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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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읽은 검은 집악의 교전외에

8권이나 되는 기시 유스케의 작품을 읽지도 않고 책장에만 모셔놓은 것은

맛있는 반찬은 나중에라는 심리 때문이었습니다.

나중이란 게 이런저런 이유로 기약 없이 뒤로 밀리면서 난감하던 중에

우연히 손에 넣은 최신간 말벌을 먼저 읽게 돼서

책장에서 먼지만 쓰고 있던 전작들에겐 더욱 면목 없는 일이 돼버렸습니다.

 

말벌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던 것은 아주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작품을 통해 심연의 공포를 생생하게 발산시키는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와

이름만 들어도 저절로 소름이 돋는 말벌이라는 곤충과의 조합에 대한 호기심이 그것입니다.

아마 다른 작가가 말벌이라는 제목의 미스터리를 출간했더라도 관심이 갔겠지만

기시 유스케가 쓴 말벌은 도저히 뒤로 미뤄놓을 수 없는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예상대로 파격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 ● ●

 

폭설이 내린 깊은 산속의 산장에서 숙취와 함께 잠을 깬 미스터리 소설가 안자이 도모야는

산장 전체를 점령한 말벌 떼의 습격을 받고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구조 요청을 시도했지만 외부와의 통신은 모조리 두절됐고 자동차 키마저 사라진 상태입니다.

안자이는 추리 끝에 갑자기 산장에서 사라진 아내 유메코와

언젠가 출판사 파티에서 만난 적 있는 수상한 곤충학 교수 미시와를 의심합니다.

두 사람이 통신과 교통을 두절시키곤 말벌 떼를 풀어놓았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는 아내와 곤충학 교수가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산장으로 돌아올 것이라 예상하곤

그들에게 역습할 기회를 노리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말벌 떼와 전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말벌 떼는 끝도 없이 몰려들며 안자이를 괴롭히고,

철저하게 준비한 역습 시도마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면서

안자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집니다.

 

● ● ●

 

230여 페이지에 불과한 중편 분량의 이야기지만

폭설로 고립된 산장에서 벌어지는 한 남자와 말벌 떼의 처절한 싸움은

읽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게 전개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식인상어나 거대 악어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들처럼

정말 말벌 대 인간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란 뜻은 아닙니다.

중반부까지만 해도 그런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트릭의 진실이 밝혀지는 그 순간까지

기시 유스케는 말벌의 공포를 극적으로 활용하면서 독자의 시선을 강하게 끌어당깁니다.

 

사라진 아내, 통신과 교통의 두절, 명백한 살해음모 등 미스터리의 기본 코드들이

기시 유스케 특유의 서사로 묘사된 말벌의 공포와 함께 전개되면서

독자는 과연 안자이는 말벌과의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그 이후 자신을 살해하려는 아내와 곤충학 교수에게 복수할 수 있을 것인지,

그렇지만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세 사람의 관계의 진실은 무엇인지에 몰입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두 개의 축 - 말벌의 공포와 위화감 가득한 미스터리 을 동시에 맛보면서

이 두 축이 어디에서 접점을 갖게 될지 끊임없이 궁금해 하며 책을 읽게 됩니다.

 

독자의 의문과 추리욕구를 부추기는 또 하나의 대목은

이야기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별개의 서사들입니다.

, 그림책 작가인 아내 유메코의 (의인화된 벌과 곤충이 주인공인) 작품이 언급되는가 하면,

소설가가 되기 전 안자이가 보낸 혹독한 직장 생활의 단면들이 언급되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아내에 대한 의심현실에 대한 안자이의 반감에 대한 부연설명이지만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내용들을 읽으면서

분명 기시 유스케가 일부러 흘려놓은 힌트라고 추정하게 됩니다.

저 역시 그렇게 해석하고 나름 열심히 들여다봤지만 결국 밝혀내진 못했는데,

모든 트릭과 진실이 밝혀진 뒤에도 이 대목들에 대해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진 않았습니다.

 

워낙 임팩트가 강한 내용이라 서평에서는 쉽게 언급하기가 어렵지만

독자에 따라 마지막 반전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그의 작품답게 호러의 색채가 강한 반전과 엔딩이 마지막 몇 페이지에 걸쳐 묘사되는데

역시!’라는 감탄과 ...?’라는 의문투성이 반응이 동시에 나올 수 있는 지점입니다.

앞서 펼쳐진 말벌의 공포에 비하면 드러난 진실의 충격은 상대적으로 왜소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다른 작품에서도 이런 식의 트릭을 쓴 적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납득은 돼도 제 나름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호러는 살았는데, 논리적으로는 부실해 보인다고 할까요?

(하긴 호러와 논리를 함께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요.^^;)

재미있게 읽고도 평점에서 별 다섯 개를 주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기시 유스케를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난 독자라면 그의 명성에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혹 그런 경우라면 일단 검은 집을 읽어보기를 꼭 권하고 싶습니다.

기시 유스케의 팬이면서도 정작 대부분의 작품은 책장에만 모셔놓은 게으른 독자지만

검은 집한 편만으로도 누구나 그에게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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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곽 안내서 - 제137회 나오키 상 수상작
마쓰이 게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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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에도 최대의 유곽인 요시와라(吉原)의 고급 기루 마이즈루야에 희대의 소동이 벌어집니다. 요시와라를 통틀어 최고의 오이란(花魁, 몸을 파는 유녀)으로 꼽히던 가쓰라기가 홀연히 사라진 것입니다. 곳곳에 감시의 눈이 있어 쉽사리 요시와라를 벗어나기도 힘들뿐더러, 오이란으로서 절정의 시기를 누렸던데다 곧 낙적(손님이 돈을 내고 오이란을 유곽에서 꺼내주는 것)을 통해 요시와라를 떠날 예정이던 가쓰라기가 사라진 것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석달 후, 정체불명의 인물이 요시와라에 나타납니다. ‘는 유곽 주인, 시중꾼, 거간꾼 등 가쓰라기 주변 인물들을 만나 탐문을 하지만 모두 모르쇠로 일관하며 가쓰라기에 대해 소소한 정보만 흘릴 뿐입니다. 하지만 는 집요한 조사를 통해 가쓰라기 실종 사건의 진실에 점점 다가서게 되고, 마지막에 이르러 가쓰라기의 정체와 사건의 전모를 파악해냅니다.

 

작년(2015) 이맘때쯤 미야기 아야코의 화소도중(花宵道中)’이란 작품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작은 기루 야마다야를 무대로 오이란의 다채로운 삶과 감정들을 다룬 작품인데, 유곽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물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잘 그려내서 무척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덕분에 유곽 안내서의 출간 소식에 큰 기대를 걸었는데, 홀연히 사라진 오이란을 찾는 미스터리와 함께 유곽의 속살을 디테일하게 묘사한 감칠맛 나는 문장들 때문에 화소도중과는 또 다른 재미와 여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메인 스토리는 가쓰라기 실종사건의 진실 찾기지만, ‘유곽 안내서라는 제목답게 작가는 가 탐문하는 수많은 직종의 사람들을 통해 유곽 요시와라가 어떻게 유지되고 굴러가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합니다. 고급 유녀인 오이란, 예비 오이란인 가무로, 오이란의 시중을 드는 신조, 오이란의 매니저인 반토신조, 오이란을 관리하고 교육하는 야리테 등이 그들인데, 작가는 그들의 입을 통해 각자 맡은 일은 물론 돈과 육체와 사랑과 거짓말이 한데 뒤섞인 요시와라의 복잡한 인간관계도 디테일하게 설명합니다.

 

요시와라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진리(?)돈이 떨어지면 사랑도 없다.”입니다. 오이란을 사기 위해 남자들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돈을 쏟아 붓습니다. 심지어 시중꾼, 잡일꾼, 매니저 등에게도 적잖은 돈을 뿌려야 합니다. 하지만 돈만 있다고 오이란을 품을 수는 없습니다. 몇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합니다.

손님들 대부분의 목적은 욕망 해소지만, 그중엔 마음에 든 오이란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는 자들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란 주머니에 돈이 남아있을 때까지만 유효한 것입니다. 하다못해 잡일꾼에게마저 돈 떨어진 단골은 백해무익한 존재입니다. 물론 거꾸로 오이란이 손님에게 감정을 품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대부분 돈만 뜯긴 채 빚더미에 올라앉거나 몸과 마음을 망친 채 불행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네모난 달걀이 없듯 오이란의 진심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다.”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는데 미야기 아야코의 화소도중에도 비슷한 맥락의 표현이 등장합니다. , “마음을 주지 않는 여자가 요시와라에서 출세한다.”라는 것인데, 하루에도 여러 남자의 품에 안겨야 하는 오이란에게 있어 진심이나 마음 같은 것은 스스로를 망치는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어린 나이에 부모에 의해 푼돈에 팔린 참담한 운명도 기구하지만, 누구에게도 진심이나 마음을 줘선 안 된다는 불문율은 그녀들에게는 금언이자 동시에 날카로운 비수이기도 합니다.

 

가쓰라기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과 함께 최고의 부자마저 내키는대로 희롱하는 담대함을 갖춘 것은 물론 누구에게도 진심이나 마음 같은 걸 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상대방은 그녀의 접대용 거짓말에 놀아난 끝에 큰 상처를 받거나 상사병에 걸리고 말지만 가쓰라기에겐 눈 하나 깜짝할 일도 아닙니다. 바로 이런 점이 가쓰라기를 최고의 오이란으로 만든 것입니다. 또 가쓰라기에 관해 묻고 다니는 에게 유곽 사람들이 좋은 말만 입에 담는 것을 보면 가쓰라기는 매력적인 오이란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인맥관리자였음을 눈치 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이란으로서 절정의 시기를 구가하는 중이었고, 엄청난 부자 덕분에 곧 자유로운 몸이 될 예정이던 가쓰라기가 무슨 이유로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유곽에서 사라진 것일까요? 는 대체 누구이며, 무슨 이유로 가쓰라기 실종사건을 파헤치고 다니는 것일까요? 그 사연은 가 유곽 안팎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점차 밝혀지긴 하지만, 결정적인 단서가 폭로되는 과정은 기대했던 것만큼 충격적이거나 반전을 내포하진 않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기도 한데, 다른 독자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합니다.

 

미스터리와 유곽 안내서라는 두 가지 기능을 절묘하게 조합한 작가의 필력도 놀라웠지만, 에도 시대의 유곽이라는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무대를 매력적으로 그려낸 것도, 또 화려한 의상과 소품은 물론 흥과 멋이 함께 하는 오이란의 행렬과 연회 장면 등 일본 특유의 비주얼을 눈앞의 풍경처럼 그려낸 것도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입니다. 미스터리에 대한 기대가 큰 독자에게는 추천하기 어렵지만 19세기의 에도 유곽의 속살이 궁금한 독자라면 충분히 재미있는 책읽기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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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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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글린 가문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첫 작품인 운명의 날1919년 보스턴 경찰 파업 당시 커글린 가문의 흥망을 그렸다면

이 작품은 그로부터 7년 후인 1926년부터 1935년까지,

즉 금주법의 여파가 미국 전역을 몰아쳤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운명의 날이 커글린 가문의 장남이자 보스턴 경찰이던 대니 커글린의 이야기였다면

이 작품은 가문의 막내 조 커글린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리브 바이 나이트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영화 대부를 연상시키는 무정한 밤의 세상에서

피비린내 나는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긴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운명의 날을 읽기 전 이런 톤의 이야기를 기대했었는데,

그 작품에서 두 형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어린 꼬마 조 커글린이

후속작에서 폭력이 난무하는 밤의 이야기를 이끌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 ● ●

 

보스턴 경찰 파업이 무위로 돌아간 후 7.

보스턴에서 벌인 은행강도와 경찰 살해 사건으로 교도소에 간 18살의 조 커글린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할 악마 같은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밀주업계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페스카토레의 지시와 배려 속에

조는 출소 후 남부 템파를 관할하는 보스 역할을 맡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지닌 재능과 폭력을 적절히 버무려 엄청난 성공을 거둡니다.

그 와중에 쿠바 출신의 여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조는 부와 안락한 삶을 향유합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밤과 폭력의 인간이 될 수 없었던 조는 결국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 ● ●

 

금주법이 지배하던 암울하고 비밀스러운 20세기 초반의 미국에는 두 개의 규칙이 존재합니다.

스스로 약자임을 인정하며 조용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낮의 규칙이 있는가 하면,

부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냉정하고 잔인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서려는 인간들이 지켜야 할 밤의 규칙이 있습니다.

누구든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려면 어느 한쪽의 규칙을 고수해야 되는데,

조의 불행은 두 개의 규칙 사이에서 어중간한 태도를 취했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일찍이 밤의 규칙에 인생을 내맡기며 우여곡절 끝에 먹이사슬의 정점에 설 수 있었지만,

조에게는 스스로 거역할 수 없는 운명, 낮의 규칙의 피가 흐르고 있던 것입니다.

순수한 사랑에 대한 갈망, 살인에 대한 거부감, 약자에 대한 동정심 등

밤의 규칙의 신봉자들이 폐기처분해야 했을 덕목들을 조는 끝까지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그는 위기를 자초하고,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위기를 수없이 맞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우정을 나눈 친구를 잃고, 증오와 배신에 시달리는 그의 불행은

모두 낮의 규칙을 버리지 않은 대가였던 것입니다.

 

낮의 규칙에 대한 조의 미련과 연민은 타고난 성정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가 나눈 두 여인과의 로맨스에 기인한 탓일 수도 있습니다.

에마 굴드는 조가 제거하려 했던 악당의 정부였지만,

동시에 조로 하여금 어떻게든 살아남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지순한 사랑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부 템파로 내려와 보스로서의 삶을 살게 된 후 만난 쿠바 여인 그라시엘라는

그에게 낮의 규칙의 진정한 미덕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여인입니다.

살인과 폭력이 날뛰고, 밀주업계의 잔혹한 대결이 이야기의 주를 이루지만,

조와 두 여인의 로맨스는 달콤하면서도 독약 같은 긴장감을 지니고 있어

독자에게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느낌을 시종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편, 이미 운명의 날에서 붕괴의 조짐을 확실히 보여줬던 커글린 가문은

리브 바이 나이트를 통해 비극의 정점을 찍게 됩니다.

파업 때문에 경찰 옷을 벗어야 했던 장남 대니는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지 오래이고,

차세대 검사로 지목받던 차남 코너는 맹인이 된 후 밑바닥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 토머스는 지금까지는 경찰에서 고위직을 지키고 있었지만,

형들과 달리 어려서부터 폭력의 세계에 발을 담근 막내 조 때문에

결국 불명예스러운 말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지만 데니스 루헤인은 커글린 가문을 몰락시키진 않습니다.

오랜만에 돌아온 장남 대니는 할리우드에서 영화인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조는 그라시엘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에게 아버지 토머스의 이름을 부여합니다.

차남 코너의 이야기는 없지만, 어쨌든 커글린 가문은 소멸을 피하고 대를 잇게 됐으며

이제 그 마지막 이야기는 세 번째 작품인 무너진 세상에서를 통해 소개될 것입니다.

대하역사소설의 풍미를 선보인 운명의 날

피비린내 나는 누아르의 품격을 자랑한 리브 바이 나이트에 이어

무너진 세상에서가 어떤 스타일의 서사를 들고 나올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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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의 감옥
우라가 가즈히로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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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뜨거운 밀회를 마친 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우라가와 아야코.

우라가는 가벼운 부상만 입었지만, 아야코는 의식불명의 혼수상태에 빠진다.

그로부터 5년 후, 미스터리 소설가가 된 우라가는 아야코의 오빠의 연락을 받고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던 요시노, 기타자와와 그를 방문하지만 밀폐된 지하실에 갇히고 만다.

지하실에서 나갈 수 있는 조건은 셋 중 누가 아야코를 밀쳤는지 고백하는 것.

동시에 지하실 밖에서는 메일 교환을 통한 완벽한 알리바이의 교환 살인이 진행된다.

과연 교환 살인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경악의 결말은 무엇일까?

(출판사 책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하였습니다)

 

● ● ●

 

무척 독특한 일본 미스터리 작품을 만났습니다.

분량도 짧고, 이야기도 간결한데다, 지극히 쉽고 평이한 문장들로 쓰였지만

독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위화감을 갖게 만드는 매력적인 구성과

제대로 뒤통수를 치는 예상 밖의 반전 덕분에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 책 소개를 보면 두 이야기가 별개의 것처럼 전개되는 이중 구조라든가,

밀실 트릭, 교환 살인 등 다채로운 코드를 맛볼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 코드들이 복잡하거나 심도 있게 묘사된 것은 아닙니다.

일본 미스터리의 마니아라면 너무 싱거워!’ 소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중반부까지의 이야기 전개는 단선적이고 평면적으로만 그려질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심플-단선-평면적인 흐름 탓에 독자는 이게 뭐지?’라는 위화감을 갖게 되는데,

바로 그 점이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요인이 됩니다.

꽤 충격이 큽니다. 방심하고 있다가 맞는 매가 더 아프고 놀랍듯이 말이죠.^^

 

마지막 장을 덮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작가가 꽤 많은 힌트를 줬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잘 짜인 미스터리 작품이 그렇듯이 힌트는 잘 위장돼있었고,

대부분의 경우 대수롭지 않게 여긴 채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만들곤 했습니다.

어쩌면 잘 위장된 힌트야말로 이런 종류의 미스터리를 맛깔나게 하는 덕목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독자에 따라 일찌감치 힌트를 눈치 채고 결말을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그렇게 똑똑한 독자가 별로 부럽진 않습니다.

미스터리를 읽는 재미란 게 정답 맞추기보다 뒤통수 맞기에 더 기인하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수면의 감옥은 작가에게 당하고도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번역하신 이연승 님은 우라가 가즈히로의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파격입니다.

세간에서 금기시하는 소재를 과감히 도입해 현실 세계를 비판하는 동시에

인간의 어두운 일면을 예리하게 파고든 작품들을 써내며...”라고 소개하시면서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도 주변에 추천하기 힘든 작가 중 한 명이라고 언급하셨습니다.

더더욱 기대와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심술꾸러기 악동 같은 천재라는 우라가 가즈히로의 작품이 좀더 많이 소개되기를 바라면서

특히 출간된 지 10여년 만에 재평가와 함께 돌풍을 일으켰다는 그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뒤를 잇기를 살짝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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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4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황소연 옮김 / 북로드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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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머스 데커는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전직 경찰입니다.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는 뜻입니다. 경찰이 된 후 그 특별한 능력 덕분에 최고 검거율을 자랑하는 형사가 됐지만, 어느 날 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된 이후 그는 끝없이 추락하고 맙니다. 16개월 후, 노숙자나 다름없는 삶을 살던 데커는 상관이었던 경찰서장 덕분에 인근 고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에 공식 컨설턴트로 참여합니다. 극심한 혼란 속에서도 데커는 수많은 단서를 찾아내지만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 뿐이고, 오히려 동일범에 의한 소행으로 보이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합니다.


 

뭔가를 잊을 수 있다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나도 좀 잊고 싶어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은 양날의 검입니다. 그 능력을 이용하여 부와 권력과 명예를 거머쥘 수도 있겠지만,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까지 평생 기억해야 한다면 그것은 저주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참혹하게 살해된 아내와 딸의 시신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면, 그래서 그 모습을 평생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에이머스 데커는 기억력을 제외하곤 일반적인 스릴러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입니다. 대사증후군의 표본으로 삼아도 손색없는 초고도비만의 몸매는 말할 것도 없고, 추레한 행색과 꺼칠한 얼굴 등 누구라도 기피할 것 같은 외양 때문입니다. 더구나 가족을 잃은 상실감으로 자살 직전까지 갔던 그는 마음마저 피폐해진 탓에 말 그대로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살고 있는 보기 흉하게 망가진 중년남의 신세입니다.

그런 그가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수사에 합류하면서 발휘하는 유능한 형사로서의 모습은 비호감에 가까운 비주얼 때문에 때론 위화감을 주기도 하지만, 고된 수사를 마치고 홀로 머물고 있는 좁은 여관방으로 돌아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흉측한 모습을 보며 자기학대 또는 자기연민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 어떤 대목에서는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을 자아낼 정도로 안쓰럽고 애틋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작가가 마음만 먹었다면 비주얼만큼은 해리 보슈나 해리 홀레처럼 어딘가 스산함과 애수가 깃든 멋진 중년으로 포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만일 그랬다면 데커의 매력은 훨씬 덜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선명한 캐릭터와 잔혹하면서도 흥미를 유발하는 사건들 덕분에 페이지는 정말 잘 넘어가지만, 중반부쯤에 이르렀을 때 이런 의문이 든 독자가 꽤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기억하는 데커의 능력과 이 일련의 사건들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 데커의 캐릭터가 과연 사건의 진상과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그의 기억력이 수사에 큰 진척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 사건의 진실을 찾는 큰 줄기는 지극히 일반적인 스릴러의 서사대로 흘러가고 있기에 혹시 이러다가 그의 기억능력과는 무관하게 덜컥 범인을 잡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게 됩니다.

단지 독특한 주인공을 창조하기 위해 데커를 희귀한 기억능력자로 포장했더라면 아마 이 작품에 세 개 이상의 별을 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작가는 매끄러운 전개와 구성을 통해 그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능력과 현재의 사건들을 연결시킵니다. 물론 그 과정이 감탄을 자아낼 만큼 완벽하진 않았지만, 점차 데커의 기억 속에서 윤곽을 드러내는 범인의 정체와 그 동기를 지켜보면서 데이비드 발다치라는 작가의 명성이 공연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수많은 인물들과 사건들을 정교하게 직조한 것은 물론 그 안에 희귀한 기억능력자의 매력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필력은 감탄을 자아낼 만 했습니다.

 

주인공인 데커 외에 작가는 조연들에게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부여했는데, 경찰 시절 그와 찰떡궁합을 발휘했던 유능한 파트너 메리 랭커스터, 갈등과 협조의 상대인 연방정보국 특수요원 로스 보거트, 언제나 얄밉게 등장하기 마련인 집요한 저널리스트 알렉스 재미슨 등이 그들입니다. 어느 스릴러에서나 볼 법한 상투적인 관계들이지만 작가가 창조한 그()들의 캐릭터와 말빨은 그런 상투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작품 후반부에서 이들이 이후 한 배를 타게 될 것 같다는 암시를 준 덕분에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는데, 부디 그들의 팀플레이를 꾸준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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