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쳐다보지 마 스토리콜렉터 67
마이클 로보텀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모녀가 살해당했다. 어머니는 난도질당했고, 딸은 침대에 고이 누워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별거 이후 6년 만에 가족들과 여름을 보내게 된 임상심리학자 조 올로클린은 경찰의 수사협조 요청을 거부하지만 수상쩍은 심리학자가 자신의 이름을 팔아 수사에 혼선을 가하자 어쩔 수 없이 가담하게 된다. 광기와 연민이 공존하는 두 살인은 큰 온도 차를 보였고, 조는 살인자에게 딸과 어머니가 표상하는 바가 분명 달랐다는 것을 단번에 간파해낸다. 모녀의 주변 인물들을 살피기 시작하면서 깊숙이 감춰져 있던 비밀들도 서서히 드러나고, 수사선상에 오른 용의자 모두가 의심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널 지켜보고 있어에 이어 올해에만 두 편의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출간된 건 마이클 로보텀의 팬들에겐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그 전작인 미안하다고 말해에서 조는 심리학자보다는 탐정에 가까워 보였고, ‘널 지켜보고 있어에선 자신의 환자를 도우면서 심리학자의 카리스마를 회복했다면, 이번 작품에서 조는 두 가지 캐릭터를 모두 발산하고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끔찍하게 살해당하긴 했어도 사건 자체는 소소해 보입니다. 연쇄살인마의 행각으로 보이지도 않고, 면식범일 가능성이 무척 높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는 여러 면에서 당혹스런 처지에 놓입니다. 주변 인물들을 꼼꼼히 탐문해도 단서는 도무지 나타나지 않고, 악질적인 사이비 심리학자까지 나서서 무능한 경찰을 공격하자 수사는 방향을 잃은 채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번 작품은 전작들에 비해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무척 느린 편이었습니다. 사건 못잖게 비중을 차지한 조의 가족 이야기가 무겁고 처연한 톤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아내 줄리안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데다, 딸 찰리가 범죄심리를 전공하겠다고 선언하자 조는 크게 놀랍니다. 거기다가 가족의 문제가 사건과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조는 산산이 부서진 남자에서 겪었던 끔찍한 가족해체의 비극이 재생될까 전전긍긍합니다. 이런 서사가 작품 전반을 지배하다 보니 스릴감 넘치는 책읽기보다는 돌덩이를 가슴에 얹어놓은 듯한 묵지근한 책읽기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수시로 튀어나와 웃음을 자아냈던 조 특유의 블랙유머도 찾아보기 힘들었고, 개성 강한 단골 조연들의 매력 역시 이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마이클 로보텀만의 스릴러로서의 미덕은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명탐정이자 뛰어난 임상심리학자인 조 올로클린이 진실을 향해 분투하는 과정이라든가 하나같이 수상한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경찰과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매서운 탐문은 언제나 그랬듯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휘어잡고 있습니다. , 끔찍한 트라우마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범죄심리학을 공부하려는 찰리는 자신만의 확고한 주장을 통해 아버지 조의 반대와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은 물론 오리무중에 빠진 수사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해서 색다른 기대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다만, 다소 아쉬운 대목들도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띈 점은 조가 사건에 말려들게 된 계기와 조의 단독수사처럼 느껴진 전반적인 수사 과정입니다. 간곡하게 조를 수사에 초빙한 베로니카 총경은 그 뒤론 조의 후방지원에 무관심한 것은 물론 심지어 귀찮아하기도 합니다. , 피해자 주변을 이 잡듯 탐문하고 다니는 조에 비해 런던의 그 어느 경찰도 수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었습니다. 조 혼자 모든 관련 인물들을 다 만나고, 사건 현장을 반복해서 조사합니다. 조의 수사방식 역시 용의선상에 오른 자들의 심리상태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것 외엔 딱히 특별하다고 할 것이 없어서 재미를 반감시켰습니다. 그래서인지 막판에 드러난 범인의 정체나 범행 동기는 이야기 전체에 녹아들지 못한 채 약간은 뜬금없는 반전의 느낌마저 주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무겁고 묵직한 서사가 깃든 작품이지만 재미라든가 개연성 면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많이 묻어났습니다. 물론 여전히 마이클 로보텀의 문장은 한눈 팔 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고, 사건은 끔찍한 외형과 함께 내밀한 심리서사를 겸비하고 있어서 매번 독특하고 특별한 사건 설정을 자랑하는 시리즈의 힘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매력과 힘 때문에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다음 이야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올해 또다시 조 올로클린 시리즈가 출간될 것 같진 않지만, 인생 최대의 위기에 봉착한 조가 이후 어떤 사건과 맞닥뜨릴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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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외딴 성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서혜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등교 거부 후 방 안에 틀어박혀 지내던 중학교 1학년 여학생 안자이 고코로는

갑자기 환한 빛을 내뿜는 방안의 거울에 무심코 손을 댄 순간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만다.

거울 속 세상은 서양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웅장한 고성이었고,

늑대가면을 쓴 어린 소녀와 고코로 또래의 6명의 남녀학생들이 고코로를 기다리고 있었다.

앞으로 1년 남짓 그곳을 드나들 수 있으며 비밀열쇠를 찾으면 소원을 빌 수 있다는 늑대소녀.

오랫동안 부모 외에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는 고코로는

어딘가 삐딱하고 상처를 지닌 듯한 나머지 6명에게서 알 수 없는 동질감을 느낀다.

, 비밀열쇠를 찾아 소원을 빌면 자신의 고통과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 ● ●

 

‘10’, ‘교육’, ‘판타지’, ‘미스터리등 츠지무라 미즈키의 전공들이 총출동한 작품입니다.

등교거부 중인 소녀가 거울 속으로 들어가 다른 세상과 만나고

처음 만난 또래들과 갈등/화해하며 시간제한이 설정된 미션을 해결한다는 스토리는

언뜻 보면 해피엔딩이 보장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냄새가 감지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림 형제나 안데르센의 예쁜 동화처럼 포장된 듯한 이 작품의 핵심 서사는

갈등을 이겨내고 힘을 합쳐 비밀열쇠를 찾아 아름다운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외딴 성에 오게 된 10대들의 비극적인 상처와 스스로 그것을 극복해가는 성장기입니다.

 

정체불명의 늑대소녀는 거울을 통해 성에 오갈 수 있는 건 9시부터 17시라고 알려줍니다.

고코로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다른 10대들 모두 등교거부 중이란 걸 알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꽤 많은 시간이 지나기 전까지 그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피합니다.

각자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은 고통스런 사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친해진 뒤에도 좀처럼 속내를 털어놓지 않던 그들은

아키라는 소녀가 교복을 입은 채 외딴 성으로 들어온 사건 때문에 일대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등교거부 중인 10가 주인공이라면 결국엔 학교로 돌아간다는 엔딩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 작품 역시 비슷하긴 해도 그 과정은 여타 작품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보통은 학교와 가정은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이란 전제 하에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작품의 미덕 중 하나는 싫으면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통해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과 인물에 대해 냉정하게 대처할 수 있고

결국엔 돌아가서 얼마든지 싸우겠다는 자기 의지를 키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7명의 10대는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거울 속 외딴 성과 현실세계를 오가며

자신이 처한 상황들과 고통스런 싸움을 계속 이어갑니다.

그러면서, 현실보다 외딴 성에서의 시간을 더 행복하게 여기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누구와도 쉽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던 자신들이

외딴 성에서 만난 또래들에게 친구이자 보호자 같은 안온함을 느끼게 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대 외에는 절대 성에 남을 수 없었고,

늑대소녀가 정한 날짜가 지나면 이 성에서의 기억이 모두 휘발된다는 사실 때문에

성 안의 10대들은 영원히 이들과 성 안에 남고 싶다는 것이 불가능한 소망임을 깨닫습니다.

결국 이 간절하고도 실현 불가능한 욕망으로 인해 성 안에 큰 파장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선 비밀열쇠만이 해법임을 깨달으면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사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작품세계에 낯선 독자라면 꽤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작품입니다.

(고백하자면, 그녀의 작품을 5~6편 읽은 저로서도 그 당혹감은 거의 마찬가지였습니다.)

동화에 가까울 정도로 비현실적인 설정 속에 10대들의 등교거부라는 문제를 다루다 보니

독자로서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페이지를 넘겨야할지 무척 모호해지기 때문입니다.

동화 같은 판타지로 여기고 읽자니 작품 자체를 너무 가볍게 대하는 것 같고,

‘10대와 학교의 문제를 다룬 미스터리라 하기엔 비현실적인 판타지 서사가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 고코로의 상처라든가 막판의 반전과 여운이 분량만큼의 임팩트를 갖추지 못한 탓에

왠지 어중간한 상태에서 마지막 장을 덮게 된 느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츠지무라 미즈키만의 특별한 코드들이 전부 버무려진 맛난 비빔밥 같으면서도

뭔지 몰라도 양념이나 재료 하나가 덜 들어간 듯한 허전함이 남은 작품이었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보기 드문 별미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비현실적인 시공간에 초대받은 등교거부 중학생들이라는 특별하고도 인상적인 설정은

츠지무라 미즈키가 꾸준히 추구해온 10대와 학교와 교육의 문제를 다루기에

더없이 매력적이고 풍부한 상상력의 산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다소 뻔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설정의 힘만으로도 신선하게 만든 필력이랄까요?

새삼 아직 못 읽은 츠지무라 미즈키의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

어떤 캐릭터와 설정과 스토리를 담고 있을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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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죽인 형사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
레이프 페르손 지음, 홍지로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형사 벡스트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첫 편인 린다 살인 사건의 린다를 못 읽어서 전사(前史) 자체가 낯선 탓도 있었지만,

지금껏 읽은 그 어떤 미스터리나 스릴러의 주인공과는 너무도 다른 벡스트룀의 캐릭터 때문에

실은 읽는 내내 무척 당혹스러운 책읽기가 됐습니다.

 

사건 자체는 심플합니다.

은퇴한 회계사의 죽음에 이어 그의 시신을 발견했던 신문배달부가 살해됩니다.

너무 쉽고 뻔한 사건으로 판단한 스톡홀름 경찰은

비 수사부서에서 복귀한 눈엣가시 같은 벡스트룀 경감에게 사건을 떠맡기지만,

수사가 답보상태에 빠진 것은 물론 연이은 희생자까지 등장하는데다

심지어 현금수송차량 습격사건과의 연관성까지 대두되자 대규모 수사팀을 꾸리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극소수의 협력자 외에 경찰 모두로부터 비아냥의 대상인 벡스트룀은 전혀 아랑곳 않고

자신만의 난폭한 스타일로 수사를 이끌어가면서 진실을 밝혀냅니다.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만 사건 자체가 소소한 탓에

미스터리보다는 벡스트룀의 캐릭터에 몰입할 수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앞서 무척 당혹스러운 책읽기가 됐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건 어딜 봐도 전혀 주인공스럽지 않은 벡스트룀의 안티히어로 캐릭터 때문입니다.

 

그는 노골적인 성차별주의자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부정하기 짝이 없는 경찰입니다.

그에게 있어 동료 경찰은 더러운 이민자 출신이거나 구역질나는 동성애자,

또는 멍청하거나 생각이 없어서 상대하기도 귀찮은 하찮은 존재들입니다.

의사의 지시 때문에 잠시 폭식과 음주를 중지하긴 했지만 이내 방탕한 생활로 돌아갔고,

공문서를 위조하거나 기타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분에 넘치는 생활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머릿속은 물론 외형까지도 철저하게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설정이란 뜻입니다.

경찰이 총에 맞았다는 뉴스만 보면 그게 벡스트룀이길 기도하는동료들이 훨씬 더 많은 건

벡스트룀이 어떤 인물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묘사입니다.

 

그렇다고 뛰어난 수사력이라도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막판에 나름 추리력을 발휘하고 완력으로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긴 해도

결정적 단서는 왜 그를 돕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극소수의 협력자들 덕분에 손에 넣게 됩니다.

그래도 주인공이니까 뭔가 하나쯤 미덕은 있겠거니, 하면서 페이지를 넘겼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벡스트룀은 안티히어로에서 조금도 진화하지 않습니다.

도무지 공감할 수도, 응원할 수도 없는 주인공 때문에 내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그런 탓에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출판사의 소개글을 찾아 읽어봤습니다.

 

벡스트룀은 부패 경찰의 상징이다. 기만적인 공권력을 고발하고 풍자하기 위한 장치인 것.

, (그를 통해) 복지국가 스웨덴의 여성 혐오, 외국인 차별 등 사회문제까지 발견할 수 있다.

더불어, 유능함과 도덕심은 별개의 문제라는 메시지가 블랙 유머 속에 담겨 있다.”

 

나름 이해가 되는 대목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부패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기만적인 공권력을 고발-풍자한다는 의도 자체가

좀처럼 쉽게 납득되지도 않았고, 그다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도 않았습니다.

주인공을 통해 부패경찰과 공권력에 대한 고발과 풍자를 시도했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정의로운 안티 세력이 등장해서 균형을 맞췄어야 할 텐데

벡스트룀의 안티 세력들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정의롭거나 성실하지 않았습니다.

 

벡스트룀의 캐릭터도 난감했지만 너무 많이 등장하는 경찰 캐릭터 역시 아쉬웠습니다.

일일이 세어 보진 않았지만 (작은 역할이라도 하는 경찰이) 20명 이상은 돼보였습니다.

작가는 길든 짧든 그들 하나하나의 출신과 성장에 관해 묘사하는 것을 빼먹지 않았는데,

그들 중 순수 스웨덴인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벡스트룀의 인종차별적 행태를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만 보였고,

오히려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로 너무 많은 머릿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극소수의 협력자들 역시 벡스트룀으로부터 무언의 비난을 받던 사람들인데,

그들이 벡스트룀의 어떤 면에 반해서 그를 돕겠다고 나선 건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벡스트룀의 뇌 속에 거웃빨이로 낙인찍힌 동성애 취향의 한 여자 경찰은

벡스트룀에게 호감은 물론 과감한 접근까지 감행하는데 그 심리는 정말 이해불가였습니다.

 

문장은 매력적이고, 페이지도 잘 넘어간 작품이지만

앞서 장황하게 언급한 몇몇 설정 때문에 다 읽고도 어딘가 개운치 않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가 스웨덴에서 나름 성공한 이력이 있고 여러 수상 경력도 있는 걸 보면

분명 싫지만 자꾸 보게 만드는 이상한 힘을 지닌 것 같기도 합니다.

더는 이 시리즈를 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전작이자 시리즈 첫 편인 린다 살인 사건의 린다가 자꾸 생각나는 걸 보면

어쩌면 무의식 속에서는 벡스트룀의 비열함과 부패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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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늑대의 피
유즈키 유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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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야마 히데오, 사사키 조의 명품들 이후 오랜만에 제대로 된 경찰소설을 읽은 느낌입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경찰-야쿠자 소설이라고 불러야 할 작품인데,

성실한 경찰’, ‘야쿠자와 너무 친한 경찰’, 그리고 야쿠자가 작품의 세 축이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경찰히오카 슈이치는 히로시마 현 구레하라 동부서 폭력반에 배치된 신참입니다.

그는 배치와 동시에 야쿠자와 너무 친한 경찰오가미 쇼고의 파트너가 됩니다.

실적에 관한 한 군계일학이지만 그에 못잖게 징계도 수두룩하게 받아온 오가미 쇼고는

도무지 경찰인지 야쿠자인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미스터리한 인물입니다.

야쿠자에게 정보와 뒷돈을 받는 것은 물론 경쟁 조직의 궤멸을 돕기까지 하는 오가미를 보며

신참경찰 히오카는 야쿠자보다 더 야쿠자 같은 그의 행태에 몇 번씩 분노에 휩싸이곤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히오카의 눈에 점차 오가미의 위악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수사를 자행하는 것이 분명한데,

그의 행동과 말 어딘가에서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위화감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견디다 못한 히오카가 야쿠자를 상대하는 형사에게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자

오가미는 예상도 못한 의미심장한 말을 건넵니다.

폭력단은 사라지지 않아. 우리의 임무는 야쿠자가 민간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야. 나머지는 도를 넘는 녀석들을 없애기만 하면 돼.”

 

말하자면, 모든 야쿠자는 박멸해야 한다는 히오카의 정의가 실현 불가능한 망상이라면,

현실적인 수단과 방법을 통해 악의 부작용을 막는 것이 오가미의 정의인 것입니다.

실제로 오가미는 구레하라 시 전역에 야쿠자 간의 전쟁이 임박해오자

무조건적인 단속과 체포보다는 한쪽의 궤멸을 통해 전쟁을 막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리고 자신과 오랜 인연을 맺어온 나머지 한쪽의 승리를 위해 열심히 분투합니다.

이쯤 되면 히오카는 물론 독자마저도 오가미는 어떤 사람?”이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응원해야 할 주인공인지, 야쿠자와 함께 박멸돼야 할 인지 경계가 애매해지는 것입니다.

 

그 혼란엔, 단골술집 마담 아키코가 들려준 오가미의 비극적인 과거사도 한몫 거드는데,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히오카는 어느 새 오가미의 정의에 감염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의 파트너가 되어 야쿠자의 전쟁을 막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전개와 반전이 일어납니다.

 

막판에 폭죽처럼 연이어 터지는 반전은 기시감이 드는 대목도 살짝 있긴 하지만

경찰-야쿠자 소설의 백미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긴장감과 속도감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고독한 늑대인 오가미의 정의가 구현되는 과정, 그의 피를 물려받는 히오카의 성장기,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벌어지는 야쿠자의 전쟁과 판세가 마무리되는 과정 등

다양한 서사들이 묵직한 여운과 함께 절묘하게 조합되며 클라이맥스를 장식합니다.

사실, 스포일러가 될 대목들이 많아서 이렇게 두루뭉술한 묘사밖에 할 수 없지만,

마지막 50여 페이지는 그야말로 폭주 그 자체라고 할 만큼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애를 먹었던 건 소화불량에 걸릴 만큼 많은 등장인물입니다.

복잡하게 얽힌 여러 야쿠자 조직은 물론 경찰캐릭터도 상당히 많이 등장하는데,

다 읽고 보면 4~5명의 주요 인물들에게만 집중했어도 된다는 걸 알게 되지만,

읽는 동안에는 모든 인물을 유심히 봐야만 할 것 같은 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의아했던 두 가지 의문은 모두 여성에 관한 것인데,

하나는 표지를 장식한 인물이 오가미도, 히오카도 아닌 정체불명의 젊은 여성이라는 점이고,

또 하나는, 한없이 거칠고 폭력적인 세계를 다룬 이 작품의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입니다.

앞의 의문은 도무지 풀 길이 없어 일찌감치 포기했지만,

뒤의 의문은 놀라움 그 자체라서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잘 믿기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여성작가가 야쿠자 소설을 쓰지 말란 법도 없거니와 띠지에 작가 사진이 실려 있고,

이름이 유코(裕子)’임을 알고 봤는데도 읽는 내내 여성작가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거칠고 폭력적이면서도 리얼한 경찰-야쿠자 소설이라는 의미입니다.

 

2016년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을 비롯 다수의 수상과 노미네이트 경력을 보면

유즈키 유코가 보통 내공을 지닌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국내에는 2011년에 출간된 최후의 증인외에는 소개된 작품이 없어서 아쉽지만,

일본에서 이 작품의 후속작(‘불길한 개의 눈’)이 출간됐다는 정보는 무척 반가웠습니다.

고독한 늑대의 피가 호응을 얻어 유즈키 유코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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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미스의 검 와타세 경부 시리즈 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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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가 내리는 밤, 부동산 업자 살해 사건이 발생한다.

용의자로 지목된 구스노키는 강압적인 수사로 인해 자백하고 사형판결을 받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교도소에서 자살하고 만다.

그러다 5년 후 와타세 경부는 강도 살인 사건을 수사하다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제야 밝혀지는 무리한 수사, 증거 날조, 원죄, 경찰과 사법의 어두운 그늘.

과연 구스노키는 무죄였을까? 그렇다면 진범은 누구인가?

와타세는 경찰의 조작으로 인한 원죄 사건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조직을 고발해야 했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들을 통해 와타세라는 이름에 익숙해진 독자에겐

무척이나 반갑고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에서는 신참 고테가와를 성장시키는 괴짜 반장으로,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인 속죄의 소나타에서는 조연이지만 감초 같은 역할을 맡았던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딴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등극합니다.

특히 와타세가 신참 시절이던 1984년부터 28년에 걸친 이야기가 전개돼서

그야말로 와타세의 프리퀄이라 할 만한 매력적인 서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작가형사 부스지마살인마 잭의 고백에 등장했던 이누카이는 물론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히어로인 고테가와도 잠깐이지만 얼굴을 비추기도 합니다.)

 

출판사 소개글대로 이 작품의 화두는 원죄(冤罪, 억울하게 덮어쓴 죄)’입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이나 오리하라 이치의 원죄자등 원죄를 다룬 걸작이 많아서

소재 자체만 놓고 보면 그리 신선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더구나 절반쯤까지는 규모도 작고 특별한 설정도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고 그런 원죄 이야기인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경찰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자백을 얻어내고 증거를 날조했고,

검찰과 법원은 경찰의 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곤 용의자에게 사형을 선고합니다.

이후 5년 뒤에야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와타세는 조직의 갖은 압박에도 불구하고

평소 존경하는 검사를 통해 원죄의 전모를 폭로하기에 이릅니다.

5년 전 사건에 관여했던 경찰, 검찰, 법원 등은 그야말로 숙청의 피바다를 이뤘지만

정작 폭로자인 와타세만은 그 숙청에서 비껴난 채 경찰로서의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렇게 속죄하며 23년을 보낸 어느 날, 이젠 현경 수사1과 반장이 된 와타세 앞에

과거 원죄 사건이 아직 제대로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충격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집니다.

 

바로 이 대목이 중반부를 살짝 넘은 지점인데,

나카야마 시치리의 진짜 매력은 여기서부터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밋밋한 원죄 이야기처럼 보이던 서사는 돌직구 같은 전개와 반전으로 무장한 채 달려갑니다.

조직을 팔아넘겼다는 낙인이 찍힌 채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와타세의 마음은 한없이 무겁지만

오히려 그것은 와타세를 분투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작은 단서, 스쳐 지났던 목격자 등을 다시 되짚어가던 와타세는

막판에 이르러 생각지도 못한 인물, 예상치 못한 진실과 마주하며 충격에 빠집니다.

 

다소 억지스러울 정도로 시의적절한 단서와 증언이 와타세에게 제공되기도 하고

미스터리의 종결점 역시 와타세만이 알아낼 수 있는 특별한 반전이 아니라서 아쉬웠지만

20년도 훌쩍 넘은 과거의 진실을 파헤치는 와타세의 진정어린 노력은

독자의 눈길을 한시도 다른 곳에 팔 여지를 주지 않고 긴장감 넘치게 전개됩니다.

 

아무래도 원죄라는, 한없이 무겁고 고통스러운 소재를 다룬 작품이라

괴짜 반장으로 등장했던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속죄의 소나타때의 와타세와는

분명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진 것도 사실이지만,

나카야마 시치리가 창조한 캐릭터 가운데 꽤 매력적이라 여겼던 와타세의 프리퀄은

기대 이상의 재미와 여운을 남겨줬습니다.

더불어, 경찰, 검찰, 법원, 언론, 유족 등 원죄 관련자들의 태도나 입장도 묵직하게 그려졌고,

단 한 건의 원죄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또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절대 벗어버릴 수 없는 형벌이란 점도 충분히 어필하고 있습니다.

 

늦은 나이에 데뷔했음에도 엄청난 작품을 쏟아낸 나카야마 시치리가

테미스의 검을 통해 와타세를 주인공으로 한 새 시리즈를 선보였는데,

번역하신 이연승 님에 따르면 후속작 제목이 네메시스의 사자라고 합니다.

이 작품 역시 꽤나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고 하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묵묵히 자신만의 정의를 구현해온 와타세의 새로운 활약이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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