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되는 아이 방의강 시리즈
방진호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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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까지 포함하여 벌써 네 권의 방의강 시리즈가 출간됐는데,

그동안 계속 주저하다가 뒤늦게 첫 만남을 갖게 됐습니다.

앞선 시리즈들을 못 읽어서 주인공 방의강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액션스릴러 주인공으로서 방의강은 그야말로 얼음장 같은 킬러이면서도

폭주에 폭주를 거듭하는 다혈질인데다 공처가 또는 훈남으로서의 미덕까지 갖춘,

그러니까, 꽤 비현실적인 면이 많긴 해도 지극히 영화적인 캐릭터임에 분명합니다.

 

전설의 킬러였던 그는 은퇴 후 다수의 건물을 소유한 채 여유 있는 삶을 구가하는 중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디로 튈지 모르는 15살 여중생 윤지를 2주간 맡아야 하는 미션이 부여됩니다.

하지만 방의강은 윤지로 인해 본의 아니게 성매매 조직과의 전쟁에 말려들게 되고,

그 후로 전설의 킬러로서의 명성을 다시금 발휘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맙니다.

성매매 조직의 사악한 행위는 물론 윤지의 비극적인 과거까지 알게 된 방의강은

결국 거침없는 살인과 특유의 정보력을 발휘하여 윤지를 구해내고 그녀의 상처를 치유합니다.

 

일단 재미있습니다.

페이지는 거침없이 넘어가고, 수시로 혈압이 오르고 흥분이 요동치는 걸 느끼게 됩니다.

방의강의 손에 죽어나가는 악당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고,

그때마다 카타르시스 이상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작가라는 별칭으로 활약했던 전설적인 킬러 방의강의 과거도 궁금해지고,

그가 해결한 또 다른 사건들을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오르곤 합니다.

속도감과 긴장감과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이만한 킬러 스릴러가 또 있을까 할 정도로

작가는 독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짜릿하고 가차 없는 응징을 구사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너무 쉽다는 점입니다.

꽤 많은 고비를 맞이하긴 해도 방의강의 응징은 너무 쉽게 진행됩니다.

최신형 터미네이터가 아닌 다음에야 저렇게 쉬울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피할 수 없습니다.

, 너무 쉽게 사람을 죽이고, 그 방법 역시 전혀 한국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작가는 그를 위한 적절한 설정을 만들어놓긴 했지만,

아무래도 밥 먹듯 쉽게, 파리나 모기 잡듯 태연하게 벌어지는 살인은

말초적인 재미와 자극을 주긴 해도 간혹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에 영화 아저씨를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오락적인 면에서만 보면 별 5개도 충분하고 영화로 만들면 끝내줄 것 같은 작품인 건 맞지만

이런 위화감 때문에 별 0.5개를 뺐습니다.

하지만, 머리를 비우고 온몸으로 짜릿함을 느끼고 싶은 스릴러 독자라면

한번쯤 전설의 킬러 방의강을 만나볼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저는 당장 이 시리즈의 첫 작품인 유령 리스트부터 찾아 읽을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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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렉터스 컷 - 살인을 생중계합니다
우타노 쇼고 지음, 이연승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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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타노 쇼고의 매력 - 장난기 가득한, 하지만 사건은 무지 심각한 - 이 잘 발휘된 작품입니다.

캐릭터들은 사이코패스 혹은 욕망덩어리들이고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이야기는 마치 유쾌한 게임의 한 장면처럼 신나고 제멋대로 폭주하고 있는데,

언뜻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 시리즈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디렉터스 컷은 조금은 더 현실적이고, 조금은 더 사회적 이슈에 가까운 주제를 풀어냅니다.

 

군소 방송제작사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 하세미 준야,

그와 함께 작당하여 조작된 사건 동영상을 만들며 청춘을 소모하는 고타로 일당,

미용사의 꿈을 키우지만 몇 년째 허드렛일에서 못 벗어난 채 모두에게 왕따 당하는 린네.

이들은 예기치 못한 살인사건으로 한데 엮인 뒤 서로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입니다.

하세미는 경찰보다 먼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그 과정을 담은 동영상을 통해 방송인으로서의 자신의 미래를 공고히 다지려 합니다.

예의 목적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조작의 달인답게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하세미 본인을 위기에 몰아넣고 맙니다.

 

워낙 쉽고 간결한 문장이라 꽤 가벼워 보이기도 하고, 페이지도 휙휙 넘어가지만,

우타노 쇼고는 미스터리에 못잖게 꽤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작품 안에 녹여놓았습니다.

방송과 인터넷의 역전된 세력 관계, 익명성 뒤에 숨은 인터넷 동영상 세상의 문제,

살인적인 왕따,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목적 없이 폭주하는 청춘 등이 그것들인데,

간혹 대놓고 주제를 강조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연쇄살인 미스터리와 전혀 이질감 없이 잘 섞여 있는 느낌입니다.

 

하세미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목적을 위해 온갖 불법적인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 캐릭터라

도대체 이 사람에게 어떤 엔딩을 주려나 무척 궁금했고,

살인을 생중계합니다라는 부제를 어떻게 살릴까 역시 궁금했는데,

방송, 유튜브, 트위터 등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소위 악마의 편집까지 동원된 막판 반전은

제 뒤통수를 친 것은 물론 저의 소소한 궁금증 자체를 하찮게 만들어버리고 맙니다.

막판의 연타석 반전이 우타노 쇼고 팬들의 눈높이를 만족시킬지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스케일이나 서사에 딱 맞는 매력적인 반전이었다는 생각입니다.

 

350여 페이지의 분량이지만 딴 데 정신 팔 틈을 주지 않는 우타노 쇼고의 필력 덕분에

첫 페이지를 열고 그리 오래되지 않아 막판까지 달릴 수 있었는데,

깔끔하고 속 시원한 미스터리를 찾는 독자라면 100%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이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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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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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아빠 밑에서 세계 각국을 다니며 자란 그웬돌린은 말 그대로 아웃사이더.

엄마도 없고, 친구도 없는 그웬돌린이 믿고 의지할 사람은 오직 아빠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파리 출장 중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외교기관이 너무 쉽게 아빠 찾기를 포기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웬돌린은 나름의 조사 끝에 아빠의 진짜 정체를 알게 되곤 큰 충격에 빠진다.

아빠가 남긴 암호를 해독하던 그웬돌린은 직접 아빠를 구하기로 결심하고 파리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인간 병기로 거듭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영화 테이큰의 여성판이라는 소개대로 실종된 아빠를 찾는 딸이 핵심설정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뒷골목 불량소녀에서 전문 킬러로 양성된 니키타가 더 자주 떠올랐습니다.

그웬돌린 블룸은 외교관 아빠 덕분에 명문사립고에 들어갔지만

어마어마한 금수저들 사이에서 왕따 취급을 받는 소심한 소녀였는데,

그런 평범하고 소심한 소녀가 니키타 급 인간병기가 되어 파리, 베를린, 프라하를 누비며

폭력과 지략을 겸비한 활약을 한 끝에 만신창이가 된 아빠를 구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액션스릴러의 미덕을 잘 갖춘 작품인 건 분명합니다.

CIA와 모사드 등 정보기관들이 등장하고,

무기 밀매와 인신매매를 자행하는 유럽의 거물급 조직이 악의 축으로 설정돼있습니다.

그웬돌린은 몇 차례나 죽을 위기를 넘기면서 낯선 유럽에서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자신의 노력은 물론 여러 번의 행운에 힘입어 아빠의 단서를 찾아내곤 합니다.

문장 역시 단순히 치고 박는 스릴러수준을 넘어

심리나 감정 묘사에서 꽤 깊이 있는 서사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임에도 금세 마지막까지 달릴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엔터테인먼트의 귀재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을 맡아 영화화된다는 뉴스가

결코 공치사로만 들리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다만,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설정 평범한 소녀 그웬돌린이 니키타로 진화한다 때문에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아니라) 읽는 내내 위화감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인간병기로서의 그웬돌린의 육체적 자질은 취미처럼 즐겼던 체조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파리에서 보낸 짧은 기간 동안 전문적인 킬러들을 제압할 만큼 급성장합니다.

, 인간병기로서의 심리적 자질 역시 거의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녀는 누군가를 폭행하거나 고문하거나 살해할 만한 마인드 자체가 아예 없던 소녀입니다.

물론 사라진 아빠 찾기라는 목표 자체가 그녀를 급변하게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딸 찾는 아빠아빠 찾는 딸은 절실함이나 무모함에 있어 비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고,

그런 이유 때문에 니키타로 변신한 그웬돌린은 아무래도 쉽게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공주바비로 국한된 여성성에 반발하여 강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다.”지만,

과연 그웬돌린이 강한 여성이 될 DNA를 갖고 있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그웬돌린에게 찾아오는 행운이 너무 쉬워 보인다는 점입니다.

필요한 사람들이 적시에 나타나고, 필요한 정보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녀 앞에 나타납니다.

이런 행운들이 파리, 베를린, 프라하에서 연이어 그녀를 위해 깜짝쇼를 하다 보니

어느 시점에선 너무 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점들 때문에 무척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1개를 빼야만 했습니다.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그웬돌린을 앞세운 후속작 그리드(the greed)’도 출간됐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니키타 급 인간병기가 된 그웬돌린이 어떤 새로운 미션을 맡게 될지 궁금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이 작품에서 새겨진 강한 위화감이 쉽게 잊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필력만 보면 시리즈든 스탠드얼론이든 믿고 읽을 수 있는 스릴러 작가인 건 분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론 이 작가의 새 시리즈나 스탠드얼론이 더 기다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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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죄 : 프로파일링 심리죄 시리즈
레이미 지음, 박소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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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J시에서 여성을 살해하고 그 피를 마시는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수사는 오리무중에 빠지지만, 범죄학을 전공하는 J대학원생 팡무 덕분에 사건은 해결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피로 얼룩진 연쇄살인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난다.

천재적 프로파일러인 팡무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더는 수사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지만,

유명 연쇄살인범들을 모방한 끔찍한 수법의 살인극이 연이어 발생하는데다

범인이 살해 현장마다 다음 사건을 암시하는 단서를 남겨놓는 것은 물론

자신과 가까운 인물들까지 희생되기에 이르자 적극적으로 수사에 가담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던 중 범인의 궁극적 목표를 깨달은 팡무는 이내 패닉상태에 빠진다.

 

● ● ●

 

550페이지에 달하는 꽤 두툼한 분량의 중화권 미스터리입니다.

이 작품은 작가의 심리죄시리즈 중 한 편인데,

(시리즈 첫 편이 아닌 것 같지만) 국내에 제일 먼저 소개된 걸 보면

아마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했던 작품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과거 끔찍한 살인사건에 연루됐던 팡무는 그 트라우마로 인해 여전히 고통을 겪습니다.

(시리즈 가운데 일곱 번째 독자가 그 사건을 다룬 작품입니다만 아직 미출간 상태입니다.)

그 때문에 천재적 프로파일러임에도 불구하고 살인사건에 연루되고 싶어 하지 않지만

운명은 그에게 편안한 삶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흡혈살인이라 불리는 끔찍한 사건을 해결하는데 일조한 팡무는

그 과정에서 공안경찰인 타이웨이와 인연을 맺게 되고,

이후 그와 함께 J대학을 무대로 벌어지는 희대의 연쇄살인사건에 깊숙이 개입하게 됩니다.

 

중화권 미스터리 가운데 잔혹함으로 치면 마옌난의 사신의 술래잡기에 버금가는데

팡무가 상대하는 범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쇄살인범의 범행수법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엽기적인 창의성까지 발휘하여 현장목격자들을 충격에 빠뜨립니다.

, 현장에 다음 사건을 암시하는 듯한 단서들을 남겨놓는데

그것은 팡무만이 눈치 채고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모호하거나 정교하게 설계돼 있습니다.

거듭되는 끔찍한 살인사건 속에서 팡무는 범인의 의도와 심리를 조금씩 캐내지만

그 궁극적인 목표를 알아낸 뒤에는 급격하게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제목대로 심리죄또는 심리전쟁을 방불케 하는 서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범인의 범행수법이나 주인공을 비롯한 인물 캐릭터 설정만 보면

역시 대륙의 스케일이라는 느낌을 저절로 받게 되는데,

그 점은 동시에 좀 과장이 심하다라는 역설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결과를 위해 과정을 지나치게 인공적이거나 작위적으로 부풀렸다고 할까요?

(이 때문에 별 0.5개가 빠졌으니, 이 작품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대한 분량이 큰 위화감 없이 순식간에 읽히는 걸 보면

잔혹함이나 선정성뿐 아니라 디테일한 미스터리와 꼼꼼하고 리얼한 범죄심리 묘사가

독자의 기대를 상회한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팡무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저런 조연들과 사연들이 등장하는데,

(전작을 못 읽은 탓이겠지만) 다소 과하게 동어반복되거나 사족처럼 길게 설명된 탓에

간혹 모호함과 지루함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이 모호함을 불식시키려면 팡무의 과거를 다룬 일곱 번째 독자를 읽어야만 하는데,

프로파일링이 좋은 반응을 얻어 다른 시리즈들도 조만간 국내에 소개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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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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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프랑스의 시골 마을 보발.

12살 소년 앙투안은 숲 속에서 우연한 사고로 옆집 꼬마를 죽이고 만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는 시신을 나무 둥치 구멍에 숨긴다.

이후 실종수사가 진행되지만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탓에 사건은 조용히 묻힌다.

12년 후, 앙투안은 비밀을 가슴에 묻은 채 의사가 되어 파리에서 살고 있다.

평온했던 일상은 그가 그토록 꺼려왔던 고향을 방문하게 되면서 깨어지고 만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인용했습니다.)

 

● ● ●

 

세 번째 만난 피에르 르메트르의 작품입니다.

제일 먼저 시도했던 알렉스는 도저히 번역을 따라갈 수 없어 중도에 포기했고,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지금은 웨딩드레스로 출간)는 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당연히 스릴러라고 생각하고 읽은 이 작품은

스릴러의 외형을 띄고 있긴 하지만 본질은 한 소년의 고통스러운 성장사에 가깝습니다.

, 어딘가 난해한 느낌이 드는 사흘 그리고 한 인생보다는

죄와 벌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12살에 저지른 우발적인 살인과 시신유기,

그날 이후 언제 체포될지 모른다는 악몽과 공포에게 점령당한 12년의 시간들,

그 시간들이 흐른 뒤 잠시나마 장밋빛 미래를 꿈꿨지만 결국엔 맞이해야만 했던 파국,

그리고 뒤늦게 깨달은 자신의 기구한 운명 등

한 소년의 죄와 벌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디테일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독자는 내내 모순된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아무리 우발적인 살인이라 해도 시신을 유기하고 스스로 죄를 밝히지 않은 앙투안을 보면서

과연 우리의 주인공이 체포돼야 하는 건가, 무사해야 하는 건가라는 딜레마를 겪게 되는데,

바로 이 모순된 감정과 딜레마 때문에 12년 후 앙투안에게 닥친 파국을 지켜보는 일은

독자로 하여금 꽤나 무겁고 착잡한 감정을 갖게 만듭니다.

동시에, ‘진정한 형벌은 무엇인가?’라는 점에 대해서도 자문하게 만드는데,

자유를 구속당한 수형자로서의 형벌몸은 자유롭지만 자아와 정신이 파멸되는 형벌

과연 어떤 것이 더 정의를 구현하는 형벌인지, 또 어떤 것이 더 가혹한 형벌인지,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쉽사리 답할 수 없는 이 자문은 꽤나 긴 여운을 남겨놓습니다.

 

300페이지 남짓한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앙투안이 겪는 악몽과 공포와 불안을 묘사하는데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어서

사건 자체만 추려놓고 보면 중단편에도 충분히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이런 감정 중심의 구성은 극도로 불안한 앙투안의 감정에 이입하게 만드는 힘은 있지만,

동어반복 또는 강요된 감정처럼 읽히는 아쉬움도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나름 막판에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진실들이 쏟아지면서 반전의 묘미도 전해주곤 있지만,

초중반에 지나치게 강조된 앙투안의 심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과유불급이었던 탓에

이 작품의 미덕이 많이 가려졌다는 게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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