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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평점 :
새로 태어난 초인류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보고를 접한 미국 대통령은 극비리에 용병을 투입하여 아직 맹아기에 있는 초인류를 제거하기로 합니다. 초인류는 물론 그들과 함께 있는 인류학자까지 사살하라는 지시를 받은 용병 조너선 예거는 팀원들과 함께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에 잠입하여 위험천만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한편, 급사한 아버지의 이메일 유언에서 충격적인 메시지를 접한 약학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아버지가 연구하던 신약 개발을 비밀리에 진행하던 중 밀림 속에서 예거와 접촉하게 됩니다. ‘누스(NOUS)’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초인류 남매인 아키리와 에마와 마주한 예거는 그들의 특별한 능력에 경악하는 한편,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읽어야지 하다가 결국 해를 넘겨서야 ‘제노사이드’를 읽게 됐습니다. 워낙 화제작인데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다른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습니다.
제목인 ‘제노사이드’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이 작품은 ‘특정 집단을 절멸시킬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를 다룹니다. 다만, 인종, 종교, 영토 등 고전적인 목적의 학살이 아니라 인류를 굴복시키거나 심지어 멸망시킬 수도 있는 새로운 초인류의 절멸이 목표라는 점에서 단순한 대량학살 이상의 의미와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더 나은 종이 되기 위한 진화, 더 많은 것들을 갖기 위한 다른 종을 향한 대량학살 등 인류가 오랜 시간동안 반복적으로 수행해 온 ‘미션’들을 토대로 작가는 초인류 또는 신인류에 의한 현생 인류의 절멸 가능성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 상상력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루한 논쟁만 반복될 수 있는 소재에 액션, 첩보, 스릴러, 미스터리 코드를 가미함으로써 작가는 ‘제노사이드’를 소름끼칠 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냈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는 예거, 겐토(와 그의 아버지), 초인류를 보호하는 인류학자 등 작가가 ‘선한 인류’로 내세운 캐릭터들에게 공감하고 이입하며 책을 읽겠지만, 현생 인류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려는 미국대통령을 지지하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제노사이드’에서 그려진 초인류는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동등하고 공정하게 대해야 할 동반자 아니면 애초에 싹을 잘라야 하는 위험한 존재인 겁니다. 작가의 의도는 분명 전자 쪽으로 확실히 기울어있지만, 개인적으론 좀더 논쟁을 붙이는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됐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초인류의 문제가 현실이 된다면, 모르긴 해도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갈리지 않을까요?
어지간해선 과학이나 SF 설정이 들어간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제노사이드’는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가상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혔습니다. 과학, 의학, 액션, 첩보 등 방대한 분야에 대한 작가의 자료조사도 대단했고, 무엇보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을 조금도 빈틈없이 직조한 필력이 놀라웠습니다.
다만,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이, 심하게 말하면, 엉망으로 편집됐다는 게 너무 속상했습니다. 사방에 오타가 너무 많아서 읽는데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처음엔 메모지에 기록을 하다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허탈한 나머지 그만두고 말았는데, 나중에 나올 개정판에서는 제발 이 말도 안 되는 오류들이 바로 잡히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