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들의 성야 닷쿠 & 다카치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맥주의 늪에 빠져 흐느적대던 안락탐정 닷쿠와 다카치가 현장탐정으로 변신하여 맹활약하는 모습을 그린 닷쿠&다카치 시리즈’ 3편입니다. ‘어린 양들의 성야는 꼬일대로 꼬인 구성과 사방에 묻힌 지뢰들, 그리고 반복되는 반전들 때문에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작품인데, 덕분에 정교한 논리적 구성과 롤러코스터 식 전개를 맛깔나게 믹스하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특별한 재능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헨미 유스케, 일명 보안 선배는 닷쿠와 다카치에게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포장선물을 건네며 이 선물의 주인을 찾아 전달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것은 1년 전 크리스마스 이브날, 닷쿠와 다카치와 보안 선배 앞에서 추락사한 가나에가 소지하고 있던 것으로, 그동안 보안 선배가 보관해왔던 것입니다.

선물 주인을 찾기 위해 가나에의 유족, 가나에가 죽기 전 참석했던 파티의 주최자, 가나에의 약혼자와 전 남친 등 관련자들을 만나면서 닷쿠와 다카치는 당시 자살로 결론 났던 가나에의 죽음에 뭔가 숨겨진 사연이 있음을 눈치 챕니다. 특히 다카치는 가나에의 아버지를 만난 후로 갑자기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그녀의 죽음의 동기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닷쿠와 다카치는 가나에가 추락사한 건물의 관리인을 통해 5년 전 규사쿠라는 소년이 가나에와 똑같은 방식으로, 즉 포장선물을 지닌 채 추락사했음을 알게 됩니다. 다카치는 관리인의 진술 속에서 가나에와 규사쿠 사이의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공통점은 다카치의 과거와도 맥이 닿아있는 비극적인 사연이라는 점이 밝혀집니다.

 

어린 양들의 성야에서 두드러진 점을 몇 가지 꼽아보면, 이전 작품들에 비해 맥주의 위상이 미미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거의 말석으로 쫓겨났고, 닷쿠와 다카치가 안락탐정에서 현장탐정으로 변신하면서 이야기가 사뭇 무거워졌으며, 두 사람 모두 대학 초년생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본격적인 탐정 캐릭터 플레이를 선보인다는 점입니다.

맥주에 취한 두 사람이 엉뚱한 상상과 가설을 통해 사건의 진상에 다가갔던 전작들과 달리 맥주는 그때그때 필요한 경우에만 등장하는 소품으로 전락(?)했습니다. 그만큼 사건에 임하는 닷쿠와 다카치의 자세가 진지해졌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이번 작품에서는 다카치가 최전방에 나서서 이야기를 이끄는데, 덕분에 지금껏 감춰졌던 다카치의 아픈 과거가 공개되면서 막판에 밝혀진 미스터리의 진상과 함께 이야기를 꽤 묵직하게 만듭니다.

 

이런 변화들은 한편으론 반가웠지만 다른 한편으론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본격적인 미스터리의 틀을 갖춤으로써 앞으로의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준 점은 반가웠지만, ‘닷쿠&다카치 시리즈의 최대 매력 중 하나인 청춘과 성장, 엉뚱함과 의외성이 사라지고 갑자기 철이 확 든 어른들의 미스터리로 노화한점은 읽는 내내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또한 거의 원탑 주인공처럼 맹활약한 다카치는 동료인 닷쿠와 보안 선배는 물론 독자들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들 정도로 몇 수를 내다보는 추리를 여러 차례 선보이는데, 그 도가 지나친 나머지 수십 년 경력의 명탐정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황당하고 엉뚱한 가설에서 출발하여 차츰 진상에 다가가던 풋풋한 아마추어의 모습들이 그리워질 정도였습니다.

 

조금 긴 사족으로 세 가지만 덧붙이자면, 우선 저는 부산영화제에 와서 영화를 기다리며 띄엄띄엄 읽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지만, 이 작품은 반드시 한 호흡에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쉴 새 없이, 심지어 다 끝났다고 생각된 마지막 페이지에서까지 터지는 니시자와 야스히코 식 반전의 묘미는 한 번에 읽지 않으면 절대 제 맛을 만끽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출판사에 드리는 말씀으로, 후반부에 등장하는 규사쿠의 어머니 와미가 여러 차례 미와로 오역되곤 했는데, 이 점은 다음 인쇄 때 꼭 수정됐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도 (요즘의 평균보다는 훨씬 적지만) 몇 군데 오타도 함께 수정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가나에와 규사쿠와 다카치의 공통점에 대해 줄거리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굉장히 중요한 스포일러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서점의 소개글이나 일부 서평에 무방비하게 노출돼있는 게 사실입니다. 관심 있는 독자라면 가급적 사전 정보 없이 이 작품과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 - 20세기를 뒤흔든 모델 살인사건과 언론의 히스테리
해럴드 셰터 지음, 이화란 옮김 / 처음북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20세기를 뒤흔든 모델 살인사건과 언론의 히스테리라는 부제처럼 이 작품은 1930년대 뉴욕 빅맨플레이스 일대에서 벌어진 일련의 살인사건(특히 미치광이 예술가가 범인인 3중 살인사건을 중심으로)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자 당시 선정성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았던 미국의 타블로이드 판 신문들이 사건들을 어떻게 히스테릭하게다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살인사건들은 두 가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피살자들이 알몸으로 발견된 여성들이라는 점, 그리고 불과 몇 년 사이에 양극화가 격해진 뉴욕의 빅맨플레이스에서 벌어졌다는 점입니다. 타블로이드들은 경쟁적으로 성()과 관련된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피살자들의 문란하거나 퇴폐적인 사생활 찾기에 혈안이 됩니다. 적절한 사진과 에피소드를 구할 수만 있다면 거액도 마다하지 않을뿐더러 정 없으면 애매한 표현들을 동원하여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모범생처럼 진지했던 그녀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자극적인 기사에서 섹시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집 안에 배달원이나 일꾼들이 있을 때도 네글리제를 입고 돌아다니길 좋아했던 빨간 머리 여자가 되었다.” (p57)

 

사건의 명칭을 어떻게 선정적으로 지어야 독자들의 시선을 끌까, 범인에게 어떤 자극적인 별명을 지어줘야 한 부라도 더 팔 수 있을까, 고민하는가 하면 연이어 살인이 벌어진 특정 장소에 대해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 급급합니다. 그 결과의 산물들이란 살해당한 모델의 미스터리’, ‘부활절 대학살’, ‘모델과 엄마, 섹스광에게 살해되다’, ‘술 취한 남자, 여성을 썰어 죽이다’, ‘망치 폭탄 맞은 아름다운 바이올리니스트등입니다.

더 이상 써먹을 내용이 없으면 그때부턴 아예 소설을 쓰거나 심지어 점성술사의 진술을 인용하여 범인의 외모와 현재 위치까지 과감히 추정합니다. 어제 내보낸 보도 혹은 소설이 오류로 드러나더라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좀더 치명적이고 선정적인 새 먹이 찾기에 나설 뿐입니다.

 

끔찍한 범인과 무방비 상태의 희생자, 희생자는 되도록 여자면 좋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라인과 대중들이 가진 비밀스럽고도 위험한 욕망에 호소하는 자극적인 행위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p20)

 

이런 경향은 1930년대 뉴욕만의 특징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터넷 덕분에 오늘날의 매체들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태도는 더 강화됐습니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지나치게 독한 보도들을 너무 자주 접한 나머지 웬만큼 센 자극이 아니면 독자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무덤덤해진 정도라고 할까요?

 

타블로이드로 대표되는 히스테릭한 언론 이야기와 함께 작가는 하드보일드의 대가 레이먼드 챈들러가 미국 범죄사에서 3위로 꼽은 미치광이 예술가 살인사건을 방대한 자료에 기초하여 상세히 정리해놓았습니다. 사건 발생부터 재판 종결까지, 또 수감된 이후 범인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당시 보도된 기사 내용은 물론 수사일지와 관련자 인터뷰 등을 참조하여 거의 백서에 가까운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한 논픽션 작가답게 범인의 모든 것 - 유년기부터의 성장과정,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완성돼온 과정, 여성에 대한 시각, 실체를 알 수 없는 정신적 장애 등 - 을 집요할 정도로 조사하여 끔찍한 살인마의 일대기 한 편을 완성시켰습니다.

 

얼마 전 같은 장르에 속하는 비독 소사이어티를 읽었습니다. 영구 미제 사건을 다루는 특별한 엘리트 집단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비독 소사이어티가 픽션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소설의 형식을 좀더 강조했다면, 이 작품은 기록문학과 논픽션의 미덕을 살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좀 딱딱하기도 한데다 기록문학에 낯선 독자들에겐 재미면에서 부족할 수 있겠지만, 범죄 논픽션만의 매력을 맛보고 싶다면 괜찮은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대야
소네 케이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단편집 ’, 장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침저어등을 통해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뚜렷이 보여준 소네 케이스케가 트릭의 묘미, 미래사회의 비극, 식인의 공포를 다룬 세 편의 중단편을 통해 독자를 서늘하고 아찔한 세계로 몰아넣는, 짧지만 임팩트는 엄청 강한 작품입니다.

 

열대야

야쿠자에 의해 감금된 채 살인과 강간의 위협을 받는 와 동행들, 인적 없는 야간도로에서 사람을 치곤 그의 돈을 훔치려는 간호사, 커터칼로 여자들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쫓기는 연쇄살인마 타마짱 등 상황은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고 인물들은 하나같이 끈적끈적한 위기 속에 놓여있습니다. 독자를 들었다, 놨다 하는 다양한 트릭이 숨어있는 잘 짜인 단편입니다.

 

결국에...

2030년대 후반, 동중국해에서 큰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일본은 고령화 사회가 극에 달하자 고령자를 전쟁터로 내보내는 정책을 강행합니다. 이로 인해 경로(敬老)주의 과격단체 연합은군노인세력 은 내전에 가까운 세대 간 전쟁을 벌입니다.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군국주의에 대한 냉소와 암울한 고령화 사회에 대한 경고 등 극단적인 현실감을 지닌 작품입니다. 특히 마지막 몇 줄의 반전은 소름이 돋을 정도의 충격을 전해줍니다.

 

마지막 변명

단편집 의 공포가 맛보기 정도였다면, 단편과 중편의 중간쯤 되는 분량의 마지막 변명은 소네 케이스케 식 공포와 호러의 메인 코스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소생자(이를테면 좀비)의 식인을 소재로 삼았지만, 단순히 말초적인 수준의 공포를 넘어 인류와 사회의 파멸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사실감 있게 그려냈습니다. 그래선지 막판에 주인공이 내뱉는 마지막 변명에선 공포와 서글픔을 함께 맛보게 되는 아이러니함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전작들을 통해 그의 팬이 됐기에 이 작품에 나름 큰 기대를 가졌는데, 그 기대는 충분하고도 넘칠 만큼 충족됐습니다. 여러 가지 트릭이 등장하는 열대야는 짧고 스피디한 단편의 전형적인 매력이 물씬 풍긴 반면, ‘결국에...’마지막 변명은 암울한 미래의 불안감과 극단적인 공포심은 물론 소네 케이스케만의 상상력과 필력이 압권인 작품들이었습니다. ‘열대야가 에도가와 란포 상 수상자로서의 능력을 재차 보여줬다면, ‘결국에...’마지막 변명은 소네 케이스케가 일본 호러소설대상 단편상까지 한꺼번에 휩쓸었던 작가란 점을 재차 상기시켜줬습니다.

단순히 설정의 힘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소네 케이스케는 개연성 있는 줄거리와 쉴 새 없이 전환되는 국면들, 그리고 그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와 현재를 촘촘하고 사실감 있게 묘사함으로써 남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현실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명백한 허구지만 동시에 명백한 현실처럼 피부에 와 닿는 공포심이야말로 소네 케이스케의 트레이드마크라는 생각입니다.

 

스포일러에 가까운 반전과 트릭이 온 사방에 산재해있다 보니 내용에 대한 언급을 거의 할 수 없었는데, 한 가지 확실한 건 극단적인 새로움을 원하는 독자라면 별 다섯 개도 부족할 정도의 재미와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인즈 웨이워드파인즈 시리즈
블레이크 크라우치 지음, 변용란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심각한 부상과 함께 대부분의 기억을 잃은 채 정신을 되찾은 에단 버크는 단편적인 단서들 덕분에 자신이 비밀수사국 특수요원이며, 실종된 동료들을 찾기 위해 소도시 웨이워드파인즈를 찾았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어렵게 찾아간 병원의 의사는 치료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이고, 도움을 청한 보안관 역시 태만한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더구나 거리엔 차도 사람도 별로 없고, 집과 사무실은 도무지 연락이 닿질 않습니다. 위화감으로 가득 찬 웨이워드파인즈를 벗어나려 하지만 그때부터 연이어 위기가 닥쳐옵니다. 탈출자를 향한 주민들의 광란에 찬 테러, 전기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마을 경계,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이한 생물체의 습격 등 몇 번의 큰 위기를 겪은 에단은 결국 웨이워드파인즈를 벗어나지 못한 채 낯선 공간에 도착하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처한 현실에 관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중반부까지만 해도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비밀로 가득 찬 공포 스릴러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린 비밀요원, 미지의 여인이 남긴 주소에서 발견되는 시체, 친절하거나 허술해 보이지만 어딘가 날선 무기를 숨겨놓은 듯한 의사와 보안관, 그리고 심장이 들여다보이는 괴물과의 사투 등 목숨을 건 에단의 탈출기는 말 그대로 한 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롤러코스터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단의 고된 여정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비밀이 드러나는 후반부에 도착하면 이 작품의 실체, , 평범한 소도시를 무대로 한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풍경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제야 왜 이 작품의 소개글에 트윈 픽스’, ‘로스트’, ‘X 파일등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작품들이 함께 언급됐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덕분에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도 암울함과 혼란스러움은 꽤 오래 지속됩니다. 내가 저 곳에 있다면, 저 곳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한다면, 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고 외부의 침입을 막아줄 튼튼한 전기철조망이 있더라도 과연 그것이 행복한 삶이 되어줄까, 라는 의문도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웨이워드파인즈는 보기에 따라 유토피아일 수도,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문과 회의에 대해 작가 블레이크 크라우치가 후속작인 웨이워드’, ‘라스트 타운에서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는 미지수지만,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공동체의 이미지보다는 블레이드 러너가 남겨준 비와 어둠, 깜빡이는 네온사인으로 잠식된 음울한 도시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떠오르는 것은 비단 저만의 경우는 아닐 것 같습니다. 과연 후속작들에서 에단 버크와 웨이워드파인즈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양새로 이어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쁘고 빨간 심장을 둘로 잘라버린 율리아 뒤랑 시리즈
안드레아스 프란츠 지음, 서지희 옮김 / 예문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부녀 에리카 뮐러의 시신이 공원에 유기된 채 발견됩니다. 율리아 뒤랑은 시신의 상태를 보자마자 1년 전에 벌어졌으나 미제 상태로 남아있는 두 건의 살인사건과 동일한 수법임을 알아봅니다. 무수한 폭행과 바늘 자국이 남아있고, 신체는 잔혹하게 훼손되어 있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 여 동안 하루에 한 명꼴로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된 희생자가 등장합니다. 뒤랑은 희생자 중 한 명인 고급 매춘부의 고객 명단에 들어있던 프랑크푸르트의 유력인사들을 탐문하지만 혐의를 특정할 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일부 희생자들과 용의자들이 파티와 점성술을 통해 인연을 맺은 것을 알게 된 뒤랑은 그들 간의 내밀한 관계를 추궁하는 한편 점성술사를 통해 희생자들의 공통점을, 정신과 의사를 통해 범인의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합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노력을 비웃듯 사건은 쉴 새 없이 계속 발생합니다.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작품을 짧은 시간 안에 연이어 읽어서 그런지 특히 이번 작품은 앞서 읽은 작품들과 비교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서평 대신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한국 출간작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몇 가지 아쉬운 점, 궁금한 점들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서평을 써볼까 합니다. (‘신데렐라 카니발은 아직 읽지 않았기 때문에 아래 내용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1.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잔혹함과 선정성은 과연 어디까지 진화할까요? ‘율리아 뒤랑 시리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되곤 했지만, 이번만큼 범행 수법이 잔혹하고 선정적이었던 경우는 없었습니다. 잔혹함과 선정성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진 않지만, 밀도 있는 구성이나 사실적인 캐릭터 등 작품의 완성도가 받쳐주지 않은 상태에서 말초적인 호기심만 자극하는 잔혹함과 선정성은 결코 매력적일 수 없습니다. ‘예쁘고~’의 경우 완성도를 논할 정도로 부족한 작품은 절대 아니지만, 어쩐지 독자들에게 소구하는 포인트가 여성 신체의 엽기적인 훼손에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잔혹함과 선정성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습니다.

 

2.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불륜의 사슬, 부모 또는 가족으로 인해 각인된 폭력과 성에 관련된 트라우마 등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자기복제는 앞으로도 계속 될까요? ‘예쁘고~’는 안드레아스 프란츠가 즐겨 설정하는 갖가지 트라우마의 집대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의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과거의 상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거나 현재 함께 살고 있는 가족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트라우마를 각인시킨 주범으로는 어머니가 으뜸으로 가장 많았고, 아버지의 경우 권위적이고 묵시적인 폭력으로 가족들을 굴복시키곤 합니다. 또한 이웃이나 친구 또는 가까운 지인의 배우자와 거침없이 불륜을 저지르는 인물도 예외 없이 등장합니다. 문제는, 이런 설정들이 매 작품마다 반복되면서 자기복제의 과정을 밟고 있다는 점입니다.

 

3. ‘외부의 제보나 우연한 계기 없이는 마지막 퍼즐을 맞추지 못하는 뒤랑의 형사로서의 능력은 어느 정도로 평가해야 할까요? ‘영 블론드 데드에서는 우연히 발견한 단서 하나가, ‘12송이 백합~’에서는 우연한 기회에 조사하게 된 참고인들이, ‘치사량에서는 난데없이 날아든 제보가 각각 사건 해결의 열쇠로 설정됐습니다. ‘예쁘고~’에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남자의 제보가 없었다면 여러 희생자를 낸 연쇄살인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뒤랑의 탐문은 집요하고 빈틈없지만 결국 제보나 우연한 행운 없이는 성과를 못 내온 것도 사실입니다. 과연 뒤랑은 뛰어난 형사가 맞을까요?

 

4. 이건 좀 사족인데, 원제와는 무관한 번역 제목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예쁘고~’의 경우는 왜 이렇게 원제와 거리가 먼 번역 제목을 붙였을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예쁘고~’의 원제는 심플한 한 단어 ‘Der Jager’, 즉 쫓는 사람, 사냥꾼이란 뜻입니다. (네이버로 검색해보니 ‘Jäger’로만 나왔는데, 혹시 오류라면 정정 부탁드립니다) 내용과 직접 연관 있는 것도 아니고 뭔가에 대한 상징이라고 볼 수도 없는 이 길고 뜬금없는 번역 제목의 출처는 도대체 어딜까요? 원제가 조금 밋밋한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작품의 완성도보다 잔혹하고 선정적인 제목으로 관심을 끌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장황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정작 예쁘고~’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하지 못했는데, 인물과 사건만 바뀌었을 뿐 전작들에서 보인 전형적인 틀을 복제한 느낌이 강했던 탓에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한국 출간작에 대한 거시저인 리뷰가 되고 말았습니다. 짧게 얘기하면, 일단 이야기는 재미있습니다. 엽기적인 사건, 극단적인 트라우마, 흥미진진한 불륜 등 다소 막장에 가깝고 자극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점성술 이야기도 의외로 흥미롭고, 중반쯤에 눈치 빠른 독자는 알아챘을지 모르지만 진범의 정체도 꽤 충격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공격적인 서평을 쓰게 된 것은 최근 1년여 동안 안드레아스 프란츠의 네 작품을 연이어 읽은 피로감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스릴러로는 손색없지만 그의 작품을 연이어 읽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띄엄띄엄, 조금은 기억에서 잊힐 만 할 때쯤 한 편씩 읽어보는 것이 안드레아스 프란츠와 율리아 뒤랑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