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용을 죽인 형사 ㅣ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
레이프 페르손 지음, 홍지로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첫 편인 ‘린다 살인 사건의 린다’를 못 읽어서 전사(前史) 자체가 낯선 탓도 있었지만,
지금껏 읽은 그 어떤 미스터리나 스릴러의 주인공과는 너무도 다른 벡스트룀의 캐릭터 때문에
실은 읽는 내내 무척 당혹스러운 책읽기가 됐습니다.
사건 자체는 심플합니다.
은퇴한 회계사의 죽음에 이어 그의 시신을 발견했던 신문배달부가 살해됩니다.
너무 쉽고 뻔한 사건으로 판단한 스톡홀름 경찰은
비 수사부서에서 복귀한 눈엣가시 같은 벡스트룀 경감에게 사건을 떠맡기지만,
수사가 답보상태에 빠진 것은 물론 연이은 희생자까지 등장하는데다
심지어 현금수송차량 습격사건과의 연관성까지 대두되자 대규모 수사팀을 꾸리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극소수의 협력자 외에 경찰 모두로부터 비아냥의 대상인 벡스트룀은 전혀 아랑곳 않고
자신만의 난폭한 스타일로 수사를 이끌어가면서 진실을 밝혀냅니다.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만 사건 자체가 소소한 탓에
미스터리보다는 벡스트룀의 캐릭터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앞서 ‘무척 당혹스러운 책읽기가 됐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건 어딜 봐도 전혀 주인공스럽지 않은 벡스트룀의 안티히어로 캐릭터 때문입니다.
그는 노골적인 성차별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부정하기 짝이 없는 경찰입니다.
그에게 있어 동료 경찰은 더러운 이민자 출신이거나 구역질나는 동성애자,
또는 멍청하거나 생각이 없어서 상대하기도 귀찮은 하찮은 존재들입니다.
의사의 지시 때문에 잠시 폭식과 음주를 중지하긴 했지만 이내 방탕한 생활로 돌아갔고,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기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분에 넘치는 생활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머릿속은 물론 외형까지도 철저하게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설정이란 뜻입니다.
‘경찰이 총에 맞았다는 뉴스만 보면 그게 벡스트룀이길 기도하는’ 동료들이 훨씬 더 많은 건
벡스트룀이 어떤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묘사입니다.
그렇다고 뛰어난 수사력이라도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막판에 나름 추리력을 발휘하고 완력으로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긴 해도
결정적 단서는 왜 그를 돕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극소수의 협력자들 덕분에 손에 넣게 됩니다.
그래도 주인공이니까 뭔가 하나쯤 미덕은 있겠거니, 하면서 페이지를 넘겼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벡스트룀은 안티히어로에서 조금도 진화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공감할 수도, 응원할 수도 없는 주인공 때문에 내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그런 탓에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출판사의 소개글을 찾아 읽어봤습니다.
“벡스트룀은 부패 경찰의 상징이다. 기만적인 공권력을 고발하고 풍자하기 위한 장치인 것.
또, (그를 통해) 복지국가 스웨덴의 여성 혐오, 외국인 차별 등 사회문제까지 발견할 수 있다.
더불어, 유능함과 도덕심은 별개의 문제라는 메시지가 블랙 유머 속에 담겨 있다.”
나름 이해가 되는 대목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부패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기만적인 공권력을 고발-풍자한다는 의도 자체가
좀처럼 쉽게 납득되지도 않았고, 그다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도 않았습니다.
주인공을 통해 부패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고발과 풍자를 시도했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정의로운 안티 세력’이 등장해서 균형을 맞췄어야 할 텐데
벡스트룀의 안티 세력들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정의롭거나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벡스트룀의 캐릭터도 난감했지만 너무 많이 등장하는 경찰 캐릭터 역시 아쉬웠습니다.
일일이 세어 보진 않았지만 (작은 역할이라도 하는 경찰이) 20명 이상은 돼보였습니다.
작가는 길든 짧든 그들 하나하나의 출신과 성장에 관해 묘사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는데,
그들 중 ‘순수 스웨덴인’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벡스트룀의 인종차별적 행태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만 보였고,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너무 많은 머릿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극소수의 협력자’들 역시 벡스트룀으로부터 ‘무언의 비난’을 받던 사람들인데,
그들이 벡스트룀의 어떤 면에 반해서 그를 돕겠다고 나선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벡스트룀의 뇌 속에 ‘거웃빨이’로 낙인찍힌 동성애 취향의 한 여자 경찰은
벡스트룀에게 호감은 물론 과감한 접근까지 감행하는데 그 심리는 정말 이해불가였습니다.
문장은 매력적이고, 페이지도 잘 넘어간 작품이지만
앞서 장황하게 언급한 몇몇 설정 때문에 다 읽고도 어딘가 개운치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스웨덴에서 나름 성공한 이력이 있고 여러 수상 경력도 있는 걸 보면
분명 ‘싫지만 자꾸 보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지닌 것 같기도 합니다.
더는 이 시리즈를 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전작이자 시리즈 첫 편인 ‘린다 살인 사건의 린다’가 자꾸 생각나는 걸 보면
어쩌면 무의식 속에서는 벡스트룀의 비열함과 부패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