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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맨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5
로버트 포비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초강력 허리케인 ‘딜런’이 다가오는 롱아일랜드의 몬탁.
30여 년간 외면하고 살아온 아버지의 끔찍한 사고 소식을 들은 FBI 특별수사관 제이크 콜은
불편한 마음으로 고향집을 찾았다가 지역보안관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는다.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살해당한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것.
현장을 찾은 제이크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분노를 느낀다.
모든 정황이 어머니가 끔찍하게 살해당한 삼십여 년 전과 너무도 비슷하기 때문.
제이크는 ‘그놈’에 대해 살의에 가까운 복수심을 느끼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놈’은 제이크를 놀리듯 주변 사람들을 계속 산 채로 살가죽을 벗겨 죽인다.
(출판사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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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함 자체를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독자에게 최대한 강한 충격을 선사하려는 것이다.”
작가인 로버트 포비가 이 작품에 관해 코멘트한 내용입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함 때문에 꽤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불과 2~3일 만에 수많은 희생자들이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살해당하는데,
역대급 허리케인의 습격이 예고된 소규모 지역에서 연이어 참혹한 사건이 벌어지고
벗겨진 살가죽은 물론 단서라곤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자 지역사회가 패닉에 빠진 것입니다.
일단 끔찍함과 충격을 예고한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례 없는 엽기적인 살인수법, 도시 기반 자체를 붕괴시킬 것 같은 엄청난 허리케인,
시시각각 주인공인 제이크 콜을 향해 조여드는 듯한 범인의 광폭 행보 등을 통해
작가는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 내내 독자를 마음대로 뒤흔들어놓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희생자가 등장하면서부터 제이크 본인은 물론 독자들도
범인의 최종 목표 또는 타격 대상이 제이크임을 쉽게 감지할 수 있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은 ‘30여 년 만에 고향에 온 FBI 특별수사관 제이크 콜의 지인 또는
물심양면으로 그를 도운 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왜?’, 즉 범인의 동기인데 이 부분이 작품 속 가장 큰 미스터리입니다.
작가는 그 미스터리의 핵심에 제이크의 아버지 제이콥이 있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유명 화가였지만 지금은 치매에 걸린 제이콥은 아들 제이크와 오랜 기간 절연한 상태였는데
최근 끔찍한 사고를 겪은 탓에 결과적으로 제이크를 고향으로 불러들인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또, 일련의 연쇄살인에 대해 뭔가 아는 듯한 태도를 취하지만,
치매 상태인 그의 언행을 무조건 믿을 수는 없어 제이크와 독자 모두 혼란을 겪게 됩니다.
또, 독자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설정 중 하나는 뉴욕에서 온 제이크의 아내와 아들입니다.
제이크는 지금 현재 오랫동안 등 돌렸던 고향이자 끔직한 사건 현장에 있는 셈인데,
그런 곳에 ‘가족’이 나타났다는 건 곧 그들에게도 위기가 닥칠 거란 전조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끔찍함과 충격으로 포장된 미스터리나 스릴러를 무척 좋아하긴 하지만
끔찍함과 충격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그 외의 서사들이 탄탄해야만 한다는 생각입니다.
즉, ‘누가, 어떻게, 왜?’라는 대목이 설득력도 있고 개연성도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다 읽은 뒤에 공포든 여운이든 그 작품만의 미덕을 느낄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블러드맨’의 경우 작가가 의도한 끔찍함과 충격은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 외의 부분들은 다소 허무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반전이 그다지 놀랍지 않았고,
‘어떻게’와 ‘왜?’는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도 통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충분한 설명 없이 마냥 끔직함과 공포에 대한 서술만 거듭하다가 막을 내린 듯 했고,
특히 엔딩은 정해진 분량이라도 있었던 듯 급하고 두루뭉술하게 마무리된 느낌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여운이고 뭐고 맛볼 틈도 없이 책을 덮어야만 했습니다.
또, 가장 중요한 설정 중 하나인 제이크의 과거에 대한 설명은 ‘반칙’에 가까웠다는 생각인데,
당연히 초반부터 공개됐어야 할 중요한 정보를 중반이 넘어서야 반전처럼 내보인 대목에서는
놀라움보다는 어이없음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이 대목에서 이미 이야기의 엔딩이 희미하게나마 예측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왜 이런 구성을 했을까?’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각주’ 역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었습니다.
심도 있는 비유나 은유를 위해 여러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이해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작가의 ‘지적 허영심’이 과도하게 발휘된 것으로만 보였을 뿐
수시로 책읽기의 템포와 긴장감을 무너뜨린 부작용만 일으켰다는 생각입니다.
끔찍함과 충격 면에서만 보면 테스 게리첸의 ‘의사 3부작’ 역시 ‘블러드맨’에 못잖은데,
제가 ‘의사 3부작’을 좋아하는 이유는 끔찍함과 충격을 뒷받침한 튼튼한 서사 때문입니다.
범인의 정체, 의도, 수법은 물론 범인을 쫓는 주인공의 심리에 이르기까지
독자가 충분히 긴장감을 갖고 몰입할 수 있게끔 설득력과 개연성을 갖췄다는 뜻입니다.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나중에 이 작품을 떠올리면 ‘산 채로 벗겨진 살가죽’과 ‘허리케인’ 외엔
인상적으로 기억할 만한 ‘뭔가’가 그다지 많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