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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 하우스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던 ‘다운 리버’ 이후 두 번째로 만난 존 하트의 작품입니다.
워낙 이야기의 스케일도 크고, 인물들 사이에 얽힌 관계들도 복잡해서
줄거리를 정리하기 쉽지 않은 대작이지만 간단하게 요약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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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이들의 집, 아이언 하우스에서 동생 줄리앙을 대신해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그곳을 도망쳤던 마이클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가 돼있습니다.
그는 조직을 떠나 연인 엘레나와의 새롭고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조직은 엘레나는 물론 오래 전 헤어진 동생 줄리앙까지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줄리앙을 구하기 위해 그를 입양했던 상원의원의 저택을 찾은 마이클은
줄리앙의 새어머니 아비게일과 그녀의 보디가드 제섭을 통해
아이언 하우스의 악몽이 아직도 줄리앙을 괴롭히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더구나 저택에서 연이어 의문의 변사체가 발견되고,
조직의 손길이 줄리앙 가까이까지 다가오면서 마이클은 위기에 빠집니다.
연인 엘레나와 동생 줄리앙을 지키기 위해 마이클은
조직과의 전쟁은 물론 줄리앙의 살인혐의를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상도 못했던 자신과 줄리앙의 출생-입양-성장기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마이클은 크나큰 혼란에 빠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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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작품보다 폭력에 관한 묘사가 끔찍하고 디테일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인 기억으로는 테스 게리첸의 ‘의사 3부작’ 이후
이만큼 피와 살과 뼈가 날아다니는 장면들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폭력은 다양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폭력, 약한 또래에 대한 악의적인 집단 폭력,
탐욕에 기인한 마피아 식 조직폭력 등이 그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아이언 하우스’가 그저 오락용 폭력으로 포장된
선정적이고 속된 작품이라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분명 폭력은 독자에게 불쾌한 느낌이 줄 정도로 날것처럼, 한시도 쉬지 않고 등장합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위험할 정도로 폭력과 밀착된 삶을 살아왔습니다.
마이클에게 폭력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고,
줄리앙에게 폭력은 ‘세상에게 소통 당하는’ 일방적이고도 유일한 방식이었습니다.
마이클이 조직의 킬러가 되어 몸과 마음에 깃든 폭력의 힘으로 살아왔다면,
줄리앙은 상원의원의 양자가 되어 저택의 후계자가 돼서도
여전히 유년기의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분열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위에 있는 인물들 역시 온통 폭력의 가해자이거나 피해자,
또는 피해자였다가 가해자가 됐거나, 가해자였다가 피해자가 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인지 때론 스릴감을, 때론 불쾌감을 느끼며 폭력의 서사를 읽어나가다가
어느 시점인가부터는 막연하게만 짐작했던 폭력의 진짜 위력,
즉 인간 자체를 망가뜨리고, 인간성을 변이시키고, 의식을 분열시킨 끝에
주변을 완벽하게 오염시켜버리는 물리적 현상 이상의 힘을 인식하게 됩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완치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폭력의 가공할 힘과 함께
폭력을 통해서만이 맛볼 수 있는 광기에 가까운 쾌감의 정체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할리우드 폭력물에 가까운 스토리지만
‘아이언 하우스’는 픽션을 이용한 ‘폭력에 관한 르포’라고도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더불어 ‘아이언 하우스’는 진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앞서 읽은 존 하트의 ‘다운 리버’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조금씩 드러나는 마이클과 줄리앙의 유년기를 둘러싼 비밀들은
작품 속 인물들은 물론 독자들까지 혼란을 느낄 정도로 복잡하고 참혹합니다.
알고 싶었지만 동시에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들,
또 알게 됐지만 새로운 트라우마를 만들어낼 만큼 고통스러운 내용이라
당사자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알려서는 안 될 진실들이 잇따라 밝혀집니다.
이 모든 짐을 오롯이 혼자 짊어지게 된 마이클의 고뇌는 사건이 해결된 후에도 계속 됩니다.
적잖은 분량이지만 워낙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기 때문에
주말이라면 하루 안에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생생한 폭력의 힘과 등장인물들이 겪는 상처들로 인해 마음이 수시로 무거워지다 보니
어쩌면 중간에 한 번쯤 휴식을 취하는 책읽기가 더 바람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존 하트를 좋아한다는 것은 스스로 마조히스트 취향이라고 고백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안 읽고는 못 배길 것 같은 그런 작가랄까요?
아직 그의 대표작 ‘라스트 차일드’를 읽지 못 했지만,
왠지 제목만으로도 ‘아이언 하우스’의 충격이 몇 배는 느껴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