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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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옮긴이의 말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초반부만 읽어도 영화 델마와 루이스가 저절로 떠오르는 작품입니다.

절친이면서도 한 명은 소심하고 여린 반면, 다른 한 명은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두 여자,

그리고 이기적이고 폭력을 일삼는 남편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델마와 루이스가 남편과 일상으로부터 소박한 일탈을 꿈꿨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빠지면서 점점 비장미를 더해가는 이야기인 반면,

나오미와 가나코는 좀더 적극적인 의미의 탈출,

즉 남편을 제거함으로써 잃어버렸던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 하는 이야기입니다.

 

남편을 제거하는데 한 줌의 후회도 가책도 망설임도 없었다.”는 뒷표지의 카피대로

두 여자는 치밀한 계획과 함께 거짓말처럼 찾아온 우연과 행운에 힘입어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둘러온 가나코의 남편을 제거합니다.

굳이 죽인다대신 제거라는 표현을 쓴 것은 자신들의 행위를 범죄가 아니라

불필요하고 해가 되는 어떤 것을 치워버리는 것으로 정의내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전반부인 나오미 이야기가 두 여자의 대비되는 성격과 환경, 폭력에 시달리는 가나코의 삶,

그리고 제거 계획의 수립과 그 실행에 관한 이야기라면,

후반부인 가나코 이야기는 완벽했다고 생각한 제거 계획이 조금씩 무너지며

두 여자에게 찾아오는 현실적인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어떤 모양새로 끝날지 알 수 없는 종점을 향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폭주하는 두 여자의 대응과 반격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초반부에 두 여자의 계획이 드러남과 동시에

작가나 독자가 선택하고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의 끝은 셋 중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비장미 넘치는 죽음, 범죄자로 체포되는 운명, 그녀들만의 해피엔딩이 그것입니다.

작가 오쿠다 히데오조차 그 결말을 어떻게 할지 끝까지 망설였다고 밝혔지만,

세 가지 결론 외에 딱히 뒤통수를 칠 만한 반전의 요소는 없기 때문에

엔딩에 대한 궁금함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녀들의 제거 계획에 끼어든 다양한 변수들 때문에

이야기는 계속 롤러코스터처럼 엎치락뒤치락 하며 흘러갑니다.

집요한 추적과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악연으로 시작됐지만 예상치 못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인물도 등장합니다.

별 것 아닌 단서가 그녀들의 목을 죄어오기도 하지만

제거 과정에서 무심코 내렸던 선택 하나가 그녀들을 자유롭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이런 변수들 덕분에 페이지는 금세 넘어가고, 독자는 긴장을 이완한 틈이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오쿠다 히데오를 워낙 좋아해서 이 작품 역시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좀더 큰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범죄에 관한 한 평균 이하의 아마추어인 두 여자의 제거 계획이

너무나도 허술하게 설정된 탓에 현실감이 떨어지는 장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준비를 치밀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계획이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지점에서

두 여자는 초등학생 수준의 대처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들이 위기에 빠지는 대목에서

, 이것이 아마추어의 한계인가?”라는 안타까움과 동정심보다

정말 둘 다 바보 아냐?”라는, 좀 심하게 표현하면, 한심함이 먼저 느껴지곤 했습니다.

물론 그녀들의 허술한 계획은 명백히 의도된 작가의 설정입니다.

그녀들이 프로에 맞먹는 완벽한 계획을 세웠더라면 오히려 어색해 보였을 것입니다.

또한 이 작품의 뼈대는 그녀들의 제거 계획이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가 아니라

다분히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두 여자의 굴곡진 삶에 대한 서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이없는 곳에서 그녀들의 허술함이 밝혀지면서

작가의 의도는 현실감을 잃게 되고, 작품의 뼈대 역시 무게감이 떨어지고 맙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녀들에게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는 식으로

독자들이 납득할 만한, 그래서 안타까움이 배가 될 만한 전개가 필요했다는 생각입니다.

 

오쿠다 히데오는 그 이름만으로 무조건 작품을 고르게 되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그래서인지 중편 또는 긴 단편 정도의 형식이 더 어울릴 법한 나오미와 가나코

올림픽의 몸값이후 처음으로 아쉬움이 남는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 됐습니다.

여전히 그의 이름은 보증수표로 남긴 하겠지만,

다음 작품에선 그의 진가를 다시 한 번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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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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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강직한 경찰이자 자상함과 애정으로 가득 찬 존경의 대상이던 아버지가 부패경찰이었음을 고백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이후 소니의 세계는 완전히 붕괴되고 마약으로 오염되고 맙니다. 안정적인 마약 확보를 위해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복역하는 삶을 선택한 소니는 12년 만에 아버지의 죽음에 전혀 다른 진실이 숨어있음을 알아내게 됩니다. 탈옥에 성공한 소니는 아버지의 죽음에 연루된 자들을 하나씩 처단하며 진실 찾기에 나섭니다. 소니 아버지의 절친이자 동료였던 시몬 케파스는 아들이나 다름없는 소니의 범행을 막기 위해 규칙을 깨고 월권행위를 서슴지 않으며 수사에 뛰어듭니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악의 축을 쫓는 소니의 폭주는 오슬로 전역에 끔찍한 연쇄살인의 공포와 함께 범법자를 제거하는 지옥에서 온 천사라는 찬양을 함께 불러일으킵니다.

 

아버지의 자살로 나락에 떨어졌던 소니가 아버지의 죽음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찾기 위해 피로 얼룩진 복수극을 펼친다는 심플한 구도의 이야기지만, 감질날 정도로 찔끔찔끔 패를 보여주며 긴장감을 폭증시키는 구성과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소니의 복수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막강 조연들 덕분에 뒤로 갈수록 이야기는 쫄깃해지고 도대체 베일 속의 인물이 누구일지 너무 궁금해집니다. 특히 양파 껍질처럼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들을 거쳐 막판에 드러나는 반전은 진실 찾기의 완성을 넘어 안쓰럽고 애틋한 여운까지 남겨줍니다.

 

거미줄처럼 얽힌 악의 사슬을 규명하는 소니의 복수극이 메인이지만 요 네스뵈는 그 외에도 매력적인 여러 가지 볼거리를 장착해놓았습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12년을 교도소에서 보내야했던 소니를 위로하기 위해 설정된 멜로라인은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놓는 뭉클하고 절절한 시퀀스입니다. 키스마저 어설픈 동정이나 다름없는 소니가 난생 처음 사랑을 느끼는 장면에서는 그가 교도소에서 보냈던 12년을 어떻게든 되돌려주고 싶을 만큼 마음이 아파지기도 합니다.

 

,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궁합이 잘 맞는 퇴임 직전의 고참 형사 시몬과 신참 여형사 카리의 콤비 플레이도 매력적인 설정입니다. 경찰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하고 관리직으로의 신분상승을 꿈꾸는 카리는 오직 형사의 길을 고집해온 시몬에게는 결코 탐탁지 않은 존재지만 의외로 뛰어난 자질과 의욕을 보이는 그녀에게서 시몬은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기도 합니다.

시몬은 비주얼이나 스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왠지 해리 홀레의 향기를 풍기고 있어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해리 홀레와 비교하면서 보게 만드는 재미를 던져줍니다. 해리가 술 때문에 고생했다면, 시몬은 도박 때문에 인생에 치명타를 입은 경험이 있습니다. 상관에게 미움 받기 딱 좋은 강직함과 반골로 똘똘 뭉친 기질적 공통점도 있지만, 사건을 대하는 예리한 촉,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 거침없는 독설과 따뜻한 인간미를 겸비한 카리스마도 해리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간간이 한 인물의 복잡다단한 의식의 흐름과 감정에 대해 조금은 현학적인 수사까지 동원하여 장황하게 묘사한 점도 해리 홀레 시리즈를 연상시키는데, 가끔 몇 번씩 되읽어도 잘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도 있지만, 소니가 애증과 그리움의 대상인 아버지를 회상하는 장면이나 시몬이 도박으로 망가진 자신의 삶과 시력을 잃어가는 아내 때문에 심하게 자책하는 장면은 요 네스뵈 식 감정 묘사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중환자실에 입원한 해리 홀레의 아버지가 등장했던 레오파드가 자주 떠올랐는데, 특별한 공통점이나 유사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에 대한 아들 해리의 애증이 많은 분량에 걸쳐 심도 있게 묘사됐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요 네스뵈의 삶에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나 애증이 제법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마지막까지 한 번에 달릴 만큼 재미있게 읽었지만, 일부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약간은 작위적 냄새가 나는 캐릭터 설정인데, 복수의 화신 소니는 그 어떤 장벽이나 위기도 쉽게 넘어서는 슈퍼맨 캐릭터였고, 악의 축으로 설정된 인물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날 정도로 언터처블에 가까웠습니다. 시몬을 포함한 나머지 주, 조연들이 워낙 사실감 있게 묘사된 덕분에 선과 악을 대표하는 두 인물의 비현실감이 어느 정도 상쇄되긴 했지만, 읽는 동안 여러 지점에서 위화감이 느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엄연한 스탠드얼론임에도 불구하고 해리 홀레의 향기가 느껴진 것은 저만의 특별한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어쩌면 해리 홀레를 그리워한(?) 나머지 대리만족을 맛보고 싶다보니 저도 모르게 그런 식으로 해석하거나 이입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개인적으론 스탠드얼론이라 좋았고, 해리의 향기가 나서 더 좋았던 작품입니다. 새로운 스탠드얼론이나 데빌스 스타의 후속작을 벌써부터 기대하는 건 너무 과욕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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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3 - 에이전트 6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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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아직 안 읽으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특별한 장치가 있다 하더라도 호기심에 몸이 달아오를 뿐, 실제로 그 장치를 이용하겠다고 나설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장밋빛 미래보다는 초라하게 늙어버린 우울한 미래가 보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일 제게 그런 특별한 장치가 있었다면, 또 이 작품의 주인공 레오 데미도프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면 어떻게든 강제로라도 1981, 58살이 된 그의 미래를 보게끔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레오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게 될지라도 반정부 인사나 무고한 시민들을 체포하며 유능한 정보기관 요원으로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58살의 레오가 등장하는 에이전트 6’의 이야기는 그에겐 지옥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시리즈 2편인 시크릿 스피치에서 레오는 요원으로 활약했던 과거의 행동 때문에 복수 세력의 타깃이 되어 자신은 물론 가족들까지 큰 위험에 빠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아무리 후회하고 반성해도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은 자가 부활할 리 없고, 유족들의 상처가 치유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레오는 비겁한 변명 대신 진심으로 자신의 과거를 지우려 했고, 그 일환으로 자신 때문에 부모를 잃은 조야와 엘레나 자매를 입양했습니다. 헌신과 사랑으로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 싶었던 그의 소망은 복수 세력의 등장으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지만 레오와 아내 라이사는 목숨을 건 여정 끝에 겨우겨우 부서진 가족을 봉합했습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1965. 레오는 42살의 중년이 됐고, 공장 중간관리자라는 초라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팽팽하던 그해 여름, 두 나라의 청소년들이 뉴욕의 UN본부에서 화해의 콘서트를 열기로 했고, 아내 라이사가 인솔 교사로, 딸 엘레나가 소련 학생대표 자격으로 참석합니다. 레오의 불길한 예감대로 콘서트 당일 UN본부 앞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레오는 또다시 견딜 수 없는 깊은 심연에 빠지고 맙니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1981년에야 레오는 비극의 현장인 UN본부 앞에 도착합니다. 그 사이 레오는 숱한 고난과 자괴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미국으로의 망명을 위해 국경을 넘다가 체포되는가 하면, 마약에 취한 채 주머니에 돌을 가득 넣고 호수로 걸어 들어가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소련이 침공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능한 정보 요원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58살의 초라한 모습으로 16년 전 비극의 진실을 찾기 위해 미국 땅을 밟은 것입니다.

 

어디에선가 에이전트 6’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는 서평을 읽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몇몇 장면에선 끝없는 시련으로 만신창이가 된 레오를 보며 목이 잠기기도 했습니다. 공산당에 충성하며 유능한 요원으로서 숱한 사람들을 수용소로 보냈던 그의 젊은 시절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인생에서 유일하게 행복과 만족을 느낀 시간들이었습니다. 레오는 그 시간들에 대해 진심으로 참회하고 자신 때문에 상처받은 자들에게 사죄했지만, 그런 선택은 오히려 그를 시대가 낳은 최악의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마지막 챕터를 펼치면서 (절대 그럴 일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레오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처럼 비현실적인 슈퍼맨이 돼서라도 그에게 비극을 안긴 악의 세력을 철저히 응징하는 장면이 나오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렇게라도 돼야 평생을 자책과 자괴, 눈물과 고통으로 살아온 레오에게 조금이나마 안식을 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결코 웃는 얼굴로 마무리 될 수 없는 레오의 인생이지만, 톰 롭 스미스는 그래도 그에게 행복한 눈물을 흘릴 기회를 남겨줍니다.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시크릿 스피치가 만족보다는 아쉬움을 많이 남긴 탓인지 에이전트 6’에서는 기대 이상의 보상을 받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 속에 맥없이 휘말리듯 서있던 레오의 모습은 긴장과 스릴 속에 연쇄살인의 진상을 파헤치던 차일드 44’에서의 존재감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물론 스탈린 시대부터 30여 년의 고된 현대사를 헤쳐 온 거대한 서사의 주인공으로서의 무게감은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고, 그동안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함축시킨 듯한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의 눈물은 어설픈 해피엔딩보다 훨씬 더 많은 여운을 남겨줬습니다.

 

차일드 44’를 읽고 2년이 지난 뒤에 두 편의 후속작을 연이어 읽어서 그런지 새삼 차일드 44’를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다시 읽다 보면 정의롭고 인간적인 청년 레오에게 나에게 특별한 장치가 있고, 그것을 통해 당신의 미래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그의 앞에 놓인 미래를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 것 같습니다. 물론 레오 역시 그 특별한 장치를 절대 쓰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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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2 - 시크릿 스피치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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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상세한 내용이 포함돼있습니다. 아직 안 읽으신 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953년 스탈린 치하의 소련을 무대로 한 시리즈 첫 작품 차일드 44’에서 냉혹하고 가차 없는 임무수행으로 일찍이 그 능력을 인정받았던 정보기관 요원 레오는 소년소녀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면서 반역자로 낙인찍힐 위기에 빠집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고, 그 공을 인정받은 레오는 시크릿 스피치의 시간적 배경인 1956년 현재, 비공식 조직이긴 해도 살인수사과에서 당당히 범죄수사를 맡고 있습니다.

 

1956년은 소련에서 큰 사건이 일어난 해입니다. 스탈린 사후 공산당 서기장에 오른 니키타 흐루쇼프(흐루시초프로 불리기도 했습니다)20차 공산당 대회 비공식 석상에서 스탈린을 정면 비판하는 충격적인 연설을 합니다. 이 연설의 파장은 어마어마한 것이어서 소련 내부의 치열한 권력 갈등은 물론 동유럽에서의 끔찍한 유혈사태까지 초래했습니다. ‘시크릿 스피치는 바로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 연설을 지칭하는 제목인데, 스탈린 집권 시절 국가에 의해 자행된 체포, 고문, 처형 등 구체적인 정황이 적힌 문서가 연설문과 함께 누군가에 의해 여기저기 배포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연설문의 배포와 함께 과거 폭압적인 독재에 희생됐던 자들의 복수로 추정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권력집행자들이 차례로 목숨을 잃는데, 당시 유능한 정보기관 요원이었던 레오 역시 그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7년 전, 레오로 인해 남편과 태아까지 잃었던 한 여자가 레오 앞에 나타나 그의 가족을 위협하며 수용소에 갇혀 있는 자신의 남편을 구해올 것을 요구합니다.

 

흐루쇼프 연설이 초래한 사회적 혼돈과 복수의 퍼레이드, 그리고 거기에 레오와 그의 가족들이 숙명처럼 말려든다는 설정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아무리 레오가 과거를 청산했다고 해도 그가 남긴 상처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그를 향해 복수하려는 자들을 악당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는 딜레마도 좋았습니다. 또한, 자신이 연루된 사건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자매를 입양하여 죄책감을 보상받고 싶었지만 오히려 부모를 죽인 원수로 낙인찍힌 채 증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레오의 처지는 안쓰러움과 함께 시한폭탄 같은 긴장감을 고조시킨 설정입니다.

 

하지만 시리츠 첫 편인 차일드 44’의 후광이 너무 커서였을까요? 매력적인 초반 설정들에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페이지는 잘 넘어가지 않았고, ‘차일드 44’에서 만났던 카리스마 넘치는 레오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탓에, 개인적으로 시크릿 스피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큰(또 유일한) 이유는 현실감 부족한 사건과 인물들입니다. 레오가 지키려는 가족은 절대 그에게 협조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증오와 불신을 지닌 채 그를 죽일 생각까지 품습니다. 갈등 자체가 수긍 가능한 선을 넘어서자 뭐 하러 자신을 증오하는 가족을 구하러 저렇게까지 애를 쓸까?”라는, 반발심 섞인 의문이 수시로 들곤 했습니다.

, 평범한 인물들이 갱단 보스 혹은 치명적인 살수(殺手)가 된다는 설정도 레오의 가족 지키기만큼이나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작위적이었던 건 역시 부자연스러운 해피엔딩입니다. 수백 페이지에 걸쳐 눈덩이처럼 불어난 갈등을 억지로 봉합한 것은 차일드 44’얼음 속의 소녀들에서 봤던 작가의 필력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가족을 찾기 위해 레오가 뛰어들어야 했던 무수한 난관들 역시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탈출해도 주변의 냉혹한 자연환경 때문에 살아남을 길이 없는 최악의 수용소, 그곳으로 가기 위해 차가운 폭풍과 끔찍한 폭력에 맞서야 했던 수송선에서의 여러 날들, 전운이 감도는 헝가리까지 날아가 벌이는 가족 찾기와 복수극의 공허한 하이라이트 등 스케일과 액션을 위해 무리하게 시공간을 확장시킨 듯한 설정들은 장면 하나하나는 매력적이었지만, 정작 앞뒤 맥락까지 고려해서 되읽어보면 이야기의 쫀쫀함과 사실감을 떨어뜨린 과대포장일 뿐이었습니다. 캐릭터나 사건에서 과대포장만 걷어냈다면 전작인 차일드 44’ 못잖은 매력을 유지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은 더 배가됐습니다.

 

시크릿 스피치자체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전작이 남긴 기대감 때문에 더 큰 실망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톰 롭 스미스의 필력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아닌 만큼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에이전트 6’에서 작가와 주인공의 진짜 매력을 재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하려 합니다. 무엇보다 레오의 마지막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해서라도 당장 에이전트 6’를 읽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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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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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비틀어진 신념, 평범하지 않은 가치관, 집착에 가까운 자기애(自己愛)...

 

조금이라도 임계점을 넘어가버리면 그런 마음을 지닌 주인을 폭발시키거나

절대 넘어선 안 될 선을 넘게 만들어버리는 위험한 요소들입니다.

야경에 수록된 6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때로는 스스로, 때로는 타인에 의해 임계점을 넘어간 신념과 가치관과 자기애로 인해

자신을 파괴하거나, 타인을 망가뜨리는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하게 됩니다.

 

소심하지만 무모하고, 거기에 총에 관한 집착까지 겸비한 신참 경찰,

뛰어난 미모의 유전자와 파괴적인 속성까지 공유한 아름다운 어머니와 두 자매,

도시에서 종적을 감춘 뒤 자살로 유명해진 외딴 산속 온천여관의 종업원이 된 여자,

실적과 집념에 사로잡힌 채 거대한 도박을 감행하는 해외주재원,

추락사고가 빈발하는 절벽 근처의 인적 없는 휴게소를 홀로 지키는 할머니,

어딘가 고풍스러운 면모를 지녔지만 결국 살인범이 된 하숙집의 젊은 여주인 등

설정만으로도 서늘한 기운이나 광기를 내뿜는 인물들이 6편의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야경을 읽은 뒤끝은 마치 결론 없는 괴담을 읽은 것처럼 기묘할 따름입니다.

끝나도 끝난 것 같지 않고, 오히려 그 뒤에 벌어질 이야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수록된 작품마다 미스터리의 요소를 품고 있어 나름의 반전과 충격을 전하기도 하지만,

이런 애매한 독후감이 드는 이유는

작가의 방점이 미스터리 이면에 있는 평범하지 않은 심리에 찍혀있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들은 딱히 사이코패스도,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다고 볼 수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지닌 마음의 모양새와 행로는 꽤나 파격적입니다.

마음만으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기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이거나 철저히 망가뜨리기도 합니다.

 

그들의 마음과 행동에 대해 때론 공감이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수시로 ()는 왜?”라는 질문이 마음속에서 불쑥불쑥 솟아오르지만,

한두 작품 외엔 대부분 명쾌한 대답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뭐야?”라는 의문은 들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한 작품만 빼고..^^)

작가는 답을 알려주진 않지만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독자에게 던져줍니다.

등장인물과 비슷한 모양새의 마음을 지닌 독자라면 공감을 넘어 열광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증오 또는 혐오감만 남을 수도 있습니다.

 

명성에 비해 직접 읽어본 작품이 1~2권밖에 없어

야경이 요네자와 호노부의 전공 분야인지 일시적 외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전부 시리즈에 앞서 국내에 소개된 작품들이 어떤 내용일지 급 궁금해졌습니다.

야경에서 느낀 기묘함을 다시 맛볼 수 있는 작품이 있다면 더욱 반가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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