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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1 밀리언셀러 클럽 124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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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네이버 카페 러니의 스릴러 월드’ 2012 베스트 3위에 빛나는 '개의 힘'을 뒤늦게 읽었습니다. 고백하자면,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기대한 이유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우려한 이유는 전적으로 취향의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스릴러, 특히 액션 위주의 이야기나 정부와 CIA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읽는 것보다 보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1권의 50여 페이지를 남겨놓고 중도 포기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검색해봤는데, 역시 저만 좀 이상한(?) 독자로 분류될 만큼 호평 일색이었습니다.

 

물론 돈 윈슬로가 이 작품에 쏟은 6년이란 시간과 어마어마한 자료조사에는 경의를 표합니다. 아트와 아단, 티오, 칼란, 노라, 후안 신부 등 선 굵은 캐릭터들도 매력 있습니다. 사건은 묵직하고 잔혹하고 시선을 끄는 힘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두 얼굴에 대한 고발은 할리우드 영화의 와는 차원이 달랐단 점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긴장감보다는 허전함이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멕시코를 무대로 한 장대한 마약전쟁은 눈에 너무나도 잘 보이는데,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겪는 인간은 잘 보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살아있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서사에 폭 파묻힌 인형 같다는 느낌이랄까요? 제겐 아트의 고뇌도, 아단, 노라, 칼란의 순탄치 않은 인생항로도 좀처럼 와 닿지 않았습니다. 최근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작품이 로버트 크레이스의 워치맨이었습니다. 할리우드의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의 주인공이라면 최고로 인정할 수 있겠지만, 책으로는 좀처럼 몰입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의 힘덕분에 제 취향이 향하는 작가들이 누군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습니다. 큰 스케일 속에서도 개인의 삶을 구석구석까지 들춰내 보이는 할런 코벤과 마이클 코넬리, 극도의 잔혹함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도 사건 한복판에 놓인 개인의 안위가 걱정되어 한시도 눈을 못 떼게 만드는 테스 게리첸과 넬레 노이하우스, 거대한 구조에 항거하면서 겨우겨우 숨 쉬며 버텨내는 개인들을 알뜰히 그려낸 왕년의 거장 존 그리샴과 로빈 쿡 등이 저와 코드가 잘 맞는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서평을 마무리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찜찜한 기분입니다. 아무리 개인적 취향의 문제라지만, 모두들 극찬한 작품을 절반도 못 읽고 포기했다는 것은 참 낯 뜨겁고 민망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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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중석 스릴러 클럽 33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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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여름캠프에 참가한 네 명의 아이가 사라진 사건은 격렬한 소송 끝에 거액의 위로금이란 판결로 종결됐고 이후 세상은 아이들을 잊은 듯했다. 어느 날 코플랜드는 주변에서 벌어진 사건의 단서를 찾던 중 여동생을 비롯한 네 명의 아이들이 실종된 20년 전 사건과 재회하게 된다. 20년 뒤에야 나타난 뜻밖의 단서는 사라진 아이들 중 하나가 성인이 되어 돌아왔다는 것과 누군가 아이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덮으려 한다는 것. 여동생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려는 남자와 진실을 덮으려는 부모의 갈등, 그리고 사건 이후 처참하게 해체된 가족의 비극과 함께 20년 전 은폐됐던 충격적인 진실이 조금씩 세상 밖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주로 일본 미스터리를 탐독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할런 코벤을 알게 됐습니다. 그의 명성이나 작품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던 상태에서 말 그대로 우연히 서가에서 집어든 책이 용서할 수 없는이었습니다. 이후 몇 편의 작품을 접하면서 편차가 심한 작가가 아니라는 신뢰를 갖게 됐습니다. 덧붙여, 단 한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함의 덕분에 다시 한 번 할런 코벤과 만나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코벤 특유의 중저음 같은 필력이 초지일관 독자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허망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곳곳에 적절한 트랩을 잘 설치해놓았습니다. 긴장감이 팽팽합니다. 20년 전 숲에서 벌어진 사건과 현재 사건의 연결 고리도 매력적이고 비밀과 거짓말이라는 가장 중요한 코드는 (조금은 질질 끄는 느낌도 있었지만) 좀처럼 중간에 책갈피를 끼우거나 한숨 쉴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사건, 서사가 잘 어우러졌고 너무 무겁지 않은 메시지도 위화감 없이 녹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네 개에 그친 가장 큰 이유는 내용 대비 과도한 분량때문입니다. 분량만 차지한 사족과 과도해 보이는 부연 설명은 수시로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었는데, 다 읽고 나니 이 작품의 구조가 -----처럼 보였습니다. 그만큼 초중반에 독자를 지치게 만드는 페이지가 많았다는 뜻입니다. 좀더 많은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대했던 클라이맥스와 엔딩은 오히려 거의 숨이 넘어갈 정도로 그 호흡이 너무 빨라서 더 아쉬움이 컸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신뢰할 수 있고 편차가 별로 없는 작가인 건 분명하지만 지금까지는 대체로 B+에서 A- 정도에 머물렀던 느낌이라, 다음에는 확실한 A+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사족으로 두 가지만... 작품 중에 꽤 많은 노래가 등장하여 분위기를 설명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노래 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한 탓에 오히려 혼란만 가중됐다는 생각입니다. 노래 제목은 일종의 고유명사이니 원제 그대로 살렸어야 되지 않을까요?

또 하나는, 요즘 들어 영미권 소설이나 드라마에 한국 또는 한국인이 자주 등장하는데, 아직까지는 대체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도 짧지만 강렬하게 한국인에 대한 비호감이 드러나 있어서 아쉬웠습니다. 울컥하기도 했지만, 그게 현실일 수도 있으니 무작정 비난할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 다만, 맥락 상 굳이 그렇게 묘사 안 해도 되는데 일부러 강조까지 해가면서 비호감을 드러낸 점이나 여느 소설과 드라마보다 수위가 높았던 점은 무척 거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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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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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또는 국면 전환이 많아서 캐릭터나 내용을 조금만 설명해도 작지만 여러 개의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많은 작품입니다. 조금 애매하게, 간략하게만 소개하면...

 

연극 순회공연 중인 토비 플러드는 곧 이혼할 아내 제니를 만나기 위해 마지막 공연지인 브라이턴에 일행들보다 하루 먼저 도착합니다. 그런데 제니는 자기 주위에 이상한 남자가 맴돈다며 토비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이혼을 막고 싶었던 토비는 제니의 부탁대로 남자를 추궁하고 그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지만 그 남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제니 곁을 맴돌기 시작하고, 동시에 토비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비밀을 들려줄 테니 단둘이 만나자는 메시지를 보냅니다. 이후 토비의 주위에서 의문의 실종과 죽음이 연이어 벌이지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떠나려는 제니를 붙잡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토비에겐 악몽 같은 시간들이 닥쳐올 뿐입니다.

 

토비가 브라이턴에 머무른 일주일간의 이야기가 통시적으로 전개되면서 그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죽음들과 함께 어딘가 다분히 연극적인 느낌이 드는 비밀과 거짓말들이 횡행하지만, 좀처럼 몰입해서 읽기 편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구성은 다소 혼란스럽고, 조연들은 이야기 전개를 위해 편의적으로 배치된 느낌이고,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 비밀이라는 것도 그다지 뒤통수를 칠만한 내용은 아니었으며 그것을 캐내려는 주인공과 막으려는 악당의 대결도 긴장감이나 개연성 모두 다소 떨어져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아쉬움들은 주인공이 해결하야 하는 미션과 그것을 막아내야 하는 악당의 동기가 뚜렷하지 못한 탓입니다. 독자 입장에서 따라가고 싶은 떡밥이 눈에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는 무척 빠른 속도로 잘 넘어갔는데, 어렵지도 않고 나이브하지도 않은데다 사족 없이 확실하게 내용을 전달하는 깔끔한 문장들, 또 굳이 잔혹한 디테일 없이도 보는 사람을 서늘하게 만드는 표현력이 눈에 띄었습니다. 영국에서 인기 있는 작가이며 스무 권 이상의 작품을 출간했다고 하니 이만큼의 내공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한국에선 이 작품이 유일한 출간작입니다. 한번쯤은 더 만나보고 싶은 작가라 새 작품 소식이 곧 들려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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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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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작가들이 쓴 쓰리세컨즈를 읽고 어느 정도 만족했던 기억이 있어서 나름 기대를 갖고 비스트를 펼쳤습니다. 이왕이면 출간 순서에 맞춰 읽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찌어찌 하다 보니 데뷔작인 비스트를 나중에 읽게 됐습니다.

 

이야기는 의외로 심플합니다. 소아성애 연쇄살인범 벤트 룬드가 호송 중 탈주를 하고, 경찰이 허둥지둥 대는 사이 또다시 소녀를 강간, 살해합니다. 단서를 잡고 수사망을 좁히지만, 그들보다 한발 앞서 누군가 벤트 룬드를 응징합니다. 여기서부터 무능하고 물러터진 사법 체계개인의 복수에 대한 논쟁이 시작됩니다. 이후는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소개하겠습니다.

 

개인의 복수에 대한 이야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적어도 픽션 속에서라도 법망을 벗어난 악인에 대한 응징이 이뤄지면 속이 시원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법체계 개인의 복수의 논쟁이 시작됐을 무렵, 스웨덴의 두 작가는 어떤 결말을 내줄 것인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앞부분에서 다소 맥이 빠진 상태라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한 방을 기다려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뭐랄까... 좀 찜찜한 상태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됐습니다. 대략적인 느낌만 정리하자면...

쓰리 세컨즈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데, 그때 남겨놓은 메모를 보니 분량에 비해 안이하고 불필요한 설정이 많다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비스트는 그냥 많은 정도가 아니라 과하게 많은 편입니다.

주인공인 그렌스 경정과 스벤 형사는 분량도 적고, 하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그에 반해 교도소 특별감호구역을 맡고 있는 렌나트 오스카숀은 특별한 역할도 없는데 동성애자라는 성 정체성 묘사가 장황하게 펼쳐집니다. 교도소 내 실권자 릴마센과 그 일당 역시 허망한 엔딩 몇 페이지를 위해 괜히 여기저기 등장하면서 책의 두께만 늘려놓습니다. 교도소의 인물들이 등장한 이유?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어이없었던 점은 개인의 복수를 영웅 시 여기는 모방범들의 활약입니다. 작품의 의도를 강조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사족에 가까운 에피소드로 보였습니다. 좀 심하게 얘기하면, 위에 언급한 조연들이 모두 빠져도 이야기 전개엔 별 무리가 없습니다.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소아성애 연쇄살인범이 등장하고, 물렁한 사법 체계에 대한 비판과 개인의 복수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등 파괴력을 지닌 소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잘 요리하지도, 잘 소화해내지도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쓰리 세컨즈역시 비슷한 한계를 갖고 있긴 했지만, ‘비스트를 읽고 나니, 그나마 데뷔작 이후 많은 단점들이 보완됐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쉬움이 많이 남긴 했지만, 그래도 두 스웨덴 작가의 작품을 한 편쯤은 더 지켜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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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IN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살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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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다마키는 연애의 말살을 주제로 소설 ‘IN’을 쓰려 한다. 주인공은 1970년대에 발표된 미도리카와 미키오의 소설 무쿠비토에 등장하는 내연녀 O. 말하자면, 다른 작가가 창조한 소설 속 인물을 주인공 삼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겠다는 것. ‘무쿠비토는 불륜으로 인해 한 가정이 파괴되는 과정을 그린 사소설(私小說)인데, 불륜관계인 남편과 O코를 향한 아내의 광기와 싸움을 불쾌할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린 건 물론 등장인물 대부분을 실명으로 등장시켰던 작품. 이 소설에서 실명이 드러나지 않은 건 오직 O코뿐이었다. 다마키는 무쿠비토에서 두 번의 낙태를 겪고도 악질적인 가정파괴범으로만 그려진 O코가 현재 유부남 편집자와 사랑에 빠진 자신의 운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연민까지 느낀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대표작 ‘OUT’ 이후 무라노 미로 시리즈같은 미스터리는 물론 다마모에같은 순문학까지 대략 4~5편의 작품을 통해 기리노 나쓰오와 만나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가다라고 판단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작품을 읽진 못했지만, 재미와 의미가 균형감을 이루고 있어서 대체로 만족도가 높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처럼 좀 허망했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처음 읽은 ‘OUT’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IN’은 여러 가지로 기대를 많이 했던 작품입니다. 제목 자체만 보면 서로 연결된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연애의 말살을 다뤘다는 카피를 보곤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됐지만, 살짝 불온한 냄새를 풍기는 그 주제 역시 충분히 매력이 느껴졌고 호기심을 자극해왔습니다.

 

일본어 발음 ‘IN’으로 읽히는 한자들(, , , , )로 이뤄진 소제목들은 그 챕터에서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사뭇 궁금함을 자아냈고, 주인공 다마키가 무쿠비토에 등장한 내연녀 O코의 정체를 추적하는 대목도 소소한 미스터리 코드가 내재되어 있어서 흥미를 배가시켰습니다.

 

연애는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은밀하게 변질되어 간다. 부패해간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스가 차서 한꺼번에 폭발한다. 폭발한 뒤에는 두 사람 다 제각각 내동댕이쳐져 주위를 둘러보면 눈앞에 낯설고 거친 들판이 펼쳐진다.” (p76)

 

요약한 줄거리대로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이뤄지는데, 하나는 현실에서 각자 가정을 갖고 있는 소설가 다마키와 편집자 세이지 사이의 연애의 말살이고, 또 하나는 소설 속 소설인 무쿠비토에 등장하는 소설가 미키오와 그의 아내 치요코와 내연녀 O코 등 세 사람의 연애의 말살입니다. “정열적인 사랑의 끝에 그 흔적을 말살하려는 심리가 괴물적으로 비쳐진다.”라는 소개글대로 이 작품은 사랑이나 불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종료된 뒤의 서늘한 심리를 다룹니다. 그래선지 비슷한 소재를 갖고 치정 또는 복수를 그린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어딘가 심하게 구부러지고 왜곡된 듯한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다 읽은 뒤의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허전함이었습니다. “연애의 말살이란 서로를 상처내고, 타인 앞에서 모욕을 주고, 심지어 폭력까지 주고받다가 끝내는 기억 속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그런 과정의 종결이라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은 현실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씁쓸한 연애 뒤끝의 담론을 다소 어렵고 복잡하게 풀어간 이야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허구와 현실을 오가며 사람들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영향을 미친다.” 라는, 몇 번씩 반복적으로 강조된 주제의식도 거북했고, 두 이야기의 접점을 위해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을 엮은 것도 작위적으로 보였습니다. 환영(幻影)과 예지현상까지 벌어지는 부분에선 솔직히 집중도가 많이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기대가 컸던 탓인지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은 작품입니다. 소재는 흥미로웠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저와는 잘 맞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직 읽어야 할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이 많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미스터리 혹은 장르물에서 그녀의 미덕을 만끽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이라면 장르를 불문하고 일단 궁금함과 호기심을 접지는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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