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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엑스
재신다 와일더 지음, 이성옥 옮김 / 글누림 / 2018년 4월
평점 :
출판사에서 보내준 서평단 제안 메일에는 이 작품이 ‘에로틱 스릴러’라고 설명돼있습니다.
표지는 의도적으로 선정성을 강조했고(개인적으로는 부작용이 더 커 보이는 표지입니다.),
내용 역시 성애 묘사가 꽤 많아서 자칫 작품의 본질보다 ‘19금 코드’만 돋보일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론 ‘에로틱 스릴러’보다는 ‘욕망에 관한 심리물’이란 타이틀이 더 적합해 보입니다.
혹시 선정적 묘사를 불편하게 여기는 독자라도 차근차근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면
“사람의 심리와 욕망이란 정답도 모범답안도 없고 어디로 튈지 전혀 예측할 수도 없다.”는,
쉽게 이해될 수도, 또는 전혀 이해 안 될 수도 있는 모호한 명제를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6년 전 사고로 자신의 이름은 물론 모든 기억을 통째로 잃은 뒤
(자신을 구해줬다고 주장하는) 미끈한 조각남 케일럽의 소유물로 살아온 마담 엑스는
맨해튼의 호화로운 건물 한 층에서 감금 아닌 감금의 시간을 보냅니다.
대외적으로는 예약이 줄줄이 밀린 ‘개망나니 재벌 2세 예절 교육가’이지만,
그녀는 자신을 찾아온 고객들과의 만남 외엔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습니다.
TV도 컴퓨터도 없는 창밖으로 세상을 내다볼 수만 있을 뿐 외출은 절대로 금지돼있습니다.
그런 그녀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케일럽의 성적 도구입니다.
케일럽은 그녀에게 6년 전 사고에 대해서도, 그녀의 정체에 대해서도 일체 함구합니다.
그저 필요할 때 들러 일방적인 성욕만 해소하곤 사라져버립니다.
하지만 엑스는 그런 자신의 처지에 대해 의문도, 저항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엑스에게 예기치 못한 일대 전환점이 된 ‘그날’이 찾아오고,
그녀는 “나는 누구인가?” 또는 “케일럽은 내게 무엇인가?”라는 위험한 자문을 시작합니다.
또, 엄격하게 금지된 ‘창밖의 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들뜨기 시작합니다.
‘그날’ 이후 엑스에게 있어 케일럽은 양립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 됩니다.
욕망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증오의 대상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이 지점이 본격적인 스토리의 시작점이지만 구성 면에서 볼 때 좀 늦었다는 생각이고,
약간은 작위적인 냄새가 나서 좀더 그럴듯하게 설정됐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엑스는 주저합니다.
아무 기억도 남지 않은 엑스에게 있어 지난 6년은 인생의 전부일 수밖에 없고,
케일럽은 유일하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엑스가 과연 케일럽을 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바깥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까요?
‘마담 엑스’는 바로 이런 양립 불가능한 두 욕망의 충돌을 다룬 작품입니다.
스릴러라는 소개 때문에 (저처럼) 권선징악이나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독자가 많겠지만,
작가는 살짝살짝 그런 기대감을 충족시키면서도 결국엔 심리물의 서사를 펼쳐놓습니다.
그 때문에 어딘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듯한 엔딩,
또 응원하기도, 비난하기도, 안쓰러워하기도 어려운 엑스의 마지막 선택에 대해서는
독자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개인적으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주제에 부합하는 엔딩이라는 생각입니다.
노출씬만 어떻게든 해결된다면 꽤 묵직한 심리영화 한 편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과연 ‘마담 엑스’가 영화로도 만들어질 수 있을지 사뭇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