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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카와 전설 살인사건 ㅣ 명탐정 아사미 미쓰히코 시리즈
우치다 야스오 지음, 김현희 옮김 / 검은숲 / 2014년 2월
평점 :
신주쿠 고층빌딩 앞에서 40대 남성이 독극물로 인해 급사합니다. 그가 지니고 있던 독특한 방울이 나라 현에 위치한 덴카와 신사의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 딸 치하루는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덴카와 신사로 향합니다.
한편 노가쿠(能樂)의 명문인 미즈카미 가문의 공연 도중 후계자 가즈타카가 변사합니다. 독살로 의심되지만 종가 가즈노리는 사실을 은폐한 채 실종됩니다. 가즈노리의 손녀이자 가즈타카의 이복남매인 히데미는 할아버지 가즈노리의 행방을 찾아 덴카와 신사로 향합니다.
마침 노가쿠의 역사와 노래를 취재하기 위해 덴카와 신사에 머물고 있던 아사미는 히데미와 치하루를 만난 것을 계기로 기이한 사건에 휘말립니다.
2013년에 읽은 ‘헤이케 전설 살인사건’ 이후 탐정 아사미 미쓰히코와의 두 번째 만남입니다. 1년 전의 첫 만남 때 뭔가 아쉬움이 남았던 기억이 나서 당시 써놓은 서평을 꺼내 읽어보니, “고전의 느낌이 많이 들고.. 사건은 소소해 보이고.. 사건이나 트릭은 요즘 독자들의 눈높이에 비하면 왜소해 보이고..”라는 비판과 함께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사건을 무게감 있게 직조해낸 작가의 필력은 놀라웠고, 인간적인 탐정과 아날로그적인 장치들 덕분에 사실감이 살아있었다.”라는 호평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은 전작에서 느꼈던 몇 가지 아쉬움을 말끔히 씻어준 것은 물론,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허물어버린 듯한 이 시리즈만의 매력을 훨씬 더 진하게 만끽하게 해줬습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미스터리 자체보다는 노(能) 또는 노가쿠라 불리는 일본의 전통 가면악극을 둘러싼 다양한 에피소드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덴카와 신사의 전설을 만나보는 일입니다. 연이어 벌어진 살인사건의 중심에는 노가쿠의 명문 미즈카미 가문이 놓여있고, 아사미를 비롯한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여드는 덴카와 신사에는 중세 남북조 시대를 살다 간 뛰어난 노가쿠 가문의 비극이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습니다.
노가쿠에 대한 설명과 덴카와 신사의 전설은 적잖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도 않고 낯설어 보이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 현재의 연쇄살인의 동기이자 주요 무대로 설정돼있으며 그 역사를 알면 알수록 비극의 깊이와 농도가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 덕분에 마치 과거의 비극이 현재에 이르러 되풀이되는 듯한 인상까지 받게 됩니다. 인간의 헛된 욕망과 옹졸함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뒤 예기치 않은 결과를 낳으며 아까운 목숨들이 너무나도 헛되이 사라지는 비극을 잉태했다고 할까요? 탐정 아사미 미쓰히코의 활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할아버지를 찾아온 히데미,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캐러 온 치하루 모두 노가쿠 가문 이면의 비밀과 덴카와 신사의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안타까운 진실들을 접하게 됩니다.
비록 아사미 미쓰히코가 ‘하필’ 덴카와 신사에 머물고 있었던 점이라든지 사건에 휘말리기 직전 아버지의 친구 덕분에 미즈카미 가문과 인연이 있었다는 우연, 그리고 그의 행보를 편하게 해주기 위해 작가가 설정한 부자연스런 구성 등 작위적으로 보인 부분도 일부 있었지만(별 한 개를 뺀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덴카와 전설 살인사건’은 작가 스스로 “하나의 도달점에 이르렀다.”라고 자평할 만큼 스케일과 디테일을 모두 갖춘 훌륭한 작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일본 미스터리를 탐독하면서 본의 아니게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자주 접한 덕분에 노가쿠와 덴카와 신사, 중세 남북조 시대에 관한 내용들을 부담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지만, 이런 내용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쉽지 않은 책읽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의 사건을 밝히는 열쇠들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만큼 지루하거나 난해하게만 읽히지는 않을 것입니다.
- 사족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을 보니 이 작품의 엔딩에 등장하는 너무나도 중요한 사실이 고스란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꼼꼼한 독자라면 이 정보 때문에 늦어도 1/3쯤, 빠르면 첫 사건과 동시에 살인사건 이면의 진실을 눈치 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가능하면 소개글이나 줄거리는 건너뛰고 본편부터 읽을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