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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길
존 하트 지음, 권도희 옮김 / 구픽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강력계 형사 엘리자베스는 괴한에 납치되어 지하실에 갇혀 있던 소녀를 구해 영웅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총알 여러 발을 발사하며 범인들을 고문했다는 의혹이 대두되며
경찰 배지를 잃고 체포당할 위기에 처한다.
한편, 그녀가 신입 시절부터 따르고 존경하던 애드리안 형사는
엽기적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3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영혼까지 사라져 버렸다.
그가 출소하자마자 과거와 똑같은 방식의 살인이 발생, 도시 전체가 충격에 빠진다.
엘리자베스는 정직 위기 속에서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도저히 믿기 힘든 거대한 진실이 그녀를 죄어 온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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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은 존 하트의 전작들(‘다운 리버’, ‘아이언 하우스’)은
재미있는 책읽기와 고통스런 책읽기를 동시에 경험하게 했던 특별한 수작들이었습니다.
또 스릴러로서의 매력과 문학작품으로서의 품격을 모두 갖춘 작품들이기도 했습니다.
두툼한 분량 안에서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비극적인 과거를 부여받았고,
그 과거가 잔인한 방식으로 현재의 삶을 뒤흔드는 바람에 더욱 큰 고난과 마주쳐야 했습니다.
‘구원의 길’ 역시 그의 전작들과 일맥상통하는 서사를 다루고 있는데,
아무래도 제목(원제 Redemption Road) 때문에 좀더 심난한 이야기를 읽게 될 듯한
불안한(?) 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네 명의 인물들은 평범한 삶을 살기엔 너무 큰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강력계 형사 엘리자베스는 10대 때 겪은 악몽 같은 사건은 물론,
경찰이 된 이후에도 몸과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고난의 캐릭터이며,
현재는 납치범 두 명에게 18발의 총을 발사한 혐의로 정직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우상이자 완벽한 매력을 지닌 경찰이었던 애드리안 월은
13년 전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뒤
지옥 같은 교도소에서 생사의 경계를 수도 없이 넘나들었고,
모범수로 조기 석방됐지만 하필 그 시점에 과거와 똑같은 수법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출소와 동시에 용의자로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이제 14살과 18살인 기드온과 채닝 역시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13년 전 어머니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뒤 오직 복수의 날만 기다려온 기드온,
납치된 뒤 40시간 동안 두 남자에게 끔찍한 만행을 당한 끝에 엘리자베스에게 구출된 채닝...
이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박살내려 다가오는 불행과 맞서 싸웁니다.
때론 서로 적이 되기도 하고, 때론 서로에게 큰 힘이 돼주기도 하지만,
정작 그들이 대적해야 할 불행은 너무 크고 버거워서 매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곤 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위기에도 불구하고 애드리안의 무죄를 확신하며 그를 보호하려는 엘리자베스와
13년의 교도소 생활로 몸과 마음과 정신이 모조리 산산조각 난데다
죄책감과 복수심, 살의와 도피라는 욕망이 뒤엉킨 탓에 모든 것이 혼란일 뿐인 애드리안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독자의 여러 감정을 쥐어짜는 캐릭터들입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부터 스스로 예방주사(?)를 충분히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상처투성이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를 지독하리만치 섬세하게 그려낸 존 하트의 문장들은
그따위 예방주사라는 게 아무 효과가 없는 무용지물임을 금세 입증해줍니다.
덕분에 역시 이번에도 내내 독하고 쓰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재미와 고통이 제멋대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이상하고 흥분된 책읽기를 겪게 됐습니다.
다만,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진범의 정체와 그의 범행동기만큼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별 0.5개가 빠진 유일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뭐랄까... ‘반전을 위한 반전’ 또는 ‘엽기를 위한 엽기’처럼 느껴졌다고 할까요?
물론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이번만큼은 존 하트가 무리수를 뒀다는 인상을 받은 건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존 하트의 새 작품 ‘The Hush’가 올해 출간될 예정입니다.
과작 작가라 할 수 있는 존 하트의 이른 신작 소식이 반가울 따름입니다.
신간에 대한 과욕과 대책 없는 게으름 탓에 아직 그의 대표작 ‘라스트 차일드’를 못 읽었는데
‘The Hush’가 나오기 전에 반드시 ‘라스트 차일드’ 위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줘야 하겠습니다.
(전에도 이와 똑같은 공수표를 날린 바 있는데, 이번에는 꼭 지키도록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