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온다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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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지무라 미즈키는 만나는 작품마다 색깔이 달랐던 작가입니다.

나의 계량스푼은 내 뜻대로 상대의 행동을 좌우할 수 있는 판타지적 캐릭터가 등장하여

죄와 벌, 복수와 악의 등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쟁을 다룬 작품입니다.

테두리 없는 거울은 각기 색다른 다섯 편의 괴담이 실린 작품집이고,

츠나구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는 능력을 가진 남자가 등장한 판타지입니다.

, ‘오더 메이드 살인 클럽은 전례 없는 방식으로 자신을 죽여 달라는 여중생이 등장하는

특이한 성장기이자 미스터리입니다.

 

이처럼 굉장히 특별한 설정이 들어있는 판타지-괴담-미스터리를 겪은 탓에

아침이 온다정말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좀 과하게 한 줄로 요약하자면,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 없는 여자아이를 낳았으나 키울 수 없는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오랜 난임 치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입양을 선택한 40대 여자 구리하라와

반항기로 가득 찬 불장난 끝에 임신을 하게 된 여중생 히카리가 그녀들입니다.

초반부가 구리하라의 고통스런 불임의 나날과 입양 결심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

중반부터는 히카리의 혼란스러운 사춘기 시절과 임신-출산의 과정,

그리고 출산 후 끝없는 바닥으로 추락하는 히카리의 신산스런 삶이 그려집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입양한 아이와 함께 평온한 삶을 살던 구리하라가

생모인 히카리로부터 아이를 내놓거나 돈을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독자는 아이 또는 돈을 요구하는 히카리가 생모 히카리가 맞는지도 혼란스럽고,

맞다면 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지금에 와서 그런 요구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이런 설정 때문에 출판사는 사회파 · 가족 미스터리라는 장르로 소개를 했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아침이 온다는 순수한 휴머니즘 소설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불임녀 구리하라의 심적 고통과 입양 결심 과정의 갈등이라든가

임신과 출산, 연인의 배신, 가족과 친지들의 싸늘한 시선을 겪다가

결국 막장이나 다름없는 차가운 현실에 내동댕이쳐진 10대 소녀 히카리의 혼란은

간결하지만 바늘 끝처럼 아프게 느껴지는 츠지무라 미즈키의 문장들 속에서

극단적일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독자들의 공감을 충분히 얻긴 합니다.

 

다만, 일본에서 드라마로 만들어질 정도로 극성이 강한 작품인 건 맞는데,

솔직히 평가하자면 익히 예상 가능한 전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구조라서

츠지무라 미즈키만의 강렬한 한 방을 기대한 독자에겐 좀 심심하게 읽힐 여지가 있습니다.

작가의 이름과 장르에 기대지 말고 극단적인 삶을 부여받은 두 여자의 이야기로 읽어야만

작가가 의도한 주제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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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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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해외다큐 채널에서 불법적인 수렵이나 낚시행위를 감시하는

제복 입은 자들을 팔로우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 있습니다.

제목에 Warden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복 입은 자들은 (방송이니까 그렇겠지만) 공정하고 단호하게 위법행위를 적발하며,

자신들이 맡은 임무를 소중히 여기는 믿음직한 감시관들입니다.

위험한 현장 업무이다 보니 남녀를 불문하고 대체로 마초적인 캐릭터로 보이곤 했는데,

오픈 시즌의 주인공이자 와이오밍 주 새들스트링 지구의 수렵 감시관 조 피킷은

그런 면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수렵 감시관과는 거리가 한참 먼 꽤 얌전한 인물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수렵 감시관이 되길 꿈꾼 타고난 자연주의자이며,

아내와 두 딸과의 소소한 행복을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 선한 인물입니다.

비록 사격솜씨는 형편없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능숙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좀 부족하지만,

박봉과 격무에도 불구하고 천직이라는 신념 하나로 와이오밍의 대자연을 누비고 다닙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갑자기 연이은 살인사건과 영문 모를 상황들이 한꺼번에 닥칩니다.

자신과 악연이던 한 남자가 피투성이가 된 채 집 뒷마당에서 발견되는가 하면,

그를 조사하기 위해 정찰나간 사냥캠프에서는 예기치 못한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 과거 그의 멘토였던 자는 침체된 마을을 부활시킬 대규모 개발 사업을 언급하며

조에게 박봉의 수렵 감시관을 그만두고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에 합류할 것을 권합니다.

살인사건에 대한 의문과 박봉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한 갈등 때문에

조의 머리는 여러 갈래로 복잡해집니다.

그러던 중, 진실을 찾기 위해 살인사건 조사를 시작한 조에게 연이어 재앙이 몰려옵니다.

일과 가족 모두가 위태로워진 조는 위험을 무릅쓴 탐문 끝에

이 모든 일들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읽어보니 이 작품의 장르를 에코 스릴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선한 수렵 감시관, 멸종위기종, 보호지를 개발해 이권을 챙기려는 세력 등의 소재만 봐도

왜 그런 장르로 분류됐는지, 또 대략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분명 스릴러지 계몽극은 아닙니다.

아마 난개발을 막고 자연을 지키자는 주제가 과하게 부각됐다면

조 피킷 시리즈가 17편까지 출간됐을 리는 절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수렵 감시관 주변에서 17편까지 출간될만한 사건이 계속 벌어졌다고?”라는 점은

저 역시도 무척 궁금한 점이지만 그건 후속작을 읽어봐야 답이 나올 수밖에 없겠지요.

 

저절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광활한 대자연에 대한 세세한 묘사,

소심하지만 선하고 정의로운 조 피킷과 그의 개성 만점 가족들,

그리고 뻔한 듯 보이지만 결코 뻔하게 읽히지 않는 에코 스릴러로서의 매력 등

오픈 시즌은 그 나름의 미덕을 충분히 갖춘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다만...

아무래도 시리즈 첫 편이다 보니 조 피킷의 캐릭터에 관한 설명이 많았고,

사건 역시 분량(300페이지)에 딱 맞게끔 비교적 단선적으로 전개돼서

어중간한 중편소설을 읽다 만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 명탐정도 아니고 형사사건에 관해 조사할 수도 없는 일개수렵 감시관이라

행동에 의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꽤 많은 목숨이 날아간 사건임에도 범인의 욕망이 손에 잡힐 듯 읽히지 않았다는 점 등

매력적인 주인공 캐릭터와 배경 설정에 비해 몇몇 아쉬운 점이 남은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시리즈가 17편까지 나왔다면 보통 대중적으로 성공한 작품부터 소개되기 마련인데

과감하게(?) 시리즈 첫 편부터 출간된 걸 보면 머잖아 후속작이 나올 것이 분명해 보이고,

그렇다면 조 피킷이 점차 진짜 수렵 감시관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지켜볼 수 있을 테니

첫 편에서 느낀 아쉬움도 조금씩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에코 스릴러라는, 어쩌면 장르 자체가 소재를 제한할 수도 있는 불리한 입장에서

작가가 앞으로 어떻게 조 피킷을 유능한 수렵 감시관이자 스릴러 주인공으로 성장시켜갈지

천천히 시간을 두고 지켜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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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장의 재판 -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 우수상 수상작 케이스릴러
박은우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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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의 어느 밤. 경찰에 이상한 신고 전화가 줄을 잇는다.

자신의 딸이, 아들이, 친구가, 혹은 그 자신이 청계산의 어느 산장에서 인질이 되었다는 것.

경찰에 인질극 신고가 접수됨과 동시에 언론에도 같은 정보가 들어간다.

언론과 SNS로 시시각각 퍼져나가는 인질사건의 내막.

누군가 인질범의 총에 맞아 쓰러졌으며, 산장에는 3~40명의 남녀가 갇혀 있다.

경찰은 인질범과 첫 번째 통화에 성공하지만, 그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경찰이 현장 정리를 채 끝내기도 전에 취재 차량들이 몰려오고,

산장에서 벌어졌던 파티는 마약과 섹스가 난무하는 비윤리적인 가면 파티였다는 게 밝혀진다.

인질사건의 주범인 마스터’. 그가 인질극으로 정말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제목과 출판사의 소개글만 봐도 일단 개인의 복수를 다룬 작품이란 걸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질들이 3~40명이나 되며, 가족과 언론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알릴 수 있었다는 점,

그로 인해 복수극의 주범이 외진 산장에서 경찰에게 꼼짝없이 포위됐다는 점 등을 보면

흔히 봐온 일반적인 개인의 복수와는 뭔가 다른 위화감이 느껴지게 됩니다.

보통은 아주 조심스럽게, 철저한 준비와 설계 끝에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제목에 재판이란 말까지 들어가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이 인질극은 처음부터 대중에게 공개할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산장에 모인 이들의 목적이 마약과 섹스가 난무하는 비윤리적인 가면 파티였다는 점은

대략 인질범과 인질들 사이의 관계나 사연을 가늠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사방에 스포일러가 널려있는 작품이라 더 이상 내용을 소개하기도 어렵고,

결국 두루뭉술한 인상비평 이상의 서평을 쓰기가 어렵지만

간단하게 이 작품의 미덕과 아쉬운 점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우선, 페이지가 무척 잘 넘어갑니다.

메인 스토리와 무관해 보이는 프롤로그와 후반의 회상 장면을 제외하곤

대부분 시간순서대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전개 역시 통상적인 인질극에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불필요한 구석 없이 간결하고 탄탄한 문장들이 눈에 쏙쏙 잘 들어오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크고 작은 장치들이 잘 배치돼있어서 금세 읽히는 작품입니다.

 

외진 산장에서 인질 재판을 통해 사적 복수를 벌인다는 기본 설정도 비교적 단순하고,

인질극을 벌이게 된 최초의 계기 역시 미스터리 소재로선 그리 새롭지 않지만,

범행 준비 - 실행 과정 완벽한 마무리의 과정이 복잡하면서도 빈틈없이 촘촘하고 정교해서

단선적이거나 지루하긴커녕 초반의 의문 이 분량을 뭘로 다 채우나? - 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그 외에도, 앞서 깔아놓은 복선이나 단서들은 남김없이 깔끔하게 잘 회수됐고,

어딘가 위화감이 들었던 대목은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었음이 나중에 선명하게 설명됩니다.

우연까지 내다본 범인의 치밀한 계획도, 그 계획을 간파하는 경찰의 뛰어난 추리도

독자들의 뒤통수를 (세진 않아도) 여러 차례 기분 좋게 두드려대곤 합니다.

, 범인, 인질, 가족, 경찰, 언론 등 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캐릭터와 역할이 선명해서

크게 혼란스럽지도 않을뿐더러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적절히 분배받았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결정적인 아쉬움 때문에 별 5개를 주지 못했는데,

그것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현실감을 증발시킨 범인의 무한 능력입니다.

사실, ‘개인의 복수라는 소재가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가장 큰 미덕은 현실감입니다.

법 집행은 말할 것도 없고 진실을 찾기 위한 그 어떤 행위도 허용받지 못하는 평범한 개인이

온갖 위험과 고비를 무릅쓰고 진실을 알아낸 뒤 자기만의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은

누가 봐도 그럴 듯한 리얼리티를 담고 있어야 공감의 폭이 커지는 법인데,

이 작품의 범인은 (좀 과한 비유지만) 거의 ‘MI6의 톰 크루즈에 버금가는 캐릭터에,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클라이맥스에서는 할리우드 액션물의 기시감까지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은 사람은 범인과 같은 처지에 놓여도 복수는 꿈도 못 꾸겠군.”이라는,

, ‘허황된 남의 이야기란 위화감과 비현실감 같은 개운치 않은 뒷맛이 남게 됐습니다.

말하자면 개인의 복수라는 소재의 가장 큰 미덕이 막판에 힘을 잃었다고 할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뛰어난 스토리텔러 한 명을 만난 반가움은 충분히 컸습니다.

2017년에 처음 만난 박성신(3의 남자), 도선우(저스티스맨), 김희재(소실점) 등과 함께

후속작이 기대되는 한국작가 목록에 반드시 올려놓아야 할 이름이란 생각입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소설보다 영상으로 만들어졌을 때 진가를 발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콘텐츠진흥원 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이니만큼 곧 영상화 소식이 들릴 수도 있을 텐데

스크린에서 청계산장의 재판을 보게 되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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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스토리콜렉터 59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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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션 13층 쇠갈고리에 매달린 채 발견된 여성의 시체.

그 옆에는 마치 아이가 쓴 듯한 쪽지가 남겨져 있다.

전대미문의 엽기적 범행에 경찰이 허둥거리는 사이,

이번에는 차 트렁크에서 으깨진 남자 시체가 발견된다.

마치 개구리를 잡듯 사람을 사냥하는 범인에게 불안에 떠는 언론과 대중은

개구리 남자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출판사의 책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나카야마 시치리는 2014살인마 잭의 고백이란 작품을 통해 처음 만났습니다.

장기가 사라진 채 참혹하게 훼손된 시체들이 연이어 발견되는 사건을 다룬 그 작품은

제목만큼이나 리얼한 잔혹 묘사와 장기이식이라는 사회적 이슈에 관한 새로운 시각 때문에

그 해 읽은 일본 미스터리 중 중 꽤 기억에 남은 작품이 됐습니다.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는 외형상으로는 살인마 잭의 고백과 동류항의 작품입니다.

매달다’, ‘으깨다’, ‘해부하다’, ‘태우다등의 소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살인범의 행각은 장기 훼손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잔인하게 이뤄지는데,

나카야마 시치리는 동원할 수 있는 가장 적나라한 묘사로 그 과정을 꼼꼼하게(?) 그립니다.

(개인적으로 잔혹한 묘사를 좋아하는 편인데도 꽤 여러 번 속이 불편해지는 걸 느낄 정도로

나카야마 시치리의 문장들은 일부 독자에겐 악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 심신상실자 혹은 정신이상자의 범죄, 사적 복수, 매스컴의 폐해 등 사회적 이슈는 물론

신참 경찰의 성장기를 통한 경찰의 정의까지 다루면서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등장인물들을 통해 약간은 설명적이거나 선언적인 방식으로 여러 주제를 강조한 탓에

살짝 산만해지거나 현학적인 뉘앙스가 풍기는 점은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끔찍한 연쇄살인마를 쫓는 주인공은 사이타마 현경의 신참경찰 고테가와 가즈야입니다.

(‘살인마 잭의 고백에도 고테가와가 등장하는데, 그 작품에선 관할서 경찰로 나옵니다.

다만, 둘이 같은 인물인지, 이름만 같은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큰 공을 세우려는 공명심과 성실한 정의감을 겸비했지만 아직 서툰 점이 많은 고테가와는

과학수사의 시대에 전통적인 직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괴짜 반장 와타세와 콤비를 이룹니다.

늘 와타세에게 욕을 먹어가면서도 조금씩 진짜 경찰로 성장해가는 고테가와를 지켜보는 것도

이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흥밋거리이기도 합니다.

 

고테가와는 대반전의 제왕으로 불리는 자신의 창조주 나카야마 시치리 덕분에

후반부에 이르러 거듭되는 반전을 맛보게 됩니다.

끝났나 싶으면 새로운 단서가 발견되고, 또 끝났나 싶으면 여지없이 뒤통수를 맞습니다.

그 과정에서 고테가와의 몸은 거의 산산조각이 날 정도로 망가지는데

그야말로 고테가와가 불쌍해서라도 이제 그만 끝내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고테가와가 겪는 반전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남은 분량만 보고 몇 페이지 안 남았으니 이제 마무리겠군.’이라고 쉽게 단정해선 안 됩니다.

 

여러 주제가 등장하긴 하지만 핵심은 과연 심신 상실자에게는 죄를 물을 수 없는가?’입니다.

그 때문에 출판사에서도 이 작품을 사이코 미스터리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나카야마 시치리는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얼마나 복잡하면서도 연약하고 위험한지를

막판의 연이은 반전을 통해 강렬하게 묘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주제를 부각시킵니다.

, 심신 상실은 타고나는 것인가? 조작될 수 있는 것인가? 완치될 수 있는 것인가?

사회적으로 엄격한 통제가 필요한 것인가? 등의 문제가 선명하게 제기됩니다.

, 비슷한 주제를 다룬 사회파 미스터리 작품들의 명료한 엔딩과 달리

나카야마 시치리는 독자 스스로 이 주제에 관해 고민할 수 있게끔 독특한 엔딩을 취합니다.

독자에 따라 ‘So What?’ 또는 누구를 미워하란 말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거듭된 반전과 독특한 엔딩이 주제와 잘 맞아떨어지는 설정이란 생각입니다.

 

2014살인마 잭의 고백이후 소식이 없던 나카야마 시치리였지만,

2017년에만 무려 4편의 작품이 한국에서 출간됐습니다.

작품 스펙트럼이 넓다는 평가대로 법의학 시리즈, 변호사 시리즈 등이 한꺼번에 출간됐는데,

저와는 궁합이 딱 맞는 작가라곤 할 수 없지만,

안정적이고 무난하기보다는 럭비공처럼 튀는 매력이 강렬한 작가임엔 틀림없어서

나머지 작품들도 찾아 읽고 싶다는 욕심이 저절로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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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굴 속으로 밀리언셀러 클럽 151
척 드리스켈 지음, 이효경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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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 특수부대의 일급 요원이었으나 작전 수행 중 민간인 아이들을 사망케 한 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전역해야만 했고,

그 뒤론 비폭력적인 청부만을 싼값에 의뢰받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온 게이지 하트라인.

그는 과거 상관이던 헌터 대령을 통해 스페인 최대 폭력조직의 보스 나바로를 소개받습니다.

나바로는 게이지에게 자신의 아들이 수감된 교도소에 위장 잠입하여

상대 조직으로부터 신변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하며 천문학적인 금액을 제시합니다.

게이지는 지극히 위험한데다 퇴로조차 불분명한 나바로의 제안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폴란드 여인 유스티나와 사랑에 빠지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되고,

그를 위해 큰돈이 필요하게 되자 결국 나바로의 의뢰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교도소에 잠입 직후 그는 자신이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게 됩니다.

나바로의 정보는 오류투성이였고 그곳은 절대 살아서 빠져나올 수 없는 사자굴이었던 것입니다.

 

● ● ●

 

그레타의 일기이후 다시 만난 척 드리스켈의 게이지 하트라인 시리즈입니다.

독일과 프랑스를 무대로 히틀러의 비밀이 담긴 한 여인의 일기장을 놓고

게이지가 정보기관은 물론 마피와와 치열한 대결을 펼쳤던 그레타의 일기를 읽은 독자라면

그때와는 사뭇 달라진 작품 전반의 분위기 때문에 살짝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전작에서 게이지는 과거 임무수행 중 얻은 트라우마로 인해

청부업자면서도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 않으려 무던 애를 쓰던 인물이었습니다.

물론 일기장 사건을 겪으면서 임계점을 넘는 분노를 느낀 끝에 폭력성을 되찾긴 하지만,

사자굴 속으로는 애초 게이지의 폭력성이란 게 얼마나 위험하고 극단적이었는지를

첫 장면부터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 그가 상대하는 악당들의 폭력성이라든가 선정적인 묘사 역시 꽤 강하게 묘사되고 있어서

이 게이지가 그 게이지인가?’ 또는 같은 작가의 작품이 맞나?’ 싶은 의문을 자주 느끼게 됩니다.

 

게이지에 대한 위화감(?)은 그와 유스티나 사이의 애절한 멜로라인에서도 발견되는데,

평소의 이성적인 게이지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았을 위험천만한 의뢰를 받아들이게 만든 것은

줄거리에서 언급했듯 우연히 만난 한 여인과의 운명적인 사랑입니다.

게이지는 더는 위험한 청부사 생활을 하지 않고도 그녀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에

폭력조직 보스가 제시한 천문학적인 비용 뒤의 위험을 간과하는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그 이상의 욕심 같은 건 부려본 적 없던 전직 특수요원 게이지가

사랑 때문에 폭력조직의 돈에 욕심을 내게 됐다는 설정은 어딘가 게이지답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가 교도소에서 마주칠 현실이 얼마나 참혹할지를 예고하는 대목인데,

전작을 읽은 독자라면 게이지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라는 위화감을 충분히 느낄만 합니다.

 

아무튼...

게이지의 교도소 위장잠입은 맨몸으로 사자굴 속으로 들어간 위험천만한 형국을 맞이합니다.

아들을 보호해달라던 폭력조직 보스가 건네준 정보는 아무 것도 들어맞는 것이 없었고,

그가 보장했던 안전한 퇴로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게이지의 유일한 선택은 탈옥뿐인데, 소장부터 말단 간수까지 폭력조직이 장악한 교도소는

그야말로 출구라곤 전혀 없는 암담함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끔찍한 피의 향연은 사자굴이나 다름없는 교도소를 탈출한 뒤에도 멈추지 않습니다.

추격, 함정, 납치, 복수, 음모 등이 쉴 새 없이 게이지를 몰아치면서

죽거나 죽이거나둘 중 한 가지밖에 선택할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을 강요합니다.

 

이렇듯 읽기만 해도 숨이 가쁠 정도로 빠르게 달려가는 이야기 덕분에

독자로선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의식할 틈도 없이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게 됩니다.

전작인 그레타의 일기가 어딘가 예스럽고 살짝 느린 템포의 서사라면

사자굴 속으로는 말 그대로 사방에서 광풍이 몰아치는 듯한 이야기랄까요?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는 설정들이 목에 가시처럼 서걱거릴 때도 있고,

(아무래도 게이지의 연인 유스티나와 관련된 부분에서 그런 걸 많이 느꼈습니다.)

잔인한 묘사를 즐겨 읽는 저조차 깜짝 놀라게 만드는 극단적인 장면들이 불편할 수도 있지만,

그런 부분만 견뎌낼 수 있다면 게이지 하트라인의 폭발적인 매력과 함께

탈옥-조직폭력-멜로가 탄탄하게 버무려진 액션스릴러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족으로 한 가지 아쉬움을 언급하자면,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적다고 할 수도 없는 오타들입니다.

단순 실수라고 보기엔 작품 곳곳에서 꾸준히 발견되곤 했는데,

출간 전 마지막 검토가 무척 아쉽게 느껴지는 그야말로 옥의 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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