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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ㅣ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3년 3월
평점 :
시마다 소지가 창조한 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가 활약하는 네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는데, 시간적으로는 ‘점성술 살인사건’을 해결한 1979년부터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는 시기가 배경입니다. 나름 인정받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론 ‘점성술 살인사건’ 밖에 만나보지 못한 시마다 소지입니다.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용와정 살인사건’ 등 중고서점을 통해 구입한 작품들은 많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읽지 못한 상태에서 우연히 최신간인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부터 읽게 됐습니다. 아직까지 이만한 혹평을 쓴 적이 없어서 여러 가지로 유감스럽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감이 컸기에 앞뒤 안 가리고 일단 느낀 그대로를 써볼까 합니다.
① 숫자 자물쇠
1979년 크리스마스 무렵, 무례하고 버릇없는 미타라이 기요시가 사건 해결 과정에서 친구를 감동시켰다는 이야기. 정작 사건은 평범했고, 결과는 감동을 줄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그런데, 제목으로 쓰인 ‘숫자 자물쇠’는 사건 해결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였는데, 그에 대한 미타라이의 ‘허접한’ 추리를 보면서 어이가 없어 웃음도 나오지 않았던... 혹시 무슨 말장난이라도 숨어있나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바보 취급’ 당했다는 느낌을 받은 독자는 비단 ‘나’만은 아닐 듯... 첫 작품부터 맥이 풀리는 바람에 계속 읽어야 하나, 잠시 고민...
② 질주하는 사자
파티장에 함께 있던 사람이 갑작스런 정전 직후 방을 뛰쳐나갔고, 잠시 후 고가선로에서 열차와 충돌한 사체로 발견.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연출되지만 미타라이가 보란 듯이 해결하는 이야기. 하지만, 그가 범인을 지목하며 설명한 범행 수법은 ‘숫자 자물쇠’처럼 억지 혹은 끼워 맞추기였던... 말하자면 결과를 정해놓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미타라이는 증거나 개연성에 대한 설명 없이 단지 ‘추측’만으로 복잡다단한 범죄과정을 코앞에서 지켜본 것처럼 설명.
③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어김없이 등장하는 미타라이의 ‘설명 불가능한 초능력’. 미스터리라기보다는 한 편의 해학적인 콩트 같은... 그 덕분에 앞서 두 편에 비해 ‘배신감’은 덜 들었지만, 여전히 분노의 게이지는 내려가지 않는... 이제 한 편 남았음.
④ 그리스 개
그나마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사실감이 ‘조금’ 준수하긴 했지만, 여전히 결과를 정해놓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형식은 전작들과 동일. 훨씬 더 쉬운 방법으로 목적을 이룰 수 있었던 범인들이 ‘미타라이의 천재성을 입증해주기 위해’ 일부러 몇 배는 더 힘든 범행 수법을 고안해낸 것 같아 오히려 동정심(?)이 들었던...
시마다 소지가 이 작품을 통해 대단한 미스터리나 뒤통수치는 반전을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 제목처럼, 독자들이 무례하고 버릇없는 미타라이 기요시와 친해질 수 있게끔 그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한 것처럼 보입니다. 더불어 세계 정상급의 뮤지션을 압도할 정도의 기타 연주력 등 미타라이의 개인기를 보여줄 수 있는 상황들을 의도적으로 설정한 것도 눈에 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는 ‘탐정의 사건 해결記’인 만큼 미스터리의 덕목은 갖춘 상태에서 작가의 의도를 담아냈어야 합니다. 물론, 단편이 갖는 스케일이나 깊이에 있어서의 한계도 충분히 고려했지만, 네 편의 수록작은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품질’ 자체에 하자가 있다고밖에 얘기할 수가 없습니다.
‘점성술 살인사건’을 읽은 지도 꽤 오래 전 일이라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미타라이 기요시가 특이하고 버릇없긴 해도 사소한 단서 하나도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 꼼꼼한 캐릭터였다는 점, 과장됐긴 해도 그 박학다식함이 작위적으로 여겨지진 않았다는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었는데, 오히려 그의 ‘인사’를 읽고 나니, 그 추억들이 전부 안 좋은 쪽으로 변질돼버린 것 같습니다.
언젠가 시마다 소지의 작품들을 쌓아놓고 한편씩 음미할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물론 그의 명성이 결코 헛되이 쌓이진 않았을 테니 이런 독후감을 느낄 일은 없겠지만) 왠지 맥 빠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