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의 귀환 스토리콜렉터 71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김윤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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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노시를 지옥으로 몰아넣은 개구리 남자 50음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열 달.

당시 유력한 용의자와 몸싸움 끝에 큰 부상을 입었던 고테가와는

개구리 남자의 귀환이라 부를만한 연쇄살인이 수도권에 걸쳐 재현되자 충격에 빠진다.

특히 당시 범인으로 몰렸던 도마 가쓰오가 정신과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는 소식에

고테가와는 사수이자 파트너인 와타세와 함께 돌아온 개구리 남자 체포에 전력을 다한다.

하지만 폭탄, 황산, 지하철, 파쇄기 등을 이용한 엽기적인 범죄는 연이어 일어나고

개구리 남자는 예의 범행 내용을 적은 메모만 남겨놓은 채 경찰과 시민들을 공포에 빠뜨린다.

 

● ● ●

 

전작인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를 재미있게 읽은데다 엔딩에서 또 다른 살인을 예고했기에

언제나 후속작이 나올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빨리 출간돼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던 사이타마 현경의 고테가와는 불편하긴 해도 건강을 되찾았고,

그의 사수이자 파트너인 와타세 경부는 여전히 까칠하면서도 능력자의 포스를 발휘합니다.

10달 만에 다시 나타난 개구리 남자의 살인극은 전편을 능가할 정도로 잔혹했고,

한노시에만 국한됐던 과거와 달리 수도권 전체에서 희생자를 만들어냅니다.

초반부터 유력한 용의자가 밝혀지지만 도무지 행적을 알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자

고테가와와 와타세는 예전의 희생자 유가족과 관련자들을 탐문하며 단서를 얻으려 애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선, 전작을 안 읽은 독자는 이 작품 속 인물, 사건, 관계를 제대로 음미하기 쉽지 않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였다가 혐의를 벗은 뒤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된 도마 가쓰오,

그의 보호관찰관이자 멘토였지만 충격적인 비밀을 안고 있던 피아노 교사 사유리,

그리고 딸과 손녀를 참혹하게 잃었던 정신과 교수 오마에자키 등

전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들이 고스란히 다시 등장하는데,

이들 간의 악연을 이해 못한 상태에서는 이 작품의 진가를 맛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결론은, 역시 전편만한 후속편은 없다는 걸 확인했다는 점입니다.

참혹한 살인과 연이은 반전, 누가 진범인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던 전개 덕분에

나카야마 시치리의 방대한 저작 가운데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었던 전작에 비해

귀환한 개구리 남자를 다룬 이 작품은 다소 산만하고 단선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테가와와 와타세는 탐문 이상의 성과를 올리지 못한 채 사건현장을 전전하기만 하는데,

그에 비해 심신미약 상태의 범죄자에 대한 처벌’, ‘일본의 의료교도소의 열악한 현황’,

경찰 및 사법행정의 문제’, ‘언론과 인터넷이 퍼 나른 공포’, ‘가해자의 인권에 대한 논쟁

다분히 강의에 가까운 장황한 설명이 훨씬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아쉬운 대목은 클라이맥스에서부터 엔딩까지였는데,

결정적인 시퀀스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아 불안하던 와중에

너무 쉽고 안이하게 진범의 정체와 사건의 실상이 드러나면서 아쉬움이 배가됐습니다.

마치 분량을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엔딩을 짜맞춘 느낌이랄까요?

나카야마 시치리의 특기이자 전작에서 맛봤던 짜릿한 반전과 충격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귀환한 개구리 남자가 저지른 잔혹한 범죄에 대한 상세한 기술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강의 외에는 딱히 후속작으로서의 미덕이 부족했다는 생각입니다.

 

소소한 재미라면 카메오처럼 등장한 두 캐릭터를 지켜보는 일이었는데,

한 명은 나카야마 시치리의 대표 캐릭터 중 한 명인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이고,

또 한 명은 세이렌의 참회에 등장했던 여기자 아사쿠라입니다.

미코시바는 이 작품 속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사유리의 변호인으로 등장하는데,

실은 미코시바와 사유리는 미코시바 시리즈의 첫 편인 속죄의 소나타에 함께 등장했고,

미코시바는 소년원에서 만난 사유리의 피아노 덕분에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 여기자 아사쿠라는 와타세와 잠깐 마주치는 딱 한 장면에만 등장하긴 하지만,

범죄보도에 대한 경찰과 언론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는 인상적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읽다 보면 이런 식의 카메오를 종종 발견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조연이나 단역도 잘 기억해놓고 있다 보면 생각지 못한 재미를 맛볼 수 있습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쉬움 역시 그만큼 컸는데,

생각해보면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들이 모두 전작에 등장했던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고테가와와 와타세가 그들과 제대로 된 접점 하나 없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보입니다.

말하자면 수사 따로, 범인 따로였던 탓에 긴장감이 생기기 어려웠다는 뜻입니다.

여전히 작가는 또 다른 후속작의 여지를 남겨놓긴 했는데,

혹시 개구리 남자가 다시 귀환한다면 이런저런 아쉬움을 지울 수 있는,

나카야마 시치리만의 특기가 잘 배어있는 작품으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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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
마야 유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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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달린 어둠에서도 어느 정도 맛보기는 했지만,

주인공 메르카토르 아유의 진정한 재수 없음(?)과 끝을 알 수 없는 자아도취 기질,

그리고 사건 현장 도착과 동시에 진상을 파악해내는 신출귀몰함은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제대로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메르카토르 아유의 캐릭터를 단 한 줄로 잘 요약해놓았는데,

메르카토르 아유 가라사대, 내 말은 곧 정답이다.”가 그것입니다.

 

턱시도, 나비넥타이, 실크해트로 치장한 명탐정 메르카토르와

조수이자 친구이며 늘 구박당하고 무시당하는 추리소설 작가 미나기 산조 콤비가 활약하는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죽은 자를 깨우다는 별장 카레장에 놀러갔던 고교생들 사이에서

1년의 시간차를 두고 벌어진 변사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규슈 여행은 이른 새벽 미나기의 옆집에서 발견된 변사체 사건을,

수렴은 종교단체가 머무는 섬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대답 없는 그림책은 지진이 일어난 직후 고교 건물에서 한 인물이 살해된 사건을,

밀실장은 밀실이나 다름없는 별장에서 발견된 의문의 변사체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약해놓은 설정들만 보면 미스터리 단편집에서 다룰 법한 보편적인 소재들이지만,

작가는 일반적인 진범 찾기와는 전혀 다른 전개와 해결방식을 택합니다.

희생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은 물론 시간대와 장소까지 알면서도

주인공이 사건 해결을 위해 일부러 모르는 척 방치하는 경우도 있고,

변사체를 앞에 두고 소설의 소재로 삼기 위해 이리저리 창작을 일삼는가 하면,

심지어 살인사건은 맞지만 범인은 없다.”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배신감과 쾌감을 함께 안겨주는 작품이라는 인터넷 서점의 소개 글을 본 순간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위화감의 실체를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상식적이지 못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뒤통수를 맞은 듯 쾌감을 느낀 작품도 있지만,

다 읽은 뒤 배신감은 물론 불쾌한 기분까지 든 작품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흐트러진 퍼즐 조각들처럼 복잡하게 널려있던 단서들이

메르카토르의 빈틈없는 추론과 눈썰미 덕분에 하나씩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은

쾌감 이상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했지만,

진범은 누구인가?’라는 당연한 궁금증과 기대감을 무시한 채

내가 그리 말했으니, 그것이 정답이다.”라는 식의 엉뚱한 궤변만 늘어놓으며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낸 채 마무리할 때는 말 그대로 배신감과 불쾌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호감을 느낀 작품을 꼽아보자면, ‘수렴규슈 여행인데,

탐정 메르카토르의 매력과 작가 마야 유타카의 필력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수작이었습니다.

 

일본 아마존 리뷰 가운데, “평범한 추리소설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추천할 수 없다.”

부조리한 결말, 정말 이걸로 끝인가?”라는 꽤 비판적인 언급들이 많이 있는데,

수록된 모든 작품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공감이 가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아무튼...

과정이야 어쨌든 진범은 명쾌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믿는 분들께는 비추,

엉뚱하거나, 독특하거나, 본 적 없거나, 그야말로 새로운 이야기를 찾는 분들께는 강추,

이것이 메르카토르는 이렇게 말했다에 대한 저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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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프로젝트 - 로더릭 맥레이 사건 문서
그레임 맥레이 버넷 지음, 조영학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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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잔혹한 이야기를 다룬 것 같은 분위기의 제목과 달리

블러디 프로젝트는 살인사건을 다룬 소설이면서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로더릭 맥레이 사건 문서라는 부제 역시 이 작품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869년 스코틀랜드의 한 소작지에서 벌어진 참혹한 살인사건이 메인 스토리이긴 하지만,

목격자들의 진술, 범인 스스로 범행을 자술한 비망록, 범죄인류학자의 정신감정 보고서,

그리고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과 증인들의 증언을 담은 재판일지 등으로 구성돼있어서

비밀과 추리와 반전이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범죄소설로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번역하신 조영학 님도 옮긴이의 말에서,

곧바로 범인이 자수하며, 범인이 바뀔 정도의 갈등이나 반전은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처음 번역 작업을 한 후 당황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 왜 이렇게 밋밋하지?’”, 라며

이 작품에 대한 첫인상을 서술할 정도였습니다.

 

지주와 마름과 소작인이라는 계급이 존재하던 1869년의 스코틀랜드 북부의 작은 마을 컬두이.

아홉 가구에 55명밖에 살지 않는 이 작고 빈곤한 마을에 살던 17살 소년 로더릭 맥레이는

부당한 완장질을 휘두르며 자신의 가족들을 괴롭히던 라클런 매켄지 일가를 살해합니다.

체포 직후 범행을 자인한 그는 변호사의 권유로 사건 관련 이야기를 비망록으로 작성합니다.

한편, 변호사는 맥레이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을 입증하려고 애쓰고,

그를 위해 범죄인류학의 권위자까지 초빙하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정작 맥레이는 재판정에서마저 특별히 선처를 바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습니다.

 

고백하자면, 중반쯤 이르렀을 때 이 작품이 평범한 범죄소설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 비밀과 반전과는 무관한 보고서같은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면서

몇 번이고 중도 포기할까 고민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묘하게 시선을 끄는 맥레이의 불행한 개인사 때문에 결국 끝까지 읽게 됐는데,

극빈층에 가까운 19세기 말 스코틀랜드 소작농의 비참한 삶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라든가,

지주-마름-소작인으로 이어지는 계급사회의 비정함과 잔혹함,

17살 소년의 소극적이면서도 어찌할 수 없는 욕망 등이 매력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역시 비밀과 반전이 없는 보고서에 가까운 소설이란 점은 무척 아쉬웠습니다.

번역하신 조영학 님은 “(이 작품은) 범죄 소설이 아니라 범죄에 대한 소설이다.

누가 범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범죄를 저질렀으며,

맥레이를 비롯해 어느 증인의 말을 믿을 수 있느냐가 소설의 핵심.”이라고 변호(?)하셨지만,

?’는 그다지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지 않았고,

누구 말을 믿을 수 있느냐?’ 역시 단선적인 묘사에 그친 탓에

이 작품만의 미덕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크게 보면 두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성장기와 범행 전후의 정황을 고백한 맥레이의 비망록이고,

또 하나는 맥레이의 정신적 이상을 입증하려는 변호사의 고군분투기입니다.

하지만 범인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변호사는 범인과 특별한 관계도 아니고 범인의 정신적 이상을 확신하는 것도 아닌데다,

대중들의 시선을 끈 이 사건을 통해 변호사로서 성공하겠다는 욕망을 지닌 것도 아니다 보니

두 개의 이야기가 아무런 접점 없이 따로 놀고 있다는 느낌밖에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2016년 맨부커상 최종 후보로 지명된 것은 물론

다수의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걸 보면 특별한 미덕이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대중적인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선

(번역자와 마찬가지로) 다소 당혹스런 책읽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꽤 호불호가 갈릴 이 작품에 대해 다른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척 궁금한데,

그래서인지 인터넷 서점이나 블로그의 서평을 꼭 찾아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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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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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 목표인 미야베 월드 2막 완전정복의 네 번째 작품입니다.

앞선 3작품(‘말하는 검’, ‘흔들리는 바위’, ‘미인’)이 신비한 능력의 소녀 오하쓰 시리즈였다면

이 작품은 혼조 일대를 담당하는 오캇피키인 모시치가 주인공인 작품입니다.

하지만 오하쓰 시리즈와는 달리 모시치는 적극적인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매 작품마다 설명역또는 차분한 조연정도로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본 출간일 기준으로는 이 작품이 미야베 월드 2의 첫 작품입니다.)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수록돼있는데,

현재 도쿄 스미다 구에 해당하는 혼조 일대에 떠돌던 일곱 가지 불가사의를 소재로

무척이나 애잔하고 가슴 아픈 사연들을 미스터리와 함께 녹여내고 있습니다.

미스터리 자체도 그다지 긴박하거나 대단한 반전을 지니지 않았고,

주인공 모시치 역시 (능력자인 건 분명하지만) 그 캐릭터가 예리한 명탐정보다는

마음씨 좋고 정의로운 이웃집 아저씨에 가깝습니다.

그래서인지 매 작품마다 살인, 강도 등 강력사건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관심은 (후기에 실린 편집자의 말대로)

미스터리보다는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사연과 안부에 더 집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릴 적 먹을 것을 적선해줬던 생명의 은인에 대한 흠모와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 남자,

어처구니없는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뒤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는 아내,

너무나도 아름다운 새어머니를 흠모했지만 그녀의 과거와 비밀을 알게 된 후 충격에 빠진 딸,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깊은 나머지 집착과 의심에 이르지만 뒤늦게 진실을 알게 되는 처녀,

어린 딸을 잃은 뒤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남기며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온 부부 등

남녀노소는 물론 빈부의 격차와 상관없이 각자의 지난한 사연들을 지닌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거기에 미스터리와 판타지(혼조의 일곱 가지 불가사의)가 끼어들면서

각자의 오랜 사연들은 더 절절하고 애틋하게 현실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홀로 밤길을 떠다니는 등롱, 지나는 어부에게 말을 거는 해자, 꺼지지 않는 사방등,

연주자 없이 밤새 울리는 축제 음악 등 모두 일곱 개의 불가사의가 등장하는데,

대단하거나 기괴하진 않아도 이야기 규모에 알맞은 소소한 판타지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야베 월드 2의 전반적인 느낌이 높은 수위의 미스터리와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시리즈의 포문을 연 이 작품의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하고 애잔한 편에 가까운데,

그런 탓에 독자에 따라 좀 간이 덜 된 심심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사랑, 흠모, 집착, 증오, 회한 등 다양한 감정과 사연들이

소소한 미스터리와 판타지 속에 잘 녹아 있는데다

어수룩해 보이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기지를 발휘하는 오캇피키 모시치의 캐릭터 덕분에

안 그래도 짧은 단편들이 더 짧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작품으로 미야베 월드 2을 처음 접한 독자라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매력적인 시리즈를 성급하게 예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품마다 편차는 있지만 에도 시대의 미스터리와 판타지가 절묘하게 그려진,

즉 미미 여사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작품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 경우, 다시 읽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미야베 월드 2중에도 나름 고유한 미덕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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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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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월드 2가운데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녀 오하쓰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입니다.

17살의 소녀 오하쓰는 남들은 보거나 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는 영험한 능력을 지녔는데,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뛰어난 사이코메트리라고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전작인 흔들리는 바위가 시비토쓰키, 즉 시체에 나쁜 영이 깃드는 현상을 소재 삼아,

오랜 원념을 발산하여 끔찍한 살인사건을 일으킨 사령(死靈)의 이야기를 다뤘다면,

미인은 망집에 사로잡힌 잡귀가 일으킨 수수께끼 같은 실종사건을

가미카쿠시(神隠), 불가지한 이유로 사람이 사라지는 현상이란 관점에서 다룹니다.

망집과 원념으로 똘똘 뭉친 사령이 현실의 사람들에게 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미인은 제목 그대로 망집과 원념의 근저에 아름다움이라는,

끔찍한 사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역설적인 가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오하쓰가 마주친 사건은 아름다운 10대 소녀들의 연이은 실종인데,

그녀들이 사라질 때마다 핏빛 같은 아침놀이 하늘을 뒤덮고

세상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한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는 진술을 들은 오하쓰는

소녀들의 실종이 납치나 가출 등 현실적인 범죄가 아니라

덴구(天狗, 전설의 요괴) 등에 의한 가미카쿠시라고 확신합니다.

실종된 소녀들이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원망과 증오를 산 적이 있고,

하나같이 실종 직전 벚꽃이 만발한 숲이 등장하는 악몽을 꾸었으며,

그 꿈속에서 관음보살의 모습을 한 신비한 존재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오하쓰는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여 소녀들의 실종 당시 상황을 추리하는 것은 물론,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탐문과 조사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결국 관음보살의 외형을 띤, 망집에 사로잡힌 끔찍한 원령과 마주치게 됩니다.

 

미인흔들리는 바위에 비해 호러와 판타지 서사가 훨씬 더 강한 작품입니다.

무엇보다 현실 속 인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가미카쿠시를 당연한현상으로 여겼고,

그 결과 이승과 저승 사이에 원령이 지배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설정했기 때문입니다.

, 관음보살을 닮은 원령은 오하쓰 외에도 누구나 목격할 수 있는 존재라 현실감이 강했고,

오하쓰의 사건 해결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역할을 고양이가 맡고 있다는 점 등 때문입니다.

물론 가미카쿠시를 역이용한 갈취범이라든가 아편 매매를 일삼는 조직적 범죄 등

현실적인 범죄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긴 하지만,

독자의 시선은 역시 호러 판타지를 기반으로 한 인물들과 사건에 주목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天狗風’, 즉 일본의 전승 요괴인 덴구(天狗)가 일으키는 바람이란 뜻인데,

개인적으로는 미인이라는 번역 제목이 훨씬 더 작품과 잘 맞는다는 생각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비정상적인 집착, 그 집착이 초래한 파멸에 가까운 비극,

그리고 그 비극으로 인해 태어난 원령이 젊고 아름다운 소녀들을 향해 내뿜는 저주 등

작품 전반에 걸쳐 아름다움’, ‘미인’, ‘화려함등이 강조되기 때문인데,

그런 코드들이 공포 서사와 맞닿으면서 이야기의 폭발력이 더욱 커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더불어, 핏빛 아침놀, 가미카쿠시가 이뤄진 화려한 벚나무 숲, 원념이 깃든 화려한 기모노 등

유독 다채롭고 원색에 가까운 색상들에 대한 묘사가 두드러지는데,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제작했다면

정말 시각적으로 화려한 결과물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문득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재미있는 건 그 작품의 원제가 센과 치히로의 가미카쿠시라는 점입니다.

호러라는 점만 제외하면 소재도 화려함도 무척 닮은꼴의 작품처럼 여겨졌습니다.)

 

오하쓰 시리즈는 아쉽게도 이 작품을 끝으로 (현재까지) 더는 출간되지 않았습니다.

무사 집안의 후손이지만 산학(算學)에 빠진 채 오하쓰의 이 된 우쿄노스케도,

오하쓰의 오빠이자 범죄수사를 담당하는 오캇피키인 로쿠조도 더는 만날 수 없어 서운하지만,

언젠가는 오하쓰 시리즈가 다시 한 번 출간되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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