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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론도 ㅣ 스토리콜렉터 70
안드레아스 그루버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연방 범죄수사국 수사관과 그 가족들이 연이어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자비네 네메즈는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모호한 정황 속에서 연이어 희생자가 등장하고
또, 그들 모두 과거 마약전담반과 연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지만 더 이상은 진척이 없자
9개월 전 불의의 사고로 정직을 당한 스승이자 파트너인 마르틴 S. 슈나이더를 찾아간다.
하지만 슈나이더는 과거는 묻어두라며 즉시 사건에서 손을 떼라는 말만 남긴다.
전보다 더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슈나이더에게 격분한 자비네는
결국 동료인 티나와 함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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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글을 보니 ‘슈나이더 시리즈’가 당초 3부작으로 기획됐던 작품이라고 합니다.
원래 전작인 ‘죽음을 사랑한 소년’에서 슈나이더를 비극적으로 정리할(?) 계획이었던 듯 한데,
이유는 잘 몰라도 작가가 다행히 마음을 바꾼 덕분에 신작을 만나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전작의 결말에서 제자이자 파트너인 자비네에게 체포됐던 슈나이더는 현재 정직 상태입니다.
덕분에 연방 범죄수사국 수사관과 그 가족의 죽음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받은 자비네는
슈나이더 없이 거의 홀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맡게 됐는데,
물론 슈나이더가 중반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건 해결에 가담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진실을 밝혀내는 ‘자비네 원 톱 스토리’에 가깝습니다.
큰 그림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과거 마약전담반에 몸담았던 수사관들이 모종의 죄를 저질렀고,
그로 인해 20년을 복역했던 남자가 출소하여 그들의 죄와 진실을 찾기 시작하면서
사방에서 비극적인 죽음이 벌어진다는 설정입니다.
자비네가 슈나이더의 지원 없이 작은 단서에서부터 수사를 시작하지만
매번 장벽에 부딪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수사에서 손을 떼라는 지시를 받기도 합니다.
한편, 사건 발생 며칠 전, 20년 만에 출소한 하디의 이야기가 별도의 챕터로 전개됩니다.
그는 공개적으로 ‘복수’를 다짐하곤 과거 동료들을 찾아가 협박과 설득을 병행하며
자신의 무고함을 밝혀줄 단서를 찾기 위해 분투합니다.
독자는 자비네가 찾는 과거 마약전담반 수사관들의 감춰진 비밀이 무엇인지,
복수를 다짐하는 하디가 과연 누명을 쓴 자인지 아니면 희대의 악당인지,
또, 슈나이더는 왜 동료와 그 가족들의 죽음을 알고도 자비네에게 손을 떼라는 것인지 등
여러 가지 의문을 머릿속에 담아둔 채 책장을 넘기게 됩니다.
특히 지금껏 시리즈에 계속 등장했던 주요 인물들까지 참혹하게 살해되는 장면과
자비네가 여러 인물로부터 쉴 새 없이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는 대목에서는
안타까움과 함께 슈나이더의 모르쇠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지닌 것인지 의아해지기도 합니다.
자비네의 활약 자체도 매력적인데다 중반 이후부터는 슈나이더도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있고,
거기에 하디의 복수극과 진상을 은폐하려는 과거 마약전담반 수사관들의 계략까지 더해져서
딴 생각 할 틈 없이 페이지는 술술 잘 넘어갑니다.
하지만 읽는 내내 몇 가지 위화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했는데,
그건 마지막 장을 덮은 뒤에도 여전했습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어렵지만, 대략 이런 식입니다.
왜 악당들은 후환을 야기할 수 있는 인물을 ‘진작’ 제거하지 않았는가?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는 상황이 된 ‘지금’도 왜 그를 방치한 채 굳이 일을 악화시키는가?
또, 주인공은 ‘진작’ 밝힐 수 있었을 것 같은 악당들의 죄를 왜 오랜 시간 모른 척 했나?
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다음에야 ‘때가 됐다는 듯’ 행동에 나서는가?
말하자면, 주인공도 악당도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뜻인데,
(물론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작가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고, 설득력도 떨어지는 설정이란 생각입니다.
제가 악당이라면 후환이 될지도 모를 씨앗을 진작 제거했을 것 같고,
주인공이라면 첫 희생자가 나온 시점에라도 적극적으로 나섰을 것 같은데,
작품 속 주인공과 악당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작가가 지시할 때까지’ 움직이지 않습니다.
결론적으로 자비네를 제외한 그 어느 인물도 상식적이지 않은 대응을 하고 있고
그 때문에 다 읽고도 왜 이런 비극이 벌어져야만 했는지 다소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적잖은 분량을 엄청 빠른 속도로 재미있게 읽고도 별 0.5개를 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엔딩을 보니 작가가 당분간은(?) 이 시리즈를 이어갈 생각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현업으로 복귀할 것으로 보이는 슈나이더가 다음 작품에선 어떤 활약을 펼칠지,
또 적잖은 충돌을 겪은 자비네와는 어떻게 화해하고 다시 파트너가 될지 사뭇 기대가 됩니다.
물론 그동안 친숙해졌던 조연들이 이 작품에서 퇴장한 점은 여전히 아쉽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