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유리 낭만픽션 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1964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를 소재로 한 연작단편집입니다.

모두 12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단편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2부작인 경우도 있습니다.

당연히 다이아몬드 반지로 인해 벌어지는 비극들을 다루지 않았을까, 예상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 반지의 소유자들이 겪은 사건들을 다뤘을 뿐

반지 자체가 이야기의 발단 혹은 사건의 동기로 작동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완벽한 무결점 3캐럿 다이아몬드 반지라는 희귀하고 고가인 물건의 소유자들인 만큼

등장인물들의 면면은 결코 평범하지 않습니다.

탄광 부자, 넓은 땅을 소유한 부농, 정계출신의 기업회장, 군납비리로 부를 축적한 자 등

구매자 대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많은 돈을 움켜쥔 자들이고,

그들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 받은 자들은 금수저든 게이샤든 욕정의 대상이든

역시 평범하지 않은 여성들이 대부분이라는 뜻입니다.

 

특히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일본의 패전을 전후로 한 시기이다 보니

부유층, 탐욕과 집착, 살인이라는 코드들이 날것 가까운 형태로 그려지고 있는데,

미스터리 자체가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고 충격적인 반전을 지니지도 않았지만

혼돈으로 가득 찬 아날로그적인 시대상 덕분에 무척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백제의 풀도망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근무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들입니다.

물론 일본인의 관점에서 기술된 조선의 사찰이나 거리의 풍경은 불편했던 게 사실이지만

패전 직전 조선 내 일본인들의 탐욕과 이기심이라든가 생존을 위한 권모술수 등

이야기의 완결성이나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나 위기감은 가장 매력적인 작품들입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정통 사회파 미스터리를 기대한 독자에겐 다소 심심하게 읽힐 수 있지만

패전 전후의 시대상이라든가 탐욕 또는 정열 같은 인간의 민낯 이야기가 궁금한 독자라면

출퇴근길이나 여행길에 소소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단편집이라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음의 론도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연방 범죄수사국 수사관과 그 가족들이 연이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자비네 네메즈는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모호한 정황 속에서 연이어 희생자가 등장하고

, 그들 모두 과거 마약전담반과 연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더 이상은 진척이 없자

9개월 전 불의의 사고로 정직을 당한 스승이자 파트너인 마르틴 S. 슈나이더를 찾아간다.

하지만 슈나이더는 과거는 묻어두라며 즉시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말만 남긴다.

전보다 더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슈나이더에게 격분한 자비네는

결국 동료인 티나와 함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 ● ●

 

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슈나이더 시리즈가 당초 3부작으로 기획됐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원래 전작인 죽음을 사랑한 소년에서 슈나이더를 비극적으로 정리할(?) 계획이었던 듯 한데,

이유는 잘 몰라도 작가가 다행히 마음을 바꾼 덕분에 신작을 만나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전작의 결말에서 제자이자 파트너인 자비네에게 체포됐던 슈나이더는 현재 정직 상태입니다.

덕분에 연방 범죄수사국 수사관과 그 가족의 죽음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받은 자비네는

슈나이더 없이 거의 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게 됐는데,

물론 슈나이더가 중반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건 해결에 가담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진실을 밝혀내는 자비네 원 톱 스토리에 가깝습니다.

 

큰 그림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과거 마약전담반에 몸담았던 수사관들이 모종의 죄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20년을 복역했던 남자가 출소하여 그들의 죄와 진실을 찾기 시작하면서

사방에서 비극적인 죽음이 벌어진다는 설정입니다.

자비네가 슈나이더의 지원 없이 작은 단서에서부터 수사를 시작하지만

매번 장벽에 부딪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수사에서 손을 떼라는 지시를 받기도 합니다.

한편, 사건 발생 며칠 전, 20년 만에 출소한 하디의 이야기가 별도의 챕터로 전개됩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복수를 다짐하곤 과거 동료들을 찾아가 협박과 설득을 병행하며

자신의 무고함을 밝혀줄 단서를 찾기 위해 분투합니다.

 

독자는 자비네가 찾는 과거 마약전담반 수사관들의 감춰진 비밀이 무엇인지,

복수를 다짐하는 하디가 과연 누명을 쓴 자인지 아니면 희대의 악당인지,

, 슈나이더는 왜 동료와 그 가족들의 죽음을 알고도 자비네에게 손을 떼라는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의문을 머릿속에 담아둔 채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특히 지금껏 시리즈에 계속 등장했던 주요 인물들까지 참혹하게 살해되는 장면과

자비네가 여러 인물로부터 쉴 새 없이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움과 함께 슈나이더의 모르쇠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인지 의아해지기도 합니다.

 

자비네의 활약 자체도 매력적인데다 중반 이후부터는 슈나이더도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있고,

거기에 하디의 복수극과 진상을 은폐하려는 과거 마약전담반 수사관들의 계략까지 더해져서

딴 생각 할 틈 없이 페이지는 술술 잘 넘어갑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몇 가지 위화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했는데,

그건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여전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어렵지만, 대략 이런 식입니다.

 

왜 악당들은 후환을 야기할 수 있는 인물을 진작제거하지 않았는가?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지금도 왜 그를 방치한 채 굳이 일을 악화시키는가?

, 주인공은 진작밝힐 수 있었을 것 같은 악당들의 죄를 왜 오랜 시간 모른 척 했나?

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다음에야 때가 됐다는 듯행동에 나서는가?

 

말하자면, 주인공도 악당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뜻인데,

(물론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작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고, 설득력도 떨어지는 설정이란 생각입니다.

제가 악당이라면 후환이 될지도 모를 씨앗을 진작 제거했을 것 같고,

주인공이라면 첫 희생자가 나온 시점에라도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 같은데,

작품 속 주인공과 악당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작가가 지시할 때까지움직이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자비네를 제외한 그 어느 인물도 상식적이지 않은 대응을 하고 있고

그 때문에 다 읽고도 왜 이런 비극이 벌어져야만 했는지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적잖은 분량을 엄청 빠른 속도로 재미있게 읽고도 별 0.5개를 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엔딩을 보니 작가가 당분간은(?) 이 시리즈를 이어갈 생각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현업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이는 슈나이더가 다음 작품에선 어떤 활약을 펼칠지,

또 적잖은 충돌을 겪은 자비네와는 어떻게 화해하고 다시 파트너가 될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

물론 그동안 친숙해졌던 조연들이 이 작품에서 퇴장한 점은 여전히 아쉽지만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상의 해바라기
유즈키 유코 지음, 서혜영 옮김 / 황금시간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유즈키 유코는 올해 출간된 고독한 늑대의 피를 통해 강한 인상을 받은 작가인데,

이 작품 역시 ‘2018년 서점대상 2라는 타이틀이 달려 있어서 무척 기대가 됐습니다.

 

우리에겐 생소한 일본 장기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입니다.

일본에 7벌밖에 없는 희귀한 고가의 장기 말과 함께 발견된 암매장 사체 수사가 한 축이고,

불우한 유년기를 거쳐 천재적 장기기사로 성장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또 다른 한 축입니다.

이야기 시작과 동시에 작가는 살인용의자=천재적 장기기사임을 곧장 공개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600여 페이지의 본문을 통해

지난 4개월간 이뤄진 형사들의 수사과정과 천재 장기기사의 성장기를 밀도 있게 설명합니다.

 

출판사 소개글에 보면 마츠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을 연상시키는..”이란 대목이 있는데,

외적으로는 유년기부터 부침을 반복하며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던 한 개인의 이야기지만

내용면에서는 대하드라마에 가까운 깊이와 무게감을 지녔기 때문이란 생각입니다.

주인공에게 장기는 결코 잊을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간절한 열망과도 같은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인생 내내 깊은 절망과 배신감을 떠안긴 대상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의 자살과 아버지의 폭력으로 불우해진 유년기에 한줄기 빛이 돼준 것도 장기였지만,

성인이 된 후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게 만든 것도 역시 장기였기 때문입니다.

 

다 읽고 생각해보면 그 깊이와 무게감이 어느 정도 공감되기도 했고,

디테일한 룰을 모르고 봐도 긴장감이 넘쳤던 장기 대결에 대한 묘사도 재미있었고,

중후반 이후 엔딩까지 팽팽하던 비장미 역시 매력적이었지만,

결론적으로는 만족감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던 게 사실입니다.

 

고독한 늑대의 피에서 형사들의 삶을 지독할 정도로 생생하게 그린 작가의 필력 덕분에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속 형사들의 이야기가 제법 궁금했지만 다소 기대에는 못 미쳤습니다.

무례하고 이기적이지만 최고의 능력을 지닌 고참 형사와 프로 장기기사를 꿈꿨던 신참 형사는

나름 캐릭터와 케미는 재미있었지만 ‘7벌의 장기 말 찾기외엔 딱히 한 일이 별로 없었고,

어떻게 보면 수사과정을 설명하는 내레이터정도의 역할만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불우한 유년기를 거친 천재 장기기사 게이스케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지만,

이 역시 초반 내내 밋밋하고 상투적인 아침연속극처럼 평범하고 장황하기만 해서

서점대상 2위를 차지한 유즈키 유코의 작품이 맞나, 라는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게이스케가 대학에 들어간 뒤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속도감도 빨라지고

그의 삶을 뒤흔드는 인물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긴 합니다.

, 사체의 신원이 밝혀지고, 함께 매장됐던 장기 말이 게이스케와 연관 있음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미약해 보였던 미스터리의 힘도 제대로 힘을 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후반부에 오자 갑자기 장기는 사라지고 엉뚱한 설정들이 이야기 핵심을 차지하는데,

정작 어릴 적에는 별로 그리워한 적도 없는 자살한 어머니에 대한 게이스케의 회한,

고흐가 그린 해바라기 그림을 보며 느끼는 (본인도 그 근거를 알지 못하는) 죽음에의 동경,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돈을 뜯어내는 아버지에 대한 살의에 가까운 증오심,

그리고 그 아버지로 인해 알게 된 게이스케 자신도 몰랐던 과거의 비밀등이 그것입니다.

 

문제는 이 난데없는 설정들 때문에 이 작품의 정체성이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클라이맥스 이전의 게이스케와 이후의 게이스케가 전혀 다른 인물처럼 보였고,

그의 고민과 갈등 자체도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앞서 전개됐던 장기에 관한 이야기들을 모두 허망하게 만든 것 같기도 하고,

클라이맥스와 엔딩만 놓고 보면 굳이 장기라는 소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고,

장기를 잊고 사업가로 성공한 게이스케가 또다시 장기에 손을 댄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시작은 장기였지만 결말은 장기와는 별 관계없는 일로 마무리됐다고 할까요?

 

고독한 늑대의 피이후 유즈키 유코의 신작을 기대했던 터라 아쉬움이 더 컸던 것 같은데,

당초 기다리던 작품인 불길한 개의 눈’(‘고독한 늑대의 피의 후속작)이 출간되면

다시 한 번 유즈키 유코의 거칠지만 매력적인 경찰 이야기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트 스토커 스토리콜렉터 69
로버트 브린자 지음, 유소영 옮김 / 북로드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에리카 포스터 경감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입니다.

전작인 얼음에 갇힌 여자에서 비극적인 사고로 인한 공백기를 마감하고 컴백했던 에리카는

경찰 내에서 위아래 할 것 없이 굴러온 돌 vs 박힌 돌의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권력층 가문이 연루된 사건을 다루느라 갖가지 압력과 좌충우돌하곤 했습니다.

꽤 어려운 사건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지만 에리카의 반골기질과 돌직구 성정은 여전하고,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일부 고위간부의 삐딱함도 여전한 상태에서

이번에는 사회적으로 꽤 성공한 남자들이 연이어 살해당하는 사건을 맡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 역시 에리카는 초반부터 윗선들과 부딪힙니다.

기이하고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발견된 사체들과 현장에서 발견된 동성애 관련 단서들로 인해

윗선들은 우발적인 게이 치정사건으로 방향을 잡으려 하지만,

에리카는 누군가 희생자들을 오랫동안 관찰했고 치밀한 계획 끝에 저지른 범행이라 여깁니다.

문제는 연이어 사체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에리카의 수사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한 점입니다.

결국 수사에서 배제되는 위기에 처하지만 에리카는 끝내 자신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합니다.

 

전작인 얼음에 갇힌 여자의 서평 말미에 만족감은 8, 아쉬움은 2.”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나이트 스토커는 전작의 아쉬움이 대부분 해소된 작품입니다.

그녀의 캐릭터 중 가장 두드러진 점은 작전 도중 남편과 동료를 잃은 심각한 트라우마입니다.

하지만 전작에서는 이 트라우마가 팩트 나열식으로만 그려져서 다소 공감이 안 됐는데,

두 번째 작품이라 그런지, 혹은 좀더 섬세하게 그 트라우마가 그려진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에리카에 대해 어느 정도는 편하게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었습니다.

, 다소 기계적으로 보였던 루이셤 경찰서 사람들과의 갈등 역시 좀더 자연스럽게 묘사돼서

그녀의 분노나 위기가 훨씬 더 사실감 있게 느껴졌습니다.

, 중재자, 아군으로 확실하게 구분된 루이셤 경찰서 사람들과의 갈등 또는 협력은

사건에 못잖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이유는 달라도 이번 역시 만족감은 8, 아쉬움은 2.”라는 결론은 마찬가지였는데,

이번의 아쉬움은 에리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사건 자체에 기인한 것입니다.

우선, 큰 그림만 놓고 보면 사건 자체가 너무 단선적이라는 느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범행 수법도 특이하고, 희생자들의 신원도 호기심을 자극하도록 설정돼있지만

탐문이나 목격자 찾기 외에 에리카가 딱히 뭔가 수사할 만한 여지가 별로 없었고,

에리카의 계획범죄주장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단서는 너무 쉽고 우연히 발견됩니다.

그런 탓에 부족한 서사를 메우기 위해 혼선을 주는 사건을 설정한 것으로 보이는데

메인 스토리와 잘 섞이지 못하고 따로국밥처럼 보이기만 했던 건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다 읽은 뒤에 에리카의 수사보다 경찰 윗선들과의 갈등이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은 것은

아마도 이런 사건 자체의 단순함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 범인의 캐릭터도 아쉬운 대목이었는데,

출판사 소개글대로 공공연한 가정 폭력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피폐한 삶과 상처,

쉽게 회복되기 힘든 트라우마, 그리고 그것이 양산하는 또 다른 폭력이란 주제는 이해됐지만

그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범인을 너무 과대포장한 나머지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한 점,

, 범인의 범행 수법이 너무 정교하고 완벽한 점은 수시로 위화감을 들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프로 킬러도 아닌데 마치 훈련된 테러리스트처럼 능숙하게 범행을 저지르는 장면에선

범인에 대한 동정심이나 공감은 사라지고 어떻게?”라는 의아함만 남기도 했습니다.

 

시리즈 첫 편인 전작에 비해 거칠고 기계적인 부분들이 많이 매끄러워졌고,

부당한 처우에 대해 에리카가 직격탄을 날리며 경찰서를 떠나는 엔딩 덕분에

다음 작품 자체가 기대되는 것은 물론 그녀의 입지가 어떻게 그려질지 무척 궁금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흠뻑 빠져들 만큼 매력적인 시리즈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매번 만족감은 8, 아쉬움은 2.” 정도의 재미는 보장한다는 생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킬링 케이트
알렉스 레이크 지음, 장선하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케이트는 자신이 사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연쇄살인사건 때문에 패닉에 빠진다.

그건 살해된 20대 여성들이 하나같이 자신을 꼭 닮았기 때문.

혹시 마지막 목표가 자신이 아닐까, 라는 공포를 느낀 케이트는

부모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는 건 물론 외모까지 확 바꿔보지만 별 소용이 없음을 깨닫는다.

한편, 케이트에게 이별을 통보받았던 필은 현실을 수긍하지 못하고 케이트에게 집착한다.

케이트는 필이 자신을 몰래 따라다닌 사실까지 알고 분노하지만,

경찰을 통해 그가 유력한 연쇄살인 용의자라는 말을 듣곤 큰 충격에 빠진다.

 

● ● ●

 

잔혹하게 살해된 여성들이 자신과 꼭 닮았다는 사실에 패닉에 빠진 케이트 주변에는

여러 남자들이 다양한 거리를 두고 배회합니다.

케이트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뒤 거의 폐인처럼 살아가며 그녀 주변을 맴도는 전 남친 필,

여행지에서 만나 충동적인 하룻밤을 보낸 뒤 고향에서 우연처럼 재회한 멋진 연상남 마이크,

같은 변호사 사무실에 근무하며 수시로 추파를 보내는 네이트,

옆집에 살며 케이트가 곤란할 때마다 도움을 주곤 하는 칼 등이 그들인데,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기 위한 캐릭터들이긴 하지만 실은 작가는 진범을 쉽게 노출시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누가 범인?’보다는 ?’에 더 방점을 찍은 작품이며,

2/3쯤엔 작가가 범인을 공개적으로 밝히기 때문에 이른 진범 식별은 큰 의미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두 번에 걸친 막간 : 5년 전이라는 챕터가 더 궁금증을 일으키는데,

그 안에는 케이트를 포함한 절친 4명이 5년 전에 겪은 비극이 서술돼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부터 자매처럼 자란 4명 가운데 베스가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나머지 친구들은 그것이 베스가 만나던 남자 때문이란 걸 짐작만 할 뿐입니다.

막간이 메인 스토리와 어떻게 연결될지가 꽤 궁금해지는데,

작가는 케이트를 겁에 질리게 만든 연쇄살인범 스토리와 이 막간을 절묘하게 연결시켜

중반부의 반전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엔딩까지 장식하게 만듭니다.

 

자신을 꼭 닮은 연쇄살인 피해자라는 설정만 보면 심리적 공포 묘사가 많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사건 위주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

이 점에 대해선 독자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가 있겠지만,

제 경우에는 재미있게 읽긴 했어도 다소 밋밋한 독후감을 느끼게 만든 요인이었습니다.

 

자신과 닮은 여자들이 살해되는데, 아무리 (남친과 결별한 상태에서) 절친이 권한다 해도

데이트 사이트에 사진을 비롯한 자기 정보를 올리며 새 남자를 찾는 케이트의 행동은

독자에게 심리적 공포를 이입시켜야 할 주인공 치곤 참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작가가 심리보다는 사건 위주의 오락물을 의도했음을 반증하는 설정입니다.

사소하지만, 큰 도시도 아닌 듯 한데 케이트를 닮은 여자가 그렇게 많다는 점도 부자연스럽고

절친들 외에는 누구도 딱히 케이트를 걱정하지 않는 점도 계속 덜컥거리는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범인이 공개된 2/3쯤부터는 사건 중심의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물처럼 읽혔는데,

개인적으로는 긴장감은 배가되지만 오히려 현실감은 떨어졌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범인의 동기나 소시오패스로서의 캐릭터도 어딘가 억지스러웠는데,

잔혹한 악당을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나쁜 성정은 다 갖다 붙인 느낌이랄까요?

그의 집착이나 욕망이 좀더 자연스럽고 그럴 듯 했다면 케이트의 공포가 더 생생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분히 작위적인 캐릭터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서

위기가 최고조에 다른 클라이맥스에서 조차 좀처럼 긴장감을 유지하기 힘들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앞서 말한대로) ‘재미있지만 긴장감은 별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주인공이나 범인의 부자연스러운 설정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서사 역시 500페이지에 육박할 만큼 크지 않아서 때로 지루하게 읽힌 대목도 있었고,

없어도 무방한 에피소드(케이트와 부모의 갈등)도 눈에 띄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필력만 놓고 보면 이 작가의 작품을 한 편쯤은 더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이 작품보다 먼저 출간된 애프터 안나가 눈에 띄어서 일단 목록에 올려놓기로 했습니다.

 

사족으로...

출판사의 결정인지, 번역자의 개성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대화를 큰따옴표가 아니라 작은따옴표로 표기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어떤 대화든 매번 상대에게 하는 대사인지, 마음의 소리인지 헷갈리곤 했는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책읽기를 꽤나 방해한 것은 물론 짜증까지 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