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죽이다 데이브 거니 시리즈 3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고백하자면, 제 책장에는 존 버든의 데이브 거니 시리즈’ 1, 2권인

‘658 우연히악녀를 위한 밤이 몇 년째 대기상태로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손이 갔다가도 늘 다음을 기약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일단은 분량이었습니다.

물론 해리 홀레 시리즈를 탐독했던 걸 생각해보면, 저의 변명이 좀 구차해 보입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앞선 시리즈를 읽지 못한 상태에서

시리즈 3권인 기꺼이 죽이다가 출간됐다는 소식에, 저도 모르게 손이 가고 말았습니다.

책장에서 자기 순서만 기다리고 있던 1, 2권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지만 말입니다.

 

● ● ●

 

2000년 봄. 자칭 착한 양치기라는 자에 의한 희대의 연쇄살인극이 벌어집니다.

그는 벤츠의 플래그쉽 모델을 소유한 부자들을 죽인 뒤 세상을 향해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돈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부자를 죽이는 것으로 정의를 이룩할 수 있다.”

10명의 희생자가 나왔지만, 경찰과 FBI는 단서조차 잡지 못한 채 무력하게 물러서고 맙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착한 양치기 사건의 유족들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가 기획됩니다.

한 야심찬 여대생의 기획에서 출발한 이 다큐멘터리의 자문을 맡은 퇴직형사 데이브 거니는

유족들을 만나고, 당시 사건자료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커다란 의문을 갖게 됩니다.

FBI의 반박과 은근한 협박에도 불구하고 데이브 거니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자마자 유족들이 차례로 살해당하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동시에 데이브 거니와 그의 가족에게도 명백한 위협이 가해지기 시작합니다.

 

● ● ●

 

- 내성적이고 사색적이지만, 동시에, 섬세하고 끈질기게 분석하는 퇴직 형사

- 부당한 권위와 권력에 저항하는 합리적인 반골

- 가족들의 소소한 위로에 눈물 흘릴 줄 아는 따뜻하고 소심한 남자

 

출판사의 소개글과 제가 받은 인상을 편집해서 정리해본 데이브 거니의 캐릭터입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인간적이면서도 제대로 일할 줄 아는 형사랄까요?

많은 영웅적 캐릭터들이 그렇듯 그에게도 아버지와 가족으로 인한 상처가 있지만,

그것이 스스로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 정도로 거대하거나 작위적이지 않습니다.

많은 영웅적 캐릭터들과 달리 그는 마초 같은 기질도 없고, 자학적인 고뇌도 없습니다.

냉소적이지도 않고, 비관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영웅 대접이 불편한 겸손한 인물입니다.

어쩌면 주인공 캐릭터로서는 좀 심심해 보이는, 심지어 건전해보이기까지 한 데이브 거니지만

그가 가진 또 다른 일면, 즉 끈질긴 분석과 과감한 결정, 그리고 합리적인 반골 기질 덕분에

그가 이끄는 이야기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차분한 긴장감을 잃지 않고 전개됩니다.

 

본의 아니게 착한 양치기 사건의 유족들을 인터뷰하는 다큐멘터리 자문을 맡게 됐지만,

거니는 그 과정에서 그동안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착한 양치기 사건의 이면을 발견합니다.

그 당시 수사 관련자 대부분이 FBI와 범죄심리학자가 가리킨 한쪽 방향만 쳐다보느라

정작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는 점을 간파합니다.

 

왜 벤츠를 소유한 부자들만, 그것도 어마어마한 총으로 얼굴을 날려버렸을까?

왜 희생자들 근처에 동물 인형을 놓아뒀을까?

6건의 사건으로 10명의 사상자를 내곤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까?

착한 양치기는 정말 돈과 부자를 혐오한 로빈 후드였을까?

 

거니는 자신의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조심히 움직입니다.

퇴직형사라는 신분상의 제약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FBI의 결론을 뒤집거나 심지어 정면대결을 할 수도 있다는 부담 때문입니다.

이런 핸디캡 때문에 독자에 따라 거니의 조사가 무척 답답하고 느려 보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범인과 FBI를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퇴직형사설정은 무척 흥미로워 보였습니다.

 

그는 현직에 있는 동료로부터 정보를 얻어내고, 유족들의 인터뷰에서 단서를 구합니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와 발견되지 않은 퍼즐들을 찾기 위해 느리지만 집요하게 움직입니다.

그리고, 끈질긴 분석을 통해 확신을 얻은 거니는 이제 과감한 결정을 내립니다.

범인과 FBI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것입니다.

 

5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분량에 어울리게 작품 속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포진돼있습니다.

전작의 사건에서 입은 몸과 마음의 상처로 인해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는 중년의 거니가

아내와 아들과 겪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도 크진 않지만 묵직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살인사건마저 시청률의 제물로 바치려는 쓰레기 같은 미디어의 횡포라든가,

연쇄살인마에게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무게의 트라우마 등

작가는 메인스토리와 연결된 다양한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굳이 아쉬움을 꼽자면, 우선, 데이브 거니가 외부의 도움에 너무 많이 의존한다는 점입니다.

동료였던 잭 하드윅이 정보원 역할을 해주지 않았다면 거니의 수사는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퇴직형사라는 핸디캡 때문이긴 하지만, 때론 과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더불어, 착한 양치기가 거니의 수사를 돕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작위적인 설정이나 장치들이 간간이 등장하는데,

크게 거슬리진 않지만 왠지 거니의 수사가 편의적으로 진행된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작품 내용과는 무관한 것인데, 번역 제목에 대한 아쉬움입니다.

원제가 ‘Let the Devil Sleep’인데, ‘기꺼이 죽이다라는 번역 제목이

과연 원제의 의미를 잘 담아냈는지, 작품 내용과 매끄럽게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꺼이 죽이다덕분에 책장에서 잠자고 있던 시리즈 1, 2권을 곧 꺼내 읽게 될 것 같습니다.

기꺼이 죽이다속에 데이브 거니가 겪은 예전 사건들이 종종 언급되곤 하는데,

그 짧은 언급만으로도 호기심과 기대감이 불쑥불쑥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죽이다가 작가 나이 70에 집필됐다고 하니, 후속작을 기대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다면 데이브 거니의 활약을 좀더 맛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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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본다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클레어 맥킨토시의 전작인 너를 놓아줄게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스포일러 때문에) 줄거리 소개하기가 참 어려운 작품입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 자체 스포라도 있으면 마음 편하게 인용하려고 했지만,

출판사 역시 애매한 오프닝까지만 소개하고 말아서

일단 그 대목까지만 일부 인용하고 제 나름대로 몇 줄 덧붙인 줄거리를 정리해봤습니다.

 

● ● ●

 

런던에 사는 40세 여성 조 워커는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보다가

소위 조건만남을 암시하는 듯한 광고란에서 자신과 닮은 얼굴을 발견한다.

광고에는 어떤 설명도 없이 여성의 얼굴 사진과 전화번호, 웹사이트 주소만 적혀 있다.

조는 광고에 실린 여성이 연이어 범죄의 희생자가 된 사실을 알게 되곤 나날이 불안해한다.

한편, 용의자 폭행으로 일선에서 배제됐던 여순경 켈리 스위프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살인사건전담 팀에 합류한 뒤 혼신을 다해 수사에 임한다.

하지만 살인과 성폭행, 성추행 등 광고에 실린 여성들의 피해는 런던 곳곳에서 속출한다.

그러던 중 켈리는 광고 속 웹사이트의 정체와 함께 운영자의 끔찍한 의도까지 알아내게 된다.

 

● ● ●

 

제목인 나는 너를 본다에서 얼핏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작품은 한 사람의 일상을 의도적으로, 또 은밀하게 지켜보던 누군가의 시선이

단순한 관음증을 넘어 무자비한 폭력의 기폭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발상에서 출발합니다.

미행과 CCTV와 스마트폰의 결합을 통해 거의 전지적인 힘을 갖게 된 그 시선

대부분이 여성인 목표물의 일상과 습관은 물론 특별한 비주얼까지 데이터로 축적함으로써

그녀들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연약한 먹잇감으로 전락시킵니다.

 

먹잇감들은 광고를 통해 사냥꾼들에게 공개되고,

사냥꾼들은 적잖은 대가를 지불하고 먹잇감들의 데이터를 손안에 넣습니다.

먹잇감들은 어느 날인가부터 기분 나쁜 시선과 악취 나는 콧김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언제라도 뒤를 돌아보면 자신을 노려보고 있을 누군가를 발견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물론 사냥꾼들은 선하고 평범한 시민으로 위장(?)하고 있기에,

그녀들은 실제 피해를 입기 전까지는 그 모든 것을 망상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얼굴 사진이 음란한 조건만남 광고에 도용된 사실도 알지 못합니다.

 

조 워커는 우연히 광고에 실린 자신의 사진을 발견했고,

또 우연히 광고에 실렸던 다른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스스로 망상이라 여기면서도 조는 출퇴근 때마다 불안과 공포를 지울 수 없습니다.

경찰은 물론 가족들조차 조의 불안과 공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켈리 스위프트라는 여순경만은 그녀의 진술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녀는 교통경찰 성범죄과와 지하철 소매치기 검거팀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다,

여동생이 성범죄에 희생됐던 탓에 조의 이야기에 이끌렸던 것입니다.

 

이야기의 발단부는 독자의 호기심을 잡아당깁니다.

설정도 제법 신선하고, 주인공 조의 공포심도 충분히 공감되며,

여순경 켈리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라 어떤 활약을 보일지 기대감을 갖게 만듭니다.

조의 가족에 관한 장황한 설명이 좀 지루하게 읽히긴 하지만,

그 역시 이후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 중요한 토대처럼 보여서 그저 후루룩 넘기지 못합니다.

메인 스토리도 나름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페이지를 술술 넘기게 만드는 힘을 발휘합니다.

희생자는 계속 발생하지만, 경찰의 탐문과 각종 조사는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독자의 눈에 용의자가 한두 명씩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절정부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작가는 결정적 증거를 대놓고 공개합니다.

그리고 그 지점부터 작가는 독자의 추리를 수차례 무너뜨리며 연이은 반전을 내놓습니다.

 

일단, 전작인 너를 놓아줄게와 비교하면

나는 너를 본다는 속도감이나 재미 면에서 앞선 작품이 분명합니다.

사건의 성격이 달라서 단순 비교하긴 어렵지만,

페이지도 빨리 넘어갔고, 캐릭터도 매력적이고, 미스터리에 대한 몰입도도 훨씬 강합니다.

하지만, ‘너를 놓아줄게와 마찬가지의 약점을 지닌 것도 사실입니다.

, 반전은 납득하기 어렵고, 드러난 진실은 작가의 변명이나 핑계처럼 읽힌다는 점입니다.

차라리 사건의 개연성이 부족하거나, 추리가 허술했다면 이해할 수도 있지만,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억지스럽게 비틀어가면서까지 만들어낸 반전과 엔딩은

다분히 억지스럽다는 느낌과 함께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대목입니다.

또한, ‘누구든 지켜볼 수 있는 범인의 능력자체가

무한하고 전지적으로 설정된 점도 절정부 이후의 책읽기를 방해한 요소였는데,

작가가 범인의 능력을 무리하게 부풀리기 위해 리얼리티를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줄거리를 제대로 소개할 수 없다 보니 읽지 않은 분은 잘 이해할 수 없는 서평이 됐습니다.

경찰 출신 작가로 나름 독특한 서사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한번쯤 클레어 맥킨토시의 작품을 읽는 것은 스릴러 마니아에겐 괜찮은 경험이 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두 작품 모두 치명적인 아쉬움을 느낀 탓에

그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높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혹 출간되더라도 독자들의 평을 먼저 살펴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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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잊지 마
미셸 뷔시 지음, 임명주 옮김 / 달콤한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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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랍인이며 장애인이란 이유로 편견 속에 살아온 서른 살 청년 자말.

어느 겨울, 노르망디 작은 해안마을의 절벽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투신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자말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빨간 스카프를 건넸지만 그녀는 스카프를 쥔 채 추락하고 만다.

문제는 추락사 한 그녀의 목에 자말이 건넨 스카프가 단단히 묶여있었다는 점,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 스카프에서 자말의 DNA가 무수하게 발견됐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다.

본인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자말은 당황하지만, 그의 불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10년 전, 이곳에서 벌어진 두 건의 미제사건까지 뒤집어쓰게 될 운명에 처한다.

똑같은 수법, 똑같은 흉기, 똑같은 범행대상.. 모든 게 동일범의 소행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 그에게 과거 사건의 정보가 담긴 이상한 편지를 연이어 보내온다.

마치 그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듯, 또는, 그에게 진실을 밝혀내라고 요구하듯 말이다.

 

● ● ●

 

출판사 소개글을 보면, “독자는 ?’, ‘어떻게?’, ‘말도 안 돼!’라는

의아함을 가지고 질주하는 수밖에 없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작가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때까지 주인공 자말은 물론

독자까지 현실과 망상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위에 세워놓고 마음껏 뒤흔들기 때문입니다.

 

추락하던 여자가 불과 몇 초 사이에 자기 목에 스카프를 묶은 것인가?

왜 이 끔찍한 사고는 작은 지역마을의 언론에 한 줄도 기사화되지 않는 것인가?

자말에게 10년 전에 발생한 미제사건의 정보를 익명 우편으로 보내는 자는 누구인가?

왜 하필 평생 이곳에 와본 적도 없는 자말이 이런 황당한 상황을 겪어야 하는가?

 

분명 미셸 뷔시가 판타지 스릴러를 집필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명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현실세계로의 틈새를 발견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자말에게 쳐놓은 망상의 그물은 너무나 촘촘하고,

경찰과 검시관과 목격자들의 증언은 자말이 전혀 부인할 수 없을 만큼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크게 세 갈래로 전개됩니다.

누구도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자말이

경찰서를 빠져나와 직접 수사에 나서는 이야기가 하나이고,

10년 전 살해당한 두 여인의 이야기와 수사기록이 나머지입니다.

하지만 자말의 직접 수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꼬여만 갑니다.

사람을 만나고, 기록을 접할수록 진실은 점점 현실세계에서 멀어질 뿐이기 때문입니다.

절벽에서 투신한 여자의 정체도, 10년 전 희생자들의 정체도,

그리고 그녀들의 유가족은 물론 자말과 함께 해안가에서 시신을 지켜본 목격자들조차

자말에게서 현실감을 잃은 채 신기루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자말은 정말 내가 그녀들을 죽인 건 아닐까?’라는 망상에 빠지기도 합니다.

독자 역시 진짜 자말이 범인인 건가?’라는 의문을 수차례 반복하게 됩니다.

그나마 누군가자말에게 계속 보내오는 이상한 편지들만이

이 이야기가 판타지나 망상이 아님을 독자와 자말에게 환기시켜줄 뿐입니다.

 

자말의 직접수사는 결국 장벽에 부딪히고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기 속에서 자말은 드디어 끔찍한 진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과연 자말은 혐의를 벗고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될까요?

10년 동안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두 여인의 죽음은 진상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세 여인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똑같은 수법으로 참혹하게 살해당해야 했을까요?

미셸 뷔시는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 때까지 절대 쉽게 답을 내주지 않습니다.

사소한 장치들까지 철저히 계산에 넣어둔 그의 정교한 설계 덕분에

독자는 함부로 예단하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막판의 짜릿함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자말을 현실과 망상의 경계선 위에 올려놓았던 덫의 실체는

어쩔 수 없는 작위감과 함께 결과에 대한 변명처럼 느껴져 무척 아쉽게 읽혔습니다.

그 덫은 진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기 위해선 과거를 뒤흔들어야 했어.”라는,

나름의 대의명분을 갖고 있지만, 100% 공감하기 어려운 억지스러움을 가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 부분만 매끄럽게 전개됐다면 절대 잊지 마

5개와 함께 제 독서목록에서 2017년 상반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힐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 작품까지 국내 출간된 미셸 뷔시의 네 작품을 모두 읽었는데,

개인적인 호감은 그림자소녀’ - ‘절대 잊지 마’ - ‘검은 수련’ - ‘내 손 놓지 마순입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저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그림자소녀가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수작이라면,

절대 잊지 마는 대중성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춘 작품이고,

검은 수련은 예술을 소재 삼아 무게감과 작품성을 중시한 작품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내 손 놓지 마는 별 3.5개에 그칠 정도로 아쉬움이 많은 작품이었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노르망디를 배경으로 매번 색다른 분위기의 스릴러를 내놓는 미셸 뷔시가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고 찾아올지 무척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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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매미 엔시 씨와 나 시리즈 2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20175월에 출간된 하늘을 나는 말에 이은 엔시 씨와 나 시리즈두 번째 작품입니다.

시리즈 작품이 한 달 간격으로 연이어 출간되는 것은 무척 드문 경우인데,

덕분에 전작의 기억과 여운을 간직한 상태에서 후속작을 읽게 됐습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는 전작보다 한 살을 더 먹은 스무살 문학부 여대생입니다.

책을 좋아하고, 나이답지 않게 고문학과 전통예능에 조예가 깊은 씩씩한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장르 가운데 라쿠고(落語)라는 이야기 예술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부채나 수건 같은 소도구와 함께 목소리, 추임새, 몸짓만으로

해학과 풍자가 섞인 이야기를 익살스럽게 연기하는 예술입니다.

그 라쿠고의 대가 중 특히 슌오테 엔시 씨를 좋아하는

1년 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각별한(?) 사이가 되었고,

특히 일상에서 벌어진 기이하거나 미스터리한 일에 대해 숨김없이 상의하곤 했습니다.

밤의 매미는 스무살이 된 의 주변에서 벌어진 소소한 미스터리들을

여전히 친절하고 비범한 라쿠고의 명인엔시 씨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각각 100페이지 안팎의 세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출판사 소개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서점 서가의 책이 거꾸로 꽂혀 있는 이유와 그 범인을 밝히는 으스름달밤’,

체스의 말과 달걀과 거울이 차례로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깜찍한 소동을 그린 ‘6월의 신부’,

남녀의 엇갈린 인연과 그 사정을 파헤치는 밤의 매미등입니다.

 

밤의 매미1990년에 출간됐고, 4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하면서

살인 없는 일상 미스터리가 미스터리로서 공식적으로 인증 받게 만든 작품입니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을 일상 미스터리의 고전이라 부르는 것은 아마 그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출간되는 일상 미스터리는 살인만 없을 뿐 꽤나 센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다

제법 치밀한 미스터리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기타무라 가오루의 밤의 매미나 전작인 하늘을 나는 말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순수 일상 미스터리와 의 성장기가 믹스된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전통예능인인 엔시 씨의 추리는

앞뒤가 착착 들어맞는 완벽한 논리보다는 감성이라든가 예술적 재능에 기반을 둔,

그러니까 심오한(?) 비약 또는 예술적 상상력에 의해 완성되고 있어서,

미스터리 자체를 기대한 요즘 독자들에게는 제법 싱겁게 읽힐 여지가 많은 작품입니다.

 

물론 엔시 씨의 추리는 객관적인 단서에서 출발합니다.

평범한 이야기 속에서 누구도 쉽게 간파하지 못한 포인트를 짚어내고,

그를 기반으로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추론합니다.

그것은 때론 악의일 때도 있고, 선의일 때도 있고, 양쪽의 경계선에 선 것일 때도 있습니다.

때론 따끔하게 악의를 꾸짖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에서 와 엔시 씨는

인간을 긍정하는 결말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번역자 정경진님의 후기)

역시 엔시 씨와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대하는 방법,

, 그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의 교훈으로 삼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갑니다.

 

어쩌면 기타무라 가오루의 작품은 미스터리보다는 성장소설로 접근하는 것이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미덕을 좀더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늘을 나는 말의 서평 말미에 후속작 밤의 매미에 대한 저만의 기대를 남겼었는데,

 

사건 같은 사건도 있으면 좋겠고, 신비한 엔시 씨도 좀 현실적이면 좋겠고,

반전이든 감동이든 나름의 비장의 무기도 있으면 좋겠다는 게 제 욕심입니다.”

 

하지만 기타무라 가오루의 일상 미스터리는 말 그대로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그러니까 오히려 사건성이 희박한 진짜 일상의 해프닝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탐정 역할에 굳이 이야기 예술인 라쿠고의 명인 엔시 씨를 설정한 것도,

사건을 물어오는 를 이제 갓 성인이 된 여대생으로 설정한 것도

분명 그런 맥락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을 것입니다.

밤의 매미는 그런 의도를 (전작보다도 더) 명확하게 보여준 작품이었고,

저의 욕심이 작가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습니다.

 

엔시 씨와 나 시리즈는 모두 6편이 출간됐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나머지 시리즈를 모두 출간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전작을 읽고도 그랬듯이) 계속 이어서 읽을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의 성장과 엔시 씨의 매력은 구미가 당기지만,

과연 작가가 사건다운 사건을 설정해줄지,

그래서 무척이나 통속적인 저의 욕심을 충족시켜줄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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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퀴엠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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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살해 혐의로 불명예 퇴직한 전직 경찰 조 파이크와 탐정사무소를 공동운영하는 엘비스 콜.

두 사람은 한때 조의 연인이었던 카렌 가르시아 실종 사건 수사를 의뢰받지만,

그녀는 하루 만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엘비스는 그녀가 연쇄살인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다.

한편 경찰에 의해 용의자로 지목됐던 남자가 살해된 채 발견됐는데,

유일한 목격자인 이웃이 조를 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에 구속된 조는 교도소 이송 차량에서 탈출해 도망자가 된다.

엘비스는 미스터리를 풀고 조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의 퍼즐을 다시 맞추기 시작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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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레퀴엠엘비스 콜 시리즈의 여덟 번째 작품입니다.

고백하자면, 앞선 7편을 하나도 못 읽은 탓에 이 작품을 다 읽은 뒤,

왜 콜&파이크 시리즈가 아니고 엘비스 콜 시리즈일까?” 궁금했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이 작품 전까지의 조 파이크는 대부분 조력자에 머물렀고,

실질적으로는 엘비스 콜 원맨쇼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L.A. 레퀴엠은 엘비스와 조가 거의 대등한 역할을 분담했고,

특히 조의 어린 시절, 해병대 시절, 순찰차 경관 시절 등이 차례로 그려진 덕분에

진짜 &파이크 시리즈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품으로 읽혔습니다.

 

꽤 오래 전이지만, 로버트 크레이스와 처음 만난 작품은 워치맨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작품은 조가 단독 주인공으로 독립한 조 파이크 시리즈1편이었습니다.

조의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읽었던 탓이겠지만,

당시 남겨놓은 메모에는 단순 액션물? 이 작가 작품은 읽기 전 반드시 서평 확인이라는,

참으로 야박한 평가가 적혀있습니다.

아마 엘비스 콜 시리즈를 순서대로 읽은 뒤에 워치맨을 읽었더라면

10배는 더 감칠맛 나는 책읽기가 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L.A. 레퀴엠은 액션 스릴러의 정석 같은 다양한 코드와 재미를 고루 갖춘 작품입니다.

우선, 무엇보다 방대한 분량을 순식간에 완주하게 만드는 끝내주는 캐릭터들이 눈길을 끄는데

유머와 실력을 겸비한 매력적인 사립탐정, 트라우마와 폭력성과 냉정함을 겸비한 전직 경찰,

선과 악, 탐욕과 정의 등 갖가지 개성을 지닌 LAPD의 경찰 군상들,

끔찍한 사건 속에서도 애틋한 멜로 라인을 만들어내는 인상적인 여인들,

그리고 무게감은 제각각이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역할을 하는 조연 등이 그들입니다.

 

물론 압권은 주인공 엘비스와 조인데,

두 사람은 닮은 듯하면서도 180도 다른 매력을 발산합니다.

엘비스가 한량+섹시+유머+지능+집요함으로 뭉친 캐릭터라면,

조는 무표정+진지+지고지순+정의+폭력성이 뒤범벅된 캐릭터입니다.

어찌 보면 도저히 함께 탐정사무소를 운영하기 어려울 정도로 상극인 인물들이지만,

두 사람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든 찰떡궁합과 신뢰를 과시하면서 사건을 해결합니다.

 

캐릭터뿐 아니라 중심사건 역시 끊임없이 자가발전하면서 긴장감을 높여갑니다.

처음엔 단순폭행살인으로 여겨졌던 사건이 끔찍한 연쇄살인으로 판명되는가 하면,

곧이어 치밀하게 계획된 보복살인으로 밝혀지면서 계속 국면이 전환되곤 합니다.

더구나 조 파이크가 누명을 쓴 끝에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면서

이야기는 단순히 사악한 연쇄살인범 찾기를 넘어

사건 이면의 감춰진 진실을 찾고,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한 휴먼스릴러로 진화합니다.

 

‘L.A. 레퀴엠의 매력 두 가지를 고른다면,

하나는 동료살해범으로 낙인찍혀 불명예 퇴직 당한 조의 어두운 과거사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사립탐정 엘비스와 LAPD 여형사 사만다 돌런의 위험한 협업이야기입니다.

불우한 성장기부터 시작되어 경찰을 그만두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조의 과거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완결된 이야기가 될 만큼 매력적입니다.

LAPD 강력반 내에서 마초들에게 부당한 취급을 받던 여형사 사만다 돌런과

역시 LAPD로부터 못마땅한 견제를 받는 엘비스의 협업은 무척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둘의 관계는 충돌-이해-협력이라는 전형적인 공식을 따르지만,

이미 여친이 있는 엘비스에게 돌런이 적극적으로 대시하면서 색다른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연쇄살인범의 정체와 범행동기인데,

뭐랄까, 매력적으로 세팅된 큰 무대에 비해 범인이 너무 초라하고 왜소해 보인다고 할까요?

범인은 그 나름의 가치관과 동기가 강력해야 시선을 끌 수 있는 법인데,

이 작품의 범인은 결론을 위해 작위적으로 짜맞춰진인물처럼 보였고,

그의 복수심의 근원도, 희생자들을 선택한 기준도, 범행수법이나 범행은닉을 위한 행보들도

다분히 정해진 결론으로 이야기를 유도하려고 억지스럽게 꾸며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엘비스와 조의 이야기가 워낙 강력하고 탄탄해서 충분히 상쇄될 수 있었지만,

범인마저 매력적이었다면 금상첨화였을 거란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이후 엘비스 콜 시리즈의 어떤 작품이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엘비스와 조가 좀더 멋진 범인과 대결하는 이야기를 기대해보고 싶습니다.

 

사족이지만,

멀홀랜드 드라이브, 우드로 윌슨, 할리우드 경찰서, 어슬렁대는 코요테 등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덕분에 너무 익숙해진 L.A의 지명과 풍경묘사를

엘비스 콜 시리즈에서도 맛볼 수 있었던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심지어 해리와 엘비스가 같은 동네에 산 건 아닌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L.A. 레퀴엠1999년에 발표된 시리즈 여덟 번째 작품인데,

같은 해 해리 보슈 시리즈의 여섯 번째 작품인 앤젤스 플라이트가 발표됐으니,

어쩌면 둘은 정말 이웃사촌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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