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5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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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마지막 날을 맞이한 한겨울의 신주쿠.

한 여인이 거짓으로 자수한 아버지를 도와달라며 탐정사무소를 찾아온다.

사와자키는 의뢰인과 신주쿠 경찰서를 찾지만, 도리어 급작스러운 총격사건에 휘말리고 만다.

진상을 파악할수록 야쿠자의 비밀스런 음모가 드러나고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치닫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작가 후기에도 밝혔듯 이 작품은 탐정 사와자키 시리즈 시즌 2의 첫 작품입니다.

시즌 1의 마지막 작품 격인 안녕, 긴 잠이여를 읽은 지 5년이나 된 탓에

시즌의 의미가 잘 이해가 안 돼서 예전에 쓴 서평을 찾아 읽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어떤 기준이나 이유로 시즌 1,2로 나눴는지는 좀 모호할 따름이었습니다.

 

아무튼...

사와자키는 여전히 건재했고, 독특했고, 쿨하고 하드보일드한 캐릭터였습니다.

의뢰인과의 관계는 공적인 영역을 절대 벗어나지 않고,

자신이 한 일 이상의 수고비는 어떤 이유로든 받지 않으며,

굳이 자신의 공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그야말로 모든 것이 FM 그 자체인 탐정입니다.

 

이번에 사와자키가 맡은 사건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납치와 저격이 거의 동시에 벌어지고 사와자키는 본의 아니게 두 사건에 모두 휩쓸리는데,

이 두 사건은 중반 이후까지 별개인지 하나의 사건인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는데다

등장인물도 상당히 많아서 인물도를 그려가면서 읽어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습니다.

어지간히 집중하지 않거나 띄엄띄엄 나눠 읽으면 독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탓에 다 읽고도 머릿속에서 선명하게 스토리가 정리되지 않았는데,

어쩌면 하라 료 특유의 장점일 수도 있고, 아쉬운 점일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반전을 통해 드러난 진실은 꽤 묵직한 느낌을 줍니다.

예상치 못한 가해자와 피해자 설정도 흥미로웠고

진실을 밝혀내는 사와자키의 아날로그 식 추리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경찰은 물론 야쿠자와도 각을 세우며 의뢰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던 사와자키는

지독할 정도로 집요한 탐문과 수사를 통해 진범이 감추려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아내는데

그제야 ,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놀라운 반전이었습니다.

 

다만, 어딘가 막판에 급조된 진실 밝히기라는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히려 중반쯤부터 본론으로 들어갔다면, , 사와자키의 수사가 조금 일찍 정곡을 찔렀다면

이후의 이야기는 훨씬 더 긴장감도 살고 사와자키의 캐릭터도 폭발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서 더 상세히 언급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없어도 됐을 설정이나 인물도 꽤 보였고,

반대로 좀더 일찍, 좀더 디테일하게, 좀더 세게 그렸어야 할 에피소드도 꽤 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와자키와 진범의 대결구도가 너무 뒤늦게 드러난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와자키 시리즈는 다소의 아쉬움과 적당한 만족감을 전해줬습니다.

사실, 이야기의 전개방식이나 하라 료의 문장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사와자키의 매력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저 역시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시리즈를 찾아 읽고 있으니까요.

이제 또 얼마나 기다려야 새로운 사와자키 시리즈를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전작 이후처럼 5년씩이나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만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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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비밀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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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온 전직 육군 파일럿 마야는

남편 조가 딸 릴리와 놀아주고 있는 동영상을 보고 경악한다.

남편은 바로 2주 전에 그녀의 눈앞에서 무참히 살해되었다.

믿을 수 없는 영상에 마야는 보모 이사벨라를 추궁하지만

이사벨라는 화면 속 남자가 보이지 않는 듯이 굴며 도리어 마야를 궁지로 몰고,

급기야는 영상이 담긴 SD카드를 빼앗아 달아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반전의 대가 또는 각종 미스터리 문학상을 석권한 대가라 불리는 할런 코벤이지만

이상하게도 제게는 매번 만족스러운 책읽기를 선사한 작가는 아닙니다.

너무 심오한 심리묘사에 질린 적도 있고, 개운치 않은 반전 때문에 찜찜한 적도 있고,

다 읽고도 머릿속에 선명한 한 줄 줄거리가 정리되지 않은 적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홀드 타이트’(구간 아들의 방’)처럼 다시 읽은 뒤에야 진가를 발견한 적도 있지만요.)

 

비밀의 비밀은 할런 코벤의 매력과 아쉬운 점이 모두 녹아있는 작품입니다.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 쉽지만 의미를 담뿍 담은 문장들, 생생한 캐릭터와 심리묘사 등

재미를 만끽하려는 독자들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외형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건 역시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새로운 양상이 거듭 드러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괴한들에게 살해된 남편이 집에 설치한 몰카에 살아있는 모습으로 찍히는가 하면,

남편의 죽음이 수개월 전 끔찍하게 살해된 언니의 죽음과 연관된 정황이 드러나고,

오래 전 어린 나이에 자살한 막내 시동생의 죽음까지 현재의 사건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자

전직 헬기 파일럿인 마야는 남편과 언니와 시동생의 행적을 찾기 위해 직접 나섭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추악한 진실을 알게 되지만, 이내 마야는 큰 위기에 빠지고 맙니다.

 

이렇듯 재미있는 스릴로서의 미덕을 고루 갖춘 비밀의 비밀이지만,

만점을 주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납득하기 힘든 반전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가장 치명적인 스포일러이니 작은 단서조차 언급하진 않겠지만,

이 작품의 반전은 독자의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드는 충격보다는

그럼 지금까지 읽은 건 다 뭐지?’라는 모호한 의문으로 다가왔습니다.

너무 빨리 읽느라 뭔가 놓쳤나 싶어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다시 읽어봐도

주인공 마야가 450여 페이지에 걸쳐 고군분투한 내용들을 잘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마야의 목적이 무엇이었을까?’라는 게 가장 큰 궁금함이었는데,

실은, 할런 코벤 작품 중 가장 최근에 읽은 스트레인저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겪었습니다.

그때의 서평에는, ‘핵심인물의 목적과 동기가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이다라고 돼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반전을 읽은 순간)

마야를 이해하게 되고 비극에 공감하게 되기보다는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진실 찾기에 나섰던 그녀의 동기나 목적이 모호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어쩌면 마야는 행동에 나서기 전부터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무척 모호하고 뜻 모를 내용만 담긴 서평이 됐는데,

그만큼 작품 곳곳에 함부로 언급하기 어려운 스포일러가 될 내용이 많다는,

바꿔 말하면, 지루할 틈 없이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 ‘반전이 독이라는 제 결론 역시 대다수 독자와는 상반된 의견일 수도 있는데,

이는 단지 취향의 문제 또는 호불호의 기준의 차이일 수도 있으니

독자마다 직접 읽어본 뒤에 자신만의 결론을 내려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일단 할런 코벤의 작품이고 재미 면에서는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족으로...

그냥 원제(Fool me once) 그대로 제목을 뽑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입니다.

솔직히 직역을 해도 애매한 원제이긴 한데,

비밀의 비밀이라는 의역 제목 역시 다 읽고도 납득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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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형사 부스지마 스토리콜렉터 64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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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잭의 고백이후 여섯 번째 만난 나카야마 시치리입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남자를 기준으로 하면 만 8개월 만에 5편의 작품을 읽은 셈인데,

이만큼 특정 작가의 작품을 단기간에 많이 읽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더구나 시리즈(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 스탠드얼론 할 것 없이 골고루 섞여있어서

이 작가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새삼 놀라게 됩니다.

 

이번에 나카야마 시치리가 관심을 가진 쪽은

소위 온갖 잡귀들이 모여 살고 상식이나 상도덕이 통용되지 않는 세계인 출판계입니다.

수록된 다섯 작품에는 작가지망생, 공모심사위원, 편집자, 애독자는 물론

소설을 원작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프로듀서까지 출판과 관계된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들 사이에 극히 위험한 형태로 존재하는 갖가지 악의에 의한 살인사건이 등장합니다.

 

요즘은 어느 직종이나 인터넷을 통해 그 실상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

작품 속 출판계의 아수라장 같은 모습 자체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살인자와 피살자 사이의 증오와 살의만큼은 굉장히 현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 현실감을 더욱 배가시키는 것은 바로 명탐정 역할을 맡은 소설가 부스지마인데,

그는 소설가가 되기 전 괴팍하면서도 최고의 능력을 지닌 형사로 일한 바 있습니다.

불행한 사건 때문에 경찰을 떠나긴 했지만 그의 능력을 인정한 조직의 배려로

그는 지금 현재 형사 기능지도원이라는 이름으로 수사에 협조하고 있는 중입니다.

 

출판관계자가 얽힌 살인사건이다 보니 자연스레 부스지마가 적역으로 떠오르긴 했지만,

담당반장은 물론 검거율 1위 형사 이누카이마저 그를 불편하게 여기면서 협업을 꺼린 탓에

엉뚱하게도 신참에 가까운 여형사 아스카가 부스지마와 함께 살인사건 수사에 나서게 됩니다.

아스카는 수사를 거듭할수록 기행에 가까운 부스지마의 행태를 지켜보며 혀를 차지만,

어느새 자신도 부스지마처럼 독설과 기행을 서슴지 않게 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실, 수록된 작품 속 사건들은 그리 어렵지도 않고 유력한 용의자도 금세 특정됩니다.

나카야마 시치리 특유의 폭발적인 반전도 별로 없고, 살인 트릭 역시 아마추어 수준입니다.

그래서 작가의 전작에 익숙한 독자 입장에선 좀 심심하게 읽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출판계라는 폐쇄적이면서도 일반적이지 않은 세계 속 사람들의 행태라든가

작가 겸 형사이자 기행을 일삼는 부스지마의 캐릭터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추구하는 재미는 실컷 맛볼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모두가 꺼려하는 난폭한 독설가 부스지마의 캐릭터가 기대만큼 세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뭐랄까, 좀 특이하긴 한데, 그리 독하지는 않다고 할까요?

용의자를 몰아세울 때 상대방의 인격이나 입장 따윈 안중에도 없이

멋대로 웃고, 멋대로 지적하고,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는 돌직구 같은 독설을 날리긴 해도

궁극적으로 그는 훈훈한 형사처럼 보인 면이 더 많았기 때문입니다.

 

전작들처럼 잔혹한 스토리와 충격적 반전을 기대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소소한 재미를 맛본 작품이라 충분히 재미있게 읽은 작품입니다.

엄청난 다작을 쏟아내는 나카야마 시치리가

다음에는 어떤 소재, 어떤 이야기를 들고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하고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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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새의 비밀 - 천재변리사의 죽음
이태훈 지음 / 몽실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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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함과 성실함으로 정평 난 천재 변리사 송호성이 인적 드문 골목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송호성과 죽마고우이자 라이벌 변리사인 강민호가 유력한 용의자로 몰리게 되고,

송호성이 직접 선발한 어딘가 비밀스러운 사연이 많아 보이는 수습 변리사 선우혜민 역시

강남경찰서의 수사선상에 오르게 된다.

숨진 송호성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영수증 한 장.

그리고, 그 뒷면에 적힌 수수께끼 같은 메모, ‘AERUS-IL’에 숨겨진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익숙하지 않은 변리사라는 직업을 소재로 삼았고,

특허전쟁이라는 문제를 살인사건에 대입시킨 점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습니다.

, 작가 본인이 오랫동안 특허 업계에 종사한 만큼

변리사나 특허라는 소재에 관해서만큼은 디테일이 잘 살아있는 작품입니다.

 

천재 변리사가 살해되고 그 죽마고우가 용의자로 꼽히는데다

베일에 싸인 듯한 수습 변리사 역시 용의선상에 오르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 수사를 맡은 강남경찰서 내 형사들 간의 갈등과 공 다툼도 동시에 전개되는데,

1주일 뒤 국정원에게 수사권을 넘기기 전에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시간제한 설정까지 더해져

그들 간의 치열한 다툼은 수사 자체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특허변리사가 연루된 사건이다 보니

당연히 특허분쟁을 둘러싼 갈등, 정치권과 기업이 개입된 이권 다툼이 예상됐는데,

거기에 주인공들의 과거사, 형사들의 공 다툼, 국정원 요원의 탐욕까지 끼어들면서

분량에 비해 이야기가 다소 복잡해지기도 했고 사족처럼 늘어난 대목도 많았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동원된 다양한 리소스들이 제대로 배합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주요인물들의 유년기의 이야기나 강남경찰서 형사들의 공 다툼은 꼭 필요해 보이지 않았고,

천재 변리사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특허분쟁은 너무 뻔한 공식대로 전개되는데다

현실감마저 부족해 보여서 긴장감을 갖고 따라가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특허변리사라는 주요 소재가 딱히 인상적으로 느껴지지 않기도 했습니다.

, 탐욕스러운 정치인과 국정원 요원은 설정된 캐릭터에 비해 어설픈 언행만 거듭했고,

미스터리를 푸는 역할을 맡은 변리사나 형사는 주인공다운 포스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실감 없는 설정들도 눈에 거슬렸는데,

그토록 천재 변리사라 불린 인물이 왜 그렇게 가난에 시달렸는지도 잘 모르겠고,

국정원은 당장 수사권을 회수할 상황에서 왜 1주일씩이나 경찰에게 시간을 줬는지 모르겠고,

USB, 영수증, 메모 등 주요단서들은 너무 쉽거나 안이하게 발견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미스터리로서의 치밀함도, ‘특허변리사라는 소재의 특별함도

제대로 독자에게 어필하지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작가의 변을 보면 작가가 이 작품에 쏟은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지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스터리 서사나 소재의 특별함 가운데 하나만 제대로 살았더라도

작가의 의욕이 어느 정도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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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크맨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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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작은 마을 앤더베리에 사는 에디와 미키를 포함한 12살의 다섯 친구들은

어느 날 숲속에서 머리가 사라진 소녀의 토막시체를 발견한다.

이후 그들의 일상은 세차게 흔들고 다시 내려놓은 스노볼처럼 완전히 달라진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현재, 숲속 사건을 책으로 내고 싶다는 미키의 방문에 당황한 에디는

그의 방문과 동시에 날아든 (숲속 사건을 암시하는) 익명의 편지에 더더욱 놀란다.

흐지부지 마무리됐던 경찰의 수사결과와 달리 별도의 진실이 있다고 믿게 된 에디는

결국 30년 동안 기억 속에 묻어뒀던 숲속 사건의 진실을 찾기로 결심한다.

 

● ● ●

 

숲에서 발견된 10대 소녀의 토막시체, 순수와 악마성을 겸비한 12살 소년소녀들의 혼돈,

사랑과 평화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안으로는 균열 투성이인 가족들,

축제, 폭력, 낙태, 교회, 권위 등으로 뒤범벅된 소도시 주민들 간의 노골적인 갈등,

그리고 30년이 지난 후에 당시 사건 관련자들이 벌이는 느닷없는 진실 공방 등

초크맨은 꽤나 다양한 서사를 한데 버무린 작품입니다.

심지어 읽는 동안 곳곳에서 스티븐 킹의 호러 판타지의 느낌을 종종 받곤 했는데,

책을 다 읽고 서평을 쓰기 전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스티븐 킹 본인이

내 스타일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도 좋아할 것이다.”라는 코멘트를 했다고 해서

제가 잘못 읽은 건 아니구나, 라며 안심(?)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초크맨은 정통 미스터리나 스릴러로 보기는 어려운 작품입니다.

오히려, 끔찍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12살 소년소녀의 성장소설의 면모가 더 강합니다.

동시에 30년이 지나서도 12살 무렵의 악몽에 여전히 발목이 잡혀있는,

어쩌면 평생 그 짐을 짊어져야 하는 운명에 빠진 엉망진창 중년들의 회상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주인공 에디가 30년 전 숲속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주된 서사이고,

관련자 하나하나를 만날 때마다 그날의 진실이 양파껍질처럼 거듭 새롭게 밝혀지며,

결국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과정을 거쳐 진범이 드러나는 미스터리 구조임엔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연과 우연이 겹친 끝에 만들어진 운명 같은 필연이 연이어 등장하고,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몽환적인 설정이 꽤 비중 있게 다뤄지는데다,

메인 사건과 연관 있긴 해도 별개처럼 보이는 소소한 해프닝들이 적잖이 전개돼서

간결하고 명확한 한 줄 스토리 정리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재미있게 읽었음에도 별 1개를 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워낙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많이 등장하고 인물관계도 복잡해서

그 내용들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두루뭉술한 서평이 되고 말았지만

어쨌든, 캐릭터들은 생생하고 다양한 크기의 반전들도 끊임없이 등장하며,

호러와 미스터리가 겹겹이 쌓인 덕분에 페이지는 무척 잘 넘어갑니다.

, 흐트러진 단서들이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역시 흥미롭게 그려집니다.

선명한 스토리라인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약간은 질척이는 전개가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진범 찾기 이상의 복잡한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꽤 좋은 성적을 낸 초크맨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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