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렌의 참회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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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데이토TV의 간판 보도 프로그램 애프터 JAPAN’의 아사쿠라 다카미는

아직은 미숙하지만 특종에 대한 열망이 강한 2년차 기자.

다카미는 시니컬하면서도 베테랑다운 면모의 선배 사토야와 함께 특종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그들에게 여고생 유괴살인사건 소식이 들려오고,

경찰의 은밀한 움직임을 따라잡은 끝에 용의자의 정체까지 알아내는 엄청난 특종을 거머쥔다.

회사는 축제 분위기에 빠지고 다카미는 용의자 체포 장면을 단독 포착할 생각에 들뜨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바탕으로 쓴 줄거리입니다.)

 

● ● ●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이라는 정보 외엔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우선 제목 속 세이렌이 누굴까, 어떤 캐릭터일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세이렌=언론이란 걸 알 수 있었는데,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해 난파로 이끄는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이

대중을 오도하는 선정적이고 기만적인 언론을 빗댄 표현으로 설정된 점이 무척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어떤 식으로 참회한다는 건지도 급 궁금해졌습니다.

 

주인공 다카미는 전형적인 신참 기자 캐릭터입니다.

경험도 부족하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고, 특종에 대한 열망도 강렬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가벼운 캐릭터는 아닙니다.

그녀는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감춰진 진실과 약자의 분노를 알리는 기자가 되고 싶었고,

지금도 사건사고 속 가해자와 피해자를 지켜볼 때마다 동생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런 그녀가 자살 당시 동생과 비슷한 연배의 여고생이 참혹하게 살해된 사건을 접하자

남다른 의지와 열정을 갖고 취재를 시작합니다.

 

다카미의 파트너이자 베테랑 기자인 사토야는 다카미와는 180도 다른 인물입니다.

어찌 보면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이 바닥의 때란 때는 죄다 뒤집어쓴 기자 같다가도,

어떤 때는 진정한 기자의 태도를 온몸으로 강변하는 순수하고 정의로운 인물 같기도 합니다.

다카미가 폭주하려고 하면 적절하게 제동도 걸어주고,

다카미가 좌절할 때면 긍지와 각오와 초심을 일깨우며 부축해주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재수 없지만 알고 보면 멋진 기자 캐릭터랄까요?

 

어쨌든 이 둘은 회사의 위기도 극복하고 특종이라는 명예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하지만 그 고군분투가 결국은 대참사를 일으키게 되고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합니다.

대오보-숙청-참회라는 목차를 보면 대략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쉽게 예상이 되는데,

그렇다고 이 작품이 언론의 정도만을 다루고 있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반전의 제왕이라는 별명답게

여고생 유괴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역시 여러 번의 반전을 통해 밀도 있게 그립니다.

말하자면 살인사건 미스터리와 신참 여기자의 성장기가 잘 배합된 작품이란 뜻입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작가가 주제를 너무 자주, 노골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입니다.

다카미의 선배 기자인 사토야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을 ‘SNS에 탐닉하는 네티즌과 같은 수준으로 여기는 담당형사 구도 겐지 역시

기자란.. 언론이란.. 진실이란..” 교훈을 쉴 새 없이 다카미에게 퍼붓습니다.

어느 대목이나 다 수긍도 되고 납득도 되는데 개인적으론 좀 과했다는 생각입니다.

 

그 점만 빼면 나카야마 시치리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은 쉽고 재미있게 읽힙니다.

전작들에 비해 사건은 덜 잔혹하고 덜 선정적이지만,

냉소적이지만 유능한 선배 + 좌충우돌이지만 열정으로 가득한 후배조합의 매력은

전작인 살인마 잭의 고백이나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살짝 가벼워 보이는 서사도 읽다 보면 점점 그 무게감이 묵직해지는 것도 비슷합니다.

특종에의 열망 대참사 와신상담 극적인 재기로 이어지는 통속적인 구성이지만

사건은 사회파 미스터리의 매력을 띄고 있고, 인물들은 매력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번역하신 이연승 님의 후기를 보니 나카야마 시치리가 연평균 4.5권의 작품을 낸다는군요.

엄청난 다작이지만 아직까지(?)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페이스라면 올해에도 1~2편 정도 더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시리즈의 어떤 작품이 먼저 출간될지 벌써부터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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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미티 아줌마의 죽음
낸시 애서턴 지음, 이현경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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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혼 뒤 힘겹고 우울한 삶을 살아가던 로리 셰퍼드에게 법률 회사의 편지가 날아든다.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동화 속 주인공 디미티 아줌마의 부고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디미티 아줌마가 실존 인물이었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해진 로리는 법률 회사를 찾아간다.

변호사 윌리스에게 디미티 아줌마와 어머니의 관계에 대한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로리는

디미티 아줌마의 유언에 따라 영국의 한적한 마을 핀치에 있는 시골집에 한 달간 머물며

디미티 아줌마와 엄마가 주고받은 편지를 읽고 그 안에 담긴 미스터리를 해결하기로 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영국의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은 화사하게 꾸며진 시골집,

오래된 편지 속에 담긴 2차 대전 말기를 살았던 두 여자의 우정과 미스터리,

그리고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잔잔한 판타지 등

여러 가지 코드가 온기를 머금은 채 버무려져 있는 독특한 작품입니다.

 

로리가 부여받은 미션은 쉬운 듯 보이지만 사실 무척 까다로운 일입니다.

디미티 아줌마는 자신의 이름으로 펴내려는 동화책의 머리말을 써달라는 부탁을 남겼고,

(그를 위해 동화책의 원전이나 다름없는 엄마와 주고받은 편지를 읽어야 한다는 조건과 함께)

엄마는 자신과 처음 만났을 때 폐인 일보 직전의 모습이었던 디미티 아줌마가

당시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사진 한 장과 함께 남겼습니다.

로리가 가장 사랑했던, 하지만 이젠 고인이 된 두 여자의 과거를 소환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디미티 아줌마의 부탁은 그냥 부탁이 아닙니다.

자신이 살던 시골집에 머무르라고 한 것은 그 안에 로리가 찾아야 할 단서가 있다는 뜻이고

편지를 제대로 읽어야 쓸 수 있다는 동화책 머리말 역시

편지 속에 담긴 행간의 비밀을 알아내라는 일종의 암시가 내포돼있습니다.

그 단서와 비밀을 쫓던 로리는 엄마가 궁금해 하던 디미티 아줌마의 과거를 조금씩 알게 되고

궁극의 정답을 찾기 위해 디미티 아줌마의 시골집과 인근의 멋진 언덕들,

그리고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공습을 겨우 피한 런던의 유서 깊은 곳들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로리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의문의 현상과 연이어 만나기도 하고,

낭만과 참화가 공존했던 2차 대전 말기의 런던의 향수에 빠지기도 합니다.

, 새삼 세상을 떠난 엄마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에 젖거나 궁핍한 처지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엄청난 성장을 겪기도 합니다.

물론 영국까지 동행한 변호사 윌리스의 아들 빌과 로코 풍의 소동도 한몫 거들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잘 버무려진 탓에 다채로운 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에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들에겐 좀 답답하게 읽힐 수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영국으로 떠나는 대목이 거의 작품 중반쯤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로리의 상황과 미션 설명이 충분히 필요하긴 했지만 메인 요리가 너무 늦게 나온 기분이랄까요?

, ‘로리의 미션은 정확히 뭔가?’라는 점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의문인데,

디미티 아줌마와 엄마가 남긴 미션이 딱 떨어지는 구체적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다 읽은 뒤엔 어느 정도 그 모호함이 이해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읽는 도중에 길을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드는 건 저만의 경험은 아닐 거란 생각입니다.

 

살인사건만 없을 뿐 루이즈 페니의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이후 로리와 디미티 아줌마를 주인공으로 한 23편의 시리즈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승과 저승에 사는 두 여자가 도대체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냈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데

디미티 아줌마의 죽음이 선전한다면 몇 편 정도의 후속작은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따뜻한 코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강력한 추천을,

정통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에겐 다른 분들의 서평도 참고해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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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것에 대한 분노
베키 매스터먼 지음, 박영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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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손에서 결혼 후 조용히 살아가던 전직 FBI 특수요원 브리짓 퀸.

어느 날, 자신이 훈련시켰던 후배 특수 요원을 마지막 희생자로 삼고 잠적해버린

66번 고속도로 살인마가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나 FBI의 로라 콜먼은 용의자의 자백이 거짓인 것 같다며 브리짓 퀸에게 도움을 청한다.

과거와 더 이상 얽히기 싫어 콜먼의 부탁에 주저하는 브리짓 퀸.

하지만 자신을 노리던 성 범죄자를 우발적으로 죽인 브리짓 퀸은

뒤늦게 찾은 행복이 위태로워지기 시작하는 것을 직감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그동안 다양한 장르물의 개성 강한 주인공들을 만나봤지만

은퇴한 59세의 전직 여성 FBI요원이란 설정은 꽤나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브리짓 퀸은 성범죄에 관한 한 전설이라 불릴 정도로 유능한 요원이었지만,

은퇴 뒤에 만나 결혼한 남편에겐 저작권 관련 업무를 했다며 자신의 과거를 감춥니다.

유능한 FBI요원일반인으로서의 평범한 삶사이의 괴리감이 컸던 탓이었고,

이미 한 남자로부터 ‘FBI에서의 과거때문에 큰 상처를 입은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행운처럼 찾아온 사랑하는 남자와 두 마리 퍼그와의 안온한 일상에 완벽하게 침잠한 채,

더는 어두운 세계와 엮이기를 거부하며 평범한 삶을 소망하던 브리짓이었지만,

FBI 시절 미제 사건으로 결론 났던 ‘66번 고속도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체포되자

그녀가 애써 눌러왔던 특수요원으로서의 DNA가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특히 때마침 명백한 살해의도를 가진 성범죄자의 습격까지 받게 되자

브리짓은 두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있다고 결론짓곤 남편 몰래 수사에 가담합니다.

 

작가는 꽤 많은 이야기를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 안에 풀어놓습니다.

매년 여름마다 히치하이킹을 하는 젊은 여성을 참혹하게 살해한 연쇄살인범,

그 연쇄살인범의 마지막 희생자이자 자신이 아끼던 신참 FBI요원에 대한 브리짓의 자책감,

피해자 가족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 신참 FBI요원의 아버지,

그리고 평범한 삶에 대한 소박한 소망과 타고난 FBI요원으로서의 본능이 충돌하는 이야기 등

아주 버라이어티한 코드들이 알맞은 양념들과 함께 잘 버무려진 작품입니다.

 

다만, 다루는 사건에 비해 긴박감이나 속도감은 좀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초반만 해도 테스 게리첸의 의사 시리즈가 떠오를 만큼 꽤 거칠고 빠른 서사가 이어졌는데,

정작 메인 스토리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좀 느슨해진다고 할까요?

이미 브리짓이 은퇴한 처지라 공식 수사에 개입할 수도 없거니와

연쇄살인범의 만행은 7년 전에 종지부를 찍은 상태라

브리짓의 수사는 대체로 탐문과 단서 추적 위주의 정적인 전개가 불가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브리짓에게 주어진 미션이 단순한 범인 찾기이상으로 다채롭게 설정된 덕분에

5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임에도 마지막까지 단숨에 달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쫓는 자이면서 동시에 쫓기는 자이기도 한 브리지의 처지는

읽는 내내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부여해주는 매력적인 설정이었습니다.

 

다 읽은 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과연 브리짓이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였는데,

그녀가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다면 더는 그녀의 활약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아쉬울 것 같고,

반대로 작가가 브리짓 시리즈를 집필한다면 그녀가 그토록 소망했던 평범한 삶이

더는 유지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습관처럼 띠지, 뒷면, 날개 부분을 건너뛰고 본문부터 바로 읽는 편이라

혹시나 하고 뒤늦게 작가 이력이 소개된 부분을 보니 이미 두 편의 시리즈가 출간됐더군요.

그럼 브리짓은 평범한 삶요원으로서의 본능을 모두 손에 넣었다는 뜻일까요?

벌써부터 그녀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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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 - 신의 선택을 받은 자
로버트 해리스 지음, 조영학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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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19,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 교황이 선종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118명의 추기경들이 시스티나 예배당에 모여 차기 교황을 선출하기 위한 비밀회의에 들어간다. 그들은 모두 성인(聖人)들이다. 동시에 야망이 있는 남자들이다. 그리고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 차기 교황으로 가장 유력시되는 추기경은 모두 네 명. 각각의 경쟁자들은 저마다 지원 세력이 있고 강점과 약점 또한 갖추고 있다. 그리고 72시간이 지나면 그들 중 오직 한 명만이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가 될 것이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종교의 유무와 관계없이 교황은 신성, 평화, 중립, 존경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교황의 선출은 신탁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하지만 로버트 해리스가 콘클라베에서 그린 교황의 탄생 과정은 진보와 자유, 보수와 전통, 인종과 성별, 욕망과 권력, 표를 얻기 위한 이합집산 등 세속의 선거에서 볼 수 있는 온갖 갈등과 차별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118명의 추기경들은 2/3 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12일간 감금된 채 투표해야 되는데, 애초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 네 명의 추기경 외에 군소후보들이 얻은 표는 투표가 거듭될 때마다 부동표처럼 이리저리 떠다닙니다. 유력후보들은 틈만 나면 표를 얻기 위한 적극적인 섭외활동을 펼치고 심지어 다른 후보들의 약점이 보이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까지 합니다.

교황 선출 과정을 주관하는 야코포 로멜리 추기경단 단장은 본의 아니게 유력후보들의 약점을 알게 되면서 고뇌에 빠진 탐정 역할까지 떠맡게 됩니다. 선종한 교황이 남긴 비밀문서들, 유력후보들이 지은 세속의 죄 등이 그것인데 중립적인 선거관리자로서 무척이나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아무리 픽션이라도 교황 선출 과정을 함부로 왜곡할 수는 없을 테니 로버트 해리스가 그린 콘클라베는 어느 정도 현실을 반영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 때문에 읽는 내내 꽤나 충격을 받았는데, 아마 뉴스나 인터넷에서 교황 관련 소식을 들으면 예전과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 같고, ‘바티칸 관료들역시 성스러운 교황의 측근들로만 받아들이진 못할 것 같습니다.

 

교황, 선거, 미스터리라는 세 개의 큰 축이 떠받친 작품이지만, 상대적으로 미스터리의 힘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이야기는 대체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반전 역시 소소한 규모로 설정돼있습니다. 다만, 거듭되는 선거가 야기한 팽팽한 긴장감에 신성(神聖)과 세속의 충돌이 낳은 딜레마까지 더해져서 마지막 장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누가 신의 선택을 받게 될지, 또 그는 진정 신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쉽게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미스터리 이상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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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피해자
천지무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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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멍위는 뛰어난 설치예술가이자 시의원 경선에도 나간 적이 있을 만큼 유명인사다.

그는 6개월 전 세 명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피해자들의 시체를 숨긴 장소를 실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형 판결 직후 자살한다.

하지만 자살 직전 시신들을 숨긴 곳에 대한 단서와 함께 네 번째 피해자의 존재를 암시한다.

한편 방송국 시사프로그램의 아나운서인 쉬하이인은 이 사건을 보도해 승진할 요량으로

팡멍위의 살인행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저우위제에게 접근하여 사건을 파헤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편집, 인용했습니다.)

 

● ● ●

 

엽기적으로 시신을 훼손하고 충격적인 방법으로 은닉한 희대의 연쇄살인,

사형선고를 받은 범인이 자살한 탓에 은닉된 희생자 찾기에 몰두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수사,

그리고 부와 명예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건에 몰두하는 한 아나운서의 집착 등

꽤 다양한 코드가 범벅이 된 독특한 중화권 미스터리입니다.

특히 막판의 반전과 결말은 일반적인 미스터리 서사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를 띄고 있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에도 묘한 여운을 얻게 됩니다.

 

외형적으로는 엽기적 연쇄살인과 옐로우 저널리즘의 폐해 또는 그에 대한 고발처럼 보이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그리 단순한 구도로 설계하지 않았습니다.

은닉됐던 희생자를 찾아낼수록 범인 팡멍위의 범행 동기는 점점 더 오리무중이 되고,

그가 언급한 네 번째 희생자는 이미 살해됐는지 또는 추종자나 공범에 의해 살해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언론과 대중을 놀리기 위해 설정한 페이크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 시청률에 목을 매고 경쟁자를 따돌려 공을 세우려는 아나운서 쉬하이인은

분명 옐로우 저널리즘의 상징처럼 그려지긴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무능한 경찰 대신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명탐정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그녀에게 응원과 비난을 동시에 보내게 되는데,

특종에 목맨 야비한 기자와 진실을 위해 분투하는 주인공이 한 몸에 섞인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한국에 소개된 첫 작품이라 작가의 성향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 작품만 놓고 보면 배배 꼬는 걸 무척 좋아하는 작가란 생각이 먼저 들었고,

해설’, ‘작가의 말’, ‘옮긴이의 말을 읽어보곤 역시 괴짜라는 걸 재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박학다식하고, 다양한 소재를 잘 활용하고, 이야기를 복잡하게 설계하는 능력도 있어서

한 번 팬이 되면 금세 애독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끊어지기 일보 직전까지 배배 꼬는 이야기에 거부감을 가진 독자라면

쉽게 적응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경우, 미스터리를 끌고 가는 필력은 분명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꼬아놓은 나머지 결과를 위한 작위적 설계라는 느낌을 받은 대목도 있어서

일단 다음에 출간될 작품 한 편쯤 더 읽어보고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릴 생각입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아마 피맺힌 원수의 영광또는 4분면중 한 편이 될 것 같은데,

어느 작품이 됐든 빠른 시일 안에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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