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지켜보고 있어 스토리콜렉터 65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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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 시리즈(한국 출간 기준) 네 번째 작품입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지만 뛰어난 직관과 추리력으로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온 그가 이번에는 곤란한 상황에 빠진 자신의 환자를 돕다가 의문의 살인사건에 개입하게 됩니다.

거액의 빚만 남기고 종적을 감춘 남편 때문에 매춘까지 하게 된 마니는 주변 인물들이 연이어 살해당하자 용의선상에 오릅니다. 정황 외엔 물증도 단서도 없어서 체포는 면하지만 마니는 눈앞에 닥친 현실 때문에 남편을 찾는 일이 시급해졌고 담당의사인 조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조는 마니의 사연을 심상치 않게 여기곤 퇴직 경찰인 루이츠와 함께 조사에 나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니가 감췄던 비극적인 과거사는 물론 사건의 진상을 목도하게 됩니다.

 

전작인 미안하다고 말해가 심리학자보다는 명탐정으로서의 조 올로클린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은 두 캐릭터가 잘 버무려진 조를 그리고 있습니다. 살인사건에 말려든 자신의 환자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마니를 도우면서 심리학자로서의 통찰력은 물론 명탐정으로서의 추리력까지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작품 중후반에나 설명되는 중요한 설정이라 자세히는 소개 못하지만 마니의 심리적 문제가 이번 사건의 핵심 단서로 등장하면서 조의 전공인 임상심리학이 모처럼 그 진가를 드러냅니다. ,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마니를 점찍은 경찰과 달리 조는 마니의 남편이 사라지기 직전에 연락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만나면서 마니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애쓰기도 합니다.

 

독자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는 또 다른 중요한 설정은 작품 제목대로 끊임없이 마니를 지켜보고 있는 그 누군가입니다. 마니의 수호천사처럼 보이기도 하고, 거꾸로 위협적인 인물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누군가때문에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속도감과 긴장감을 얻게 되는데, 아쉬운 점이라면 이 대목이 꽤 늦게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밑바닥을 전전하는 마니의 궁핍한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꽤 많은 분량이 초반에 할애되는데, 그런 탓에 마이클 로보텀 작품답지 않게 초반 100페이지가 넘도록 느슨함과 지루함이 느껴졌습니다. 물론 막판에 밝혀진 마니의 비밀의 폭발력을 위해 꼭 필요한 토대인 건 맞지만 동어반복처럼 읽힌 게 사실입니다.

 

중후반부터 스릴러의 미덕이 발휘되면서 재미를 배가시켰고,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남아있어서 역시 마이클 로보텀!”이란 찬사가 저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가장 아쉬운 점 하나만 꼽으라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진 범인의 실체입니다. 동기도 방법도 목표도 비현실적인 면이 과하다고 할까요? 물론 그동안 조가 맞닥뜨린 범인들 모두 비정상적으로 뒤틀린 심리적 문제를 갖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름 소시오패스로서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의 범인은 인공미가 강하게 느껴진 게 사실입니다.

 

별거 상태에 있는 조의 가족들을 비롯 여경감 베로니카, 심리학자 빅토리아 나파르스텍 등 전작에 등장했던 매력적인 조연들이 안 보인 건 아쉬웠지만, 거의 투톱 주인공처럼 활약한 퇴직 경찰 빈센트 루이츠는 여전히 압권의 캐릭터였습니다. , 딱히 조를 괴롭히는 악역이 눈에 띄지 않아서 긴장감이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 공백을 메울 만한 크고 작은 조연들이 충분히 자기 역할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아쉬움 때문에 별 0.5개를 빼긴 했어도 흡입력 강한 마이클 로보텀의 글빨과 연민과 응원을 자아내는 조 올로클린의 매력 덕분에 이번에도 기대한 만큼의 만족스러운 책읽기가 됐습니다. 들은 풍문에 따르면 조만간 후속작인 나를 쳐다보지 마’(Close Your Eyes)가 출간될 것 같은데, 한 해에 두 편이나 조 올로클린의 이야기를 만나는 건 정말 특별한 행운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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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을 파는 가게 - 아시베 다쿠 연작소설
아시베 다쿠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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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하루가 멀다 하고 헌책방을 드나들며 고서를 수집하는

마법에 이끌리듯 들어서선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낡고 허접한 책자를 집어 든다.

오래전 문을 닫은 정신병원의 입원 안내서, 무명작가가 직접 쓰고 제본한 삼류 탐정소설,

결말을 맺지 못한 채 끝나버린 소년 만화, 매혹적인 여인의 사진이 실린 영화 서류철 등...

수수께끼 같은 헌책을 입수한 후 나타나는 섬뜩한 징조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계속 빠져들고

급기야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결과를 알지 못한 채,

작가를 찾아 나서거나 내용의 진위를 파헤치거나 미완성 부분을 직접 메우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책장 안쪽의 세계가 서서히 현실을 침범해온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지금은 인터넷으로도 중고서적을 쉽게 검색하고 구입할 수 있지만

여전히 헌책방에 대한 아날로그적 느낌은 아련하고 애틋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작품의 주요 무대인 헌책방은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소설 중심의 헌책방이 아니라

병원 안내 서적이나 영화제작 관련 서류철 등 그야말로 종이로 된 모든 것이 보관된,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오래된 종이들의 보관소같은 느낌입니다.

 

헌책방을 찾는 를 그린 다섯 편과 헌책방을 운영하는 를 그린 한 편까지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입니다.

다섯 편의 는 그다지 잘 나가지 못하는 작가지만 헌책방에서 구한 귀한 자료들을 통해

작품의 영감을 얻거나 그 자료들 속에 숨어있는 진실 찾기에 나서곤 합니다.

는 늘 헌책방에서 구한 자료들을 볼 때마다 기시감 또는 묘한 운명 같은 걸 느끼는데

실제로 그 자료들을 추적하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인연이 닿아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문제는 그 추적의 끝이 대체로 파국에 이르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파국은 마지막 수록작이자 표제작인 기담을 파는 가게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미쓰다 신조 류의 기담을 좋아하는 입장에서

이 작품에 수록된 기담들 자체는 공포심이나 여운에 있어 그리 파괴력이 크진 않습니다.

여름에 어울리는 소름 돋는 기담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소한 해프닝의 기록이라고 할까요?

물론 마지막 수록작에서 밝혀지는 기담을 파는 가게의 진실은 꽤나 놀라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작가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마지막 수록작에서 모두 밝혀집니다.

 

무서운 기담을 바랐던 독자에게는 좀 실망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미쓰다 신조와는 좀 다른 톤의, 그것도 헌책방에 관한 소소한 기담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나절이면 완독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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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섬광 - 김은주 미스터리 소설
김은주 지음 / artenoir(아르테누아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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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컬 미스터리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다

(거의 처음 읽는 것 같은) 한국작가의 메디컬 미스터리라 무척 기대가 됐던 작품입니다.

 

일단 오프닝은 흥미롭습니다.

15살 소녀 수인이 5년 만에 코마상태에서 깨어난 날, 동갑내기 소년 고윤이 투신자살합니다.

고윤은 수인과 거의 동시에 코마상태에 빠졌다가 1년 만에 깨어났고,

그 뒤로 아직 코마상태인 수인을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독백처럼 들려주던 소년입니다.

수인은 코마상태에서도 고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고윤의 죽음이 병원이나 경찰의 결론처럼 일반적인 자살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수인과 고윤의 담당간호사였던 희정 역시 고윤이 절망감에 자살한 것이 아니며,

그에 관한 결정적인 단서도 손에 넣지만 쉽사리 행동에 옮기지 못합니다.

다른 경찰들과 달리 고윤의 죽음에 의문을 품은 형사 무원은 이리저리 조사를 진행하지만

어디에서도 자신의 의문을 해결해줄 단서를 찾아내지 못해 답답할 따름입니다.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두운 터널을 함께 달린 형사, 간호사, 소녀.”라는 본문 속 표현처럼

이 작품은 무원, 희정, 수인이 고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았던 대형병원의 추악한 이면,

모두의 무관심 속에 무기력하게 절망해야 했던 의료사고 희생자 유족들의 슬픔,

그리고, 진실을 알면서도 오락가락하는 사건 관련자들의 불안감 등이 디테일하게 묘사됩니다.

 

사실, 이야기는 무척 단선적입니다.

코마상태에서 깨어난 소녀라는 특별한 설정 외에는

신약 개발, 대형병원의 횡포, 인명조차 도구로 여기는 탐욕, 무기력하게 이용당한 희생자 등

전형적인 메디컬 미스터리의 요소들이 공식처럼 배치돼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 역시 큰 무리 없이 무난하게 흘러갑니다.

분량도 300여 페이지에 불과해서 금세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릴 수 있는데,

문제는, 다 읽고 나면 어딘가 허전하기도 하고,

특히 긴장감 같은 건 거의 느끼지 못한 듯한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입니다.

그 아쉬움을 일일이 다 언급하면 서평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 같아서,

읽는 동안 메모했던 단문들을 나열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 단서들이 다 노출됐는데 정작 주인공들은 아무 행동도 안 한다. 고민만 하고 있다.

  각자 갖고 있는 단서나 의구심을 상대에게 보여주기만 해도 모든 게 해결될 텐데...

- 주인공 형사의 가족사나 트라우마가 이 작품에 꼭 필요한 설정이었나?

  정작 형사는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서 별 역할을 한 게 없다.

- 사건과는 무관하게 자기 연민에만 빠진 조연들. 왜 등장한 걸까?

  그들의 어두운 개인사를 일일이 다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

- 악당은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기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무기력하게 주인공에게 당하고 만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악당.

- 제목을 너무 추상적으로 지었다.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메디컬 미스터리라고 해도 인물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되고 긴장감이 팽배해야 하지만,

이 작품의 전반적인 기조는 조용함그 자체입니다.

수인은 고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힐 결정적 증거가 존재한다는 걸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애쓰지 않습니다.

희정 역시 결정적 증거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저 고민만 할뿐 아무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무원은 형사로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탐문만 할뿐 정작 실속은 별로 없습니다.

세 인물이 한 번만 진지한 대화를 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패를 드러내기만 했어도

수사는 급물살을 탈 수 있었고 이야기는 좀더 확장성을 지닐 수 있었을 텐데,

작가는 엉뚱하게 주인공과 조연들의 개인사나 심리상태 묘사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

그러니 긴장감 없는 책읽기과 다 읽은 뒤의 허전함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재 자체나 필력만 보면 콘텐츠진흥원 지원사업 선정작으로 뽑히기에 충분한 퀄리티지만

이 작품을 원작으로 2차 콘텐츠가 제작되려면 훨씬 더 역동적인 서사가 가미돼야 할 것입니다.

조용함자체가 미덕인 메디컬 미스터리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작품 속 인물이나 사건은 애초 조용함과는 거리가 멀게 설정됐기 때문입니다.

문장이나 필력만 보면 후속작을 충분히 기대할만한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후속작도 장르물이라면 좀더 역동적인 서사를 고민하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사족으로...

번역물의 오타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작가의 작품에서 오타가 발견되면 참 난감합니다.

작가의 오타인지, 편집자의 실수인지 모르겠지만 씁쓸함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처음엔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다가, 너무 많다 싶어서 따로 정리해봤습니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제 눈에 띈 것만 정리한 것입니다.

 

p31, 6. 희정의 성식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희정은)

p34, 4. “수인을 손을 뻗어...” (수인은)

p47, 7. “형사라면 누구나 불량식품으로 시민의 건강을 보호해야..” (불량식품으로부터)

p70, 10. “레지던트들이 자신의 말을 경철하고 있다는..” (경청하고)

p84, 1. “자신과 같이 처지에 있던 친구의...” (같은)

p114, 8. “아이들 이야기를 드리려면 5년 전 일부터 말씀을 드려야...” (들려드리려면)

p116, 1. “무원의 말이 희정은 누가 가방 속으로 손이라도 불쑥 넣은 양 당황...” (말에)

p144, 6. “매일 작은 책상 앉아서 일하고 있는 그녀가...” (책상에)

p151, 1. “무원의 희정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형사의 입장에서 이해했다.” (무원은)

p153, 9. “1인실은 그런 것들은 아주 천천히 처음부터 끝까지 뜯어보기에...” (것들을)

p184, 8. “친구가 털어놓은 비밀은 들은 것은 물론...” (비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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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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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 바닥이 없는 깊은 구덩이로, 지하 세계나 지옥 따위로 연결되는 곳.”

 

어감 자체도 꽤나 음울한 분위기를 발산하는데 그 의미는 한결 더 심각한(?) 단어입니다.

이 단어를 제목으로 삼은 작가는 독자의 예상치를 훨씬 뛰어넘는,

그러니까 지옥 따위로 연결되는 곳이 아니라 지옥 그 자체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가 등장합니다.

밑바닥을 전전하며 소심하게 살아오던 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곤

자신 안에 내재돼있던 소시오패스의 기질을 발견한 뒤 잔혹한 살인마로 진화합니다.

소시오패스들이 모여 만든 회사의 중간간부인

의뢰인들이 지목한 자들을 길고 긴 시간동안 잔혹하게 고문한 뒤 쓰레기처럼 처리합니다.

전직 의사인 는 약물과 가스를 이용하여 죽음을 간절히 바라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줍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앞선 두 명의 는 명백히 소시오패스라 칭할 수 있는 자들인데,

이들이 먹잇감을 선택하고 처리하는 방식은 정의로운 사적 복수에 입각한다는 점입니다.

내재된 소시오패스 기질을 발견한 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은

자기 주위의 사악한 자들을 차례차례 응징해나갑니다.

그럴 때마다 엔돌핀의 폭발과 함께 삶의 희열을 만끽하던

자신에게 부여된 난이도 높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목숨을 건 한판을 준비합니다.

두 번째 는 범죄 피해자들의 의뢰를 받아 가해자들을 응징하는 회사의 차장님인데,

그는 늘 하얀 가면을 쓴 채 먹잇감들의 뼈와 살을 가뿐하게(?) 발라내곤 합니다.

, 그의 타겟 역시 모두 악인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세 명의 는 각각 싸움꾼’, ‘사냥꾼’, ‘파수꾼이란 이름으로 한 챕터씩 화자를 맡다가

막판에 이르러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며 이야기 중심으로 모여듭니다.

 

정의를 구현하는 소시오패스는 어쩌면 사적 복수에 관한 한 최고의 설정인지도 모릅니다.

특히 조사부, 현장부, 처리부 등으로 분업화된 소시오패스 회사 소속의 유능한 차장님은

사적 복수를 즐겨 읽는 저로서는 판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로 보였습니다.

다만, 이 작품이 사적 복수 자체를 주제로 한 작품은 아니라는 점,

그래서 제대로 된 형벌이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를 지킬 수 있는가?”라는 홍보카피가

이 작품의 메인스토리나 주제 자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취향만 놓고 보면 별 5개도 부족한 작품이긴 하지만,

0.5개를 뺀 이유는 서사나 스토리의 힘보다는 폭력 그 자체에만 너무 몰두했다는 점,

꽤 놀랍기는 해도 막판 반전이 다소 설명이 부족했고 작위적이었다는 점,

그리고 무저갱이라는 제목이 주제를 반영하기보다는 겉멋처럼 보였다는 점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라는 점에 대해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설정이 부족했다고 할까요?

물론 이 작품에서 ?’라든가 주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 장을 덮은 뒤 여운 같은 건 남지 않았고, 단지 피비린내만 진동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이 갈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이유로 저 역시 다른 분들의 서평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입니다.

 

사족으로...

일단, 잔혹한 폭력 묘사에 조금이라도 거부감이 있는 독자는 이 작품을 피해야 합니다.

영화 올드보이의 가장 잔인한 장면들만으로 400여 페이지가 꽉 차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지간해선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 저도 일부 장면에서는 꽤나 심기가 불편할 정도였는데,

그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긴 해도 때론 과도하게 느껴진 것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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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죽인다
손선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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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기사로 일하던 손창환은 오래 전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린 박상준을 손님으로 태웁니다.

손창환은 박상준을 죽이겠다는 일념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데,

어느 날 박상준의 딸이 자신을 납치해달라며 다가오면서 그의 계획은 엉망으로 꼬입니다.

하지만 손창환은 이 어이없는 자작 납치극 이면에 놓인 진실을 너무 늦게 깨닫게 됩니다.

내가 먼저 죽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는 오히려 또다시 인생이 망가질 위기에 봉착합니다.

 

● ● ●

 

2014년에 출간된 이웃집 두 남자가 수상하다이후 두 번째로 만난 손선영의 작품입니다.

유머가 섞인 일상 미스터리로 처음 만났던 작가라

복수와 납치 등 꽤 센 설정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죽이려는 남자의 딸이 자신을 납치해달라며 매달리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협박 방법과 요구액까지 하나하나 코치를 하며 납치극을 이끌자 손창환은 당황합니다.

복수의 주인공에서 갑자기 납치극의 조연으로 강등된 느낌 때문이죠.

이러다가 복수는커녕 지은 죄도 없이 납치범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갈등에 빠지지만,

손창환은 내내 남자의 딸과 동행하며 수십억의 몸값을 받아내기 위해 전념합니다.

그러다가 이 자작 납치극의 진짜 정체에 대해 깨닫곤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는 줄거리인데...

 

일단 흥미롭게 읽히는 이야기입니다.

독자는 자작 납치극을 지켜보면서 내내 강한 위화감을 느끼게 되고

(프롤로그를 생각해보면) 분명 이 납치극 이면에 진짜 이야기가 있을 거란 점 때문에

언제 어디쯤에서 그 단서가 노출될지 무척 궁금해지게 됩니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그 단서가 희미하게나마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사실 클라이맥스에 가서 거의 한꺼번에 폭죽처럼 터집니다.

프롤로그의 청부업자도, 뜬금없이 등장했던 킬러들도 그 대목에서 존재감을 나타내고,

납치극의 조연으로 전락(?)했던 손창환의 진짜배기 복수 역시 막판에 진면목을 발휘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통해 복수하려는 대상이

그다지 나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물론 손창환의 인생을 망가뜨린 박상준은 야비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입니다.

손창환 입장에서만 보자면 열 번을 죽여도 시원찮을 대상이지만,

객관적인 독자의 시선에서는 이 세상에 너무 흔해빠진 평범한 악당에 불과합니다.

 

, 너무 복잡다단한 구성 때문에 스토리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990년대부터 2017년에 이르는 20여년의 다양한 시기가 랜덤하게 뒤죽박죽 등장하고,

어떻게 주인공과 연결될지 짐작하기 힘든 인물과 해프닝이 각 시기마다 툭툭 튀어나옵니다.

손창환의 복수심을 강조하기 위한 과거 시점의 챕터들은 그리 강렬하지 않았고,

갑작스런 청부업자, 킬러의 등장은 오히려 현재 시점의 납치극을 소품으로 격하시켰습니다.

덕분에 클라이맥스는 굳이 저렇게 복수할만한 사연이었나?’라는 의문과 함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액션이 이 작품에 어울리나?’라는 작위적인 느낌을 함께 던져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악당이 꾸민 진짜 범죄는 여러 가지 면에서 현실성이 떨어져 보였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언급은 할 수 없지만

기획, 설계, 실행, 복선 등 대부분의 요소에서 과연 저럴 수 있을까?’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작가 스스로 애착을 가진 이야기라는 점을 후기에서 밝혔지만,

여러 지점에서 현실감이 부족했던 탓에 작가의 의도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입증했던 작가인 만큼

후속작에서는 좀더 현실감이 살아있는 멋진 장르물을 구현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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