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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에 갇힌 여자 ㅣ 스토리콜렉터 63
로버트 브린자 지음, 서지희 옮김 / 북로드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엄청난 부와 권력을 지닌 더글라스-브라운 가문의 딸 앤드리아가
폭설이 내리는 런던의 얼어붙은 호수에서 발견됩니다.
루이셤 경찰서 마쉬 총경은 정직 중이던 에리카 포스터 경감을 불러 사건의 지휘를 맡깁니다.
하지만 에리카의 수사는 앤드리아의 아버지 사이먼의 부당한 압력에 휘청거리게 되고,
경찰 수뇌부는 진실보다는 사이먼의 눈치만 보며 조기수습에만 열중합니다.
동일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여러 동유럽 출신 매춘부 사건이 관심을 끌기 시작하면서
에리카의 수사가 제대로 된 것임을 뒤늦게 깨달은 경찰은 다시 한 번 그녀를 신뢰하지만,
또다시 예상치 못한 장벽을 만나면서 에리카는 큰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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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경찰 에리카 포스터 경감 시리즈의 첫 포문을 연 작품으로,
전형적인 캐릭터, 전형적인 스토리지만 재미있게 읽히는 작품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작전 수행 도중 남편을 포함 동료 여럿의 죽음을 초래했다는 자책감,
그로 인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일 자체가 버겁게만 여겨지는 천근같은 우울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로서 제대로 살아가고 말겠다는 각오 등
에리카의 과거는 주인공으로서의 미덕을 위한 적절한 설정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 어떤 압력과 부당한 지휘에도 굴복하지 않는 풀 파워의 카리스마라든가
‘굴러온 돌’임에도 일찌감치 경찰 내 우호세력을 만들어내는 친화력까지 갖추고 있어서
현재 시점의 캐릭터 역시 무척 매력적으로 읽힙니다.
비극적 트라우마 + 권력층도 우습게 아는 반골 기질 + 경찰로서의 유능함 등
경찰 주인공으로서 갖춰야 할 공식적인 덕목은 모두 갖춘 셈입니다.
스토리 역시 패리스 힐튼을 연상시키는 자유분방한 금수저 앤드리아의 참혹한 죽음을 소재로
엄청난 부를 소유한 권력자 집안의 추악한 비밀, 동유럽 출신 매춘부 연쇄살인 사건,
권력에 쩔쩔 매는 경찰 수뇌부의 문제 등 다양한 코드들이 한데 섞여 전개되는데,
약간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와 영국 내 사회적 문제들이 적절하게 잘 배합된 셈입니다.
다만, 시리즈 첫 편이라 그런지 가끔 덜컹거리는(?) 부분들이 눈에 띄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주인공인 에리카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자주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트라우마는 감정적인 공감보다는 팩트 나열식으로만 읽혔고,
(‘이런 일이 있었다’ 이상의 절절함이나 애틋함이 안 느껴졌다고 할까요?)
‘굴러온 돌’인 그녀에게 호의적으로 협조하는 몇몇 부하들도 왜 그러는지 설명이 부족했고,
그녀에 대한 루이셤 경찰서 고위간부들의 압력도 좀 기계적으로 설정된 듯 보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에리카가 생생한 캐릭터보다는 어딘가 뻣뻣하고 인공적인 인물로 보였는데,
그래서인지 다 읽고도 에리카의 비주얼이 좀처럼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피아 키르히호프, 아멜리아 색스, 율리아 뒤랑, 에밀리 폴리팩스 등
비주얼이 쉽게 떠올랐던 인상적인 여주인공들과는 사뭇 대조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에리카 포스터 시리즈가 계속 출간될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5편이 출간됐다고 하는데 1~2편쯤은 좀더 그녀의 활약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얼음에 갇힌 여자’의 만족감과 아쉬움을 굳이 수치로 표시하면 8:2 정도였는데,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캐릭터나 스토리의 맛이 깊어질 것 같은 기대감이 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