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집 스토리콜렉터 33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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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 오역일지도 모르지만

어느 집에도 무서운 것은 있다정도로 번역되는 원제 (どこのにもいものはいる)대로

이 작품에는 무서운 것이 존재하는’ 5개의 집이 등장합니다.

각각의 집에는 이성적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서로 다른 괴이 현상과 그 주체가 등장합니다.

2000년 전후, 새로 지은 단독주택의 벽지 속에 존재하는 괴존재,

1930년대, 인적 없는 외딴 대저택에서 목격된, 아이들만 납치한다는 여인 와레온나,

1970년대 말, 밤마다 연립주택 지붕을 기거나 날뛰는 괴노파 또는 비어있는 옆집의 주민,

1990년대, 사이비종교의 근거지인 단독주택을 장악한 마력의 코우시 님,

그리고 메이지 말기, 지방 유력자의 집안에서 태어난 일종의 초능력자 요치 등

공포를 자아내는 괴이 현상과 괴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일기, 속기록, 체험담 등 다양한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괴담의 집은 앞서 출간된 미쓰다 신조의 호러물의 총집합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용이나 분위기, 소품이나 도구, 괴이 현상과 괴존재 등 거의 전 분야에서

노조키메는 물론 사관장백사당을 비롯한 작가 3부작의 향기가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미쓰다 신조는 팬이자 편집자인 미마사카 슈조를 통해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어쩐지 비슷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는두 가지 괴담을 접합니다.

이후 미마사카로부터 두 개의 괴담을 더 받아보게 되는 한편,

스스로 앞의 괴담들과 비슷한 느낌을 발산하는 한 개의 괴담을 찾아냅니다.

모두 5개의 괴담이 차례로 전개되는 가운데,

미쓰다 신조와 미마사카 슈조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막간에 등장하여

5개의 괴담 사이의 비슷한 점, 그러니까, 시간이든 장소든, 괴이 현상이든 괴존재든,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유사한 공포를 자아내는 공통점을 찾기 위해 토론을 벌입니다.

 

미쓰다 신조는 전작인 노조키메프롤로그에서 이런 언급을 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이 책을 읽는 중에 평소에는 느끼지 않을 시선을 빈번하게 느끼게 된다면,

거기서 이 책을 덮기를 권합니다. 단순한 기분 탓이겠지만, 만일을 위해서입니다.”

 

이번에는 소리에 조심하라는 충고를 미리 던져줍니다.

읽는 동안 들은 적 없는 기묘한 소리가 들리면 일단 이 책을 덮는 편이 좋을지도 모른다.”

 

독자를 위한 작가의 서비스임을 알면서도, 마냥 무시하지만은 못할 섬뜩한 경고입니다.

미쓰다 신조의 사관장백사당을 읽은 지 얼마 안돼서 그렇겠지만,

소리로 전해지는 공포는 누군가의 엿보는 시선보다 더욱 두렵게 느껴졌고,

괴담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의성어들은 환청처럼 귓가에서 맴돌기도 했습니다.

 

미쓰다 신조와 미마사카 슈조는 괴담 애호가이자 수집가로서

자신들의 촉이 지시한대로 5개의 괴담 사이의 공통점, 유사점을 캐내려 애씁니다.

하지만 애초의 직감과는 달리 공통점이나 유사점은 좀처럼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미쓰다 신조 식 호러+미스터리 하이브리드 서사가 등장합니다.

미쓰다 신조는 방대한 자료조사와 탐문을 통해 5개의 괴담을 꿰뚫는 공통점을 찾아냅니다.

하지만, 충분한 개연성을 갖췄음에도, 이 결론 역시 일정부분은 추론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고,

앞선 작품들에서처럼 이야기는 깔끔한 엔딩 없이 호러 그 자체로 마무리됩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른 뒤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애매하고 기분 나쁜(?) 엔딩이 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미쓰다 신조 호러물에 대한 호불호가 갈리는데,

저의 경우, 공포나 호러 취향이 아님에도 이상하게 미쓰다 신조의 작품에는 끌리는 편입니다.

오히려 깔끔한 엔딩이 아니라서 더 매력적이고,

호러 그 자체로서 마무리된 이야기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곤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앞선 출간작들에서는 대부분 별 4~5개 정도의 만족감을 느끼곤 했는데...

 

이번 괴담의 집만큼은 상대적으로 아쉬움을 많이 느낀 작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공포심을 유발하는 힘이 노조키메사관장’, ‘백사당에 비해 약했던 탓도 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비슷한 톤과 소재의 작품이 잇달아 출간된 것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특히 괴담의 집노조키메사이의 유사성은 새로운 괴담을 기대했던 그의 팬들에게는

무척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때론 작품 간의 유사성이 매력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자주, 과하게 반복되다 보니 아무래도 피로도가 높아졌다고 할까요?

여전히 그의 괴담이라면 다른 작품들보다 먼저 구해보고 싶어지겠지만,

다음에는 적어도 노조키메의 그림자에서는 벗어난 소재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사족으로...

작품 내내 미쓰다 신조는 다른 작품들의 집필 경위를 설명하곤 하는데,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리즈 중 하나인 도조 겐야 시리즈의 미출간작

유녀(幽女)처럼 원망하는 것에 대해 기획부터 완성까지 꽤 자주 언급한 부분을 보면서

(비록 국내 출판사는 다르지만) 하루라도 빨리 국내에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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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우스의 살인 하야미 삼남매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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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이 집필된 90년대 초반은 한국에서도 천리안이나 하이텔

PC통신이 새로운 문명기의 시작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던 시절입니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일으켰는데 이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

초반부터 정체가 공개된 범인 시나 도시오는 요즘으로 치면

인터넷 중독에 히키코모리의 특징을 겸비한 예비 소시오패스입니다.

그는 가상공간에서 만난 닉네임 CAT O’NINE TAILS라는 존재에게 무한한 애정을 느낍니다.

성별도 나이도 알 수 없지만, 오직 이 세상에서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친구이며,

그와 나눈 대화, 그와 함께한 체스 게임은 시나 도시오의 귀중한 보물이 됩니다.

CAT과의 만남을 통해 봉인돼있던 금지된 욕망을 발산하게 된 시나 도시오는

더 이상 위선적이기만 한 인간적 탈을 벗어던지고 쇠망치를 든 채 거리로 나섭니다.

시나 도시오와 CAT이 몰고 온 전대미문의 연쇄살인은

무차별 살인, 눈속임 살인, 정신이상자 범행, 비밀결사의 제재 등 숱한 추정만 불러일으킬 뿐

희생자들 간의 연관성도, 범행 목적도, 단서도 남기지 않은 채 수사진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 ● ●

 

‘0의 살인을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코믹 코드가 섞인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먼 취향이라

후속작인 뫼비우스의 살인의 출간 소식에도 관심이 덜 갔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서평과 카페 및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맛보기 식으로 훑다보니

이번에는 코믹 코드의 역할은 줄어든 반면,

범죄는 사악해지고 하야미 3남매는 진지해졌으며, 전대미문의 소시오패스가 등장하는데다,

살육에 이르는 병의 슬랩스틱 버전이라는 독특한 작품이라는 평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읽어보니 앞서 확인한 서평과 소개글 그대로였습니다.

‘0의 살인도 기이한 연쇄살인사건을 다뤘지만 어딘가 연극적인 분위기가 지배했던 반면

뫼비우스의 살인은 훨씬 더 리얼하고 참혹한 연쇄살인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또한, 하야미 3남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의 추리는 여전하지만,

‘0의 살인에서처럼 독자들의 웃음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도쿄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은 연쇄살인마를 잡으려는 진지한 수사의 일환으로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코믹 코드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어

이런 종류의 재미를 기대한 독자에게도 충분한 만족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독신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던 하야미 교조가

수사1과 최초의 여성 주임 후보인 기지마 레이코와 좌충우돌 엮이는 장면들은

‘0의 살인에 못잖은 재미를 주는 대목입니다.

 

이 작품이 살육에 이르는 병의 슬랩스틱 버전으로 불린 이유는

살인마 시나 도시오의 소시오패스적인 캐릭터와 참혹한 살인행각 때문입니다.

반전이나 구성 등 큰 틀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시나 도시오라는 인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살육에 이르는 병의 향기(?)가 강렬하게 느껴집니다.

신체훼손을 일삼던 살육에 이르는 병의 범인에 비하면 시나 도시오는 얌전한 편에 속하지만

작가 스스로 뫼비우스의 살인을 쓰면서 살육에 이르는 병의 플롯을 구상했다고 한 걸 보면

스토리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나 도시오의 캐릭터를 진화시킴으로써

작가의 대표작이자 반전의 명작을 탄생시킨 것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드러난 시나 도시오와 그의 파트너 CAT O’NINE TAILS의 연쇄살인의 실체는

살육에 이르는 병과 비교해도 그렇고, 요즘의 눈높이로 봐도 신선한 반전에는 못 미치지만

이 작품이 출간된 90년대에는 충격과 함께 논란의 여지를 많이 남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인지 시나 도시오의 스토리가 하야미 3남매 시리즈가 아니라

살육에 이르는 병의 톤으로, 그러니까 정색하고 19금 판정 수준으로 적나라하게 집필됐다면

훨씬 더 파괴력이 큰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습니다.

아무래도 개인적인 취향이 코믹 코드보다는 잔혹한 미스터리 쪽에 있다 보니

그런 아쉬움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하야미 3남매 시리즈 중 일본에서 제일 먼저 출간됐지만

국내에는 아직 소개 안 된 ‘8의 살인은 어떤 톤의 작품일지 궁금해집니다.

아무래도 코믹 코드가 짙겠지만, 3남매의 첫 데뷔라 기대감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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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바꼭질 버티고 시리즈
이언 랜킨 지음, 최필원 옮김 / 오픈하우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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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매듭과 십자가에 이은 이언 랜킨의 존 리버스 시리즈 두 번째 작품입니다.

당초 시리즈 집필 계획이 없던 이언 랜킨은 매듭과 십자가에서

존 리버스의 끔찍한 트라우마를 사건과 직결시킨 탓에

사건 전개보다 그의 과거사나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너무 많은 분량을 할애했고,

결과적으로 영국에서 매년 팔리는 범죄소설 중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엄청난 시리즈

존 리버스 시리즈의 첫 작품은 좀 밋밋한 스릴러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숨바꼭질은 존 리버스를 소개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난 탓인지

좀더 스릴러의 본령에 충실한 미덕들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 ● ●

 

폐가로 전락한 주택단지 필뮤어에서 마약중독자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리버스는 새로운 파트너 홈스와 함께 사건을 수사하지만

그의 앞에 놓인 단서들은 일관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랜덤함 그 자체입니다.

독극물이 든 마약을 투여하고 죽은 시신, 오컬트 의식에 따라 배치된 시신과 소품들,

벽에 그려진 오각별과 그 곁에 붙어있는 에든버러의 풍광을 담은 사진들,

남창이면서 사진작가를 꿈꿨던 희생자의 이력,

그리고 숨어! 그들이 오고 있어! 그들이 날 죽였어!”라는 여친에게 남긴 마지막 한마디 등

리버스는 수많은 단서 속에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아득할 따름입니다.

끈질긴 탐문과 거듭되는 현장 방문, 희생자의 흔적에 대한 추적 등을 통해

리버스는 누군가 희생자를 의도적으로 살해한 정황을 찾아냄과 동시에,

때맞춰 날아든 제보를 통해 에든버러를 충격 속으로 몰고 갈 끔찍한 사실을 알아내게 됩니다.

 

● ● ●

 

숨바꼭질은 자신이 나고 자란 에든버러에 대한 작가의 애정으로 똘똘 뭉친 작품입니다.

첫 장에 실린 작가의 말을 통해 이언 랜킨은 에든버러를 타락시킨 런던에서 온 외지인들과

그들이 실어 나른 추악한 변화들 가령, 부동산 개발이라든가 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씁쓸함을 표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애정을 넘어 이언 랜킨은 자신의 불편한 심정을 이야기 전반에 투사하고 있습니다.

마약은 어느 새 아름답고 깨끗하던 에든버러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게 됐고,

길거리엔 남창들이 공공연히 호객행위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신이 발견된 곳은 한때 재개발로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폐가가 된 곳입니다.

이런 에든버러의 타락을 배경으로 숨바꼭질은 존 리버스가

한 마약중독자의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전형적인 스릴러 공식을 따라 전개됩니다.

 

매듭과 십자가에서 어딘가 해리 보슈나 해리 홀레를 연상시키는

암울하고 회복불능의 상처투성이 캐릭터로 묘사됐던 존 리버스는

숨바꼭질에서는 훨씬 더 유연해졌을 뿐 아니라 조금은 뻔뻔스러운 캐릭터로 진화했습니다.

진급도 했고, 상관의 지시에 고분고분 따를 줄도 알고, 부하를 쥐락펴락 다룰 줄도 압니다.

물론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 사는 외톨이 기질까지 버리진 못했지만

어쨌든 전작에 비해 꽤 매력적인 캐릭터로 성장한 것은 사실입니다.

 

매듭과 십자가에서 느낀 아쉬움들이 어느 정도 해소됐음에도 불구하고,

숨바꼭질은 여전히 엄청난 시리즈의 진면목에는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마약, 오컬트, 남창, 수상한 경찰 등 일관성 없는 많은 단서들이 존 리버스 앞에 던져지고,

그로 인해 그의 수사는 다방면으로 전개되지만, 찔러본 곳에 비해 결과는 신통치 않습니다.

새 파트너인 브라이언 홈스가 던진 한마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군요.”처럼

사건을 복잡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작가는 무리한(또는 과한) 설정을 펼쳐놓았지만

사실 이 설정들이 적절한 효과나 반전의 기반을 만들어냈다고 보이진 않습니다.

말하자면, 심플한 사건의 구도를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재료를 보충했지만

그 재료들 가운데 후반부에 가서 제 역할을 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매듭과 십자가에서도 그랬듯,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계기는

뜻하지 않은 깨달음과 때맞춰 날아드는 외부의 제보였습니다.

작가가 너무 많은 일들을 벌인점은 오히려 납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반면,

깨달음과 제보는 사실 아쉬움을 넘어 실망감을 안겨주는 대목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아쉬움은 저만의 특별한 느낌일 수도 있고,

엄청난 시리즈의 진면목에 대한 과한 기대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에든버러에 대한 애증, 사회적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재미와 속도감이 붙은 서사 등

숨바꼭질만의 미덕은 두루 꼽을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합니다.

어쩌면 올해 안에 볼 수 있다는 세 번째 시리즈 이와 손톱에서는

저의 기대감이 제대로 충족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분의 서평을 보니 이와 손톱에서 이언 랜킨의 재능이 폭발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존 리버스에 관한 충분한 예습까지 마친 이상

엄청난 시리즈의 진면목을 발견할 때까지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놓지 않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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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자 매드 픽션 클럽
카린 포숨 지음, 최필원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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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소도시에서 잇달아 괴사건이 벌어집니다.

피범벅이 된 아기가 발견되고,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의 부고 기사가 나는가 하면,

거짓 사고 전화가 빈발하고, 우리를 벗어난 사냥개가 소년을 습격하기도 합니다.

노형사 세예르는 악의로 가득 찬 일련의 괴사건을 쫓으면서

고요한 숲으로 둘러싸인 소도시가 순식간에 공포로 휩싸이고,

평화롭기만 하던 가족들의 일상이 참혹하게 붕괴되는 참상을 목격합니다.

 

● ● ●

 

원제도 ‘The Caller’이고 번역제목 역시 발신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에 딱 어울리는 제목은 악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피가 튀는 참혹한 연쇄살인도 없고, 복잡하고 이리저리 꼬인 미스터리도 없는데다

작가는 처음부터 범인과 범행수법을 있는 그대로 독자에게 보여줍니다.

범행수법이란 것도 직접적인 위해와는 거리가 먼 장난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내가 연쇄살인마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은 로또에 당첨될 가능성보다 낮겠지만,

거짓 전화나 악의 섞인 장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그보다 훨씬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결코 장난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금세 거짓이나 장난으로 판명난다 하더라도

누군가로부터 너의 아이를 유괴했다.”는 협박전화를 받은 일이 있다면,

아이의 부모는 (적어도 한동안은) 아이에 대한 걱정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이런 사태를 몰고 온 책임을 서로에게 전가하다가 기어이 파국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발신자는 이런 악의로 가득 찬 장난이 초래한 수많은 파국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피범벅이 된 아기가 발견된 첫 사건 이후

범인의 장난은 갈수록 사소해지고 유치해지지만 체감 공포는 오히려 높아진다는 점입니다.

이런 하찮은(?) 범인이 자아낸 공포심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범인의 장난에 걸려든 가족들이 충격과 패닉을 거쳐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마치 심리소설의 한 대목처럼 디테일하게 그려낸 작가의 필력 덕분일 것입니다.

번역하신 최필원 님도 후기를 통해 이런 분위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잔잔하고 밋밋한 느낌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강렬한 기운이 도사리고 있다. 시한폭탄을 품고 독서하는 기분이랄까.

 

작가가 창조한 범인은 소시오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살의와 증오의 대상일 뿐인 불행한 가족의 역사,

유년기부터 시작된 또래로부터의 소외와 고립,

오토바이, 애완동물, 병든 할아버지에 대한 비정상적이고 집착에 가까운 애정 등...

희생자를 선택하는 기준 역시 때론 시기와 질투심에 의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무작위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제멋대로입니다.

이런 전형적인 특징을 갖춘 소시오패스라면 당연히 피와 살이 튀는 범죄가 연상되지만,

작가는 그에게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난을 저지르게 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예전엔 겪어보지 못한 역설적인 공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바글거리는 세상이 좋았다. 바람에 펄럭이는 새하얀 옷들과 페인트 냄새.

좋은 만큼 다 망쳐놓고 싶었다.

모두가 벼랑 끝에 서있어. 그는 생각했다.

내가 다 떠밀어버릴 거야.

 

카린 포숨과 처음 만났던 야간시력이라는 작품 역시

내게 여자가 있다면..”을 끊임없이 되뇌며 사랑을 갈구하는 특이한 사이코패스 릭토르의

불안정한 심리와 기이한 행동들을 느린 속도로 그려낸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발신자는 카린 포숨의 대표 캐릭터인 세예르 형사가 등장한다고 해서

스릴러의 성격이 강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그에 덧붙여 독특한 심리물의 장점도 잘 살아있어

노르웨이 스릴러의 여왕'이라는 그녀의 명성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다만, 정통 스릴러를 원하는 독자에겐 양념이 좀 덜 된 느낌이 들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혹시 야간시력을 조금 어렵게 읽은 독자라도,

그래서 카린 포숨의 명성에 약간이나마 의문을 가졌던 독자라면

발신자를 통해 어느 정도는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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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한 최면술사 형사 뤄페이 시리즈
저우하오후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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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최면술사 링밍딩은 총회를 통해 최면술을 심리치료에 이용하려는 포부를 갖고 있지만

그의 이론과 권위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총회를 무산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때마침 일어난 변사 사건이 자신의 소행이라 주장하는 자가 스스로 최면술사라 칭하면서

링밍딩이 주최하는 최면술사 총회에 참석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올립니다.

룽저우 공안국 형사대장 뤄페이는 링밍딩과 함께 총회반대세력이자 변사사건의 범인을 쫓지만

용의자는 오히려 뤄페이와 경찰들을 최면에 빠뜨리며 유유히 자취를 감춥니다.

뤄페이는 링밍딩과 반대세력의 갈등이 시작된 오래 전의 사건은 물론

링밍딩의 제자가 연루된 최근의 살인사건들까지 파헤친 끝에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하지만,

아무런 단서도,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오히려 그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맙니다.

 

● ● ●

 

최면은 모든 범죄자들이 꿈꾸는 궁극의 방법이 아닐까요?

상대를 무력하게 만들어 마음대로 요리할 수도 있고, 자살에 이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증오하는 사람끼리 싸움을 붙여 소위 일타쌍피를 건질 수도 있고,

집단 간의 충돌을 일으켜 수십, 수백의 목숨을 한 번에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심증만 있을 뿐, 기소에 필요한 아무런 단서나 증거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범인 입장에선 아주 손쉽게 완전 범죄를 완성할 수 있게 됩니다.

이쯤 되면 최면은 그야말로 지구상 최고의 살상무기인 셈입니다.

 

이 작품에는 두 명의 최고수 최면술사가 등장합니다. 링밍딩과 바이야싱이 그들인데,

링밍딩은 심리적 약점 혹은 트라우마를 지칭하는 심혈(心穴, 마음의 구멍)을 찾아내

그 위에 심교(心橋, 마음의 다리)를 설치함으로써 피최면자를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바이야싱은 심교론이 단지 미봉책일 뿐이며 오히려 심혈을 폭파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럴 경우 피최면자는 완벽하게 구원되거나 아니면 완벽하게 파괴되는데,

그것은 피최면자의 의지나 마음에 따라 결정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양쪽 다 보는 각도에 따라 수긍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는 이론들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늘 자살을 마음에 담고 사는 사람이 있는데,

심교론은 그의 상처를 감싸주고 살고 싶은 희망을 북돋기 위해 애쓰는 반면,

폭파론은 그 상처를 폭파시킴으로써 상처를 잊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거꾸로 더 강력한 자살 욕구를 느끼는 부작용이 올 수도 있다고 부언합니다.

연이은 사망사건의 실체와 범인을 쫓는 룽저우 형사대장 뤄페이의 활약이 주된 이야기지만

작품 내내 밑바닥을 흐르는 심교론과 폭파론의 갈등은 색다른 재미를 주는 대목입니다.

특히 두 이론의 갈등은 클라이맥스와 마지막 반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데,

딱히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이라고 구분할 수 없는 묘한 지점들이 있어

끝까지 독자들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올해 출간된 ‘13.67’에 이어 두 번째로 접한 중국 미스터리인데다,

나름 중국의 히가시노 게이고라 불린다는 저우하오후이의 작품이라 큰 기대를 했었고,

전반적으로는 그런 별명이 결코 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좋은 기회였지만,

또 그만큼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최면술의 양대 이론이 설명되고, 주축인물들이 갈등의 구도를 완성할 때까지만 해도

이야기는 예측불허의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정작 주요 인물들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된 중반부터 오히려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유는 최면자체 때문이었는데,

속성으로 배워도 상대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즉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이며,

, 마음만 먹으면 천만 명쯤은 우습게 살해할 수 있는 신비한 마술처럼 과대 포장되면서

결과적으로 최면이라는 소재가 가진 매력과 힘을 모두 반감시키고 말았습니다.

 

또한, 복잡하게 설정된 인물들의 과거사나 악연의 계기 등은 다분히 작위적이었습니다.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던 악몽, 인생의 반전을 갖고 온 특별한 계기 등

주요 인물들의 과거사에는 하나같이 최면이 개입돼있는데,

이는 이야기의 방향이나 전개를 결정짓는 요소가 전부 최면이란 뜻입니다.

결국 캐릭터도, 사건도 최면이라는 소재에 맞춰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느낌이 강했고,

그 결과 마지막 반전 역시 이야기의 힘에 의해 뒤통수를 때린다기보다

최면을 위한 반전’, ‘반전을 위한 반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만큼이나 중화권에서 인기 있다는 형사대장 뤄페이는

잘 만들어진 명품 형사 주인공의 미덕을 모두 갖춘 캐릭터입니다.

불행한 과거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지만, 현명함과 결단력도 겸비한 인물입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에서 언급됐던 사망 통지서사건이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그의 심혈이 된 에우메니데스라는 범인의 코드명도 호기심이 생겼고,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됐는지도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악한 최면술사에서 느낀 아쉬움은 뤄페이의 캐릭터나 저우하오후이의 필력 자체보다는

최면이라는 소재가 가진 한계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뤄페이와 저우하오후이와의 두 번째 만남은 좀더 즐겁고 만족스럽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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