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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평점 :
외교관 아빠 밑에서 세계 각국을 다니며 자란 그웬돌린은 말 그대로 ‘아웃사이더’다.
엄마도 없고, 친구도 없는 그웬돌린이 믿고 의지할 사람은 오직 아빠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파리 출장 중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외교기관이 너무 쉽게 아빠 찾기를 포기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웬돌린은 나름의 조사 끝에 아빠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곤 큰 충격에 빠진다.
아빠가 남긴 암호를 해독하던 그웬돌린은 직접 아빠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파리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인간 병기로 거듭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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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테이큰’의 여성판이라는 소개대로 ‘실종된 아빠를 찾는 딸’이 핵심설정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뒷골목 불량소녀에서 전문 킬러로 양성된 ‘니키타’가 더 자주 떠올랐습니다.
그웬돌린 블룸은 외교관 아빠 덕분에 명문사립고에 들어갔지만
어마어마한 금수저들 사이에서 왕따 취급을 받는 소심한 소녀였는데,
그런 평범하고 소심한 소녀가 ‘니키타 급 인간병기’가 되어 파리, 베를린, 프라하를 누비며
폭력과 지략을 겸비한 활약을 한 끝에 만신창이가 된 아빠를 구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액션스릴러의 미덕을 잘 갖춘 작품인 건 분명합니다.
CIA와 모사드 등 정보기관들이 등장하고,
무기 밀매와 인신매매를 자행하는 유럽의 거물급 조직이 악의 축으로 설정돼있습니다.
그웬돌린은 몇 차례나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낯선 유럽에서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자신의 노력은 물론 여러 번의 행운에 힘입어 아빠의 단서를 찾아내곤 합니다.
문장 역시 단순히 ‘치고 박는 스릴러’ 수준을 넘어
심리나 감정 묘사에서 꽤 깊이 있는 서사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임에도 금세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엔터테인먼트의 귀재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을 맡아 영화화된다는 뉴스가
결코 공치사로만 들리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다만,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설정 – 평범한 소녀 그웬돌린이 ‘니키타’로 진화한다 – 때문에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아니라) 읽는 내내 위화감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인간병기로서의 그웬돌린의 육체적 자질은 취미처럼 즐겼던 체조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파리에서 보낸 짧은 기간 동안 전문적인 킬러들을 제압할 만큼 급성장합니다.
또, 인간병기로서의 심리적 자질 역시 거의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녀는 누군가를 폭행하거나 고문하거나 살해할 만한 마인드 자체가 아예 없던 소녀입니다.
물론 ‘사라진 아빠 찾기’라는 목표 자체가 그녀를 급변하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딸 찾는 아빠’와 ‘아빠 찾는 딸’은 절실함이나 무모함에 있어 비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고,
그런 이유 때문에 ‘니키타로 변신한 그웬돌린’은 아무래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공주’와 ‘바비’로 국한된 여성성에 반발하여 강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지만,
과연 그웬돌린이 ‘강한 여성’이 될 DNA를 갖고 있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그웬돌린에게 찾아오는 행운이 너무 쉬워 보인다는 점입니다.
필요한 사람들이 적시에 나타나고, 필요한 정보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 앞에 나타납니다.
이런 행운들이 파리, 베를린, 프라하에서 연이어 그녀를 위해 깜짝쇼를 하다 보니
어느 시점에선 ‘너무 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무척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1개를 빼야만 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그웬돌린을 앞세운 후속작 ‘그리드(the greed)’도 출간됐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니키타 급 인간병기’가 된 그웬돌린이 어떤 새로운 미션을 맡게 될지 궁금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이 작품에서 새겨진 강한 위화감이 쉽게 잊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필력만 보면 시리즈든 스탠드얼론이든 믿고 읽을 수 있는 스릴러 작가인 건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론 이 작가의 새 시리즈나 스탠드얼론이 더 기다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