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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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베스트로 꼽았던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피터 스완슨의 신작이지만,

실은 이 작품은 피터 스완슨이 작가로서 이름을 처음 알린 데뷔작입니다.

전작처럼 독특한 제목이 눈길을 끌었는데, 원제는 ‘Girl with a clock for a heart’지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번역 제목이 무척 잘 지어졌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18, 대학 신입생 시절의 조지 포스와 그녀의 이야기가 한 축이고,

40대를 바라보는 중년에 이른 조지 포스와 그녀의 이야기가 다른 한 축입니다.

그녀에겐 오드리 벡, 리아나 덱터, 제인 번이라는 3개의 이름이 있습니다.

3개의 이름은 소설 속 이야기만 놓고 봤을 때 얘기고,

소설 밖의 삶에서는 도대체 몇 개의 이름을 더 가졌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 ● ●

 

조지는 신입생 시절 짧지만 불같은 사랑을 나눴던 리아나와 20년 만에 재회합니다.

무력한 중년의 삶에 지쳐가던 조지에게 리아나와의 재회는 가슴 떨리는 절정감을 전해줍니다.

그는 20년 전 경찰에게 쫓기다가 홀연히 사라진 리아나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고,

언제 어디서든 그녀와 우연히라도 마주치기를 고대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다시 만난 그녀가 암울했던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며 꽤나 곤혹스러운 부탁을 합니다.

자신이 훔쳤던 거부(巨富)의 돈을 돌려주고 싶은데 너무 무서우니 대신 전해달라는 것입니다.

조지는 불온한 기운을 느꼈지만 결국 리아나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녀와 다시 한 번 불꽃같은 사랑을 만들어나가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조지의 설렘 가득한 기대는 얼마 못가 산산조각 나고 맙니다.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리아나 주변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 ● ●

 

아낌없이 뺏는 사랑이란 제목을 굳이 풀어서 써보면,

사랑을 앞세워 상대방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사람정도가 될까요?

여주인공 리아나 또는 오드리 또는 제인은 액면대로만 보면 타고난 악녀이자

아낌없이, 또 끝없이 상대를 빼앗고 이용하는 악당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인물입니다.

반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는 주인공 조지는 가련하다 못해 한심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독자는 이런 일방적 감정 외에 또 다른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내가 리아나라면 아낌없이 빼앗아서라도 저주받은 숙명에서 도망치고 싶을 것 같다.’

내가 조지라도 아낌없이 빼앗길망정 결코 리아나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못할 것 같다.’

 

이런 감정은 작가의 전작인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읽을 때도 느낄 수 있었는데,

분명 성격은 다르지만 리아나는 어딘가 죽여 마땅한~’의 여주인공 릴리를 떠올리게 만듭니다.

릴리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을 기꺼이 죽임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켰다면,

리아나는 명백히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거나 잔혹하게 살해합니다.

릴리가 제발 붙잡히지 말았으면이라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선사했다면,

리아나는 잡히긴 잡혀야 되는데, 한편으론 안 잡혔으면 하는양가적인 감정을 일으킵니다.

 

아무튼...

늘 이번까지만, 하면서도 조지는 내내 리아나의 정교하고 치밀한 계획에 끌려 다닙니다.

심지어, 리아나를 쫓는 미지의 험상궂은 인물에게 협박당하고 폭행당하는 것은 물론,

결정적인 순간에 또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진 리아나 때문에

경찰에게 의심까지 받게 되는 등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빠집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종잡을 수 없는 리아나로 인해 지독한 상황을 겪으면서도

조지는 끝까지 리아나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조지에게 주어진 엔딩은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충격적입니다.

 

사실, 조지 입장에서 보자면 이 작품의 제목은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돼야겠죠.

18살 신입생 시절에도 그랬고, 마흔이 다 된 지금도 조지는 한결 같습니다.

리아나가 자기 앞에 나타날 때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폭력이 난무하는데도 말입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삐딱한 반응이 당연한 일이지만,

작가는 그런 조지를 충분히 이해가 되는 캐릭터로 잘 포장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악녀와 순정남이 어떻게든 해피엔딩을 맞이하기를 바라게 만듭니다.

참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인데, 그 이해하기 힘든 대목 때문에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제대로 된 아이러니라고 할까요?

 

피터 스완슨의 신작이 묵직한 장편이 아니라서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무척 즐거운 책읽기였습니다.

중편에 가까운 분량이라 금세 읽히기도 하고,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피터 스완슨의 매력을 한껏 맛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조지의 뒷이야기든, 릴리의 뒷이야기든, 새 인물의 새 이야기든

얼른 피터 스완슨의 신작이 출간되기를 벌써부터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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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 : 주사위는 던져졌다 레오나 시리즈 The Leona Series
제니 롱느뷔 지음, 박여명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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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식 출간 전 한스미디어에서 제공받은 가제본 상태로 읽은 작품입니다.)

 

제니 롱느뷔는 이 작품으로 데뷔한 신인 작가입니다.

1974년생이니 이른 데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력이 무척 독특한 작가입니다.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나 입양됐고, 가수로서 마이클 잭슨과 무대에 선 적도 있는 그녀는

범죄학을 전공한 뒤 스톡홀름 경찰청에서 수사관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가수 경력만 보면 이웃나라 노르웨이의 요 네스뵈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레오나의 주인공 레오나 린드베리는 스웨덴 강력범죄수사팀의 유능한 요원입니다.

레오나는 상부와의 충돌도 마다하지 않는 독립군이자 아웃사이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녀의 탁월한 능력 때문입니다.

하지만 레오나는 꽤나 불행한 성장을 겪었고, 지금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남편과의 불안정한 결혼생활에 따른 스트레스,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엄마로서의 자괴감,

그리고 지긋지긋한 현재의 삶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욕망에 휩싸여 있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희대의 은행 강도사건을 맡게 됩니다.

온몸이 피범벅인 벌거벗은 7살 여자아이가 곰 인형을 든 채 은행에 나타나선

돈을 내놓지 않으면 아이가 다친다.”는 협박범의 음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플레이시킵니다.

겁에 질린 은행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소녀는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홀연히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행여 아이가 다칠까봐 다가가지도, 도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눈앞에서 벌어진 기이한 은행 강도 상황을 공포에 질린 채 지켜보기만 합니다.

 

수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레오나는 의문의 쪽지를 전달받습니다.

거기엔, “그리고 당신이 알고 싶어 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라는 유력한 메시지가 담겨있는데,

문제는 마치 아무도 모르게 레오나만이 그 메모를 보게 하려는 것 같은 제보자의 의도입니다.

그리고 그 제보자가 들이민 몇 장의 사진을 본 순간 레오나는 큰 충격에 빠지고 맙니다.

 

제가 정리한 줄거리는 이 작품의 108페이지까지의 내용입니다.

본문 전체가 490페이지인데 여기까지밖에 소개를 못 하는 것은 스포일러 때문입니다.

나머지 400페이지 가까운 분량의 메인 스토리를 굳이 공개 못할 것도 없지만,

108페이지를 기점으로 이야기가 파격적으로 변주되기 때문인데,

레오나가 평범한 범인 찾기 스릴러가 아니라는 것만 확실히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신인작가의 데뷔작이지만 스릴러로서, , 한 여자의 불행한 삶을 다룬 소설로서

레오나는 고른 미덕을 갖춘 작품입니다.

워낙 독특한 설정이지만 확장성을 지닌 스릴러는 계속 진화하고 변주되고 성장합니다.

서브 사건으로 전개되는 관료들의 성매매 사건과 그를 취재하는 집요한 기자의 에피소드는

자연스럽게 레오나와 연결되면서 자칫 단순해질 수 있는 스토리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경찰 내부의 갈등과 관료적 행태를 비판한 부분은 작가의 생생한 경험이 잘 녹아있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 덕분에 마지막 장까지 독자는 안심할 수 없게 됩니다.

 

형사로서는 유능하지만, 아내이자 엄마로서 불안정한 일상을 살아가는 레오나가

성장기의 트라우마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의미도 없고 목표도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다분히 픽션에나 있을 법한 캐릭터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동정심을, 때로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독자들은 읽는 내내 레오나의 심리에 대해 양가적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 스포일러라 자세히 언급하긴 어렵지만,

아마 그 감정이야말로 페이지를 넘기는 가장 강력한 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AUSTCRIME.COM“whohow가 아닌 why에 집중하는 심리 스릴러라는 평가 역시

그런 맥락의 산물일 것입니다.

 

다만, 독자에 따라 레오나에게 너무 다양한 캐릭터를 부여했다는,

그래서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 같고,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묘사가 과도하고 지루하게 읽히는 경우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아무래도 데뷔작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작가의 과욕(?)으로 해석되는 대목도 있고,

막판 스퍼트를 내기 위해 약간의 무리수를 동원했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보다는 대체로 괜찮았다는 평가가 많을 듯 한데,

그건 레오나가 정식 출간된 뒤에 다른 분들의 서평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이 애초 3부작으로 기획된 탓에 확실하고 깔끔한 마무리 대신

‘To be continued’ 엔딩으로 마무리 된 점은 독자로선 무척 아쉬운 부분이지만,

동시에 후속작에 대한 기대감을 확실히 심어놓은 대목이라는 생각입니다.

북유럽 신인의 데뷔작이 연착륙을 통해 후속작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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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닉스 - 죽을 수 없는 남자
디온 메이어 지음, 서효령 옮김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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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온 메이어는 오리온’, ‘악마의 산을 통해 익숙해진 남아공의 스릴러 작가입니다.

과거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의 잔재, 월드컵 개최 덕분에 각인된 현대적인 이미지,

그리고 역시 그래도 아프리카의 나라라는 원시성 혹은 야성의 기운 등

남아공에 대한 인식은 제겐 여전히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요소들의 복합체입니다.

앞서 읽은 디온 메이어의 작품들은 남아공의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저변에 깔아놓았는데,

페닉스역시 두 개의 사건 - 은행강도와 연쇄살인 속에

남아공의 해결되지 않은 정치적, 사회적, 인종적 숙제들을 녹여놓은 작품입니다.

 

페닉스가 눈길을 끌었던 가장 큰 이유는

디온 메이어의 대표 캐릭터인 형사 베니 그리설의 프리퀄 스토리이면서,

그의 멘토인 맷 주버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소식 때문이었습니다.

가정까지 파괴할 정도로 대책 없는 알코올 중독자인 베니 그리설의 전사(前史)가 궁금했고,

그런 문제 형사를 훌륭히 키워낸 멘토가 누군지도 궁금했는데,

예상과 달리 베니 그리설의 멘토 역시 꽤나 문제적 캐릭터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맷 주버트는 경찰 동료이자 아내였던 라라가 임무수행 중 피살된 뒤로

자살충동에 시달리며 폐허와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34살이란 나이에 비만을 비롯한 온갖 성인병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지독한 헤비 스모커로 언제 어디서든 담배를 입에 물고 사는 인물입니다.

오리온의 주인공 판 헤이르던이 극심한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초보 사립탐정이었고,

악마의 산의 주인공 베니 그리설이 앞서 언급한대로 최악의 알코올 중독자인 걸 보면

작가가 주인공 캐릭터를 설정하는 면에서 꽤나 악취미를 지닌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해보면,

맷은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을 맡음과 동시에 상사의 지시로 심리 상담까지 받게 되는데

사건은 미궁을 헤맬 뿐이고, 심리 상담은 연애감정까지 뒤섞이면서 그를 혼란에 빠뜨립니다.

어렵게 피살자들 간의 공통점을 찾아낸 맷은 끝내 범인을 특정하게 되지만

그가 찾아낸 범인의 범행 동기는 너무나 참혹하고 비극적인 과거에 기인하고 있는 탓에

맷은 자신이 찾아낸 연쇄살인의 진실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앞서 읽은 디온 메이어의 두 작품에 대한 저의 평은 모두 별 4개였습니다.

풀어서 말하자면, 재미는 있는데, 확 잡아끄는 매력은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페닉스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0.5개가 더 줄어든 이유는

구성이 너무 단조롭고, 형사로서의 맷의 능력과 매력이 기대 이하였으며,

마지막에 밝혀진 사건의 진실이 일부는 억지, 일부는 상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460페이지의 분량임에도, 대부분의 내용은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 묘사에 할애됩니다.

그러다가 엔딩을 얼마 안 남겨놓고 정말 사소한 곳에서 결정적 단서를 찾아냅니다.

(나중에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극적 긴장감을 유발할 만한 유력한 용의자도 없었고,

맷의 수사를 위기로 몰고 갈만한 경찰 내부의 갈등이나 알력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야기가 업다운 없이 평탄하게 흘러가다 마지막 한 방에 의존한다는 뜻입니다.

 

사건은 계속 벌어지지만, 맷과 형사들은 현장을 조사하거나 기자회견장에 나타날 뿐입니다.

단서도 없고, 희생자 간의 연관성도 찾지 못하니 맷이 추리할 여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맷은 다이어트를 위해 수영장을 가고, 심리상담가와의 연애를 꿈꾸고,

죽은 아내 라라의 악몽에 시달리거나, 금연에 대해 고민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물론 유족들을 탐문하면서 미약한 단서라도 찾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게 형사로서 맷이 한 일의 전부입니다.

 

마지막에 드러난 진실에 관해서는 스포일러라 자세한 언급은 안 하겠지만,

, 그랬구나!’라는 감탄사와는 거리가 먼 반전을 위한 반전이라는 느낌밖에 주지 못했고,

좀 안이해 보일 정도로 상투적인 과거사를 설정한 탓에

독자들이 흥분할 여지를 작가 스스로 감소시켰다는 정도로만 설명하겠습니다.

 

더불어, 나름 기대했던 베니 그리설의 프리퀄 역시 그는 지독한 알코올 중독자였다.” 외엔

요양원에서 치료받는 내용과 소소한 은행강도사건을 너무 쉽게 해결한 것이 전부입니다.

멘토인 맷 주버트와의 인연도 피상적인 만남 외엔 특별히 그려진 내용이 없어 아쉬웠습니다.

 

전작에서 꽤 괜찮았던 디온 메이어의 필력이 페닉스에서 발휘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제 나름대로 두 가지 정도 추정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비교적 합리적인 첫 번째 추정은, ‘페닉스가 디온 메이어의 데뷔작이란 점입니다.

그의 대표 캐릭터 베니 그리설의 프리퀄이라고 해서 당연히 뒤늦게 출간된 줄 알았는데,

책날개에 소개된 작가의 이력을 보니 페닉스가 첫 장편이더군요.

그런 점에서 보면, 조금은 허술한 구성과 캐릭터 설정이 이해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약간 억측에 가까운 두 번째 추정은 번역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디온 메이어의 작품은 페닉스까지 모두 다섯 권이 출간됐는데 각 작품의 번역자를 보면,

오리온-강주헌, 프로테우스-이승재, 악마의 산/13시간-송섬별, 페닉스-서효령입니다.

같은 원작자의 작품인데 (출판사도 같은 곳이고) 매번 번역자가 달라진다면

아무래도 원작자 특유의 문장의 맛이 일관성을 얻기 힘들지 않을까요?

, 디온 메이어가 한번 읽어선 이해가 쉽지 않은 문학성 강한 문장들을 종종 구사하긴 해도,

앞선 작품들에서는 큰 거부감이나 난독의 경우가 드물었지만,

페닉스에서는 분명 거듭 읽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 대목들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제 기대가 너무 컸기 때문이든, 작품 자체의 문제 때문이든,

기다렸던 디온 메이어의 신작 치곤 아쉬움이 많이 남은 작품이었습니다.

꼭 읽어야지 하면서도 방치해뒀던 프로테우스‘13시간을 통해

페닉스의 아쉬움을 털어내도록 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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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증인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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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미키 할러 시리즈는 두 편밖에(그것도 한 편은 영화로, 한 편은 책으로) 못 봤지만,

예전 존 그리샴의 작품들이 그랬듯 법정물과 스릴러의 미덕이 잘 배합된 느낌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죄질에 관계없이 자신의 이익과 돈을 위해 의뢰인을 변호하지만

윤리적 딜레마 사이에서 갈등하는 미워할 수 없는 속물 캐릭터

미키 할러를 여느 변호사와도 차별화시켜주는 가장 매력적인 대목입니다.

 

● ● ●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담보대출과 주택압류 사건까지 영업장을 넓혔던 미키 할러는

의뢰인이던 리사 트래멀이 은행 부행장 살인범으로 체포되자 본연의 형사변호사로 돌아옵니다.

자신과 꼭 닮은, 유능하지만 공정하지 않은 검사 안드레아 프리먼과 맞붙게 된 미키는

확고한 증거 혈흔과 흉기 라는 치명적인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리사가 범인일 수 없다는 점,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점을 밝히기 위해 전력을 다합니다.

승패를 주고받으며 검사와 엎치락뒤치락 공방을 벌이던 미키는

회심의 다섯 번째 증인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확신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반전이 벌어지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 ● ●

 

분량에 비해 줄거리가 무척 간단하게 정리됐는데,

그 이유는 다섯 번째 증인이 미스터리나 스릴러로서의 재미보다는

사건과 의뢰인을 대하는 변호인의 태도와 철학에 더 방점이 찍힌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법정에서 벌어지는 검사와의 공방이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물론 법정 밖에서의 미키의 활약과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등장하긴 하지만,

어쨌든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치곤 서사가 꽤 단순한 편에 속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작품 속에서 미키 못잖은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인물은 검사 안드레아 프리먼입니다.

인종적으로도 성적으로도 소수자에 속하는 그녀는 미키가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강적입니다.

미키가 오직 무죄입증을 위해 양심이고 나발이고 가리지 않고 싸우는 전사라면,

안드레아는 유력한 단서 하나만 있다면 피고를 묵사발 내는 것이 정의라고 여기는 냉혈한입니다.

둘의 싸움은 그야말로 누구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제로섬 게임처럼 막장을 향해 달려가지만

일진일퇴를 거듭할 뿐, 어느 누구도 일방적인 리드를 가져가지 못합니다.

 

미키와 안드레아의 법정 공방이 이 작품의 핵심이고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과도한 분량이었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읽는 내내 다섯 번째 증인의 미덕은

리사는 정말 무죄인가? 그럼, 진범은 누구?’를 밝히는 것이 아닌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마이클 코넬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대로 사건과 의뢰인을 대하는 변호인의 태도와 철학인 것 같았는데,

그런 면에서, 전문 평론가도 아닌 일개 독자(?)로서 툭 터놓고 털어놓자면,

법정 공방 중 1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은 없었어도 됐을 거라는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오히려 (20페이지도 채 안 되는) 소송 종료 후를 다룬 마지막 챕터에 그 분량을 투입했어야,

그래서 돈과 명예냐, 양심과 정의냐를 놓고 치열하게 갈등하는 대목을 부각시킴으로써

주제를 제대로 다뤘어야 되는 게 아닐까, 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작은 조연 정도로 등장한 신참 변호사 제니퍼 애런슨이

이 작품의 주요 인물이 됐다면 주제도 잘 살고, 미키의 내적 갈등도 잘 살았을 것 같습니다.

불락스라는 별명을 가진 제니퍼 애런슨은 법대를 졸업한지 얼마 안 된 풋내기 변호사입니다.

그녀는 양심 따윈 개나 줘버린미키의 형사변호를 지켜보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하는 일에 양심적으로 임하면서 변호에도 최선을 다하면 되잖아요.”

양심을 키우지 마. 나도 다 해봤어. 양심은 자넬 어떤 좋은 곳으로도 이끌어주지 않아.

의뢰인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중요하지 않거든. 받는 돈도 똑같고.”

 

두 사람의 이 대화야말로 전 마이클 코넬리가 이 작품에서 하려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검사 안드레아와의 지루한 법정 공방과 피고인 리사의 유무죄 여부보다는

속물적인 노련한 변호사아직 때 묻지 않은, 양심을 믿는 신참의 대결이 더 기대됐고,

마지막 챕터에서 이 갈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후루룩 마무리된 엔딩 덕분에 마지막 장을 덮은 후의 느낌은

주제 따로, 스토리 따로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는 이런 아쉬움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줬습니다.

 

형사소송 변호가 제 적성에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아. 하지만 그런 느낌은 금방 사라져. 내 말 믿어. 진짜 금방 사라져.”

 

마이클 코넬리의 필력은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여전했고,

6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금세 완독하게 하는 힘이 있지만,

속물 변호사 미키 할러가 언젠가 한번은 겪어야 했을 이 재미있고 심오한 주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채 마무리 된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미키 할러의 대변신을 예고한 엔딩은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최대의 떡밥입니다.

만일 미키의 꿈이 이뤄진다면 다음 작품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스토리가 전개될 것 같은데,

다섯 번째 증인에서 후루룩 지나갔던 미키의 내적 갈등이

다음 작품에서 약간이라도 보충 설명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 신참 변호사 제니퍼 애런슨의 성장기도 함께 그려지기를 기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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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나 스토리콜렉터 56
마리사 마이어 지음, 이지연 옮김 / 북로드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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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 크로니클시리즈라는 SF 로맨스 판타지에 대한 소문은 제법 들어봤지만

4편의 작품이 출간됐을 정도로 화제작이라는 것은 레바나덕분에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신데렐라, 빨간 모자, 라푼젤, 백설공주 등 고전동화의 주인공들이

각각 사이보그, 우주선 조종사, 해커, 달의 공주라는 SF 주인공으로 진화(?)됐다는 점,

, 이 주인공들이 지구를 위협하는 달의 폭군 레바나 여왕에 맞서는 것이

시리즈의 핵심 서사라는 점은 꽤나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설정입니다.

 

정작 본편들을 읽지 못한 채 시리즈의 악당 역을 맡은 레바나의 프리퀄을 먼저 읽은 셈이지만

어쩌면 프리퀄을 통해 알게 된 악당 레바나의 기막힌 전사(前史) 덕분에

시리즈 본편들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15살의 레바나에서 출발합니다.

루나를 다스리던 그녀의 부모가 참혹하게 살해당하자

사악함으로 똘똘 뭉친 채너리(레바나의 언니)가 권력을 승계합니다.

레바나 역시 정치와 권력에 관심이 있긴 하지만,

15살 소녀에게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소중한 욕망이 내재해있습니다.

바로 유부남 근위병인 에브렛 헤일에 대한 짝사랑입니다.

레바나는 16번째 생일을 맞은 이후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잔혹하고 무자비한 계획을 하나씩 성사시켜 나갑니다.

그녀는 결국 사랑과 권력을 얻는데 성공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상처도 함께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그녀를 강철처럼 단련시킨 끝에

지구를 향한 정복욕에 들끓는 악의 화신으로 성장시킵니다.

 

분량도 230페이지 정도이고, ‘어른들을 위한 잔혹동화같은 서사 덕분에 무척 빨리 읽힙니다.

15살의 소녀가 1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자신의 욕망을 집요하게 채워가는 과정도 흥미롭고,

루나 크로니클시리즈의 기반이 된 지구정복 계획의 토대가 형성되는 과정도 재미있습니다.

 

무엇보다, 한 남자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사랑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잔혹함과 그 뒤에 깔린 애틋함이 이야기의 핵심인데,

약간은 신파조의 서사가 깔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디테일한 심리묘사 덕분에 지루한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됩니다.

(종종 천일의 앤의 주인공 앤 불린이 연상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특히 레바나는 백설공주속 사악한 여왕을 모티브로 창조된 캐릭터인데,

그녀는 백설공주가 모델인 시리즈 4편의 주인공 윈터의 의붓어머니이기도 합니다.

레바나에는 윈터의 탄생과 성장이 함께 그려지고 있어서,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윈터의 스토리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달을 지배하는 권력자로서의 탁월한 능력도 로맨스 못잖은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생명공학과 화학무기를 이용한 지구정복을 구체화시키는 대목에서는

여느 SF의 악당보다 매력적인 레바나의 모습이 디테일하게 그려집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소녀 취향의 로맨스와 SF적인 상상력이 잘 배합된 작품이랄까요?

 

사실, 고전동화에서 차용한 소녀 주인공은 매력적인 설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는 데는 핸디캡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아무리 달과 지구의 전쟁, 사이보그, 해커 등이 등장한다 해도

왠지 동화나 만화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루나 크로니클시리즈를 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도 그 때문이었는데,

프리퀄 격인 레바나는 시리즈에 대한 선입견을 감소시킬 수 있는

마중물 같은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악의 화신 레바나의 매력에 빠져들었다면

그녀와 맞서 싸울 선한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루나 크로니클시리즈가 단지 소녀 주인공을 앞세운 SF 판타지가 아니라

어지간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맞먹는 SF서사임을 독자들에게 알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개인적 취향은 정통 미스터리와 잔혹한 스릴러 쪽이지만,

시리즈 첫 편인 신디를 시작으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색다른 간식처럼 루나 크로니클시리즈를 천천히 한 편씩 음미해볼 생각입니다.

과연 신데렐라와 빨간 모자와 라푼젤과 백설공주가

어떻게 악의 화신 레바나와 맞서 싸울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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