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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아델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이현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9월
평점 :
2016년 가을에 읽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끝나지 않는 여름’ 이후
거의 2년 만에 접한 서구권 非미스터리 작품입니다.
아르테의 포스트(‘관능美 뿜뿜! 여성 소설 4’)를 보곤 호기심이 발동해 찾은 작품인데,
‘12번째 공쿠르상 여성 수상 작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해당 수상작인 ‘달콤한 노래’가 심리스릴러라는 점도 제 구미를 자극한 대목입니다.
“여성작가가 쓴 여성에 대한 관능(적인)소설”, “현대판 ‘보봐리 부인’.”,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욕망에 관한 절망적 보고서”라는 평에서 엿볼 수 있듯
이 작품의 핵심코드는 ‘여성의 성적 욕망’입니다.
35세의 아델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신문사 기자로,
다정하고 유능한 의사 남편 리샤르, 3살 아들 뤼시앙과 함께 파리의 부촌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평온하지 않습니다.
그녀는 이성의 힘으로는 떨쳐내기 어려운 본능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끝없는 성적 욕망입니다.
스스로 “나 자신보다 더 힘센 어떤 게 날 움직인다.”고 고백할 정도로 통제불능인 그 욕망은
아델로 하여금 끝없이 남자들을 ‘수집’하게 만드는데,
문제는 그 욕망이 상대를 가리지도 않을뿐더러 결코 채워지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아슬아슬하던 아델의 욕망의 폭주는 어느 날 갑자기 멈춰버립니다.
한없이 따뜻하던 남편 리샤르가 그녀의 욕망의 실체를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작품에 관심이 갔던 것은 원초적 호기심보다는
과연 작가가 아델이라는 여자와 그녀의 통제 불능인 성적 욕망을
비슷한 소재의 전작들과 어떻게 다르게 그렸을까, 라는 남다른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좀더 아델이 주체적이기를 바랐고, 그녀의 욕망이 1차적 본능에 그치지 않기를 바랐고,
또, 결과적으로 그녀의 욕망이 기성의 담론을 뛰어넘어 자립적으로 그려지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델은 저의 바람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는 캐릭터였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놈저놈’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상대를 고릅니다.
하지만 그 욕망의 정체가 단지 육체적 갈망인지, 마조히스트 또는 새디스트적인 탐욕인지,
(좀 억지스럽긴 해도) 자아의 실현을 위한 몸부림인지 통 모호하게 보였습니다.
또, 욕망 실현에 가장 방해(?)가 되는 남편과 아들에 대한 아델의 태도 역시
어딘가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이거나 구태의연하게만 보입니다.
가령, 현실적인 이유(돈 잘 버는 의사 남편) 때문에 내재된 욕망을 억압하고 결혼을 택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나의 욕망’이라는 걸 깨닫고 주체적인 삶을 선택했다면
이 작품이 “은폐되고 다뤄지지 않은 여성의 성욕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소설.”이라는
출판사의 소개글이 충분히 납득이 됐겠지만,
작품 속 아델은 결국 욕망 대신 현실을 택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오픈된 엔딩이긴 해도) 그녀의 마지막 선택이 나름 주체성을 띄긴 했지만
읽는 내내 ‘이렇게 쉽게 포기할 욕망이었나?’라는 의문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또, “‘야한’ 소설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읽을수록 슬퍼지는 건 왜일까요?” (아르테 포스트),
“아델의 섹슈얼리티 속엔 아주 슬픈 무언가가 있다.” (리베라시옹),
“그녀의 정원에 쾌락은 없다. 슬픔만 있을 뿐.” (뒷표지 홍보카피) 등
유독 ‘아델의 슬픔’을 강조하는 한 줄 평이나 카피가 많았는데,
아델의 욕망 자체가 불분명하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그 슬픔을 체감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더불어, “섹스, 거짓말, 배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작가 본인의 코멘트도 다소 당황스러웠는데,
어디에서 어떤 색깔의 사랑을 읽어야 했던 건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미혼이든 기혼이든 남녀를 불문하고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욕망’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여러 조합 중 가장 불행하거나 상대적으로 억압받아온 것은 당연히 ‘유부녀’일 것입니다.
아델을 통해 ‘결혼에 묶였지만 여전히 활화산 같은 욕망을 지닌 유부녀’를 그리려 했다면
19세기와 20세기에 그려진 비슷한 처지의 주인공들과는 조금은 달라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욕망의 근원은 비슷할지 몰라도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과정이나 엔딩만큼은
이전 세기의 주인공들보다는 조금은 더 진보적이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아델에게서는 이전의 주인공들의 그림자 이상의 것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다소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레일라 슬리마니의 필력에는 나름 관심이 생긴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작이자 심리스릴러인 ‘달콤한 노래’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라는 첫 문장부터 불온한 기운을 내뿜는 ‘달콤한 노래’가
과연 어떤 색깔의 심리스릴러일지 사뭇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