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영혼을 믿습니까? 영혼은 적어도 이 순간, 우리가 앉아서 말하고 있는 이 공원에서, 내가 믿는 몇 안 되는 것 중 하납니다, 내가 말했다. 말하자면 이 모든 걸 내게 불러일으킨 건 내 영혼이었습니다, 그게 정확히 내 영혼인지 확실하진 않아요, 어쩌면 내 무의식인지도 모르죠. 날 여기로 데려온 게 나의 무의식이었으니까요. 잠깐만요, 로토 가게 절름발이가 말했다. 무의식이라고요?, 무얼 말씀하시려는 겁니까?,
무의식은 금세기 초 빈 부르주아의 산물입니다, 우리는 여기 포르투갈에있고 당신은 이탈리아 사람이며, 우리는 남쪽, 그리스-로마문명의 산물입니다, 우린 중부 유럽과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아무렴요, 우리에게는 영혼이 있어요. 맞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도 무의식이 있어요, 말하자면 바로 지금 나에게 무의식이 있다는 겁니다, 누구나 무의식에 사로잡히지요, 질병 같은겁니다, 내 몸에 무의식의 바이러스가 침투했어요, 아시겠죠. - P21
이름이 뭐였어요?, 묘지 관리인이 말했다. 타데우스, 내가 디답했다. 타데우스 바츨라프입니다. 어느 쪽 이름이죠?, 묘지관리인이 말했다. 부모가 폴란드계였습니다, 내가 대답했다하지만 이 친구는 폴란드인이 아니었어요, 완전히 포르투스사람이었지요, 포르투갈 이름을 가명으로 쓰기도 했어요. 그런데 생전에는 무얼 했습니까?, 묘지 관리인이 물었다. 글쎄요, 내가 말했다, 일을 했죠, 그러니까 정확히 작가였습니다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얘기들을 썼거든요, 아니, 아름답다는 말은 좀 그렇고, 그 친구가 쓴 얘기들은 비통한 것들이었어요, 그 친구 자신의 삶이 순탄치 않고 비통했으니까요. - P34
손목에서 맥박이 뛰는 느낌이 들었다. 묘비가 막 세워진, 검소한 무덤이었다. 그는 폴란드 이름으로 거기 있었다. 이름 위에는 내가 아는 사진이 있었다. 전신이 다 나온 사진에서 그는 소매를 말아올린 셔츠를 입고 보트에 기대 서 있었다. 그의 뒤로는 바다가 보였다. 나는 그 사진을 천구백육십오년에 찍었다. 구월이었고, 카파리카에 있었다. 우리는 행복했다. 그는 해외 언론의 압력 덕분에 일주일 전에 감옥에서 나온 터였다. 프랑스 어느 일간지는 이렇게 썼다. "살라자르 19 정부는 작가들을 석방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거기 있었다. 보트에 기대어, 프랑스 신문을 손에 쥐고서. 나는 신문의 이름을 알아볼 수 있는지 보려고 가까이 다가섰다. 하지만 알아볼 수 없었다. 초점이 흐렸다. 다른 시간이야,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 모든 걸 삼켜버렸어. 그러고 나서 말했다. 이봐, 타데우스, 나야, 내가 자넬 찾아왔네. - P35
지금은 문학얘기를 하는 게 좋지 않겠어?, 그게 더 우아하지 않을까? 그러지 뭐, 내가 대답했다, 문학 얘기를 하자고, 요즘 무슨 글을쓰나? 운문 단편소설인데, 그가 말했다, 주교와 수녀의 연애얘기야, 십칠세기 포르투갈에서 전개되지, 음울하지, 좀 몽롱하기도 하고, 실의의 메타포를 깔고 있어, 어떻게 생각해? 모르겠는데, 내가 말했다. 자네 얘기에서 그들이 사하블류를 먹나?, 딱 보기에 사하블류를 전제로 하는 얘기 같아서 말이야. 어쨌든, 건강을 위해서, 타데우스가 잔을 들며 말했다. 자넨영혼이 있어, 이 소심한 친구야, 난 육체만 있고, 그것도 잠시후면 사라지지만 말이야. 이젠 영혼도 더 없어, 내가 대답했다, 이젠 무의식이 있지, 무의식의 바이러스에 걸렸어, 내가지금 자네 집에 있는 것도 그 때문이야, 자네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지. 그렇다면, 무의식을 위해서, 타데우스가 잔들을 다시 채우면서 말했다, - P39
우리는 식당 앞에 도착해 있었다. 카시미루 씨는 거대한배에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문설주에 기대 있었다. 안녕하세요, 카시미루 씨, 타데우스가 정중하게 인사했다, 놀라게 해드릴 게 있어요, 이 사람을 알아보시겠어요?, 기억 안 나세요, 정말?, 어라, 이런 혹서의 날씨에 진공에서 돌아온24 오랜 벗인데, 내가 완전히 끝장나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날 만나러 왔거든요. - P42
이 요리 이름이 뭔지 알아요, 카시미라 부인?, 물질문화의 일류 강의라고 하는겁니다, 나로 말하자면 늘 상상보다는 물질을 선호했지요, 달리 말하면 물질로 상상에 활기를 넣어주는 걸 좋아했다는 말입니다. 상상은 조심해서 다뤄야 해요, 집단상상도 그렇지요,
누군가가 융에게 말했어야 했어요, 상상 이전에 밥이 있다고요. 타데우스 씨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카시미루 씨의 부인이 말했다, 저는 손님들처럼 공부를 하지못해서요, 시골에서 자라서 초등학교만 겨우 마쳤거든요. 아주 단순한 겁니다, 카시미라 부인, 타데우스가 말했다, 저는제가 전적으로 변증법 이론가가 아니라 바로 유물론자라는걸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와 구별되는것이죠, 사실 저는 변증법적 유물론자가 아닙니다. 손님은 분명히 변증법적이세요, 카시미루 씨의 부인이 수줍게 말했다. 손님이 처음 오신 이래로 언제나 그러셨어요. 정말 훌륭해요, 타데우스가 손으로 무릎을 치며 말했다, 카시미라 부인은 헤겐구스를 한 잔 더 드실 자격이 있어요! - P46
영혼을 치료한다는 약은 다 쓰레기야, 타데우스가 말했다, 영혼은 배를 치료하면서 치료되는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말했다, 그런 확신이 있으니 자네는 좋겠구먼, 난 그런 확신이 없어. - P50
그러자 그 겨울날 오후마다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넷이서 대화를 나누며, 상징들에 대해 연구하고, 해석하고, 열광하던 시절이. 이제 다시 그곳에 왔지만 모든 것이 달랐다, 그림만이 그대로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림은 그대로일까 아니면 그마저도 변했을까? 내 눈이 같은 식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그림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할 수는 없는 걸까? 고미술박물관 바텐더가 돌아왔을 때 나는 이런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 P70
저는 이런 크기로 모사돠 보스 그림을 본 적이 없어요, 내가 설명했다, 기괴하군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복제화가가 대답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말이죠, 내가 말했다, 그냥 호기심인데, 이해가 안됩니다, 이런 걸 왜 만들죠?, 아무 의미도 없잖아요. 복제화가는 붓을 놓고 수건으로 손을 씻었다. 삶이란 게 말이죠, 그가말했다, 이상하기도 하고 또 살다보면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답니다, 더욱이 이 그림은 자체로도 이상하니 이상한 것이 일어나게 만드는 겁니다, - P72
상상 속에서 이런 뒤집힌 것들을 주입한 것은 악마였어요, 보스는 성인의 영혼 속에서 풀려나고 있던 유혹을 그린 겁니다, 망상을 그린 것이죠. 그렇지만 과거에 사람들은 이 그림에 신비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복제화가가 말했다, 수많은 병자들이 기적이 일어나 병이 낫기를 기다리며 그림 앞에 길게줄지어 서 있었지요. 복제화가는 내 얼굴에서 당혹감을 읽고이렇게 물었다. 모르셨어요? 몰랐어요, 내가 말했다, 진짜 몰랐어요.
그렇군요, 그가 말했다, 이 그림은 리스본에 있는 성안토니우스 수도원이 운영하는 병원에 걸려 있었어요, 피부병 환자들을 집중 치료하는 병원이었지요, 환자들은 대부분성병환자들이었는데, 일종의 전염성 단독丹毒이었지요, 당시성 안토니우스의 끔찍한 불이라고 불렀는데, 지금도 시골에서는 그렇게 부른답니다, 주기적으로 재발하고, 흉측한 수포를 동반하지요, 현대에 와서 더 과학적인 이름을 갖게 됐는데, 바이러스예요, 대상포진이라고 하지요. 내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 P76
그 바이러스 얘기 좀 해주세요, 내가 말했다, 아시는 대로 말입니다. 정말 이상한 바이러스지요, 복제화가가 말했다, 유충 상태로 우리 몸속에 도사리는 것 같아요, 그러다 저항력이 약해지면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일종의 독성을 퍼뜨리다가 잠복기에 들어가 다음 시기까지 숨어 있는 겁니다, 주기적이란 말이죠, 한 가지 말씀드릴까요, 저는 수포가 어쩌면 일종의 양심의 가책이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 안에 잠들어 있다. 가, 어느 날 깨어나서 우릴 공격하거든요, 그러다 다시 잠에들죠, 우리가 눌러버리기 때문인데, 그래도 언제나 우리 안에있어요, 양심의 가책을 치료할 방법은 없는 것이죠. - P77
이야기 장사꾼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팔을 들어 연극적인동작을 반복했다. 달을 붙잡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그래서요?, 내가 물었다. 그래서, 그가 말했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날 찾아오는 이야기들을 글로 써야겠다고, 그렇게 해서 열 개의 이야기를 썼지요, 비극적인 것, 희극적인 것, 희비극적인 것, 극적인 것, 감성적인 것, 역설적인 것, 냉소적인 것, 풍자적인 것, 환상적인 것, 현실적인 것, 이렇게 말입니다. 그리고 종이 뭉치를 들고 출판사에 갔어요. - P105
당신한테는 제가 필요 없어요, 내가 말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세상 전체가 당신을 찬미해요, 제가 오히려 당신을 필요로 했어요, 그런데 이젠 그만둬야 할 때가 왔어요. 그게 다예요. 나와 함께한 것이 편하지 않았나요?, 그가 물었다. 아니요, 내가 대답했다. 대단히 중요했어요, 하지만 불안하게 했지요, 말하자면 언제나 날 가만두지 않았다는얘깁니다. 그랬겠지요, 그가 말했다, 나와 관계된 건 다 그렇더군요. 하지만 말예요, 문학이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불안하게 하는 것 말입니다, 의식을평온하게 하는 문학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동의합니다. 내가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점도 있어요. 저도 나름대로는 이미 꽤나 불안정합니다, 당신의 불안정이 내 불안정에 더해서고뇌로 이어진 것입니다. 평화로운 행진보다는 고뇌가 좋습니다, 그가 확신을 표명했다, 두 가지 중에서 선택하라면 단연 고뇌지요. - P112
아마 난 좀 겁쟁이였나봐요,알아들어요?,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바로 겁에서 우리시대의 가장 용기 있는 문학이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예를들어 독일어로 쓴 체코 작가를 생각해보세요, 당장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데, 정말로 용기 있는 글을 썼잖습니까? 카프카, 내가 말했다, 이름이 카프카지요. 그 사람이에요, 그가 말했다, 어쨌든 그 사람도 좀 겁쟁이지요. 나의 손님은 포도주를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 사람 일기를 보면 겁이 많은구석이 있어요,
그런데 무슨 용기로 그런 놀라운 책을 썼을까요?, 죄에 대한 책 말입니다. 소송이요?, 내가 물었다, 『소송일 겁니다. 그래요. 맞아요, 그가 말했다. 우리 시대에 가장 용기 있는 책입니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죄가 있다고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에요. 무엇에 대한 죄책감일까요?, 내가 물었다. 뭐라니요?, 그가 물었다, 태어난 것이 곧 죄겠지요.. 그후에 일어나는 것들도 죄고, 우리 모두가 죄를 짓고 있어요.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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