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죽은 밤 닷쿠 & 다카치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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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닷쿠와 다카치를 비롯한 아쓰키 대학의 친구들은 플로리다에서의 홈스테이를 위해 다음 날 출국 예정인 미오의 환송파티를 엽니다. 엄격한 규율에 갇혀있던 미오는 부모님의 부재를 틈타 열렸던 환송파티를 마치고 들뜬 마음에 귀가했지만,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피를 흘린 채 바닥에 쓰러진 낯선 여인이었습니다. 당연히 경찰이나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미오는 전혀 다른 결정을 내립니다. 얼떨결에 사건에 연루된 닷쿠와 다카치는 미오의 집에서 발견된 여인의 정체부터 알아내려 하지만, 아무런 능력도 권한도 없는 그들에겐 시작부터 온 사방이 막다른 골목일 뿐입니다. 엉뚱한 상상력과 빈곤한 수사력만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던 그들 앞에 갖가지 시련이 닥치지만, 닷쿠와 다카치는 기어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결말 덕분에 닷쿠 일행은 큰 충격에 빠집니다.

 

타임루프라는 특이한 소재를 거듭된 반전과 독특한 형식미로 잘 버무렸던 일곱 번 죽은 남자덕분에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팬이 되었습니다. 신작의 출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만나게 돼서 반가웠고, 기대를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 때문에 더 반가웠습니다.

닷쿠&다카치 시리즈의 첫 편인 그녀가 죽은 밤SF적 설정을 주로 차용하던 니시자와 야스히코가 현실을 무대로 삼아 좀더 대중성을 확보한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주인공들은 대학교 2학년인 청춘들이고, 연이어 벌어지는 기이한 살인사건만 빼면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며, 인생의 최고 미덕을 술이라 주장하는 닷쿠와 슈퍼모델 급 외모를 지닌 얼음장 같은 다카치, 그리고 두 사람의 주위에 포진한 개성 만점의 캐릭터들은 쉴 새 없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을 발휘하며 긴장과 웃음을 함께 전해줍니다.

 

하지만 그녀가 죽은 밤은 그저 밝고 달달한 청춘 미스터리는 결코 아닙니다. 팬티스타킹 속의 잘린 머리카락과 함께 발견되는 피살자들, 사랑에 눈이 멀고 탐욕에 찌들대로 찌든 치명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밝혀지는 그 밤의 진실 등 잔혹하고 독한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좌충우돌 캐릭터들이 펼치는 롤러코스터 같은 전개에도 불구하고 에필로그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작가가 짜놓은 논리적 구성이 얼마나 촘촘한지 새삼 경탄하게 됩니다. ‘일곱 번 죽은 남자에서도 익히 느꼈던 바지만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영역 롤러코스터 식 전개와 논리적 구성 을 전혀 위화감 없이 조합해낸 작가의 필력은 후속작들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여주고 있습니다.

 

사족으로... 워낙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고 챕터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줄거리를 소개하기가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잘못하면 너무 많은 정보를 흘릴 수 있기 때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어정쩡한 설정 소개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다 읽은 후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최소한 초반부의 재미를 희석시킬 만큼 너무 많은 이야기를 소개해놓았습니다. 일종의 셀프 스포나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가능하면 사전 정보 없이 본편과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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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주의 인물
수잔 최 지음, 박현주 옮김 / 예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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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한국계 수학자 리(Lee)는 미국 중서부에 위치한 작은 대학의 교수입니다. 교수로서의 입지나 인기는 말할 것도 없고 사교성마저 없는데다 두 번의 이혼을 거친 후 휑한 주택에서 홀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뛰어난 재능과 젊음 덕분에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옆방의 헨들리를 무시하는 척 하지만 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웁니다. 어느 날, 헨들리에게 배달된 사제 폭탄이 터지면서 리의 삶은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복잡한 심경의 리에게 발신자 이름이 없는 편지가 도착합니다. 발신자는 헨들리 폭사 사건을 거론하면서 리에 대한 협박 메시지를 전합니다. 리는 젊은 날 절교했던 게이더가 발신자라고 확신했고, 그와의 불편한 과거사 때문에 수사관에게 편지에 관해 거짓 진술을 했는데, 그로 인해 갑자기 요주의 인물이 되고 맙니다. 즉 헨들리 폭사의 준 용의자로 의심받게 된 것입니다. 뒤늦게 편지에 관해 모든 것을 털어놓고 게이더를 용의자로 지목하지만, 일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주지 않습니다.

 

올해 읽은 미스터리와 스릴러 가운데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렸던 작품입니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자체보다는 당초 예상했던 것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의 성격때문이었습니다.

우선 일반적인 기준의 미스터리나 스릴러 장르로 분류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진범 찾기가 밑바탕에 깔려있긴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노교수 리의 지나온 삶과 거기에 연루됐던 다양한 인물들, 그리고 대체로 불행했던 그들 간의 관계에 대한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날, 외톨이였던 리에게 손을 내밀어준 게이더, 짧지만 불꽃처럼 리와 사랑을 나누었던 게이더의 아내 아일린, 그리고 결국 아일린을 아내로 맞이한 리. 이렇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조연들이 등장합니다. 공통점이라면, 주조연을 막론하고 하나같이 불행과 고립을 자초한 것처럼 보이는 어두운 캐릭터들이라는 점입니다.

 

작가는 인물 뿐 아니라 그들이 함께 겪었던 시간들을 집요하리만치 디테일하게 묘사합니다. 단지 있었던 일뿐 아니라 인물 하나하나의 심리적 변화까지 놓치지 않습니다. 덕분에 이야기는 가볍게 날아다니지 않고, 인물들의 사실감은 극에 달합니다. 정교하게 짜인 서사와 함께 고통스런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보는 리의 행적과 심리는 지적 미스터리라는 간판보다는 오히려 묵직한 고전의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들도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한자리에서 맴맴 도는 듯했고, 심리 묘사의 경우 표정 하나를 위해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기까지 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길고 긴 고해성사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또 원작 자체가 그랬을 수도 있지만 곳곳에서 마주쳤던 현학적인 번역도 책읽기를 어렵게 만든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역자 후기에 참을성 있는 독자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주는 작품이란 언급이 있는데, 개인적으론 절반 정도만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즉 참을성 있는 모든 독자가 충분한 보상을 받는 작품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렸는데도 보상받지 못하는 독자가 조금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게 저의 솔직한 의견입니다. 특히 속도감과 반전을 기대했던 미스터리나 스릴러 독자라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리는 것 자체가 꽤 힘들 수도 있습니다.

 

수십 년을 살아왔지만 여전히 아메리카의 이방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던 남자, 절친한 친구의 아내를 빼앗아 결혼에 이르지만 결국 불행한 삶을 살아야했던 남자, 그리고 노년에 이르러 아무에게도 곁을 주지 못한 채 홀로 말라가다가 기어이 돌아보고 싶지 않았던 과거와 정면으로 맞닥뜨리게 된 남자. 이 남자의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 게이더나 아일린 같은 존재는 없었는지? 그만큼 상처를 줬거나 상처를 받았거나 기억하고 싶거나 반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존재는 없었는지?

그동안 빠르고 가파른 책읽기에만 전념했던 습관 덕분에 요주의 인물은 완독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던 작품이었지만, 새삼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 돼주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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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1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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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주 정도에 걸쳐 도조 겐야 시리즈’ 3(염매, 산마, 미즈치)을 완독했습니다. 2년 전에 읽은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포함하면 시리즈를 마스터한 셈입니다. 방대한 분량은 말할 것도 없고 매 작품마다 등장하는 초현실적인 괴담과 불가해한 연쇄살인 덕분에 연이은 도조 겐야 읽기가 정신적으로 꽤나 부담되긴 했지만 미즈치~’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큰 숙제 하나를 마친 듯한 뿌듯함과 동시에 후속편을 기다려야 한다는 아쉬움이 저절로 들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도조 겐야가 마주친 것은 물의 신 미즈치입니다. 대체로 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졌던 전작들에 비하면 새로운 설정입니다. (물론 염매~’에서도 히센천이라는 무시무시한 강이 등장하기도 했지만 조연에 가까웠습니다.) ‘미즈치~’에도 후타에이 등장하긴 하지만 괴이의 주인공은 마을의 운명을 쥐고 있는 미쓰천이라는 강과 그 원류인 진신호(), 그리고 그곳에 머무는 물의 신 미즈치입니다.

 

늘 그렇듯 대립 또는 갈등하는 가문들이 등장하는데 나라 현 하미 지역에 미쓰천을 따라 나란히 자리한 네 개의 마을의 신관 가문이 그들입니다. 대대로 홍수나 가뭄이 들 때마다 번갈아 가며 미즈치 님을 모시는 제의를 올려왔는데, 1가문인 미즈시 신사가 맡은 올해의 제의가 진행되던 중 첫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문제는 (역시 늘 그렇듯) 사건이 벌어진 곳이 밀실이고, 더구나 제의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미즈시 신사에 의탁하고 있던 도조 겐야는 이 기이한 사건에 휘말림과 동시에 살인사건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예감합니다. 특히 각각 23년 전, 13년 전의 제의 중에 일어났던 사망 사고 역시 현재 벌어진 사건과 무관하지 않음을 간파합니다.

 

네 가문의 대립과 갈등에 덧붙여 또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 축이 있는데, 1가문의 신관인 미즈시 류지의 수양딸인 사기리와 그녀의 3남매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이들에 대한 소개는 워낙 양도 많고 스포일러가 될 가능성이 있어 생략하겠지만, ‘염매처럼~’을 읽은 독자들을 위해 조그마한 미끼성 힌트를 한 가지 드리자면, 류지의 수양딸 사기리가 염매처럼~’에 등장했던 가가구시 촌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물론 미즈치~’에서 사기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도조 겐야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직접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를 관통하는 일관된 특징들 - 방대한 민속학적 자료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악연과 그로 인한 재앙들,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신들의 장난, 그리고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연쇄살인 등은 미즈치~’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됩니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결국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는 도조 겐야의 활약도 여전합니다. 후반부 적당한 지점에 이르러 사건의 의문점을 모두 나열해놓고 독자들에게 여기에 힌트가 있으니 진범을 맞춰봐!”라고 도전하는 모습이나 관련자들을 모아놓고 진범을 밝히는 과정에서 몇 번씩이나 반전을 거듭하는 모습은 도조 겐야 시리즈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남다른 재미로 다가옵니다.

특히 미즈치~’에서는 산마~’에서 잠깐 선보였던 여자 편집자 소후에 시노가 도조 겐야의 여정에 함께 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가끔씩 멜로(?)를 연상시키는 장면을 연출하며 묵지근한 독자들의 머리를 식혀주기도 합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두 가지 정도인데, 우선 구키 쇼이치(사기리의 3남매 중 막내)의 시점으로 서술된 내용이 이야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내용 상 반드시 필요한 구성이긴 하지만 그만큼 도조 겐야의 시점으로 서술된 내용이 줄어들어서 독자로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두 번째는 번역과 관련된 부분인데, 오타나 오역은 요즘의 웬만한 작품에 비하면 양호하다고 판단될 정도로 적었지만, 정작 문제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잘못 번역된 경우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류지, 류이치, 류조, 류코, 류마 등 비슷한 이름이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겠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엉뚱한 이름이 튀어나온 경우가 납득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습니다.

첫 번째 아쉬움이야 지극히 개인적인 호불호의 문제지만, 오역의 아쉬움은 작품의 완성도를 손상시킬 만큼 작지 않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도조 겐야와 함께 한 2주 남짓한 시간 동안 딴 나라에 가서 살다 온 느낌이었지만, 벌써부터 새 작품이 기다려지는 것을 보면 저도 어느 새 도조 겐야와 그를 창조해낸 미쓰다 신조에게 중독돼버린 듯합니다. 리얼리티 면에서 언뜻 납득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역사-호러 미스터리의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독자라면 염매 - 잘린 머리 산마 미즈치로 이어지는 도조 겐야 시리즈의 연독을 강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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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처럼 비웃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5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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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조 겐야 시리즈첫 편인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을 읽은 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읽어서 그런지 여러 가지 면에서 독자로서 누릴 수 있는 재미가 반감된 느낌입니다. 신간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을 읽기 전에 순서대로 시리즈를 마스터하기 위해 연이어 읽은 것인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맞닥뜨리고 말았습니다.

주인공 도조 겐야의 풍부한 지적 유희와 기발한 추리 과정이라든가 초현실적인 현상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벌어지는 참혹한 연쇄살인의 충격, 그리고 마지막 수십 페이지를 남겨놓고 벌어지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진범 찾기 등 오랜만에 읽어야만 느낄 수 있는 미쓰다 신조 표 역사-호러-미스터리의 진가가 연이은 책읽기 때문에 상당 부분 희석된 것 같아 아쉬움이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페이지가 넘어가는 속도가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고립된 마을과 대립하는 가문들이 배경으로 설정됐고, 마을을 둘러싼 산과 강에 깃든 숭배와 공포의 대상이 등장했고, 오랜 구원(舊怨)과 인간의 탐욕이 시한폭탄처럼 마을 곳곳에 만연해 있으며 우연이든 필연이든 도조 겐야가 그 마을에 나타나면서부터 천벌 또는 지벌로 여겨지는 참혹한 시신들이 발견됩니다.

모든 등장인물의 알리바이는 입증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너무 선명하고, 희생자들은 납득할 수 없는 밀실 상황에서 발견되거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 상태로 훼손되어 있으며 험한 꼴을 당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는 의외의 인물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특히 산마처럼~’에서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악마의 공놀이 노래를 연상시키는 동요 살인이 등장하는데, 이는 범인의 범행 동기를 더욱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독자들의 호기심과 긴장감을 증폭시킵니다.

 

유일하게 아쉬웠던 부분은 조금은 억지스러워 보였던 마지막 해결장면입니다. , 마지막 희생자가 발견되는 순간까지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해오던 이야기가 도조 겐야의 최종 결과 발표에 이르러 급격히 그 힘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입니다. 우선, 시종일관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초자연적 현상들에 대한 설명이 누구나 쉽게 갖다 붙일 수 있는 해석수준에 머무른 점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 진범 확증 과정에서 일어난 몇 단계의 반전 중 적잖은 부분이 반전을 위한 반전처럼 작위적으로 설정된 느낌을 줬다는 점 때문입니다.

 

물론 미쓰다 신조에게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대목들도 곳곳에 산재해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읽었던 한두 줄의 문장 속에 숨어있던 힌트들, 도조 겐야의 기이한 뇌구조만이 추론해낼 수 있는 기상천외한 독특한 해석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독자들의 예측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비장의 카드 등 적잖은 분량의 내용 곳곳에 공포, 재미, 호기심, 긴장감, 반전 등 다양한 종류의 지뢰를 잘 묻어 놓았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만의 중독성은 아마 이런 매력들에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 일본 미스터리보다 호불호의 경계선에 위태위태하게 놓여있는 시리즈이긴 하지만, 아무리 초현실적 역사-호러-미스터리와 담을 쌓고 사는 독자라고 하더라도 한번만 제대로 맛보면 미쓰다 신조처럼 중독되는 것의 진가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연속으로 미쓰다 신조 읽기가 여러 가지 부작용을 전해준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즈치처럼 가라앉는 것의 첫 페이지를 열어버렸습니다. 미쓰다 신조의 신간을 곁에 둔 채 다른 작품을 집어 든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즈치~’를 완독하고 나면 도조 겐야 시리즈가운데 제일 먼저 읽었던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입니다. 예상되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시리즈를 완주하는 재미도 남다른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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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한가운데 밀리언셀러 클럽 134
로렌스 블록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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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체포 중 일어난 사고 때문에 직장(경찰)과 가족 모두에게 결별을 고한 매튜 스커더는 호텔 방에 기거하며 일상의 절반쯤은 버번에 취한 채 살아가는 무면허 탐정입니다. 한편 그 자신이 부패경찰임에도 불구하고 경찰의 부패를 특별검사에게 일러바친브로드필드는 고급 콜걸 살해 혐의로 체포된 후 스커더에게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스커더는 브로드필드 주변 인물들에 대한 집요한 탐문을 통해 사건의 진실을 밝혀냅니다. 그 과정에서 내부 고발자를 곱게 보지 않는 예전 동료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의뢰인의 아내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기도 하거니와 소위 고위층이라 불리는 자들의 추악한 인격을 파헤치기도 합니다. 사건은 진범 체포와 함께 마무리 되고 그의 로맨스 역시 해피하게 이뤄지는 듯 보였지만, 정작 마지막에 이르러 매튜 스커더 앞에 던져진 엔딩은 고독하고 불행한 그의 운명처럼 씁쓸하게 마무리되고 맙니다.

 

로렌스 블록과 처음 만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아직까지 제 책장에 당당히 꽂혀있는 백정들의 미사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는데 지금은 줄거리조차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당시 눈에 확 끌리는 제목 때문에 찾아 읽은 것 같다고 추정될 뿐입니다. 고백하자면 백정들의 미사외에도 아버지들의 죄’, ‘800만 가지 죽는 방법’, ‘무덤으로 향하다등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가 세 권이나 꽂혀있지만, 어찌하다 보니 도서관에서 빌린 시리즈 2죽음의 한 가운데를 먼저 읽게 됐습니다.

 

요즘 발표되는 미스터리나 스릴러에 비하면 비교적 잔잔한작품입니다. 사건은 소소하고, 반전 역시 딱히 충격의 강도나 규모 면에서 강렬하지 않습니다. 1976년에 발표된 작품임을 감안하더라도 그런 점들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이 작품의 매력은 매튜 스커더라는 무면허 탐정이자 고독한 뉴요커에 있습니다.

 

만만치 않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불행한 기억들을 마음속에 담아둔 채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매튜 스커더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늘 한결같은 모습입니다. 용의자를 대할 때는 웬만한 상황에서도 절대 흥분하지 않으며, 간결한 언어와 확실한 액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캐릭터입니다. 로맨스의 상대를 대할 때 역시 침묵도 대화만큼이나 그 나름의 방식으로 수많은 의미가 오고 간다라는 묘사처럼 화려한 수사(修辭)보다는 애정 어린 눈빛과 묵직한 진정성을 앞세웁니다. 그런 그의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는 독한 버번 위스키 뿐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심플하고 장르물로서의 매력은 조금은 부족한 작품이지만, 매튜 스커더라는 캐릭터 덕분에 책꽂이에 꽂혀있는 그의 시리즈들을 머지않은 시간 안에 탐독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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