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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상에서 ㅣ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평점 :
‘운명의 날’, ‘리브 바이 나이트(밤에 살다)’에 이은 커글린 가문 3부작의 마지막 편입니다.
‘운명의 날’이 1919년 보스턴의 경찰 파업을 다룬 역사소설이었다면,
‘리브 바이 나이트’는 금주법 시대를 무대로 한 폭력과 생존과 사랑의 이야기였습니다.
‘운명의 날’에서 어린 소년으로 아버지와 형들의 몰락을 지켜봤던 조 커글린은
금주법 시대를 다룬 ‘리브 바이 나이트’에서 플로리다 템파를 거머쥔 갱의 보스로 성장합니다.
무자비한 폭력의 향연 속에 수많은 죽음의 위기를 이겨냈고, 불같은 사랑에 빠지기도 했지만,
‘리브 바이 나이트’에서의 조 커글린의 결말은 불행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3부작의 마지막인 이 작품에서 조 커글린의 어떤 모습이 그려질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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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상에서’의 핵심 줄거리는 조 커글린에 대한 암살 위협입니다.
모두에게 이익을 제공해왔고, 모든 인종들에게 지지를 받아온 조 커글린으로서는
자신을 향한 암살 또는 배신의 음모가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자신의 목숨 뿐 아니라 이제 9살이 된 아들 토머스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조 커글린은 그답지 않게 공포와 혼란에 빠집니다.
금발의 꼬마 유령을 목격하는가 하면, 암살자를 찾기 위해 무리한 행보에 나서기도 합니다.
그 무렵, 템파를 중심으로 한 갱 조직은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게 되고
거리 곳곳에서 응징과 보복이 난무하기에 이릅니다.
조 커글린의 발밑 세상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하고, 언제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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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이후 8년.
조 커글린이 세운 왕국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아 보였습니다.
패밀리는 공고했고, 분업은 효율적이었으며, 부(富)는 화수분처럼 메마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끝없는 탐욕은 안정된 왕국에서도 왕성하게 번식했고,
그것은 사방에서 작은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암살 정보를 들은 조 커글린이 새삼 주위를 돌아보자
‘아무도 그럴 사람이 없다’던 확신은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공포로 급변합니다.
자신이 직접 죽이거나 살해를 지시했던 많은 갱들과 보스들이 그랬듯,
자신에게도 어이없는 죽음이 순식간에 다가올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갱에게 있어 인생의 정점이란 너무나 짧고, 종말은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조 커글린이지만
정작 자신에게 닥친 죽음의 공포를 대하는 태도는 평범한 사람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도망쳐야 되나, 몸을 숨겨야 되나, 맞서 싸워야 되나...
적은 내부에 있는 것인가, 외부에 있는 것인가...
9살 된 아들 토머스에 대한 걱정, 언젠가부터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 의문의 유령,
아내를 잃은 뒤 7년 만에 찾아온, 그러나 위험천만한 ‘금지된 사랑’의 댓가,
탐욕과 증오가 촉발시킨 거리의 살육과 패밀리 간의 갈등 등
조 커글린을 둘러싼 세상은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앞선 두 작품이 사건 중심의 이야기였다면
‘무너진 세상에서’는 작품 전반에 걸쳐 조 커글린의 복잡다단한 심리묘사가 주를 이룹니다.
물론 부와 권력의 재편을 코앞에 둔 거대한 전쟁이 긴장감을 조성하긴 하지만,
암살에 대한 공포, 토머스에 대한 걱정, ‘금지된 사랑’에의 집착,
그리고 누구를 믿어야할지 확신할 수 없는 혼란 등
이리저리 흔들리는 조 커글린의 심리가 주된 이야기다 보니
독자 입장에서 재미만 따지고 보면 앞선 작품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앞선 작품들을 읽지 않아 그의 전사(前史)를 잘 모르는 독자 입장에선
그의 심리나 감정이 잘 읽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 커글린이 세운 왕국이 서서히 무너지는 비극을 지켜보는 일이나
태연한 얼굴로 배신과 음모를 꾸미는 패밀리의 비정한 단면을 엿보는 일,
또 거듭된 반전 속에서 배신자의 정체를 추리하는 일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적절한 시점마다 터지는 무자비한 살육전은 영화를 보듯 생생하고 참혹하며,
날선 대화와 냉정한 처단으로 무장한 패밀리 간의 피도 눈물도 없는 비즈니스는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 소름을 돋게 만듭니다.
읽는 내내 독자를 애태우는 것은 ‘과연 조는 살아남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무너진 세상에서’라는 제목이 풍기는 선명한 비극의 냄새 때문에
이 궁금증은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독자를 끊임없이 괴롭힙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토머스와 함께 쿠바에서 여생을 보내기를 바라기도 하고,
전설적인 보스답게 비장한 최후를 맞이하기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됐든 ‘역시 조 커글린답다’라는 엔딩이 기다리고 있으니
직접 눈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커글린 가문 3부작은 어느 편이 됐든 영화적 매력을 갖춘 뛰어난 작품들이지만,
그중 가장 대중적인 서사를 자랑하는 ‘리브 바이 나이트’가 우선 제작됐습니다.
감독 겸 주인공인 벤 애플랙이 어떤 마법을 부렸을지도 궁금하지만,
부디 영화가 성공해서 ‘무너진 세상에서’도 속편으로 제작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원작만 아니라면 조 커글린을 주인공으로 두세 편의 영화도 충분히 만들어질 텐데
‘리브 바이 나이트’가 초대박이 난다면 헛된 바람으로 그치지 않을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