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3월
평점 :
품절


 

 

아주 오랜만에 마음을 울리는 글을 만났다. 작가님의 솔직한 마음이 담긴 글을 읽고 나도 이럴 때가 있었는데 공감하며 읽었다. 이 책의 글들이 느낌이 참 좋다.

 

감수성이 풍만할 사춘기 소녀일 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디에 말도 못하고 마음이 갇혀 살았다. 얼마나 사무쳤으면 눈을 감았다 뜨면 한 10년의 시간이 지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을까. 그래도 견디는 방법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웃는 얼굴로 공부 잘하고 웃는 아이 인척

 

엄마가 휴대폰을 바꾸면서 문자 메시지 500개 저장된 걸 다 지웠어. 문자는 옮길 수가 없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휴대폰에 메시지가 하나도 없어. 네 문자도 지워진 거 있지. 다 저장해놨었는데. 그러니까 지금 메시지 하나만 보내줘. ‘사랑해라고.” “부탁이 겨우 그거야?”

-엄마 사랑해!♡♡ p25

 

부모님이 헤어지고 우연히 백일장에 상을 받고 낭독을 하게 되면서 솔직하게 적은 글이 부끄러운지 몰랐다 그동안 상처 받은 마음에 솔직한 글을 쓰지 못했다.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증 서류 작성을 도와주며 집까지 태워주던 아저씨 다리를 잃은 사고의 대해 이야기를 해주고 저자에게 이것 저것 물어보며 국어를 좋아한다는 말에 작가 하면 되겠구나 힘내서 살아라는 격려의 말까지 십년이 지난 시간에도 잊지 못한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갔다.

 

우리는 그렇게 웅크리고 그렇게 걷고 그렇게 살고 있다고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삶은 우리 등 뒤로 아름답게 펼쳐진다.

 

어릴 때 통째로 삼키던 자두 맛 사탕, 외할아버지의 초코파이 기억을 떠오를때면 행복해진다. 페지 줍는 할머니, 친구에게 바람 맞은 날, 화단 옆에 살아서 이름 지어진 고양이 화단, 비를 맞으며 들어가 잔치 국수를 먹던 날, 엄마와 남매의 보금자리에 커텐 대용으로 한지에 시를 적었다는 글은 웃음과 눈물이 동시에 일어난다.

 

백일장이 싫은 이유는 이웃학교 지도교사로 아빠가 오면 일부러 거짓말을 늘어 놓아 상도 받지 못했다. 아빠와 관련된 모든 게 싫었는데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때가 있었다. 공부하는 도구는 깨끗해야 한다며 연필을 깍아 주시던 아빠, 미워서 미워서 아빠처럼 살기 싫어서 절대로 글 쓰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제대로 글을 썼다. 살아가는 동안 부끄러운 글은 쓰지 말자 다짐하니 이렇게 좋은 글이 나왔다.

 

다른 사람을 지독히 미워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했고 그런 마음은 좋은 글을 쓸 수가 없어서 돌아보면 안타깝고 가여운 시간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정말 그런거 같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글이 그 사람에 대한 원망 밖에 생각이 나질 않아 좋은 글이 나올수가 없다.

 

 

 

불행의 반대말은 행복이 아닌 다행이다. 누구나 고유한 이야기들이 있다. 나의 이야기를 꾸준히 쓰다 보면 제 삶에 너그러운 사람이 된다. 우리 삶은 운이 좋은 날보다 행복하지 않은 날들이 더 많지만 오늘이 얼마나 평온한 날인지, 이만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매일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처럼 그렇게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이 책은 이봐요, 당신 삶이 아름다워요라는 말을 전하고자 한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연인, 나란히 걷는 노부부, 수화로 대화하는 두 사람, 계단에 구부정히 앉은 아저씨,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 유모차에 늙은 개를 태우고 가는 할머니길거리를 걷는 낯모르는 사람들 모두에게서 숨겨진 행복과 삶의 애잔함을 발견하는 데 탁월한 고수리 작가는 정작 당신은 모르는 뒷모습에 담긴 이야기를 대신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 읽어본다
서효인.박혜진 지음 / 난다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다 출판사에서 읽어본다 시리즈를 읽어 보았다. 이 책은 6번째 책이 된다. 이 책은 편집자 두 사람이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기록을 하였다. 1월에서 6월까지 각각 책을 읽고, 나머지 6개월은 책 리스트로 되어 있다.

 

201712매일같이 써보는 내가 만진 책 이야기라는 콘셉트로 다섯 권을 펴낸 바 있던 이 시리즈에 올해의 필진으로 합류하게 된 이들은 민음사에서 한국문학을 전담하고 있는 서효인 시인과 박혜진 문학평론가다.

 

그는 참 부지런한 손을 가졌다. 스웨터 짜는 걸 금세 포기했다. 밝히는 시인이지만, 그가 짜낸 이 민트빛 책의 문장들은 보송보송한 니트 조끼처럼 읽는 사람의 몸에 착 붙는다. 그 옷의 결을 쓰담는다. 김현의 기억과 인식과 태도와 문장을 따라간다. 좋음과 나른함 사이에 기분이 놓인다. 그리고 떠오르는 기억(아무튼, 스웨터)

 

도리스 레싱이라면 <다섯째 아이>가 있습니다! 어쩌면 19호실로 가다 보다 훨씬 더 리얼한 투쟁의 현장이 여기 있어요. 어느 독자가 출판사 게시판에 <19호실로 가다>를 구할수 없냐고 해서 작가의 이 책을 소개해주었다.

 

책을 읽고 있다가 나도 읽은 책이 나오면 반갑다. 겹치는 건 거의 없지만 한 두권 나오면 반가울 수가 없다. 한낮의 마티네처럼 거리를 두고 관조하며 완성되는 느슨한 사랑의 찬란함을 보여줍니다.(마티네의 끝에서)

 

나혜석이 길 위에서 행려병자로 죽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어떻게 누구나다 알게 된 걸까. 어떻게 살았는지는 모르면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어떻게. 이 책 읽어보고 싶다.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니까(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편집자가 투고 원고를 거절하는 99가지 방법이 담긴 <소설 거절술>이다. 물론 이 책은 투고자들을 위해 출판사의 거절 메일을 일목요연하게 분류해놓은 책이지만, 책의 기능은 전적으로 독자에 의해 결정되는법, 나는 내가 하지 못한 말, 쓰지 못한 글을 보면서 대리 만족한다. 이 책도 찜해둔다. (소설 거절술)

 

518일이라서 고향 이야기를 해본다. 진즉에 읽었던 형중 선배의 책도 다시 꺼내보았다.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책은 망월동을 마지막으로 걷기를 멈춘다.(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

 

오늘 무얼 먹을지 고민하게 된다. 순대, 부침개, 물회, 냄비국수, 꼬막조림, 오징어튀김, 간짜장. 대체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권여선의 문장 앞에 나는 무릎을 끓고, 끓은 무릎 앞에 밥상을 당겨 만두든 비빔국수든 감자탕이든 뭐든 먹고 싶다. 4월 한달은 권여선 한작가당 책을 읽고 있는데 이런 제목도 있구나(오늘 뭐 먹지?)

 

요즘처럼 읽어도 읽을 책들이 쌓여가고 읽을 책이 왜 그리 많은지 실감한다. 이 책의 작가들도 책을 읽고 독서 일기를 쓰고 매일 허덕인다고 한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책과 삶의 유착 관계에 대한 가벼운 작업 일지로 읽혔으면 좋겠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레이트 그레이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어른을 위한 안티에이징 라이프 플랜
지성언 지음 / 라온북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어른을 위한 안티에이징 라이프 플랜

 

 

이 책을 펼치니 추천사가 많았다. 영화 <인턴>의 주인공 같다. 섹시한 할아버지, 인생 1막보다 더 재미있는 2막을 사는 사람이라고 불린다. 지성언 사장님의 인스타에 들어가서 팔로우 하고 멋지십니다. 댓글도 남겼다.

 

저자는 대학 졸업 후 LG그룹에 공채로 합격하여 LG상사에 배치받아 가장 인기 있는 섬유사업부로 가게 되었다. 입사 2년 만에 해외주재원 발령이 났다. 해외 출장은 3년이 넘어야 보내주는데 출장도 아닌 주재원 발령을 받았다. LG 한 직장만 알고 다녔는데 퇴직 통보를 받았을 때 딱 3초만 슬프고 기분이 나빴는데 기쁨이 몰려왔단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나 좌절할 법도 한데 재도전하고 책도 펴낸 것이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다. 100세 시대 인생 후반전을 대비하거나 시작하는 우리들은 무조건 달라져야 한다.

    

 

 

속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방향이 중요하다.

인생 2막에서 어떤 특정 목표에 도달 하는게 아니라 방향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가 결정한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축복이다. 처음부터 인생 2막 설계에 완벽함을 추구하려 애쓰지마라.

 

나를 브랜드화하자.

직장생활,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한 말이지만 노후에 더 필요한거 같다. 노후를 위한 자금, 30~40년을 쓸 자금이 필요하다. 은퇴후에도 소득이 수반되는 생산적인 일을 계속해야 한다. 나만의 강점을 발견하고 상품화하도록 하자. 가능하면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권한다.

 

 

 

인생 2막을 시작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는데 꼰대는 되지 마라. 사전적 의미로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고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이 고지식하고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는 용도로 쓰인다.

 

저자는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타이완을 시작으로 홍콩, 베이징, 광저우, 상하이까지 30여 년을 쉼 없이 일을 했다. 상하이에서 10년간 LG패션 법인장을 지내고 이어 미국계 여성복 브랜드의 중국론칭 업무를 맡게 되었다. 저자는 환갑이 지난 나이에 길거리 캐스팅이 되어 광고에 출연하고 패션맨으로 변신하여 화보 모델로도 활약했다.

 

순간의 선택이 30년 중국통의 길을 열었다고 할 만큼 중국 음식도 안 먹어본게 없을 정도라고 한다. 저자는 금수저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직장을 갖고부터 금수저였다. 대기업 직원이고 오랫동안 주재원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차이나다 스타트업회사에 들어갔다. 미국계 회사에서 근무하며 익힌 노하우가 유용하게 맞아 떨어졌다.

 

 

 

 

한국에 돌아와 차이나탄 온라인 중국어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이나다에 합류할 때 젊은 김 대표가 전권을 주어 학원 자리도 알아보고 오프라인 중국어 학원도 맡아 해보라는 말에 다리 품을 팔아 상권을 알아보았다. 그것도 60대에, 지금은 공동대표를 맡고 있고 서울에만 6호점을 오픈하고 판교에 7호점을 개설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나름 옷 입는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이었는데 닉 우스터를 보며 패셔니스타로의 변신에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 패션 감각이 젊어지니 예쁜 옷을 입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했다. 걷기를 생활하기 위해 지하철역 두세 정거장은 늘 걸었다. 나이가 들어도 외모에 신경을 쓰라고 한다.

 

심장이 뛰는 일을 자꾸 하라. 사람은 자신과 맞는 것을 만나면 자동적으로 심장이 뛴다. 그럼 나는 책을 만나면 심장이 뛰는데 계속 책만 읽어야 할까 주위에서 책 좀 그만 읽어라고 성화를 댄다.

 

 

멋지게 나이 드는 세 가지 방법

첫째, 옷이나 악세서리 등에 신경을 써서 나를 포장하길 권한다. 나이 들수록 더욱 외모가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둘째, 무엇이든 나누는 어른이 되자. 내가 가진 재능이면 좋겠지만 없다 치더라도 지금까지 경험했던 모든 것, 성공이든 실패든 슬픈 경험이든 소중한 지식을 나누자.

 

셋째, 나누고 빈자리는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를 제안한다. 새로운 일에 대한 공부를 해두는 것도 좋고 마음이 가는 일 즉, 심장이 뛰는 일을 찾아서 무엇이든 익혀두라. 나이 들어 가는 모든 그레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영화 <인턴>의 로버트 드니로처럼 인생 2을 살아가는 지성언 대표, 그를 따라디니는 수식어가 많다. 1세대 중국통,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 꽃할배, 화보모델, 한국판 <인턴>까지, 이 책에는 그만이 들려줄 수 있는 중국 스토리 외에 새로운 삶에도 도전장을 낸 50플러스 세대의 인생이 담겨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애숙의 나라
안휘 지음 / 상상마당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의순공주를 아시나요

 

 

애숙의 나라는 병자호란 이후 1650(효종孝宗 1)에 공주를 보내라는 청나라의 강력한 요구에 숙안공주를 대신하여 청나라 장수 도르곤의 첩으로 시집간 이애숙이라는 소녀의 기구한 일생 이야기다. 가짜공주가 되어 청나라로 갈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눈물 어린 역사이다.

 

몸종 부슬이 서찰을 감추어 애숙에게 내민다. 겉봉에 적힌 김담이라는 이름이었다. <일찍 핀 매화>라는 시를 보냈다. 애숙은 답장으로 <매화절구> 시구를 적었지만 답서를 보내지 않고 장롱 속에 간직했다. 임금의 부름으로 궁에 들어갔던 아버지 이개윤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말을 이었다. 왕실 종친인 애숙을 청국의 섭정왕에게 보냈으면 좋겠다며 형식적으로 규수들의 간택절차를 밟는다. 명분만 그럴뿐 애숙이 가는 걸로 되어 있었다. 애숙은 의순공주라는 작호를 받고 조선의 공주를 대신하여 상국에 받쳐지는 희생물이었다.

 

섭정왕이 먼저 도착한 산해관에서 궁녀 피양구와 조선 출신 하란의 안내를 받고 혼례준비를 하였다. 섭정왕 도르곤은 애숙보다 스물세 살이나 많았다. 만주족은 일부다처를 하는 민족이어서 의순공주를 빼고 아홉 명의 처첩이 있었다.

 

섭정왕 도르곤은 사냥 중에 부상을 당하고 치료를 받던 중 사망하였다, 애숙의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도르곤은 만고역적으로 선포되어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고 만다. 부관참시란 무덤에서 시신을 꺼내어 난도질하여 길거리에 내거는 형벌 아유 끔찍해라. 하란은 섭정왕이 역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라는 군사의 말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칼에 찔리고 만다. 그 광경을 목격한 애숙은 충격으로 아이가 낙태가 되었다.

 

만주족의 전통인 형사취수(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부인으로 취함)의 습속으로 정국 황실은 도르곤 사망 이후 처첩들을 휘하의 장수들에게 나누어 보낸다고 통보? 그러나 도르곤이 역적으로 몰린 후 일부 장수들은 자결하고 나머지는 변방으로 쫒겨났다. 동생 보로는 좌천이 되었지만 앞길은 끊기지 않았고 애순은 보로의 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터에 나갔던 보로가 보름 만에 중환자가 되어 돌아왔다. 병명은 간경화증이었다, 얼마 못가서 숨을 거뒀다. 애숙은 쓰러지고 말았다. 다시 요로의 집으로 가게 된 애숙은 소복을 입고 안친왕에게 안주인은 되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안친왕은 청을 들어주어 애숙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그러다 사신단 사은사 정사(正使)로 연경(북경)에 온 아버지 이개윤이 딸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황제에게 자신의 환향을 청원했고, 황제가 재가해서 애숙은 고국을 떠난 지 6년 만에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조선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지도 않은 자신을 장사지낸 족두리 무덤과 터무니없는 선입관 아버지의 파직이었다. 애숙은 절망한다. 전쟁포로가 되어 청나라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여인들 환향녀(還鄕女)들이 사대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거나 쫒겨나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홍제천변 할미꽃마을로 들어간다.

 

10년만에 돌아와 김담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애순의 일 때문에 귀향을 가는 일이 생긴다. 애숙의 어머니는 차라리 김담과 결혼을 시키고 청국으로 결혼을 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한다. 애숙은 마음 고생이 심하다가 병을 얻게 된다. 죽어가면서 조선은 아버지에게 어떤 나라입니까? 질문에 조선은 나에게 버릴 수 도 피할 수도 없는 숙명이다. 애숙은 제게 나라는 조선은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나라였기에 차마 버릴 수가 없었을 따름이었지요. 그래도 돌아보면 아버지의 딸로 행복한 날이 더 많았으니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숨을 거두었다. 제목처럼 애숙의 나라는 없는 건가 아버지의 나라였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 소설은 350여 년 전 왕가 종친의 여식으로 태어나, 임금의 진짜 딸을 대신해 청나라 장수의 첩으로 끌려간 의순공주(義順公主)의 한 맺힌 일기장으로 정의한다. 청나라 군대에 무참히 끌려갔다가 천신만고 끝에 고국으로 돌아온, 수만 여인들에게 환향녀(還鄕女) 딱지를 붙여 비정하게 내치고 죽음으로 몰아간 사대부라는 이름의 냉혈한들에게 내미는 아주 오래된 고발장이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에 어떤 존재인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에서 아직도 울고 있는 또 다른 애숙은 없는가.(작가의 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들한들
나태주 지음 / 밥북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하고 마음을 울리는 풀꽃 시인

 

 

풀꽃등 친필 시 네 점과 그린 연필그림이 수록 되어 있다. 한들한들 제목이 좋다. 한들한들 시를 읽고, 한들한들 살면서, 한들한들 돌아보면 좋겠다. 자신의 시가 누군가의 가슴에 꽃잎으로 머물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이다. 풀꽃처럼 맑은 얼굴의 시인이 한들한들개정판에서 전하는 봄의 선물이다. 나태주 시인의 대표시 풀꽃은 국민의 애창시라고 해도 좋을만큼 많이 알려져 있다. 풀꽃을 알게 된 것은 몇 년 안되지만 그로부터 시집을 세 권째 읽어보게 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조용한 날 하늘 구름에게, 화분의 꽃들에게 나는 네가 좋은데 너도 내가 좋으냐 물어본다. 인생 살아보니 별거 아니다처럼 순수한 내용들이다.

 

살아서 숨 쉴 수 있음에 감사, 블로그를 하면서 보면 이웃 블로거님들의 감사일기를 쉽게 볼 수 있다. 살아 있으니 숨 쉬고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하다. 책을 읽고 시를 읽을 수 있으니 감사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시간은 흘러 가지만 누구나 그런 삶을 살기에 감사하며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벚꽃 이별>

 

하늘 구름이 벚꽃나무에 와서 며칠

하늘 궁전이 되어서 또 며칠

부풀어 오르던 마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마음

사랑이었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사랑이었네 p59

 

<저녁에>

 

저녁에 잠든다는 건

내일의 소망을

가슴에 안는다는 일이고

 

오늘의 잘못들을

스스로 용서하고

잊는다는 것이다.p84

 

지금은 벚꽃이 흔적도 없이 져 버렸지만 만개 할때는 너무 멋지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마음이다. 시인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을 한다. 오늘부터 내일의 소망을 가슴에 안으며 잠이 들어야겠다

 

 

 

한들한들은 아주 오랜 추억의 글이다. 시인이 초등학교 담임했던 여자아이를 떠올린다. 무엇이든 잘해서 자라서 한 가지 잘 해내는 사람이 되려니 기대했었다. 나중에 보니 피아노를 잘 쳐서 피아니스트가 된 것도 아니고 영문학을 전공해서 학자가 된 것도 아니고 글을 잘 썻지만 글 쓰는 사람이 되지도 않았다. 잡지사 기자가 되어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고 그냥 아줌마로 눌러앉았다. 시인은 제자가 안타까운 모양이다. 시인은 50년동안 시만 쓰느라 한들한들 살지 못한 삶을 들여다본다.

 

예쁜 꽃은 당하고 핀 꽃보다 참고 핀 꽃이 더 예쁘다. 내 이름은 나태주여서 나태주, 자동차 없이도 잘 살아간다고 나 좀 태워 주세요해서 사람들이 잘 태워준다고 강연할 때 농담을 하기도 한다. ‘신나게 달리는 자전거큰 글씨로 신 달 자어라 내가 아는 신달자 시인 이름이 여기 쓰여 있네. 이렇게 귀엽게 시를 잘 지으시다니 웃음이 난다.

    

 

 

시인은 평생 시를 지으며 살아왔는데 시한테 진 빚이 있다고 한다. 자신은 선생을 하면서도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 가운데서도 늘 당당하지 못하고 의연하지 못했다. 거기에 비겁하기조차 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노력을 하면서 살았던가 묻는다. 그것은 좋은 시 읽기다. 좋은 시를 골라 읽음으로 자신의 내면의 어둠을 밝히고 비뚤어진 부분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 말에 공감한다. 예전에는 많은 책을 읽지 못했지만 요즘 책을 읽으면서 나의 마음이 밝아지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좋은 시 읽기는 마음의 평형을 잡는 일이었고 마음을 청소하는 일이었고 바르게 살아보려는 출구를 찾는 일이었다. 가끔이라도 시집을 한 권씩 읽어보면 시인의 마음처럼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