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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S. L. 그레이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8년 2월
평점 :
마크와 스테프는 어린 딸과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살며 행복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무장한 강도들이 쳐들어와 그들의 삶을 박살내기 전까지.
아무런 피해도 없었지만 부부는 평범한 삶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그들은 서로 집을 맞교환하는 숙박 공유 사이트를 이용해보라는 친구의 조언을 듣게 되고,
파리의 매력적인 아파트에 살고 있는 프티 부부와 집을 교환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황량한 아파트와 위층에 사는 이상한 여자 한 명뿐.
악몽 같은 파리에서의 날들을 뒤로 하고 겨우 집으로 돌아오지만
마크는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하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서서히 균열로 뒤덮이게 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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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비유하자면, 스티븐 킹의 ‘샤이닝’과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집’이 뒤섞인
남아공 판 심리 서스펜스+도시 공포물이라고 할까요?
주인공 마크의 삶은 그야말로 한 인간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불행의 집합체입니다.
7년 전 비극적인 사고로 잃은 7살 딸 조이에 대한 집착과 회한,
대학교수에서 칼리지로 밀려나면서 겪게 된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
3인조 무장 강도의 난입으로 인해 얻은 치명적인 트라우마 등이 그것입니다.
딸의 죽음 뒤 이혼까지 한 그는 20년 이상 연하의 스테프와 재혼하여 딸 헤이든을 뒀지만,
그의 삶은 언제 무너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위태로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 그에게 강도사건의 후유증을 치유하고 휴식을 얻기 위해
무리한 경제사정을 감내하면서 떠났던 아내 스테프와의 파리 여행은 치명상이 되고 맙니다.
사방에서 나타나는 죽은 딸의 환각, 현실 속 사람 같지 않은 정체불명의 여인,
죽은 고양이, 양동이에 가득 담긴 잘린 머리카락, 연이어 벌어지는 불운 등
마크와 스테프는 파리에 머무는 내내 악몽 같은 날들을 보내게 됩니다.
문제는 그 불길하고 음험한 기운들이 남아공의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여전하다는 점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흐트러진 것이 분명해 보이는 집의 구석구석,
7년 전 죽은 딸에 대한 집착에 폭주하면서 생생한 환각까지 경험하게 되는 마크,
그런 마크를 지켜보며 파국이 머지않았음을 깨닫곤 혼란에 빠지는 스테프...
분명 장르상 심리 서스펜스와 도시 공포 스릴러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이지만,
‘샤이닝’이나 ‘괴담의 집’과는 전혀 다른 식감(?)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구체적인 스토리보다는 불안에 잠식된 심리 묘사가 압도적으로 강한 서사랄까요?
그래서인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는 언급한 작품들보다 더 모호하게 느껴지고,
주인공들이 겪는 불가지한 현상들 역시 꽤 난해하게 읽힙니다.
당연히 페이지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넘어가는 반면 기분 나쁜 오싹함은 그만큼 배가됩니다.
마치 미동도 하지 않는 썩은 늪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 아파트에서 뭔가를 가지고 돌아왔어.”라는 스테프의 대사를 인용한 홍보카피는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대변하는 인상적인 구절임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독자에 따라 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인데,
스티븐 킹이나 미쓰다 신조가 대중적인 스토리 속에 심리+공포 스릴러를 녹여 넣었다면,
‘아파트먼트’는 유럽의 작가주의 공포영화처럼 심리 자체에 방점을 찍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오락적 요소는 다소 부족하다는 뜻인데,
그 부분은 이 작품의 강점이자 동시에 약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주로 출퇴근길에 띄엄띄엄 읽고 말았지만,
아마 조용한 밤에 혼자 밀폐된 공간에서 읽었다면 좀더 제 맛을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파리의 악몽이나 남아공의 집으로 돌아온 뒤 주인공들이 마주한 불가지한 현상들이
마치 제 등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한 공포심도 더 생생했을 것 같구요.
스티븐 킹이나 미쓰다 신조의 작품을 읽을 때처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