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 케이스릴러
장민혜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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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가온지구 임대아파트 화단에서 소녀의 시신이 발견된다.

시신에 있던 에메랄드빛 딱정벌레가 중대한 단서가 되고,

살인전력이 있는데다 집안에 곤충을 키우며 사는 10대 소년 다인이 용의자로 잡힌다.

살해된 소녀의 엄마 현지는 절망 속에서 딸의 죽음의 진실을 찾기 위해 분투한다.

다인으로부터 사건의 열쇠를 얻으려는 현지, 세상과 문을 닫고 곤충과만 소통하는 다인.

다인의 곤충을 통해 서서히 밝혀지는 범죄의 끔찍한 실상들과 고통.

그 뒤에 숨은 괴물을 찾기 위해 현지와 다인은 화해를 시도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사건의 골자는 간략합니다.

살인용의자로 지목된 평범치 않은 소년, 수사결과에 회의를 품은 형사와 피해자의 엄마,

그리고 반전을 통해 드러나는 진범의 정체와 사건의 진실이 그것인데,

이 상투적인 서사를 상투적이지 않게 만드는 것은 바로 곤충이라는 소재입니다.

화단에서 발견된 소녀 시신에서 나온 특이한 종의 딱정벌레,

미궁에 빠진 사건을 (법곤충학자의 도움을 받아) 딱정벌레를 통해 해결하려는 형사,

과거 엄마와 동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고, 지금은 온갖 곤충에 둘러싸여 사는 소년 등

미스터리 전반에 걸쳐 곤충이 중요한 단서이자 동기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곤충은 결과적으로는 서사 자체를 비현실적으로 변질시킨 주범이기도 합니다.

피해자, 형사, 범인 등 모든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곤충과 연결됐다기보다는

다분히 작가의 구상에 따라 작위적으로 곤충에 매몰돼버렸기 때문입니다.

 

평소 곤충을 통한 범행시간 추정에 (약간의) 관심 정도만 있던 형사는

피해자 시신에서 발견된 특이한 종의 딱정벌레에 과도하게 집착합니다.

그 때문에 수사방향이 바뀌고 주민과 형사들이 곤충채집에 나서기까지 하는데

아무리 봐도 좀처럼 납득하기 힘든 설정입니다.

,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은 과거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곤충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집 전체를 곤충들의 서식을 위해 꾸며놓을 정도로 특이한 캐릭터로 설정됐는데,

이 대목 역시 그럴 듯해 보이는공감을 사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다소 판타지처럼 묘사된 소년의 곤충에의 집착은 동기나 과정 모두 부자연스러워서

내내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또 한 가지 아쉬웠던 대목은 주요 인물들에게 과도한 트라우마를 심은 점입니다.

용의자로 지목된 소년, 진실을 찾는 형사, 피해자의 엄마 등 대부분의 주요인물들이

꽤나 참혹하고 폭력적인 가족사 또는 개인사를 지닌 것으로 설정됐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공적인 포장처럼 읽혔습니다.

 

이런 부자연스러움들 때문에 (고백하자면) 2/3쯤에서 책장을 접었다가

결과만이라도 알고 싶은 욕심에 스킵하며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는데,

아무래도 목에 가시처럼 남은 위화감이 너무 강했던 탓인지

막판에 드러난 진실이 그리 놀랍거나 눈길을 끌만하다고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요약하자면, 시도는 나름 신선했지만, 왠지 그 시도에 사로잡혀 서사가 부실해졌다고 할까요?

인물들이 곤충에 집착하는 이유만이라도 설득력이 있었다면

중도포기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 1개는 충분히 더 줄 수 있었을 거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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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가라 1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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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는 자기 방에서 감쪽같이 실종된 여자아이의 행방을 뒤쫓는다. 경찰의 베테랑 수사팀과 함께 영아 고문 살해 이력이 있는 부부 범죄자를 추적하던 도중, 사건이 단순한 유괴를 넘어 도시를 지배하는 갱과 마약 조직과도 연루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켄지와 제나로 앞에 드러난 진실은 충격적인 결말을 예고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켄지&제나로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한국에는 2006년에 소개됐지만, 원작은 1998년에 출간됐으니 꼭 20년이 됐습니다. 그만큼 아날로그적인 작품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미덕이라는 생각입니다. 스마트폰도 내비게이션도 최첨단 무기도 없지만 켄지와 제나로는 몸과 머리로만 싸우는 전형적인 사립탐정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이번에 켄지와 제나로가 마주한 사건은 범죄 중에서도 가장 질이 나쁜 유아납치입니다. 더구나 납치의 배후에 갱, 마약조직, 검은 돈이 복잡하게 얽혔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아이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낮다는 점 때문에 더욱 초조해집니다. 미궁에 빠졌던 수사는 제나로의 눈썰미 덕분에 급물살을 타지만 결정적 순간에 예상치 못한 반격을 당하면서 경찰마저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고 맙니다. 그렇게 반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켄지의 활약으로 수사는 급진전되지만 켄지와 제나로는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씁쓸하고 비극적인 엔딩에 도달하고 맙니다.

 

사실, 피해자가 어린 아이인 작품은 읽는 독자 입장에서도 입맛이 쓸 수밖에 없습니다. 소시오패스 또는 소아성애자에 의한 납치, 살해, 고문을 묘사한 대목은 아무리 살인을 다룬 장르물을 좋아하는 독자라도 마음 편히 읽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제나로는 동료이자 연인인 켄지에게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속내를 어렵게 밝히는데, 그런 상태에서 납치된 아이를 되찾으려는 두 사람의 마음은 그 어떤 잔혹한 사건을 다룰 때보다 진지하고 절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자신의 아이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듯한 두 사람은 단순한 긴장감이나 스릴감을 넘어 안쓰러움과 애틋함까지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다만, 한발 떨어져 큰 그림을 보면 다소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납치 배후로 보이는 갱, 마약조직, 검은 돈은 그 관계나 흐름이 명확해 보이지 않고, 누가 나쁜 놈인지, 누가 동정 받을 자인지, 누가 정의를 구현한 것인지도 선명하지 않고, 마지막에 드러난 납치사건의 진상 역시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 조연인 베테랑 경찰들의 비중이 워낙 커서 켄지와 제나로의 활약이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점도 무척 아쉬웠습니다. 앞선 작품들이 꽤 복잡한 이야기를 전개시키면서도 갈등관계가 명확했고, 사건 자체 또는 수사 과정에서 계속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시켰던 반면, ‘가라~’는 이것저것 많은 양념들이 빠진 듯한 싱겁고 모호한 맛이었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시리즈지만, 여섯 편밖에 출간되지 않아서 아끼고 아끼며 읽다 보니 전편인 신성한 관계이후 14개월이 지나서야 가라~’를 읽게 됐습니다. 이제 남은 작품은 비를 바라는 기도문 라이트 마일뿐인데, 아껴 먹던 맛난 음식이 바닥을 드러낸 것을 지켜보는 듯한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겨우 두 편밖에 안 남았으니 더더욱 아껴 읽게 될 것 같은데, 언제쯤 책장에서 꺼내 먼지를 털고 첫 페이지를 펼칠지는 저도 전혀 예상 못하겠습니다. 새삼 데니스 루헤인이 왜 켄지와 제나로의 이야기를 달랑 여섯 편만 그렸는지 야속해질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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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정의
아키요시 리카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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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에게 살해당한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어느 날, 동창들은 자신들이 살해한 여자 노리코로부터 초대장을 받는다.

노리코는 오직 정의만을 추구하고 조금만 법을 어겨도 가차없이 처벌하던 정의의 몬스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친구들이 궁지에 몰렸을 때 도움을 준 은인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데 왜 노리코는 친구들의 손에 의해 죽어야만 했을까.

그리고 그녀가 보낸 초대장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2017년 최고의 작품 중 하나였던 성모의 작가 아키요시 리카코의 신작입니다.

그냥 정의도 아니고 절대정의라는 제목을 보니

제목 자체가 반전이었던 성모만큼 뭔가 불길한(?) 느낌이 먼저 들었습니다.

 

작가는 초반부터 범인들을 공개합니다.

그리고 그녀들이 왜 살인에 이르게 됐는지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차근차근 설명합니다.

미스터리보다는 심리물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이 노리코를 살해한 이유는 그녀의 정의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의감이란 것이 그야말로 절대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칼날 같은 것이었고,

그 어떤 융통성도 개입할 틈 없는 막무가내 식 개념이었던 탓에

노리코와 가까이 지냈던 네 명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크고 작은 잘못에 대해

널 고발할 거야. 정의야말로 가장 소중하니까.”라고 태연한 얼굴로 말하는 노리코에게

오랜 시간 동안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미칠 듯한 답답함과 분노를 느껴야만 했습니다.

 

이 답답함과 분노는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서

읽고 나면 기분 나빠지는 미스터리라는 일본식 조어인 이야미스가 절로 떠오르게 됩니다.

당연히 독자 입장에선 네 친구의 살인이 완전범죄가 되기를 바라게 되지만

성모를 읽은 독자라면 아키요시 리카코가 그리 쉬운 엔딩을 내놓지 않을 것을 잘 알기에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분량도 짧고, 네 명의 친구가 번갈아 화자를 맡아서 속도감도 빠른 작품임엔 틀림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정의의 몬스터로 설정된 노리코의 캐릭터나

그런 노리코의 언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주변 인물들의 반응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읽는 내내 이야미스에 못잖은 위화감을 떨쳐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노리코 같은 사람이 정말 있을까?”라는 의문은 둘째 치더라도

노리코의 폭주하는 정의에 전혀 저항하지 못하는(또는 오히려 존경의 뜻을 표하는) 인물들은

아무래도 결과를 위해 설정된 100% 억지처럼 읽혔기 때문입니다.

노리코가 좀더 노련하거나 현실감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 존재할 것처럼 느껴졌다면

네 친구의 분노와 공포는 작가가 그린 것 이상으로 독자에게 전달됐을 거란 생각입니다.

 

성모이후 후속작을 기다렸던 마음에 비하면 조금은 만족스럽지 못한 책읽기가 됐지만

아키요시 리카코의 신작 소식이 들리면 여전히 기대감이 들긴 할 것 같습니다.

타고난 이야기꾼에, 미스터리와 심리를 매력적으로 배합하는 필력만큼은

이 작품에서도 가감 없이 발휘됐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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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방정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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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사립중학교에서 재난 훈련의 일환으로 실시한 12일 교내 캠프 도중

히노 다케시라는 남자 교사의 부적절한 언동이 알려져 파문을 빚는다.

학생들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것은 물론 무단가출, 자살미수까지 저지른다.

그러나 히노 다케시는 학생들의 주장을 부정하며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인다.

피해자 학부모의 의뢰를 받아 사건을 조사하던 사립탐정 스기무라 사부로는

우연히 교사 측 변호인을 맡은 후지노 료코를 만나고,

둘은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며 진상을 파헤치는 데 협조한다.

교사와 학생의 엇갈리는 진술 속, 이윽고 해묵은 갈등과 오해가 모습을 드러낸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단편보다는 조금 길고, 중편이라기엔 조금 짧은 132페이지 분량의 작품입니다.

방대한 분량으로 유명한 미미 여사가 이 짧은 분량에 무슨 이야기를 담았을까도 궁금했지만,

그에 못잖게 기대가 됐던 건 솔로몬의 위증이후 20년이 지나 변호사가 된 후지노 료코와

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주인공 스기무라 사부로가 콤비를 이뤘다는 점입니다.

 

교사와 학생들 가운데 누군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는 상태에서

후지노와 스기무라는 각각 교사와 학생들에게 의뢰를 받은 변호사와 탐정으로 조우합니다.

하지만 으로 만나긴 했어도 두 사람은 대립이 아니라 전략적인 제휴를 맺습니다.

그리고 각각 교사와 학생들은 물론 주변인 탐문을 통해 그날의 진실을 추적합니다.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숙명에 가까운 필연이 막판 반전으로 설정된 점이나

교육현장에서 쉽사리 사라지기 힘든 권력, 강요, 저항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 점,

스기무라의 날카롭지만 따뜻함과 진정성을 담은 탐문 등은

미미 여사 특유의 매력을 맛볼 수 있는 대목들임에는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분량이 짧다 보니 사건 자체도, 미스터리의 해법도 다소 심심한 편입니다.

, 막판에 밝혀진 진실은 주제의식을 강조하기 위한 교훈적 뉘앙스가 강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제의식이 정확히 무엇인지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후지노와 스기무라의 협업이 기대만큼 안 보인 점이 아쉬웠는데,

스기무라는 (표면적으로는) 원톱 역할을 맡았음에도 큰 임팩트가 안 느껴졌고,

후지노는 존재감 자체가 미미하다가 엔딩에서 주제의식을 강조하는 역할에 그쳤습니다.

특히 잘못을 타이르기보다 아이들 눈높이에서 고민하고 이해하고 분노하는후지코의 캐릭터는

작품 내내 거의 느껴지지 않다가 마지막에 주입식 정보처럼 설명되고 있어서

솔로몬의 위증에서 공감했던 카리스마나 캐릭터의 연장선이라 보기 어려웠습니다.

 

후지노와 스기무라를 내세운 스핀오프라면 좀더 복잡다단한 사건과 사이즈가 큰 서사를 통해

미미 역사 특유의 방대한 장편이 나올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막간극 정도의 무게감이 전부였던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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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대로
켄 브루언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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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출소한 미첼 앞에 호화로운 생활을 미끼로 달려드는 범죄의 그림자들.

그러나 죗값을 치르고 나오자마자 다시 범죄에 가담하는 것이 마뜩지 않았던 그는

우연히 은퇴한 여배우 릴리언의 저택에서 잡역부로 일을 하게 된다.

과거의 영광에 빠져있는 릴리언과 집사 조던의 묘한 관계는 미첼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릴리언 역시 미첼의 거친 매력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미첼은 조직 보스의 스카웃 제의를 받는 한편, 우연히 만난 여인과 진정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이 두 만남은 미첼에게 예기치 못한 파국을 몰고 오게 된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밤의 파수꾼으로 만났던 켄 브루언을 1년 반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지독한 독설과 비아냥, 독특한 주인공 캐릭터가 인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스릴러 또는 누아르의 미덕이 기대했던 만큼 잘 안 보여서 꽤 실망했던 기억이 있었는데,

런던대로에서는 작가의 명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작품은 독특하게도 영화(‘선셋대로’, 1950, 빌리 와일더 감독)를 원작으로 한 소설입니다.

보통,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드는 경우는 있어도 그 반대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드뭅니다.

더구나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가진 영화를 소설로 각색한다는 건

어지간히 그 작품에 꽂히지 않고는 도전하기 쉽지 않은 일이죠.

재미있는 건, 이렇게 영화를 각색한 소설을 이용하여 또다른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런던대로는 전형적인 누아르입니다.

갓 출소한 미첼은 대단히 폭력적이고 주저없이 범죄에 가담하면서도

거리의 노인을 폭행한 10대들을 응징하고, 죽은 노인을 위해 진실한 애도를 표하는가 하면,

새로 만난 연인을 통해 바람직한(?) 미래를 꿈꾸는 순정남이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지 미덕을 모두 갖춘 선한 악당이라고 할까요?

그런 점에서 홍콩 누아르의 대표선수 주윤발이나 착한 킬러 레옹이 쉽게 연상되기도 합니다.

 

미첼은 절친의 불법적인 수금을 돕기도 하고, 과거 동료들의 복면강도에도 가담하지만,

한편으론 조직의 중간보스 자리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대신 우연히 제안 받은 건실한 일자리는 마다하지 않는데,

바로 그 일자리가 은퇴한 노배우 릴리언의 집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40대 중반의 미첼은 60대 노배우에게 욕망을 느끼기도 하지만,

또 동시에 자기보다 한참 어린 여성에게 진심어린 애정을 품으며 미래를 설계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정리해놓고 보면 미첼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미첼처럼 충동적이거나 오락가락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런던대로는 이렇듯 사랑, 욕망, 범죄 사이를 부유하는 미첼의 삶 중

짧은 한 토막을 뽑아내어 누아르로 포장한 작품입니다.

나름 반전도 있고, 누아르다운 폭력성도 적절히 가미된데다 비극성도 띄고 있어서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다만, 이야기의 방점이 정확히 어디에 찍혔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만하고,

미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 모호해서

다 읽고도 한 줄로 정리하기 어렵다는 점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 사랑(새로운 출발), 욕망(노배우와의 에로틱한 관계), 범죄(그를 스카웃하려는 조직보스)

어느 하나도 이 작품의 메인 테마 자리를 확고히 꿰차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분량마저 짧아서 이제 뭔가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하던 시점에 마지막 페이지가 등장합니다.

맛난 음식이 나올 것 같았는데, 결국엔 변죽만 울리다 만 느낌이랄까요?

분위기나 캐릭터 모두 끝내주게 매력적이었다는 점은

역설적이게도 저의 아쉬움을 더 크게 만든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이 아쉬움은 앞서 읽은 밤의 파수꾼때와 거의 닮았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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