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하지만 존재하는!
검색창에 써 놓은 검색어들을 한번씩 일기장에 옮겨 적는다. 날짜도 함께. 이 시기 나는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고 찾았었다고. 미래의 나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는 빅데이터보다 더 진심이 드러나는 건 검색어라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자판에 두드려 뭔가를 찾는 검색창에 좀더 솔직한 진심이 드러나는 거라고. 혼란은 어쩌면 거기서 발생하는 것인지 모른다. 내 진심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은 삶.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해 가며 나보다는 타인들이 원하는 질서 안에서 의사소통을 하고 살아가는 것.
많이들 그럴테지만 불안과 설렘의 공존으로 혼란스럽던 미성년의 시기부터 나를, 세상을 잘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늘상 터무니없이 아득한 곳에 있는 듯했다. 그럼 나를 알려면 어디서부터 찾아야할지, 과연 그런것들이 의미가 있긴 한지도 의심스러웠다. 놀랍게도 중 2때만 그런것도 아니었다. 존재론적 불신과 까닭없는 공상들의 무한반복. 맥락이 없으면 삶을 좀먹기만 하는 것들. 그것들이 혼재되어 오히려 나를 알아가는 것이 더 힘들어졌다.<공부의 철학>을 읽고 가장 좋았던 점은 저자가 제시한 '개인연대기 써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무렵 나는 스스로에 대해 좀 더 잘 알고싶다는 긴 고민끝에 특정 해에 내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를 무얼 했었는지 이미 조금씩 기록하고 있었다. 왜 진작에 이 방법을 몰랐을까? 나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산물이다. 내 인생에 겹치는 이슈들은 알게 모르게 내게 영향을 준다. 나는 거기서 어떤 것들을 얻고 잃었을까? 이걸 비교해 보는 정리는 나를 알아가는 데 썩 나쁘지 않은 나침반이 되어준다. 나를 옭아매는 것이 뭔지 알아야 벗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 그런 시도들의 잠재적 결과였는지, 어쩐지. 책을 찾아 읽으면서 그나마 가닥이 조금 잡혔던것 같다. ㅡ이러기까지 소요된 시간만 봐도 나는 본격적인 자아성찰이 너무 늦은 인간이었다.어쩌면 애초에 찾는 걸 포기하는게 태평하게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 혹은 지름길이었을지 모른다.ㅡ 그래서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자꾸만 책을 권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실마리를 찾았으니 너희도 엉뚱한데서 헤매지 말고 이쪽으로 한번 와보라고. 그리고 너에 대해 자꾸 써보라고. 너를 숨막히게 혹은 숨쉬게 하는 것들을 다 적어보라고.
유독 이런저런 혼란을 겪는듯한 친구들에겐 꼭 그랬다.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책 한권에 답이 나올리는 없지만 감동을 주는 책이 누적될수록 길은 어디선가 서서히 열린다. 아니면 적어도 어느방향으로 가야할지는 보인다. "그게 어디야?!" 이럴 때 기분은 갇혀있는 방에 창이 하나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기가 달라진다. 공기가 달라지니 살고 싶어진다. 그래. 자신이 고른 책들은 그만한 이유들이 있다. 고르고 고른, 읽은 책들이 나름 하나의 괘적이 되어 벽을 뚫어 개성적인 창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창 밖에는 원하는 답이 있을지 모른다.ㅡ 사실 이쯤되면 답을 꼭 찾을 필요도 없다.ㅡ 무지개 끝자락처럼 막상 그 자리를 파 봐도 아무엇도 없을 수도 있다. 그럼 어때? 무지개를 본 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보물같은건 못 찾아도 상관없다. 어차피 그런 대단한 걸 찾고자 하는게 아니었으니...
p.89 다른 딸, 그들로부터 멀리, 다른 곳으로 달아난 딸은 바로 나입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만의 창을 완성했다. 그것도 아주 큼지막하게. 그리고 누구나 들여다 보고 그 길을 지날 수 있게 한다. 동심으로 가 되짚어보는 생각들, 몽상들, 그것들을 담아 편지에 담는다.
디프테리아로 6살에 세상을 떠난 언니. 한 번도 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기억속에만 존재했고 지금은 부재하는 사람. 부재하지만 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 다녔고 마치 나를 부재하게 만들려는 것 같았던 사람. 내가 벗어날 수 없던 존재를 다시 종이위에 불러와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른다.
p.61 글을 쓰면 쓸수록 마치 꿈을 꾸듯 이끼만 잔뜩 돋은 인적 없는 습지에서 걸음을 내딛는 듯하고, 단어들의 틈새를 헤치고 나아가 불분명한 것들로 가득 찬 공간을 넘어가야 할 것만같아요. 내겐 당신을 위한 언어도, 당신에게 말해야 할 언어도 없으며, 부정적인 방식을 통해 지속적인 비존재 상태로 있는 당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정과 정서의 언어 바깥에 있는 당신은 비언어입니다.
우리 마음의 창과 길을 여는 것. 그렇게 글을 쓰는 것. 또 다른 길을 여는 글 쓰기는 누군가에게 잃어버렸던 혹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것들을 찾을 수 있는 마법의 열쇠가 될 수도 있다.
p.90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편지가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신비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당신에게 닿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여름의 일요일에, 어쩌면 튀렝의 방에서 파베세가 자살했던 그날에, 나 역시 수신자가 아니었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소식을 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음엔 뭘 읽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