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비스데이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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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카와 미나토는 2010년 전후쯤 단편집 꽃밥을 통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당시 남겨놓은 짧은 메모를 보면, “이야기 자체가 참 독특해서 이 작가의 다른 작품에도 관심이 간다.”, “죽음과 영혼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풀 수도 있구나.”라는 짧은 평이 적혀있습니다.

 

오늘은 서비스데이도 그 맥락을 이어간 작품입니다. 표제작인 중편 오늘은 서비스데이는 천사와 악마가 동시에 나타나 오늘 하루는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이라며, 주인공에게 소원을 빌어보라고 권하며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려나가자 잠시 기분이 좋았지만, 한순간 자기도 모르게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큰 재앙을 겪게 되면서 마냥 행복할 것 같던 그의 서비스데이는 엉망진창이 되기 시작합니다. 물론 엔딩은 해피하게 마무리되지만, 재미있는 한 편의 로망 소동극을 본 느낌입니다.

 

그 외에 실제 사건 사고와 관련된 소품들을 자랑하는 모임에 우연히 참석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도쿄행복클럽’, 오래된 아파트에 손목의 형태만 남아있는 루리코라는 유령의 이야기를 다룬 창공 괴담’, 사후 세계에 도착했다가 망각의 강을 건너기 직전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푸르른 강가에서등이 실려 있습니다.

 

슈카와 미나토의 장편이 어떤 느낌일지는 잘 감이 안 잡히지만, 적어도 단편에 관한 한 탁월한 재주를 지닌 작가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깊이라고 할까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점에서는 좀 약한 듯 하고(물론 그렇지 않은 단편도 있지만), 대체로 소동극의 색채가 강하다는 게 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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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녀에 얽힌 살인 고백
사토 세이난 지음, 이하윤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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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이자 아동상담소 소장인 쿠마베는 친구를 통해 아동학대 피해자 아키를 소개받습니다. 상담 도중 미심쩍은 부분이 생긴 그는 직접 가정 조사에 들어가는데, 아키의 어머니인 키미에로부터 학대의 주범이 그녀 자신이란 고백을 듣습니다. 쿠마베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웃과 주변을 상대로 좀더 깊은 조사를 시도하지만, 대부분 아키 가족과 등을 진 이웃들은 쿠마베에게 냉소적인 반응만 보일 뿐입니다. 그러던 중 키미에의 내연남이 쿠마베에게 폭력을 휘두르곤 아키를 끌고 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키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쿠마베는 어느 날 한 남자아이로부터 (아키의 일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의문의 전화를 받습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고백이란 것은 그것이 자신의 행동임을 털어놓는 일인데, ‘얽힌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탓에 살인의 대상이 소녀인지 아닌지 무척 모호해지는, 그야말로 제목 자체가 많은 의문을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분명 소녀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상 쉽고 편한 마음으로 읽어낼 수 없는 고통스러운 이야기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된 바였습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터뷰어가 아동학대를 당하면서 성장한 아키의 유년기에 대해 여러 사람에게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아키가 우여곡절 끝에 들어갔던 아동상담소의 쿠마베 소장, 아키를 도와줬던 남자친구, 아키의 담임교사, 의사 등 아키 주위에 머물렀던 많은 사람들이 시차를 두고 ‘10년 전 그날 그 사건에 대해 회상합니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아키가 겪은 불행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모두가 감춰온 또는 모른 척 해온 비밀과 거짓말들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적잖은 강도의 반전과 함께 출판사 소개글대로 슬프고도 무서운 결말에 이릅니다.

 

이야기는 촘촘하게 잘 짜였고, 인터뷰 대상인 인물들의 캐릭터나 배치도 기승전결에 따라 흥미롭게 이루어졌습니다. 다만, 소재와 형식 때문인지 미스터리로서의 긴장감은 조금 약합니다. 오히려 읽는 동안 조금은 불편하고 화가 난다고 해야 하나... 아무래도 아동학대를 비롯하여 어린이가 피해자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불편함과 불쾌함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론 그런 이유 때문에 영화 도가니를 보지 못할 정도였으니 이 작품 역시 수시로 덮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단순한 돌직구처럼 아동학대 자체를 다룬 작품이란 뜻은 아닙니다)

 

오래 전 처음 읽은 후에 남겨놓은 메모를 보니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꼭 찾아서 읽어볼 것이라고 돼있습니다. 아쉽게도 인터넷서점에는 사토 세이난의 작품이 이 작품밖에 없는데, 언젠가 새 작품이 출간된다면 다짐한대로 꼭 찾아 읽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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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레이드 호텔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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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건의 연쇄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의문의 숫자들을 분석한 경찰은 다음 사건 현장이 야경으로 유명한 한 고급호텔이라고 추정하고 잠복근무에 돌입한다. 프런트 직원으로 위장한 닛타 고스케는 베테랑 호텔리어 야마기시 나오미의 지시를 받지만 두 사람은 수사 기간 내내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인다. 수사는 뜻대로 풀리지 않고 호텔을 찾아오는 다양한 투숙객을 상대하며 서서히 지쳐갈 즈음 닛타 형사는 호텔 연회장에서 결혼식을 앞둔 신부에게서 불길한 조짐을 포착한다. 하지만 뭔가 확실한 단서 하나 잡히지 않는 가운데 예고된 살인 날짜가 시시각각 다가온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언젠가 중고책 직거래 때문에 만난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은 무조건 사서 읽는데, 미야베 미유키는 작품마다 좀 들쑥날쑥 해서 일단 여기저기 물어보고 구입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 전 그 반대인데...”

일본 미스터리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이 두 작가 때문이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에 대한 신뢰와 애정은 깊어진 반면, 히가시노의 경우 가끔씩 헉 소리가 나오게 하는 경우가 잦아졌습니다.

 

매스커레이드 호텔을 손에 쥐고도 잠시 고민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반쯤 읽었을 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양하고 개성 강한 호텔 손님들의 행태를 보여주는 신참자호텔 버전인가 싶기도 했고, 어떤 대목에선 주객이 전도된 듯 경찰이 잠복근무를 하게 된 호텔 이야기같기도 했습니다. (“온갖 군상이 등장하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는 인터넷서점 소개글이 정말 공감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스터리의 긴장감은 갈수록 옅어졌고, 중후반에서야 뭔가 일이 벌어지려나, 했지만, 딱히 만족스럽진 못했습니다. 범인이 남긴 트릭도 히가시노의 작품이라기엔 좀 어설프거나 억지스러웠습니다. 물론 막판에 나름 이리저리 꼬아서 긴장감을 주긴 했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별 세 개 이상은 못 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히가시노가 작품 수에 대한 욕심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읽고 나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던 전작들처럼 좋은 작품들을 써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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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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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난 초인류가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보고를 접한 미국 대통령은 극비리에 용병을 투입하여 아직 맹아기에 있는 초인류를 제거하기로 합니다. 초인류는 물론 그들과 함께 있는 인류학자까지 사살하라는 지시를 받은 용병 조너선 예거는 팀원들과 함께 아프리카 콩고의 밀림에 잠입하여 위험천만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한편, 급사한 아버지의 이메일 유언에서 충격적인 메시지를 접한 약학 대학원생 고가 겐토는 아버지가 연구하던 신약 개발을 비밀리에 진행하던 중 밀림 속에서 예거와 접촉하게 됩니다. ‘누스(NOUS)’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초인류 남매인 아키리와 에마와 마주한 예거는 그들의 특별한 능력에 경악하는 한편,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마주하면서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읽어야지 하다가 결국 해를 넘겨서야 제노사이드를 읽게 됐습니다. 워낙 화제작인데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다른 작품들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습니다.

제목인 제노사이드의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이 작품은 특정 집단을 절멸시킬 목적으로 그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를 다룹니다. 다만, 인종, 종교, 영토 등 고전적인 목적의 학살이 아니라 인류를 굴복시키거나 심지어 멸망시킬 수도 있는 새로운 초인류의 절멸이 목표라는 점에서 단순한 대량학살 이상의 의미와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더 나은 종이 되기 위한 진화, 더 많은 것들을 갖기 위한 다른 종을 향한 대량학살 등 인류가 오랜 시간동안 반복적으로 수행해 온 미션들을 토대로 작가는 초인류 또는 신인류에 의한 현생 인류의 절멸 가능성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 상상력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루한 논쟁만 반복될 수 있는 소재에 액션, 첩보, 스릴러, 미스터리 코드를 가미함으로써 작가는 제노사이드를 소름끼칠 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냈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는 예거, 겐토(와 그의 아버지), 초인류를 보호하는 인류학자 등 작가가 선한 인류로 내세운 캐릭터들에게 공감하고 이입하며 책을 읽겠지만, 현생 인류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려는 미국대통령을 지지하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제노사이드에서 그려진 초인류는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동등하고 공정하게 대해야 할 동반자 아니면 애초에 싹을 잘라야 하는 위험한 존재인 겁니다. 작가의 의도는 분명 전자 쪽으로 확실히 기울어있지만, 개인적으론 좀더 논쟁을 붙이는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됐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초인류의 문제가 현실이 된다면, 모르긴 해도 찬반 여론이 팽팽하게 갈리지 않을까요?

 

어지간해선 과학이나 SF 설정이 들어간 미스터리와 스릴러를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제노사이드는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가상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혔습니다. 과학, 의학, 액션, 첩보 등 방대한 분야에 대한 작가의 자료조사도 대단했고, 무엇보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을 조금도 빈틈없이 직조한 필력이 놀라웠습니다.

 

다만, 이렇게 매력적인 작품이, 심하게 말하면, 엉망으로 편집됐다는 게 너무 속상했습니다. 사방에 오타가 너무 많아서 읽는데 집중하기가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처음엔 메모지에 기록을 하다가 그 정도가 너무 심해서 허탈한 나머지 그만두고 말았는데, 나중에 나올 개정판에서는 제발 이 말도 안 되는 오류들이 바로 잡히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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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시에이션 러브
이누이 구루미 지음, 서수지 옮김 / 북스피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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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LP판을 등장시킨 것처럼, 책 내용은 크게 Side ASide B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전개 양상은 좀 다르지만 고전영화 젊은이의 양지를 연상시키는 멜로 관계가 펼쳐집니다. 20대 초반에 만난 첫사랑과 애틋한 원거리 연애를 하던 도쿄의 한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난 예쁘고, 돈 많고, 고학력인 완벽녀 때문에 갈등합니다. 그런데 때마침 첫사랑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오자 남자는 낙태가 됐든 이별이 됐든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를 배신하고 싶은 마음을 싹틔웁니다.

 

이 작품의 기본 틀은 연애소설입니다. 읽는 내내 뒷표지의 카피 연애소설과 미스터리의 완벽한 조화를 기대했는데, 미스터리는 실종된 채 결국 마지막 장을 덮을 땐 연애소설 그 자체로 끝난 줄 알았습니다. 뒷부분에 실린 해설을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찾을 범인도 없고, 특별한 미스터리도 없고, 그래서 별 생각 없이 다 읽었는데 해설을 보고서야 이 작품이 서술트릭 미스터리였다는 걸 알게 됐다는 얘깁니다. (출판사도 서술트릭이라고 대놓고 홍보하고 있으니 스포일러라고 여기진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제야 복기해보면, “그래, 그때 뭔가 좀 위화감이 느껴졌지.”라는 대목들이 분명 있습니다. 작가가 독자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기 위해 얼마나 꼼꼼히 준비했는지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어지간한 서술트릭이 아니면 좀처럼 반하지 않는 취향이다 보니 해설을 봐야 파악할 수 있는 허술한 서술트릭의 정체에 감탄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왔습니다.

 

미스터리를 탐독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일부 서술트릭 작품에 매료된 적도 있었습니다. 작가가 작정하고 독자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경우 정말 눈에 불을 켜고 숨겨진 트릭을 찾아내려고도 해봤습니다. 다만,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처럼 많은 독자들이 최고의 서술트릭으로 손꼽는 작품에 아무런 감흥이 없던 적도 있었고, 반대로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작품 가운데 매력적으로 읽은 작품도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서술트릭 자체가 싫은 건 아닌데 작품에 따라 만족도의 편차가 컸던 셈입니다. ‘이니시에이션 러브는 처음부터 서술트릭이란 걸 모르고 읽은 탓도 있지만, 다 읽고도 서술트릭 자체를 인지 못한 것은 저의 오독 때문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전략과 전술이 그만큼 허술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서술트릭이란 걸 공개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미리 공개해야 그나마 독자가 배신감(?)을 덜 느끼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야 평범해 보이는 연애소설 속에서 트릭을 찾는 재미라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출판사가 서술트릭임을 공개하고 홍보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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