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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울음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작년(2012년) 이맘때 ‘유리고코로’를 통해 누마타 마호카루와 처음 만났습니다. 읽는 내내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을 보고 있는 듯, 또는 포토샵으로 일부러 가장자리를 부옇게 뭉개버린 사진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모호함보다는 묵직함이, 찜찜함보다는 깊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녀의 작품 가운데 ‘9월이 영원히 계속되면’과 ‘그녀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는 새들’을 아직 읽진 못했지만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나 서평들을 보면 일관된 톤을 유지해온 것 같은데, 그런 누마타 마호카루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하니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크게 연작 형식의 세 편으로 구성돼있습니다. ‘새끼 고양이’에서는 주인공인 고양이 몽이 노부에와 도지 부부의 집에서 살게 된 계기를 보여줍니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했으나 결국 유산을 겪어야만 했던 노부에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든 새끼 고양이를 몇 번이고 내다버리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식구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절망이라는 블랙홀’에서 고양이 몽은 조연으로만 등장합니다. 대신 중학생 유키오와 또 다른 새끼 고양이의 짧은 만남이 펼쳐집니다. 자신보다 19살 밖에 많지 않은 ‘말없는 아버지’와 단 둘이 살면서 유키오는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점점 수렁 속으로 빠져듭니다. 힘없고 약한 존재에게 무한한 살의를 느끼게 되고 심지어 스스로의 삶에 대해서도 회의를 갖게 됩니다. 하지만, 기구한 인연으로 만난 새끼 고양이 덕분에 겨우 그 수렁에서 빠져나옵니다. 그리고 어느새 5살이 된 고양이 몽을 목격하게 됩니다.
‘멋진 이별’에서 고양이 몽은 15살이 된 ‘할아버지 고양이’가 되어 있습니다. 몽을 집안에 들였던 노부에도 7년 전에 죽었고, 이제 몽은 칠순이 다 된 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습니다. 죽음이 멀지 않은 나이에 이른 도지는 점점 기력을 잃고 병치레까지 하게 된 몽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세 편의 이야기에서 일관되게 언급되는 테마는 ‘삶과 죽음’입니다. 몽을 내다버리려 했던 노부에는 ‘버리는’ 행위 자체를 뱃속에서 죽은 자신의 아이를 장례 치르는 것과 동일시합니다. 번외편 같은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유키오는 좀더 노골적인 모습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리고 그의 삶속에 느닷없이 끼어든 새끼고양이는 그의 혼란을 종식시켜주곤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몽의 마지막 5년을 그린 세 번째 이야기는 전형적인 삶과 죽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조금은 신파의 느낌이 들 정도로 몽과 도지의 이별을 묘사합니다.
사실, 다른 어떤 것보다 ‘지하철에서 읽지 말라’는 홍보 문구가 끌렸습니다. 제대로 한번 울어볼까, 라는 욕심(?)도 들었고, 그것이 누마타 마호카루의 책이라고 하니 기대감도 높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울 준비’를 한 탓인지, 정작 울컥 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좀 억울하긴 했지만, 누마타 마호카루의 독특한 문체를 생각해보면 그녀의 책을 읽으며 울컥 하기란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듯 보이지만 실은 냉정하게 거리감을 두고 있고, 간혹 판타지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심리묘사 덕분에 깊은 감정이입이 쉽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소설 속으로 절대 푹 빠져들지 못하게 하는 누마타 마호카루만의 특이한 장치들이 곳곳에서 눈물샘을 막았다고나 할까요?
세 번째 이야기의 부제인 ‘멋진 이별’은 역설적인 제목입니다. 어쩌면 ‘고양이 울음’은 작품 전체가 역설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삶과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절망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버려져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새끼 고양이의 생환과 성장기를 바탕으로 10대가 겪는 절망, 40대의 불임과 임신과 유산, 70대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회고하는 일상이 한데 버무려져 있습니다. 귀여운 고양이가 그려진 표지 자체도 역설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옮긴이의 말에 다르면, 신조어 만들기가 유행인 일본에서 누마타 마호카루는 イヤミス(이야미스)의 대표작가라고 합니다. ‘싫다’라는 뜻의 イヤ와 미스터리의 ミス를 합친 말로, 말하자면 다 읽고 났을 때 기분이 나쁘거나, 찜찜한 느낌을 주는 미스터리를 뜻합니다.
‘고양이 울음’은 미스터리가 아니다보니 ‘이야미스’의 범주에 들어가진 않겠지만, 어쨌든 편하고 밝은 기분으로 마지막 장을 덮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몽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도지 외에는 대부분 크고 작은 그늘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어쩌면 다 읽은 후 ‘싫다’라는 느낌이 드는 독자도 적잖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삶과 죽음’에 대해 너무 거창하거나 철학적이지 않되, 묵직하고 담담하게 포장된 이야기를 읽고 싶어진다면 누마타 마호카루의 ‘고양이 울음’이 제격이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