 것이다(그런데 이반 일리치에게는 <이 권력을 자비롭게 사용할수 있다는 가능성>도 매력이었는데, 이것은 우리의 푸른 제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 P228

그들의 성(姓)을 보면, 마치 그 성에 따라 기관에 고용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 1950년 초 께메로보주 보안부에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었다 - 검찰관 〈뜨루뜨네프(수컷 벌, 무위도식하는 사람)〉, 신문부장 <시꾸르낀 (이기주의자)> 소령, 그 차장 〈발란진(수프 - 수용소에서 나오는것)〉 중령, 신문관 〈스꼬로흐바또프(잽싸게 훔치는 사람)〉, 아니 이 이상 더 어떻게 생각해 낼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 모든사람이 죄다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볼꼬빨로프(늑대 가죽을 벗기는 사람)와 그라비센꼬(약탈자)에 대해서는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로 한다.] 이런 성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으니 과연 이것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할 수있겠는가?
- P238

가령 이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간단할까! 흉악한 일을꾸미는 악한들은 어디엔가 있게 마련인데, 그 악한들만을 골라내서 박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그러나 선과 악의분기선은 어느 누구의 가슴에도 다 가로놓여 있다. 그러니 누가 자기 가슴의 한쪽을 박멸시킬 수 있겠는가?
한 심장이 살아가는 동안 이 선(線)은 때로는 열광적인 악으로 짓눌리기도 하고 때로는 어둠을 제거하는 선(善)에 공간을 내주면서 심장 위에서 이동을 계속한다. 동일한 인간이라도 나이와 상황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곤 한다. 어떨때는 악마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어떨 때는 성인에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름만은 변하지 않고, 우리는 모든 것을 그 이름의 소행으로 돌리고 만다.
- P257

선에서 악까지는 단 한 걸음밖에 안 된다는 속담이 있다.
따라서 악에서 선까지도 마찬가지다.
- P258

물론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인간이 된다는 것은 하나도 신기할 것이 못 된다. 자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선의 증거가 될 수없듯이(그 사람은 참 가족적인 분이야. 악한들일수록 자주이런 말로 정당화된다). 

- P264

그러나 이런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악한 짓을 하기에 앞서 인간은 먼저 그것을 선이라고 믿어야 하고 자기 행위의 합법성을 찾아야 한다.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맥베스」에서는 정당화가 약하다 양심이 그를 괴롭히기때문이다. 그리고 이아고는 어린 양과 다를 것이 없다. 셰익스피어의 악당들의 상상력과 정신력으로는 불과 열 사람 정도의 사람도 제대로 죽일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이데올로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 P266

이데올로기ㅡ 그것은 사악한 일에 그럴듯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악인에게 필요한 장기간에 걸친 강인함을 제공해 준다. 그리고 그 사회적인 이론은 자기와 다른 사람들 앞에서자신의 악행을 은폐하게끔 도와주고, 비난과 저주를 듣는 대신 칭찬과 존경을 듣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종교 재판관은 그리스도교로, 침략자는 조국의 찬양으로, 식민주의자는 문화로, 나치스는 인종으로, 자코뱅파(초기와 후기의)는 다가올세대의 평등과 우의와 행복으로 무장을 했던 것이다.
- P266

뻬뜨로그라뜨와 오데사의 체까 요원들은 그들의 손에 잡힌죄수들을 다 총살하지 않고, 그 일부를 시립 동물원의 먹이로(산 채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중상에 지나지 않는 건지,
그리고 또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몇 사람이나 그렇게 했는지, 그 진상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 사실을 입증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겠다. <푸른 제모>의 관습에 따라 나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 달라고 그들에게 제안하고 싶을 뿐이다. 하긴 그토록 극심한 기근 시대에 동물에게줄 먹이를 어디서 구해 온단 말인가? 노동 계급의 식량에서떼어 온다? 그 인민의 적들은 어차피 죽게 마련인데, 그들의죽음으로 공화국의 동물원 사업을 지원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우리의걸음을 촉진시킬 수도 있지 않은가? 이 합목적성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 P267

인간은 악과 선 사이에서 일생 동안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동요한다. 그러나 악의 한계를 넘어서기 전까지는 선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을 갖는다. 그리고 그가 바라는 곳에 아직도 머물러 있을 수가 있다. 그러나 악행의 밀도, 혹은 그 정도, 혹은권력의 절대성에 의해서 일단 한계를 넘어서기만 하면 그는이미 인류에게서 떠난 거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어쩌면 인류로의 복귀도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P268

5.만약에 레닌그라드 봉쇄 시에 큰집에 있었다면 (식인종)을 만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고기를 먹고 해부학 교실에서 사람의 간을 꺼내다가 팔아먹는 자들을 MGB에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정치범들과 함께 감금하고 있었다.
- P279

그들은 너무나 섬세한 향기를 지닌 때 이른 꽃이었기 때문에 무참하게도 풀 베는 기계에 잘리고 말았던 것이다.
- P287

자만심에 빠져 있던 그는 별장 건축 자재를 제공해 달라는 어느 검사의 청탁을 거절해 버렸다. 사건은 바로여기서 기지개를 켠 후 언덕길 아래로 내달리듯 급속히 굴러가게 되었던 것이다(이것 역시 사건의 발단이 <푸른 제모>의물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례의 하나이다).
- P303

그리고 자기 아내에 대한 연민, 이미 오래전부터 그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그 아내는 이제 열흘마다 한 번씩(더 자주는허락되지 않았다) 그에게 호화로운 차입품 - 하얀 빵과 버터, 붉은 캐비아, 송아지 고기, 철갑상어 등 희귀한 음식 - 을가져왔다. 그는 우리에게 샌드위치와 궐련을 하나씩 나누어주고 나서 자기의 호화로운 식탁 앞에 (그 구수한 향기와 아름다운 빛깔은 늙은 지하당원 파스젠꼬의 푸르죽죽한 감자알과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쭈그리고 앉는다. 그러면 다시금눈물이 갑절이나 쏟아져 내린다. 그는 크게 소리 내어 자기아내의 눈물을 회상한다. 때로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나온 연애편지 때문에, 때로는 외투 주머니에 들어 있는 어떤 여자의팬티(엉겁결에 자동차 속에 벗어 놓고 잊어버린) 때문에, 그리고 그칠 줄 모르는 그의 엽색 행각 때문에 아내는 여러 해를 눈물로 보내야 했다.  - P305

형무소 의사는 신문관과 사형 집행인의 훌륭한 조수이다.
모진 고문 끝에 기절했다가 퍼뜩 정신이 들면 의사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온다. 「아직 더 때려도 됩니다. 맥박은 정상이에요.」 닷새 동안 추운 징벌 감방에서 시달린 차디찬 벌거숭이몸뚱이를 내려다보며 의사는 말한다. 「아직 더 해도 됩니다.」 - P314

어느 누구나 생애 중 한 번은 자기의 운명과 신념과 열정을 판가름하는 결정적인 계기에 봉착하게 마련이다.
- P328

마룻바닥에 외투를 뒤집어쓰고 누웠다.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깨어 고개를 쳐든다.
가늘게 뜬 눈으로 창문을 바라본다.
축포로구나, 다시 눕는다.
다시금 외투 속에 몸을 숨긴다.

그 외투에는 참호의 진흙이 배어 있었고, 모닥불의 재가 묻어 있었고, 독일군의 총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승리는우리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해 봄은 우리들을 위한 것이아니었다.
- P355

조국에게 버림받아, 적들과 동맹군의 눈에도 가장 초라하게 비친 우리 군의 병사들만이 제3제국의 뒷마당에 버려진돼지 먹이보다도 못한 음식물에 손을 뻗었던 것이다. 젊은 영혼은 쉽사리 믿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러시아 병사에 한해서조국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 제58조 1항의 b 때문이다.
전시에 이 조항에 관련되면 총살보다 가벼운 형벌은 없었다!
독일군 총탄에 죽고 싶지 않았던 병사는 포로 생활을 체험한후에 소련군의 총탄에 죽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다른나라의 병사는 적에 의해서만 살해되지만, 우리 나라의 병사는 동포에 의해서도 살해되었다!
- P36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징벌 감방의 길이는 사람의 키만 하고 그 넓이는 세 사람이 누워 자기에도 좁을 정도였다. 그래서 한 사람이 더 들어오면 서로 꼭 붙어서 자야만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내가그 네 번째 사람이 된 것이다. 자정이 넘은 한밤중에 쑤시고들어가니, 잠을 자던 세 사람이 등피(皮) 없는 석유램프 불빛으로 잠결에 나를 보고는 미간을 찡그리며 자리를 내주었다. - P49

그들은 잠이 들었으나 내 머리는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 P49

이러한 넓은 의미의 <해충> 속에는 과연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는지, 지금의 우리로서는 일일이 그것을조사할 수 있는 형편이 못 된다. 왜냐하면 러시아의 국민 구성 성분은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해서 그중에는 고립된 극소수의 불필요한 특수 집단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지금 이미 잊힌 지 오랜 집단이기도 했다. 혁명 전의 지방 자치 회의 의원들은 물론 해충이었다. 협동조합원도해충이었고, 큰 건물의 건물주 역시 해충이었다. 중등학교 교원 중에도 해충이 적지 않았다. 각 교구 평의회는 그야말로해충의 소굴이었다. 해충은 교회 합창단 속에도 많았다. 교회성직자들은 하나같이 해충이었고, 특히 수도사나 수녀들은해충의 대표자 격이었다... - P59

여하튼 숙청의 순번제는 공정했다…. 1920년대에 그들은소속 당과 그 당의 이데올로기를 부인하는 성명서에 서명할것을 권유받았다. 일부는 이를 거부했다. 물론 이들은 맨 먼저숙청되었다. 일부는 이를 수락함으로써 몇 해 동안 더 연명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순번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그들의머리도 어김없이 어깨 위에서 굴러떨어졌던 것이다.
- P70

그들이 처형된 것은 신앙 그 자체 때문이라기보다자기들의 신념을 공공연히 말하고 아이들을 그런 정신으로교육시켰기 때문이라는 편이 옳을는지 모른다. 따냐 홋께비치도 이런 시를 쓰지 않았던가.

네가 기도하는 것은 자유지만오직 하느님 혼자만이 들을 수 있도록 하라.

이 시 때문에 그녀는 10년 형을 받았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인간이 자기의 종교적인 신념을 자기 아이들에게까지 숨겨야한다니! 자녀에 대한 종교 교육은 1920년대에는 제58조 10항,
즉 반혁명 선동죄로 간주되었다! - P72

이 제독(除毒) 작업은 1927년부터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우리 나라 경제의 침체와 실패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프롤레타리아에게 명백히 보여 주었다. 철도 교통 인민 위원회에도 해독 분자가 있었다(그 때문에 기차를 타기 힘들고 물자수송이 원활치 못했다). 모스끄바 수력 발전소에도 해독 분자가있었다(그 때문에 정전이 잦았다). 석유 생산 부문에도 있었다(그 때문에 휘발유가 부족했다). 방직 부문에도 있었다(그때문에 노동자들이 헐벗어야 했다). 석탄 생산 부문에도 해독분자가 무더기로 있었다(그 때문에 추위에 떨어야 했다!), 금속 부문에도, 군수 산업 부문에도, 기계·조선 부문에도, 화학공업 부문에도, 광산 부문에도, 금 및 백금 생산 부문에도, 관개 사업 부문에도, 도처에 방해 분자의 소굴이 높은 종기처럼해독을 퍼뜨리고 있었다!  - P81

반역에 관련된 더욱 중요한 확대 해석은 형법 제19조의 적용, 즉 <의도>의 적용에 있었다. 실제적인 반역 행위는 전혀없었더라도 반역을 <의도> 한 사실이 있다고 신문관이 인정할때는 실제의 반역 행위와 마찬가지로 처벌 대상이 되었다. 물론 제19조는 <의도>에 대한 징벌이 아니라 <준비>에 대한 징벌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변증법적 견지에서 볼 때 <의도>는 곧 준비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준비는 범죄 자체와 마찬가지로(즉 같은 징벌로) 벌할 수가 있다〉(형법), 대체적으로 우리의 형법은 <의도>와 <범죄> 자체를 구분하지 않는다.
여기에 부르주아적 법률에 비해 소련 법률 제도의 <우월성>이 있는 것이다!  - P106

테러 행위란 말은 너무나도 광범위한 뜻으로 인식되었다.
예를 들어 주지사나 총독의 마차 밑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 같은 그런 종류의 테러만이 아니라, 개인적인 원한으로 뺨을 한대 갈겼더라도 상대방이 당원이거나 공산 청년 동맹원이거나민병대의 열성 당원인 경우엔 그것이 테러 행위로 간주되는것이다.  - P110

체포 선풍은 전염병처럼 거리거리를 휩쓸었다. 사람들은서로 전염병 균을 옮겨 주는 줄 모르면서 악수를 하고 숨을쉬고 물건을 주고받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들은 거리에서만나 악수를 하고 얼굴을 맞대고 숨을 쉼으로써 피할 길 없는체포의 병균을 서로 옮기고 있었다. 만약에 오늘 내가 거리에서 만나 악수한 그 사람이, 내일 체포되어 상수도 수원지에독약을 집어넣을 것을 모의했다고 자백한다면, 나 역시 체포를 모면할 수 없는 것이다.
- P124

아이를 여섯이나 거느린 어느 농부의 이야기는 좀 색다르다. 그는 여섯 개의 입을 위해 집단 농장 일에 자기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무언가 소득이 있겠지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그에겐 정말 훈장이 내려졌다. 회의를 소집하고그에게 훈장을 수여하고는 축하 연설들을 했다. 답사 차례가되자 농부는 약간 감상적인 기분에 빠져 이렇게 말했다. 아아, 이 훈장 대신 밀가루나 한 부대 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는 안 될까요?) 장내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농부는 자기의 여섯 개의 입과 함께 유형지로 추방되고 말았다.
- P125

그 반병신 놈들을 또다시 모조리 잡아 쓸어 넣어라! 새로운죄가 있건 없건 상관할 것 없다! 기계가 토해 낸 폐기물을 다시 그 기계에 가득 쑤셔 넣는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손실만을 초래하는 짓임이 명백했다. 그런데도 스딸린은 그렇게 명령했다. 이것은 역사적 인물이 역사적 필연성앞에서 변덕을 부린 본보기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겨우 새 거주지와 새 가족에 정을 붙이기 시작한 그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돌아왔을때와 마찬가지로 허약하고 지친 표정으로 붙잡혀 갔다. 잡혀가는 사람들은 이미 자기가 걸어야 할 고난의 길을 잘 알고 있었다 - 이 십자가의 길을, 그들은 <무엇 때문에?>라고 묻지도 않았고 가족에게 <곧 돌아올 거야>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묵묵히 남루한 옷을 골라 입고 수용소에서 쓰던 담배쌈지에담배를 가득 채운 다음 조서에 서명하러 갔다. (대화는 간단했다. 「징역살이를 했소?」「그렇소.」「 (10년만 더 받으시오.)」 - P145

당신이 스스로 만족스러운 상태에서 원자핵의 안전한 비밀을 연구하고, 사르트르에 대한 하이데거의 영향을 고찰하고,
피카소의 복사판 그림을 수집하고, 안락한 침대차로 휴양지에 가고, 모스끄바 근교에 별장을 짓고 있을 때에도, 죄수 호송 차량들은 쉴 새 없이 거리를 질주하고, 기관원들은 이 집저 집의 문을 두드리며 초인종을 눌러 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나는 이 글로 입증했다고 생각한다 - 기관원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밥값을 못 한 적이 없다는 것을.
- P14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많은 생물이 우주에 살고 있지만, 이 우주에는 생물의 수효만큼의 중심이 있다. 우리 모두도 각자가 우주의 중심이다.
그러나 <당신은 체포되었습니다〉라고 속삭이는 음성을 들었을 때, 당신의 그 우주는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 P24

사실 야간 체포는 우리 나라에서 습관이 되어 왔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크나큰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집 안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첫 번째 노크 소리를 듣자마자 공포에 질리고 만다. 체포되는 사람들은 따스한 잠자리에서 강제로 끌려 나온다. 그는 잠에 취해 있어 무력하고 분별력이 없다. 야간 체포를 할 때 요원들은 힘에 있어서도 우세하다. 바지도 채 입지못한 사람에게 몇 사람의 무장한 요원들이 들이닥치기 때문이다. - P29

체포라는 단 한 가지의 의무에만 종사하는 요원들에게체포되는 사람들의 공포란 하도 많이 보아서 싫증이 날 정도일 것이다. 체포 작전에 대한 그들의 지식은 매우 광범위하다.
그들은 수많은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다. 따라서 이론 따위는없다고 단순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체포학 — 이것은 일반적인 형무소 연구 과정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주요한사회 이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체포는 그 특징에 따라 여러가지로 분류된다. 야간 체포, 주간 체포, 가택 체포, 직장 체포,
여행 중 체포, 초범 체포, 재범 체포, 개인 체포, 집단 체포 등등. 체포는 또한 긴급함의 등급에 따라 구별되기도 하고, 예상되는 저항의 정도에 따라 구별되기도 한다(그러나 지금까지있었던 수천만의 경우를 보아도 저항이 예상된 적은 한 번도없었다).  - P29

그들은 곧장 루비얀까로 마차를 몰아 높은 담장의 검은 아가리 속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 P31

갓 체포된 사람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상념들이 배회할까! 아마 그것만으로도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으리라. - P39

세 명의 젊은 요원들이 그녀의 침대와 속옷이 든 장롱을 뒤졌으나 그녀는 태연자약하게 서 있었다. 아무것도 없고 또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은 그녀의 일기에 손을 댔다. 자기 어머니에게조차 보일 수 없었던 그 일기를 말이다. 그리고 원수와 다름없는 낯선 젊은이들이 그녀의 일기장을 읽어 내려갔을 때 그녀의 놀라움은 형용키 어려웠다. 창살과 지하실이 있는 루비얀까도 그녀를 그렇게까지 놀라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개인적인 감정들과 애착이체포에 의해서 타격을 입을 때 야기되는 그 공포는, 형무소나정치 이념의 공포보다 훨씬 더 강할 수도 있다. 압제에 대하여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압제자보다약한 입장에 서게 마련이다.
- P39

"저항! 당신들은 저항을 해야 했단 말이오! "무사히 체포를면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형무소에서 고생한 사람들을 보고이렇게 나무란다.
그렇다. 저항은 체포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되지 않았다.
- P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