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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투 더 워터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에서 한 여자가 사체로 발견된다.
그 얼마 전에는 십대 여자아이가 똑같은 운명을 맞았다.
두 사람의 죽음은 조용했던 마을을 발칵 뒤집어 놓고,
가면 뒤에 숨어 있던 사람들은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서로를 끊임없이 오해했던 어머니와 딸, 자매들의 억눌린 증오와 욕망이 폭발하는 순간,
평온해 보였던 ‘현재’는 산산이 조각나고 마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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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간된 ‘여성이 주인공인 심리스릴러’ 대부분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홍보 카피에 여지없이 ‘나를 찾아줘’와 ‘걸 온 더 트레인’이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이 두 작품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의 기대감을 가져도 좋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곤 했지만,
결과적으론 실망스러운 ‘타율’만 기록했고, 심지어 명백한 공수표로 판명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걸 온 더 트레인’의 작가 폴라 호킨스의 신작 ‘인투 더 워터’는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여느 작품보다 더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킨 것이 사실입니다.
‘인투 더 워터’는 영국의 작은 도시 벡퍼드와 그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주 무대입니다.
봉건시대 당시 여성범죄자 또는 마녀로 낙인찍힌 자들의 처형 장소로 이용됐던 탓에
일명 드라우닝 풀(Drowning Pool), 즉 ‘죽음의 웅덩이’라 불리게 된 그 강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적잖은 여성들의 목숨을 빨아들이는 끔찍한 곳입니다.
벡퍼드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애써 부인하며 그 강을 물놀이와 휴식의 장소로 애용하지만
사진작가 넬 애벗은 그 드라우닝 풀에 집착하며
과거와 현재에 걸쳐 그곳에서 벌어진 비극들을 조사하고 출간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넬 애벗이 공교롭게도 드라우닝 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불과 몇 주 전 같은 곳에서 사망한 10대 소녀 케이티의 이야기가 병행됩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타살이라면 범인은 누구이며, 동기는 무엇인가?
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한 ‘범인 찾기’가 아니라 복잡다단한 심리물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작은 도시를 배경으로 한 스릴러들이 그러하듯
‘인투 더 워터’ 역시 벡퍼드 사람들 사이의 미묘한 관계들이 사건을 오리무중으로 이끕니다.
시한폭탄 같은 자유분방함과 모험심으로 인해 끔찍한 비극을 야기했던 소녀들,
10대 시절에 겪은 사건 때문에 오랫동안 등을 돌린 채 살아왔던 자매,
비슷한 상처를 지니고도 서로를 증오하게 된 ‘딸을 잃은 엄마’와 ‘엄마를 잃은 딸’,
벡퍼드에서 나고 자란 탓에 사건을 객관적으로 대할 수 없는,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담당 경찰,
가부장적 규범, 엄격한 도덕률, 여성 혐오, 가족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노회한 전직 경찰,
그리고 죽은 자와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비밀 투성이 늙은 심령술사 등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들이 500여 페이지에 걸친 심리극을 이끌어갑니다.
사실, 기대와는 달리 페이지가 그리 빠른 속도로 넘어가진 않았습니다.
꽤 많은 인물들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한 탓에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벡퍼드와 드라우닝 풀의 음울하고 불안함을 강조한 문장들이 한없이 무겁기도 했으며,
또, 의도적으로 ‘범인 찾기’와는 거리가 멀게 설계된 건조한 서사에 지치기도 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작가가 ‘감정을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을 수시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내, 언니, 딸, 엄마를 잃은 자들의 상처는 감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끔찍하며,
죽은 자들의 사연 역시 하나하나 기구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 상처와 사연들을 과하게 강조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꾸며진 듯한 문장들을 읽는 일은
저로서는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소설이라기보다 약간의 과장이 허락되는 연극 한 편을 본 느낌이랄까요?
물론 마지막에 진실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캐릭터, 단서, 사건 등 앞서 설정된 모든 것들이 어느 정도 이해는 됐고,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확연히 눈에 들어오긴 했으며,
무엇보다 ‘애증’이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거대한 함의를 지녔는지 새삼 깨닫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엔딩까지 가는 여정에 대한 아쉬움은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여전히 남았습니다.
심리, 감정, 꿈, 망상 등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조금만 힘을 뺐더라면
아마 그 아쉬움의 상당 부분은 덜어낼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이 작품의 분위기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한 구절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서리 낀 풀들을 저벅저벅 밟고 강으로 갔다.
연푸른빛의 고요한 강에서 연무가 유령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입김이 내 앞에 하얗게 서렸고, 한기 때문에 귀가 아팠다.” (51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