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미스터리
J.M. 에르 지음, 최정수 옮김 / 단숨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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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0대 시절 청소년판 셜록 홈스 시리즈에 푹 빠진 적이 있긴 하지만 정작 성인이 된 후엔 완전판 홈스를 찾아볼 생각을 못한 게 사실입니다. 묵은 숙제처럼 여겨지긴 해도 어지간해선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셜로키언이 집필했거나 등장하는 작품들의 경우 별 매력을 못 느꼈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장사속이라는 느낌밖엔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읽게 된 셜록 미스터리는 셜로키언에 대한 저의 편견을 조금은 바로 잡아준 작품입니다. 물론 다소 비현실적인 전개라든가 다분히 연극적인 캐릭터들이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셜록 홈스의 유산을 이렇게 기발하게 활용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르본 대학 홈스학과의 정교수가 되기 위해 산 속 호텔에 모였다가 차례차례 목숨을 잃는 11명의 홈스 전문가들은 누구 하나도 평범한 캐릭터가 아닙니다. 마약이나 성형, 심지어 심령에 중독된 사람들이거나 이른바 ‘7개의 대죄가운데 두세 가지쯤은 저지른 바 있는 대체로 이기적이고 거만하고 독선적인 캐릭터들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관찰자 역할을 맡은 오드리의 입을 통해 이들에 대한 나름의 애정을 묘사합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셜록 홈스에게 자신의 인격을,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것 같았다. 모두 셜록 홈스를 제 것으로 삼고, 자신을 셜록 홈스를 추억하는 질투 많은 수호자로 여겼으며 (중략) 열정이 그들 안에 살고, 그들을 성장시키고,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열정은 또한 그들을 파괴하고 있었다.” (p197)

 

셜록 홈스의 현신처럼 묘사된 레스트레이드 경감은 오드리의 메모를 비롯하여 녹음테이프와 포스트잇 등 11명의 홈스 전문가들이 유물처럼 남긴 자료들을 검토하며 참사의 실체를 밝힙니다. 중간중간 늘어지는 부분도 있고 작위적인 부분도 있지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은 나름대로 눈길을 끄는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또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론에 도달하긴 하지만 작가는 막판까지 몇 차례의 비틀기를 통해 (소소한 규모지만) 끊임없이 반전을 시도합니다.

 

셜록 미스터리에서 가장 눈에 띄고 기억에 남는 점은 작가의 현란하고 독특한 비유와 개성 넘치는 문장들입니다. 소동극으로 데뷔해 큰 성공을 거뒀고 즐거움과 놀이, 유머가 소설의 원동력이라고 자평하는 작가인 걸 보면 셜록 미스터리의 색깔을 대략 예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똑같은 줄거리를 평범한 문장으로 서술했더라면 이 작품의 매력 중 최소 90% 이상은 휘발됐으리라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셜록 홈스의 진지함과 그에 대한 외경심, 그리고 치밀한 추리를 기대한 독자에겐 아쉬움이 더 크게 남을 수도 있겠지만 유쾌한 지적 유희와 엔터테인먼트 미스터리를 맛보고 싶은 독자에겐 생각보다 괜찮은 선택이 돼줄 거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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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텀 스쿨 어페어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2
토머스 H. 쿡 지음, 최필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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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두 줄의 홍보카피 외엔 책을 읽기 전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나 다른 독자의 서평을 보지 않는 편이라 처음엔 학교를 배경으로 한 연쇄살인 또는 학폭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지레 짐작한 게 사실입니다. ‘붉은 낙엽이나 심문등 귀에 익은 작품들은 몇 편 있지만 토머스 H. 쿡을 만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보니 그의 작품 세계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제목에 들어간 스쿨죄의식의 저울 건너편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잔혹한 진실이란 홍보카피 때문에 생긴 선입견이었는데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제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채텀 스쿨 어페어19268월에서 19278월에 이르는 1년여의 시간 동안 보스턴 인근 조그마한 소도시 채텀에서 벌어진 한없이 어둡고 무거운 치정과 파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지워지지 않을 상처와 비밀을 잔뜩 끌어안고 있거나 또는 불발탄처럼 위태위태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채텀스쿨 미술교사로 부임한 미모의 엘리자베스 채닝, 그녀로 인해 새로운 세계와 자유를 열망하게 된 고등학생 헨리, 그녀와의 치정으로 인해 여러 인물의 파멸을 불러일으키는 유부남 교사 리드, 그녀로 인해 가족의 붕괴를 목전에 둔 히스테릭한 리드 부인, 그리고 그녀를 채텀스쿨로 초빙한 장본인이자 헨리의 아버지이며 보수적 교육자인 아서 등이 그들입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이야기 보수적인 소도시에서 벌어진 두 남녀의 불륜의 비극적 결말 에 그칠 수도 있는 소재지만, 토마스 H. 쿡의 필력은 주조연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심리와 이야기의 배경인 채텀의 분위기를 잘 버무림으로써 마지막 페이지까지 긴장감과 기대감을 놓치지 않는 중량급 서사로 만들어냈습니다.

 

먹구름과 광풍, 안개로 가득한 잉글랜드의 황무지를 연상시키는 해변가 소도시 채텀의 1920년대 풍경은 인물들을 더욱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래서인지 읽다 보면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가 연상되는 대목이 종종 눈에 띕니다. 음울하고 불길한 분위기에 휩싸인 속내를 알 수 없는 인물들의 행보를 미묘하면서도 상세하게 묘사한 대목이 겹쳐 보인 탓입니다. 또 장르소설이라기 보다는 순문학에 가깝다는 인상도 자주 받게 됩니다. “자신의 시적, 문학적 재능을 선보이는”, “장르소설과 순문학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드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드러냄으로서 슬픔의 미학을 느낄 수 있게 한등 인터넷서점의 작가 소개글 역시 그런 점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특이했던 점은 다양한 시간적 배경입니다. 이제 노년에 접어든 헨리가 살고 있는 1960년대 후반, 헨리의 10대 시절이자 채텀스쿨의 비극이 벌어졌던 1926~1927, 그리고 잠깐이지만 중년의 헨리가 등장하는 수년 전 등 다양한 시간적 배경이 등장합니다. 이럴 경우 보통 챕터별로 시간이 분류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비해 채텀 스쿨 어페어는 때론 문장 단위로 시간적 배경이 바뀌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읽으면서 집중하지 않으면 이 인물이 존재하는 시점을 놓치기 쉬울 정도입니다. 1920년대에 있는 건지 1960년대에 있는 건지, 사고가 난 그날의 이야기인지 그 전후의 이야기인지, 채닝이 채텀에 온 시점의 이야기인지 리드가 채텀에 온 시점의 이야기인지 등 수시로 앞뒤 맥락을 확인해야만 합니다. 읽는 중에는 가끔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다 읽은 후엔 그런 시간적 구성이 이야기의 밀도를 높였을 뿐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이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훨씬 좋은 장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스쿨 어페어라는 제목이 주는 묘한 기대감으로 이 작품을 접한 독자에겐 좀 지루하거나 심심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순문학적인 특징 때문이겠지만, 마지막에 드러난 사건의 실체가 그리 강하거나 충격적이지 않을뿐더러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의 개운치 못한 느낌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조만간 토마스 H. 쿡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붉은 낙엽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유괴를 소재로 했다는데, 과연 어떤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냈는지, 일반적인 유괴 미스터리와 어떤 식으로 다른 서사를 구축했는지 궁금합니다. 고백하자면 제 취향과는 조금은 거리가 먼 작가 같지만 호기심을 버리기엔 너무 이르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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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지음, 서지희 옮김 / 예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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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녀 카를라가 악마 같은 자들에 의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고, 오빠 파트릭마저 여동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어느 날, 프랑크푸르트 경찰청의 율리아 뒤랑에게 백합 12송이와 함께 성경 구절을 인용한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엽기적인 연쇄살인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피살자들 모두 저명한 인사들이었기에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지만 단서 하나 찾아내지 못한 탓에 뒤랑을 비롯한 프랑크푸르트 경찰청은 곤혹스러울 뿐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동유럽 출신 매춘부들을 조사하던 뒤랑은 작은 단서를 포착하고 집요한 탐문을 시작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쇄살인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암시하는 살인예고장이 날아듭니다. 그리고 막판에 드러난 범인과 피살자들의 정체에 뒤랑과 동료들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영 블론드 데드에 이은 율리아 뒤랑 시리즈’ 2편입니다. 북유럽과 독일의 미스터리 스릴러가 한국에서도 독자층을 꽤 확보한 상태지만, 명성에 비해 조금은 뒤늦게 소개된 작가 중 한 사람이 안드레아스 프란츠입니다. 물론 명성이라는 것이 무척 주관적인 개념이지만, 이 시리즈가 550만부 이상 판매됐다는 소개글을 감안하면 매력 있는 작가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서평을 쓰기 전에 지난 여름에 읽은 시리즈 첫 편 영 블론드 데드의 서평을 찾아봤습니다. 대략 두 가지 아쉬움이 기록돼있는데, 하나는 이야기가 너무 단선적이라는 점, 또 하나는 율리아 뒤랑이라는 주인공에게 너무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에서 두 번째 문제는 상당히 개선(?)된 편입니다. 베르거 반장이나 프랑크 형사가 적당히 분량을 나눠가졌고, 과학수사팀이나 프로파일러까지 등장하여 뒤랑의 독주를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리얼리티는 배가됐고, 좀더 긴장감 있는 수사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단선적인 이야기 전개는 여전했습니다. ‘사건의 발생 - 탐문 - 미궁 - 우연한 정보 - 범인 특정 - 엔딩이라는 공식은 거의 틀을 바꾸지 않고 재현됐습니다. 사실 이 공식은 대부분의 미스터리와 스릴러에 차용되긴 하지만 율리아 뒤랑 시리즈의 경우 변주 하나 없이 판에 박힌 듯 활용되는 게 문제입니다. 사건은 연이어 발생하는데 뒤랑과 프랑크푸르트 경찰은 살인 예고장을 받는 것사건 현장 주변인을 탐문하는 것외에 딱히 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특히 우연히 얻은 일말의 단서가 없었다면 뒤랑은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만, 그나마 변주라고 할 만한 건 범인의 챕터를 따로 구성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누가 범인인지는 마지막에야 밝혀지지만, 이런 구성 덕분에 늘 뒷북만 치는 탐문기록에 머물 뻔 했던 이야기가 다소라도 긴장감과 호기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소재는 모두 매력적이었지만 영 블론드 데드‘12송이 백합과 13일간의 살인모두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입니다. 필력은 훌륭하지만 설계가 단선적이다 보니 아무래도 읽는 중간중간 맥이 빠지게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신간이라면 다시 찾아보게 될 것 같긴 합니다. 그건 율리아 뒤랑의 매력 때문일 수도 있고, 복합적인 정서가 녹아있는 독일이라는 공간의 흡입력 때문일 수도 있고, 이 시리즈가 다루는 사건들이 대체로 사회적 이슈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단선적이면서도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미묘한 힘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딱히 어떤 부분이 강점이라고 지목하긴 어렵지만, 묘하게 끌리는 작가들이 간혹 있는데, 안드레아스 프란츠 역시 제겐 그런 작가 중에 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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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숙청의 문을
구로타케 요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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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의 밤, 여고생 아키가 폭주족의 오토바이에 치어 냉기 가득한 도로변에 참혹하게 쓰러집니다. 그리고 얼마 후... 최악의 악동들이 우글거리는 호간고등학교 3학년 D반에서 졸업식 예행연습이 열리고, 40대 중반의 담임 곤도 아야코가 평소와는 다른 바지정장 차림으로 교실에 들어섭니다. 내향적인 성격 탓에 학생들에게 만만한 장난감 취급을 받던 아야코였지만 그날 그녀가 교탁 위에 올려놓은 것은 날이 잔뜩 선 사냥칼이었습니다. 잠시 후 첫 희생자가 나오고, 아야코는 나머지 학생들을 인질로 24시간 농성에 들어갑니다. 경찰이 출동하지만 아야코의 빈틈없는 계획에 속수무책인 사이 희생자는 늘어만 가고, 아야코의 지시에 따라 시신을 창밖으로 내던지는 학생들의 얼굴은 끔찍한 공포 그 자체로 물들어있습니다.

 

이 작품이 2001년 한국에 출간된 적 있다는 번역가의 후기를 읽고 그 당시에 충분히 화제작이 됐을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사적 복수라는 테마 외에도 학교를 무대로 한 거의 몰살에 가까운 주인공의 행위가 극단적인 상황 설정과 함께 충격적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적 복수라는 테마를 좋아하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이나 야쿠마루 가쿠의 천사의 나이프같은 작품들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이고 직설적인 설정은 처음이라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더구나 아야코의 행위는 복수를 넘어 판결의 차원에 이르고 있어서 가치관이 다른 독자라면 초반 50여 페이지를 넘기기가 쉽지 않을 작품입니다. 덧붙이자면,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잔혹함에 관한 한 영화 배틀 로얄이 무색한 정도라고 할까요?

 

단선적인 구성 같지만, 읽다 보면 롤러코스터를 탄 듯 정신없이 페이지가 넘어갑니다. 경찰에게 완벽하게 포위된 교실 안에서 24시간 동안 학생들을 죽이는 것외에 그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지만, 이후에 전개되는 아야코의 계획은 경찰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예측 불가능하게 펼쳐집니다. 심리전을 통해 경찰과 언론, 학부모를 서로 적대적인 상태로 만들어놓기도 하고, 언뜻 납득이 안 되는 요구조건을 내걸며 경찰의 진압계획을 무용지물로 만들기도 합니다. 물론 중간중간 처단이라는 본연의 임무도 잊지 않고 수행합니다.

 

어떤 지점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아야코의 단죄가 통쾌하게 느껴졌고, 그것이야말로 국가나 사회가 외면해온 피해자의 인권을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선지 이 작품을 놓고 리얼리티를 논하는 것은 제겐 그다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평범한 40대 여교사가 어떻게 눈 하나 깜짝 않고 칼을 휘둘러 경동맥을 잘라내고, 특등사수 같은 사격술로 정확하게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게 됐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런 픽션이 공감될 정도로 황폐해진 교육 현장과 그보다 더 썩어 빠진 사회에 대해 논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생각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잔혹함과 피비린내 때문에, 또는 너무 직설적인 스토리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적어도 곤도 아야코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나 한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의미 있는 사회파 스릴러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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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화전 - 지상 최대의 미술 사기극 밀리언셀러 클럽 133
모치즈키 료코 지음, 엄정윤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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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경제 시대, 터무니없는 가격에 일본으로 팔려온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 하지만 거품이 꺼짐과 동시에 그림을 소유했던 기업이 도산하면서 현재는 비슷한 신세의 그림들과 함께 임대 창고에 처박힌 신세입니다. 무능하고 철없는 부잣집 장남 소스케와 빚더미에 올라앉은 긴자 호스티스 출신 아카네는 주식 사기로 모든 것을 잃은 뒤 같은 처지의 시로타와 조우하는데, 그를 통해 임대 창고에 보관 중인 2,000억 엔 가치의 명화를 훔쳐낼 계획에 가담하게 됩니다. 물론 그중엔 '가셰 박사의 초상'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계획엔 두 사람이 전혀 예상 못한 비밀과 거짓말이 잔뜩 숨겨져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두 사람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거듭된 반전을 일으킵니다.

 

책 소개글만 보고도 일본 소설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에 새삼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더구나 14회 일본미스터리 문학대상 신인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 모치즈키 료코가 1959년생이라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미술품 사기는 사실 새롭거나 신선한 소재는 아니지만, ‘신인상이라는 타이틀을 괜히 준 것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감에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무엇보다 미술품 거래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버블시대 일본 기업들의 돈 잔치에 대한 상세한 묘사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재미와 호기심을 잃지 않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범인 찾기가 아닌 범죄의 재구성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여느 미스터리 못지않게 긴장감과 속도감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한 버블시대에 대한 조롱과 얇은 귀를 가진 허영덩어리 소시민들에 대한 비꼼 등 고급 풍자물의 느낌도 지니고 있어서 다채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한 방을 위해 인생의 모든 것을 건 주인공 캐릭터는 공감이 될 정도로 리얼했고, 그들의 배후인 범인의 계획은 너무 완벽하게 짜인 나머지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다만, 다소 독자들의 이해력을 걱정(?)한 탓인지, 작가가 너무 많은 것을 직접 설명해주려는 경향이 곳곳에서 보였고, 그러다보니 한두 곳 정도는 동어반복적인 설명 때문에 건너뛴 곳도 있었습니다. 사족이지만,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질 만한 구조를 잘 갖추고 있지만, 일정 부분은 서술트릭을 차용하고 있어서 각색 과정에서 애를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미술품 사기라는 새롭지 않은 소재임에도 사건과 캐릭터를 잘 설정한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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