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케이지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2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스트로베리 나이트이후 히메카와 레이코를 다시 만나게 됐습니다.

그 사이 여러 권의 후속작이 나왔지만 어쩌다 보니 이제야 2편을 읽게 됐네요.

스트로베리~’에서 처음 만난 히메카와 레이코의 첫 인상이 워낙 강한데다

사건이나 해결 과정이 독특해서 혼다 테쓰야의 팬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만난 히메카와 레이코는 스트로베리~’와는 색깔이 완전히 다른,

좀더 묵직하고 진중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습니다.

 

● ● ●

 

버려진 차 안에서 잘린 손목이 발견되면서 시신 없는 살인사건 수사가 시작됩니다.

직감 역시 중요한 수사방식 중 하나라고 여기는 히메카와 레이코와

증거 외에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쿠사카 마모루가 경쟁하듯 수사를 펼쳐나가고,

그 과정에서 피살자 및 주변 참고인들의 과거가 하나둘씩 드러납니다.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니라 과거의 복잡한 사연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

당연하다고 파악됐던 사실들이 실은 정반대의 진실을 갖고 있다는 점 등

수사가 진행될수록 히메카와와 쿠사카 앞에는 미궁만이 쌓여갈 뿐입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끝에 결국 진실에 도달하긴 하지만,

그것은 가슴 아픈 가족사와 불행했던 한 남자의 삶이 빚어낸 안타까운 사연들이었고,

범인을 찾아내고도 기뻐할 수 없는,

아니, 오히려 마음 한쪽에 무거운 추를 매단 듯 씁쓸한 얼굴로 돌아설 수밖에 없는,

그런 엔딩을 맞이하게 됩니다.

 

● ● ●

 

스트로베리~’가 잔혹함과 독특함으로 기억되었다면

소울케이지는 묵직함과 진정성으로 기억될 작품입니다.

피로 범벅이 된 연쇄살인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비상한 두뇌로 무장한 소시오패스가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수사 기법 역시 집요한 탐문 외에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무모할 정도로 헌신적이었던 두 라이벌 형사의 노력 때문이었습니다.

기교나 얄팍한 꾀를 쓰기보다는 각자의 소신과 수사법을 동원한 덕분에

그들은 사건의 이면에 놓여있던 수많은 과거의 진실들과 만나게 되었고,

궁극적으로는 선의의 경쟁이 사건 해결을 앞당긴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스트로베리~’에서 만난 히메카와가 어딘가 꾸며진 초보 여형사의 느낌을 주었다면,

소울케이지의 히메카와는 어느새 제대로 된 팀장으로 훌쩍 성장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더불어, 혼다 테쓰야가 설정한 불행한 한 남자의 삶과 그에 얽힌 여러 가족의 비극은

복잡한 외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작위적이거나 억지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실이 드러날 때마다 그동안 궁금하게 남아있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채워지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일본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대사 중 하나가 너를 지켜주겠다입니다.

소울케이지역시 캐릭터는 물론 스토리 전체가 이 한마디를 테마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특히 그 대상이 가족일 때는 그 한마디의 진정성이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무거워집니다.

 

스트로베리~’의 잔혹함과 독특함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묵직한 뒤끝과 금세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여운 덕분에 기대 이상의 독후감을 얻게 되었고,

1-2년 쯤 후에는 다시 한 번 소울케이지를 책장에서 꺼내보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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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요시키 형사 시리즈 2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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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5년 만에 걸려온 전처 미치코의 전화 때문에 마음이 산란했던 요시키는 다음날, 그녀가 탔던 열차 유즈루에서 한 여인의 사체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랍니다. 다행히 미치코가 화를 입은 건 아니었지만 문제는 미치코의 좌석에서 참혹한 사체가 발견됐으며 무슨 이유에선지 행방을 감춰버린 미치코가 용의선상에 올랐다는 점입니다. 특히 범행현장에 미치코가 좋아했던 학을 본떠 만든 공예품이 놓여있던 점은 요시키를 깊은 의문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혼 후 미치코에게 닥친 불행이 모두 자기 탓이라고 여기는 요시키는 그녀의 혐의를 벗겨주겠다는 생각에 연휴를 이용하여 수사를 펼치기로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사체가 발견되면서 진범 찾기와 미치코 찾기를 병행해야 하는 요시키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집니다.

 

요시키 시리즈첫 편인 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을 마치자마자 시리즈 3편인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을 읽었습니다. ‘요시키 시리즈에 흥미가 끌려 두 편을 연달아 읽었지만 두 작품 모두 기대한 만큼의 만족감을 얻진 못했습니다. 짧게 요약하면, 형사 이전에 한 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 덕분에 주인공 요시키의 캐릭터는 무척 매력적으로 읽혔지만 그의 수사와 사건해결 방식은 무리수가 많았다는 생각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전처 미치코의 혐의를 벗기기 위해 전력을 다 하는 요시키의 진심어린 분투입니다. 유능한 형사지만 그 이면에 불행한 가정사를 품고 있는 요시키가 살인용의자로 몰린 전처 미치코에게 느끼는 죄책감과 책임감은 한없이 무겁고 안쓰러워 보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무게만큼의 진심으로 진범 찾기에 나서는 요시키의 각오는 클라이맥스와 엔딩에서 맛볼 카타르시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켜줍니다.

하지만 이처럼 매력적인 요시키의 캐릭터와 달리 이야기의 뼈대인 미스터리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웠습니다. 새삼 같은 말을 반복할 것도 없이 앞서 읽은 침대특급~’의 서평 일부를 그대로 인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범행 과정은 저게 가능해?’라는 의문을 자아낼 정도로 작위적입니다. 적잖은 발품과 탐문에도 불구하고 결국 요시키의 비약적인 추리로 마무리된 점 역시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트릭은 비현실적, 사건해결은 지나치게 초인적이라고 할까요?“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언급하자면, 이번 작품에서 요시키가 밝혀낸 트릭은 시마다 소지의 또 다른 주인공 미타라이 기요시가 이미 한번 밝혀낸 적이 있는 수법입니다. 어느 작품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같은 작가가 동일한 트릭을 복사해놓은 것을 읽는 건 꽤 불쾌한 경험이었습니다. 그 자체가 워낙 뛰어난 트릭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거니하겠지만, 도무지 현실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억지 설정이라 실망감이 더 배가된 것 같습니다.

 

혹평을 하긴 했지만 북의 유즈루~’가 나름 미덕을 갖춘 작품인 건 인정합니다. 진정한 형사이자 멋진 남자 요시키의 고생담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졌고, 머리 좋은 작가만이 꾸며낼 수 있는 미스터리 설정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다만, 원 맨 플레이에 가까운 비약적인 수사과정과 감탄보다는 의문과 황당함을 자아내는 트릭들이 이야기의 장점을 심하게 손상시켰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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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특급 하야부사 1/60초의 벽 요시키 형사 시리즈 1
시마다 소지 지음, 이연승 옮김 / 해문출판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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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지즈코라는 여인이 얼굴 피부가 벗겨진 채 핏물로 가득한 욕조 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됩니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지만, 피살 추정 시간에 침대특급 하야부사 열차에서 그녀를 목격한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집니다. 요시키는 지즈코가 일하던 술집을 시작으로 집요한 탐문을 통해 나름 추리의 방향을 세우지만, 두 번째 희생자가 나타나자 망연자실해 합니다. 지즈코의 과거에 주목한 요시키는 오지나 다름없는 그녀의 고향을 찾았다가 불행하고 비극적인 가족사를 알게 됩니다. 이후 요시키는 선배 나카무라의 조언으로 침대특급 하야부사를 직접 타보게 되고, 그 여정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게 됩니다.

 

점성술 살인사건이후 별 재미(?)를 못 봤던 시마다 소지의 작품을 오랜만에 집어 들었습니다. 최근작이자 화제작인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를 아직 못 읽은 상태에서 이 작품을 먼저 택한 것은 요시키 시리즈를 첫 편부터 읽고 싶은 생각에서였습니다.

 

시마다 소지의 팬이라면 그가 창조한 두 주인공 미타라이와 요시키를 비교하고 싶어질 것입니다. 외모나 사건을 추적하는 방식 모두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인물들이라 저절로 비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천재과에 속하는 미타라이에 비하면 요시키는 묵직하고 집요한 돌직구 스타일입니다. 미타라이의 수사과정을 지켜보면 기상천외한 추리에 감탄하다가도 기어이 잘난 체 하는 마지막 한마디 때문에 얄미워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요시키의 탐문과 추리는 답답함을 불러일으키거나 심지어 한 대 걷어차 주고 싶을 만큼 미련스러울 뿐입니다. 그만큼 꼼꼼하고 세밀한 캐릭터라는 뜻인데,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면 지름길을 곁에 두고도 기어이 먼 길을 돌아갈 것을 택하는 것이 요시키의 수사법입니다.

 

요시키의 캐릭터와 함께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열차 여행에 관한 내용입니다. 침대특급 하야부사는 말할 것도 없고, 지즈코의 고향을 찾는 요시키의 오지 열차 여행 역시 영상이 저절로 그려질 정도로 매력적인 장면들입니다. 일본의 철도 시스템이 거미줄처럼 복잡하면서도 오지 곳곳까지 뻗어있고, 도시락이나 온천, 유적지 등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지만, 요시키의 여행 장면은 마치 일본 철도여행 홍보글로 착각될 만큼 맛있게쓰여 있어서 언제고 한번은 침대특급 하야부사나 오지를 달리는 작은 열차를 타보고 싶게 만듭니다.

 

하지만 미스터리에 관한 한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죽은 여인이 열차에서 목격된 미스터리의 해법은 다소 억지 같았고, 범행 과정은 저게 가능해?”라는 의문을 자아낼 정도로 작위적입니다. 적잖은 발품과 탐문에도 불구하고 결국 요시키의 비약적인 추리로 마무리된 점 역시 대단원에 대한 기대감을 품었던 독자들에겐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트릭은 비현실적, 사건해결은 지나치게 초인적이라고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미타라이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이런 아쉬움을 자주 느끼곤 했는데, 캐릭터는 정반대지만 요시키 역시 비슷한 스타일로 전개될 것만 같아 심히 걱정이 됩니다.)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미덕들이 골고루 잘 배분되어 한 번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고,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본능이 빚어낸 범행 동기 역시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진정성 있는 캐릭터들 덕분에 읽는 내내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인 작품임엔 틀림없다는 생각입니다. 미스터리 자체만 현실감을 지녔더라면 충분히 별 5개를 받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사실, 이 서평을 쓰기 전에 요시키 시리즈세 번째 작품인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을 읽었습니다. 별도로 서평을 쓰긴 하겠지만, 이 작품에서 느낀 아쉬움이 조금은 더 두드러져 보였습니다. 많은 독자가 호평한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요시키 시리즈’ 10)를 읽고 나면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계속 하향세를 그리고 있는 시마다 소지에 대한 매력이 점성술 살인사건만큼 회복될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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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컵을 위하여
윌리엄 랜데이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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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살의 제이컵이 동급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자 검사인 아버지 앤디 바버는 아들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변호사 조너선을 비롯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백방으로 뛰어다닙니다. 기소 이후 재판에 이르기까지 몇 달 동안 제이컵의 가족은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앤디는 꼭꼭 숨겨왔던 불행한 자신의 가족사가 들춰진데다 그것이 제이컵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게 되자 큰 충격에 빠집니다. 권력지향적인 후배 검사 라주디스는 제이컵의 유죄를 입증하는 것은 물론 유능한 선배인 앤디 바버의 검사로서의 이력을 끝장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재판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주진 않습니다.

 

책을 꽤 빨리 읽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같은 분량의 작품에 비해 완주하는데 거의 두 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700페이지에 육박하는 책들이 드물지 않은 요즘 580페이지라면 부담스러운 분량은 아니지만, 워낙 무거운 내용인데다 편집도 빡빡해 보일 정도로 촘촘했고, 문학적인 표현을 통한 심리 묘사가 적잖은 양을 차지하고 있어 다 읽고 난 후 느낀 체감 페이지는 거의 1,000페이지에 달했습니다.

 

제이컵을 위하여는 단순히 범인 혹은 진실을 찾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또한 누명을 쓴 아들을 구해내는 용감한 부모의 투쟁기도 아닙니다.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재판 과정에 할애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전형적인 법조물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위기에 빠진 채 갈등을 벌이는 가족이란 설정 탓에 장르물로서의 매력이 떨어져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의 진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후 도착한 마지막 페이지에서 발견됩니다. ‘Defending Jacob’이라는 원제의 진정한 뜻도 바로 그 지점에서 드러납니다.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던 책읽기가 50여 페이지도 채 안 되는 마지막 챕터를 남겨놓았을 때 몇 가지 궁금함이 떠올랐습니다. 에필로그 치곤 다소 많은 분량이고, 새로운 반전이라든가 아직 설명되지 않은 상황들을 담기 위해선 한참 모자라 보였기 때문입니다. 특히 앤디의 불행한 가족사와 재판 과정(라주디스 검사와 증인이 벌이는 심문)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솔직히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이 많은 것들이 50페이지로 다 설명된다고?” 하지만, 작가가 날린 마지막 한 방은 기대와 우려를 뛰어넘는 큰 충격을 담고 있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중반쯤에 책을 접을까, 고민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능한 검사 앤디가 아들이 용의자인 사건 때문에 이성을 잃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내 아들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근거 없는 논리만 내세웁니다. 앤디의 아내가 겪는 심리 묘사는 지루한 동어반복이었고, 용의자로 몰린 아들 제이컵은 뻔뻔스러울 정도로 나 몰라라캐릭터로 묘사됩니다. 불행한 가족사와 개개인의 심리를 강조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적정선을 넘어 너무 깊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짜증도 났지만, 필요한 이야기니 어쩔 수 없다고 애써 자위하면서도 남아있는 막대한 분량을 확인할 때마다 그만둘까, 라고 고민했던 게 사실입니다. 이 작품의 유일한 단점으로 별 5개가 4개로 줄어든 결정적 이유입니다. 초중반의 지루함만 견뎌낸다면 뒤통수를 얻어맞는 쾌감에 관한 한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경험을 할 수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한 줄 평은 100페이지만 줄였다면 최고의 작품!”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위기에 빠진 가족을 지키는 이야기는 매체를 불문하고 긴장과 감동을 주는 소재지만, ‘제이컵을 위하여는 지금까지의 익숙한 방식과는 전혀 다른 해법을 보여줍니다. 영웅적인 아버지, 헌신적인 어머니, 나이에 걸맞지 않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가족에게 닥친 위기를 현명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할리우드 식 이야기와 달리 작가가 선택한 해법은 논란을 일으킬 만큼 독특하거나 가혹합니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훨씬 더 사실적이고 공감이 가는 엔딩이었기에 제이컵을 위하여에 대한 기억은 꽤 오랫동안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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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보스 탐 청소년 문학 10
우르술라 포츠난스키 지음, 김진아 옮김 / 탐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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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보스는 런던의 한 지역 청소년들 사이에 은밀하게 성행중인 RPG게임입니다. 게임CD는 개인끼리만 유통되고, 참여 중인 사람도 탈락된 사람도 전혀 발설하지 않기 때문에 게임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최근 친구들의 심상치 않은 변화가 게임과 관련 있다고 짐작하면서도 이내 그들 못잖게 게임에 빠져든 닉은 곧 에레보스가 평범한 게임이 아니란 걸 알게 됩니다. 에레보스는 닉의 실명은 물론 은밀한 비밀까지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 게임 속에서 위기에 처한 자신을 구해준 대가로 현실에서 수행해야 할 미션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리 위험한 범법행위가 아니기에 그동안 에레보스의 미션들을 거부감 없이 수행해오던 닉은 점차 감당하기 힘들어진 미션 때문에 혼란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에레보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짝사랑하던 에밀리와 그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동분서주하기 시작합니다.

 

청소년 문학에 판타지 게임 스릴러라는 외양만 놓고 보면 제 취향과는 거리가 한참 먼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레보스가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올해 읽은 마이테 카란사의 독이 서린 말이 준 좋은 인상이었습니다. 스페인 청소년문학상을 받은 작품으로 아동 성폭력의 문제를 깊이 있게 표현했는데, 수상 이력을 숨겼다면 오히려 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고도 남을 만한 수작이었습니다. ‘독일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을 지닌 에레보스에 별 거부감이 들지 않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게임에서 벌어진 결과가 현실의 범죄와 연결된다는 설정 때문이었습니다. 게임이라곤 콜 오브 듀티시리즈 정도밖에 하지 않는 문외한이지만 게임과 현실 범죄의 관계, 그리고 그것의 해결과정이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입니다.

 

꽤 두꺼운 분량이지만 페이지는 빠른 속도로 넘어갑니다. 등장인물도 많고 게임 캐릭터 명칭도 많아서 조금 혼란스럽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간결한 구조이고, 흥미진진한 설정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 자체에 그렇게 빠져드는 성격이 아니라서 닉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레벨 업에 목숨 거는 게임 중독증이 낯설긴 했지만 에레보스가 보통 게임과는 달리 지능을 가진 유기체처럼 행동한다는 점, 일반 게임과는 달리 누가 게이머이고, 누가 탈락됐는지, 누가 최고 레벨에 있는지조차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진행된다는 점, 오로지 한 번밖에 참여할 수 없으며 탈락될 경우 다시는 참여할 수 없다는 점, 그리고 에레보스에 위협이 되는 인물들이 현실에서 의문의 사고를 당한다는 점 등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욕망이나 공포심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만, 대체로 엔딩과 관련된 내용이라 구체적인 언급은 어렵고, 그저 에레보스의 정체, 에레보스가 노린 것, 그리고 사건의 해결과정등이 기대했던 것만큼의 파괴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정도만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능을 가진 게임이 현실의 범죄를 일으킨다는 설정 속에 다양한 코드들이 잘 버무려져 있어서 모처럼 흥미로운 엔터테인먼트 스릴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유럽의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은 단순히 그 또래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독이 서린 말이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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