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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와 수잔 ㅣ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평점 :
읽는 중간에 두어 번 중도포기를 고민했던 작품입니다.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기대감이 충족되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냥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뭔가’가 분명 있었고,
무엇보다 토니와 수잔 두 사람의 엔딩이 궁금했기 때문에 기어이 끝까지 달리긴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독자들의 평이 궁금해서 알라딘에 들어가 봤는데,
저의 독후감과는 달리 대체로 호평 일색이라 무척 놀랐습니다.
역시 제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고고한 서사에 대한 몰이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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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은 20년 전 이혼한 에드워드에게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을 받습니다.
신혼 시절, 에드워드는 법학을 포기하고 글쓰기에 매진했지만
수잔은 그에게 재능이 없음을 알아봤고, 냉정한 혹평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둘은 씁쓸하게 이혼했고 그로부터 20년이 흘렀습니다.
에드워드가 보낸 소설의 주인공이 토니입니다.
그는 여름 별장으로 가던 도중 불량배들에게 가족을 잃는 대참사를 겪습니다.
삶은 어찌어찌 이어지지만 껍데기만 남았을 뿐, 모든 것은 불안정하고 위태롭습니다.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먼길을 달려갔지만 그곳엔 또다른 비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능 없고 혹평 받아 마땅하던 그의 글솜씨가 일취월장한 것에 놀라던 수잔은
소설 속에서 서서히 붕괴돼가는 토니를 지켜보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 사실에 더욱 놀라게 됩니다.
자신을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둘만의 과거사를 언급한 대목도 없지만,
수잔은 토니를 통해 겉모습과는 달리 사방에 균열 투성이인 자신의 삶을 돌이켜봅니다.
그리고 자문합니다. 왜 에드워드는 내게 이 책을 보낸 거지?
책과 함께 보낸 편지 속의 “이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찾아봐.”라는 말은 무슨 의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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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이 작품의 제목이 ‘토니와 수잔’이라고 해서
당연히 두 인물이 현실 속의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은 소설 속 캐릭터이고 한 사람은 그를 읽는 독자로 등장합니다.
말하자면 소설 속 토니와 현실의 수잔의 ‘교집합’이 이 작품의 테마라는 뜻인데,
개인적으로는 바로 그 지점이 저를 이해시키지도, 공감시키지도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소설 속 소설인 ‘녹터널 애니멀스’와 주인공 토니의 캐릭터는 무척 매력적입니다.
느닷없이 찾아온 불행, 가족을 잃고도 식욕과 성욕을 느끼면서 살아가야 하는 절망감,
바닥을 알 수 없는 참혹하고 아주 느린 속도의 파멸 등
자비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서늘한 스릴러의 미덕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반면, 현실의 수잔을 그린 대목은 중반을 지나면서부터 점점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에드워드의 소설을 읽으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수잔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대목을 읽었기에, 또는 소설에서 어떤 분위기를 감지했기에
수잔이 이토록 동요하고, 자책하고, 분노하는 것인지 결국 마지막까지 알 수 없었습니다.
토니는 책과 함께 보낸 편지에 “이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찾아봐.”라는 말을 남깁니다.
즉, ‘이 소설은 어떤 식으로든 너와 연관이 있고,
그래서 난 분명한 의도를 갖고 이 책을 너에게 보내는 거야.’라는 뜻입니다.
그 의도란 복수일 수도 있고, 괴롭힘일 수도 있고, 소소한 자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소설과 수잔의 연관’도 ‘에드워드의 의도’도 제 눈엔 잘 읽히지 않았습니다.
토니의 픽션이 수잔의 현실을 잠식한다는 것은 비평가들의 억지스러운 분석이란 느낌입니다.
세상에는 토니의 픽션보다 더 세고 독한 콘텐츠들이 많습니다.
수잔이 픽션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괴로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 픽션이 에드워드의 소설이란 사실이 수잔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쳤을까요?
수잔이 그저 ‘에드워드의 글솜씨가 상당해졌네.’라고만 느꼈다면 모르겠지만,
수잔은 억지스러울 정도로 ‘에드워드의 의도’를 자신의 삶과 결부시키려 애씁니다.
마치 (어떤 경로로든) 자신의 삶이 불안정하고 위태롭다는 정보를 얻은 에드워드가
과거를 복수하거나 현재를 조롱하기 위해 이 소설을 보냈다는 식으로 ‘알아서’ 반응합니다.
소설을 보면 딱히 그럴만한 단서도 흔적도 없는데 말이죠.
(두 차례에 걸친 ‘막간’ 챕터에서 난해한 문장들로 묘사된 수잔의 심리는
에드워드의 책에 대한 수잔의 반응을 강조하려는 부연설명처럼만 보입니다)
몇몇 분의 서평을 몇 편 읽다보니, 좀 심하게 말하면, ‘꿈보다 해몽’이란 말이 생각났습니다.
소설에선 채 깨닫지 못했던 점들이 꽤 상세하게 분석돼있었는데
어떤 부분은 ‘아, 이렇게 해석되는 거였나?’ 싶을 정도로 생소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토니와 수잔의 접점’만큼은 끝까지 이해 안 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에드워드가 던진 수수께끼 같은 질문 - “이 퍼즐에서 빠진 조각을 찾아봐.” - 에 대해서도
수잔은 답을 찾은 것처럼 행동하지만, 저로서는 질문과 답 사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쨌든 앞서 말한 대로 ‘취향의 문제’ 또는 ‘독해능력 부족’ 중 한 가지가 이유겠지요.
(어쩌면 톰 포드가 연출한 영화를 보면 저의 몰이해가 해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족으로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이 작품 역시 ‘예외 없이’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를 홍보 문구에 삽입했더군요.
부부가 등장하고, 한쪽이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이는 설정만 나오면
너도나도 ‘나를 찾아줘’의 승계자(?)인 것처럼 자처하는데,
이젠 그 홍보 문구가 보이면 오히려 기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스스로의 완성도와 함량만으론 독자에게 어필할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