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투 더 워터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에서 한 여자가 사체로 발견된다.

그 얼마 전에는 십대 여자아이가 똑같은 운명을 맞았다.

두 사람의 죽음은 조용했던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고,

가면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서로를 끊임없이 오해했던 어머니와 딸, 자매들의 억눌린 증오와 욕망이 폭발하는 순간,

평온해 보였던 현재는 산산이 조각나고 마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최근 출간된 여성이 주인공인 심리스릴러대부분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홍보 카피에 여지없이 나를 찾아줘걸 온 더 트레인이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이 두 작품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기대감을 가져도 좋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곤 했지만,

결과적으론 실망스러운 타율만 기록했고, 심지어 명백한 공수표로 판명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걸 온 더 트레인의 작가 폴라 호킨스의 신작 인투 더 워터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여느 작품보다 더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입니다.

 

인투 더 워터는 영국의 작은 도시 벡퍼드와 그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주 무대입니다.

봉건시대 당시 여성범죄자 또는 마녀로 낙인찍힌 자들의 처형 장소로 이용됐던 탓에

일명 드라우닝 풀(Drowning Pool), 죽음의 웅덩이라 불리게 된 그 강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적잖은 여성들의 목숨을 빨아들이는 끔찍한 곳입니다.

벡퍼드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애써 부인하며 그 강을 물놀이와 휴식의 장소로 애용하지만

사진작가 넬 애벗은 그 드라우닝 풀에 집착하며

과거와 현재에 걸쳐 그곳에서 벌어진 비극들을 조사하고 출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넬 애벗이 공교롭게도 드라우닝 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불과 몇 주 전 같은 곳에서 사망한 10대 소녀 케이티의 이야기가 병행됩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타살이라면 범인은 누구이며, 동기는 무엇인가?

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한 범인 찾기가 아니라 복잡다단한 심리물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들이 그러하듯

인투 더 워터역시 벡퍼드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들이 사건을 오리무중으로 이끕니다.

시한폭탄 같은 자유분방함과 모험심으로 인해 끔찍한 비극을 야기했던 소녀들,

10대 시절에 겪은 사건 때문에 오랫동안 등을 돌린 채 살아왔던 자매,

비슷한 상처를 지니고도 서로를 증오하게 된 딸을 잃은 엄마엄마를 잃은 딸’,

벡퍼드에서 나고 자란 탓에 사건을 객관적으로 대할 수 없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담당 경찰,

가부장적 규범, 엄격한 도덕률, 여성 혐오, 가족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노회한 전직 경찰,

그리고 죽은 자와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비밀 투성이 늙은 심령술사 등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들이 500여 페이지에 걸친 심리극을 이끌어갑니다.

 

사실, 기대와는 달리 페이지가 그리 빠른 속도로 넘어가진 않았습니다.

꽤 많은 인물들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한 탓에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벡퍼드와 드라우닝 풀의 음울하고 불안함을 강조한 문장들이 한없이 무겁기도 했으며,

, 의도적으로 범인 찾기와는 거리가 멀게 설계된 건조한 서사에 지치기도 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작가가 감정을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을 수시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내, 언니, , 엄마를 잃은 자들의 상처는 감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끔찍하며,

죽은 자들의 사연 역시 하나하나 기구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 상처와 사연들을 과하게 강조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꾸며진 듯한 문장들을 읽는 일은

저로서는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이라기보다 약간의 과장이 허락되는 연극 한 편을 본 느낌이랄까요?

 

물론 마지막에 진실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캐릭터, 단서, 사건 등 앞서 설정된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됐고,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확연히 눈에 들어오긴 했으며,

무엇보다 애증이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거대한 함의를 지녔는지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엔딩까지 가는 여정에 대한 아쉬움은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여전히 남았습니다.

심리, 감정, , 망상 등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조금만 힘을 뺐더라면

아마 그 아쉬움의 상당 부분은 덜어낼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이 작품의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한 구절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서리 낀 풀들을 저벅저벅 밟고 강으로 갔다.

연푸른빛의 고요한 강에서 연무가 유령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입김이 내 앞에 하얗게 서렸고, 한기 때문에 귀가 아팠다.” (5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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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오사카 교토 PLUS 고베 나라 - 2018~2019년 최신판/분리형 가이드북 리얼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
황성민.정현미 지음 / 한빛라이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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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사카와 교토는 10여 년 전 업무 반, 여행 반으로 간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유명한 곳 위주로 다닐 수밖에 없었던 탓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기보다는 바쁘게 끌려 다니는 패키지여행 같은 기억만 남았습니다.

올 봄, 규슈 여행을 마친 뒤 10여 년 만에 오사카와 교토를 다시 찾기로 한 것은 그때의 그 아쉬움을 달래고 싶은 마음이 불현듯 들었기 때문입니다.

 

서점에 가면 일본의 여러 지역에 대한 가이드북들이 꽤 다양하게 출간된 걸 볼 수 있습니다. 늘 한 권쯤 있으면 좋겠다, 하던 차에 마침 한빛라이프에서 리얼 오사카 교토 PLUS 고베 나라를 보내준 덕에 아직 1년 가까이 남은 간사이 지방으로의 여행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습니다.

 

리얼 오사카~’는 두께도 꽤 두툼하고 무게도 만만치 않은데, 오사카를 샅샅이 소개한 1권과 교토-고베-나라를 소개한 2권으로 구성돼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 더욱 믿음이 가는 것은 저도 회원으로 가입돼있는 네이버 일본여행 대표 카페 네일동의 돌스 님과 꼬꼬 님께서 직접 여행을 하며 느낀 체험들을 기반으로 집필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올 봄 규슈 여행 때도 네일동에서 엄청난 도움을 받았던 터라 그곳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라면 정말 쉽고 실용적인 설명을 담았을 것이라 기대가 됐습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꼼꼼히 다 읽진 못한 상태지만 이틀에 걸쳐 주요 부분들을 살펴본 리얼 오사카~’의 매력을 몇 가지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여러 종류의 교통패스 설명, 목적지까지의 대중교통 이용방법 설명, 캡슐호텔부터 5성급까지 다양한 숙소 소개 등 일본 여행이 처음인 사람들도 쉽고 편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배려한 알찬 편집.

 

단순한 관광 안내서를 넘어 오사카와 교토의 역사에 대한 설명까지 곁들여서 여행의 풍미를 더욱 깊이 해줄 수 있었음.

 

일정별 여행코스를 제시하여 여행 계획 짤 때도 큰 도움이 될 듯.

 

Q&A를 통해 누구나 궁금하지만 물어보기 뻘쭘한 내용들부터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들까지 친절히 안내.

 

휴대할 수 있게 제작된 부록 지도에는 간사이 지방 전역의 지하철-버스 노선도는 물론 오사카, 교토, 고베의 노선도가 들어있어 유용하게 이용 가능.

 

수록된 QR코드를 이용하여 언제 어디서든 길 찾기와 프리뷰 동영상을 볼 수 있음.

 

일본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미각 여행인데, 널리 알려진 유명 식당은 물론 골목 구석에 자리한 나만의 맛집까지 소개해줘서 여행자들의 선택의 폭을 넓게 해줌.

 

그 외에도 분량에 걸맞는 다양한 정보들이 있어서 간사이 지방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께 정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란 생각입니다. 2018년 가을 여행을 계획 중인 저로서는 보고만 있어도 든든한 가이드를 하나 얻은 기분이 듭니다. 대략 56일 정도의 일정을 생각하고 있는데, 솔직히 리얼 오사카~’를 보고 있으면 한 달 정도는 가있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10여 년 전, 그리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없는 상태에서 갔던 오사카 여행에 비해 올봄 네일동과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들을 기반으로 갔던 규슈 여행은 그야말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리얼 오사카~’는 다른 지역에 비해 볼거리도 많고 헤맬 가능성도 많은 오사카와 교토 일대를 위한 좋은 가이드가 돼줄 것 같습니다. 아직 계획이 없는 분들도 리얼 오사카~’ 한 권이면 간사이 지방으로의 여행 생각에 괜시리 들뜨시게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서평은 한빛라이프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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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 저택의 살인
코지마 마사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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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참 변호사 카와지는 갓난아기 때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란 한 여자로부터

자신의 부모와 생가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그녀의 과거를 찾을 유일한 단서는 고아원에 버려졌을 때 함께 들어 있었다던 편지와 일기뿐.

하지만 일기에는 20년 전의 살인과 사라진 미라에 대한 이야기만 횡설수설 쓰여 있었다.

그저 막막하기만 한 카와지를 도와준 것은 리버카약 동료인 나카 쿠니히코.

그의 도움으로 일기 속 단서를 추적해 고색창연한 무가 저택에 당도한 카와지 일행.

의뢰를 해결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 갑자기 머리 없는 사체가 발견된다.

그리고 윤곽이 드러난 듯했던 출생의 비밀과 일기 속 수수께끼의 전모는

어느 순간 전혀 다른 형태로 반전하게 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개인적으로 따로 줄거리를 정리해볼까 하다가

도저히 자신이 없어 출판사의 소개글을 거의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일본에서 출간 당시 출판사마저도 책 소개에 트릭이 과하다고 했을 정도로

이 작품은 본격 미스터리에서 가능한 대부분의 트릭이 총동원된데다

그 트릭만큼 복잡한 인물관계, 더 복잡한 이야기로 이뤄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무슨 트릭이 있었다.”라고 서평에 쓰는 것만으로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인터넷 서점에서 공개적으로 소개된 부분만 인용하면

살아난 시체, 사라진 미라, 머리 없는 시체의 시간 차 트릭, 애너그램등입니다.

이뿐 아니라 다채로운 트릭이 등장하기 때문에

취향이 맞는 분들은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트릭 퍼레이드를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에 관해 거의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읽었는데도

이 느낌, 시마다 소지 때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곳곳에서 받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코지마 마사키의 데뷔작이 시마다 소지와의 공동저작이며,

이후에 출간된 작품들도 시마다 소지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소개돼있었습니다.

대략 코지마 마사키의 작품 경향을 엿볼 수 있는 결정적인 힌트입니다.

 

트릭도 트릭이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두 주인공의 캐릭터도 눈에 띄는데,

오지랖 넓고 사람 좋은 신참 변호사 카와지 코타로와

뛰어난 리버카약 마니아이자 한참 삐딱한 성격의 추리 천재 나카 쿠니히코가 그들입니다.

카와지가 성실함의 대명사라면 쿠니히코는 그와는 180도 다른 성향의 대명사입니다.

의뢰인을 위해 열정을 다해 복잡한 수수께끼에 도전해도 늘 모자란 성과를 내는 게 카와지라면,

의뢰인의 간절함 따윈 안중에도 없고, 건방지고 안하무인격인 태도로 일관하면서도

빠른 시간 안에 깔끔하고 정확한 정답만 내놓는 건 언제나 쿠니히코의 몫입니다.

 

둘이 함께 추리를 하는 대목은 얼마 안 돼서 팀플레이를 별로 볼 수 없던 점이 아쉽지만,

사실 캐릭터의 매력이란 관점에서만 보면 둘 다 A급이라고 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카와지는 너무 두루뭉술해서, 쿠니히코는 그 반대로 과도하게 삐딱하기 때문인데,

독자에 따라 꽤나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캐릭터란 생각입니다.

 

그동안 읽었던 시마다 소지의 작품들에서 워낙 편차가 큰 느낌을 받았던 터라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코지마 마사키의 작품 역시 신간 소식이 들려와도

이리저리 평을 들어보고 고를 것 같긴 합니다. (엄청난 편견이긴 하지만요)

이 작품 역시 나름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좀 억지스럽게 배배 꼰 이야기를 싫어하는 분들께는 그다지 추천하고 싶진 않고

저의 평점도 그런 면에서 그리 후하진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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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미 배드 미 미드나잇 스릴러
알리 랜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의 주인공 밀리(본명은 애니)는 만 16살 생일을 앞둔 소녀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청춘의 온갖 에너지를 발산할 나이지만

밀리의 삶은 일반적인 소녀들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궤적을 그려왔습니다.

밀리는 아이 아홉 명을 차례로 학대하고 살해한 엄마를 경찰에 고발한 뒤

엄마의 재판이 끝날 때까지 심리학자 마이크의 집에 임시로 머무르게 됩니다.

 

이름을 바꾸고 신분을 감추긴 했지만 밀리의 삶은 살얼음 그 자체입니다.

마이크는 최면치료를 통해 더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밀리의 과거를 소환하려 하고,

동갑내기인 마이크의 딸 피비는 집과 학교에서 밀리를 극단적으로 괴롭힙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혔던 엄마를 경찰에 신고하긴 했지만,

밀리는 그 누구보다 엄마와 자신이 닮았다는 사실 때문에 극도의 혼란을 겪게 됩니다.

부지불식간에 엄마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론 의식적으로 엄마의 교훈대로 타인들을 대하기도 합니다.

 

과연 밀리는 법정에서 엄마의 죄를 제대로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엄마의 재판이 어떻게 끝나든, 밀리는 그 이후 어떤 인격으로 성장할까요?

정말 밀리는 엄마의 사이코패스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게 될까요?

 

● ● ●

 

심리학자 마이크의 집에 임시 입양된 밀리는 이전과는 다른 세상을 살게 됩니다.

마이크는 일찌감치 집을 나간 아버지 대신 부성애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인물입니다.

그의 아내 사스키아는 밀리의 엄마와는 180도 다른 무기력한 인물입니다.

마이크의 딸 피비와 그 친구들에게 학교 안팎에서 끔찍한 괴롭힘을 당하지만,

이웃에 사는 불우한 소녀 모건을 통해 처음으로 우정이란 게 뭔지 경험하기도 합니다.

또 전학 간 학교의 미술선생 미스 켐프는 밀리로 하여금

우리가 엄마가 저런 엄마였다면..’이란 아쉬움과 회한을 갖게 만드는 따뜻한 인물입니다.

 

이런 낯선 환경과 인물들은 밀리에게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감정들을 느끼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10대 소녀의 아름답고 긍정적인 성장기와는 전혀 반대로 전개됩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엄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몸에 자해를 가하는,

그런 참혹한 삶을 견뎌야 하는 밀리의 몸과 마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까발립니다.

물론 밀리는 아주 잠깐씩 이 아늑한 가족 속에 녹아들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마이크나 자신에게 관심을 표시하는 미술선생을 볼 때마다

그들에게서 보호받고 싶다는 아주 당연하면서도 소소한 바람을 마음속에 키우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공존하기 힘든 양면성을 몸과 마음 안에 깊이 품고 있는 소녀가 바로 밀리입니다.

그래서인지, 가끔 밀리에게서 사이코패스의 전형이 발현되는 대목을 읽을 때면

진짜 사이코패스의 잔인한 범죄 장면을 읽을 때보다 더 섬뜩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아이는 타고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혹시 엄마보다 더 강력한 사이코패스는 아닐까?

그럼 이 이야기는 어떻게 끝맺음 할 것인가?

 

설정도 캐릭터도 무척 매력적인 작품이긴 한데

아쉬운 점이라면 초반의 힘이 끝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절반쯤까지는 한 줄 한 줄 긴장감이 팽팽하게 유지되면서

독자로 하여금 꽤나 깊은 몰입도를 요구하는 어지간히 숨 막히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지만 그 뒤론 왠지 동어반복으로 보이는 엇비슷한 에피소드가 계속 이어졌고,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엄마의 재판 부분도 기대보다 파괴력이 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엔딩의 반전은 왠지 사족 또는 덧댄 이야기처럼 공감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복잡하고 묵직한 심리스릴러로 시작했지만,

반전 한 방으로 앞서 전개된 그 많은 이야기를 허망하게 만든 셈이랄까요?

 

밀리는 내내 굿 미 배드 미’, 좋은 나나쁜 나사이에서 지독한 혼란을 겪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그 지독한 혼란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는데,

마지막 장을 덮고 생각해보니 저의 바람 중 딱 절반쯤만 이뤄진 것 같았습니다.

다른 독자들의 서평이 무척 궁금해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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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스쿨 잭 리처 컬렉션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최근 들어 몇몇 웰 메이드 첩보물을 책으로 읽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첩보물은 영상이 제격이란 편견을 갖고 있어서

이야기든 캐릭터든 웬만큼 소문이 났어도 좀처럼 책으론 접할 마음이 별로 없었습니다.

22편까지 출간된 리 차일드의 잭 리처 시리즈도 그런 이유로 지금껏 외면했었는데

단지 잭 리처가 아직 30대이고 현역 헌병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라는 소개글 한 줄에 끌려

그의 초창기 모습이라면 한번쯤 도전해볼 만하겠다는 객기(?)를 부리게 됐습니다.

 

나이트 스쿨은 과거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21번째로 출간된 잭 리처 시리즈입니다.

잭 리처에게 주어진 미션은 중동테러조직에 넘어갈 1억 달러 상당의 정체불명의 상품

상품을 거래하려는 독일 함부르크에 거주하는 신원미상의 미국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국가안보위원회의 두 거물과 FBI CIA에서 차출된 요원까지 가세한 가운데

리처는 자신의 최측근인 프랜시스 니글리 상사를 불러들여 최정예 팀을 꾸립니다.

그리고 외교 분쟁 우려 때문에 폭력 한 번 제대로 휘두르기 어려운 독일 함부르크에서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식으로 상품미국인을 찾기 시작합니다.

 

도대체 1억 달러를 지불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상품은 무엇인가?

미국인은 왜 하필 독일을 근거지로 거래를 하려는 것일까?

특정 기간 동안 함부르크에 체류했던 미국인한 명을 찾는 것은 거의 무모한 일이지만

리처는 특유의 감각과 추론으로 서서히 범위를 좁혀가며 자신의 의견을 개진합니다.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젓지만 리처는 매번 그가 올바른 선택을 했음을 입증합니다.

그 와중에 불의의 습격을 받기도 하고, 코앞에서 용의자를 놓치기도 하지만

리처는 희미하게 남은 단서들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미션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 아슬아슬한 긴장감 속에서도 매력적인 남자 주인공답게 에로틱한 연애를 만끽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지략과 완력과 마초적 매력을 모두 갖춘 완벽한 캐릭터의 결정체입니다.

 

어느 분의 서평에서 액션이 너무 적은 것이 안타깝다는 문구를 봤는데,

잭 리처를 책으로 처음 만난 저로서도 액션에 능한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직관과 논리적 추론에 모두 능한 명탐정에 가까운 그의 캐릭터는 약간은 의외였습니다.

물론 독일에서 비밀리에 벌이는 미국 국가안보위원회의 작전이니 만큼

비밀 유지가 되지 않으면 크나큰 외교 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전제 때문인 건 알겠지만

소소한 액션 장면 몇 개 외엔 리처의 파괴력을 맛볼 수 없는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몇몇 장면에서 대단한 흥분을 느낀 걸 보면

액션으로 도배된 작품에서라면 엄청난 폭발력을 만끽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기도 했습니다.

 

책으로 읽는 첩보물의 매력은 여전히 의구심(?)을 갖게 만드는 게 사실인데,

나이트 스쿨덕분에 잭 리처 시리즈는 아무래도 출간 순서대로 찾아 읽게 될 것 같습니다.

어딘가 배배 꼬인 듯한 리 차일드의 촌철살인의 문장들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폭주하는 잭 리처의 통쾌한 액션을 맛보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서평을 마치는 대로 당장 국내 출간 순서부터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사족으로..

채널 돌리는 중에 잠깐밖에 못 봤지만 영화에서 톰 크루즈가 잭 리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인지

읽는 내내 ‘195cm의 키에 110kg의 거구라는 표현이 도무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는데,

모르긴 해도 이건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 작가인 리 차일드 역시 자신이 만든 잭 리처와 톰 크루즈가 연기하는 잭 리처 사이에서

꽤나 혼란을 느낄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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