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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스 스타 ㅣ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5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4월
평점 :
‘레드브레스트’와 ‘네메시스’에 이은 오슬로 3부작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엘렌 3부작, 또는 프린스 3부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해리의 동료였던 엘렌의 피살 사건과 무자비한 살인범 프린스를 쫓는 이야기가
주축 스토리 - 악마의 별을 닮은 붉은 다이아몬드가 개입된 연쇄살인사건 – 에 못잖게
중요하고 무게감 있게 다뤄지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엘렌 사건으로 인해 거의 폐인이 된 해리의 참담한 모습과
그로 인해 파국에 이른 연인 라켈과의 관계도 적잖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서사는 언뜻 별개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나의 몸통처럼 엮여 있는데다,
알코올 중독에 빠져 경찰을 그만둘 생각까지 하는 엉망진창의 해리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난제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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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중독, 무단결근, 명령 불복종 등 무수한 사유로 해고 직전에 이른 해리 홀레는
차세대 경찰 리더인 톰 볼레르와 함께 기이한 여성 연쇄살인사건에 투입됩니다.
깨끗한 한 발의 총상, 잘린 손가락, 현장에 남겨진 붉은 다이아몬드,
그리고 연쇄살인의 특징인 성폭행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사체 등
사건은 아무런 단서도, 동기도 드러내지 않은 채
해리와 볼레르를 비롯한 경찰에게 미궁만 산더미처럼 남겨놓습니다.
가까스로 범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는데 성공하지만,
사건은 해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오히려 해리는 경찰의 추격을 받는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해리는 이번 연쇄살인사건의 큰 그림 속에
엘렌 살해범 프린스의 흔적이 어른거리는 것을 알아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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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은 해리 홀레 시리즈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는 ‘데빌스 스타’입니다.
분명 사건이 있고, 그것을 파헤치는 스릴러의 기본 서사를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요 네스뵈 스스로도 “해리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언급했듯이
알코올에 찌들고, 삶을 포기하고 싶어 할 정도로 폐인이 된
해리의 삶의 밑바닥을 집요할 정도로 디테일하게 묘사합니다.
눈앞의 범인은 잡지 못하고, 조직과 연인에게 버림받은 채
과도한 알코올과 치사량의 수면제에 의존하는 해리의 모습은
안쓰러움을 넘어 마치 그의 고통이 전염돼오는 듯한 느낌까지 전해줍니다.
그래서인지 해리가 정면으로 마주친 연쇄살인사건은
두툼한 분량이나 난해한 해결과정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입니다.
물론 사랑과 질투, 끝없는 탐욕과 이기심이 바탕에 깔려있고,
신비한 악마의 기운, 파헤칠수록 꼬일 뿐인 복잡한 암호가 개입돼있으며,
동기와 단서는 실마리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기이한 연쇄살인 설정 덕분에
이야기는 한치 앞도 예상 못할 정도로 긴장감 있게 전개됩니다.
의외의 범인, 의외의 동기, 의외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데,
요 네스뵈는 거기에 덧붙여 이 사건의 진상 속에 해리의 절실한 숙제,
즉 엘렌 살해사건의 실마리를 얹어놓음으로써 후반부의 폭발적인 전개를 가능하게 만듭니다.
‘데빌스 스타’의 아쉬운 점을 한 가지만 꼽자면 ‘과다하게 제공되는 정보’입니다.
요 네스뵈는 단역부터 조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인물들에 대해
인구사회학적(?) 정보와 과거사를 꼼꼼할 정도로 설명하고 있는데,
간혹 없어도 무방하거나 이야기의 핵심에서 벗어난 과다한 정보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또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비교설명이라든가, 암호해독에 관한 설명,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붉은 다이아몬드와 관련된 악령의 상징에 관한 설명 등도
적절한 분량 이상으로 할애되고 있어 약간은 지루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느낌은 요 네스뵈 스스로 “진짜 스릴러를 쓰고 싶었다.”고 공언했던 ‘네메시스’가
빈틈없는 구성과 속도감, 긴장감으로 중무장한 ‘진짜 스릴러’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데빌스 스타’가 받는 불이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엘렌 살해사건을 마무리 짓고 조직과 연인의 품으로 돌아간 해리 홀레의 다음 행보는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리디머(The Redeemer)’를 거쳐 ‘스노우맨’에 이릅니다.
그 이후 다시 망가진 해리가 경찰을 떠났다가 복귀하여 겪는 사건이 ‘레오파드’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실제로 해리 홀레 같은 진폭이 큰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불행이나 저주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레드브레스트’부터 시작되어 해리 홀레의 어깨를 짓누르던 짐들은 사라졌지만,
‘스노우맨’과 마주치기 전 그가 ‘리디머’에서 겪게 되는 고난은
어떤 색깔, 어떤 모양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레드브레스트’ 이전 작품인 ‘바퀴벌레(Cockroaches)’도 아직 미출간 상태지만,
개인적으로는 ‘리디머’가 빠른 시일 안에 출간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족으로...
바로 ‘데빌스 스타’를 읽어도 맥락 따라잡기엔 큰 문제가 없지만,
아직 ‘레드브레스트’와 ‘네메시스’를 읽지 않은 독자라면
해리의 사연이나 감정, 엘렌 사건의 전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가능하면 ‘데빌스 스타’ 전에 두 작품을 먼저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