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육질은 부드러워
아구스티나 바스테리카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24년 4월
평점 :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지구상에서 동물이 사라진 이후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몇몇 정부는 제한적인 인육 소비를 허가했습니다. 수의사의 꿈을 접고 지금은 인육 가공 공장의 2인자가 되어 인육의 도축과 유통 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지만 마르코스 테호는 인육을 절대 먹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릴 적 아버지와 자주 갔던, 하지만 지금은 폐허가 된 빈 동물원에 가서 견디기 힘든 비참한 현실을 잠시나마 잊으려 애쓰곤 합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고기용 인간을 사육하는 업자가 ‘최상급 암컷 한 마리’를 선물합니다. 기르든 도살하든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지만 마르코스는 그 ‘암컷’을 헛간에 두고 보살핍니다. 갓 태어난 아들이 숨진 뒤 아내와 별거 중이던 마르코스는 어느 날 ‘암컷’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특수설정 미스터리로 유명한 시라이 도모유키의 ‘인간의 얼굴은 먹기 힘들다’ 역시 이 작품과 마찬가지로 ‘동물이 사라진 뒤 인육을 소비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그 작품에서 인간이 소비할 수 있는 인육은 오직 ‘자신의 체세포로 생산된 식용 클론’뿐입니다. 하지만 ‘육질은 부드러워’에는 끔찍한 방식으로 생산되고 도축되는 진짜 인육이 등장합니다. 고기용 암컷과 수컷 간의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 뒤 사육업자에게 길러지는 최상급 인육부터 심각한 범죄를 저질러 도축형을 선고받은 자들, 사고나 병으로 사망한 자들, 외국에서 수입된 고기용 인간 등 진짜 인간의 몸이 동물성 단백질의 원천으로 이용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니라 개체, 고기, 제품, 암컷, 수컷으로 불리는 그들은 우리에 갇힌 채 물과 사료로 키워지며 때론 신속한 대량생산을 위해 성장 촉진제를 투여받기도 합니다. 그들 중엔 돈 많은 사냥꾼들의 수렵장에 끌려가 인간 사냥감이 되거나 생체실험 연구소에 팔려가 갖가지 실험에 이용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가장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건 도축 대상이 되는 건데, 도축된 그들의 몸은 무엇 하나 버려지는 부위 없이 완벽하게 소비됩니다.
작가는 식인이 합법화된 세상에서 인육이 어떻게 길러지고 소비되는지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는 한편, 사육업자, 육류가공업자, 가죽가공업자, 인간사냥꾼, 생체실험 연구소, 성매매 업소 등 이른바 고기용 인간들을 자신의 이익이나 욕망에 이용하는 다양한 군상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도 합니다.
피와 살이 난무하는 잔인한 장르물을 어지간히 읽은 편이지만 사육-도축-가공-소비로 이어지는 식인의 일련의 과정에 관한 상세한 묘사에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비위가 약한 독자라면 나름 큰 각오를 하고 읽어야 할 작품입니다.
다만 흥미 위주의 식인 이야기를 기대해선 안 됩니다. 또 채식주의자인 작가가 육류 소비를 비난하기 위해 쓴 작품도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를 먹어 치우며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현대 자본주의의 폐해와 끝을 알 수 없는 인류의 탐욕을 그린 작품에 가깝습니다.
주인공 마르코스 테호는 인육을 권장하는 TV광고가 난무하는 미친 세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인간성을 유지하고 있는 인물인데, 작가는 그와 그 주변사람들 - 과거 도축업자였지만 동물이 사라지고 인육이 등장하자 치매에 걸려버린 아버지, 아이가 돌연사한 뒤 패닉 상태에 빠진 채 친정으로 돌아가버린 아내, 어느 날 갑자기 마르코스의 집안에 머물게 된 ‘최상급 고기용 암컷’, 그리고 괴로움 속에서도 마르코스가 매일 같이 만나야만 하는 비인간적인 인육 관련업자 등 - 을 통해 헤어날 수 없는 디스토피아의 비극을 절절하게 그려냅니다.
내용과 장르를 불문하고 디스토피아 스토리의 엔딩은 언제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암울한 상황에서도 작은 희망을 남긴 채 마무리될지, 마지막 장을 덮은 독자에게 한없이 무겁고 암담한 여운만 남겨 놓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인데, ‘육질은 부드러워’의 경우 설정 자체가 작은 희망조차 남길 여지가 없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상치 못한 엔딩 때문에 여운의 무게와 암담함은 더욱 무겁고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동물은 절멸시키되 인간만 살려놓는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만에 하나 ‘육질은 부드러워’의 세상이 도래한다면 과연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마지막 장을 덮고 표지를 다시 들여다보며 그런 의문을 떠올려보니 책을 읽을 때보다 더더욱 착잡해지고 암울해질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