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 / 스핑크스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특이한 제목과 표지만큼이나 기발한 발상과 독특한 이야기를 지닌 작품입니다.

기적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트릭이 성립하지 않음을 입증하려는 탐정우에오로 조는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당연한 보통의 탐정 주인공과는 전혀 반대의 길을 걷는 인물입니다.

말하자면, 누구도 쉽게 풀지 못할 것 같은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벌어졌는데

주인공은 그것이 현실적 트릭에 의한 범행이 아니라 기적에 의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반면,

오히려 적대세력들이 기적이란 없으며 100% 트릭에 의한 범행임을 입증하려 분투(?)합니다.

 

앞뒤가 뒤바뀐 듯한 주인공과 적대세력의 설정도 흥미롭지만

다양한 장르적 특징을 지닌 점도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이 작품의 장르를 굳이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논리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릭에 의한 실제 사건임을 주장하는 적대세력과 기적에 의한 결과를 주장하는 우에오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말 그대로 논리와 추론의 성찬 또는 전쟁을 벌이는데,

간혹 이 논리 싸움이 너무 복잡해진 나머지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외에 이 작품은 판타지, 무협, 휴먼드라마로서의 미덕도 함께 지니고 있는데,

일단, 주인공 우에오로 조는 기적을 주장하는 세계관 외에도

파란 머리, (두 눈동자의 색이 다른) 오드 아이, 늘 걸치고 다니는 붉은 외투 등

현실적 인물이라기보다 판타지나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처럼 느껴집니다.

, 차례차례 등장하여 우에오로 조와 트릭 대결을 펼치는 기적론자들은

등장하는 모양새나 내뿜는 포스 모두 무림의 고수를 연상시키는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막판에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과 우에오로 조가 기적에 연연해온 이유는

미스터리를 넘어 휴먼드라마의 향기를 풍기기도 합니다.

 

우에오로 조가 기적을 입증하려는 사건은 10여 년 전 벌어진 신흥종교집단의 자살사건입니다.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던 소녀가 뒤늦게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다며 우에오로를 찾아와선

누구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를 털어놓습니다.

한 소년이 집단자살의 현장에서 자신을 구해낸 뒤 안전한 장소로 옮겨줬는데,

한참 후 깨어나서 살펴보니 그 소년은 머리가 잘린 채 죽어 있었다.

신흥종교집단의 거주지는 외부와 차단된 곳이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죽은 상태였다.

그럼 내가 그 소년을 죽인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그 소년을 죽인 뒤 내 곁에 둔 것일까?

확실하진 않지만 그 소년이 자신을 옮길 당시 이미 머리가 잘린 상태였던 것 같기도 하다.”

 

우에오로 조는 여러 날의 조사 끝에 기적임을 선언합니다.

, 소녀는 범인이 아니며, 소년은 머리가 잘린 채 기적을 통해 소녀를 구했다는 얘깁니다.

우에오로 조는 달리 그 소년의 죽음을 설명할만한 트릭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추정 가능한 모든 트릭과 그것이 실현 불가능함을 설명한 수백 장의 보고서를 내놓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우에오로 조의 논리를 반박하는 기적론자들이 하나씩 등장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리한 트릭으로 소년의 죽음을 입증하곤 우에오로의 기적론을 반박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추리한 트릭이 개연성이 없거나 터무니없더라도

우에오로는 명확한 근거를 갖고 그 트릭이 불가능함을 입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독특하긴 해도 사건, 캐릭터, 기적에 관한 논쟁 등 다소 생경한 코드들이 버무려진 탓에

독자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가능성 있는 모든 트릭을 부정함으로써 기적을 입증한다는 설정이 논란거리인데,

실제로 적대세력 중 한 명은 우에오로의 기적 입증법을 간결하게 부정해버립니다.

모든 가능성이란 다시 말해 무한을 뜻하지. 영겁의 시간이 주어져도 다 열거할 수 없다.

즉 이 탐정의 기적을 증명하는 방법론 자체가 탁상공론, 그림의 떡인 거다.”

비록 우에오로가 수백 장에 달하는 보고서를 통해 가능한 모든 트릭을 부정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능한 모든 트릭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가능한 모든 트릭을 전부 열거할 수는 없겠지만요.

 

출판사의 소개글을 보니 이 작품은 물론 후속작도 꽤 호평을 받은 것 같습니다.

번역하신 이연승 님 역시 이 작품의 새로운 시도와 신선한 서사를 극찬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호불호의 딱 중간지점쯤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적을 입증하려는 주인공자체가 설득력이 좀 약했던 것 같고,

우에오로를 꺾으려는 적대세력의 비현실성도 한몫 거들었다는 생각입니다.

후속작인 성녀의 독배‘2017년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에 올랐다는데

이연승 님에 따르면 첫 편의 아쉬움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하니

살짝 기대와 관심을 가져도 괜찮을 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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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들의 저택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성기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후지산 기슭 숲속에서 백골 시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반년 전 실종된 고마쓰바라 준으로 추정하지만,

준의 어머니 다에코는 아들이 죽었을 리 없다고 믿으며 아들의 일생을 책으로 엮으려 한다.

그리하여 그녀에게 고용되어 준의 전기를 쓰게 된 유령작가(고스트라이터) 시마자키는

날마다 고마쓰바라 저택을 방문하여 준에 대한 자료를 조사한다.

준이 자기와 같은 작가지망생이었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 시마자키는

준의 지인들을 샅샅이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의 주변을 맴도는 수상한 인물이 있음을 알아채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색깔과 톤이 너무 다양해서

서술트릭의 1인자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갖게 만들었다는 생각입니다.

서술트릭의 진수인 도착 시리즈와 다양한 서술트릭의 만찬장인 단편집 그랜드맨션

그가 지닌 타이틀의 본색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들이지만,

그 외에도 유쾌 발랄 미스터리 단편집 일곱 개의 관이라든가

기괴한 호러 분위기를 가미한 학교 폭력과 복수에 관한 장편 침묵의 교실’,

원죄(冤罪)에 관한 돌직구 같은 미스터리 원죄자등을 보면

그의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인들의 저택1993년 일본에서 출간됐고, 국내에는 2011년에야 소개된 작품입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작품들에 비하면 다소 올드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하지만,

오리하라 이치의 모든 무기(?)가 총출동한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작가 스스로 원죄자와 함께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라 칭한 것도,

또 평단으로부터 오리하라 미스터리의 총결산이란 극찬을 받은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본문 외에 인터뷰, 소설 속 소설, 연표,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모놀로그 등

다양한 형식들이 한꺼번에 녹아있어 독특한 구성을 지닌 것은 물론

서사 역시 미스터리와 호러를 넘나들고 있어서 어떤 때는 몽환적인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특히 주요 무대이자 판타지 같은 느낌까지 주는 후지산 기슭의 깊은 숲속은

한번 발을 들이면 절대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음험한 분위기까지 발산하고 있고,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도 호러물에 더 어울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집착 아래 성장하며 작가로서 천재성을 발휘했지만

그만큼의 광기까지 얻은 끝에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아들,

사라진 아들의 죽음을 믿지 않으며 전기를 써달라고 부탁하는, 어딘가 기이한 면모의 어머니,

그 부탁을 받고 아들의 지인들을 탐문하면서 불길한 기운과 호기심을 갖게 되는 유령작가,

그 유령작가에게 노골적인 욕망을 들이대는 실종된 남자의 의붓여동생,

그 유령작가의 뒤를 밟는 듯한 미지의 키 큰 남자중년의 여자’,

그리고 전기가 완성될 무렵 유령작가에게 일어나는 의문의 폭력과 위협 등

다양하고 독특한 캐릭터가 이끄는 요약 불가 스토리500여 페이지에 걸쳐 전개됩니다.

 

다만,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이자 아쉬움은 어중간한 행동 동기와 미스터리 해법입니다.

실종된 아들, 아들의 전기를 의뢰한 어머니, 전기를 집필하는 유령작가 등 주요인물은 물론

아들의 의붓여동생, 아들의 의붓아버지, 유령작가의 부모 등 조연들에 이르기까지

대다수 인물들의 행동 동기는 어딘가 아귀가 맞지 않는 결과론적인 느낌을 줍니다.

무엇보다 호러 분위기를 강조하기 위해 다소 억지스런 행동들을 계속 벌이는데,

다 읽고 보면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이나 말을 한 건지 잘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미스터리 해법 역시 앞서 다양한 구성과 캐릭터를 통해 쌓아온 서사에 비하면

너무 싱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허망하게 마무리됩니다.

심지어 아직 이야기가 다 안 끝났는데도 급하게 막을 내린 듯한 인상도 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의 주인공이 누구였나, 이 작품의 핵심 미스터리는 무엇이었나, 라는

아주 근본적인 의문까지 품게 됐습니다.

독특한 작품임에도 틀림없고, 오리하라 이치의 무기가 총출동한 작품인 것도 맞지만,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듯한 엔딩 때문에 (심하게 말하면) 용두사미가 된 느낌을 받았고,

결론적으로는 너무 많은 걸 담으려다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결과물이 나왔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오리하라 이치의 색다른 맛을 보고 싶은 독자라면 한번쯤 권할 만한 작품이긴 합니다.

그를 트릭의 대가로만 알고 있는 독자에겐 정말 별미처럼 읽힐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넷 서점을 보니 오리하라 이치의 최근 국내 출간작이 2015년의 일곱 개의 관입니다.

일본에서도 활동이 뜸한 건지 국내 출간이 미뤄지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작품마다 강한 개성과 특별한 매력을 발휘하는 그의 신작은 언제든 환영하고 싶습니다.

아직 못 읽은 도착 시리즈일부와 () 시리즈일부부터 소화하면서

오리하라 이치의 반가운 신작 소식을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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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레인 데이브 로비쇼 시리즈
제임스 리 버크, 박진세 옮김 / 네버모어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무죄를 주장하는 사형수를 찾아간 뉴올리언스 경찰서의 데이브 로비쇼 경위는

그에게서 라틴계 조직이 자신을 노린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과 라틴계 조직과의 접점을 찾던 데이브 로비쇼는

몇 주 전, 늪에서 낚시를 하다 우연히 흑인 여성의 시체를 발견한 사실을 떠올린다.

관할 지역의 보안관이 시체 부검을 하지 않은 채 단순 익사로 처리했지만

그 사건을 쉽게 넘기고 싶지 않았던 데이브 로비쇼는 독자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일개 형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에 발을 담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미시시피 미시시피’, ‘기울어진 세상’, ‘액스맨의 재즈

미국 남부를 무대로 한 장르물들은 항상 제 시선을 끌곤 했습니다.

미국이지만 미국 같지 않은 곳, 프랑스의 유산이 화석처럼 남은 곳, 그리고 재즈의 고향 등

다양한 지리적, 역사적 관심거리가 많은 곳인데다 항상 불온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곳이라서

그곳을 무대로 한 미스터리나 스릴러는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란 기대를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다 읽은 뒤의 만족도는 조금씩 다르긴 했어도

여전히 미국 남부라는 무대는 제겐 호기심을 자극하는 배경임에 틀림없습니다.

 

네온 레인은 루이지애나 주와 뉴올리온스라는 도시의 색채가 무척 진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그곳의 풍경과 사람들이 지닌 남부 특유의 이미지 설명에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합니다.

겉으론 화려하지만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불온한 기운을 내뿜는 거리와 건물과 식물들,

직업과 인종을 불문하고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긴장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

그리고 달콤한 재즈가 흐르는 가운데 살인과 폭력과 마약이 난무하는 정글 같은 분위기 등

작품 전반에 걸쳐 불온한 미국 남부가 상세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데이브 로비쇼는 베트남 참전 이력이 있는 거친 뉴올리온스 경찰입니다.

케이준(주로 루이지애나주에 거주하는 강제 이주당한 프랑스계 캐나다인)인 그는

무척 거칠고 다혈질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원칙과 법을 믿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우연히 발견한 흑인 여자의 시신 때문에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에 휘말립니다.

라틴계 폭력배와 이탈리아 마피아는 물론 CIA, 재무부 수사관과도 충돌하는 사태에 이르지만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흑인 여자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의 목표는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정의뿐입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위해 지나치게 돌직구처럼 좌충우돌한 나머지

징계를 받거나 유치장에 갇히거나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재미있게 읽은 건 맞지만 나름 아쉬운 점도 꽤 많은 작품입니다.

우선 거칠지만 시적 은유로 가득한 걸작 누아르라는 홍보카피처럼 은유적 표현이 꽤 많은데,

때론 그 은유가 너무 지나쳐 좀처럼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각주도 꽤 많은 편인데, 그중에는 은유를 설명하기 위한 각주가 적잖은 편이라

스토리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기도 했습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사건 자체가 명확하지 않고, 누가 적인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발단은 흑인 여자의 죽음인데 뒤로 갈수록 이런저런 거물들이 계속 개입하면서

주인공 데이브 로비쇼가 추적하는 최종목표가 누군지 점차 애매해지기 시작합니다.

다 읽고도 결국 누가 응징된 것인지, 어떤 정의가 구현된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고,

꽤 많은 죽음이 등장하지만 그 죽음들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불투명해 보였습니다.

대신 그 자리는 데이브 로비쇼의 베트남 참전 트라우마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시리즈 첫 편이라 그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려는 의도라는 건 충분히 알겠지만,

때론 주객이 전도된 듯 보일 정도로 베트남 트라우마가 장황하게 설명된 게 사실입니다.

 

데이브 로비쇼는 여러 면에서 마이클 코넬리가 창조한 해리 보슈를 떠올리게 합니다.

해체된 가족, 돌직구 같은 정의감, 베트남 참전이 남긴 트라우마 등이 둘의 공통점인데

그래서인지 읽는 동안 종종 해리 보슈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확실한 차이라면 데이브 로비쇼의 지독한 알코올중독증과 거침없는 폭력적 성향이랄까요?

 

작가의 이력을 보니 지금까지 이 이름을 몰랐다는 게 의아할 정도입니다.

2018년 현재까지 38권의 작품을 발표한 것은 물론

범죄소설 작가들 중 전설로 불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라는 찬사까지 받았으니

꽤 많은 스릴러를 읽었거나 읽진 않았어도 이런저런 소문을 섭렵했다고 자부하는 제 입장에선

내가 왜 이 작가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거지?’라는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물론 그래서 데이브 로비쇼 시리즈가 더 궁금해진 것도 사실이지만요.

이후 작품도 네버모어에서 계속 출간된다고 하니

뉴올리언스 경찰 데이브 로비쇼가 어떤 사건을 맡고 어떻게 성장할지 지켜보려고 합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아쉬움들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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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자요, 엄마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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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터뷰를 거절하고 침묵하던 희대의 연쇄살인범 이병도.

사형수로 수감 중인 그는 일면식도 없는 범죄심리학자 선경을 지목하며 면담을 요청한다.

선경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아는지, 왜 자신을 지목해 인터뷰를 허락했는지 의문을 가진다.

한편, 또 한 명의 낯선 사람이 선경의 삶에 끼어든다.

갑작스러운 화재 사고로 오갈 데가 없어진, 남편이 데려온 전처의 딸 하영.

선경은 첫날부터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이게 되자 하영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는데...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 ● ●

 

(등장인물 설명 중 약간 상세한 소개가 포함돼있습니다.)

 

이 작품은 신간이 아니라 개정판으로, 당초 2010(노블마인)에 처음 출간됐던 작품입니다.

작가 후기를 보면 단순 개정판이 아니라 시리즈를 염두에 둔 새 출발이란 뜻이 담겨있는데,

독자들이 이 작품의 뒷이야기를 너무 궁금히 여긴 탓도 있고,

거듭 읽다 보니 나도 뒷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는 작가의 의지도 가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년(2019)에 후속작이 나올 예정이라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서미애의 팬이라면 잘 자요, 엄마가 지독히 역설적인 제목이란 점을 진작 눈치 챌 것입니다.

책을 읽기도 전에 꽤나 비극적인 모자 혹은 모녀 관계가 등장할 게 분명하고,

엄마라는 캐릭터가 따뜻함이나 모성애라는 의미보다는

그와는 정반대로 악마 또는 비극의 산실 역할을 맡을 거란 점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대학에서 범죄심리학을 가르치는 이선경입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두 개의 미션이 동시에 부여됩니다.

하나는 참혹한 연쇄살인마 이병도의 뜻밖의 요청으로 그와 면담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남편과 전처 사이에 태어난 하영이라는 11살 소녀를 떠맡게 된 일입니다.

이선경은 이병도와의 면담을 통해 그의 악마성의 근원이 어머니의 오랜 학대임을 간파합니다.

, 남편이 데려온 하영 역시 친모로부터 지독한 학대를 받아왔음을 눈치 챕니다.

특히 11살 소녀라는 외피에 어울리지 않는 공격성과 잔혹성을 지닌 하영을 지켜보며

이선경은 자기도 모르게 연쇄살인마 이병도와 하영을 동일선상에 놓기에 이릅니다.

 

이야기는 이병도 면담하영과의 동거등 크게 두 갈래로 전개됩니다.

말하자면 완성된 소시오패스첫 걸음을 뗀 소시오패스의 이야기인 셈입니다.

학대 엄마는 두 소시오패스의 공통점이자, 악마성의 근원지로 설정됩니다.

두 소시오패스의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처럼 전개되며 위기감을 고조시키다가

막판에 이르러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한데 합쳐집니다.

 

사건보다는 이선경-이병도-하영의 불안정하고 시한폭탄 같은 심리에 방점을 둔 작품이라

미스터리라기보다 심리스릴러로 보는 게 맞다는 생각입니다.

달리 이야기하면, 설정은 꽤 센데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지루하게 읽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이병도와의 면담은 그의 고백과 회상에만 의존할 뿐 특별한 사건을 일으키지 못했고,

하영과의 동거는 대체로 상투적인 전개를 벗어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이나 엔딩 직전의 클라이맥스 모두 다소 예측한대로 흘러가서

초반의 강렬한 설정에 비해 살짝 맥이 빠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이 모든 아쉬움과 걱정은 막판 몇 페이지의 엔딩에서 모조리 전복되고 맙니다.

2010년에 출간됐던 초판을 읽은 독자들이 후속작을 줄기차게 요구한 이유도

이 전복적인 엔딩을 읽고 나면 100%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작품이 딱히 연쇄살인범은 타고 나는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에 집착한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두 소시오패스 캐릭터가 등장하다 보니 그 문제가 자주 거론되긴 합니다.

서른 넘어 갑자기 살인마가 되는 경우는 없다.”라는 대사를 쓴 점이나

작가가 두 소시오패스에게 공히 학대 엄마라는 외부요인의 영향을 설정한 걸 보면

연쇄살인범은 만들어지는 것이며, 주변의 노력에 따라 피할 수 있는 재앙으로 본 것 같은데,

워낙 논란이 있는 주제라서 독자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는 있지만

작가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통해 충분히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쳤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때론 학대로 인한 인간의 내적 파괴가 당연한 인과관계처럼 설정된 점은

다소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했고 읽는 내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병도와 하영을 데칼코마니처럼 그린 점은 극적이긴 해도 위화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 “선경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두 완벽한 소시오패스를 한꺼번에 만난 걸까?”라는,

조금은 지나쳐 보였던 운명적 우연은 비극의 무게감을 감소시킨 부작용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서미애는 아린의 시선’,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에 이어 겨우 세 번째 만난 셈인데,

읽은 작품마다 생생한 캐릭터와 완결성이 돋보이는 이야기 때문에 푹 빠져들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첫 페이지를 연 뒤 단숨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완독했는데,

그녀의 두 번째 장편임에도 믿고 읽는 작가 서미애의 힘이 잘 배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년에 출간될 이 작품의 후속작 소식이 하루빨리 들려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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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굳이 이 작품의 장르를 규정하자면 금융 미스터리가 적절해 보이긴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미스터리 서사 자체가 그리 강렬한 작품은 아닙니다.

살인, 횡령, 사기, 배임 등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긴 하지만

범인의 정체나 동기는 교과서적이면서 단순하고,

막판에 거듭 반전이 일어나긴 해도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씁쓸한 맛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이 작품의 미덕은 은행이라는 (2007년 당시 기준으로) 엘리트 직장에 대한 고발이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갖가지 욕망에 대한 적나라한 리포트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야기의 무대는 도쿄제일은행의 나가하라 지점입니다.

도쿄 중심부 점포가 아닌 탓에 대체로 무기력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긴 하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은행원들의 욕망은 역설적으로 오히려 더 치열하고 간절합니다.

지점장으로의 승진을 위해 부하직원들을 짓밟고 일어서려는 부지점장,

어떻게든 감점을 피하고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얄팍한 리더쉽만 발휘하는 지점장,

그리고 승진, 전보, 신분상승을 위해 스트레스 속에서 발버둥치는 은행원들이 있고,

배임과 횡령 등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은 끝에 파멸에 이르는 은행원들이 있습니다.

 

작가는 연작단편 형식을 통해 그들 하나하나의 성장과 파멸을 디테일하게 그리는 것과 동시에

‘100만 엔 분실 사건과 니시키 대리의 행방불명을 단초로 삼아 미스터리를 전개시킵니다.

탐욕을 자아내는 과 종일 씨름해야 하고, 그날그날의 실적이 바로 드러나다 보니

최고위층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가 전쟁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고

갈등과 반목과 경쟁은 극한에 이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런 와중에 100만 엔 분실사건이 터지면서 은행은 혼란에 휩싸입니다.

고위직은 어떻게든 사고를 감추려 하고, 말단들은 제멋대로 추측한 범인을 비난하고,

중간간부는 작은 단서들을 토대로 범인을 찾으려 분투합니다.

그런 와중에 늘 묵묵히 업무를 수행하던 니시키 대리가 실종되는 사건까지 터지자

이번엔 본점의 인사부와 감사부까지 나서 나가하라 지점을 압박하기에 이릅니다.

지난한 과정 끝에 진실이 드러나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이 진실이라 확신하지 못합니다.

누구도 탐욕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누구도 떳떳하다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원제가 샤일록의 아이들이란 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07년의 도쿄제일은행 나가하라 지점과 2018년의 은행은 분명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인지 다소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강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몸담은 인간들의 민낯은 직접 지켜보듯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미스터리가 취약한 점이나 많은 챕터가 오픈된 엔딩으로 처리된 점이 다소 아쉬웠지만,

주조연을 막론하고 모든 인물이 100% 공감할 수 있는 상황과 역할을 부여받은 덕분에

수록된 단편 중 어느 하나 심심하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의 서평 역시 대부분 취약한 미스터리를 지적하고 있는데,

스트레스와 탐욕의 갈등 속에 자신만의 탈출구를 찾으려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은 괜찮은 텍스트가 돼줄 것이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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