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안녕을 - 판타스틱 픽션 BLACK 14-1 탐정 링컨 페리 시리즈 1
마이클 코리타 지음, 김하락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불미스러운 사고로 경찰복을 벗은 링컨 페리와 경찰 조직에 염증을 느낀 베테랑 조 프리처드는 사립탐정 사무소를 차린 후 처음으로 큼직한 사건을 의뢰받습니다. 의뢰자 존 웨스턴은 경찰이 자살이라 단정한 아들 웨인의 죽음의 진실을 알아내고 실종된 며느리 줄리와 손녀 베시의 행방을 파악해달라고 의뢰합니다.

하지만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클리블랜드 경찰과 FBI가 끼어들어 조사중지를 요구하고, 사건의 배후에 클리블랜드 최고의 거부 제러마이아 허버드는 물론 새롭게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러시아 마피아 두목 대니우스 벨로프까지 개입됐단 사실을 알곤 링컨과 조는 자신들이 맡은 사건이 평범한 탐정놀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특히 죽은 웨인과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찾아 사우스캐롤라이나로 향한 링컨은 그곳에서 충격적인 현장과 마주합니다. 그리고 웨인의 죽음의 동기는 물론 클리블랜드 거부와 러시아 마피아의 관계, 사건 수사에 끼어들었던 경찰과 FBI의 비밀을 하나씩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밤을 탐하다이후 두 번째로 만나는 마이클 코리타의 작품입니다. 액션스릴러, 그것도 재벌이나 마피아, FBI가 등장하는 작품은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밤을 탐하다덕분에 마이클 코리타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최근 인터넷서점의 행사를 통해 오늘 밤 안녕을숨은 강두 편을 구입했습니다. ‘링컨 페리 시리즈의 첫 편이기도 한 오늘 밤 안녕을밤을 탐하다와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영화의 원작에 잘 어울리는 재미있고 빨리 읽히는 엔터테인먼트 소설입니다.

 

어딘가 삐딱해 보이고 모난 돌처럼 제멋대로인 젊은 링컨 페리와 장년의 조 프리처드는 상투적이긴 하지만 안정감 있고 매력적인 사립탐정 콤비입니다. 탐정, 살인사건, 마피아, 재벌, 경찰, FBI, 그리고 애틋한 로맨스와 거듭된 반전 등 흥미 요소가 가득한데다 롤러코스터처럼 한시도 안심할 수 없게 이야기가 요동치고, 단순 탐문에서부터 목숨을 건 총격전까지 눈앞에서 목격하듯 생동감 있게 묘사된 덕분에 페이지는 거의 빛의 속도로 빠르게 넘어갑니다. 결정적인 첫 반전이 중반쯤 등장해서 그 이후의 스토리를 언급할 수 없는 점이 아쉽지만, 확실한 것은 일단 시작하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쉴 새 없이 달리게 될 거라는 점과 후반부의 연이은 반전 때문에 뒤통수를 맞는 느낌을 여러 번 경험하게 될 거라는 점입니다.

 

조연들의 배치도 적절하고 효과적이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감초처럼 빠지지 않는 기자 역할이면서 동시에 링컨과 묘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매력녀 에이미, 죽은 웨인의 옛 동업자이자 링컨과 조의 수사에 합류한 전직 탐정 킨케이드 등 주요 조연부터 몇 장면 등장하지 않는 작은 조연들에 이르기까지 뚜렷한 존재감과 역할을 맡고 있어서 그들의 행동이나 말 하나하나에 신경 쓰면서 읽다보면 의외의 재미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어딘가 좀 초점이 맞지 않는 듯한 번역이었는데, 딱히 오역은 아니지만 몇 번씩 다시 읽어도 그 의미가 불분명한 문장들이 꽤 있었습니다. 영어권 독자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묘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한 부분은 좋았지만, 가끔씩 목격되는 직역인지 오역인지 헷갈리는 문장들은 옥의 티였습니다.

 

마이클 코리타가 만 21살이 되기 전에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에 놀라 홈페이지를 찾아봤더니 중년으로 보이는 그의 사진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계산을 해보니 이제 만 서른 전후였습니다.) 홈페이지에는 모두 11편의 작품이 게재돼있는데, ‘링컨 페리 시리즈4, 스탠드얼론이 6, 그리고 단편이 1편입니다. 이 가운데 한국 출간작은 오늘 밤 안녕을외에 스탠드얼론 2(‘밤을 탐하다’, ‘숨은 강’) 뿐입니다. ‘링컨 페리 시리즈정도면 한국에서도 환영받을 만한 수준인데 이 작품이 소개된 2012년 이후 아무 소식이 없어서 아쉽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오늘 밤 안녕을은 홍보카피대로 서스펜스, 긴장감, 트릭 등 여러 미덕을 갖추고 있어서 요즘처럼 더운 날 다른 생각이 날 틈도 없는 재미있는 책을 찾는 독자에겐 특별히 더 추천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좀 늦은 감은 있지만 좀더 많은 독자들이 링컨 페리에게 관심을 갖고 입소문을 내준다면 머잖아 한두 편이라도 더 소개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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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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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작인 사신 치바가 여섯 편으로 구성된 연작단편인 반면, ‘사신의 7은 한 유명작가의 조사를 맡은 치바의 7일의 여정을 담은 장편입니다. 이 작품에도 치바의 캐릭터와 그의 미션에 대해 친절하게 묘사되어 있으니 굳이 전작을 읽지 않고도 치바의 모든 것을 무난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의 다양한 매력을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전작을 꼭 읽어볼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항상 비를 몰고 다니고, 어딘가 초점이 맞지 않는 대화로 상대를 당황케 만들며, 음악에 빠진 채 엉뚱한 블랙코미디를 구사하는 치바의 유쾌한 캐릭터는 여전합니다. 또한 자신이 맡은 대상을 7일 동안 조사한 후 생사를 결정하는 사신으로서의 역할에 있어서 치바는 거의 대부분 ’, 즉 죽음 쪽으로 결정하는 비정함을 보여줍니다.

이번에 치바가 조사를 맡은 인물은 야마노베라는 유명 작가입니다. 그런데 그와 그의 아내 미키는 1년 전 딸 나쓰미를 혼조 다카시라는 괴한에게 잃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무죄 선고를 받고 자유인이 된 혼조에게 사적인 복수를 준비 중입니다. 처음엔 아니겠지, 하다가 초반부에 치바의 조사대상이 야마노베라고 밝혀진 순간부터 왜 하필...’이라는 안타까움과 도대체 어떻게 끝나려나?’하는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습니다. 평소의 치바라면 아무리 딸을 잃은 슬픔을 겪은 야마노베라 하더라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냉정하게 죽음을 선고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혼조는 쉽게 말하면 피도 눈물도 양심도 없는 사이코패스입니다. 10살 된 나쓰미를 살해하고, 완벽한 사전준비를 통해 무죄를 선고 받음으로써 야마노베 부부의 절망을 극한까지 몰아붙입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도 부부를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이벤트를 만들어 냅니다. 야마노베 부부는 복수를 위해 혼조에게 접근하지만 번번이 실패할 뿐 아니라 그가 쳐놓은 덫에 걸려 큰 위기에 빠지기도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 항상 치바가 동행합니다. 본의 아니게 두 부부를 도울 때도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치바는 감정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방관자처럼 행동하거나 극한의 슬픔에 잠긴 부부 앞에서 엉뚱한 질문과 코멘트를 쉴 새 없이 날리곤 합니다.

 

하지만 7일 동안 치바와 함께 있으면서 부부는 조금씩 웃음과 안식을 찾아갑니다. 심각한 위기와 좌절을 겪지만 치바 덕분에 기운을 얻고, 위안을 받고,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그리고 죽음에 대해, 복수에 대해, 남은 삶에 대해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담기 위해 야마노베와 치바가 챕터마다 번갈아 화자를 맡습니다. 특히 평생 죽음을 두려워했던 야마노베의 아버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죽음에 대한 다양한 감정과 태도가 적잖은 분량에 걸쳐 묘사되는데, 살짝 지루하긴 하지만 치바가 죽음의 신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다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작인 사신 치바의 마지막 수록작에 치바가 처음 본 파란 하늘을 보며 감동받는 장면이 있는데, 야마노베를 조사하는 치바가 다시 한 번 그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과연 야마노베 부부의 복수는 성공할 것인지? 도대체 야마노베 부부를 향한 혼조의 끝없는 악의의 정체는 무엇인지? 7일의 조사를 마친 치바가 야마노베에 대해 내린 결정은 일지, ‘보류일지? 이 많은 기대와 의문들 덕분에 페이지는 아쉬울 정도로 금세 넘어갑니다.

 

사신 치바에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을 읽은 독자에게는 치바의 장편이 좀 어색하거나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등장인물과 단단하게 압축된 스토리로 무장한 단편들에 비해 한 인물에 대한 7일의 조사 기간은 지루하거나 장황하게 보였고, 특히 야마노베가 화자인 챕터에서는 치바 특유의 매력이 감소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랜만에 속편이 나온다고 했을 때 당연히 연작단편집이겠지, 라고 생각한 것은 저뿐 아니라 치바의 팬이라면 대부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이라부 시리즈가 단편만의 매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켰듯이 치바의 다음 이야기는 다시 한 번 단편으로 만나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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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치바 이사카 코타로 사신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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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후속작 사신의 76년 만에 출간된다는 소식에, 한참 전에 읽었던 사신 치바의 따뜻했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 서평도 써볼 겸 오랜만에 책장에서 다시 꺼내들었습니다.

 

치바는 인간의 죽음을 결정하는 사신이면서도 정작 인간이나 죽음 자체엔 별 흥미가 없으며 오로지 좋아하고 즐기는 것은 음반매장에서 헤드폰을 통해 음악을 듣는 것뿐입니다. 미션을 수행할 때면 예외 없이 비가 내려 치바는 파란 하늘을 본 적이 없습니다. 잠도 안 자고, 피로도 못 느끼며, 감각이 없어 음식의 맛이나 통증도 못 느낄 뿐 아니라 미션에 따라 그때그때 나이나 외모가 달라지는, 일찍이 본 적이 없는 독특한 신입니다.

정보부에서 죽을 사람을 지정하면 조사부에 속한 치바 같은 사신들이 그들과 접촉합니다. 일주일 간 두세 번 정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곤 상부에 가() 혹은 보류라고 보고하는데 가()일 경우 예정대로 죽음이, 보류일 경우 좀더 연장된 삶이 그들 앞에 주어집니다.

스토커에 쫓기는 오피스레이디, 복수를 눈앞에 둔 야쿠자, 폭설로 고립된 산장 여행객, 로맨스를 꿈꾸는 미남 청년, 살인을 저지르고 도주길에 나선 청년, 그리고 바닷가 미용실을 지키고 있는 70대 노파 등이 치바가 만난 죽을 사람들입니다.

 

좀 장황하지만 치바의 캐릭터를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로봇 혹은 시니컬하기 짝이 없는 하드보일드 탐정 같지만, 그런 차갑고 뻔뻔한 얼굴로 배꼽 잡는 블랙코미디를 구사하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처음 읽었을 때나 다시 읽었을 때나 인간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치바의 대사와 독백 덕분에 몇 번씩이나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역설적으로 또는 맘껏 비틀어 다루는 일본만의 독특한 문법은 소설 뿐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만나볼 수 있는데, ‘사신 치바는 그 가운데서도 눈에 뛸 만큼 개성을 지닌 작품입니다.

 

목차와 첫 에피소드를 읽고 나니 남은 에피소드들에 대한 몇 가지 기대감이 떠올랐습니다. 뻣뻣하고 고지식한 치바도 한번쯤은 툭하고 부러지거나 자신이 혐오하던 인간의 감정을 경험하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그래서 기어이 독자의 마음과 눈물샘을 한번쯤은 후두둑 무너지게 하지 않을까? 그리고 치바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등장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여섯 편의 수록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어디쯤에선가 치바와 재회하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은 예상대로 맞아들었고, 만족감은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습니다.

 

사신 치바는 지독한 블랙코미디와 훈훈한 인간극장이 잘 믹스된 듯한, 그래서 읽고 나면 마음이 한없이 따뜻해질 뿐 아니라 심지어 죽음조차 누구나 겪게 되는 삶의 한 부분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기분 좋은 작품입니다. 후속작 사신의 7은 장편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잘 짜인 연작 단편에서의 치바의 두 번째 활약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장편에서도 치바의 이야기는 여전히 매력적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수록작 평점

사신의 스토커 리포트 ★★★★★

사신의 하드보일드 ★★★★★

사신의 탐정소설 ★★★

사신의 로맨스 ★★★★

사신의 로드무비 ★★★★

사신의 하트워밍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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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소녀
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 / 달콤한책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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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98012,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지대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생후 3개월 여아를 제외한 전원이 사망합니다. 두 가족이 여아의 혈연임을 주장하면서 18년에 걸친 비극이 시작됩니다. 한쪽은 어마어마한 부자인 카르빌 가문이고, 다른 한쪽은 가난한 비트랄 가문입니다. “아이 이름이 리즈로즈 카르빌이냐, 에밀리 비트랄이냐?”를 놓고 프랑스를 뒤흔든 재판이 벌어지고, 양쪽의 이름을 따 릴리라 불리던 아이는 가난한 비트랄 가문의 혈연으로 판정 납니다. 하지만 아이를 빼앗긴 카르빌 가문은 사립탐정 그랑둑을 고용하여 아이를 되찾아 올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18년에 걸친 그랑둑의 조사가 진행되고, 1998년에 이르러 그랑둑은 사건의 진상을 담은 일기장을 남긴 채 자살을 시도합니다.

그랑둑에게서 일기장을 받아본 에밀리는 오빠 마르크에게 문제의 일기장을 전하곤 종적을 감춥니다. 이야기는 그랑둑의 18년 동안의 기록과 그것을 읽는 오빠 마르크의 현재 상황이 교차되면서 진행됩니다. 오빠지만 에밀리를 사랑했던 마르크는 일기장에 담긴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앞에서 한없이 좌절하고 분노하다가 기어이 진실을 찾는 위험한 여정에 나섭니다.

 

2012~2013년에 걸쳐 프랑스에서 주요 추리문학상을 많이 받은 작품이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의 느낌은 그 이상의 깊고 묵직한 여운이었습니다. 적잖은 인물들이 스스로 또는 타의에 의해 목숨을 잃는데다 베일에 싸인 비밀을 캐는 이야기라 장르물로 분류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한 사람의 기구한 운명이 바닥까지 파헤쳐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뭐랄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게 만드는, 그만큼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휴먼스토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랑둑의 일기장으로 인해 에밀리로 살아온 지난 18년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리면서 혼란에 빠진 릴리는 말할 것도 없고, 여동생이지만 여동생이 아니길 바라면서 그녀를 사랑해온 오빠 마르크는 릴리못잖은 큰 충격에 휩싸입니다.

사립탐정 그랑둑은 릴리의 할머니인 마틸드 카르빌로부터 그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18년 동안 매년 10만 프랑의 보수를 받으며 릴리를 빼앗아 올 단서를 잡아야하는 입장이었지만, 오히려 릴리를 비롯한 비트랄 가문의 가족들과 따뜻한 인연을 맺게 됩니다.

소중한 손녀와 여동생을 비트랄 가문에게 빼앗긴 할머니 마틸드와 언니 말비나는 거의 광기에 서린 릴리 되찾기에 나서는데, 특히 말비나의 경우 동생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성장 거부증에 걸릴 정도였고, 겁 없이 총을 휘두를 만큼 반미치광이로 24살의 나이에 이릅니다.

 

비극적인 비행기 사고가 두 가문에게 남긴 트라우마는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지독했고, 18년이 지나 모든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 너무나 많은 참극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작가는 오빠 마르크가 읽는 그랑둑의 일기장 내용과 진실이 드러나는 현재의 3일 간의 급박한 상황을 교차하여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긴장감과 호기심을 극적으로 끌어올립니다. 또한 양쪽 집안의 인물들을 포함한 다수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살인사건을 설정했는데, 마지막에 이르러 독자의 예상을 깨는 범인을 드러냄으로써 반전의 효과는 물론 이야기의 비극성을 한층 더 깊게 만듭니다.

 

과연 릴리는 어느 가문의 피를 이어받았는지, 양쪽 가문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진 그랑둑이 알아낸 진실은 무엇인지, 그 많은 희생자들은 왜, 누구에게 목숨을 빼앗겨야 했는지, 그리고 마르크와 릴리의 멜로는 비극적인 근친상간으로 막을 내릴 것인지 등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때까지 수많은 의문들이 미궁인 채로 독자를 유혹합니다. 더불어, 거듭되는 막판 반전은 단번에 끝까지 완주해온 독자의 뒤통수를 쉴 새 없이 두드리며 수많은 ?’라는 질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보여줍니다.

 

미셸 뷔시의 여섯 번째 장편이지만 한국에는 처음 소개되는 작품입니다. 외국작가의 한국 데뷔작은 출간순서와 무관하게 가장 뛰어난, 혹은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 선택되곤 하지만, 이만한 필력이라면 미셸 뷔시의 다른 작품들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잔혹한 연쇄살인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가 볼 때 비극적이긴 해도 심심한 가족사정도로 오해할만한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림자 소녀는 웬만한 미스터리나 스릴러보다 더 독하고 진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실망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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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별 1 유다의 별 1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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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어마어마한 재산을 은닉한 채 경찰에게 토벌된 사이비 종교 백백교의 교주 전용해, 70여년이 지난 후 그 재산의 행방을 찾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는 용해운과 수상한 사내들, 마찬가지로 백백교의 유산을 탐내는 사채업계의 거부 김성노와 그의 앞잡이 임인건, 그리고 김성노의 제안으로 유산 찾기에 뛰어든 뒤 거대한 비밀을 풀어가는 어둠의 변호사 고진과 그의 파트너들(광역수사대 이유현 팀장 & 김성노의 변호사 화미령).

 

어떻게든 줄거리를 정리해보려 했지만, 방대한 건 둘째 치고 사방에 스포일러 투성이라 등장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 정도로 그치기로 했습니다. 물론 위에 언급한 내용 가운데에도 스포일러에 가까운 내용이 있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작품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 없어서 부득이 노출시켰습니다.

 

1~2권 합쳐 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지만 금세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정도로 쉽고 빠르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스케일도 크고 미스터리로서의 매력도 뛰어나며 반전 역시 멈출 줄 모르고 이어져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틀 간 삼매경에 빠졌습니다. 참혹한 연쇄살인,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사이비 종교의 악행, 대를 이은 비극적인 가족사 등 다양한 코드들이 버무려져있고, 어둠의 변호사 고진과 광역수사대로 자리를 옮긴 이유현 팀장의 콤비 플레이는 전국은 물론 바다 건너 일본까지 샅샅이 뒤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스피디하게 전개됩니다.

 

재미도 재미지만 이야기 바닥에 깔린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추악한 탐욕이라는 테마는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 돋게 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됩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70여 년 전 백백교가 은닉한 보물찾기지만, 그 이면에는 허황되기 짝이 없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출 수 없는 욕망의 폭주들이 뒤엉켜 있어서 고진과 이유현 팀장의 수사가 진실에 조금씩 다가갈수록 독자를 착잡하게 만듭니다.

누구든 욕망의 폭주가 선을 넘었다 싶으면 여지없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고, 드디어 진실의 실마리가 잡혔다고 흥분할만하면 엉뚱한 국면이 새로 얼굴을 드러냅니다. 베일에 감춰졌던 과거사를 쫓다보면 두 번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비극과 만나게 되고, 70여 년 전의 끔찍한 백백교의 만행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음을 목도하게 됩니다.

 

고진은 여전히 4차원스러운 조크와 변죽만 울리며 상대를 열 받게 하는 화법을 구사합니다. (bar) 여사장 류경아와 김성노의 변호사 화미령 사이에서 3각 로맨스를 즐기는가 하면, 노회한 사채업자 김성노와는 통 큰 담판을 벌여 거액의 수수료를 약속받기도 합니다. 때론 엉뚱한 가설로 이유현 팀장의 분노를 사기도 하지만, 결국엔 작은 단서에서 출발한 무한한 상상력으로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론을 내곤 합니다. 하지만 천하무적일 것 같은 어둠의 변호사 고진도 막판에 이르러서는 여러 번 까무러칩니다. 적어도 세 번 정도는 헉~ 소리가 날 정도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데, 독자와의 공감을 배려해선지 이 지점에서는 고진 역시 숨이 멈칫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딱 두 가지인데, 우선은 고진의 추리가 지나치게 비약적인 나머지 독자들이 따라가기 곤란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말하자면, 포착한 단서는 하나뿐인데 그것으로 너무 많은 해답을 이끌어내곤 합니다. 적어도 독자들이 ~!”하며 따라갈 수 있어야 하는데, 몇몇 부분은 어떻게 저런 추리가 가능?”이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비약이 심합니다. 워낙 이야기가 빠르고 긴장감 넘치다 보니 그냥 넘어가지긴 하지만, 마지막의 대반전에서 벌어진 몇 번의 비약은 고진의 캐릭터를 초능력자로 보이게 할 만큼 도를 넘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유현 팀장의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 같은 단순한캐릭터인데, 이 부분은 이야기 전개를 위해 이 팀장이 희생됐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시리즈 첫 편인 어둠의 변호사에서 지나치게 탐문과 알리바이에 집착했던 모습은 좀 불편해도 이해가 됐지만, 이번 작품에서 과하게 흥분하다가 무모한 언행으로 인해 스스로 위기를 자초하는 몇몇 장면에서는 이 사람이 왜 이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아했습니다. 잠시 후 그것이 이야기 전개를 위해 필요한 설정이었다는 점이 드러나지만, 어쨌든 이유현 팀장이 여기저기서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인 것은 못내 아쉬웠습니다.

 

서평을 써놓고 보니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수사(修辭)만 가득할 뿐 정작 이 작품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도움말이나 알맹이에 대한 소개는 별로 없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내용만 가득합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대로 뭐든 조금만 상세히 설명하면 바로 스포일러가 될 수밖에 없는, 그야말로 지뢰밭 투성이인 작품이라 이런 수박 겉핥기식의 서평 외엔 도리가 없었습니다. 재미있지만 가볍지 않다는 점, 연쇄살인+사이비종교+인간의 탐욕 등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코드의 범벅이지만 이야기는 사실적이며 깊이를 겸비했다는 점, 그리고 뒷골목 어둠의 변호사 고진은 역시 매력적이라는 점만 결론으로 남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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