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킨 컬렉터 링컨 라임 시리즈 11
제프리 디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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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디버가 탄생시킨 링컨 라임 시리즈의 11번째 작품입니다.

사고로 전신이 마비됐지만, 방대한 지식과 최첨단 장비를 활용한 미량의 단서 찾기를 통해

그는 미궁에 빠진 뉴욕의 범죄를 해결하는 천재적인 범죄학자로 활약 중입니다.

이번에 그가 마주한 살인마는 문신을 이용하여 독살을 자행하는 스킨 컬렉터입니다.

 

● ● ●

 

범인은 피해자들의 복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신을 남겨놓고 사라집니다.

현장은 대부분 복잡한 미로 같은 뉴욕의 지하이고,

범인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뒤처리를 한 탓에 링컨은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합니다.

연이어 희생자가 나타나고 예외 없이 문신이 발견되지만 그 의미는 뒤늦게나 밝혀집니다.

목적을 알 수 없는 무작위적인 희생자 선정, 기괴하게 세팅된 범행 현장,

오래 전 링컨이 해결했던 본 컬렉터 사건과 연관 있는 듯한 단서들,

그리고 링컨 본인은 물론 파트너인 색스와 주변인들을 향한 범인의 공격 등

사건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을 확대되어갈 뿐입니다.

 

● ● ●

 

언제나 그렇듯 미량의 단서를 통한 최첨단 과학수사와 번득이는 추리력의 조합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가 아니면 누가 해결했을까?’라는 질문이 생각날 정도로 대단합니다.

현장요원이자 링컨 라임의 연인인 아멜리아 색스의 활약도 매력적이고,

(읽진 못했지만) 시리즈 첫 작품 본 컬렉터에서 어린 소녀로 등장했던 팸은

성인으로 재등장하여 갈등과 위기를 초래하는 불씨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습니다.

조연으로서 링컨을 돕는 뉴욕 경찰들 역시 적재적소에서 자신의 미션을 적절히 수행합니다.

다양한 경찰 캐릭터의 좌충우돌은 살벌한 이야기 속에서 유일한 재미덩어리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독극물을 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르며 의문의 문신을 남기고 사라지는 범인의 행각은

색다른 소시오패스의 캐릭터라 읽는 내내 궁금증과 긴장감을 유지시켜줍니다.

 

페이지도 잘 넘어가고, 전체적인 인상만 보면 역시 제프리 디버라는 소리가 절로 나지만

나름 아쉬움이 남는 대목도 있던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스킨 컬렉터는 시리즈 1편인 본 컬렉터’, 7편인 콜드 문과 밀접히 연관돼있는데

두 작품 모두 못 읽은 터라 100% 몰입해서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건의 연관성만이 아니라 등장인물간의 오랜 구원(舊怨)과 갈등까지 다뤄서 그런지

작가가 (저 같은 독자를 위해) 적잖은 분량을 할애하여 친절하게 설명해줬지만,

아무래도 감정적인 이입은 수박 겉핥기 이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전적으로 독자의 문제(?)라 작품 자체가 주는 아쉬움은 아닙니다.^^)

 

진짜 아쉬움은 제프리 디버의 트레이드 마크인 거듭된 반전에 기인합니다.

약간만 언급해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두루뭉술한 말밖에 못하겠지만,

전작인 킬 룸이 후반부에 연이어 터지는 반전 때문에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면,

스킨 컬렉터의 클라이맥스와 엔딩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란 느낌만 전해줬습니다.

뭐랄까, 앞서 읽은 이야기들을 좀 허망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추측이지만) 그런 부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번역하신 유소영 님도 옮긴이의 글을 통해

거듭된 반전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때로 인위적이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는데..”라는

언급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 상, 최첨단 과학과 두뇌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보다는

(해리 보슈나 해리 홀레처럼) 몸으로 직접 뛰는 스타일을 좋아하다 보니

간혹 링컨 라임의 천재성이나 과학수사의 위대함에서 위화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와 아멜리아 색스와 뉴욕 경찰의 팀플레이는

다른 작품에선 맛볼 수 없는 특별하고도 중독성 있는 매력을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11편의 시리즈 가운데 이 작품까지 5편밖에 읽지 못했지만,

혹시 나머지 작품 역시 인위적인 반전이 깔려있다고 해도

역시 안 읽고는 못 배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똑같은 아쉬움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신작 소식이 들리기 전에

책장에 꽂혀있는 나머지 시리즈들을 얼른 챙겨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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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
이가라시 다카히사 지음, 이선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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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만남 사이트를 통해 금지된 욕망을 풀어보려던 한 평범한 중년 남자가

일그러진 자기애와 순수한 악의로 뭉친 괴물 리카를 만나면서

자신은 물론 가족과 지인들까지 수렁으로 몰아넣는 끔찍한 비극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야기 구조는 심플하지만 간결하면서도 눈앞에서 목격하듯 생생히 묘사된 공포 덕분에

옮긴이의 말대로 다음 챕터를 읽는 게 무척이나 불편하고 두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평범한 한 남자의 그릇된 선택과 일탈 하나가 평화롭던 일상을 산산조각 내고,

가족과 직장이라는 삶의 기반을 통째로 붕괴시키는 대목에서는

그저 착하게 살자라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경구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앞서 언급한 일그러진 자기애와 순수한 악의는 본문에서도 몇 번씩 언급되는 설명인데,

이 작품의 타이틀 롤인 리카를 설명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표현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터무니없이 부족한 표현이기도 한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자기애와 악의만으로 그만한 공포를 자아낼 수 있을까?

그것이 아무리 일그러지고 순수한 형태라고 해도 그만한 원념(怨念)을 가질 수 있을까?

책장을 넘길수록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점점 더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 들어 부족한 표현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섬뜩하게 느껴지는 것은, 리카는 분명 현실에 존재하는 생물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심연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악의 정령 같은 인상도 준다는 점입니다.

스티븐 킹의 미저리에 등장하는 간호사 애니를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미쓰다 신조 작품 속의 초현실적인 악령도 함께 연상시킨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분명 명백한 리얼 호러물을 읽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수시로 장르를 뛰어넘어 판타지의 세계를 드나드는 느낌을 갖게 하는 캐릭터입니다.

 

이 작품이 일본 호러 서스펜스 대상을 받은 2002년만 해도 공포물로서의 매력은 물론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의 근원으로 지목당하기 시작한 인터넷의 익명성에 대한 터치 때문에

나름 큰 주목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오늘날의 눈높이에서 보면 익숙한 서사와 캐릭터, 더는 새롭지 않은 설정들 때문에

신선한 호러의 폭주를 기대한 독자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전형적인 호러물 주인공처럼 꾸며진 리카의 비주얼인데,

오히려 그 또래의 평범한 여성으로 설정했더라면 훨씬 더 센 캐릭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다 읽은 뒤에 책 뒷날개를 보니 리턴’, ‘리버스로 이어지는 3부작이 완성됐더군요.

제목에서 느껴지듯 돌아온 리카가 계속 맹활약(?)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후속작들이 각각 2013, 2016년에 출간된 것을 보면 꽤 공백이 길었는데,

리카의 악의가 얼마나 진화했을지, 또 어떤 참극들이 벌어질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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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플라이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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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강가 둔치에서 장기가 제거된 상태로 불에 탄 사체가 발견됩니다.

사건을 맡은 가부라기를 비롯한 4명의 형사는 미세한 단서를 추적한 끝에

이 사건이 잠자리의 낙원인 군마 현의 산골마을 히류무라에서 출발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년기를 함께 보낸 선천적 맹인 이즈미와

그녀와 각별한 관계였던 두 소년 유스케와 겐이 얽혀있음을 파악합니다.

더구나 20년 전, 이즈미의 부모가 살해당한 미제 사건이

분명 둔치에서 발견된 사체 사건과 연관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애틋했지만 동시에 참혹할 수밖에 없었던 세 남녀의 기구한 인연은

히류무라와 잠자리 낙원을 수장시킬 히류 댐 건설을 둘러싼 오랜 갈등과 뒤섞이면서

20년의 시차를 두고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일으킨 근원이 되고 만 것입니다.

 

● ● ●

 

화제의 데뷔작 데드맨이후 3년 만에 국내에 소개된 가와이 간지의 신작입니다.

요코미조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이라는 타이틀로 데뷔한 작가라

후속작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생각보다 국내 소개가 많이 늦어진 셈입니다.

 

크기가 좀 작긴 해도 5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분량입니다.

같은 크기였던 데드맨보다 200페이지 가까이 두터운 셈인데,

사실, 분량에 비해 사건의 규모는 좀 소소한 편입니다.

20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부부 살해 사건과 둔치 사체 사건은

이만한 분량의 미스터리가 다루기에는 왠지 사이즈가 작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각자의 개성을 자랑하며 돌직구처럼 수사에 나서는 가부라기 4인방의 활약,

애증과 고통으로 20년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세 남녀의 기구한 인연,

그리고 댐 건설과 잠자리 낙원의 몰락이라는 사회적 이슈까지 다루다 보니

이야기가 비교적 단선적이었던 데드맨에 비해 양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독자는 그 많은 분량을 느낄 새도 없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쾌속으로 달리게 되는데,

그건 분명 가와이 간지의 간결하면서도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대단한 필력 덕분일 것입니다.

 

가와이 간지는 이 작품을 통해 팩트 찾기자체보다

팩트를 대하는 각오 또는 태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뒤표지를 보면 이 세상에 진실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사실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는 작품 속 대부분의 캐릭터가 자의든 타의든 견지하고 있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사실이면서 진실인 것이 있는가 하면, 거짓인데도 진실이라 강요되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사실이나 거짓인데도 누구에게는 진실, 누구에게는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와이 간지는 이런 물음에 대해 적잖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래서 사건은 단순해 보여도, 작품의 볼륨감이나 깊이는 여느 작품 못지않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적정선보다 조금 넘쳐 보이던 작가의 과욕(?) 때문에

자칫하면 철학적인 말장난처럼 느낄 독자가 분명 있으리라는 점입니다.

 

합리적인 직관과 육감을 갖춘 가부라기와 다혈질의 폭주 캐릭터 마사키 등 두 중년 형사와

스마트한 영건 히메노와 차분한 프로파일러 사와다 등 두 젊은 형사의 조합은

뛰어난 원톱 주인공을 앞세운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물과 기름처럼 이질적이면서도 묘하게 탄탄한 팀워크를 자랑합니다.

슈퍼 히어로는 아니지만 그만큼 리얼한 형사 캐릭터라고 할까요?

 

다만, 소위 애브덕션이라 불리는 이들의 독특한 추론 방법은

때론 지나치게 직감적이거나 무리한 가정을 앞세우는 경향이 있어서

독자들 입장에선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비약으로 느낄 여지가 많습니다.

특히 팀장격인 가부라기는 이런 추론 방법이 몸에 배어 있는 캐릭터인데,

달리 말하자면, 지나칠 정도로 앞서나간(또는 다소 황당한) 추리를 펼친 끝에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엄청난 진실에 도달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인지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다소 급진적이고 비약된 추리가 쏟아져 나오면서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유지돼야 할 긴장감이 현격하게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하루 만에 완독할 수 있을 정도로 페이지는 잘 넘어가는 작품이지만,

데드맨과 비교해볼 때, 상대적으로 사건보다 캐릭터에 중점을 둔 작품이라 그런지

가와이 간지의 후속작을 기다린 독자 입장에선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 가부라기 4인방의 활약은 데드맨때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늘어났지만,

오히려 그 부분 때문에 사건의 재미나 긴장감이 떨어진 대목도 있었습니다.

데드맨의 경우 사건이 확실한 주연이고, 가부라기 4인방이 탄탄한 조연이었다면,

이번에는 그 반대의 느낌이 강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사건의 밀도나 크기를 좀더 키웠다면

훨씬 더 재미와 긴장감을 갖춘 미스터리가 됐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번역하신 권일영 님의 후기를 보니 다음 작품 단델라이언은 민들레가 소재로 등장하는군요.

풀기 힘든 수수께끼라는 꽃말을 가진 민들레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집니다.

매력적인 가부라기 4인방과 허를 찌르는 이야기의 힘의 균형이

다음 작품에서는 황금비율로 잘 안배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족으로..

이 작품을 읽을 예정인 독자라면 인터넷 서점의 소개글을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법 중요한 정보 두어 가지가 통째로 노출돼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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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바이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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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의 작품을 많이 읽진 못했지만 읽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랐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판타지나 호러, 비현실의 세계를 소름 돋게 그리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진짜 현실감 있는캐릭터나 스토리로 포장해내는 그의 필력은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니면 갖추기 힘든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덕분에 장르도 잊은 채 그가 펼쳐놓은 사실적인 세계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되고,

공포와 기괴함을 느끼는 체감의 강도는 그만큼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리바이벌은 두 개의 서사, 즉 주인공 제이미 모턴의 성장 소설이면서 동시에

전직 목사이자 전기(電氣)에 미친 남자 제이컵스의 괴담이 뒤섞인 작품입니다.

제이미의 성장기가 지독히 사실적인 20세기 후반의 미국 청년의 명암을 그리고 있다면,

제이컵스의 괴담은 전기(電氣)와 신()과 지옥을 그린 끔찍한 판타지에 다름 아닙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서사는 전기의 힘을 매개로 연결되고,

무려 50여년의 시간적 무대를 통해 두 남자의 방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 ● ●

 

평범한 소년에서 마약에 쩐 록 아티스트를 거쳐 레코딩 프로듀서로 성장하는 제이미는

인생의 고비마다 제이컵스와 마주치게 됩니다.

목사로 재직 중 아내와 아들을 잃고 제이미가 살던 마을을 떠난 제이컵스는

이후 박람회에서 번개 사진사가 되어 시골사람들을 현혹시키더니,

난데없이 성스러운 반지로 병든 자를 고쳐주는 열광적인 목사로 변신합니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전기의 힘으로 병든 자를 구제하고 헌금을 끌어 모읍니다.

 

제이컵스가 자랑하는 전기의 힘은 치유 이상의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제이미는 그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두려워하지만,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친형, 연인, 동료까지 전기의 힘의 수혜자가 된 덕분에

그와의 오랜 악연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제이컵스를 조심하라는 현명한 조언을 몇 차례나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이미는 분노와 호기심이라는 함정에 빠진 채 자꾸만 제이컵스의 곁을 맴돌았고,

결국 그의 궁극의 치유 현장에서 평생 잊히지 않을 끔찍한 사건과 마주하게 됩니다.

 

● ● ●

 

지극히 현실적인 제이미지극히 비현실적인 제이컵스의 콤비 플레이도 그렇지만,

제이컵스의 괴담의 핵심인 전기와 신이 각각 과학과 종교를 대변한다는 점도 무척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인물도 소재도 서로 뒤섞기 힘든 정반대의 특질들을 갖고 있는 셈인데,

바로 이 지점에서 스티븐 킹의 마력 같은 힘이 드러납니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명백히 비현실적인데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그저 허구에 불과한 호러일 뿐인데 내 옆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함이 발산됩니다.

오래 전에 본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영화 콘스탄틴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는데,

이런 묘한 위화감이야말로 리바이벌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샤이닝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폭주하는 호러 서사를 기대했던 독자에겐

적잖은 분량을 차지한 초반부의 제이미의 성장기가 낯설거나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첫사랑, 꿈과 좌절, 가족사 등을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재미도 있는데다,

후반부를 위한 큰 밑밥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 나름의 의미가 있는 전개라고 생각합니다.

전기의 힘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난해함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략의 추정만으로도 뒤의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으니

너무 골치 아프게 여기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스티븐 킹이 처음 도전했다는 탐정 추리소설 미스터 메르세데스도 재미있었지만

역시 그의 진짜 매력은 현실 저 너머의 세상과 공포를 그린 작품에서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체질적으로 안 맞는 분은 어쩔 수 없지만 그의 전작들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리바이벌역시 한 번에 완주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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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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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가 쓴 연애소설이란 카피를 본 그의 팬이라면

누구나 설마’ ‘진짜?’ 하는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저 역시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을 많이 읽어본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가 평범한 연애소설을 쓴 것은 아닐 거란 기대감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6편의 단편은 연작처럼 서로 사건이나 인물이 얽혀있고,

무려 19년을 왕복하며 만남과 사랑과 이별과 회한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펼쳐놓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다룬 이야기들이 주류를 이루지만

그 외에 부모와 자식, 교사와 학생, 친구나 낯선 이와의 인연도 간간이 등장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연애소설이라기 보다는

돌아보면 전부 기적처럼 이뤄진 것이 분명한, 어떤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들입니다.

인연이든 악연이든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막장 드라마에 버금가는 우연과 우연이 연이어 겹쳐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때 거기에 당신이 있었기 때문에두 남녀는 연인 또는 부부가 될 수 있는 것이고,

하필 같은 학교, 같은 반이 됐기 때문에왕따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불꽃이 튈 수도 있지만, 암운이 드리울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회피한 일을 두고 후회할 수도 있고, 잘 했다고 자찬할 수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와의 만남은 희망이 되고 열정으로 가득 찬 채 오랜 시간을 지탱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절망이 되고 상처로만 남을 수도 있습니다.

 

만남은 그 순간에 평가하고 단언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숙성되든 변질되든 그 순간의 의미는 변화하기 마련이며, 유효기간 역시 제각각입니다.

이사카 고타로가 만남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19년이라는 긴 시간을 무대로 삼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300페이지를 갓 넘긴 짧은 분량이지만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감정들이 여느 장편 못잖게 진지하고 진솔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사카 고타로는 세상의 모든 만남은 운명이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새삼 제가 살면서 가졌던 여러 만남들을 돌이켜보니

(좋아했든 싫어했든) 그 누구도 운명이 아닌 채 만났던 사람은 없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일까요? 제가 겪은 특별한 만남을 단편으로 끄적거려본다면

이 연작 속 어딘가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들었습니다.

 

이사카 고타로의 뒤통수치는 연애소설은 아니었지만,

중간중간 코끝을 시큰하게 만드는 에피소드도 있고,

괜히 빙그레 웃음 짓게 만드는 따뜻한 에피소드도 있어서

제목처럼 작은 밤의 음악과 함께 읽는다면 잘 어울리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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