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느와르 M 케이스북 - OCN 드라마
이유진 극본, 실종느와르 M 드라마팀.이한명 엮음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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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느와르 M’7편의 에피소드 중 2(살인의 재구성, 예고된 살인)밖에 못 봤지만

적잖은 제작비와 수준 높은 완성도가 눈에 띄었던 작품입니다.

실종사건 전담반을 그린 미드 ‘Without a Trace’를 워낙 좋아했던 덕분에 관심을 가졌는데

대본도 탄탄했고, 연출도 공을 많이 들여서 그런지 기대 이상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미 방송된 드라마를 대본, 영상, 제작진의 후기 등과 함께 책으로 낸 경우는 처음 접했는데

실제 봤던 에피소드를 꼼꼼히 읽어보니 드라마를 안 본 사람도 스릴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편집이나 구성 등 모든 면에서 공들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캡처 사진과 포스트 잇, 발췌한 대본 등을 이용한 레이아웃은

시각적인 즐거움뿐만 아니라 실제 드라마를 보는 듯한 미묘한 맛을 전달해주기도 합니다.

 

아직 못 본 5편의 에피소드는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대략의 서두만 읽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분량도 상당하고, 단순히 내용 정리 수준을 넘어 제작진이나 배우들의 뒷얘기도 실려 있어

나름 이 드라마의 마니아들에게는 큰 선물이 됐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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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의 마 미스터리, 더 Mystery The 11
미쓰다 신조 지음, 이연승 옮김 / 레드박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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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인에게 나타난 사상(死相), 즉 죽음의 그림자나 증상을 볼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을 바탕으로 탐정이 된 쓰루야 슌이치로의 활약을 그린 두 번째 장편입니다.

 

● ● ●

 

조호쿠 대학의 괴기 동아리인 백괴(百怪) 클럽멤버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기숙사 지하실에서 독특한 악마 소환 의식이자 강령술인

사우의 마의식을 치른 뒤 연이어 기이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클럽 멤버들 중 일부로부터 유령 같은 검은 여자를 목격했다는 진술을 들은 슌이치로는

의식이 벌어졌던 기숙사 지하실의 음습한 분위기와 검은 여자의 정체에 주목합니다.

특히 기숙사 지하실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비극적 사건들 때문에

슌이치로와 클럽 멤버들은 그때의 원령(怨靈)이 검은 여자의 형체로 나타났다고 의심합니다.

슌이치로가 사건 조사를 시작한 이후에도 기이한 죽음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슌이치로는 유명한 무녀인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진상을 밝혀냅니다.

아무도 예상 못한 범인의 등장에 클럽 멤버들과 경찰들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 ● ●

 

백괴 클럽이 벌인 사우의 마라는 강령술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 때문에

사상학 탐정 슌이치로는 이야기 중반부쯤에야 등장합니다.

예전보다 훨씬 더 성숙해졌을 뿐 아니라, 탐정으로서의 능력이나 매너도 향상된 슌이치로는

타인의 죽음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과 뛰어난 추리를 바탕으로

누가 봐도 원령에 의한 저주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는 기이한 사건의 진실을 밝혀냅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사우의 마라는 강령술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면서도 서서히 공포심을 고조시키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검은 여자의 모습으로 기숙사를 얼어붙게 만드는 정체불명의 존재는

끝까지 정말 원령인지 인간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묘사됩니다.

아무래도 주인공 슌이치로의 능력 자체가 비현실적인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보니

모든 것이 원령의 소행이다라고 결론이 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기 때문에

독자는 설마그렇지 않을까?’의 경계에서 수시로 혼란을 겪게 됩니다.

 

여름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미쓰다 신조 식 호러라 순식간에 끝까지 달릴 수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슌이치로가 처음으로 등장했던 호러 단편집 붉은 눈이나

첫 장편 사상학 탐정-13의 저주에 비해 호러물로서의 매력이나 진실을 밝히는 과정 등

여러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았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어느 순간 갑자기 깨달음이 찾아왔다는 식의 슌이치로의 추리방식이 아쉬웠는데,

진범을 특정한 근거나 범행동기에 대한 설명은 어딘가 끼워 맞추기 식 해명의 느낌이 강했고,

거듭 이어지는 반전 역시 뒤통수를 치는 충격보다는 작위적인 설정에 가까웠습니다.

 

도조 겐야 시리즈나 작가 시리즈를 통해 미쓰다 신조가 즐겨 사용해온

인간의 살의와 원령의 저주라는 트레이드 마크가

왠지 사우의 마에서는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느낌입니다.

아닌 걸 알면서도 어느 새 빨려 들어가고 마는 극한의 공포라든가,

인간의 살의와 원령의 저주를 자연스럽게 믹스시킨 탁월한 필력,

그리고 반전과 반전 끝에 드러난 진실이 전해주는 충격 등

미쓰다 신조 표 호러물만의 특별함이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고 할까요?

 

오히려 단편이라면 슌이치로의 매력을 더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타인의 죽음을 내다보는 능력은 사건의 발단에서는 위력을 발휘하는 설정이지만,

장편의 이야기를 끌고 가려면 그 이상의 매력과 능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어쩌면 사상학 탐정이라는 캐릭터 자체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려면 지금의 슌이치로만으로는 조금 무리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이 들기 때문입니다.

전작에서부터 언급된 치명적이고 엄청난 힘을 지닌 적이 언제쯤 등장할지 모르겠지만,

그 대결에서만큼은 슌이치로가 장편 주인공으로서의 매력을 발휘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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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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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밤새 긴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입니다.

하루키의 작품에서 맡을 수 있는 고유한 향기가 물씬 배어있지만,

동시에 일종의 위화감(?) 같은 것도 곳곳에 숨어있는 듯한 작품입니다.

 

● ● ●

 

자정을 코앞에 둔 도시의 밤.

마치 드론 같은 존재가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체 없는 의식이며, 어느 곳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지적 시점일 뿐입니다.

자칭 우리라고 하는 그 시점은 어둠이 내린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찰합니다.

 

두꺼운 책과 담배와 함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밤을 새우는 19살의 아사이 마리,

아마추어 밴드에서 트럼본을 연주하며 사법고시에 관심을 둔 21살의 다카하시 데쓰야,

한때 잘 나가는 여자레슬러였지만 지금은 러브호텔의 매니저 일을 하는 가오루,

도망자 신세로 가오루의 러브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특이한 이름의 고오로기,

마리와 동갑이지만 불법체류 신세로 매춘 조직에 얽힌 중국여자 궈돈리,

IT회사에 근무하며 철야를 밥 먹듯이 하는 수상쩍은 직장인 시라카와,

그리고 마리의 언니이자 무한 수면(睡眠) 상태에 빠져 있는 아사이 에리 등

도시의 이곳저곳에 머물러 있는 다양한 군상들이 우리의 눈에 비칩니다.

 

● ● ●

 

이야기는 인물 별로 토막토막 분절돼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고리들을 통해 정교한 원의 형태를 지닌 것 같기도 합니다.

밤이라는 특별한 시공간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거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인물들끼리 사소한 소품을 통해 촘촘히 연결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켜보는 사람은 크게 마리와 그녀의 언니 에리입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마리와의 하룻밤 인연 때문에 우리의 시점에 포착되지만,

에리는 조금은 차원이 다른, 판타지 같은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목격됩니다.

마치 별개의 이야기처럼, 그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영원히 잠든 백설공주입니다.

에리의 이야기는 뭐라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판타지에 가까워서

독자에 따라 공감과 이입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런 불편함은 이야기의 끝에 가서 마리와 에리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지면서 해소됩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난 마리와 다카하시가 해가 뜰 무렵 나름 각별한 관계가 되는 것 외엔

일반적인 소설의 서사를 따르는 내용은 별로 없습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조연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등장인물이

밤에만 어울리는, 밤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낮에는 전부 사라질 것 같은

그런 특별한 이야기와 생각들을 풀어놓습니다.

밤은 혼자서만 간직해온 비밀을 처음 만난 사람에게 훌쩍 털어놓게 해주기도 하고,

모두가 아는 이야기임에도 새삼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게 만들기도 합니다.

같은 사람에게라도 낮에는 결코 내보일 수 없는 표정이나 행동이

밤의 영역에서는 너무나도 무방비하게 터져 나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애프터 다크는 읽는 내내 왕가위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는데,

화려함과 빈곤, 타락과 쓸쓸함으로 가득 찬 밤의 도시 안에서

때론 무게감 없는 부유물처럼, 때론 폭발직전의 폭탄처럼 떠다니는 인물들을 그려냈던

‘2046’이나 중경삼림의 이미지들이 수시로 파편처럼 머릿속을 날아다녔습니다.

캐릭터나 스토리가 비슷한 것은 아니지만

도시의 야누스 같은 밤 풍경과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이 깃든 인물들의 눈빛만큼은

마치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많은 작품들처럼 호불호가 갈릴 여지도 많고,

다 읽고 난 후에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읽은 거야?’라고 자문할 독자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프터 다크는 어떤 교훈이나 특별한 인상, 감정을 느끼게 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마리와 에리를 지켜보는 우리의 시점처럼 독자는 그저 그들을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늦은 시간, 번화한 거리 속 외진 계단 같은 곳에 앉아서 네온사인과 자동차 불빛을 배경삼아

쾌락이나 고통, 사랑이나 슬픔 따위에 푹 빠진 다양한 군상들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요?

, 그런 모습을 누군가에게 몰래 감시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그저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다가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을, 누군가에게는 한심함, 누군가에게는 애증을 느끼면 그만입니다.

어떤 때는 그런 무심한 바라보기 자체가 너무나도 매력적일 때가 있으니까요.

애프터 다크는 그런 식의 바라보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루키는 집필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이니시에이션 스토리라고 얘기했는데,

솔직히 읽으면서도 이니시에이션 스토리,

즉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한 고통스런 통과의례의 이야기라는 느낌은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의 인물들이지만 그들의 고통은 성장통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진짜 어른으로 막 진입한 후에야 비로소 마주치게 되는 현실들 그것이 제도이든,

사람이든, 감정이든 간에 때문에 파생된 것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 좀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하루키의 마니아는 절대 아니지만, 굉장히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은 작품입니다.

작품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음험하게 숨어있던 관음증의 일부가 묘한 방식으로 충족됐기 때문입니다.

소음과 음란함에 빠진 도시라도 좋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는 도시도 좋고,

그 어디에서든 우리같은 관찰자가 돼서 하룻밤쯤 차분히 이런저런 사람들을 지켜본다면

내 안에 숨어있던 건전한(?) 관음증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누구든 애프터 다크같은 이야기 한 편쯤 뽑아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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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걸스
로렌 뷰키스 지음, 문은실 옮김 / 단숨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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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의 대공황 시대, 시카고에서 별 볼일 없는 삶을 살아가던 하퍼 커티스는

우연히 찾아들어간 낡은 집 더 하우스에서 낯설고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더 하우스는 하퍼에게만 들리는 특별한 목소리를 통해

각자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9명의 빛나는 소녀를 살해하라고 지시합니다.

아무런 저항 없이 그 명령에 순종한 하퍼는 더 하우스의 출입문을 통해 시간여행을 하며

멀리는 1993년까지 날아가 소녀 9명을 잔혹하게 살해합니다.

하지만 단 한 명, 커비 마즈라치에 관한 한 그는 미션을 완수하지 못합니다.

그녀는 우연과 행운 덕분에 하퍼가 남긴 치명적인 상처에서 겨우 살아남았고,

이제 신문사 인턴기자가 되어 자신을 죽이려 했던 남자가 연쇄살인범임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뒤늦게 커비의 생존을 알게 된 하퍼는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또다시 1993년으로 돌아오고

커비는 자신의 멘토인 왕년의 사건기자 댄과 함께 목숨을 건 대결을 펼칩니다.

 

● ● ●

 

시간여행을 하는 연쇄살인범이라는 독특한 설정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만든 작품입니다.

더구나 일반적인 연쇄살인범의 설정과는 달리 하퍼 커티스는 어떤 영적인 힘,

더 하우스가 내뿜는 기괴한 힘에 이끌려 목적과 이유도 모른 채 소녀 살해에 나섭니다.

더 하우스는 제목도 비슷한 스티븐 킹의 샤이닝에 등장하는 오버룩 호텔을 연상시킵니다.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처럼, 전지전능한 신처럼 존재하며 하퍼를 조종하는 더 하우스

악마 그 자체를 떠올리게 할 만큼 섬뜩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범행의 대상이 된 소녀들은 샤이닝 걸스, 즉 빛나는 소녀들이라 지칭되지만

그녀들이 빛나는 이유에 대해 더 하우스는 특별히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하퍼 역시 왜 하필 그녀들을 죽여야 하냐고 더 하우스에게 묻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더 하우스가 제공한 시간여행 속에서 그녀들을 난자하고 훼손할 뿐입니다.

마치 신 내림과 비슷한 과정이라 할까요?

 

유일한 생존자인 커비가 자신의 사건을 취재했던 왕년의 사건기자 댄의 인턴이 되어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탐문과 자료조사를 통해 범행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전형적인 스릴러 공식을 따르고 있어 나름의 재미를 전해줍니다.

하지만 무려 60년 이상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하퍼의 꼬리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 하퍼의 비현실적인 시간여행 연쇄살인을 알아낸다고 해도 그 자체를 이해할 수 있을지,

그리고 스스로 이해 불가능한 현상을 파트너인 댄은 물론 세상에게 어떻게 납득시킬지 등

커비 앞에 놓인 난제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현실 속 수사와 판타지 속 연쇄살인이 병행되면서 결말에 대한 궁금함은 최대한 증폭됩니다.

 

목차를 보면 1929년부터 1993년까지의 에피소드가 무질서하게 배치돼있는데,

처음엔 꽤나 혼란스러운 책읽기가 되겠다고 생각됐지만,

읽다 보면 그런 배치가 의외의 재미를 준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가끔 목차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며 연대를 확인하는 수고가 필요하지만

그런 행위 자체가 과거와 현재, 인물과 인물, 사건과 사건의 관계를 되새기게 만들면서

색다른 긴장감은 물론 독자의 주의를 수시로 환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더 하우스라는 신비로운 존재, 그로부터 부여받은 하퍼의 욕망이 배제된 연쇄살인,

그리고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단서들을 쫓는 커비와 댄의 콤비 플레이 등

여느 스릴러와도 차별화되는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뭔가 모호하고 설명되지 않는 더 하우스의 존재와 범행 동기는

장점이면서 동시에 아쉬운 점으로 남은 것이 사실입니다.

스티븐 킹이 오버룩 호텔의 캐릭터를 위해 적잖은 분량과 에피소드를 준비한 반면,

로런 뷰커스는 더 하우스의 캐릭터를 독자들의 상상력에 전적으로 맡겼다고 할까요?

이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갈린다면 아마 이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처음 만난 작품이지만 그래픽노블과 시나리오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약을 해온

작가 로런 뷰커스의 독특한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이 돋보였고,

그녀의 또 다른 판타지 역시 기대감을 가져도 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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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다이어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캐롤 쉴즈 지음, 한기찬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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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카일러 굿윌과 머시 스톤 사이에서 태어나

80여 년의 삶을 살다 간 데이지 굿윌 플렛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다이어리라는 제목을 갖고 있지만, 일기, 편지, 독백, 3인칭 서술 등

각 챕터마다 내용에 어울리는 다양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산업과 과학, 사회와 문화 등 전 분야에서 격변을 겪던 20세기의 시작 무렵에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인생을 출발한 한 여자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어쩐지 지금의 시대를 사는 한 여자의 이야기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에피소드들 부부, 가족, 친구, 사랑, 애증 등 이 등장합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자마자 보이는 엄청난 가계도(家系圖)가 암시하듯

이야기는 데이지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평범한 채석꾼에서 최고의 석공 자리에 올랐지만 딸에게는 가깝고도 먼 존재였던 아버지,

데이지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줬지만 정작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하고 숨을 거둔 어머니,

오갈 데 없던 데이지를 보살피며 키워준 양어머니,

20년 이상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데이지의 인연이 된 남편,

그리고 늦은 나이에 얻은 좌충우돌 세 자녀가 이야기의 중심에 서있고,

동시에 데이지의 평생의 절친들이 함께 나이를 먹어가며 맛깔난 조연 역할을 해줍니다.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거나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린 사람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여자의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서 더 공감과 이입의 폭이 넓었던 것 같습니다.

, 나도 이렇게 나이를 먹고, 이렇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어야만 하는 희로애락과 생로병사를 맞이하겠구나, 라는 공감,

, 딱히 본받거나 존경할만한 미덕은 없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내 어머니, 아내, 딸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이입이

잔잔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꾸준히 마음을 건드렸습니다.

 

데이지와 그녀의 남편 바커 플렛이 식물과 정원을 사랑했던 사람이라 당연한 결과겠지만

자연과 식물에 관한 상세하고 꼼꼼한 문장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녀가 태어난 캐나다 작은 마을이나 삶의 터전을 잡은 여러 곳의 자연 풍광,

또 남편을 잃은 뒤 그녀의 삶을 빛나게 해줬던 꽃과 식물에 대한 애정은 특히나 각별한데

그것들은 단지 소품이 아니라 데이지의 삶을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들이 돼줍니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성실한 자료조사의 결과라고만 볼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작가의 애정 어린 묘사들이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아주 천천히, 단어 하나하나를 깊게 음미하며 읽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장르물의 빠른 책읽기에 익숙해져서 처음엔 좀 곤혹스러웠지만,

일부러 읽는 속도를 줄이자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느린 책읽기가 어려운 독자들에겐 쉽지 않은 도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롤러코스터 같은 진폭이나 극적인 갈등보다는 제목처럼 다이어리에 충실한 내용인데다,

20세기 초반의 올드함 또는 고전미를 연상시키는 아날로그 식 문장들로 쓰인 탓에

폭풍 같은 서사와 어느 정도 막장스러운 가족사를 기대한 독자들이나

쉽고 간결한 현대의 문장에 길들여진 독자들에겐 자칫 지루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잔잔한 다큐멘터리를 바라보듯 차분하게 데이지의 삶을 지켜볼 준비가 돼있다면,

또 작심하고 안전속도이하로 읽어갈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이 작품에 대한 다양한 평 가운데 삶에 대한 긍정과 찬미라는 찬사가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론 이 작품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평이라는 생각입니다.

데이지는 아주 찰나의 몇몇 순간을 제외하곤 결코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삶에 대해 긍정하거나 찬미하기 보다는

그때그때 자신 앞에 주어진 고난과 고비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며

그 결과에 대해 때론 웃기도, 때론 눈물짓기도 하면서 80여 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녀는 낙관주의자도, 희망론자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삶을 전반적으로 지배한 것은 작가의 말처럼 슬픔의 정서였고,

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 아주 많이 닮아있습니다.

만약 데이지가 고난 속에서도 삶을 예찬하는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미화됐더라면

아마 이 작품의 미덕은 상당 부분 훼손됐을 것입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언젠가는 이만한 깊이와 굴곡까지 지니진 못하더라도

내 곁을 지나친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다이어리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기억을 파내려가다 보면 스스로도 깜짝 놀랄 별의별 해프닝들이 많이 떠오를 것이고

거기에 연관된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도 떠오를 것입니다.

그들과 나눴던 희로애락을 평범한 문장으로라도 엮어놓고 두고두고 읽어볼 수만 있다면

그저 미미한 삶일지라도 나름의 의미를 찾고 잠시나마 빙긋 웃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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