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란 크게 두 가지에서 온다. 먹고사는 것과 믿고 사는 것. 다시 말해 경제와 종교이다. 결국 인간은 가장 눈에 보이는 문제와 가장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로 싸우는 셈이다.-손석희


오바마 대통령이 내한 했을 때 그가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었는데 아무도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이어지다가 보다못한 중국인 기자가 대신 능숙하게 질문했던 망신스러운 사건이 있었다.(그렇다 이건 사건이다.) 설마 영어가 안되어 벙어리가 된 것은 아닐테고(요즘은 기자들도 스팩이 중요하다고 하니)아마도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문화적 특성과 미국과의 관계라던지 국제적인 안목에서 바닥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겠나 싶다. 오바마에게 국내정치를 질문할 수는 없었을 테니까. 혹은 받아적는 것이 기자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무튼 공허한 스팩은 이래서 무섭다. 


수습을 거치고 나면 '저 사람이 나보다 선배인데, 이렇게 묻고 따지는 건 실례 아닌가? 라고 생각하게 돼요. 상명하복 시스템에 길드느라 나이조차 거슬러요. 몇살 연상의 후배가 있었는데 제가 존댓말을 썼어요. 지시를 할 때도요. 그런데 선배들이 혼내더라고요. 왜 존댓말을 쓰느냐고요. 그런 식의 강압적인 문화가 가장 심각한 것 같고, 또 하나 문제는 일을 어깨너머로 배워야 한다는 점이에요. 어깨너머로 배우다보니까 이게 맞는 건지 기준점이 없어요. p.215 <권력과 언론> 


카네기 인간관계론에는 좋은 관계를 위해서 종교문제나 민감한 사회적 이슈는 피하는 것이 낫다는 대목이 나온다. 좋은 관계라는 것이 과연 서로에게 오로지 기분 좋은 것만을 주고 받는 것이라면 도대체 사회적 문제에 관해 언제 누구와 대화하고 관심을 끌어모을 것인가. 요즘은 중. 고등학교에서도 토론학습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주입식 교육의 산물인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선생님의 이야기에 조용히 경청하는 게 학생의 도리였다. 어떤 선생님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집중하지 않는다며 한참동안 앞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 벌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질문을 하라고 하면 대부분 꿀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튀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문화는 검은 옷을 즐겨입는 한국인들의 특징을 봐도 알 수 있다. 페인트 가게에는 놀랍게도 모든 색이 비치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 튀지 않는 한정된 색깔들만 찾는 탓에 조금 색다른 색은 선택지에서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이다. 


언론이 끈질기게 쿠르드족의 비극을 보도하자, 부시 미국 대통령은 마지못해 쿠르드족을 구하기로 결정했어. 마침내 1992년 4월 16일, 부시 대통령은 특별 성명을 발표하고 인도적인 목적으로 미군을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직접 투입해서 이라크군의 접근을 막고 난민촌을 만들어 쿠르드족을 돕겠다고 발표했지.p.150


튀지않는 것. 나서지 않는 것과 토론하지 않는 문화는 민감한 문제에 관한 무관심과도 묘하게 버무려져 오바마 기자회견이라는 참극을 완성한 것은 아닐까. 나도 주입식 교육의 산물이니 내세울 건 없다. 최근까지 중동이나 아랍국가에 대해 무지했으니까. 아랍국가라면 일단 911부터 떠올라 테러리즘을 연상시켰고 이런 막연한 두려움은 아랍인들에 대한 역시 막연한 공포심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정보가 막연해서 더 두려운 것은 아닐까? 등산가들은 낯선 상대를 만나면 서슴없이 인사를 건내기도 한다. 낯섦과 익명은 두려움이니까. 서로간의 서먹함을 없애려 더 위쪽은 오르기가 어찌하다는 둥 정보를 주기도 하고 힘내시라고 응원하기도 하는 것이다. 국제이슈에서도 무관심은 독이되고 관심은 때로 기적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전쟁 체제는 우리의 삶을 파고들어,인간관계에서부터 구조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다수는 이 체제를 기꺼이 지지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지는 근본적 신뢰에서 비롯하는 것이 아니라면, 두려움에서 비롯한다. 이때 두려움은 가능한 한 특정 엘리트가 통제하는 사회 단위 바깥에서 다가올 때 효과적이다. P.42 <성차별주의는 전쟁을 불러온다>


난민을 두려워하는 난민공포도 같은 맥락이다.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렵고 무지하기 때문에 더욱 차별하는 것이다. 차도르로 온 몸을 가린 여인의 모습을 보는 우리와 나시에 반바지를 입은 우리를 보는 그들은 서로간의 정보가 없기에 더 낯설다. 그래서 더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며 그동안 얼마나 무지했는지,정보부족이었는지 깨달았고 보이는 것과 달리 그들도 그저 우리처럼 살아가기 위해 매일 투쟁하고 분투하고 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까.


국제사회가 진작에 러시아와 체첸 전쟁을 중재했다면 시리아 내전에 체첸 전사들이 괴물처럼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분노와 원망으로 망가졌고 세계는 그들을 내버려 둔 거지. 이렇게 한 지역의 분쟁은 전염병처럼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간단다.그래서 지구 어느 편이든 전쟁이 나면 다른 나라들도 관심을 가져야 해. 언제 어디로 불똥이 튈지 모르기 때문이야. p.124


20년 동안 중동과 아프리카 등 분쟁 국가들을 취재하며 이들 나라의 아픔과 비극을 다큐멘터리로, 기사로 실어나른 김영미PD는 이런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실천한 언론인이다.

표지부터 가슴이 저릿한 이 책은 폐허가 되어 앙상하게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계단을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나란히 올라가는 모습으로 그 취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전쟁터가 된 땅에서도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논다. 아이들이니까. 이런 아이들의 손에 총을 쥐어주는 것은 그들이 싸우고 있는 상대들만이 아닌 이웃나라들의 무관심이다. 무거운 소재에도 불구하고 가독성 높은 글과 정보로 다 읽은 후에는' 테러'를 연상하게 했던 이들 국가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테러리스트'를 명명하는 것이 누구인지, 그 이면에는 어떤 이해관계가 얽키고 설켜 있는지 이 책을 통해 기본적인 전.후관계를 알 수 있다. 올 해 읽은 논픽션 중 최고! 네 번은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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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9-07 15:06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 리뷰 넘 멋있다요. 찌잉~~~가슴을 울렸어요. 암요, 폐허 속에서도 아이들은 놀지요. 그 손에 흙과 장난감을 쥐어줘야죠. 아직도 책더미 아래 묻혀 있는 이 책을 이제는 끄집어내야겠네요. ^^

미미 2021-09-07 15:15   좋아요 6 | URL
전쟁을 대물림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고 걱정입니다. 틈나는대로 표시한 곳 위주라도 다시 보려구요~♡ 훌륭한 책이예요. 어서 파서 꺼내주셔요😍

독서괭 2021-09-07 15:19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와 멋진 리뷰 감사해요. 이 책 표지 사진을 자세히 안 봤는데 미미님 글 보고 들여다보니 마음이 짠하네요. 저도 꼭 읽어보겠습니다!

미미 2021-09-07 15:38   좋아요 6 | URL
부족한 글에 감사해요~♡ 괭님도 분명 좋아하실 거란 생각이 들어요. 훨씬 이곳들이 가깝게 느껴지고 생각할 꺼리도 많이 던져주더라구요😊

새파랑 2021-09-07 16:1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3등~!! 네번을 우셨다니 저도 꼭 읽어봐야 겠네요. 이러다 책폭발 할거같지만😅 우리나라가 토론문화에는 익숙하지 않은것 같아요. 그래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구요. 그렇게 하면서 점점 사회 문제에 관심이 늘어날거라 생각합니다 ^^
미미님 밑줄보니 저도 모르는게 많아서 공부를 해야할거 같아요. 아는게 있어야 토론도 가능하니까 😆

미미 2021-09-07 16:58   좋아요 6 | URL
대학 때 처음 토론이란걸 해보고 얼마나 좋았던지 아직까지 당시 첫 토론 내용이 상당히 기억나요. 네 ~♡ 계속 좋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고 감동도 있으실거예요😉👍

페넬로페 2021-09-07 16:2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튀지 않고 나서지 않는 문화가 만연되어 있다고 해도 기자들의 저 행태는 정말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또 기사엔 우리 국민의 문제점을 마구 휘갈겨 쓰지요.
이 책에 대한 전방위적인 주제의 리뷰, 넘, 좋아요. 세계의 분쟁지역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여러가지 생각할 문제들을 주어 이 책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테러인지 방어인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고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미미 2021-09-07 16:59   좋아요 6 | URL
영영 이 책을 몰랐다면 얼마나 무지한 채로 살았을지 암담합니다. 관련기사들 찾아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정보에 감탄하며 읽었어요~♡♡♡♡♡
이 귀한 책 알게 해주신 페넬로페님 감사해요.🙆‍♀️

mini74 2021-09-07 17:54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조용히 무조건 눈에 띄지 말라고 은연중에 배웠던거 같아요. 그런데 또 우리 부모세대 할머니세대는 그럴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일제강점기 빨갱이라는 무서운 단어. 어느 순간 끌려가는 이들. 독재와 억압속에서 자식을 잃지 않우려는 가르침 ㅠㅠ 에 일제의 망령이 남아 있는 교육현실 ㅠㅠ 미미님이 네 번이나 우셨다니 ㅠㅠ 이 책은 무조건 봐야할 책 ! *^^* 저 어릴땐 울면 엄마가 삶은 달걀 줬던 기억나요. 울면 배 꺼진다고 ㅎㅎㅎ미미님 저녁 맛있게 많이 드세요 *^^

미미 2021-09-07 18:02   좋아요 6 | URL
그러게 말이예요.그리고 모르는게 약이다.와 같은 말들도 만들어 낸 주체의 필요에 따라 합리화 과정에 힘을 실어줬다 보고요 의문을 품지않고 세대로 이어지며 고정관념에 한몫 단단히 했죠. 그만큼 의심을 가지고 배우고 깨우쳐 가는 과정이 늘 중요한것 같아요. 사실 아는 것은힘이니까요~♡🤭✊ 미니님도 저녁맛있게 드시고 즐거운저녁시간 보내세요~🙆‍♀️

붕붕툐툐 2021-09-07 23: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담아놓은 책인데, 미미님 읽고 이렇게 극찬하시니 저도 얼른 읽어야겠다는 생각만-요즘 독서 슬럼프라-생각은 아주 강하게 드네요~ 제가 읽고 눈물 흘리는 포인트가 같았음 좋겠어요. 읽고 같이 대화도 해보고 싶고요~♡♡

미미 2021-09-07 23:55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을 선두로 읽으신 플친님들이 다 좋다하셨으니 툐툐님도 분명 이 책 감동적이실거예요. 제 생각에는 선생님이시라 저보다 몇 번 더 눈물흐르실수도 있고요😉 같이 이 책 얘기할 날 기다릴께요♡♡♡
편안한 밤 되세요🙋‍♀️

2021-10-08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0-08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10-08 16:0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당선 축하 1등~!!😆

미미 2021-10-08 16:05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 새파랑님ㅋㅋ😍

mini74 2021-10-08 16: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제가 1등하고 싶었는데 !! ㅎㅎ 축하드려요 미미님 *^^*

미미 2021-10-08 16:27   좋아요 3 | URL
ㅎㅎ감사해요 미니님~😍😆

서니데이 2021-10-08 18: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미미 2021-10-08 18:50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서니데이님! 불금 즐겁게 보내세용😍🙋‍♀️

독서괭 2021-10-08 1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역시 멋진 리뷰가 당선됐네요. 축하드립니다~^^

미미 2021-10-08 20:04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ㅎㅎ괭님도 당선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0-08 1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

미미 2021-10-08 20:04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그레이스님💕🙋‍♀️

모나리자 2021-10-08 22: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미미님~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미미 2021-10-08 22:58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모나리자님~💝 굿밤되시고 유쾌한 주말되시길요~🙆‍♀️

페넬로페 2021-10-09 0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언제나 좋은 책은 정답인것 같아요.

미미 2021-10-09 08:37   좋아요 1 | URL
옳습니다!!!!ㅎㅎ이 영광은 페넬로페님에게 ~🙆‍♀️💓
 


직업이 되어 오래 마주하면 뭐든 무덤덤해진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말라는 말도 있다. 더군다나 재난에 관한 일이 직업이라서 재난에 무덤덤해지면 어떻게 될까.


p.12 요나에게 어떤 지명들은 재난과 동의어였다. 뉴올리언스에서는 허리케인의 흔적을 볼 수 있고, 뉴질랜드에서는 도시를 폭삭 무너뜨린 대지진을 훔쳐볼 수 있고, 체르노빌에서는 핵 누출로생긴 유령 마을과 낙진으로 생긴 붉은 숲을, 브라질의 빈민가에서는 경제 재앙의 현실을, 스리랑카나 일본, 푸껫에서는 쓰나미의 위력을, 파키스탄에서는 대홍수를 경험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재난이 없는 도시는 없었다. 재난은 우울증 같은 거라 어디에든 잠재했다. 


어쩌다보니 다양한 아르바이트와 직업을 경험한 나는 성형외과에서 한동안 일을 했었다. 처음 일하던 병원에서는 시술에 관한 기사도 직접 쓰고 그걸 보고 전화한 사람들에게 전화상담과 내원을 유도하는 것도 주로 내몫이었다. 혼자서 하루에 300통 넘는 전화를 받아내야 할 때도 있었다. 귀에서 피가 난다는 농담에 누구보다 웃음이 터지는건 경험에서 나오는 공감탓이리라.

한번은 어떤 남자가 사각턱수술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며 전화했다. 이미 수백통의 전화를 받고 퇴근이 임박한 시간이라 지쳐있던 나는 그 사람이 원하는만큼 다정하고 섬세한 답변을 주지 못했던것 같다. 느닷없이(나에겐) 화를 내면서 그 사람은 내게 악담을 퍼붓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 식의 막말을 들으면 마음이 상하기 마련이건만 도리어 정신이 버쩍 든 나는 그 사람에게 미안했다. 종일 힘들었던 탓에 그런 피곤과 짜증이 전달된 것 같다고, 제가 자세히 설명을 다시 해드리겠다고 전화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수도 없었다.


p.15 "애가 아프다고요. 병원에 입원했어요. 이렇게 되면 인지상정으로라도 취소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원하시면 취소는 가능해요." "환불은 안 되고. 그렇죠?" "잘 알고 계시네요." "당신 이름이 뭐야?" "고객님" "이름이 뭐냐고? 당신 말하는 싹퉁머리가 기분 나빠서 못참겠어.이름 말해." "고요나입니다."


재난 지역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회사 '정글'에서 여행지 코스 프로그래밍을 담당하는 고요나. 언젠가부터 회사에서의 입지가 불안하게 느껴지고 자신이 결국 '퇴출'을 의미하는 옐로카드를 받은 상황은 아닐지 의심하게 된다. 상사의 갑작스러운 추행과 희롱에 더욱 그런 의구심은 힘을 얻고 비슷한 일을 겪은 회사동료들이 연대할 것을 제의하지만 자신은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엮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되려 판매상품인 한 곳에 휴식차 다녀오라는 제의를 받는다. 그리고 요나는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에 휘말린다. 


구매한 책이 이미 너무 많아 자제하고 있을 때 페넬로페님의 리뷰를 보고 윤고은 작가의 이 책이 읽고 싶어 도서관에서 빌리려했다. 국내에서도 상을 받았다는데 거기 더해 영국의 대거상(중 번역추리소설상)을 수상해 인기가 높아졌는지 예약3순위가 되어 거의 한 달을 기다려 받았다. 재난 지역을 여행한다는 독특한 소재의 이 작품에는 커다란 싱크홀이 있는 마을이 등장하는데 싱크홀은 자연 발생적인 경우와 난개발로 인한 인재의 결과등 세계 곳곳에 발생하는 지반침하 현상을 일컫는다. 


p.124 싱크홀은 왕복 5차선 도로도 5분 안에 먹어 치울 수 있다. 입이 큰 뱀이 집채만 한 개구리를 꿀꺽 삼키듯, 두 개의 구멍은 어느 마을의 소박한 운동회를 집어삼킬 수 있다. 시간은 이제 수챗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 하수처럼 그 일을 향해 빨려 들어갈 것이다. 이미 그 소용돌이가 시작되었다. 


리뷰를 읽은지도 오래되어 어떤 내용인지 거의 잊을 무렵이라 무심코 펼쳤던 나는. 몇 시간만에 이 작품을 뚝딱 다 읽어버렸다. 100페이지 즈음 다가가며 스릴러로 전환되었던 반전이 주요했다. 사람은 대부분 직접 겪지 않은 일에 온전히 공감하기 힘들다. 그것이 직업에 관련되어 무수히 반복되는 걸 지켜보는 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롯히 내 일이 될 때라야 그 의미를 피부로, 가슴으로,온 정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싱크홀이라는 큰 구멍이 상징하는 아득함과 공포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타자들만의 사건이고 외면하고 싶은 재앙의 다름아닌 은유다. 

 

p.195 나는 리모컨의 Do not disturb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방갈로의 눈꺼풀은 내려가지 않았다. 아무리 눌러도 리모컨은 작동하지 않았다. 눈은 이제 요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다른 말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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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9-04 22:0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어머~ 너무 재밌을 거 같아요! 저도 도서관에 예약해 놓은 건 항상 까먹고 있다가 찾으러 오라고 알람오면 놀라요~ㅋㅋㅋㅋㅋ
미미님, 귀에서 피날 거 같은 기분 저도 잘 알아요. 흑흑. 근데 미미님의 저 마음은 너무 알흠다우심다~👍

미미 2021-09-04 23:24   좋아요 4 | URL
툐툐님도 참~♡🥰 평범한 상황으로 시작하는데도 집중되는! 거기다 급변하는 사건이 있어요. 저 남자분은 잊지못할 안타까운 경험. 전화해줄걸 그랬나봐요.😭

새파랑 2021-09-04 22:0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2등~!! 엄청 빨리 읽으셨네요~!! 와우 리뷰 보니 재난 체험 이야기군요. 스릴러에 반전이라니~!!
미미님 경험담은 책만큼 재미있네요. 그리고 책 구매 자제는 믿을수 없음 😆

미미 2021-09-04 23:26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 저를 너무 잘아쉼ㅋㅋㅋ읽다보니 스릴러. 너무 쫄깃한 경험이었어요! 그래도 어딘지 호불호가 갈릴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저는 일단 좋았습니다. 저 지난달 말일 이미 지름요😳

오후즈음 2021-09-04 22:2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하루에 300통이나 받으신 날이 있으시다니 힘드셨겠어요. 저도 전화 업무 잠시 ㅡ학원관련ㅡ한적있는데 첫 일주일은 매일 울었던것같아요. 열받아서요. ㅋㅋ

미미 2021-09-04 23:30   좋아요 3 | URL
오후즈음님~♡전화업무 정말 힘들죠?! 아우~그 고충은 경험자들만이 압니다. 대면하는 게 아니라 오해도 더 받고 때로는 화풀이 대상이 되기도 하더라구요. 많이 와야 결과적으로 좋은건데 실무자입장에선 또 그렇지가 않죠😭

페넬로페 2021-09-04 22:4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에서 요나가 근무하는 회사 이름이 정글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했어요. 성추행도 참아야 할 정도로 어딘가에 내몰린다는 사실이 슬펐고 결국 더 큰 재난을 가져와서 씁쓸했거든요 ㅠㅠ
하루에 전화 300통을 받는다면 누구나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마지막 부분의 글, 저도 똑같이 공감해요^^

미미 2021-09-04 23:35   좋아요 5 | URL
페넬로페님~♡ 덕분에 또 좋은 소설을 읽었어요!🤭 의미심장한 장치가 여기저기 지뢰밭처럼 놓인 작품같아요. 답을 얻지못한 단어들,의미들도 있어서 해설을 좀 읽어봐야겠어요.ㅎㅎ🙄

scott 2021-09-05 00: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윤고은 작가 동시대 작가들 중 가장 독보적인 작가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출간되는 장편도 기대!!


미미 2021-09-05 10:20   좋아요 3 | URL
스콧님~♡ 스콧님이 그리 말씀하시면 저도 윤고은 작가를 계속 지켜봐야겠어요ㅎㅎ 장편이 나오는군요~!!😉

레삭매냐 2021-09-05 08: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 책 좀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려고 하는데 요즘 핫해서
차례가 오지 않더라구요.

일단 기다리면 언젠가는 ㅋ

미미 2021-09-05 10:23   좋아요 3 | URL
레삭매냐님~♡ 저도 3순위로 시작해서 취소하려다 묵묵히 기다렸답니다ㅋㅋ 막상 제 차례되니 기다리는 맛도 있더라구요😆

mini74 2021-09-05 20: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참산한 소재. 재미있는데 불편한 소재의 소설이었어요. ㅎㅎ 저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

미미 2021-09-05 21:01   좋아요 4 | URL
그렇죠? 저도 내내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러면서도 떨치기 힘든 몰입도!😳
미니님 남은 일요일 즐겁게 보내세요~♡

초딩 2021-09-05 22: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직업이 되었을 때, 그 직업인은 매일 마주하니 무덤덤해지지만, 그 직업에 접하는 일반인은 그것이 난생처음과 같이 생소하게 되면 역설의 상황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누구는 무덤덤하고, 누구에게는 다급하고 시급하니깐요.
어쩌면 그래서 아주 어떤 경우에는 재난 상황에서 직업인들이 안내하는 것을 다 따를 수 없는 것 같기도합니다.

미미 2021-09-05 22:59   좋아요 4 | URL
오 초딩님~♡ 그런 면도 분명 있겠네요. 역시 날카로우신 듯!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는 비행기 조종사들도 반복되는 비행을 하다보면 습관 때문에 무뎌져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기도 한대요. 🤔

coolcat329 2021-09-08 1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드디어 도서관에서 연락받고 빌렸습니다. 어찌나 인기가 많던지요. 미미님 글 보니 더 기대가 됩니다.

미미 2021-09-08 12:45   좋아요 2 | URL
독특한 느낌드실거예요😊 쿨캣님 리뷰 벌써 기다려집니다. 여행 잘 다녀오시길 ~♡
 

얼마전 정치 관련 뉴스를 보는데 한 의원이 정부부처 직원을 만나 질의응답을 하는 장면이 영상으로 나왔다. 그 의원은 해당 직원의 답변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언성을 높이며 ˝그런 원론적인 이야기를 듣자고 부른 것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 두 사람의 대화의 앞 뒤 맥락을 살펴봐야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겠지만 (그 직원이 핑계처럼 원론적 이야기를 꺼내 항의를 받은 것일 수 있으니)이 때 이 장면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국회의원들은 선거철을 앞두면 온갖 지키지 못할 공약과 더불어 원론적인 이야기를 내세운다. 그러는 와중에 ‘국가‘를 들먹이고 ‘국민‘을 들먹여 자신의 설득력을 높이는데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선거철이 끝나면 각종 핑계를 대가며 그야말로 자신들만의 ‘현실정치‘로 돌아온다는 느낌이든다. 그러다가 상대 정당을 비판할때는 다시 원론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지적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 알랭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를 읽은 어떤 분이 자신은 현직기자인데 알랭드 보통이 너무 기자의 현실을 모른다고 리뷰에 써 놓은 글을 읽었다. 맥락상 그 분이 하는 이야기를 전부 쌩뚱맞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알랭드 보통과 같은 철학자.학자들은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학자들의 역할이다.그들은 그런 것을 끝없이 연구하고 질문을 던져 주어야 하는 것이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본질을 놓치지않을 수 있도록. 등대지기가 되어야하는게 학자들의 역할이 아닐까. 많은 문제가 본질에서 멀어질 때 붉어진다.





기자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이 하나 있어요. 기자들은 저널리즘의 본령에 대해 말하는 학자들의 강의나 분석을 굉장히 무시하거든요. ‘저 사람들은 현장을 몰라, 취재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하는 거야‘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중요한 순간에는그런 저널리즘의 본령,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는 정신에 투철한 언론사가 결국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되죠. 현장 논리에 입각해 뉴스의 본령보다는 스피디한 편집, CG 등 포장에만 신경쓰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했던 방송뉴스 트렌드에JTBC가 경종을 울렸다고 봐요.
- P135

단기적으로 봤을 때 김재철(金在哲) 씨처럼 협찬을 많이 따오면 수익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 효과가 당장은 있을지모르지만 그게 반복되면 내부 조직을 망가뜨릴 수밖에 없고, 국민신뢰도 저하로 이어져요. 신뢰도가 떨어지면 광고는 당연히 떨어지는 거고, 장기적으로 보면 경영이 다운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게 MBC에서 입증됐다고 봐요.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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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9-03 15:5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요기도 1등~~~^^ 스캇님 따라하기~~~^^

미미 2021-09-03 16:01   좋아요 5 | URL
리뷰도 아닌 몇자 끄적인건데 아이참 감사해요~♡헤헷😍

행복한책읽기 2021-09-03 16:04   좋아요 7 | URL
슬프게도 손석희 자리 비우자 jtbc 가 울린 경종. 그 소리가 약해졌구요. MBC는 사장 교체했는데도 옛 기량을 찾지 못하더라구요. ㅠㅠ 미미님 정곡을 찌르심. 기자와 학자의 역할은 다르죠. 근데. 보통이 저런 책을 썼다구요?? 또 몰랐단 말인가요. 또 검색 돌입!!^^

미미 2021-09-03 16:17   좋아요 6 | URL
그러게 말이예요!! 너무 안타까워요. 힘빠진느낌이 분명있고 MBC도 예전의 명성을 되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듯 합니다. 알랭드보통의 책 저는 너무 좋았어요.이 책 가지고 손석희의 뉴스룸도 나왔었고요.😉

scott 2021-09-03 16:41   좋아요 6 | URL
알랭 보통 말에 의하면 뉴스는 겁먹고 동요하고 괴로워하는 대중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매체로 대중들이 방출되는 뉴스를 보고 들으면서 충격을 받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계 비리나 사회적 범죄 같은 사건들을 내보내는 데 전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온한 세상, 시대를 원치 않는다고,,,

미미 2021-09-03 16:48   좋아요 4 | URL
스콧님은 모르는게 없으심~♡👍♡

새파랑 2021-09-03 16:3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등 양보 2등~!! 저도 미미님 말에 공감합니다.의원이라고 소리지리고 화내는걸 보면 국민을 대표해서 그러는건지 그냥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고 싶은건지 모르겠더라구요🙄

미미 2021-09-03 16:47   좋아요 4 | URL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국민‘을 이용하고 그로인해 얻은 권력은 결국 본인들 위해 쓰니 자기들 위에는 아무도 없다고 보는 듯 해요 하...🤔

scott 2021-09-03 16: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등-2등 모조리 양보

∧_∧
(il´‐ω‐)ヘ
∩,,__⌒つっ3등 자리 확보!

미미 2021-09-03 16:49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스콧님!🙆‍♀️

페넬로페 2021-09-03 16: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국회의원들 나와서 토론하고 질의응답하는것을 절대 보지 않습니다.
물론 회피하면 안되는데 보고 있으면 제 혈관이 터질것 같아서요 ㅠㅠ

미미 2021-09-03 16:51   좋아요 5 | URL
안보는게 정신건강에 이롭죠~♡ ㅋㅋ코미디프로에서 정치인들 풍자가 사라진게 많이 아쉬워요!

초딩 2021-09-03 16:5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일단 국회의원님들은 필요할 때만 원론적인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정말
녹화했다가 나중에 다르게 말하면 징벌 줘야할 것 겉아요 ㅎㅎ

미미 2021-09-03 17:13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그렇죠~♡ 상당수가 무기징역?ㅋ 너무 뻔뻔하게 웃겨 정치가 코미디를 죽였다는 얘기도 하는가 봅니다.

mini74 2021-09-03 17:1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코미디프로가 망한 이유가 있다고 하죠 ㅎㅎ 질문도 답도 뱅뱅 돌고 서로 듣지 않고 떠드는 그들을 보면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미미 2021-09-03 17:16   좋아요 6 | URL
미니님 찌찌뽕~♡ㅎㅎ 어쩔땐 속터지고 어쩔땐 기가막혀 웃음밖에 안나오더라구요. 이럴때 일수록 코미디에서도 풍자로 비판해줘야하는데 거의 사라져서 참

서니데이 2021-09-03 2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랭드 보통의 그 책 읽었어요. 많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가 보는 뉴스와 기자가 보는 뉴스는 그만큼 다르겠지요. 서로 가까이 있는 거리가 다르잖아요.
미미님, 이제 9월입니다. 좋은일들 가득하고 매일 행복한 한 달 되세요.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미미 2021-09-03 23:46   좋아요 2 | URL
오 서니데이님도 읽어보셨군요~♡♡♡ 반갑네요!! 저도 재밌었고 나중에 다시 보고싶은 책이예요ㅎㅎ서니데이님도 9월 한달 더 건강하고 더 기운나고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채우시길 바랍니다😉
 

결국은 MBC 4500억짜리 신사옥으로 결정된거구나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sisahunter&logNo=130093295914








권태선 

미국 대선 때 가짜 뉴스 및 극우언론이 창궐했고 그것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까. 그것에 대해 알아보려고 제가 지난 4월 미국에 가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했어요. 그중 한분은 가짜 뉴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연대활동을 펼치는 시민단체 소속이었어요. 그분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데는 주류언론이 일반 시민들과의 연결점을 잃어버린 탓도 있다는 지적을 하시더라고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CNN 등의 매체들은 대중이 자질도 능력도 형편없이 떨어지는 트럼프를 선택할 것으로는 생각도 못했지요. 그 전문가는 주류언론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이 대부분 엘리트층이었기 때문에 러스트벨트(Rust Belt) 주민들의 실상과 그들의 분노의 깊이를 제대로이해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게 진보언론이 ‘가르치려고 든다는 측면과 일맥상통하는 것 아닌가 해요. 또 다루는 주제나 글쓰기 방식도 일반 시민의 공감을 얻기에 부족한 부분도 있고요 - P90

언론계의 성차별

권태선 입사 때부터 그랬습니다. 저는 한국일보사 35기로 입사했는데, 성적도 꽤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한국일보‘가아니라 ‘코리아타임스‘로 배치됐어요. 그것부터 차별이라고 느꼈지요. 그리고 우리 때는 여자는 문화부 · 외신부·생활부에 보내고,
경찰서 출입도 못했어요. 

1988년 한겨레신문사에 와서는 민족국제부로 배치됐고, 정기적으로 밤샘 야근을 해야 했어요. 그때 아이가 둘이었는데, 국장님께서 "야야, 애 엄마가 야근을 해서 어쩌노"
그러시더라고요. 나름대로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분들이었는데도.
- P91

부장급 가운데 여자가 한명 있거나 두명 있거나 하는상황이 대부분이니까 편집회의에서 기사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무의식적으로 성차별 인식을 드러내는 경우도 없지 않았어요. 제가 유일한 여성 부장일 때 "나의 발언권은 50퍼센트다"라고 주장했어요. 편집위원회의 남성 구성원 발언권 전체와 내 발언권은 동급이라고요. 그런 것들을 시정하는 역할을 했죠.
- P93

박성제 

요즘은 여성 편집국장도 많이 나오고, 여성 시경캡(경찰서 출입기자들을 관리·감독하는 중견 기자)도 나왔죠. 이렇게 우수한 여성 기자들이 일단 요직에 진출하는 선례는 만들어졌지만, 한편으로는이런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방송의 경우 여성 기자를 뽑을 때 외모를 많이 봐요. 

젊은 사회부 여성 기자들이 스타가 되어 활약하고 언론계에서 여성 언론인들의 역할이 커진 건 분명한데, 상품화한다‘ ‘눈요기로 쓰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게 사실이에요.
사실 여기자‘ 라는 말 자체가 문제가 있는 말이기도 하잖아요.
- P93

여사라는 말이 존칭이 아니라기보다, 성차별적 인식을 드러내는 표현이라는 것 때문에오랫동안 신문 등에서 여성 인물을 설명할 때, ‘권태선(여, ○○세)‘ 라는 식으로 표기했어요. 이것은 ‘신문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남성이고 예외적으로여성이 등장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이렇게 구분하는 것은성차별적이라 여겨 우리는 쓰지 않았어요. 그 맥락에서 여사라는말도 쓰지 말자고 해서 안 쓴 거였고요. 그런 측면에서 여기자‘라는 말도 부적절합니다. 그냥 기자죠.
- P94

저는 우리도 독일 공영방송과 같은 지배구조를 만들어보면 어떨가 싶습니다. 사회 각 부분을 대표하는 50여명의 시청자 위원 가운데 10여명 정도의 이사들을 뽑고, 그이사들이 사장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지요. 공영방송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을 대폭 줄이고 그야말로 국민 전체의 뜻에 응답하는공영방송이 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현재는 이사회가 사장 후보를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 - P95

 2016년 보도본부를 책임졌던 분의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정부 관련 보도의 균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KBS는 국가기간방송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지원할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너무 황당해서 어떻게 정부와 국가가 동일하냐, 진정한 국가기간방송이라면 정부의 정책에 대해 시시비비를 엄정하게 따져 바른 길로 가도록 이끌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했지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더군요. 그렇게 방송을 만드니 신뢰도가 추락할 수밖에 없지요.
- P95

언론인은 내가 언론을 통해서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라는, ‘언론관‘이 분명히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KBS에 와서 얘기를 나눠보니, PD 가운데 정권으로 간 사람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기자들은 9시 뉴스를 하다 말고 청와대로 뛰어가 대변인노릇을 하잖아요. 기자직을 자기 미래의 돌파구로 삼으니까 유착이 생겨요. 무엇보다 언론인의 책무에 대한 인식이 투철한 사람들을 뽑아야 하고, 또 그런 인식을 놓치지 않도록 계속 교육해야 합니다.
- P96

박성제

MBC에 김중배 사장이 있을 때 ‘과연 경영 능력이 있느냐"
하고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자 PD들이 가장 마음 놓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뉴스를 했을 때가김중배 사장이 계실 때였어요. 사실 저는 KBS·MBC 등 공영방송 사장한테 경영능력, CEO로서의 자질을 요구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라고 봐요. 

KBS는 수신료만 올리면 수익이 해결되는 구조잖아요. 수신료는 국민들이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판단해야 올려주는 거죠. 

마찬가지로 MBC도 광고 시스템 등에 의해서 수익이 결정되는 것이지 이런저런 사업 벌이고 협찬 따온다고 경영이 좋아지지 않아요. 무엇보다 방송을 잘만들어야죠. 

사장이 방송과 무관한 사업을 벌이는 것이 수익에 큰도움이 안 된다는 게 지금까지 여러차례 드러나지 않았나요?
- P109

최승호 

단기적으로 봤을 때 김재철(金在哲) 씨처럼 협찬을 많이 따오면 수익이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죠. 그런 효과가 당장은 있을지모르지만 그게 반복되면 내부 조직을 망가뜨릴 수밖에 없고, 국민신뢰도 저하로 이어져요. 신뢰도가 떨어지면 광고는 당연히 떨어지는 거고, 장기적으로 보면 경영이 다운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게 MBC에서 입증됐다고 봐요. 

🤔🤔🤔🤔🤔 - P109

박성제 최문순 사장이 임기 동안 보도의 자유는 지켜줬지만 8000억짜리 신사옥 건축을 추진하는 등 일을 벌였어요. 제가 노조위원장을 할 때였는데, 사내에서 직원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최 사장이 3년 더하면 보도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경영이 어려워지겠다.
는 판단을 했고, 노조가 사장 연임 반대 입장을 정했죠. 그러니 이분은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 본인이 노조위원장 출신인데… 어쨌든 노조가 반대한다는데 억지로 연임을 하겠다고 나설 사람은 아니니까 그만뒀죠. 그러고 나서 2008년 엄기영 씨가 사장이 됐어요.
- P112

박성제 MBC가 망가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아픈 건 세월호예요. 모든 언론사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별칭을 확고하게 갖게 됐고 심지어 MBC의 경우는 ‘개쓰레기‘라고 불리게됐죠. MBC의 세월호 보도는 최악이었거든요. 전원구조 오보를먼저 낸 곳도 MBC고요.
- P128

박성제 평범한 사안을 가지고 취재할 때는 어떤 언론사나 비슷한결과물을 내요. 차별화가 별로 안 되죠. 반면 취재환경이 좋지 않은, 비리가 많고 숨기려는 사람이 많은 경우에는 언론사와 기자들의 실력이 드러나요. 세월호 사건의 경우 제대로 훈련받은 기자들이 있는 대형 언론사들이 얼마든지 강점을 발휘할 수 있었어요.
- P131

기자들이 자주 빠지는 함정이 하나 있어요. 기자들은 저널리즘의 본령에 대해 말하는 학자들의 강의나 분석을 굉장히 무시하거든요. ‘저 사람들은 현장을 몰라, 취재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이 저런 말을 하는 거야‘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중요한 순간에는그런 저널리즘의 본령,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는 정신에 투철한 언론사가 결국 시민들의 사랑을 받게 되죠. 현장 논리에 입각해 뉴스의 본령보다는 스피디한 편집, CG 등 포장에만 신경쓰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려 했던 방송뉴스 트렌드에JTBC가 경종을 울렸다고 봐요.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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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3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밑줄보니 재미있네요 ㅋ 언론계가 좀 더 깨어있을거 같은데도 성차별이나 편견들이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

미미 2021-09-03 13:48   좋아요 1 | URL
네 ‘여기자‘라는 말도 그 근거 중 하나로 보여요. 저도 생각없이 썼던적 있는데 깜짝놀랐어요. ‘남기자‘라는 말은 없으니 말이죠😳
 

지금 언론이 기레기라는 오명을 씻으려면 팩트를 제대로 보도해야 하고, 권력과 자본의 압력에서도 벗어나야 하고, 또 공정하게보도해야 해요. 
가짜 뉴스가 떴을 때는 팩트체크도 해주어야 하고요. 기레기라는 말을 듣지 않는 길이 쉽지는 않아요. 그건 인정해야 합니다. 


- P49

황우석 신화를 깬 게 「PD수첩」이잖아요. 「PD수첩」 팀은 출입처가 없어요. 그리고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그 문제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고요. 제가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만약 최승호 PD와 한학수 PD의 출입처가 각각 정해져있는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면 황우석 편은 나올 수 없었다." 출입처 시스템에 언론과 기자들이 동화되어 있어요. 한 출입처에 오래 출입하다보면 편향이 생깁니다. 여당에 출입하는 기자와 야당에 출입하는 기자가 싸워요, 정말로.
- P50

페미니즘과 언론

박성제 ㅡ페미니즘 메갈리아 논쟁 관련해서 언론들이 겪었던 얘기를 해봅시다. JTBC도 그랬고, 시사IN · 한겨레 등이 많은 비난을받았죠.

민동기ㅡ 네, 미디어오늘도 그랬고요.

박성제ㅡ 남자들, 특히 젊은 20~30대 남자들이 분노하는 거잖아요.
시사IN 기자들은 억울해하더라고요. 여성혐오 논란을 굉장히 건조하게 분석해도 욕을 먹는 거예요. ‘분노한 남자들‘ 이라는 제호아래 「정의의 파수꾼들? (2016.8.27) 등의 기사를 실었는데 대량 구독해지 사태가 벌어졌죠. ‘메갈 언론‘이라고 부르고요. 나중에는촬영소품용으로 썼던 욱일승천기가 편집국에 놓여 있는 사진을보고 친일 언론이라고 비난하기도 했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 시사IN에 대한 분노가 이 정도였나 하고 깜짝 놀랐어요.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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