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사랑한 소년 스토리콜렉터 6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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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재적인 프로파일러 슈나이더와 악연으로 엮였던 자들이 연이어 잔혹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피해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굴욕적이고 참혹한 모습으로 발견되는데, 그들의 사체에는 숫자 또는 알파벳으로 보이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수법은 5년 전 슈나이더가 체포한 희대의 연쇄살인마 피트 판 론이 애용하던 것인데, 문제는 피트는 현재 정신이상 범법자들을 가둬놓은 최고보안감옥에 있어서 범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유럽 전역을 오가며 범행을 저지르는 범인을 찾기 위해 슈나이더는 파트너 자비네와 함께 동분서주하지만 좀처럼 단서는 잡히지 않고 희생자들과 슈나이더 사이의 연관성만 재차 확인될 뿐입니다. 자비네가 희생자 몸에 새겨진 메시지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되는데 그로 인해 범인의 윤곽과 범행동기 등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괴팍함, 상대가 누구든 자기 위주로만 대화하고 행동하는 무례함, 마리화나를 입에 달고 살며 범인의 정신세계에 침잠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이함, 그리고 거의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결벽증과 다름없는 완벽주의. 하지만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기어이 진실을 찾아내는 승률 100%의 프로파일러. 독일 비스바덴 연방범죄수사국의 프로파일러 마르틴 S. 슈나이더의 간략한 이력입니다.

죽음을 사랑한 소년은 슈나이더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으로, 앞선 두 작품에 비해 슈나이더의 괴팍함과 무례함과 기이함, 그리고 완벽주의가 몇 배는 더 거칠고 고통스럽고 잔혹하게 그려진 작품입니다. 슈나이더는 예전보다 더 마리화나를 많이 피우고 더 많은 무례한 언행을 저지르는가 하면, 파트너인 자비네에게도 사건에 관한 많은 정보를 감추려고 합니다. 물론 그 덕분에 자학에 가까운 채찍질과 심신의 고통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범인은 왜 슈나이더와 악연으로 엮인 자들을 골라 치욕적인 죽음을 맛보이는가? 범인의 목적은 슈나이더를 위한 복수인가? 슈나이더를 향한 복수인가? 슈나이더는 왜 파트너인 자비네에게조차 각 사건들의 연관성은 물론 5년 전 직접 체포한 연쇄살인마 피트 판 론에 대해서도 함구하는 것일까?

이런 답답함은 중반부 이후 슈나이더가 자비네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하기 전까지 내내 독자들에게도 똑같은 중량의 의문과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그 충격적인 고백은 앞선 두 편의 시리즈를 모두 읽은 독자에게는, 그래서 나름 슈나이더를 안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겐 더더욱 믿기지 않는 내용들인데, 이 작품의 가장 큰 스포일러이기 때문에 손톱만큼의 언급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설정으로 인해 슈나이더는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한 줄까지 자신을 향해 폭주하는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유럽 스타일의 잔혹한 범죄를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무척 재미있게 읽힐 작품입니다. ‘슈나이더 시리즈는 물론 발터 풀라스키 시리즈에서도 안드레아스 그루버는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잔혹한 수법을 등장시키곤 하는데 이 작품은 거의 그 분야의 역대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 자폐적이고 이기적이고 안하무인인 능력자 주인공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슈나이더의 끝도 없이 펼쳐지는 독설과 상상력에 매혹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의 모난 곳과 텅 빈 곳을 빈틈없이 채워주는 자비네의 매력도 일품이긴 합니다.

 

다만,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던 범인의 정체와 범행동기, 범행수법은 개인적으로는 무척 아쉬웠던 대목입니다. 간혹 유럽 스릴러 가운데 범행동기가 무척 모호하거나 심리적 이상에 근거하거나 또는 신화나 전설 등 추상적인 지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극단적이진 않아도 그런 모호함과 추상성을 가진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후반부에 범인의 심리가 적극 묘사되긴 하지만 설득력이 좀 부족해 보였습니다. 범행수법 역시 설정을 위한 설정 또는 과도하게 상징성을 부각시킨다는 느낌? 아니면, 속이 거북해질 정도의 잔혹한 묘사를 변명하기 위해 설정된 느낌? 그렇게 느껴진 대목들이 훨씬 더 많아 보였습니다.

 

안드레아스 그루버가 탁월한 유럽 스타일 스릴러 작가인 건 분명하지만, 그가 좀더 현실적인 범인, 현실적인 동기, 현실적인 수법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면 훨씬 더 큰 공감을 얻어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슈나이더 시리즈발터 풀라스키 시리즈든 신간이 나온다면 허겁지겁 찾아 읽겠지만 다음에는 좀더 현실적인 오싹함을 만끽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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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미드나잇 스릴러
로저먼드 럽튼 지음, 윤태이 옮김 / 나무의철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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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산을 불과 3주 남겨둔 동생 테스가 갑자기 실종되자

뉴욕에 살던 언니 비어트리스는 급히 런던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테스는 곧 더러운 공원 화장실에서 사체로 발견됩니다.

경찰은 여러 정황을 들며 자살로 결론짓지만

비어트리스는 경찰, 검시관, 정신과 의사 등의 소견에 반박하며

스스로 테스의 죽음의 진실을 찾기로 결김하곤,

뉴욕의 안정된 직장마저 포기한 채 런던에서의 지난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 ● ●

 

형식과 내용 모두 무척 특이한 작품입니다.

적잖은 분량이지만 본문 전체가 테스에게 보내는 비어트리스의 장문의 편지로 이뤄져있습니다.

그 안에는 테스의 죽음의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비어트리스가 겪었던 분투의 기록과 함께

그녀들이 얼마나 특별한 자매였는지, 상실의 아픔이 얼마나 깊고 절절한지,

, 다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과거가 얼마나 그립고 애틋한지 세세히 쓰여 있습니다.

 

극과 극의 성격에, 그만큼 멀리 떨어져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왔지만,

자매는 똑같은 상처를 가슴 깊이 묻어둔 한 가족이었고,

어쩌면 달라서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쌍둥이 같은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어머니까지 테스의 자살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비어트리스만은 절대 그럴 수 없었던 건 이렇듯 테스를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언니일 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던 비어트리스는

테스의 죽음이 임신과 관련 있다는 지점에서 출발하여 차근차근 진실 찾기를 시작합니다.

담당 경찰은 무기력하거나 비협조적이고, 테스가 다녔던 병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어트리스는 무모한 여정을 포기하지 않았고,

끝내 테스의 죽음이 자살은 물론 우발적인 범행 때문도 아닌,

지극히 계획적이고 사악한 의도를 지닌 자의 끔찍한 범행임을 알아냅니다.

 

사실, 편지 형식의 장편을 읽는 것은 드문 경험이기도 하거니와,

좀처럼 문장들이 눈에 익숙해지지 않는 불편함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범죄스릴러라는 장르에서는 더더욱 불편할 거란 우려와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이 작품을 읽는 동안 그런 우려와 편견은 초반부 잠깐을 제외하곤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작가의 필력이 워낙 뛰어난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편지 형식에 잘 어울리는 문학적 주제가 작품 전반에 구석구석 진하게 깔려있는데다

이질적인 것이 분명한 스릴러 서사와도 억지스럽지 않게 잘 섞인 덕분에,

진실 찾기챕터와 특별한 자매 이야기챕터가 번갈아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거부감이나 이질감 없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두 개의 서사가 모든 스릴러 독자에게 쉽게 먹히진 않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특별한 자매 이야기부분에서는 독자에 따라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고,

심하게는 스릴러 본연의 맛을 희석시킨다고 여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평범한 20대 후반의 여성이 살인사건의 진실을 찾는 여정은

여러 가지 장벽들 때문에 진도는 느리고 성과는 미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속도감을 중요하게 여기는 독자에겐 좀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 패리시 부인’, ‘굿 미 배드 미’, ‘너를 놓아줄게’, ‘나는 너를 본다

나무의 철학의 미드나잇 스릴러 시리즈는 작품 간 내용도 다르고 질적인 편차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슷한 뉘앙스(사건만큼 비중 있게 다뤄진 개인의 심리)를 풍기곤 했는데,

시스터역시 그와 같은 궤를 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만큼 깊고 진한 서사를 다룬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었다고 하니,

이후 출간된 작품들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로저먼드 럽튼의 후속작을 한 편 정도는 꼭 다시 만나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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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 살인 사건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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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회사의 한 직원이 계곡에서 흉기에 수차례 찔리고 불에 태워진 채로 발견된다.

피해자가 눈에 띄는 미인이라는 점과 사건의 잔혹성 때문에

삽시간에 언론과 SNS를 통해 퍼져나가고, 피해자의 입사 동기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평범하고 내성적인 그녀가 피해자와 비교당하면서 열등감에 시달리다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

주간지 기자는 피해자의 회사 동료에게 들은 내용들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용의자는 네티즌들에게 '신상 털기'를 당하며 사이버 상에서 유죄 선고를 받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피해자와 직장동료인 연인으로부터 살인사건의 윤곽을 전해들은 한 주간지 기자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시로노 미키의 지인들을 인터뷰한 내용들이 차례로 등장합니다.

그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시로노는 피살된 노리코와 절친했던 동료였지만

외모와 능력 등 여러 면에서 사사건건 비교를 당해 모욕감을 느꼈던 건 물론

심지어 남자친구까지 빼앗겼던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기자는 시로노의 중고교 친구들, 대학의 절친들, 고향의 가족들까지 샅샅이 만나는데

문제는 진술하는 사람에 따라 시로노가 전혀 다른 인물로 비친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그녀를 저주의 힘을 가진 기괴한 소녀,

또는 피해자를 불태워 죽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잔혹한 심성을 가진 여자로,

, 누군가는 시로노는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사랑스런 여자였고,

살해된 노리코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여자였다고 진술합니다.

 

결국 주간지의 추측성 보도와 SNS의 광기 넘치는 관심 때문에

시로노는 조사받기도 전에 이미 여론재판을 거쳐 살인자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더구나 사건 이후 종적을 감춰버린 탓에 스스로 자백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그리고 막판에 이르러 그날 시로노와 노리코에게 벌어졌던 모든 진상이 반전처럼 드러납니다.

 

읽다 보면 아리요시 사와코의 악녀에 대하여가 저절로 떠오릅니다.

한 여자를 기억하는 27명의 지인들이 진술한 27가지의 각기 다른 내용을 담은 작품인데,

뒤로 갈수록 도대체 이 여자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한 사람에 대한 타인들의 기억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자기위주로 구성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입니다.

 

백설공주 살인사건속 시로노는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타인들의 기억은 물론

선정성으로 먹고 사는 옐로우 페이퍼와 익명성의 광기가 넘쳐나는 SNS에 의해

지금껏 살아온 날들을 모조리 부정당하거나 왜곡당하는 인물입니다.

심지어 주간지와 SNS를 보니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르겠다.”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독자들은 그런 시로노의 한탄을 전적으로 믿진 못합니다.

어쩌면 주간지와 SNS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살인 미스터리, 실체 없는 타인들의 기억, 이기심 또는 욕망, 옐로우 페이퍼와 SNS

꽤 다양한 소재와 서사가 펼쳐진 덕분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재미와 긴장감을 갖고 단번에 달릴 수 있는 작품이긴 합니다.

, 영화로 제작되어 성공을 거뒀다는 걸 보면 분명 극성이 강한 건 맞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나토 가나에만의 기발한 클라이맥스와 엔딩을 기대한 독자에겐

제법 심심하게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평가지만,

읽을 때마다 편차를 크게 느꼈던 그녀의 작품들 중 딱 한 가운데쯤에 자리한 작품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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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시가 아키라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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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안에 두고 내린 스마트폰이 모든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그것을 주운 남자는 스마트폰을 돌려주었지만, 폰 주인의 여자 친구를 마음에 품게 된다.

그녀의 신상정보를 모두 털어 그녀를 함정에 빠뜨리는 남자!

이제 스마트폰은 흉기나 다름없이 변해 간다.

한편 인근 야산에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의 변사체가 잇따라 발견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고백하자면, 제목 때문에 읽을 생각조차 안 하고 패스했던 작품이었습니다.

제 취향과는 거리가 좀 먼 코믹하고 가벼운 미스터리라고 여겼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몇몇 분의 서평 초반부를 보면서

제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란 걸 알게 되곤 호기심에 찾아 읽게 됐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평범한 소재에서 출발했지만 개성 만점의 미스터리를 선보인 작품이었습니다.

 

세 명의 화자가 번갈아 이야기를 진행하는데,

택시에서 스마트폰을 주운 악의로 가득 찬 남자’,

남자의 표적이 된 긴 흑발의 미인 이나바 아사미,

그리고 적잖은 여성들이 매장된 채 발견된 사건을 수사하는 관할서 형사들이 그들입니다.

형사들의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답답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포식자인 남자와 무력한 먹잇감 아사미의 챕터가 번갈아 등장할 때면

남자에 대한 분노와 아사미에 대한 안타까움이 저절로 들 정도로 작품에 빠져들게 됩니다.

 

택시에 두고 내린 스마트폰이 그야말로 인생을 괴멸시킬 정도의 재앙을 초래합니다.

물론 이 작품 속 남자처럼 폰을 주운 사람이 전부 악마적 인물은 아니겠지만,

거의 모든 개인정보가 저장된 스마트폰이 얼마든지 자신을 향한 흉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걸

작가는 실제 벌어졌던 사건의 기록물처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 폰을 주운 남자의 악마적 행태만 그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폰 때문에 인생이 파멸위기에 처한 여주인공의 개인적인 비밀과 반전을 그림으로써

작가는 막판 클라이맥스에 새로운 재미를 얹어놓습니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데,

그와 무관하게 재미있게 읽히는 것만은 분명한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한 소통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터라

서평을 올리는 블로그와 트위터 외에는 어떤 종류의 SNS도 하지 않는 1인이지만,

주위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과 지인들의 모든 것을 세상에 내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노출증 환자(?) 또는 스스로 먹잇감을 자처하는 바보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 이 작품을 읽고 보니 새삼 인터넷과 모바일과 SNS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얼마나 위험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새삼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15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답게

이야기는 참신하고 재미있는데다 속도감까지 갖추고 있어서

한 번 잡으면 바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리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재미와 오락성을 겸비한 미스터리를 찾는 독자에게 딱 맞는 작품일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반전을 위한 여주인공만의 스토리가 좀 뜬금없었던 점입니다.

작가로서는 남자의 악의적 범죄 외에 이야기 폭을 넓히고 싶었겠지만,

왠지 억지스러운 사족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사족이 없었어도 충분히 메인 서사만의 힘으로 엔딩을 그릴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봐도 작가의 과욕으로밖에 안 보였습니다.

더불어, 참 재미있게 읽었는데도 어딘가 가벼워 보인다는 인상인 남았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영미권 장르물과 대비되는 일본 미스터리의 특징이기도 한데,

아사미가 겪게 되는 사건의 잔혹성이나 사이코패스인 남자의 악의에 비해

서사의 무게감이 이야기 속에 제대로 실리지 못한 점은 무척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0.5개가 사라진 건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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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길
존 하트 지음, 권도희 옮김 / 구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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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계 형사 엘리자베스는 괴한에 납치되어 지하실에 갇혀 있던 소녀를 구해 영웅이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총알 여러 발을 발사하며 범인들을 고문했다는 의혹이 대두되며

경찰 배지를 잃고 체포당할 위기에 처한다.

한편, 그녀가 신입 시절부터 따르고 존경하던 애드리안 형사는

엽기적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13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영혼까지 사라져 버렸다.

그가 출소하자마자 과거와 똑같은 방식의 살인이 발생, 도시 전체가 충격에 빠진다.

엘리자베스는 정직 위기 속에서도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도저히 믿기 힘든 거대한 진실이 그녀를 죄어 온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그동안 읽은 존 하트의 전작들(‘다운 리버’, ‘아이언 하우스’)

재미있는 책읽기와 고통스런 책읽기를 동시에 경험하게 했던 특별한 수작들이었습니다.

또 스릴러로서의 매력과 문학작품으로서의 품격을 모두 갖춘 작품들이기도 했습니다.

두툼한 분량 안에서 그가 창조한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비극적인 과거를 부여받았고,

그 과거가 잔인한 방식으로 현재의 삶을 뒤흔드는 바람에 더욱 큰 고난과 마주쳐야 했습니다.

구원의 길역시 그의 전작들과 일맥상통하는 서사를 다루고 있는데,

아무래도 제목(원제 Redemption Road) 때문에 좀더 심난한 이야기를 읽게 될 듯한

불안한(?) 예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네 명의 인물들은 평범한 삶을 살기엔 너무 큰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강력계 형사 엘리자베스는 10대 때 겪은 악몽 같은 사건은 물론,

경찰이 된 이후에도 몸과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은 고난의 캐릭터이며,

현재는 납치범 두 명에게 18발의 총을 발사한 혐의로 정직 상태에 놓여있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우상이자 완벽한 매력을 지닌 경찰이었던 애드리안 월은

13년 전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체포된 뒤

지옥 같은 교도소에서 생사의 경계를 수도 없이 넘나들었고,

모범수로 조기 석방됐지만 하필 그 시점에 과거와 똑같은 수법의 사건이 발생하면서

출소와 동시에 용의자로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이제 14살과 18살인 기드온과 채닝 역시 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13년 전 어머니가 참혹하게 살해당한 뒤 오직 복수의 날만 기다려온 기드온,

납치된 뒤 40시간 동안 두 남자에게 끔찍한 만행을 당한 끝에 엘리자베스에게 구출된 채닝...

 

이들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박살내려 다가오는 불행과 맞서 싸웁니다.

때론 서로 적이 되기도 하고, 때론 서로에게 큰 힘이 돼주기도 하지만,

정작 그들이 대적해야 할 불행은 너무 크고 버거워서 매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곤 합니다.

자신에게 닥친 위기에도 불구하고 애드리안의 무죄를 확신하며 그를 보호하려는 엘리자베스와

13년의 교도소 생활로 몸과 마음과 정신이 모조리 산산조각 난데다

죄책감과 복수심, 살의와 도피라는 욕망이 뒤엉킨 탓에 모든 것이 혼란일 뿐인 애드리안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독자의 여러 감정을 쥐어짜는 캐릭터들입니다.

 

첫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부터 스스로 예방주사(?)를 충분히 놓았다고 생각했지만,

상처투성이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를 지독하리만치 섬세하게 그려낸 존 하트의 문장들은

그따위 예방주사라는 게 아무 효과가 없는 무용지물임을 금세 입증해줍니다.

덕분에 역시 이번에도 내내 독하고 쓰린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재미와 고통이 제멋대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이상하고 흥분된 책읽기를 겪게 됐습니다.

 

다만,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진범의 정체와 그의 범행동기만큼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0.5개가 빠진 유일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뭐랄까... ‘반전을 위한 반전또는 엽기를 위한 엽기처럼 느껴졌다고 할까요?

물론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이번만큼은 존 하트가 무리수를 뒀다는 인상을 받은 건 저만의 경험은 아닐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 따르면 존 하트의 새 작품 ‘The Hush’가 올해 출간될 예정입니다.

과작 작가라 할 수 있는 존 하트의 이른 신작 소식이 반가울 따름입니다.

신간에 대한 과욕과 대책 없는 게으름 탓에 아직 그의 대표작 라스트 차일드를 못 읽었는데

‘The Hush’가 나오기 전에 반드시 라스트 차일드위에 쌓인 먼지들을 털어내줘야 하겠습니다.

(전에도 이와 똑같은 공수표를 날린 바 있는데, 이번에는 꼭 지키도록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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